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가 더 섹시하다
김순덕 지음 / 굿인포메이션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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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도발적이고, 직접적인 제목이다. 여성을 표현하는 몇가지 말 중에서, 부정적이고 뒤틀린 쪽에 포함되는 대표적인 단어, '마녀'와 '섹시'로 이 책의 정체를 제대로 보여준다. 딱, 어느 성공한 여자가 쓴 페미니즘에 입각한 '여성들이여, 깨어나라'류의 책이라는 느낌을 팍팍 주는 제목과 그에 부응하는 저자의 화련한 이력까지... 이런 전제를 깔고 읽기 시작한 이 책은 그러나, 내 예상과는 약간 다른 모습이었다.

일단, 저자가 속해있는 공간이 한국이 아닌 '미국'이라는 점이다. 미국에서의 연수기간 동안 자신이 보고 느낀 몇가지를 아주 쉽게 써내려갔다. 칼럼이라고 해서 딱딱하지도 않고, 잘난 척에 가르치려 드는 게 아니라 '내가 그랬잖아...'하며 듣기 쉽게 풀어나간다. 그 내용도 '미국이란 나라는 이렇더라'와 '조기 유학, 내 딸도 실패했다시피 쉬운 게 아냐.', '여자로써 잘 살아가려면 말이지.' 이렇게 세 가지로 나뉘어져 있다.

달랑 1년 살다와놓고 아는 척 한다는 생각이 없지 않지만(나같은 독자도 꽤 많이 있었던 듯... 그에 대한 변명도 중간중간 나오긴 한다. 그래도 어쨌든.), 너무나 직설적이고 다소 냉소적이까지 한 그녀의 미국론은 통쾌한 한방이었다. '아메리칸 드림'의 허상과 화려하고 완벽해 보이는 이면에 그들도 우리와 비슷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는 사실이 주눅들어있던 어깨가 펴지는 기분이랄까...

'조기유학법'에 대한 내용은 결혼도 하지 않은, 더군다나 유학보낼 애도 없는 나에게는 그리 와닿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애 교육에 목숨거는 아줌마들의 속물근성을 혐오하는 내 정서에는 맞지 않았다. '여성문제'는 그다지 새로울 것도 획기적일 것도 없는 그렇구 그런 얘기의 반복인 것 같다. '페미니즘'이란 것도 언제가부터 시대착오적인 단어로 들릴 정도니 뭐 꼭 이 작가의 문제는 아니지만... 단, 과거에는 '나가자, 싸우자, 이기자' 식이었던 것이 '차이는 인정하되, 차별은 거부한다' 쪽으로 달라졌다고나 할까!

연재된 칼럼을 책으로 엮은 것이라 같은 얘기가 반복되는 부분도 있고, 다소 독선적인 어투도 거슬렸지만 누군가의 세상 바라보기는 여전히 흥미로운 얘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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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 2003 제27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김종은 지음 / 민음사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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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소설, 특히 한국 소설을 좋아한다. 그 중에서도 특히 신춘문예나 각종 신인상 수상작들은 챙겨보는 편이다. 다소 생뚱맞기도 하고, 설익은 듯하고, 어떤 건 어쩐다 이런 게 상을 탔을까 싶기도 하지만 그 나름의 신선함을 좋아한다. 또, TV에 신인가수가 나왔을때 '어쭈, 쟤는 뜨겠네' 점치는 것과 비슷한 심정으로 작가의 미래를 점쳐보는 것도 꽤 쏠쏠한 재미다.(그렇게 찍은 작가의 작품집이라도 나오면, 괜히 지가 뿌듯해서 덥썩 사오기도 하고...)

어쨌든, 그런 개인적인 취향으로 이 책도 선뜻 구입을 해버렸다. '오늘의 작가상'이라... 이름마저도 신선하다. 택배로 받아든 이 책의 첫 느낌은 '어라? 비겁한 책이네'였다.(난 양장본에 여백많고 글자 폰트도 큰 주제에 제 값 받는 책들에게 '비겁한'이란 형용사를 붙인다.^^) 그 두께도 중편도 아닌 것이 장편도 아닌 것이 어쩡쩡한 것이 빨리는 읽겠다 싶어서 우선 읽기 시작했다. 역시나 2시간에 가뿐하게 읽히는 분량에 내용에 문체였다.

'서울특별시'에서 살아가는 30세 동갑내기 남자 네 명의 이야기라, 게다가 걔들은 한 껀 할 계획으로 도원결의 비슷한 결속까지 맺는다. 어째 낯익은 부분들이다. 은희경의 '마이너리그'도 생각나고, 주유소 습격사건도 얼핏 스쳐가고, 이만교의 '머꼬네 집에 놀러올래'도 슬쩍 지나가고...

