-
-
그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 (무선) ㅣ 보름달문고 44
김려령 지음, 장경혜 그림 / 문학동네 / 2011년 4월
평점 :
(인터넷 서점을 서핑하던 홈즈가 신문을 보고 있던 왓슨에게 말을 건넨다)
홈즈 : 왓슨, 이것 좀 보게.
왓슨 : 왜? 무슨 특종 기사라도 났나?
홈즈 : 그게 아니고 김려령 작가가 신작을 냈어. 동화야.
왓슨 : 그래? 어디보자...제목이 <그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군 그래.
홈즈 : 왓슨, 난 바로 장바구니에 담았네.
왓슨 : 허, 김려령이라면 이름만 보고 막 사는군. 주문하는 김에 내 것도 한 권 부탁하네. 나도 읽어야 자네랑 신작 이야길 할 게 아닌가?
홈즈 : 그러지. 왓슨, 난 말이지 <완득이>를 펴냈을 때부터 김려령 작가를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어.
왓슨 : 내 잘 알고 있네. 자넨 스스로를 관심있게 지켜보는 독자 정도로 생각하겠지만 난 자네가 김려령의 광팬같이 보인단 말이지, 하하.
홈즈 : 이친구 하는 말하곤, 광팬이라니...
왓슨 : 뭐 그럼 그렇게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
홈즈 : 당연하지.
왓슨 : 그렇다면 말해보게. 내가 자네를 김려령 작가의 광팬으로 몬 것이 오해였다는 걸 해명해 보라구.
홈즈 : 먼저, 김려령 작가는 자칫 불편하고 무거울 수 있는 소재를 밝고 경쾌하게 그려낸다네. 이건 김려령 작가에게나 작품을 읽는 독자에게 매우 중요하네. 김려령은 내가 알기론 이번 신작까지 4편의 동화와 2편의 청소년 성장소설을 펴냈네. 독자층이 주로 아이들이라 할 수 있지. 하지만 각 작품이 다루고 있는 이야기를 한 번 보게. <내 가슴에 해마가 산다>는 공개입양아 하늘이와 그 가족의 이야기고, <완득이>는 장애인 아빠와 국적이 다른 엄마가 부모인 고교생 완득이의 성장 이야기지. 또 <우아한 거짓말>은 10대의 집단따돌림을 다루고 있네. 김려령의 작품엔 정상적이라 할만한 가정이 잘 없네. 무거울 수 밖에 없지.
왓슨 : 음, 입양, 다문화가족, 집단따돌림... 어느 것 하나 다루기 쉬운 소재가 없군 그래.
홈즈 : 김려령은 독자층이 아이들이라고 해서 그들 속에 엄연히 실재하는 이야기들을 외면하지 않아. 진실되게 그려내지. 하지만 경쾌한 문체와 아이들의 언어로 독자의 공감을 이끌어낸다네. 이때문에 김려령은 아이들에만 머물지 않는 더욱 폭넓은 독자층을 확보하게 됐고.
왓슨 : 다음으로 넘어가 볼까?
홈즈 : 그러지.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김려령의 작품은 재밌네. 왜 그런지 아나?
왓슨 : 글쎄.
홈즈 : 인물들의 캐릭터가 분명하기 때문이지. 주인공이 주제와 전체적인 분위기를 중저음으로 잡아나가면 톡톡 개성이 넘치는 조연들이-<완득이>의 '똥주'나 '핫산', <우아한 거짓말>의 '오대오'같은- 쳐진 분위기를 끌어올리고 독자를 킥킥거리게 만들어. 그리고 판타지 소설의 스펙타클은 없지만 우리가 잘 아는 소박한 소재와 일상을 다루고 있어 낯설지 않아. 중간 중간 다음 사건 전개에 대한 암시와 복선을 추리소설처럼 잘 깔아 놨지. 재밌을 수 밖에. 독자로 하여금 사유하게 하고 웃음 가득한 즐거움을 준다면 작가가 더 할 일이 뭔가?
