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테와 다산, 통하다 - 동서 지성사의 교차로
최종고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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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말마따나 ‘괴테(Goethe, 1749~1832)와 다산(茶山, 1762~1836)은 한없이 낯익은 두 이름이지만 함께 붙여놓았을 때의 생소함은 마치 갓 쓰고 양복 입은 모습처럼 낯설’다. 그런데도 저자는 왜 괴테와 다산의 삶과 유산, 학문적 관심과 성과를 한 책에 써 볼 생각을 했을까?

 

 먼저 저자, 최종고를 살펴보는 것이 좋겠다. 그는 서울법대를 졸업하고 독일 프라이부르크대학에서 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1년부터 서울대 법대 교수로 재직했으며 지금은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에서 법사상사 영역을 개척하고 있다. 2000년부터 저자는 한국인물전기학회를 창립하고 우리나라 인물 연구와 전기학(傳記學) 정립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문화와 인문학에도 관심이 많아 몇 권의 교양서도 펴냈으며 시화전을 열 정도로 시와 그림에도 조예가 깊다. 명실상부 우리나라 최고 지식인이라 할 만하다. 이런 저자가 수 년 전부터 괴테 연구에 푹 빠졌다고 한다. 저자의 왕성한 지식욕으로 보건데 괴테에 필적할 만한 우리 역사 속 인물을 찾아 비교해 보고자했음은 오히려 자연스럽다. 다산은 괴테와 동시대를 살았으니 저자의 욕구를 꼭 맞게 충족시키는 인물이었을 것이다.




 그렇다해도 두 인물을 한 책에서 비교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서로 다른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환경 속에서 일말의 교류도 없었던 두 인물이라면 차라리 한 사람씩 깊이있게 연구하고 결과를 발표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250년의 두 지성이 서로 통(通)하여 지금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칠 수 있을까? 결국 이 질문은 두 지성만 통(通)하는 것 이상의 범위로 나아가게 된다. 그들과 더불어 지금 우리도 통(通)해야만 답할 수 있는 문제니까 말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괴테와 다산은 더 이상 현재의 창조적 영향력의 핵심이 아니며 그들을 다시 써 내는 저자와 읽어내는 독자가 핵심이라는 뜻이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괴테와 다산의 그것과는 전혀 다르다. 인터넷, 휴대폰, 이동식 정보기기는 정보의 공유 속도와 방식에 혁명을 가져왔다. 장소가 동떨어져 서로 다른 세상을 살아간 괴테와 다산의 시대와는 달리 현대는 유럽의 유행이 실시간으로 한국에 전해지기도 하며 동양의 학문적 성과를 서양의 학자들이 수초만에 다운로드 받아 자신의 연구에 활용할 수 있다. 동서양의 문화와 사상이 한데 어우러져서 나타나는 현상만으로는 그것의 기원을 따지기도 힘들다. 문제없는 꿈과 희망의 시대가 지속된다면 좋으련만 사람사는 세상에 문제가 없으면 그게 어디 사람사는 세상일까? 우리는 오히려 더 복잡해지고 까다로운 문제에 직면해있다. 우리는 현재 맞닥뜨린 다양한 문제들의 대안을 모색하고자 역사를 탐구하고 구체적인 한 인물에 시선을 고정하여 그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더구나 동서양이 뒤섞이고 국가, 기업, 개인이 얼키고 설켜 크고 작은 영향을 주고 받는 이 시대에는 힘들고 어려운 시대를 극복해낸 동서양의 두 지성을 비교함으로써 나름의 답을 캐낼 수 있을 터다.




 괴테의 시대, 유럽은 오랜 전통과 사상적․제도적 편견과 권위를 무기로 인간을 속박하고 있었다. 괴테는 이성의 힘을 신뢰하고 사상가로서 근대적 안목으로 인간성의 보편적 가능성을 긍정했다. 역사는 괴테를 위대한 인물을 넘어 하나의 문화라고 말한다. 다산의 시대, 조선은 겉보기에는 안정을 구가하는 듯 보였지만 털끝하나 썩지 않은 구석이 없었다. 다산은 해묵은 법을 바꿔서라도 경세치용, 이용후생, 실사구시를 꾀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나아가 토지제도의 변혁, 주자학 중심의 사변적 사유방식을 탈피한 새로운 인간관과 우주관을 모색하기에 이르렀다. 암흑의 시대를 극복하고자 그들이 창조했던 사상, 변하지 않는 보편적 가치관을 우리 시대에 맞게 재창조해야한다. 바로 이것이 <괴테와 다산, 통하다>에서 우리가 배워야할 시대를 뛰어넘는 통찰이며 교차점이고 괴테와 다산, 저자와 독자가 통(通)하는 지점이다. 우리가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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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인생 - 평범한 삶이 아주 특별한 삶으로 바뀌는 7가지 이야기
구본형 지음 / 휴머니스트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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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 이야기다....<깊은 인생>, 제목을 보며 짐작했다. 읽어갈수록 ’내 짐작이 옳았군’하고 생각했다. 심장이 빠르게 뛰고 가슴이 옥죄듯 답답해왔기 때문이다. 책을 내려놓았을땐 이미 늦었다는 걸 알았다. <깊은 인생>은 ’꿈’으로 내게 ’깊은 상처’를 냈다. 몸도 마음도 너무 아파서 나는 몸져 누울 지경이었다.

 우리는 꿈을 너무 쉽게, 헐 값에 넘겨주었다. (나 혼자 그랬다고 하기에는 너무 두려워 나는 ’우리’라고 했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공범이라고 믿고 나 자신에게 너무 죄책감을 느끼지 말라고 위로했다.) 명문대, 좋은 직장, 좋은 집, 좋은 차와 바꿔 버렸다. 10억이 일생 일대의 꿈이 되었다. 이 시대의 꿈은 물질적 성공과 동의어다. 이상한 모양으로 탈바꿈한 꿈은 우리에게 자유를 빼앗고, 신화를 빼앗고, 마침내는 우리의 정체성마저 앗아갔다. 그런 물질적 부(富)라는 꿈을 이루고 나면 우리는 무엇이 되는가? 무엇을 할 것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질문은 계속해서 이어질 것이며 물질적 부는 이런 질문에 답할 수 없다.

 <깊은 인생>은 우리가 지금까지 읽어왔던 수많은 자기계발서와 성공스토리에서 말한 ’꿈’을 재정의하게 만든다. 꿈은 도약임을, 자유임을, 나를 찾아내는 것임을, 그리고 꿈은 신화임을 가르친다. 마침내 저자는 ’당신의 꿈은 무엇인가?’를 묻지 않고 ’당신의 신화는 무엇인가?’ 묻는다. 꿈은 미래지만 신화는 과거다. 이미 이뤄진 당신의 신화를 묻는 것이다.