이름도 특이한 우리의 네 주인공들은 서울시민을 꿈꾸었지만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던 부모 덕에 서울시라는 본적을 갖고 태어났다. 그들 역시 과히 성공적이지 못한 서울에서의 삼십평생을 지내면서 그래도 '나의 고향은 서울'이라는 사명 아래 하루하루 시간을 죽이며, 찰리의 말도 안되는 계획에 하나하나 동조하게 된다. 그 계획이란, 실패할 게 뻔한 강도짓!!

그들의 강도짓이 실제 벌어진 일인지, 아니면 여전히 상상속의 신기루인지는 확실치 않다. 그리고, 그 일로 하여금 그들의 '서울특별시'에서의 생활이 나아지거나 혹은 달라졌는지도 불투명하다. 어쨌든 그들은 '서울특별시'에서 사는 법을 알아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도원결의가 이루어진 버거킹처럼 그 누구도 관심가져주지 않는 거대한 도시 '서울'에서의 삶을...

작가들은 자신의 유년의 기억에 많은 부분 의지하는 것 같다.특히 고향에 대한 향수같은 것들... 그러나 70년대 이후 태어난 작가들에게 유년, 고향같은 말은 너무나 먼 얘기이다. 고향에 집착하는 오래된 작가들에게 인터넷이니 사이버니 하는 얘기가 아득한 것처럼... 김종은이란 작가는 그 나름의 고향 '서울'을 기억이 아니라 현재로 끌어올려 아늑하거나 포근한 곳이 아닌 냉소적이고 불만족스런 '나 태어나 자란 곳'으로 그려냈다. 젊은 작가들에게 고향이란 어차피 그런 것이리라... 그들에게 고향은 '얼룩배기 황소가 우짓는.. 향수'가 아니라 각목 하나씩 들고 습격해버리면 그만인 주유소같은 곳.

그래,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알겠다. 또, 소재를 바라보는 시선이나 풀어나가는 솜씨, 그 재기발랄함이 넘치기는 하는데, 어쩐지 찜찜한 기분이 드는 작품이다. 그 밑에 깔려있어야 하는 고민의 흔적이 너무 얕게 보이는 것은 내 선입견일까? 2003년 '서울 특별시'에서 '서울, 1964년 겨울'을 기대한 것이 무리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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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의 화장법
아멜리 노통브 지음, 성귀수 옮김 / 문학세계사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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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경로로 이 책을 알게 됐는지는 잘 모르겠다. 요즘은 정말이지 책에 대한 정보가 홍수처럼 쏟아져서, 어떤 책은 '읽고 싶다'의 이유가 무엇이었는지조차 가물가물하니... 토요일마다 들어오는 신문의 북섹션이었는지, 알라딘의 메일이었는지 아니면 오가다 들리는 서점 한 귀퉁이였는지, 어쨌든 '적의 화장법'이란 제목이 머릿속에 들어앉은지 꽤 여러 달만에 마침내 읽게 되었다. 그것도 단 1시간만에...

두 등장인물이 쉴새없이 주고받는 대화로 이루어진 짧은 소설로 소설이라기 보다는 희곡의 느낌마저 들 정도였다. 그들의 대화를 따라가면서, 이 책을 읽으면서 나 역시도 역자와 같은 정신상태의 흐름을 이어갔다. '황당함-역겨움-섬뜩함-충격” 마치 내가 앙귀스트인 양 이 무례하고 말많은 존재(텍스트로)를 떼어내려 안간힘을 쓰듯이 책장을 넘기다 순간 멈칫하고는 그 이후부터는 자이로드롭의 낙하순간을 기다리듯 천천히 읽어나갔다.

하지만, 마지막 '충격' 다음의 내 느낌은 '썰렁함' 내지는 '씁쓸함'이라고나 할까? 기대했던 이 책의 낙하는 생각보다 시시했고, 어디선가 타본듯한 익숙한 느낌이었다. 하긴 두 존재가 하나라는 사실을 흘리면서부터 결말은 정해져있기는 했지만, 말많은 텍스트로의 입은 너무 일찍부터 수다를 떨어대서는 앙귀스트 뿐만 아니라 독자까지도 넌더리를 내게 만들고야 말았다.

존재 내부의 악마성이야 누구나 한번쯤은 느껴본, 또 생각하본 것이고 또, 예술한다는 사람들이 초보적으로 드러내는 영감 중 하나가 아닌가? '식스 센스'를 보고 나서 '디 아더스'를 봤을 때, 놀라긴 놀랐으되 어쩐지 재탕한 곰국같고, 좀 더 지나니 같은 함정에 두 번 빠진 제 자신의 어리숙함에 웬지 말하기 쪽팔렸던 느낌과 비슷한 뒷맛이긴 하지만...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나니, 이 나름대로의 재미를 폄하하고 싶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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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 횡단 특급
이영수(듀나)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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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는 한번쯤 접해보고 싶은데 엄두가 안나는 장르 중 하나였다. 웬지 기본서부터 차근차근 시작해야될 것 같은 부담감까지 드는 것이 먼 미래, 혹은 가상현실은 너무나 먼 얘기이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에 'TV 책을 말하다'를 보고 너무나 반가운 마음에 이 책을 대뜸 읽게 되었다. 문학으로 제대로 대접도 받지 못하는 장르를 그 프로그램에서 다룰 정도면 어느 정도의 수준이 될테고, 게다가 한국 작가, 그것도 젊은 작가의 단편이라는 점이 약간은 가볍게 느껴졌다.

