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 결혼 시키기
앤 패디먼 지음, 정영목 옮김 / 지호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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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한 기회에 읽게 된 홍보문구에 바로 선택하게 된 책 '서재 결혼시키기'.
아직 결혼의 기미도 안보이는 나에게도 가끔 고민이 되는 부분이기에 제대로 읽기도 전에 '맞어, 맞어'를 외치면서 책을 구입하였다. 나도 내 책장에 꽂혀있는 책들을 보며, '나중에 결혼할 때 저것들을 갖고 갈까, 집에다 놓고 갈까, 가면 내 서재 남편 서재를 따로 만드는 게 좋겠지?' 등등의 이른 고민을 늘어지게 한 적이 있기 때문에 첫 챕터부터 저자의 거사에 슬며시 웃음이 지어진 것이다.

이 책은 책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웃음과 공감 거기에 부러움까지 주는 책이다.

우선 저자의 책사랑과 그에 얽힌 일화들을 보면 무엇보다 재미가 있다. 11년을 같이 산 남편과 자신의 책을 합치는 거사를 치르는 동안 겪은 신경전, 메뉴판을 받아들고 교정을 보고 있는 그녀와 가족들의 모습, 책을 읽다 식욕이 동해 뜨거운 치즈를 꾸역꾸역 먹고 있는 저자를 상상하며 배시시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기가 어려웠다.

다소 어렵고 딱딱해질 수 있는 내용-딴 것도 아닌 '책' 에 대한 '책' 아닌가-을 자신의 경험과 주위 사람들의 에피소드들로 가볍게 그려 결코 부담스럽지 않다는 게 이 책의 첫 번째 매력이다.

그렇게 새어나오는 웃음은 단순한 유쾌함이 아닌 공감의 차원으로 넘어간다. 책 좋아하는 사람 치고 '책'에 대한 일화 하나 없는 사람 없을 것이다. (물론 책 뿐만 아니라 관심분야에 대한 일화는 누구나 갖고 있다)

나 역시도 길을 가다 '어름'이나 '떡볶기' 등의 간판을 보면 빨간펜으로 좍좍 긋고 고쳐주고 싶은 충동을 한두번 느낀 게 아니고, 결코 뭘 읽을 수가 없을 것을 뻔히 알면서도 가방 안에 책 한권은 꾸역꾸역 넣고 다니는 게 당연한 사람이다. 하물며 추석이나 설 연휴에 교보문고에 갇혔으면 좋겠다는 터무니없는 바램까지 갖고 있기에 저자의 얘기가 웬지 남다르지 않았다.

이렇게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남다른 책사랑을 떠올리면서 '난 이 사람보다는 낫네' 혹은 '뭐 이 정도로. 난 너보다 더해.' 등의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의 두 번째 매력이다.

책을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면 공감을 지나 약간의 부러움과 시기심이 들기도 한다. 이렇게 많은 책을 읽었다는 것도 부럽고, 남편에 부모님, 오빠까지 책으로 뭉친 그들의 유대감도 부럽고(지금 내 가장 큰 바램은 앞으로 나랑 같이 살게 될 사람이 책이라고는 느낌표 선정도서밖에 모르는 위인은 아니었음 하는 것이다), 책읽고 쓰기가 바로 직업인 것도 너무나 부러울 따름이다.

약간의 질투는 발전의 약이 되지 않은가. 책을 좋아했던 사람에게는 그 사랑이 더 깊어서 더 폭넓은 독서를 하게 되고, 책을 등한시했던 사람이라면 '책'의 매력에 새롭게 빠져들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의 세 번째 매력인 것 같다.

이 세 매력에 푹 빠져 순식간에 본문을 다 읽고 마지막 부록이 또 내 상상력을 자극했다.

또 다른 저자들이 쓴'책에 대한 책' 목록이 바로 그것이다. 하나하나 읽어가다가 문득 훗날 나의 책 이야기도 이 목록에 들어갔음 좋겠다는 생각에 순간 행복해진다. 혹시 모를 일이다. 내가 유명해진다면... 뭐, 정 안되면 내 자식에게라도 엄마의 책이야기라고 들려주면 그 아이가 또다른 앤 페디먼이 될지도 모르지. 먼 미래를 위해서라도 앞으로 책읽기에 더 중독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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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돌프 열림원 이삭줍기 2
뱅자맹 콩스탕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림원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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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경로로 이 책을 알게 됐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도 신문 신간에서 얼핏 봤던 것도 같고, 온라인 서점의 메일로 봤을 수도 있다. 어쨌든 아무런 정보 없이 잡아든 이 책은 읽고 나서도 모호했다. 시대배경이 언제인지, 작가가 누구인지, 그래서 어쩌라는 것인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뭐 하나 딱 떨어지는 것이 없다.