왓슨 : 음... 잘 알겠네. 근데 말이야 홈즈, 그렇게 침 튀기며 얘기하는 걸 보니 광팬이 맞는거 같은데...하하.
홈즈 : 인정하지. 난 김려령의 광팬이 맞다고 말이야..하하.
왓슨 : 지금 신작 <그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를 주문하면 내일 도착하겠군.
홈즈 : 그럼 이번 주말에 내 사무실로 오게. 김려령의 신작 이야길 해보자구.
(주말, 왓슨이 <그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를 들고 홈즈의 사무실로 들어선다)
홈즈 : 잘 지냈나? 시간이 빨리도 지나가는군.
왓슨 : 그러게 말이야. 벌써 주말이야. 커피부터 한 잔 부탁하네.
홈즈 : 자네 올 시간에 맞춰 준비해뒀네. 자 여기.
왓슨 : <그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 감동적이었네. 자네 말대로 무거워야할 이야기가 밝고 경쾌하더군.
홈즈 : 그렇지? 자네 소감부터 정리해보게.
왓슨 : 홈즈, 사실 감동적이었다는 말은 맨 나중 감정이야. 내가 작품 속에서, 작중 인물들로부터 받은 느낌은 '통(痛), 통(通), 통(統)' 세 단어라네.
홈즈 : 뭐라구? '통, 통, 통'?
왓슨 : 그래, '통(痛), 통(通), 통(統)'.
홈즈 : 왓슨, 날 시험하는 건가? 얼른 설명하는게 좋을 걸세. 내가 추리하기 전에 말이야.
왓슨 : 안그래도 그럴 참이네. 첫번째는 통(痛)일세. 아팠네. 마음이 말이야. 아내를 잃고 쌍둥이를 교통사고로 먼저 보낸 건널목 씨, 아빠 엄마의 부부싸움에 친구도 사귀지 못했던 도희, 아빠는 병으로 돌아가시고 엄마는 돈벌러 집을 나가버려서 부모없이 둘만 지내야 했던 태석이와 태희. 모두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네. 특히 아이들을 보게. 어디가서 누구에게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겠나? 특히 가정에서 이뤄지는 부모의 모범과 지지는 아이들의 자존감과 자신감의 굳건한 기초네. 부모가 흔들리면 아이들은 극심한 혼란에 빠지게 되고 자기를 탓하게 되지.
홈즈 : 맞네. 완전히 성장하기 전까지는 아이들은 절대적 약자네. 어떤 아이들은 물질적 풍요를 누리면서도 학교와 학원의 입시교육에 정신이 피폐해지기도 하고 어떤 아이들은 가정폭력에 시달리기도 하고 또 어떤 아이들은 극심한 빈곤에 노출되어 있기도 하지. 모두 가정의 울타리 안에서 일어나는 경우가 많기때문에 아이들은 무방비 상태로 위험에 처해 있는 셈이네.
왓슨 : 말 못할 이야기를 가슴에 묻은 아이들은 마음을 닫기 마련이네. 통증(痛症)은 그때부터 시작되고 말이야. 인간은 마음을 닫는 순간 섬이 되어 버리지. 우린 먼 발치에서 섬을 볼 수 있지만 가닿을 수 없네. 하여간 홈즈, 아팠네.
홈즈 : 자네 얘길 들으니 나도 다시 가슴이 아리하게 아파오는군...
왓슨 : 두번째는 통(通)일세. '건널목 씨'라는 이름이 모든 걸 함축하고 있지. 건널목 씨는 실제로 카펫 건널목을 가지고 다니며 아이들과 주민들이 여기서 저기까지 안전하게 건널 수 있도록 해 주었네. 하지만 이것보다 더욱 중요한 건 건널목 씨가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고 마음과 마음을 통(通)하게 해 주었다는 것 아니겠나? 이웃들을 사촌처럼 만들고 형제도 아닌 도희와 태석이 남매를 형제처럼 이어주는 진정한 건널목의 역할을 할 수 있었다니 말이야. 놀라운 일이네.