 저자 구본형은 평범한 사람들의 위대한 정신적 도약을 포착하고 싶었다고 한다. 평범함에서 위대함으로 건너와 끈질긴 침묵과 고독의 세월을 거쳐 친구같은 스승, 스승같은 친구를 만나고 드디어 인류와 남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써 버리는 사람들을 소개한다. 간디, 마사 그레이엄, 윈스턴 처칠, 조지프 캠벨, 바뤼흐 스피노자, 조주, 아니타 로딕이 그들이다. 저자는 이들의 인생 전부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깊은 인생으로 가는 깨우침, 견딤, 넘어섬에 해당하는 순간을 포착해서 보여줄 뿐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들 각각의 이야기는 하나의 이야기로 읽힌다. 저자가 그들을 스승으로 깊이 사숙하고 깊은 인생이라는 하나의 주제로 통찰해내고 있기때문이다. 그리고 책 속의 책 저자 구본형의 이야기가 펼쳐져 있다. 앎과 삶이 일치되면 말에 강력한 힘이 생기고 글에 빛나는 권위가 덧입혀진다. <깊은 인생>이 내게 깊은 상처를 준 이유다.


 신앙서적도 아닌데 기도하게 만드는 책, 구본형의 <깊은 인생>이다. 뻔한 인생을 거부하고 과거의 나를 죽일 수 있는 용기를 달라고, 내가 비록 아주 작은 별이지만 스스로 빛나는 소우주이며 고유한 이야기를 가진 행성이라는 믿음을 달라고, 굶는 것을 걱정하지 말고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지 불안해하지 말고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염려하지 않도록 굳건한 심장을 달라고 말이다. 내 깊은 한숨이 깊은 인생으로 가는 처음 행동이기를 빈다.  

"삶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데 성공한 인물들은 자신에게 최고의 선물을 주는 것을 최우선적 가치로 삼는다. 그것을 위해 현실의 위협에 대항한다. 뻔한 인생을 거부할 권리, 과거의 나를 죽일 수 있는 용기, 새로운 곳으로 떠날 수 있는 무모함이야말로 꿈이 이루어질 수 있는 조건들인 것이다. 그때 그들은 삶을 재창조해내는 데 성공한다. 인생의 터닝 포인트에서 분명한 도약을 통해 얕은 인생을 건너 깊은 인생으로 들어서게 된다." <깊은 인생> 220~221p 

 처음부터 다시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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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강
천운영 지음 / 창비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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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왓슨이 홈즈에게 책 한 권을 건낸다)

왓슨 : 홈즈, 자네였다면 '안'의 은신처를 쉽게 찾아낼 수 있었을텐데...읽어 보게.

 

홈즈 : <생강>이라. 표지가 음산한 분위기를 풍기는데. '안'이 주인공인 모양이지. 추리소설인가?

 

왓슨 : 하하, 그건 아니고.

 

홈즈 : 그런데?

 

왓슨 : 내일 저녁에 자네 사무실에 올테니 그때 다시 얘기하지. 

 

홈즈 : 커피라도 한 잔 하고 가지, 그냥 책만 주고 가는겐가?

 

왓슨 : 자리에 앉아 커피마실 기분이 나지 않아. 찬바람 좀 쐬야겠어. <생강>, 그 책이 날 몹시 불편하게 만들었거든.

 

홈즈 : 사람 참, 책 한 권 가지고 뭘 그러나?

 

왓슨 : 하여튼 난 지금 그렇네. 내일 보세.

 

(다음날)

 

홈즈 : 왓슨, 어서 오게.

 

왓슨 : <생강> 맛이 어떻던가?

 

홈즈 : 천운영이란 작가 대단해. 첫 장을 펼치자마자 다짜고짜 취조실로 데려가더니 생생한 고문현장을 보여주더군. 영상을 뛰어넘는 작가의 묘사글이 뇌리에 '공포' 두글자를 완전히 각인시켜주었네. 

 

왓슨 :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 작가가 묘사한 첫 장면인 취조실에서는 내가 피해자가 되어 고문당한 느낌이었지. 공포와 수치심이 엄습해왔네. 입과 코로 들어온 물이 몸의 모든 구멍으로 다시 솟구쳐 나왔네. 전기로 몸을 지질땐 내 몸이 타들어가는 듯 소름이 돋았고...

 

홈즈 : 조금만 먹어도 싸한 맛이 오래가는 생강을 씹은 것처럼 독자의 머리속에는 짧지만 강력한 한 번의 고문장면이 작품의 끝까지 사라지지 않지. 80년대 소위 민주투사들을 무자비하게 고문했던 한 고문기술자의 실화에 허구가 덧입혀진 만큼 고문이야기가 많이 나오리라 예상할 수 있겠지만 거기까지였네. 작가가 독자보다 한 수 위라는 말이지.

 

왓슨 : 작가가 '안'과 '선' , 두 주인공의 목소리로 작품을 이끌어 간 덕에 독자는 입체적 접근이 가능하게 됐지. 어떻게 아버지 '안'과 딸 '선'이 같은 공간, 같은 대상, 같은 시간을 다른 공간, 다른 대상, 다른 시간으로 이해하게 되는지 말일세.

 

홈즈 : 그렇지. 이왕 작가를 칭찬하는 김에 하나 더 보태볼까?

 

왓슨 : 뭔가?

 

홈즈 : 역사를 문학으로 되살려놓은 작가의 역량에 박수를 보내고 싶군. 이 고문기술자의 이야기는 자칫 현대사에서 군부독재의 그늘에 가려질 뻔했거든. 짐승같은 한 인간의 폭력 행위가 남겨놓은 상처는 아직도 시퍼렇게 사라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환기시킨다네.

 

왓슨 : 홈즈, <생강>은 그런 시대의 폭력과 상처도 보여주지만 근본적인 가치에 대한 이야기도하고 있네.

 

홈즈 : 들어볼까, 왓슨.

 

왓슨 : 홈즈, 우정이 얼마나 힘이 있을까? 자네와 나의 우정은 어떤 극단적인 상황 속에서도 우리를 친구라는 이름으로 유지시켜줄 수 있을까? 사랑은 얼마나 강력할까? 사랑이 과연 모든 허물을 덮을 수 있을까?

 

홈즈 : 우정과 사랑?

 

왓슨 : '안'의 딸, '선'의 이야기네. 선이는 진이라는 오랜 친구가 있지. 대학생이 되면 심장뛰는 일, 청년들이 해야 할 일, 의미있는 일을 하고 싶다던 진이. 그 진이의 생각마저 자신의 것인양 공유하는 선이. 둘은 어릴때부터 다락방이라는 은밀한 공간에서 순정한 우정을 쌓은, 두말이 필요없는 절친이었네.

 

홈즈 : 음, '안'의 실체가 신문지상에 떠들썩하게 보도되자 우정에 금이 갔지.

