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경제학 시리즈 세 번째 책 <디버블링 - 신빈곤시대의 정치경제학>이 어제 나왔습니다. 우석훈 선생이 각종 지면에 꾸준히 글을 쓰고, 여러 책에 공저자로 이름을 올려 '또 책이 나왔나?' 싶기도 하지만 사실 같은 시리즈의 <생태요괴전>, <생태페다고지> 이후 단독 저술은 처음입니다. 뭐 그래도 1년 반 정도이긴 합니다만.
표지의 제목이 '더버블링'으로 보인다는 몇몇 사람들의 지적도 있지만 최근의 경제 지표와 흐름을 보면 당연히 '디버블링'이겠죠. 저도 이제사 펼쳐보는 중이라 깊이 있는 말씀은 드리지 못하지만, 지금까지 나온 우석훈 선생의 책 가운데 가장 두껍다는 부분도 중요한 지점 아닐까 싶습니다. 그 스스로 이 책이 생태경제학의 하일라이트라고 말했듯이 '정치경제학 비판'을 넘어 '정치경제학 입론'의 역할을 해주길 기대합니다. 그럼, 꽤 긴 서문을 소개합니다.
[서문]
살면서 특별히 운이 있다고 생각해본 적은 별로 없다. 뽑기와 같이 확률로 영향을 받는 게임에서 이겨본 적이 거의 없고, 운이나 재수 같은 것도 거의 없는 편이다. 유난히 승부에 강하다고 하는 사람들을 종종 보는데, 나는 승부처럼 생긴 것에서는 한 번도 이겨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당구는? 30…. 포커도 칠 줄 모르고, 돈을 걸고는 고스톱을 쳐본 것이 고등학교 시절로 올라간다. 시험운도 별로 없는 편인 것 같다. 어쨌든 운과 확률은 나와는 다른 세계의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편이지만, 선생 복마저 없었던 것 같지는 않다. 대체적으로 나에게 가장 중요한 시절에, 나에게 무엇인가를 가르쳐줄 수 있는 스승들을 잘 만난 편인 것 같다. 그리고 독서도 운이 있는 편인 것 같다. 난독이라는 생각으로 손에 잡히는 대로 책을 읽었지만, 특히 고전을 아주 어렸을 때 읽었던 특별한 행운이 있었던 것 같다. 책이 재미있어서 읽는다고 하는 사람들도 가끔 보는데, 내가 본 책들은 재미없기로 소문난 책들인데다 크기는 대개 전화번호부 비슷하다. 운이 좋으면 현대 불어나 현대 영어로 되어 있지만, 몇 세기만 위로 올라가더라도 동사변화나 격변화가 지금과는 좀 상이하고, 라틴어가 많이 포함되어 있어서 읽기가 힘들다. 재미있어서 읽은 건 아니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참고 읽었다고 하는 게 솔직한 얘기일 것이다. 좌파로 세상을 살아가기로 마음을 먹은 이후, 독서 외에는 날 지켜줄 것이 없었다. 길을 잃을 뻔한 위태로운 순간들마다 책과 스승들이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운이 아예 없었다고는 말할 수가 없을 것 같다.
나한테 영향을 많이 미친 학자들이 적지 않은데, 그중에는 20세기에 등장한 학자들도 여러 명 있다. 몇 년 전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20세기에 등장한 주요 학자들을 재미삼아 꼽아본 적이 있었는데, 나에게 전체적인 방향과 깊은 영감을 준 20세기 학자들이 대부분 여성 경제학자들과 일부의 여성 과학자라는 것을 알고는 놀랐던 적이 있다. 물론 내가 공부할 때에 특별히 여성에 대해서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거나, 젠더 경제학 같은 논문을 많이 은 것은 아니다. 젠더 경제학이라는 게 세상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도 박사학위 논문을 제출하고 나서 지루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논문집들을 뒤져보던 시기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경제학 공부를 시작하자마자 고용이라는 변수에 대해서 매우 인상깊은 감명을 받았었는데, 일반적인 경제학자들이 케인스의 거시경제학을 수용하면서 고용이라는 변수로 들어가는 것과 달리, 나는 조앤 로빈슨(J. Robinson)의 ‘골든 에이지’라는 일종의 황금률 모델을 통해서 고용의 세계로 들어왔다. 실제로는 케인스와 조앤 로빈슨이 같은 건물에서 연구하던 시절이 있었으니, 누가 먼저인가, 누가 누구에게 영향을 주었는가에 대해서 학설사 내에서는 가끔 논란이 되기는 한다. 어쨌든 두 사람의 공통의 선조는 경제학자 시절의 맬서스, 즉 인구론의 청년 맬서스가 아니라 백화점과 같이 부자들이 돈을 쓰게 하는 것이 경제성장에는 매우 중요하다고 주장하던 후기 맬서스라고 할 수 있다. 어쨌든 조앤 로빈슨과 케인스 사이에는 경제적 대상을 다루는 데 미세한 차이가 있다. 케인스의 이론이 꽃피던 시절, 세상은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거대한 전쟁으로 치달렸다. 그러나 조앤 로빈슨은 전쟁에 반대했고, 전쟁이 나지 않는 방식으로 국민경제의 문제를 풀기 위해서 내부 고용을 내부적 방식으로 해결하고자 했던 것 같다.