참 이상하지? 근사하게 생긴 사람도 아닌데, 가진 게 많아서 듬뿍듬뿍 퍼 주는 사람도 아닌데, 사람들은 건널목 씨를 좋아했어. 많은 사람들 사이에 건널목 씨 한 사람 더 와서 사는건데 아리랑아파트 분위기가 달라졌다니까. 이웃끼리 인사도 더 자연스럽게 했고 상냥해졌지. 좋은 사람이란 그런 거야. 가만히 있어도 좋은 에너지를 뿜어내는 사람, 내가 이걸 해 주면 저 사람도 그걸 그걸 해 주겠지? 하는 계산된 친절이나, 나 이정도로 잘해 주는 사람이야, 하는 과시용 친절도 아닌 그냥 당연하게 남을 배려하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건널목 씨야. 그런 사람이 뿜어내는 에너지는 참 많은 사람을 행복하게 해. - <그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 77p
그래, 그렇게 건널목 씨와 도희는 만났어. 그리고 도희는 건널목 씨 덕에 다른 아이들도 만날 수 있었지.
- <그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 93p
홈즈 : 완전 공감하네. 건널목 씨도 교통사로로 쌍둥이를 잃고 나서 전국을 떠돌며 위험한 도로에 그저 건널목 설치를 주장했겠지. 짓궂은 운명이지만 그런 개인적 경험이 건널목 씨를 인간 일반에 어떤 사명감을 갖게 했을 것이고 이곳 저곳을 떠돌면서 마침내 건널목에 숨겨진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되었을 걸세.
왓슨 : 음...일리가 있군. 건널목 씨는 자신의 마음을 완전히 열어젖혀서 마음과 마음을 이을 수 있었다고 생각하네. 마음을 열지 않으면 '길'은 생기지 않아. 일단 마음을 열어야 하네. 열린 마음 사이엔 왕래가 있기 마련이고 그런 왕래를 통해 길이 생긴다네. 그러면 놀랍게도 둘 사이에 난 길 위에 다른 이들도 들어서기 시작하고 그때부터 길은 스스로 길을 만들어 가지. 길이 생명력을 얻게 되는 셈이네.
홈즈 : 그러고 보니 <그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에는 마음이야기가 좀 나오는 군. 마음이라..작가 김려령이 뿌려놓은 작품 이해의 비밀 열쇠가 아닐까? 작가와 독자를 통(通)하게 하는 것도, 낯선 아이들이 형제처럼 지낼 수 있게 하는 것도 진실된 마음, 진심 아니겠나?
독자들에게 가슴을 열지 않은 작가라니, 독자들은 이미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걸 왜 이제야 깨달았을까. (중략) 진심! 듣는 사람의 마음을 열려면 이야기를 하는 사람부터 마음을 열어야 한다. 마음을 닫아 놓고 입으로만 하는 이야기, 그러면 안 된다. - <그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 14p
도희는 태석이와 태희 마음을 참 잘 알아줬어. 생각해 보면, 엄마 아빠한테 바라던 것들을 도희 자신이 태석이 태희한테 해 줬던 것 같아. 참 안쓰러운데, 그렇게 나눠 주고 사랑해 주면서 도희도 마음속 상처가 아물었던게 아닐까 싶어.
<그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 139-140p
왓슨 : 두말하면 잔소리지.
홈즈 : 자, 마지막 통은 뭔가?
왓슨 : 하하, 서두르지 말게. 세번째는 통(統)일세. <그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는 우리 모두를 하나로 묶어주네.
홈즈 : 왓슨, 우리 모두라면 누구를 말하나?
왓슨 : 말 그대로 모두네. 하나씩 해볼까? 먼저 작품 속에서는 오명랑과 이야기 듣기 교실에 온 아이들, 오명랑의 가족들, 이야기 속 아파트 주민들, 도희와 태석이 태희, 작가 김려령과 독자인 우리까지 한데 묶어주지. 뿐만 아니라 표제가 된 작가의 마지막 질문 '그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을 통해 불려나온 '모든 독자의 기억속 건널목 씨'들까지 포함해서 말일세. 진실된 이야기의 힘이란 참 위대하다네.