 

왓슨 : 그래, 맞네. 금이 간게 아니라 끝장이었지. 선이 아버지가 '안'이라는 사실은 우정이 뛰어넘지 못하는 장애물이었네. 심지어 함께 보낸 모든 우정의 순간들마저 소름끼치고 수치스러운 시간으로 바꾸어놓았어. 홈즈, 안이 고문기술자가 아니라 강도나 살인자였어도 진이가 선을 동정하지 않았을까? 안이 부정부패 사범이었어도 우정이 힘을 잃어버렸을까? 우정의 유지와 박탈의 경계는 어디란 말인가? 내가 짓지 않은 죄때문에 왜 내가 심판받고 나의 진정성을 의심받아야 하나?    

 

홈즈 : 그건 관계 자체에 대한 공포가 아닐까? 진이는 선이와의 관계를 끊어서 주변 사람들의 신뢰를 얻은 걸세. 선이와는 그냥 좀 아는 관계다,  친하지 않다, 관계가 없다는 걸 증명한 셈이지. 선이 하나를 잃어버리는 것이 모든 관계를 잃어버리는 것보다 낫다는 나름의 판단을 하지 않았겠나?

 

왓슨 : 일리가 있군. 다음음 선이의 또 다른 무기 사랑일세. 말이 아닌 집안 꼴에도 선은 '민'을 만나 대학생활의 활기를 찾지. 민을 사랑하게된 선은 민에게 사랑고백과 동시에 '안'이 아버지라고 밝힌다네. 사랑하는 사람에게 숨기는 게 없어야 한다고 스스로 위로해보지만 그건 또 관계의 문을 닫아버리는 결과를 낳지. 자물쇠를 잠근 후 열쇠를 잃어버린 꼴이네. 아름답고 순결한 첫사랑의 죽음. 홈즈, 사랑은 왜 그렇게 힘이 없는겐가?

 

홈즈 : 자네 말대로 선이의 우정과 사랑은 힘이 없구만. 비교해볼까? '안'이 몸담았던 조직의 의리나 안의 아내가 보여주는 남편에 대한 사랑과 말이야. 

 

왓슨 : 그렇게 비교하는 것도 참 생강같군. 씁쓸하네. 안이 충성했던 조직의 의리와 온 세상이 손가락질하는 남편을 숨겨주는 아내의 사랑이라... 불가사리의 썩은 발 냄새가 나. 어딘지 모르게 퀴퀴한 냄새가 나는듯하네.  

 

홈즈 : 생강같다... 그 말 당분간 자네와 나 사이에 유행어가 될 듯 싶네. 

 

왓슨 : 홈즈, 자신의 우정과 사랑을 죽음으로 내 몬 사람이 아버지라면 자넨 그 사람을 아버지로 받아들일 수 있겠나? 정의롭고 용감한 아버지, 음모에 빠져 누명을 써 위험에 처한 아버지, 아름답고 자상한 아버지가 사실은 잔인한 괴물이라는 걸 알게 됐다면 말일세? 복수의 화신이 되지 않겠나? 선이 남자였다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나왔을지도 모르네.

 

홈즈 : 비밀을 알아 버린 것, 그리고 비밀을 말해 버린 것 그게 선이의 죄네. 비밀은 때론 폭력이 되고 때론 짐이 된다는 걸 선은 뼈속 깊이 깨닫게 됐지. '안'이 그냥 사라져주었으면 좋았을텐데. 참 이기적이야.

 

왓슨 : 그냥 사라져? 웬걸? 뻔뻔스런 '안'의 행각을 보게. 딸의 가장 은밀한 공간, 다락방을 떡하니 차지해버린다네.

 

홈즈 : 다락방이 등장하는 많은 이야기들이 있지. 다락방은  비밀스럽고 은밀하지만 따뜻한 추억과 행복한 순간이 차곡차곡 쌓여있는 공간이네. 꿈꾸는 다락방이지. 하지만 <생강>에서는 폐쇄적인 공간, 파괴의 공간, 갈등의 공간으로 사용되네. 내겐 새로운 경험이었지. 다락방만으로도 수많은 이야기들이 나올 수 있구나하고 생각했네. 이것 역시 작가의 힘 아니겠나?

 

왓슨 : 안이 선의 다락방에 은신하면서 구차한 목숨을 부지하는 동안 선은 세상으로부터 버림을 받았네. 무려 10년 남짓일세. 꽃다운 20대를 고스란히 말이야.

 

홈즈 : 정말 안타깝지. 선이의 삶 전체를 송두리째 앗아간 거야. 그런데도 안은 선이의 과거가 사라지고 현재가 경원되는 것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 딸과 거래를 하지. 그것도 다락방에 있는 딸애의 추억상자들을 가지고서. 그 세월동안 선이는 아버지를 재발견한다네. 짐승같은 '안'을 말이야.

 

저것은 내 아빠가 아니다. 저것은 짐승이다. 침을 질질 흘리며 송곳니를 드러내고 으르렁거리는 성난 짐승이다. 아니다. 저것은 짐승이 잡아다놓은 썩은 고기다. 눈알이 빠지고 내장이 파헤쳐진 먹다 남긴 고깃덩어리. 아니다 저것은 썩은 고기에 달려드는 파리떼다. 윙윙윙윙 더러운 날갯짓 소리가 들린다. 아니다. 저것은 파리가 까놓은 구더기다. 살을 뚫고 꾸물꾸물 기어나오는 징그러운 구더기다. 썩은내가 난다. <생강> 176p

 

왓슨 : 하지만, 홈즈, 선이가 모든 사람들과 단절되지만 유일하게 맺어가는 관계도 있어. 죽어라는 법은 없나봐.

 

홈즈 : 아, 그 남자. 매일 레코드 점 앞에서 서성이는 사람말이지?

 

왓슨 : 그래, 홈즈. 아이러니지. 안의 고문 피해자였던 그 남자가 선이를 공포에서 해방시키잖나?

 

홈즈 : 공포는 무지에서 비롯된다네. 선은 남자로부터 안이 저지른 짐승같은 짓을 듣고 자신의 몸에 새겨넣지. 그제야 선도 남자도 자유로워지기 시작하네. 괴롭고 힘들지만 진실에 맞서야 하네. 아프지만 외면하지 말아야지.    

 

남자는 떠났다. 그리고 나는 혼자 남겨졌다. 바람도 불지 않는다. 라디오 소리도 사라지고 남자의 목소리도 지워진다. 내 몸에 연결된 무수한 줄들이 툭툭 소리를 내며 끊어진다. 손목에 채워졌던 줄도, 발목을 붙들었던 줄도 한번에 끊겨나간다.(중략) 공중에 떠 있던 몸이 서서히 바닥에 내려앉는다. 무중력의 공간에서 돌아온 내 몸은 전보다 조금 차가워지고 조금 가벼워져 있다. <생강> 188p

 

왓슨 : 사실 딱 까놓고 말해서 안이 모든 죄값을 치러야하네만 동시대를 산 우리의 책임은 없을까?하고 생각해보게 되네. 어제 독재에 깊은 침묵으로 방관했던 자, 오늘 부정에 두눈 꼭 감는 자에게 내려치는 작가의 죽비 소리를 들어보라구.

