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오식당
이명랑 지음 / 시공사 / 2002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며칠 전에 본 영화 '질투는 나의 힘'에서 문학잡지 편집장역의 배우가 술에 취해 내뱉은 말이 꽤 오래 나를 괴롭히고 있던 참이다. -영화의 흐름하고는 그다지 상관이 없는 대사임에도...- '후벼팔 상처가 없어서 문학을 포기했다' 는 그 한마디는 나 자신에게도 해당되는 것인지라 핑계김에 소주 한잔 걸치고 싶은 요즘이다.

사실 해방문학, 전후문학이라 이름붙여진 고등학교 교사서의 단골메뉴들도 그렇고, 운동권 후일담에, 일련의 페미니즘 문학까지... 그것들은 공동의 우물을 제각각 다른 두레박에 퍼담아내는 작업이지 않은가. 다같이 불행하고, 다같이 가난하던 시절 너나 할 것이 후별팔 상처 하나씩은 가슴팍에 붙일 수 있었던 그 때... 그때가 오히려 작가들에게는 행복한 시절이 아니었을까 하는 철없던 생각이 들만큼, 70년대 후반에 태어나 90년대 중반에 학교를 다니고, 10층 아파트의 딱 6층 높이의 경제적 풍요를 누린 나에게 문학은 손에 쥐기도 버리기도 어려운 깨진 똥항아리같은 무게인 것이다.

그런 와중에 접하게 된 이 책, 아니 이 작가는 개인적인 부러움과 좌절감을 맛보게 한 참 쓰디쓴 작품이었다. 나와 몇 년 차이도 안 나는 나이에 이런 체험과 이런 입담과 세상보는 눈을 가질 수 있다니... 써도써도 줄어들지 않는 화수분 하나 옆에 끼고 사는 행복한 작가 아닌가.

살아 움직이는 인물들이 내 앞에서 드라마를 보여주는 듯 어느새 같이 웃고, 욕하고, 가슴 짠해지는 경험들. 4시간 남짓 책을 읽는 동안, 난 이미 영등포의 장터거리, 삼오식당 안이나, 봉투 아줌마의 평상 위에라도 앉아있는 기분이었다. 지금껏 한번도 체험해보지 못한 영등포의 삶, 하루 생활비를 벌기 위해 밥이든 과일이든 생선이든 팔아야 하는 우리네 어머니들의 악다구니와 구구절절한 사연들이 어느새 이웃의 것이 되어버리는 끈끈한 간접체험이 바로 이 책의 매력인 것 같다.

끝나지 않은 연작소설이라는 것이 또 새로운 기대감을 갖게 한다. 그리고... 언젠가 삼오식당에서 밥한끼 먹어봤으면 하는 바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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