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꼼수로 몽매한 시민의 눈과 귀를 뚫으사
이땅의 메마른 정치에 생명수를 부어주신 그분의 복음.
겉과 속에 한 치의 다름도 없는 무학의 통찰에 이르신
한국 정치의 선지자께서는 2012년 대선을 앞두고
과연 어떤 말씀으로 세상을 깨우치실 계획이실까.
이제 열흘 후면 한 권의 책으로 계시를 내려주실 터,
무릇 읽고 따르는 자에게는 축복이,
읽고도 믿지 못하는 자에게는 어둠만이 영원하리라.
졸라 짧은 서문
이게 다 조국 덕이다. 서울대 법대 교수 조국 말이다..
그의 등장과 부상에 열렬 환호했다.
오! 스펙, 얼굴, 기장, 음색, 사상. 이건 뭐, 토털 패키지. 이만하면 역대 최고 선수. 신난다.
달뜬 채 《진보집권플랜》 집어 들었다. 서문 읽다……덮었다.
재수, 없을 수 있겠다…… 재수 없다가 아니라.
그리고 재미, 없다…… 재미없을 수, 있겠다가 아니라.
전자는 위험하고 후자는 안타깝다.
이렇게나 훌륭한 선수가. 에이, 씨바.
안 되겠다. 돕자.
아무도 안 시켰는데, 괜히 나 혼자 불끈.
'진보집권플랜 B-'가 필요하다.
어디까지나 조국을 위한, 무허가 해제, 야매 보론, 측면 지원, 셀프 차출.
그렇다. 그렇게 시작됐다, 이 짓.
근데, 잦아들었다. 조국 바람이.
너무 빨리. 우씨. 어떡해, 이거. 난 이미 출발했는데.
에라이. 기왕 나선 거, 내처 달리자. 일이 그리 된 게다.
그러니 사전 경고한다.
다음 페이지부터 펼쳐질 내용, 어수선하다.
근본도 없다. 막 간다.
근본 있는 자들은 괜히 읽고 승질내지 말고 여기서 덮으시라.
다만 한 가지는 약속한다.
어떤 이론서에도 없는,
무학의 통찰은 있다.
물론, 내 생각이다.
반론은 받지 않는다.
열 받으면 니들도
이런 거 하나 쓰든가.
서문 긴 건,
딱 질색이니
여기까지.
졸라.
졸라 재미난 본문
좌, 우. 사바나로 돌아가자
지 _ 왜 진보가 집권해야 하는지 말하기 전에 진보, 보수를 먼저 규정해야 하는 거 아냐?
김 _ 좋아. 좌, 우가 뭔지부터 얘기를 하자고. 굉장히 흔하게 쓰이지만, 사회과학에 익숙한 사람이 아니면 어려워하는 개념이니까. 그나마 전 국민이 공통으로 가진 좌, 우에 관한 기준이 북한을 바라보는 태도 정도인데, 북한에 대한 태도를 가지고 좌우나 진보, 보수를 나누는 건 사실 굉장히 한국적이고 예외적이며, 애초 유럽에서 기획된 좌, 우의 개념에도 들어맞지 않거든. 그러니까 더욱 헛갈리지.
나도 80년대에 20대가 걸쳐 있었기 때문에 그 시절의 평균적인 학습 세례를, 그 시절 유행했던 《전환시대의 논리》같은 책을 통해 받았지만 나이가 들수록 그런 이론이 내겐 관념적이고 작위적으로 느껴졌어. 지금부터 할 이야기는 그런 정교한 이론을 기반으로 얼마든지 반박할 수 있어. 나도 그런 이론들 대부분은 알아. 하지만 그런 건 제쳐두자고. 중요한 건 그런 정교한 이론이 아니니까. 큰 덩어리의 본질을 이해하는 게 중요한 거니까. 자, 그럼 내 방식대로 좌와 우를 설명해볼게. 무학의 통찰로.(웃음)
지 _ 진보, 보수를 나누고, 세계를 이해하는 것, 내 스탠스를 찾는 것이 학습의 결과가 아니란 말이지?