그저... 두 남녀가 있다. 아돌프와 엘레노르. 아돌프는 어느 귀족 집안의 청년이고, 엘레노르는 어느 귀족의 정부이다. 엘레노르의 나이가 아돌프보다 10살 정도 많다. 그 둘은 자기들에게는 사랑이고, 남들에게는 불륜에 빠져든다.

처음에는 첫사랑에 빠진 아돌프가 간절히 구애하고, 엘레노르는 거부한다. 그러다 엘레노르도 아돌프를 사랑하게 된다. 둘의 사랑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누구보다도 행복했다.하지만 곧 둘의 사랑은 정점에서 하향 곡선을 그리기 시작한다.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아돌프를 선택한 엘레노르에 비해, 아돌프의 사랑은 변해가고 있었다. 전처럼 엘레노르를 사랑하는 것 같지도 않고 주변의 시선, 사회적 가치관은 아돌프를 비난하고, 자신의 미래를 생각하자니 이것은 아니지 싶다. 반면, 모든 것을 버리고 아돌프를 선택한 엘레노르의 사랑은 점점 강해지고, 집착이 되어간다.

서로 반대로 변한 마음으로 상대를 보는 두 사람의 사랑은 점점 불협화음을 내고, 결국 파국으로 향한다.이별을 하기로 마음을 굳힌 아돌프, 그러나 엘레노르의 사랑은 이별보다는 죽음을 택했다. 시름시름 앓다가 죽음에 이르고야 마는 엘레노르. 그렇게 둘의 사랑은 끝이 났다.

줄거리만 봐서는 단순한 연애소설이지만, 전혀 그렇지가 않은 것이 달콤한 대사도 가슴 떨리는 연애 장면 묘사는 하나도 나오지가 않는다. 그저 주인공 '아돌프'의 감정을 따라 담담한 서술만 있을 뿐이다.

아마도 처음에는 뜨겁던 사랑도 사회의 인습과 주변 사람들, 그리고 자칫 변해가는 각자의 욕망으로 인해 식고, 변하고 마는 '사랑', '연애'의 태생적 한계와 그것으로 겪는 갈등, 고뇌를 표현한 것이리라.

'사랑'이란 테마는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지만, 그 해답은 없다. 그러나 이 소설이 현실이라면, '사랑'은 굳이 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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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정
성석제 지음 / 문학동네 /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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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못 가진 것을 가진 사람들, 그들의 천재성에 처음에는 부럽다가 다음에는 질투, 그 다음에는 경외심이 든다. '도대체 이 인간(아직도 털어내지 못한 질투의 표현이다.) 은 뭘 먹고 뭘 보고 자랐길래 이렇게 잘났어.' '아멜리에'나 '록 스탁 앤 스모킹 배럴스'의 시나리오 작가나 감독의 넘치는 상상력에 그렇고, 박정현이나 박효신처럼 제 스스로도 주체 못하는 멋진 목소리도 그렇구... 그리고, 성석제. '도대체 이 인간은 뭘 먹고 보고 자랐길래 이렇게 말을 잘해' '글을 잘 써'가 아니라 '말을 잘해.'다.

성석제의 소설은 눈으로 읽고 있으면서도 귀로 들리는 듯 너무나 신명나게 넘어간다. 마치 무성영화의 변사나 판소리 사설이나 '아침마당'의 이상벽아저씨처럼 구수한 그의 목소리에 아무 생각 없이 빠져드는 것이다. 이 작품은 스토리로만 얘기하자면 그다지 특별하거나 놀라운 것은 아니다.

타고난 작부와 타고난 놈팽이에게서 태어난 타고난 도둑 '이치도'가 어떻게 도둑놈으로써 성장하면서 어떤 인간들을 만나 어떻게 살아왔는지가 전부다. 그 과정에서 만난 '왕두련'이라는 첫사랑이 풋풋한 제목에 충실한 그나마 큰 줄기긴 하지만 그건 그의 인생역경의 비교적 중요한 부분일분 전부는 아니다.

정작 중요한 것인 이야기를 풀어내는 성석제만의 방식이다.