그러나 표제작 '태평양횡단특급'으로 시작되는 몇 편의 중단편은 쉽게 읽히지만 다소 낯선 것이 사실이었다. 로봇이며 클론이며 먼 미래의 얘기가 실제 존재하는 것처럼 여겨지는 것도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책 중간중간에 인용되는 SF의 기본상식들도 모른다는 자괴감에, 영화, 음악 등의 예술장르의 각종 이름들을 쉴새없이 등장시키는 작가의 잘난 척은 다소 짜증스럽기까지 했다.

그리고 생각보다 그리 새롭다는 느낌이 없었던 것은, 몇편의 작품은 누구나 한번쯤은 상상해본 아이디어에서 그다지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 '대리 살인자'나 '허깨비사냥' 같은 작품은 상상에서 그치고 문제제기까지도 미치지 못한 것 같다. 그래도 '무궁동'의 반전과 '첼로'의 상상력과 '기생'에서의 작가의 미래관 등은 놀라운 부분이었다.

여러 장단점을 가진 정체불명의 작가 듀나는 아직은 완숙되지 않은, '작가'라기 보다는 문화를 조금 깊이 아는, 아이디어만 넘치는 사람에 머물고 있는 것 같다. 앞으로의 행보에 따라 작가의 신비주의도 어느 정도 벗겨지고 문학적 완성도도 더해가리라 기대된다.

이 작품집 하나를 갖고 SF에 대해 뭘 알았다거나 깊은 느낌을 가진 것은 아니지만 다소의 흥미는 갖게 되었다. 이 책에 언급된 몇몇 작가들의 작품을 한번쯤 읽어볼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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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오식당
이명랑 지음 / 시공사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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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본 영화 '질투는 나의 힘'에서 문학잡지 편집장역의 배우가 술에 취해 내뱉은 말이 꽤 오래 나를 괴롭히고 있던 참이다. -영화의 흐름하고는 그다지 상관이 없는 대사임에도...- '후벼팔 상처가 없어서 문학을 포기했다' 는 그 한마디는 나 자신에게도 해당되는 것인지라 핑계김에 소주 한잔 걸치고 싶은 요즘이다.

사실 해방문학, 전후문학이라 이름붙여진 고등학교 교사서의 단골메뉴들도 그렇고, 운동권 후일담에, 일련의 페미니즘 문학까지... 그것들은 공동의 우물을 제각각 다른 두레박에 퍼담아내는 작업이지 않은가. 다같이 불행하고, 다같이 가난하던 시절 너나 할 것이 후별팔 상처 하나씩은 가슴팍에 붙일 수 있었던 그 때... 그때가 오히려 작가들에게는 행복한 시절이 아니었을까 하는 철없던 생각이 들만큼, 70년대 후반에 태어나 90년대 중반에 학교를 다니고, 10층 아파트의 딱 6층 높이의 경제적 풍요를 누린 나에게 문학은 손에 쥐기도 버리기도 어려운 깨진 똥항아리같은 무게인 것이다.

그런 와중에 접하게 된 이 책, 아니 이 작가는 개인적인 부러움과 좌절감을 맛보게 한 참 쓰디쓴 작품이었다. 나와 몇 년 차이도 안 나는 나이에 이런 체험과 이런 입담과 세상보는 눈을 가질 수 있다니... 써도써도 줄어들지 않는 화수분 하나 옆에 끼고 사는 행복한 작가 아닌가.

살아 움직이는 인물들이 내 앞에서 드라마를 보여주는 듯 어느새 같이 웃고, 욕하고, 가슴 짠해지는 경험들. 4시간 남짓 책을 읽는 동안, 난 이미 영등포의 장터거리, 삼오식당 안이나, 봉투 아줌마의 평상 위에라도 앉아있는 기분이었다. 지금껏 한번도 체험해보지 못한 영등포의 삶, 하루 생활비를 벌기 위해 밥이든 과일이든 생선이든 팔아야 하는 우리네 어머니들의 악다구니와 구구절절한 사연들이 어느새 이웃의 것이 되어버리는 끈끈한 간접체험이 바로 이 책의 매력인 것 같다.

끝나지 않은 연작소설이라는 것이 또 새로운 기대감을 갖게 한다. 그리고... 언젠가 삼오식당에서 밥한끼 먹어봤으면 하는 바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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