김 _ 내가 살아가면서, 사람들을 만나고 부대끼면서 순간순간 경험으로 터득한 건데, 그러니까 근본은 없어.(웃음) 어쨌든 그런 순간들을 경험하면서 나름대로 내재적 속성을 직관과 통찰로 발견한 거라고 난 주장하는 거지, 일방적으로.(웃음) 자, 이제 사바나로 돌아가보자, 사바나 시절로. 현재의 우리 사고 회로가 설계된 건 바로 그 시절이거든. 그 시절, 사회적 규범도 대단히 미약하고, 학습의 기회나 장도 달리 없고, 대단히 동물적인 자연인 상태였던 그때는 과연 좌, 우가 없었는가? 좌, 우의 원형질에 해당하는 사고방식은 과연 없었는가? 좌, 우의 어떤 기원에 해당하는 인식 체계, 세계관이 그때는 존재하지 않았는가? 난 당연히 있었다고 생각해. 아예 존재하지 않았던 사고의 회로를 어느 날 갑자기 인간들이 발명해냈을 리 없거든. 그런 사고의 경향성이 없었던 게 아니라 그런 생각을 설명할 정교한 언어를 갖지 못했을 뿐이지.
그렇다면 그 시절의 좌, 우는 어떤 것이었을까? 어느 날 문득, 그 원형질에 해당하는 감정이나 태도가 무엇이었을까 생각해보게 된 거지. 어떤 동물이건, 물론 사람도 포함해서, 그 태도를 결정하게 만드는 건 결국 크게 두 가지라고 생각해. 하나는 욕망이고, 나머지 하나는 공포야. 그게 모든 동물의 생존 방식을 결정하는 두 축이라고 봐. 간단히 말해, 살고 싶은 건 욕망이고, 자기 존재를 위협하는 건 공포지. 그 시절의 기본적인 욕망을 유추해보는 건 어렵지 않아. 먹고 자고 섹스하고. 모든 동물이 가진 본능적 욕구를 안정적으로 해결하기에도 만만치 않은 시절이었을 테니까. 그걸 해결하기에도 바빴겠지.
그럼 공포는 어떤 모양이었을까? 사자일까? 천둥과 벼락을 내리치는 하늘? 가장 큰 공포는 불확실성이었다고 생각해, 불확실성. 물론 사자도 두려워. 그렇지만 사자보다 더 두려운 것은 저 풀숲에서 튀어나올 게 뭔지 아예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저 밀림 속에 오로지 사자밖에 살지 않는다면, 그럼 사자의 습성을 알고 조심하는 걸로 대처하면 되거든. 그런다고 공포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예측하고 준비할 근거는 있는 거니까.
그런데 거기서 뭐가 튀어나올지 모른다고 생각해봐. 미지의 포식자와 자연재해를 예상할 수 있나. 없다고. 언제, 뭐가 튀어나올지 모른다는 것, 그런 불확실성, 나는 이게 바로 공포의 원형질에 해당한다고 봐. 인간의 현대적 욕망을 가장 충실히 반영하는 자본 게임인 주식시장을 봐. 주식시장이 가장 싫어하는 건 불확실성이야. 불확실성에는 논리적으로 대처하는 방법이 따로 없으니까. 인간이 그런 불확실성이라는 공포에 따로 대처할 방도를 찾지 못하니까 굿도 하고, 별자리도 보고 그러는 거지. 토템이 어느 지역에나 있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일 테고. 그러다 그게 세련되어지면 종교가 되는 거고.
이 모든 노력은 결국 인간의 논리로는 도저히 대처할 수도 없고 해결할 수도 없는 불확실성을 어떻게든 축소하고 제거하기 위한 거지. 초월적 존재에 의탁해서. 악어가 인간을 잡아먹는 동네에서는 그 대상이 악어가 되기도 하는 거고. 염주 차고, 십자가 걸고 기도하는 거나, 동물 뼈 목에 걸고 굿하는 거나, 본질적인 동력은 같은 거라고. 우리는 신이 아니기 때문에 저 앞의 밀림에서, 자신 앞의 삶에서, 뭐가 튀어나와 날 해칠지도 모른다는 공포, 불확실한 삶의 조건 속에서 견뎌내야 했던 거
지.
우, 겁먹은 동물
지 _ 그 공포의 핵심이 바로 불확실성이라는 것이 되겠네?