좌파 경제학 내에서 전쟁에 가장 강렬히 반대했고, 또한 미국 철도의 건설 사례 등을 통해 건설산업이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분석해낸 건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난 후 자국 군인들에게 맞아죽었던 로자 룩셈부르크였다. 케인스와 함께 로자는 소비의 역할을 강조하고 유통을 강조했던 일종의 유통주의자 정도로 간주되지만, 로자는 자본주의의 신비한 매력에 그다지 매혹당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시장과 자원 그리고 자연의 물질적 한계에 대해서 주목했었고,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필시 로자가 살아 있었다면 러시아 등 동구권 국가에서 진행된 자연대개조 사업과 같은 반생태적 경제운용에 대해 반대했었을 것이다. 독일의 전쟁에 대해 사회민주당이 찬성할 때, 그는 동료들과 함께 ‘스파르타쿠스단’이라는, 침략전쟁에 반대하는 정치그룹을 만들게 된다. 인류의 정신세계에는 고귀함을 남겼지만, 유태인 출신의 로자는 정치적으로는 소수파여서 집권을 하거나 스스로 정책을 운용해볼 기회를 갖지는 못했다. 그러나 로자의 생각이 현실사회주의 쪽으로 기울었다면, 아마도 스탈린주의 시대의 토목사업들이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지 않았을까? 가끔 그런 상상을 해본다.
방법론, 모델, 그리고 삶의 스타일까지 나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준 것은 로마클럽 보고서의 연구 리더였던 도넬라 메도우(Donella Meadows)라고 할 수 있다. 당시 MIT에서 시스템 다이내믹스와 환경모델링의 젊은 연구자였던 메도우에게는 인류의 미래를 진단할 기회가 로마클럽의 연구기금과 함께 찾아왔고, 당시로서는 손대기 어려운 그 모델을 풀어볼 수 있는 슈퍼컴퓨터가 MIT에는 있었다. 그녀의 주변에는, 비록 나중에 이혼은 하게 되지만 데니스 메도우와 같은, 평생을 함께할 연구 동료들이 있었다. 그렇게 그들은 ‘월드(WORLD)’라는 시스템 다이내믹스 모델을 만들었고, 그 연구 결과가 바로『성장의 한계(Limits to Growth)』라는 그 기념비적인 저서이다. 우리에게는 ‘로마클럽 보고서’라는 이름으로 알려졌다. 귀농하여 조그맣게 유기농농장을 일구면서 그녀는 연구를 계속했는데, 월드 셋째 버전으로 진행하던 연구는 그 끝을 보지 못하고 최종 결론만 남겨놓은 채 종료되고 말았다. 전 남편이었던 데니스 메도우가 이 월드3의 분석 결과를 유고집으로 출간했는데, 나에게는 시리즈 셋째권인『촌놈들의 제국주의』가 월드3의 장기 전망 위에 세워진 책이었다. 월드 모델을 동아시아 버전으로, 조금 작게 만드는 대신에 한중일의 디테일을 집어넣은 모델로 변형하고자 하는 꿈을 가지고 있었지만, 혼자 작업하는 것인지라 지역 모델링까지 만드는 것은 힘에 버거워서 새로운 모델링을 추가하지는 못했다. 언젠가는 나도 홀가분하게 되었을 때 시스템 다이나믹스와 거시경제 모델을 연동시키는 생태경제 모델링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는 하다. 15년째 마음속에만 품고 있는 나의 로망이다. 그 로망이 도넬라 메도우에게서 나온 셈이다.