 

비겁하다. 진짜 나쁜 사람은 당신 같은 사람이다. 강한 사람한테는 꿈쩍도 못하면서 약한 사람한테만 신경질 부리는 사람. <생강> 181p 

 

홈즈 : 정말 언중유골이군. 가슴깊이 새겨 둬야겠어.

 

왓슨 : 자네 <생강>의 주인공 '안'의 모델이 된 이근안은 지금 실제로 뭘 하고 있는지 알고 있나? 

 

홈즈 :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 봤네. 생뚱맞게도 목사가 됐더군.

 

왓슨 : 홈즈, 알고 있구만. 난 그 사람이 목사가 된 게 몹시도 불쾌하고 불편하고 불안하네.

 

홈즈 : 수 많은 사람들에게 물고문을 했던 사람이 물세례를 베푼다고 생각하면 불쾌할테지. 또 숱한 사람을 불구로 만든 자가 병자들을 치료했던 예수를 입에 올리며 설교한다면 몹시도 불편하겠지. 그런데, 왓슨, 불안하다는 건 이해가 잘 안되는 군. 이제 우리가 발톱빠진 반달곰, 힘없는 늙은 기술자가 뭐 겁이나서 불안해야한단 말인가?

 

 

혀는 거짓말을 일삼고 몸은 과장을 좋아한다. 눈빛은 정직하다. 눈빛은 거짓말을 못한다. <생강> 15p

"...그런데 아빠가 아무 걱정 말라더라? 먹고살 궁리는 다 해놨다고. 걱정은 하지도 말래." <생강> 278p

 

왓슨 : 홈즈, 혹시 '안'이 다른 기술을 연마하진 않았을까? 불안하네.

 

홈즈 : 다른 기술?

 

왓슨 : 얄팍한 간증과 과장된 눈물로 자신의 죄를 덮고 진실을 왜곡하는 설교 기술말이야. 반달곰, 장의사집 둘째아들, 고문기술자, 관절빼기의 달인, 인간백정으로 불리던 그가 정말 목사로 불리게 될까 불안하단 말일세.

 

홈즈 : 왓슨, '안'은 10년 넘게 외부와 완전히 고립된 다락에 숨어지냈네. 사실상 스스로 갇힌 셈이지. 그리고 수년간의 복역도 마쳤고. 한 인터뷰에서 '안'은 교회를 차리고 설교를 하기 위해 목사가 된 건 아니라더군. 제소자들을 위한 교정선교에 평생을 바치겠다고 했다네.

 

왓슨 : '안'을 용서할 수 있는 사람도, 용서하고 싶은 사람도 아무도 없네. 그건 '안'도 잘 알고 있을걸세. 막다른 골목에 다다라서야 게임이 종료될 걸 예감한 그가 마지막으로 선택한 건 '신'이었네. 왜 성경이 '안'에게도 동일하게 주어졌단 말인가?

 

홈즈 : 진정하게, 왓슨. 그건 우리의 영역이 아니네. 자네가 말했던대로 인간은 누구를 용서할 수 없네. 어떤 인간이 죄의 경중을 측정할 수 있단말인가? 죄의 경중을 측정할 수 없는데 누가 누구를 정죄할 수 있겠나? 삶의 막바지에 신의 품으로 뛰어들어간 '안'을 그냥 내 버려두게. 

 

왓슨 : 알겠네. 우리 모.두.에.게. 신의 은총이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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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rover 2011-05-24 16: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희곡 형식이라서 독특하고 참신했어요. 재미있게 봤습니다^^

BOOK소리 2011-05-25 17:17   좋아요 0 | URL
이프리트님 반갑습니다. 독특, 참신..고맙습니다.^^ 이제 내용을 더욱 알차게 꾸려야겠어요.
 
괴물, 한쪽 눈을 뜨다 문학동네 청소년 7
은이정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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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슨이 커피숍에서 홈즈를 기다린다. 조성모가 노래하는 하덕규의 곡, '가시나무새'가 조용히 울려퍼진다.)




 

홈즈 : 왓슨, 친구가 왔으면 인사를 해야지. 눈을 지그시 감고 커피를 음미하는 겐가? 음악을 감상하는 겐가?

 

왓슨 : 어어, 홈즈. 왔나? 앉게나. 눈을 감고 뭘했냐고? 자네가 방금 정확히 말해버렸네. 어떻게 알았나?

 

홈즈 : 자네 평소와는 좀 다른 것 같은데. 뭐랄까...음 좀 우스운 표현이지만 괴기스럽네.

 

왓슨 : 괴기스럽다? 역시 명탐정이구만.

 

홈즈 : 혹시 자네 지난 주에 읽은 <괴물, 한쪽 눈을 뜨다> 때문인가?

 

왓슨 : 하나 하나 놓치지 않고 추리해내는 자넨 정말 대단해. 이제 놀랍지도 않아. 맞네, 홈즈.

 

홈즈 : 그렇군. 자네 어지간히 몰입해서 읽은 모양이군 그래. 영화배우가 주어진 배역과 완전히 하나가 되면 촬영을 마치고도 짧게는 며칠, 길게는 몇달동안 그 영화의 등장인물로 살아간다더군. 자넬 보니 그게 사실이겠는데? 책 한 권을 보고나서 이렇게 다른 분위기를 보여 주다니.

 

왓슨 : 커피 한 잔 마셔야지.

 

홈즈 : 아메리카노로 하지.

 

(진한 커피향 사이로 다시 한 번 '가시나무새'가  날아든다)

 

홈즈 : 커피숍의 바리스타가 조성모의 '가시나무새'를 좋아하는 모양이군.

 

왓슨 : 홈즈, 내가 한 번 더 부탁했네. 인간은 '이 사람은 이렇고, 저 사람은 저렇다'고 여겨지는 대표적인 모습이 있기 마련이지. 하지만 '가시나무새'를 잘 들어보게. 누구라도 대표적인 모습말고 낯선 모습도 있다는 걸 알게 될테니. 홈즈, 잠시 가시나무새를 감상해보자구.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내 속엔 헛된 바램들로 당신의 편할 곳 없네

  내 속엔 내가 어쩔 수 없는 어둠 당신의 쉴 자리를 뺏고

  내 속엔 내가 이길 수 없는 슬픔 무성한 가시나무숲같네'

 

어떤가? 영감이 떠오르지 않나? 자네가 방금 날 괴기스러워 보인다고 했지만 그건 또 다른 내 모습일테지. 난 오늘 <괴물, 한쪽 눈을 뜨다>에 등장한 한 인물의 감춰진 이야기를 자네에게 들려줄 작정이네.