김 _ 그렇지, 그런데 이 불확실성에 대처하는 방식이 크게 두 가지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 사람에 따라서. 생각해보면 그 시절엔 내가 오늘 먹을 것이 있다고 해서 내일 먹을 것이 보장되는 게 아니었잖아. 요즘 우리는 내일 먹을 것에 대한 불안을 돈으로 환치시켜 생각하는데, 돈만 있으면 다 해결되니까, 그 시절은 그게 아니었잖아. 내가 오늘 사슴을 잡았다고 해서 내일도 그 자리에 다시 사슴을 잡을 수 있으리란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고. 자신의 생존이 그러한 불확실성에 좌우되는 상황이지.
그 공포에 대처하는 두 가지 서로 다른 방식이 바로 좌, 우다, 난 그렇게 생각해. 우는 기본적으로 세계를 약육강식의 전쟁터로 이해한다고. 그렇게 생존이 상시로 위협받는 약육강식의 환경에선 내가 더 강한 포식자가 되어, 더 많은 자원을 확보하고, 더 악착같이 그걸 독점해, 우선 내가 살아남아야겠다. 그게 난 굉장히 동물적이고, 본능적인 반응이라고 생각해. 당연히 일단 내가 살아남아야지. 나는 죽고, 옆 사람이 살면 뭐 해.
그래서 그들이 인지하는 세계에선 자신이 더 많은 것을 가지려고 하는 게 도저히 죄가 될 수 없는 거야. 당연한 생존의 권리지. 그래서 더 강한 자가 더 약한 자를 지배하는 것도 죄일 수가 없어. 마땅한 권리 행사일 뿐이지. 그리고 그렇게 고생해서 자기 것을 챙겼는데, 만약 그걸 누군가 가져가거나 남들과 나눠야 한다고 생각해봐. 억울하잖아. 그러니까 그들에게 사유재산은 대단히 중요한 거야.
자기가 강해서 획득한 자산, 그걸 남에게 뺏기지 않을 권리, 그렇게 확보한 자산의 차이로 만들어지는 위계, 그렇게 형성된 계급의 유지, 그 유지를 위해 필요한 질서, 그 질서의 지속적 보장, 그들이 인지하는 세계에선 그런 것들이 무척 중요해지는 거지. 그렇기 때문에 그 격차로 인한 불평등은 너무나 당연한 자연의 이치가 되는 거야. 뒤처지거나 약한 건 전부 자기 탓이니까.
이명박이 항상 나태해지지 말라고 하잖아. 그 말뜻은 그런 거지. 내가 강한 건 내가 열심히 노력해서, 내가 잘나서고, 내 덕에 내가 여기까지 온 거다. 난 그렇게 대통령까지 된 사람이다. 열심히 살지 않고, 불평불만 늘어놓는 자들, 남 탓만 하는 자들, 그 모든 건 자기 탓이다. 그러니 뒤처진 자들은 남 탓할 거 없다. 여기서 ‘ 남’은 바로 대통령까지 된 이명박 자신이지. 그러니 날 탓하지 말고, 정권을 탓하지 말고, 네 일이나 열심히 해라. 그런 소리지.
노력만으론 개인이 극복할 수 없는 사회구조 같은 건 보이지도 않아. 청소부가 열심히 일하지 않아서 가난한 게 아닌데, 그런 건 관심 없어. 이명박이 항상 자기는 뭐든 해봤다고 주장하잖아. 내가 해봐서 안다고. 그건 자기는 여기까지 왔다고, 스스로를 대견해하며, 니들도 그렇게 해보라는 소리거든. 그러니까 니들은 니들이 못나서 그런 거라는 말이지. 성공한 우의 전형적인 사고 패턴이야. 모든 문제를 개인의 무능으로 환원시켜, 자신들에게 유리하도록 장악한 시스템 자체에 대해선 시비를 못 걸게 만드는 거지. 씨바.
그렇게 생각해보면 결국 우는 공포에 지배당하는 자들이 보여주는 본능적 대응이야. 두려우니까, 무서우니까, 자신만이라도 살아남겠다며 발버둥 치는 것들의 리액션. 그래서 난 우는 세계관이 아니라 반응이라고 생각해. 공포와 마주한 동물의 반응. 그런 수준의 반응은 인간이 아니라 동물도 다들 하는 거거든. 식량이 없는 두려운 겨울을 견디고 봄까지 살아남기 위해 가을에 졸라 많이 처먹는(웃음) 곰의 적응과 하등 차이가 없는 거라고.