그리고 생물학 내에서는 여전히 마이너의 위치에 있지만, 전세계 생물학 교과서에 자신의 연구 결과가 들어가게 된 사람, 린 마굴리스(Lynn Margulis). 세포 내의 미토콘드리아에 관한 얘기는 린 마굴리스가 ‘가이아’ 이론으로 코너에 몰린 제임스 러브록(J. Lovelock)을 방어하면서 나왔던 연구 중의 하나이다. 공생(symbiosis)이론이라고 할 수 있는 그의 기본 테마는, 분자생물학에서 진화는 유전자 단위에서 벌어지는 경쟁만이 아니라 서로 이질적인 두 종의 협력적 합성에 의해서도 진행된다는 것이다. 물론 이는 미토콘드리아가 보다 상위의 포식자에게 잡아먹히고 난 결과이고, 그런 방식의 합성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고 하더라도 경쟁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경쟁에서의 승리가 진화의 결정적 동인이라고 하는 것과는 다른 방식의 협동을 보여주는 린 마굴리스의 연구는, 확실히 이단적이며 당분간은 그다지 환영받지 못할 연구 방향이기는 하다. 『코스모스』의 저자이자 린 마굴리스보다는 국제적 지명도가 훨씬 높은 칼 세이건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도리언 세이건은 여전히 어머니인 린 마굴리스와 공저자로 활동하는 중이다. 세이건과 마굴리스 사이에서 태어났으니, 당연히 박사학위도 받았을 것이고, 좋은 대학에서 연구도 할 것 같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아들을 그렇게 키우지는 않았다. 과연 학위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 공부와 직접 연관된 것은 아니지만, 마굴리스의 삶은 그 자체로도 우리에게 시사해주는 바가 있는 것 같다.
이렇게 몇 년 전 내 생각을 지탱하는 학자들에 대해 생각해봤을 때, 대체로 위와 같은 4명의 여성학자들이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을 안내하고 있었다. 4명 모두 여성이라는 공통점 외에는 학문 분야도 다르고, 자신이 속해 있는 이념적 방향도 달라서, 같은 기준 위에서 뭔가를 분석한다는 것은 우스꽝스럽고 또 균질적이지 않은 분석 결과를 줄 것이다. 만약 가설을 세워본다면, 마르크스든 케인스든 전쟁으로 뭔가를 해결하는 방식을 전혀 배제하지는 않은 남성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남성학자들 중에서도 전쟁에 대한 공포 위에 자신들의 학문이나 예술을 세워놓은 사람들은 많다. 대표적으로는 유언을 대신한 마지막 저서로『문명의 질병』을 우리에게 남겨놓은 지그문트 프로이드가 그랬고, 생태소설의 길이자 평화소설의 원형을『반지의 제왕』으로 보여준 톨킨이 또한 그렇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경제학자 중에서, 전쟁을 통해서 혹은 대규모 토목사업을 통해서 뭔가 해결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 사람 혹은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 사람은 드물다. 우리 안을 들여다보고, 지나치게 큰 테제가 아닌 삶의 일상성에서 너무 멀어지지 않고 자신의 학문을 세운 사람들은 그렇게 많지 않은 것이다.