 

홈즈 : 기대되는 걸, 왓슨. <괴물, 한쪽 눈을 뜨다>에선 중학교 2학년 남자 아이들의 교실 풍경을 정말 잘 드러내고 있더군. 어른들이 진입할 수 없는 그들만의 세계, 그 또래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사건들, 그 사건들 속에 녹아있는 열 다섯짜리들의 감정 변화를 말이야. 교실이 얼마든지 사바나 초원에서 살아가는 약육강식 동물의 세계가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지. 또 사춘기 소년들이 성(性)에 눈을 뜨고 접근하는 방식을, 천진한 소년들이 천연덕스럽게 숨기고 있는 괴물의 발톱을 잘 묘사하고 있어. 아무래도 작가가 학교 현장에서 직접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기 때문일테지.

 

왓슨 : 자네 꼼꼼하게 읽었군. 작가는 선량하게 보여질 수도 있는 아이들도 내면에 괴물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숨김없이 기록하고 있네. 반장 태준이도, 왕따 영섭이도 보여지는 모습이 아닌 또 다른 나, 괴물을 간직하고 있지. <괴물, 한쪽 눈을 뜨다>는 인간이 십대의 어느 순간 자신의 괴물성을 깨닫고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잘 포착해냈어. 누구라도 드러내길 꺼리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괴물.

 



짐승이 임영섭 왼쪽 목덜미에 주둥이를 처박고 서너 차례 머리를 내둘렀다. 짐승 주둥이 밑으로 임영섭의 붉은 피가 뚝뚝 흘러 떨어졌다. 비명 한번 못 지르고 입만 크게 벌린 채 버둥거리던 임영섭이 발끝까지 축 처져 내린 다음에야 짐승은 검붉은 눈동자를 돌려 나를 보았다. <괴물, 한쪽 눈을 뜨다> 219p

 

태준이가 성실하고 모범적이라 믿는 태준 엄마가 태준이의 그런 모습을 상상도 못할테지. 비밀스럽고 은밀하게 길러지는 괴물의 모습을.

 

홈즈 : 그래 이제 말해 보게. 뭔가, 자네가 들려줄 감춰진 이야기라는게?

 

왓슨 : 홈즈, 자넨 어른들이 진입할 수 없는 또래의 세계가 있다고 했지?

 

홈즈 : 그렇네만.

 

왓슨 : <괴물, 한쪽 눈을 뜨다>를 읽으며 나는 책 속의 등장인물들 모두에게 괴물의 맛을 보여주고 싶었네. 영섭이를 괴롭히는 하태석과 정진뿐만 아니라 그 부모들, 또 반장 태준이를 비롯해서 반 전체를 구성하고 있는 아이들과 담임선생까지.

 

홈즈 : 완전히 몰입 모드로군, 왓슨.

 

왓슨 : 더 들어보게. 그렇다면 또 하나의 괴물이 필요하겠지? 난 영섭이의 아빠를 선택했네.

 

홈즈 : 영섭이 아빠라. 책 어디쯤 나오지? 음, 여기 나오는군. 

 


거실에 엎드려 담임이 준비한 종이에 사과문과 각서를 썼다. 다시는 괴롭히지 않을 것이고, 이런 일이 또 발생한다면 어떠한 처벌이든 고스란히 받겠다는 내용이었다. 날짜와 이름까지 써서 담임한테 제출하자 임영섭 엄마, 그다음에는 아빠의 이야기가 길게 이어졌다. <괴물, 한쪽 눈을 뜨다> 212~213p

 

왓슨 : 또래들보다 뭔가 모자라거나 성장이 더뎌 따돌림의 대상이 되는 아이의 아버지라면 어떤 심정일까...자식을 키우는 사람이라면 어는 정도 이해가 되겠지만 열다섯 중학교 2학년이나 된 녀석이, 그것도 제 또래보다 덩치도 키도 못할 것 없는 자식이 하루가 멀다 하고 소지품을 뺏기고, 돈을 강탈당하고, 놀림감이 되고, 심지어 맞기까지 한다면...홈즈, 만약 내가 영섭이 아빠라면, 사회적 명성과 지위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복수의 칼을 갈겠네. 복수의 대상이 아이들이건 아이들의 부모건 학교건 가리지 않겠네. 지금까지 내 대표적인 모습을 버리고 가슴 속 어둠의 한가운데 숨죽인채 근근이 살아가고 있는 괴물을 불러내겠네. 열다섯 소년들의 진입할 수 없는 세계라도 나는 내가 사용할 수 있는 모든 무기를 들고 돌격할거야. 어떤 대가라도 치를 각오를 하고서 말이야. 자 여기 그런 마음으로 쓴 이야기네. 한 번 읽어 볼텐가?

 

홈즈 : 이게 뭔가? 어디 보자. "영섭 아빠 하나-카카오 56"이라.

 

"인간 김민우가 주는 선물이다."

'카카오 56%'짜리 초콜릿이었다. 고개를 꾸벅 숙이고 자리로 돌아가면서 초콜릿을 겉옷 주머니에 넣었다. 쉬는 시간에 아이들이 초콜릿 통을 뜯어 맛을 보는 동안 임영섭은 이리저리 들여다보고 몇 차례 흔들어 댔다. <괴물, 한쪽 눈을 뜨다> 215p 

 



                                                  영섭 아빠 하나 - 카카오 56

 

 영섭이 책상 위에 카카오 56 초콜릿이 한 통 놓여있다. 내가 영섭이 담임에게 준 카카오 56 초콜릿. 뚜껑을 열고 두 알을 꺼냈다. 입 안에 넣고 혀끝으로 녹인다. 쌉싸름한 맛이 전의(戰意)를 불러 일으킨다. 식어진 복수심이 다시 들끓는다.

 

 며칠 전 나는 대형할인점 제과담당이사와 미팅중이었다. 우리나라 굴지의 제과회사가 요즘은 대형할인점의 눈치를 보고 있다. 가격도 공급량도 칼자루는 그네들이 쥐고 있다. 이번 만남을 통해 우리 회사의 초컬릿이 타 회사의 제품을 밀어내고 더 좋은 진열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전부터 공을 들인 탓에 좋은 결과를 이끌어 냈다. 그때였다. 휴대전화가 울린 것은. 영섭이 엄마였다. 영섭이를 괴롭힌 놈들과 학부모들이 사과하러 온다고 했다. 이번엔 나몰라라 할 수 없었다. 급한 일도 마무리를 했다. 회사에 전화를 하고 급히 집으로 갔다.

 

 영섭이는 다른 아이들보다 덩치도 키도 크지만 늦된 아이다. 누가 때리면 같이 때리고, 돈을 달라고 하면 콧방귀도 뀌고, 괴롭히면 본때도 보여주면 좋으련만, 이젠 그런 기대는 버렸다. 같은 반 친구들이 가만히 놔두기를 바랄 뿐이다. 중학생이 되면서 영섭이는 더 왕따가 된 듯하다. 1학년 때는 대놓고 괴롭힌 녀석들은 없었는데 2학년이 되면서 상황이 나빠졌다. 1년 동안 중학교의 분위기에 적응하고 또래간 성향을 파악한 아이들은 어울리는 패거리가 생기고 나름의 서열이 정해지면서 영섭이는 완전히 혼자가 됐다. 학용품과 책을 뺏기고, 돈을 갈취당하고, 때때로 맞는 사건들이 줄을 이었다. 참고 참았다. 혹시 더 당하게 될까봐. 정말 영영 친구를 못 사귀게 될까봐.