처음부터 심상치가 않다. 누군가를 한껏 경계하는 주인공. '나는 도둑놈이다'라고 대뜸 선언하더니, 도둑놈임을 게다가 쫓기는 처지임을 부끄러워하거나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여타의 도둑과는 차별화된 대도둑임을 자랑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그의 출생. 여기서부터 성석제다움은 시작된다. 춘매의 입에서 나오는 황당무계한 태몽하며, 그 태몽이야기와 함께 벌어지고 있는 춘매와 봉달의 수작하며 얼마나 걸죽하고 해학적인가. 그리고 이어지는 등장인물은 그 이름만큼이나 순진한 듯 모자란 듯 이치도의 도둑의 길에 갖가지 영향을 미치고 못지 않게 황당무계한 에피소드들을 이어간다.

물론 그저 재밌기만 한 것은 아니다. 유머로 감싼 소설속 세상은 못지않게 더럽고 유치하고 지저분하다. (성석제가 끊임없이 들이대는 똥처럼) 노골적인 외침이 아니어도 웃으면서 느낄 수 있는 세상보기가 바로 이 소설의 매력이고 성석제다움인 것 같다. 웃다가 허무해졌다면 다시금 그 속에 감춰진 칼날을 헤집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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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1 이외수 장편소설 컬렉션 6
이외수 지음 / 해냄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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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이외수를 싫어한다. 그의 작품을 한 편도 읽지 않고 한 작가를 싫다 좋다 말하는 게 성급하긴 하지만 그의 작품을 떠나 사람 자체에 거부감이 든다. 단지 이외수만이 아니라 예술가임을 특이함으로 표현하는 '기인'들이 싫다는 게 옳겠다. 왜 락커들은 머리를 치렁치렁 기르는 것이며, 왜 작가들은 담배를 밥먹듯 피워대는 게 예술혼의 발현인 것이며, 화가들에게 그놈의 영감은 꼭 산속 오두막 컴컴한 작업실에 삼박사일씩 쳐박혀 있어야 떠오르는 것인지...

하여튼 어느 누구 못지 않게 특이한 예술가 이외수의 신간 '괴물'은 일찌감치 내 관심 범위에서 벗어나 있었다. 싫어하는 사람의 책을 순수하게 작품 자체로 읽을 자신도 없을 뿐더러 '지금까지의 글은 이 작품을 쓰기 위한 습작에 불과했다'는 이외수의 넘치는 자신감에도 거부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 내가 한 권도 아닌 두 권의 장편을 집어든 이유는 스토리의 매력 때문이었다. '전생에 억울한 누명으로 죽은 영혼의 살인극' 완전히 미스테리 공포 스릴러 영화의 카피 아닌가. 사람은 싫어도 작품은 작품일 뿐. 그래. 나름대로 유명한 작간데 글은 잘 쓰겠지. 한번 빌려봐 보자.

그렇게 집어든 괴물 1,2권. 우선 단 이틀만에 읽어제낄만큼 잘 읽힌다. 챕터들마다 마치 수다떨듯, 떠도는 소문이나 가십을 UB통신으로 전해듣듯 재밌게 넘어갔다. 각각의 챕터마다 주인공이 다르고, 그 챕터의 이어짐이 평범하지 않아 다소 낯설긴 했지만 뒤로 넘어갈수록 익숙해졌다. 마치 이야기의 가운데 전진철(이외수)이라는 주인공이 있고, 각각의 인물들의 원을 그리고 서있는 모습이랄까. 그리고, 필요에 의해 하나씩 중앙에 가져다 놓고 그들의 얘기를 풀어낸다. 등장인물들이 그들끼리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게 아니라, 전진철과 약간의 관계, 그리고 이외수에게 조금의 필요만 있으면 소설의 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다.

이런식의 인물배치와 구성이 신선하긴 했지만, 벌려만 놓고 수습을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허풍선이 이야기꾼이 얘기를 꺼내면 자기도 모르게 살도 붙고 삼천포로도 빠지고 그러다가 밑천이 떨어지면 어리버리 마무리짓는 그런 서툼과 허무함이라고나 할까. 전업작가 게다가 그 누구보다 작가라고 자부하는 이외수님의 글인데 설마 이런 기본적인 오류에 빠졌겠냐만은 어쨌든 내가 읽은 '괴물'은 재미는 있지만 뒷맛이 개운치 않은 작품이었다. 아마도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그의 특이함 때문이겠지.

역시 난 이외수와 친해지기에는 너무나 평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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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를 선택해야하는 때...

이것 때문에 저것을 포기하고 나면,

저것에 대한 미련이 이것의 뒤를 끈덕지게 쫓아다닌다.

그 이것이 탁월한 선택이었다면 그나마 꽁무니가 흐려지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스스로의 안목과 어설픈 결단력을 원망하게 된다.

나는 아무래도 잘못된 선택을 했던 것 같다.

앞으로 2달... 선택의 결과를 바꿀 수 있을까?

글쎄... 자신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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