한국에서 내가 만났던 경제학자 중에서 ‘토건이 아닌 대안’에 대해 비록 이론의 출발점이나 정책의 결론은 다르더라도 대체적으로 동의했던 사람이 있었을까? 환경경제학과 같이 기본적으로 흐름이 같을 수밖에 없던 분야의 사람을 제외한다면 두 명 정도를 본 것 같다. 생태경제학의 주요 학파인 런던학파의 결론에 대해 가장 큰 관심을 보였던 사람은 연세대학교의 조하연 교수였고, 내가 전혀 생각해보지 못했던 방식으로 또 다른 가설을 제시했던 사람은 서울대학교의 이지순 교수였다. 이지순 교수는, “만약에 박정희가그때 압축성장과 같은 방식이 아니라, 생태적인 방식으로 한국 경제를 이끌었다면 우리는 고도 성장을 못했을까?”아마 좌파 비슷한 흐름이라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이런 얘기를 했더라면 큰 스캔들이 되었을 텐데, 그는 우리가 시행했던 자연에 대한 폭력적인 방식의 산업화에 대해‘다른 방식’이라는 가설을 가지고 있었다. 두 사람 모두 시카고 출신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기는 하다. 20세기 내내, 우리는 다른 가설을 가지고 있으면 그 결론도 당연히 다를 것이라는 식의 ‘학문의 당파성’에 붙들려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한쪽에서는 케인스와 케인스 아닌 것, 또 다른 한쪽에서는 하이에크와 하이에크 아닌 것, 그렇게 학파를 나누고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자본론』과『자본론』아닌 것, 그렇게 그 출발점부터 이론들을 나누고, 그것들은 서로 현실에서는 전혀 만날 수 없는 것처럼 여겼었다.
그러나 요즘은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잘 분석된 사회과학 혹은 경제학적 진단은, 그 출발이 각기 달랐지만 대체적으로 유사한 결론을 만들어낼 수 없는가? 물론 ‘마지막 순간’이라고 부르는 혁명이 발생할 것인가 발생하지 않을 것인가, 자본주의는 붕괴할 것인가 아니면 붕괴하지 않을 것인가와 같은 최종적이며 철학적인 해석이 같을 수는 없다. 그러나 분석 수준을 낮추어서, 노무현 시대의 ‘한국식 뉴딜’은 한국 경제에 긍정적이었는가? 여기에 대해서는 학파가 다르거나 이론이 다르더라도 유사한 결론이 나올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찬가지 방식으로, 지금 이명박 정부에서 운용하는 토건식 국민경제는 최소한 10년간 별다른 위기 없이 장기적 번영이 가능한 것인가? 이렇게 좁혀진 질문에서는 만약 그것이 잘 분석된 것이라면, 거의 유사한 결론이 나오지 않을까, 이런 생각들을 좀 해보게 되었다. 당연한 것이, 분석가나 이론가가 그냥 그 자체로 순수이론을 현실 경제로 바로 가지고 올 수는 없고, 여러 가지 많은 수정을 가하게 되고, 데이터에 대한 해석에도 연구자의 주관이 생각보다는 많이 들어가게 된다. 이른바 ‘캘리브레이션(calibration)’이라는 작업을 하게 되는데, 이 과정을 통해서 절대로 한 자리에 같이 설 수 없을 것같고, 한 테이블에 같이 앉을 수 없는 것 같은 논의들이 사실은 유사한 결론으로 가게 되는 것이고, 학제간 혹은 학파간 소통이 가능해지는 것이 아닐까? 만약 이러한 연구자의 주관적 해석과 방법론적 수정이 아예 불가능하다면, 세상에는 한 개의 학파 그리고 한 개의 경제이론만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아마 특수하고도 교조적인 경제학 이론이 아니라면, 지금의 한국 경제는 현재의 방식이라면 위기이고, 그 위기가 특별한 전환점이 없다면 10년 이상 갈 확률이 높다고 할 것이다. 케인스주의자든, 시카고의 시장을 중심으로 하는 학파이든, 아니면 마르크스주의자이든. 진단에 따른 대책에는 조금씩 차이가 있더라도 대체로 현상황에 대한 진단 자체가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만약 경제학이 심리학이라면, 청와대에서 원할 만한 얘기들을 하면 그만일 것이다. 그러나 집권자들에게 불행히도 대다수 경제학자들은 경제학이 심리 영역에 속한 학문이 아니라 과학에 속한 학문이라고 기꺼이 대답할 것이다. 이것은 좌파이거나 우파이거나 하는 그런 문제가 아니라 경제 현상 내부에 고유한 법칙이라는 것이—비록 경성(硬性) 과학이라고 부르는 자연과학의 법칙의 지위에는 가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말이다—경제학을 하나의 학으로 만들어주는 기반이었고, 그 전통은 1776년 애덤 스미스의『국부론』이 등장한 순간으로 올라간다. 대통령이 원하는 말을 그냥 해주는 것이 경제학이었다면, 사회과학으로서의 경제학이 이렇게 오랫동안 독자성을 가진 학문으로 버티지는 못했을 것이다. 경제학이 ‘경세제민’으로 불리던 시절 혹은 정치경제학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학문으로 등장하던 시절 이후로, 많은 경제학자들은 정책의 조언자가 되는 것으로 자신의 학술적 입장을 정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위정자가 듣고 싶어하는 말을 그냥 그대로 하지는 않는 것을 일종의 전통으로 유지했다. 그래서 경제학은 언제나 정치경제학이 라고 사람들이 종종 표현하는 것이다.