 

 회사에서 집으로 돌아온 그 날, 영섭이는 동물백과를 펼쳐 놓고 있었다. 아내는 아무 말도 없었다.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 영섭이 담임선생 일행이었다. 담임선생이 몇 번이나 머리를 조아리며 사과를 했다. 함께 온 아이들은 선생의 호통 소리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숙였다. 학부모들은 쩔쩔매며 아내의 훈계를 듣고 섰다. 영섭이는 눈을 크게 뜨고 놀란 모습으로 소파 구석에 몸을 숨겼다. 한 편의 사이코 드라마 같았다. 정신을 차렸다. 그래도 참자,영섭이를 위해서 버티자, 다짐했다. 아이들은 각서를 썼다. 한 마디는 하고 돌려보내야 했다. 아이들은 아직 철이 없다, 선생님께서 잘 지도해 달라, 부모님들이 아이들 잘 교육해 달라, 같이 자식키우는 분들이 우리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면 어떡하느냐, 학생들도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라...한 마디만 하려고 했는데 길어지고 말았다. 각서까지 썼으니 용서하자고 마음먹는 순간 한 여자가 눈에 들어왔다. 고개를 바짝 치켜든 채 얼음처럼 차가운 표정으로 나를 쏘아보고 있었다. 반성의 빛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찾아볼 수 없었다. 

 

내 속에 괴물이 깨어났다. 괴성이 들렸다. 참을만큼 참았다. 버틸만큼 버텼다. 이제 쓴맛을 보여줘야 한다. 더이상 죄악에 은혜를 베풀지 마라. 용서의 단맛에 절어있는 저들에게 심판의 쓴맛을 가르쳐라. 빛을 거둬들이고 암흑을 선사하라.

 

쓴맛. 쓴맛은 나를 직장내에서 일약 스타덤에 올려주었다. 나는 국내 굴지의 제과회사에서 근무한다. 초콜릿이 내 담당분야다. 초콜릿으로 우리는 매년 안정적인 매출을 올린다. 하지만 윗 선에서는 획기적인 매출증가를 기대한다. 지난 몇 년간 경쟁업체들이 조금씩 시장점유율을 높이며 내 숨통을 조여왔다. 단것이 있는 곳에는 개미가 꼬이기 마련이다. 경쟁업체를 이 단과자로부터 몰아내는 방법이 없을까? 수개월을 고민했다. 커피숍에서 혼자 앉아 커피를 마시며 골몰했다. 머리밑이 헐빈해졌다. 두통이 심해졌다. 병원에서 진찰을 받고 약을 처방받았다. 쓴 가루약을 입에 털어넣었다. 순간 생각이 떠오르며 정신이 맑아졌다. 개미떼를 단것에서 몰아낼 유일한 방법. 그것은 단맛을 쓴맛으로 바꾸는 것이다. 지금까지 초콜릿은 정체를 숨김으로써 시장을 장악했다. 단맛에 중독된 소비자에게 초콜릿의 본질, 카카오의 쓴맛을 보여주어야 한다. 아몬드, 땅콩, 캐러멜, 과자를 섞어 만든 초콜릿, 크기와 모양만 바꾼 초콜릿으로는 혁신적인 매출의 증가는 불가능하다. 초콜릿 역사에 획을 그을 수 없다. 누구도 생각지 못한 본질을 건드려야 한다. 동료들이 비아냥거렸다. 정신이 나갔다고 했다. 초콜릿이 쓰면 누가 사먹겠느냐고 퉁을 주었다. 나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어두운 시작이긴 하지만 밝은 끝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 믿었다. 초콜릿에 주성분 카카오의 함유량을 얼마나 해야 할지 스펙트럼을 구성했다. 단맛에 익숙한 소비자들이 단번에 쓴맛을 좋아하진 않을테지. 단맛이 남아있지만 쓴맛을 확실히 느끼며 '정말 맛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 카카오 함유량을 찾아야했다. 카카오 56퍼센트. 카카오의 진실로 가기 위한 첫걸음이었다. 카카오56은 대성공이었다. 고진감래, 쓴맛을 가진 초콜릿은 나에게 단맛을 선사했다. 단일제품으로 연간 100억 매출을 달성했다. 특별승진을 했고 두둑한 성과급을 받았다.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던 동료들은 나를 혁신과 역발상의 귀재, 임이사님이라고 부르게 됐다. 이제 쓴맛에 중독된,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초콜릿의 본질을 깨달은 수많은 매니아들이 쓴맛의 진수를 느끼고자 카카오72, 86, 99도 찾고 있다.

 

 쓴맛을 다시 사용할 때가 됐다. 전혀 다른 결과를 불러올테지만 주저하지 않겠다. 내일이면 영섭이가 3학년이 된다. 서둘러야 한다. 아내와 영섭이 몰래 담임선생을 찾았다. 그저 카카오 56을 전해 주고 싶었다. 영섭이 반 아이들의 숫자만큼 담임에게 건냈다. "반 아이들에게 하나씩 나눠주십시오. 선생님 이름으로 주시면 좋겠습니다.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그냥 그렇게 아이들에게 주고싶습니다." 담임은 나를 멍하니 쳐다보더니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내 속의 괴물이 입맛을 다시고 쓴맛을 음미하기 시작한다. 카카오56은 선전포고용이다. 지난 1년간 영섭이와 한 교실에서 생활하면서도 진정한 친구가 되어주지 않은 저 괴물같은 아이들에 대한 전쟁 선언. 삶의 정수는 쓴맛에 있음을 일찍 깨닫게 해주리라. 수많은 첨가물을 혼합해 카카오의 쓴맛을 없애버린 초콜릿은 진실한 맛이 아니다. 거짓의 맛이다. 써야 제맛이다. 칭찬, 격려, 용서같은 달콤함은 거짓이다. 진실을 맛보게 해주마. 복수, 정죄의 씁쓸함이 진실이다. 이제 당근은 없다. 째찍만 남았을뿐. 카카오 농장의 어린 노동자들의 피와 땀과 눈물이 네 녀석들의 몸에서 솟아나게 될 것이다. 카카오56을 천천히 녹여 먹어라. 혀바닥에서 시작된 쓴맛이 몸 구석구석을 거쳐 마음과 정신에까지 이르게 해 줄테니.  

