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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 - 제10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12월
평점 :
창작을 하는 사람들의 절대 화두, '새로운 것'
새로운 음악, 새로운 영화, 새로운 그림, 새로운 디자인...
세상은 그들에게 'somthing new'를 끊임없이 요구한다.
그리고 그들은 새로움이라는 강박관념에 짓눌려 눈에 불을 켜고, 촉각을 곤두세우고 제 머릿속, 세상 구석구석을 뒤집고 다닌다.
그러나 정말 새로운 것이 과연 존재할까?
세계위인사전에 등재된 사람들이 애저녁에 온갖 발견과 발명과 발상을 해냈고, 사전에 없는 사람들까지 더하면 정말 나올 건 다 나온 게 현재, 2005년이다.
우리가 바랄 수 있는 새로움이란 100% 새로운 게 아니라, 2%의 기발함 정도가 아닐까.
요즘 음악이 작곡 보다는 편곡에 더 무게가 실리는 것도 그렇고, 같은 신데렐라 스토리에 캔디 캐릭터가 더해지면서 '파리의 연인'이 탄생한 것도 그 2%의 승리인 것 같다.
(이 역시 창작자의 강박관념을 해소시켜주지는 못하겠지만 어쨌든...)
작년 문학동네 신인상을 받은 천명관의 '고래'는 그 2%가 나머지 98%를 장악해, 어디서 본 것 같다는 생각을 감히 할 수 없는 '전혀' 새로운 소설이다.
요즘 책 같지 않은 빽빽한 편집의 400페이지가 넘는 장편소설을 단 몇 시간에 읽게 만드는 흡입력과 속도감은 물론이거니와 다루고 있는 내용 역시 범상치가 않다.
딱 떨어지는 스토리 요약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그걸로는 이 소설의 재미를 제대로 표현할 수도 없다.
그냥, 희한한 캐릭터의 세 여자의 인생역경이 연대기순(이라 하기이도 좀 뒤죽박죽이긴 하지만)으로 풀어냈다고 하면 적당하겠다.
1세대는 그냥 국밥집 노파라고 불리우는 천하 박색의 지지리도 박복한 여자의 얘기다. 너무나 못생겨서 소박을 맞고 어느 대가집에 부엌떼기로 살다가 그 집 반편이 도련님과의 부적절한 관계로 딸 하나를 낳는다 그런데 딸 마저도 또다른 부적절한 관계로 인해 척을 지고 홀로 국밥집을 하며 꾸역꾸역 돈을 모으지만 제대로 쓰지도 못하고 죽는다.
(이 여자, 비중은 적은 편이지만 진짜 중요하다.)
2세대인 금복은 노파와는 다르게 절대 미색을 가졌지만, 역시나 박복의 극치이다. 애를 낳다가 엄마는 죽고, 단둘이 살던 아빠는 본능과 부정 사이에서 괴로워하는 가련한 남자였다. 결국, 아빠를 버리고 자신의 고향을 버리고 먼 바닷가에서 온 어부와 함께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다. 아버지뻘의 어부, 고래와 같았던 걱정, 자기에게 새로운 세상과 꿈을 열어준 칼잡이를 거치면서 사업가로써 여자로써 굴곡많은 인생을 살다가 춘희라는 딸까지 낳게 된다.
딸과 함께 돌아온 고향에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고, 누구도 찾지 못했던 노파의 엄청난 재산을 갖게 되면서 그녀의 인생은 더더군다나 파란만장하게 펼쳐진다.
(이 여자는 비중도 가장 많고, 인생역경도 가장 다이나믹하게 하늘과 땅을 오르내리고, 하물며 여성에서 남성으로의 성정체성의 변화라는 하리수도 놀라워할만한 일도 경험한다.)
제 3대는 금복의 딸, 춘희다. 못생겼다는 걸로도 표현이 모자란 얼굴, 뚱뚱하다는 걸로는 설명이 부족한 몸매, 게다가 말은 못하고 이해력은 떨어지는데 내세울 거라곤 '힘' 하나인 가련한 인생이다.
일찍이 엄마한테는 버림받고, 스스로 세상을 버리고 혼자만의 세상에 빠져있는 춘희 또한 누구 못잖은 불행에 묻혀 산다.
금복의 죽음과 함께 춘희에게도 죽음같은 시간이 시작되고, 죽을 때까지 참 기이하게 살다가 간다.
(이 여자는 정말 모르겠다. 어쨌든 불쌍하다.)
이 소설의 배경은 실제 같기도 하면서 아니다. 우리 나라의 근현대사,구한말을 지나 6.25를 거치고, 새마을 운동과 군사독재를 씹고 있는 것 같으면서도 그 내용은 살짝 황당무계하다.
노파나 춘희의 외양은 무슨 미담 속의 괴물처럼 묘사해놓고, 부잣집 도련님이나 걱정은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류의 에로비디오에서 툭 튀어나온 에피소드같다. 또, 칼잡이의 인생은 '다찌마와 리'나 홍콩 느와르를 윤색한 것 같고, 서커스단의 코끼리와 벌을 휘두르고 나타난 노파의 딸, 감옥에서의 희한한 유희는 컬트영화를 빌려온 듯 낯설고, 죽은 영혼의 등장이나 복수는 호러 영화처럼 섬짓하다.
거기다 간간히 작가의 변사투의 개입은 피식 웃음을 자아내며, 이 소설에 시비를 걸고 싶다가도 그냥 넘어가게 만든다.
내가 써놓고도 도대체 무슨 소설인지 설명이 안되는 것 같다. 근데, 정말 이 소설이 그렇다. 잘나신 심사위원들이 호들갑스럽게 써놓은 심사평이 괜한 말이 아니다. 정말 재밌고 특이하다.
웬만하면 책이나 영화같은 걸 남에게 추천하는 편이 아닌데 이 책은 한번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나처럼 비위가 약한 사람들은 책장을 휙 넘겨버리고 싶은 몇몇 장면들이 있지만... 그 정도야 뭐...
그리고, 혹 소설을 쓰려는 사람이라면 뒤에 수상작가 인터뷰는 보지 말기를 바란다. 전혀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작가의 태도에 김이 샐 수도 있으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