현재 한국에서 ‘탈토건’이라는 용어는 각각 다른 분야에서 출발한 많은사람들이 언젠가 한 번은 만나게 되는 이론적 사거리 같은 것이다. 나처럼 생태학에서 출발했거나 환경경제학에서 출발한 사람들은 조금 먼저 이 사거리에 도착했던 것 같다. 복지에서 출발한 사람들이 요즘은 복지예산과 토건예산의 충돌 속에서 이 사거리에 도착했고, 여성문제에서 출발한 연구자들도 이미 도착해 있다. 전통적인 케인스주의자들도 오래지 않아 이 사거리에 도착할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예상했었는데, 아마 정운찬 총리가 여러 가지로 길을 잃고 헤매는 바람에 늦어지는 것 같다. 그렇다면 시카고학파라고 불리기도 하는 시카고 출신들은? 이지순 교수의 경우처럼 그들 중 일부는 이미 사거리에 도착해 있고, 전경련이나 정부 연구원에 있는 사람들은 정신적으로는 이미 도착해 있지만 아직은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없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 같다. 나는 한국에서 경제학을 전공했거나 아니면 경제문제에 관심을 가졌던 사람들 상당수는 2010년에서 2011년 사이 ‘탈토건’이라는 이론의 사거리에서 한 번쯤은 서로 만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원래 이론이라는 것이 그러하다. 전혀 만날 것 같지 않지만, 유사한 결론과 유사한 개념으로 역사의 소용돌이 앞에서 다른 학파와 다른 접근들이 그렇게 때때로 만나게 된다. 물론 사교육이나 대학 개혁의 기본 방향 같은 것들에서 만날 확률이 그렇게 높아 보이지는 않지만, 정상적인 경제학자라면 탈토건의 사거리에서는 한 번쯤 만나게 된다. 한국에는 김광수경제연구소 그룹처럼 학파 바깥에서 경제현상을 분석하는 집단들도 있는데, 그 중에 일부는 벌써 탈토건 사거리에서 서로 만나고 있다. 내 생각에는, 그게 업자와 경제학자 사이의 차이일 것 같다. 부동산업자들은 자신의 산업 이익에 복무하지만, 많은 경제학자들은 업자와는 달리 학문에 복무한다. 때로 지나치게 어려운 레토릭으로 일반 국민들의 길을 잃게도 하지만, 정치에 복무하거나 업계에 복무하는 업자와는 다른 자신만의 길을 가지고 있고, 그래서 사람들은 그들을 경제학자라고 부르는 것 같다. 그러나 탈토건이라는 사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쳤다고 해서, 이 사람들의 진단과 방향이 모두 같을 필요는 없고, 그럴 수도없을 것이다. 그게 학문이다. 만났다 헤어지고, 그게 학자의 삶이다. 이론은 늘 그렇게 변하고, 진단은 유동적이고, 정책은 상대적이다.
자, 그렇다면 이제 이렇게 탈토건의 사거리에서 우리가 헤어지면 언제 다시 만나게 될까? 내 짐작이 맞다면, 한국에서 양심과 존엄성을 가지고 있는 경제학자라면 ‘빈곤’이라는 또 다른 사거리에서 우리는 다시 마주칠 것 같다. 우리 모두는 한때는 빈곤에서 출발한, 세계 최빈국 중의 하나였던 나라에서 자신의 삶을 시작한 사람들이다. 아직은 적은 봄을 만난 데 불과한 젊은이라면, 최소한 그들의 부모는 어린 시절 많은 봄을 가난과 함께 최빈국의 나라에서 보냈을 것이다. 그리고 그와는 조금 다른 양상의 빈곤을 이제 우리가 다시 만나게 된다. 이론적으로 일본은 조금 먼저 이 빈곤이론을 만났다. 우리보다 1인당 GDP가 여전히 두 배가량 되는 나라이지만, 그들 안에서도 예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색다른 빈곤을 만났고, 우리는 그것을 ‘신빈곤’이라고 부른다. 이론적으로는 일본보다 약간 늦었지만, 현실의 전개과정은 한국이 훨씬 빠른 듯하다.