홈즈 : 그렇게 본다면 작가 김려령은 또 한 명의 '건널목 씨'가 되는 셈이군 그래. 왓슨, 하여간 대단하이. '통(痛), 통(通), 통(統)' , 귓전을 맴도는군.
왓슨 : 우리가 성인이 되기까지 참 든든한 건널목 씨들이 많았던 것 같아.
홈즈 : 그렇지? 우리를 격려해주고 칭찬해주고 손잡아주고 껴안아주었던 분들이 없었다면 우린 더 많은 좌절을 통해 삶을 배웠을 걸세.
왓슨 : 문학 속에도 나의 건널목 씨들이 있네. 대표적으로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의 뽀루뚜까, <빨강머리 앤>의 마릴라와 매튜라네. 이들은 내 아이들의 건널목 씨들도 될테지. 김려령은 작가의 말에서 자네나 나도 생활속에서 아이들의 소박한 '건널목 씨'가 될 수 있기를 바라더군.
나는 벌써 어른이 되어 건널목 앞에 서 있습니다. 조심하면 괜찮다고, 잘 살피고 건너면 된다고, 이제 내가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나는 그런 어른이고 싶습니다. 때로는 힘들고 지쳐 주저앉고 싶을 때도 있을 테지요. 어른들도 부족한 게 많아 번쩍 안아 원하는 곳으로 옮겨 줄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덜 힘들게 덜 아프게 덜 무섭게 그 시기를 건널 수 있도록 건널목이 되어 줄 수는 있습니다. 친구라도 좋고 이웃이라도 좋습니다. 먼저 손을 내밀어도 괜찮고, 누군가 먼저 내민 손을 잡아도 괜찮습니다. 우리 그렇게 살았으면 합니다. - 작가의 말 중에서
홈즈 : 왓슨, 그래도 아이들이 세상으로 나가는 가장 좋은 건널목은 부모네. 그렇지 않나?
왓슨 : 지당한 말씀이네.
홈즈 : 부모들이 <그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를 주의깊게 읽는다면 자녀양육서로 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네.
왓슨 : 자녀양육서?
홈즈 : 그렇네. 자녀양육서. 이 책을 통해 부모들은 자녀들의 마음을 읽는 방법을 배울 수 있네. 건널목 씨가 도희에게, 태희와 태석이에게 어떻게 했는지 보란 말이지. 건널목 씨가 아이들에게 팔자를 고칠만큼 돈을 준 것도 아니고 자기 호적에 입양을 한 것도 아니네. 그저 말벗이 되어 주고, 있는 것을 나눠주었을 뿐 아닌가? 아이들이 부모에게 기대하는 건 부모의 능력을 넘어서는 그 무엇이 아니야. 함께 있어주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거든. 그리고 하나 더 내 아이가 살아가는 세상에는 남의 아이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하네. 건널목 씨처럼 아이들 모두에 대한 작은 배려를 실천하는 어른이 되는 거야. 결과적으로 그것이 내 아이를 위하는 길임을 명심해야 하네.
왓슨 : 장가도 안 간 자네가 꽤나 통찰력있게 읽어냈군그래.
홈즈 : 좀 더 늘어 놓겠네. 반면교사도 등장하지. 먼저 도희의 부모. 서로가 배려하지 않는 부모, 하루가 멀다하고 싸우는 부모 아래서 자녀가 예의바르고 내면이 건강한 아이로 성장하리라는 기대는 하지 말아야 하네. 차라리 개꼬리를 묻고 황모가 되기를 기다리게. 도희는 건널목 씨를 만난게 정말 다행이었지. 앞서 자네도 말했지만 그런 부모는 자녀의 자존감과 정체성에 심각한 상처입혀 친구관계마저도 자신감을 상실하게 만들거든.
