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정
성석제 지음 / 문학동네 / 2000년 12월
평점 :
절판


내가 못 가진 것을 가진 사람들, 그들의 천재성에 처음에는 부럽다가 다음에는 질투, 그 다음에는 경외심이 든다. '도대체 이 인간(아직도 털어내지 못한 질투의 표현이다.) 은 뭘 먹고 뭘 보고 자랐길래 이렇게 잘났어.' '아멜리에'나 '록 스탁 앤 스모킹 배럴스'의 시나리오 작가나 감독의 넘치는 상상력에 그렇고, 박정현이나 박효신처럼 제 스스로도 주체 못하는 멋진 목소리도 그렇구... 그리고, 성석제. '도대체 이 인간은 뭘 먹고 보고 자랐길래 이렇게 말을 잘해' '글을 잘 써'가 아니라 '말을 잘해.'다.

성석제의 소설은 눈으로 읽고 있으면서도 귀로 들리는 듯 너무나 신명나게 넘어간다. 마치 무성영화의 변사나 판소리 사설이나 '아침마당'의 이상벽아저씨처럼 구수한 그의 목소리에 아무 생각 없이 빠져드는 것이다. 이 작품은 스토리로만 얘기하자면 그다지 특별하거나 놀라운 것은 아니다.

타고난 작부와 타고난 놈팽이에게서 태어난 타고난 도둑 '이치도'가 어떻게 도둑놈으로써 성장하면서 어떤 인간들을 만나 어떻게 살아왔는지가 전부다. 그 과정에서 만난 '왕두련'이라는 첫사랑이 풋풋한 제목에 충실한 그나마 큰 줄기긴 하지만 그건 그의 인생역경의 비교적 중요한 부분일분 전부는 아니다.

정작 중요한 것인 이야기를 풀어내는 성석제만의 방식이다.

처음부터 심상치가 않다. 누군가를 한껏 경계하는 주인공. '나는 도둑놈이다'라고 대뜸 선언하더니, 도둑놈임을 게다가 쫓기는 처지임을 부끄러워하거나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여타의 도둑과는 차별화된 대도둑임을 자랑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그의 출생. 여기서부터 성석제다움은 시작된다. 춘매의 입에서 나오는 황당무계한 태몽하며, 그 태몽이야기와 함께 벌어지고 있는 춘매와 봉달의 수작하며 얼마나 걸죽하고 해학적인가. 그리고 이어지는 등장인물은 그 이름만큼이나 순진한 듯 모자란 듯 이치도의 도둑의 길에 갖가지 영향을 미치고 못지 않게 황당무계한 에피소드들을 이어간다.

물론 그저 재밌기만 한 것은 아니다. 유머로 감싼 소설속 세상은 못지않게 더럽고 유치하고 지저분하다. (성석제가 끊임없이 들이대는 똥처럼) 노골적인 외침이 아니어도 웃으면서 느낄 수 있는 세상보기가 바로 이 소설의 매력이고 성석제다움인 것 같다. 웃다가 허무해졌다면 다시금 그 속에 감춰진 칼날을 헤집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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