 

 한 녀석 한 녀석 해치워야지. 법과 권력과 물질을 총동원하자. 최후엔 폭력도 고려해야지. 이것이 나도 살고 너도 살고 영섭이도 사는 길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괴물에는 괴물. 이제 난 눈감지 않겠다. 쓴것을 내 먹이로 하고 괴성을 지르며 기꺼이 괴물로 살아가겠다.


 

홈즈 : 음... 대단하군, 왓슨. 자네 본심은 아닐테지?

 

왓슨 : 하하, 본심? 그럴리가 있겠나. 이렇게 글로나마 내 속에서 메아리치는 괴성에 반응해 본 것뿐일세. 그냥 상상해 본 거라구. 이런 상상이 자네에게 생생하게 전달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가시나무새'도 배경음악으로 깔았고.

 

홈즈 : 그렇겠지. 내 친구 왓슨이 이렇게 섬짓한 괴물로 변할리 없지. 

 

왓슨 : 빛이 흑암 속에서 영광을 누린다고 어둠을 장려할 순 없네. 더러운 진흙 속에서 연꽃이 피어난다고 모든 꽃밭에 진흙을 퍼다 나르진 않지. 자유가 주는 기쁨을 만끽하려고 억압과 독재의 그늘에서 살아봐야 할 필요가 있을까?  내 속에 괴물이 산다고 괴물로 살아갈 순 없어. 다만 괴물이 있다는 사실을 부인해서는 안되네. 무지해서도 안되고. 그 괴물을 조련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지. 괴물 조련 능력이 인생의 승패를 좌우할걸세.  

 

홈즈 : 맞아. 그림자가 실체를 대신하게 할 순 없어. <괴물, 한쪽 눈을 뜨다>는 인간의 보편적인 괴물성을 청소년과 교사의 시선으로 잘 그려내고 있는 좋은 작품이네. 인간이라면 누구나 선과 악, 천사와 악마의 경계에서 왔다 갔다 하지. 악마가 자신의 악의 왕국을 공고히 하기 전에 대책을 세워야 하지. 자네 말처럼 10대때부터 말이야.

 

왓슨 : 좋은 교사라면 아이들에게 밖에 있는 것을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속에 있는 걸 끄집어 내 보여주네. 그런 점에서 <괴물, 한쪽 눈을 뜨다>의 작가 은이정은 좋은 교사네. 아이들 속에 있는 괴물을 못 본체하지 않고 보여주니까. 물론 아이들의 꿈과 가능성을 끄집어 내 보여주는 것이 더 좋겠지만 어두운 면도 교육적 효과가 크다고 생각하네. 진실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지. 

 

홈즈 : 동감이네. 그런데 왓슨, 자네가 언제부터 에스프레소를 마셨나?
 

왓슨 : 오늘 처음이네. 분위기 좀 잡으려고 했는데 너무 써.

 

홈즈 : 너무 쓰다는 것, 그게 바로 에스프레소가 대중화되지 못하는 이율세. 사람들은 에스프레소 원액에 물을 절반 정도 섞은 아메리카노나 뜨겁게 데운 우유를 넣은 카페 라떼를 더 좋아하거든. 쓴맛이 옅어진 부드러운 커피가 사랑받는 거지. 

 

왓슨 : 하하, 뜨거운 물을 좀 부어야 겠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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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리맨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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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로스의 <에브리맨>을 읽기 전, 인터넷 서점 리뷰어들의 글을 살폈다. '노인들의 아픔을 이야기한 책', '집약의 극치를 보여준다', '늙은 나를 만나게 하는 소설', '살다가 병들고 늙어 죽게 된다는 것' 등의 제목이 눈에 띄었다. 대부분 별 넷이상을 매겨놓았고 호평이었다.

 

작가는 자신의 말을 극도로 아꼈다. 덕분에 나는 장례식으로 시작된 주인공의 삶을 객관적인 태도를 유지한 채 끝까지 지켜 볼 수 있었다. 살고 병들고 늙어 죽는 이야기를 이보다 더 진실되게 보여주기도 참 힘들겠다는 생각도 했다. 수작이었다. 리뷰어들의 호평에 공감했다.

 

책을 덮은 후에 잠시 눈을 감는다. 인상 깊었던 단어들이 내 감상의 수면 위로 떠오른다. '주체할 수 없는 충동', '은밀한 야망', '오랫동안 참아온 야망'....'꿈'... 나는 뜻밖에도 <에브리맨>에서 꿈을 만났다. 그것은 오랜 습관때문이다. 나는 죽음을 대할 때마다 삶을 생각하게 되고 삶은 꿈을 실현하는 과정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일 것이다. <에브리맨>에서 꿈을 만난 것은.

 

동생은 고등학교 시절부터 그림을 그리고 싶은 주체할 수 없는 충동을 느꼈소. 광고 쪽에서 일을 해서 처음에는 아트 디렉터로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고, 나중에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승진했는데, 광고 일을 접은 뒤에는 자신에게 남은 세월 동안 매년, 거의 매일 그림을 그렸소. <에브리맨> 14p

 

젊은 시절 그는 스스로 고지식하다고 생각했다. 매우 관습적인 데다 모험을 싫어해서, 미술학교를 나온 뒤에도 스스로 앞길을 개척하며 그림을 그리고 잡일을 하면서 들어오는 돈으로 먹고 사는 쪽 - 사실 이것이 그의 은밀한 야망이었다 - 을 택하지 못했다. 그러기에는 너무 착한 아들이었다. 그는 자신의 소망보다는 부모의 소망에 부응하여, 결혼을 했고, 자식을 낳았고, 안정된 생계를 위해서 광고계에 진출했다. <에브리맨> 38p

 

그는 예순다섯 살이었으며, 막 퇴직을 했고, 이제 세번째로 이혼한 상태였다.(중략) ...하루의 남은 시간은 거의 모두 그림을 그리며 보냈다. 오랫동안 참아온 야망을 실행에 옮긴 것이다. <에브리맨> 70p

 

<에브리맨>은 주인공의 꿈이 세월과 함께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잘 보여준다. 고등학교 시절 그림을 그리고 싶은 주체할 수 없는 충동으로 태동된 꿈은 젊은 시절 은밀한 야망으로 발전하여 마침내 퇴직후 자신의 거의 모든 시간을 그림을 그리며 보낼 수 있게 되는 열매를 맺게 된다. 주인공의 삶은 박수받을 만한 것이 별로 없다. 유일하게 박수 쳐 줄 수 있는 대목이 바로 '오랫동안 참아온 야망'을 실행에 옮긴 그 장면이다. 도전하는 것이 두려워 안정을 택했다가 65세의 노인이 되어서야 원하는 것을 실행에 옮긴 것이 뭐 그렇게 박수받을 일이냐고 반문할 수도 있을 게다. 하지만 난 꿈을 이뤄낸 자들-이룬 시점과 관계없이-에게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고 싶을뿐이다. 