도희 부모님은 알까? 자신들 때문에 딸이 외톨이로 지낸다는 걸. 혹시 우리는 집에서만 싸웠다. 그러니 밖에서 친구를 못 사귈리 없다! 뭐 그렇게 말한다면, 한 마디 해주고 싶다. 당신들은 어린 시절이 없었냐고. 집에 친구를 데리고 올 수 없다는 건, 친구를 만들 수 없는 것과 같은 거라고. 이상한 부모를 두었다는 소문은 동네보다 학교가 더 빠르게 퍼진다고. - <그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 121p
엄마가 떠나고, 아빠가 떠나고, 그 뒤 육 개월가량을 엄마 아빠 대신 건널목 씨가 두 아이를 보살폈어. 하지만 누군가 보살펴 주는 것과 엄마 아빠가 함께 사는 건 다르잖아. 보살펴 주는 누군가가 있어도 존재 자체로 든든한 부모와는 다르지. 너희 그런 경험 있지? 베개 꼭 쥐고 벌벌 떨면서 무서운 영화를 보다가도, 엄마가 와서 "무슨 영화야?" 하고 옆에 앉으면 무서웠던 게 싹 달아나잖아. 밤늦게 혼자 있으면 멀쩡한 집도 얼마나 무서워. 그런데 엄마 아빠가 띵동 초인종을 누르는 순간 무서움이 싹 가시잖아. 부모는 그런 존재야. 그런 부모가 태석이와 태희에게 사라졌어. 하루하루 얼마나 무서웠겠어. - <그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 130p
또, 태석이 엄마가 아이들만 두고 6개월씩 비웠을 때 태석이와 태희가 느꼈을 공포감을 기억해야 하네. 부모들은 자신들의 존재만으로도 자녀들의 강력한 성장공간이 됨을 반드시 마음 속에 새겨야 해.
왓슨 : 홈즈, 자넨 장가가면 정말 좋은 아버지가 될 수 있겠어. 나도 많이 배웠네. 이제 오늘은 이만 할까?
홈즈 : 하나만 더 하세, 하하.
왓슨 : 아직도 할 얘기가 남았나?
홈즈 : 중요한 건 아닌데... 문득 <그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의 등장인물 중 한 명이 작가 김려령의 분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 직업병이지. 하하. 자넨 누가 김려령의 분신이라고 생각하나?
왓슨 : 재밌는 발상이군, 홈즈. 간단히 추리하면 작중 동화작가 오명랑이 아닐까? 16페이지에 "'문밖동네'라고 엄청 큰 출판사에서 나온,『내 가슴에 낙타가 산다』라는 동화, 그거 내가 쓴거야."라고 바로 김려령의 작품을 암시하는 말이 나오니까 말이야.
홈즈 : 그렇지, 왓슨. 오명랑도 김려령의 분신일 수 있지. 하지만 함정일 수도 있어.
왓슨 : 허, 동화를 읽고 추리를 하다니 나 원...자넨 누구라고 생각하나?
홈즈 : 난 말이지. 오명랑의 이야기 듣기 교실에 온 나경이가 유력하다고 생각하네. 물론 도희도 배제하진 말아야지. 165페이지엔 도희도 예술고에 진학했고 작가가 꿈이었다고 나오니까.
왓슨 : 뭐? 나경이? 걘 초등학교 5학년짜리잖아?
홈즈 : 그렇지. 어린 시절의 김려령이지. 95~96페이지를 잘 읽어보게. 나경이는 오명랑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나중에 자신이 동화로 써도 되냐고 묻고는 허락을 받아내지. 20년을 넘게 기다린 나경이가 이제야 <그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로 펴낸 거라고 말한다면? 하하.
왓슨 : 그 친구 참, 재밌네. 김려령 작가 사인회나 북콘서트 같은 걸 하면 꼭 물어보자구.
홈즈 : 그래야겠지? 난 벌써 김려령의 다음 작품이 기대되네. 오늘 즐거웠네, 왓슨.
왓슨 : 동감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