그래서 우의 엔진은 공포라고. 그 공포를 경쟁 대상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표정은 엄숙, 비장한 것이고. 그 경쟁에서 이길 경우 자신이 너무 대견해서 안하무인이 되고. 졸라 촌스럽지. 조갑제가 칭송하는 우의 비장미가 바로 그런 속성을 가진 거지. 그렇게 불확실성이란 공포를 상대하는 동물적 반응, 그 관점으로 우를 충분히 설명할 수 있다고.
이런 건 기질적인 것이고 타고나는 거라고 봐. 게다가 치열한 경쟁은 어쩔 수 없는 거라고 가르치고, 넓게 머리 써서 지혜롭게 협동하기보다 잔머리 써서 다른 사람을 이기는 놈이 잘난 놈이라고 세뇌시키는 우리나라 시스템에서 우가 대다수인 건 더더욱 당연한 거지. 우가 본능적이고 일차원적이잖아. 일단 나부터 살고 보자는 것이 나를 둘러싼 시스템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보다 쉽고 자연스럽거든. 유아적이라고 할 순 있어도 말이지. 현상 뒤의 구조를 읽어내는 건 막대한 정신 에너지가 필요하니까.
그리고 여기서 한국의 우가, 한국적 보수가 북한을 대하는 태도를 설명할 수 있는 단서 또한 얻을 수 있어. 그 정서적 단서를. 북한은 한 마디로 불확실성 그 자체거든. 마치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밀림의 포식자처럼. 그럴 경우 그 두려움을 가장 손쉽게 처리하는 방식 중 하나는 상대를 악으로 규정해버리는 거야. 공포스러운 대상을 윤리적 단죄의 대상으로 바꾸는 거지. 그쪽이 훨씬 처리하기 간편한 감정이거든. 무섭다고 하기보단 나쁘다고 하는 거지. 무서워서 싫은 게 아니라 악해서 싫다고 말하는 거지. 그러니까 북한에 대한 우리나라 우의 반응은 한마디로 원시인 수준이야.(웃음)
지 _ 우리 우파 정당에 친일파나 그 후손이 많이 모여 있는데, 그게, 더 강한 놈이 있으면 ‘어쩔 수 없다. 쎈 놈이니 복종해야 한다!’는 멘탈리티를 가진 사람들이라서 그런 건가?
김 _ 그렇지. 물론 자기 걸 뺏으려는 자에게 누구나 일단 반항하지. 하지만 그 힘의 차이가 압도적일 경우, 그래서 모두 잃더라도 맞서느냐 아니면 그 힘에 복종하느냐를 선택해야 하는, 그런 결정적 선택의 순간이 오게 되면, 결국 본질적 기질이 드러나게 된다고. 그때 우의 사고 회로는 자기를 압도하는 힘에게 복종하고 바짝 엎드리는 게, 자기가 더 힘이 세면 남을 지배하는 게 당연하듯, 받아들여야 하는 이치라고 여기기 십상이라고. 자기가 약하면 복종하는 건 도리 없다고 받아들이는 게 우의 인식체계라는 거지. 동물하고 똑같아. 붙어봐서 안 되면 바로 꼬리 내리고 슬슬 기는 거지. 아예 도망치거나.
지금도 일제 강점기의 장점을 어떻게든 찾아내려는 우파 학자들 있잖아. 그러면서 자기는 객관적이라고 착각을 하지. 객관적인 게 아니라 지가 그렇게 생겨 먹었을 뿐인데. 정보는 그 자체로는 데이터에 불과하고 결국 어떻게 프로세스 하느냐가 중요한데, 그 처리 과정을 지배하는 게 바로 자신의 생겨먹은 기질이란 걸 스스로는 자각하지 못하는 거지. 그렇게 압도적 힘을 거스르기보다 따르려고 하는 건, 우의 멘탈리티로는 쪽팔린 게 아니라 당연한 거지.
항상 경쟁을 이야기하고, 경쟁에서 탈락하면 지 탓이라 하고, 그 경쟁에서 승리한 엘리트 중심으로 생각하는 것과, 일본 같은 식민본국, 미국 같은 슈퍼 파워, 그 이전의 중국 같은 대국에 우가 머리를 조아리는 건 같은 맥락인 거지. 그리고 우의 기질과 원형질이 그렇다 보니까 우의 경제라는 건, 우선 지가 다 처먹고 나서 남은 찌꺼기를 나누어 주는 걸 경제라고 하는 거고. 일단 지가 다 먹고 나서. 이게 핵심이야.(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