 

그런데 바로 이 장면,

 


그러나 그는 그림이 지겨워졌다. 오랜 세월 그는 퇴직이 자신에게 줄,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 긴 시간을 그림에 바치는 꿈을 꾸어왔다. <에브리맨> 107p

 

나는 내가 갖춘 최소한의 예의에 대해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마침내 온종일 그림을 그리는 꿈을 이룬 주인공이 그림이 지겨워졌다니. 이런, 뭐가 잘못된 걸까. 고등학교시절의 주체할 수 없었던 충동이, 젊은 시절의 은밀한 야망이, 결국 현실이 된 꿈이 그는 왜 지겨워졌을까? 그것은 대가를 치르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잔뜩 긴장하며 결승전 상대를 기다리던 권투선수가 상대의 기권으로 챔피언이 된 기분, 바로 모험없이 꿈을 이룬 자가 느끼는 지루함이 아닐까?

 

갑자기 그는 무(無)에 빠져버렸다. 무라는 상태만큼이나 '무'라는 말소리에 빠져 길을 잃고 표류했다. 그러면서 두려움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모험없이는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에브리맨> 108p

 

또 하나, 꿈이 지루해진 이유는 꿈이 목적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아닐까? 삶이 다하는 노년의 한 순간까지 활기를 잃어버리지 않으려면 꿈의 목적이 분명해야 한다. 꿈의 목적이 분명해야만 지금, 여기의 삶에 최선을 다할 수 있다. 그냥 그대로 목적없는 나날들을 지나 종말에 이르는 것은 비참하다. 

 

이제는 수많은 노인들과 마찬가지로 그도 점점 줄어드는 과정에 있었으며, 종말이 올 때까지 남아 있는 목적 없는 나날이 자신에게 무엇인지 그냥 있는 그대로 보아야 할 것 같았다.  <에브리맨> 167p

 

이야기가 여기에 이르자 지미 카터, 전 미국대통령이 생각난다. 현역시절보다 퇴임후 더 역동적인 활동을 하는 대표적인 노인이다. 1924년생이니 우리 나이로 88세다. 퇴임후 30여년간 사랑의 집짓기 운동, 세계 인권 향상, 국제분쟁 조정 등에 공헌하여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재임시절보다 퇴임후 더욱 존경받는 대통령이 됐다. 이따금씩 북한 문제와 관련, 평양을 방문한다는 카터 대통령의 기사가 들려올때면 나는 그 분의 해군사관학교 생도 시절 해군 제독과의 일화가 떠오른다. 그토록 분명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열정적으로 아름다운 노년을 만들어가는 주인공이 된 이유를 난 그 일화에서 찾는다. 평범한 사람이 특별해 지는 가장 쉬운 방법은 꿈을 꾸는 것이다. 꿈이 지루해지지 않으려면 젊은 날 삶을 살아가는 좋은 지침을 가슴에 새겨두어야 하는 것이고.

 

나는 핵 잠수함 계획 부대의 배속을 지원했고, 그 일로 릭오버 장군과 면담하게 되었다. 내가 릭오버 장군을 만난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고, 우리는 두 시간 이상을 단둘이 큰 방에 앉아 있었는데, 그는 내게 가장 토론하기 좋아하는 주제를 택하도록 했다. 아주 조심스럽게 나는 , 그 때 가장 잘 알고 있는 주제들 즉, 시사 문제, 해군의 생활, 음악, 문학, 해군 전략, 전자, 사격술 등을 택했고, 그는 점점 어려운 질문들을 계속하기 시작했다. 그런 질문을 통해서 그는, 내가 선택한 주제들에 대해 그에 비해서 내가 아는 것이 없다는 것을 증명해 보였다.

 

그는 한 번도 웃는 모습을 보이지 않은 채 내 눈을 계속해서 똑바로 쳐다보았다. 내 몸은 금방 땀으로 흠뻑 젖게 되었다.

 

마침내, 그가 마지막 질문을 던졌고, 나는 '이제야 살았구나'라고 생각했다. "해군사관학교에서 몇 등이나 했나?"라고 그가 물었다. 애마폴리스에 있는 해군사관학교 신입생으로 들어오기전에 죠지아 공과 대학에서 4학년을 마쳤기 때문에 내 성적은 우수한 편이었고 그래서 나는 가슴을 쭉 펴고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820명 중에서 59등을 했습니다." 나는 가만히 앉아서 참 잘했다는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 말을 결코 듣지 못했다. 대신에 그는 "자네 최선을 다했는가?"라고 물었다. 나는 "네! 제독님."이라고 말을 시작해 놓았는데, 내가 대답해야 하는 사람이 누군가 하는 것과 사관학교에서 우리의 동맹국, 전국, 무기, 전략 등등에 대해 배우던 것을 기억해 보게 되었다. 나는 평범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나는 간신히 숨을 들이쉬면서 말했다. "아닙니다! 항상 최선을 다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는 한참 동안 나를 쳐다보더니, 면담을 끝맺으려고 의자를 돌려앉았다. 그리고 내가 결코 잊을 수 없는 질문, 아니 대답할 수 없었던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왜 최선을 다하지 못했나?"라고 묻는 것이었다. 나는 그 자리에 얼마 동안 부들부들 떨면서 앉아 있다가 천천히 그 방을 빠져 나왔다. 

<내면세계의 질서와 영적성장> 120-121p

 

 

이야기가 엇나갔다. 다시 <에브리맨> 이야기를 계속하자. 소설 속 등장인물 중에는 주인공의 딸 낸시가 있다. 오랜 꿈을 이루고도 그림을 지겨워하고 갑작스런 무(無)에 빠져들어 혼란스러워하는 노년의 부친에게 용기를 불어넣는 낸시는  내 눈에 다이아몬드처럼 빛나보인다. <에브리맨> 주인공이 종말까지 누린 축복이 바로 낸시다. 꿈이 우리를 다시 출발선에 세울때마다 멀리서라도 응원가를 불러주고 깃발을 흔들어줄 가족이 있다면, 친구가 있다면, 직장동료가 있다면 그가 바로 우리의 낸시다. 

 

"아버지는 지금 잠깐 좌절하신 것뿐이에요. 그냥 그런 거라고요. 아버지는 훌륭한 화가예요. 저는 제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아요. 이 세상에서 아버지가 훌륭한 화가인지 아닌지 알 만한 자격을 갖춘 사람이 있다면 그게 바로 저예요." <에브리맨> 110p

 

삶이 다할때까지 꿈을 향해 떠나지 않는 건 나를 외면하는 일이다. 꿈은 오늘도 내게 진실을 묻는다. 너는 누구냐고, 너 아닌 무엇으로 살아가지 말라고. 현실에 머물려는 나에게 손짓을 한다. 나는 두렵다. <에브리맨>의 주인공처럼 그렇게 살다 병들다 늙어 죽을까봐. 나는 꿈꾼다. 꿈으로 가는 모험 속에서 얻을 많은 것들을.  

 

<에브리맨>에서 꿈을 만나다니, 버스에서 옛 친구와 마주친 느낌이다. 기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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