물론 그 누구도 한국인들이 ‘빈곤의 덫’에 빠지거나 좌절하게 되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어떤 경제학자나 혹은 어떤 정치인도, 이 흐름을 멈추게 하거나 최소한 완화시키기 위한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권위나 권능을 가지고 있지 못한 것 같다. 생각해보면, 세계적으로도 위기가 이번이 처음이 아니고, 또 한국이 부딪힌 위기도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아마 인류가 멸망의 위기에 가장 가까이 갔던 것은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때였고, 실제로 그때 우리는 핵전쟁 바로 코앞까지 갔던 것 아닌가? 언제 다시 신냉전의 시대가 올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미·소가 일촉즉발의 위기까지 갔던 냉전시대는 끝이 났다. 위기는 매번 불안하고 위태롭고, 그 해결책이 오히려 더 큰 새로운 위기를 만들어내는 레모니 스니켓의 ‘불행 시리즈’의 구조에 더 가깝다. 당장 우리만 보더라도 IMF 경제위기를 극복한다고 도입한 여러가지 장치나 제도들이 단기 위기를 오히려 장기 위기 그리고 구조적 위기로 바꾸어버린 불행의 역사가 있지 않은가?
아마 당분간은 한국 특유의 토건으로 인한 문제를 다시 토건으로 풀기 위한 조치들이 간헐적이지만 지속적으로 취해질 것이고, 이는 마치 ‘자기강화형 시스템’처럼 더 많은 빈곤현상을 일으킬 것이다. 그 과정을 막아줄 수 있는 권능을 가진 사회 원로나 제3의 중재자 같은 것은 한국에 없다. 그건 당연하지 않은가? 선진국이 되어간다는 것은, 국민들이 스스로 많은 것을 지역 차원이든 자치 차원이든 코뮌을 형성하면서 자체적으로 결정한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우리는 토건을 정지시킬 그런 국민적 주체도 가지고 있지 않다. 21세기로 넘어오면서 우리는 ‘절차적 민주주의’라는 개념 하나를 가지고 왔고, ‘누가 누구를 위해서’같은 주체에 대한 질문은 우리가 혐오했던 한국의 과거라는 20세기를 쓰레기통 삼아 던져버리고 온 것 아닌가? 정작 해체시켜야 할 것은 지나친 국가주의로 인한 중앙형 시스템 같은 압축성장의 토건형 경제구조였는데, 우리가 21세기를 환상적으로 바라보면서 해체시켜버린 것은 주체로서의 국민, 사회의 주체 그 자체가 아니던가? 지식인이면서 동시에 주체로서의 대학생을 우리는 더 이상 사회적 주체로 인식하지 않고, 그들을 ‘20대 소비자’라는 식으로 소비자로서의 격만 부여한 것 같다. 고전적인 의미에서 사회적 주체가 21세기에도 여전히 유효한 것인가, 아니면 그들이 스스로 역사 속에서 걸어나와 우리 앞에 등장할 것인가? 국민경제 내에서는 안과 바깥이 별도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딜레마에 부딪히게 된다. 우리 모두 소비자이고 생산자이면서 동시에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기도 하다. 주체로서의 격을 잃어버린 역사 바깥으로 튕겨져 나온 듯한 흐름 속의 미아들, 그것을 정치권에서는 여당이나 야당이나, 모두 해체되어 권위와 권능을 잃어버린 이탈적 존재로서 ‘서민’이라고 부르는 것 같다. 서민경제는 토건경제를 작동시키는 또 다른 비밀코드이며, 주체로서의 국민을 서민이라고 부르는 그런 국민경제의 역사는 전세계적으로 21세기의 대한민국밖에는 없다. 서민은 주체가 아니고, 그들은 이 흐름을 전도시키거나 수정할 힘을 가지고 있지 않다. 실제로는, 그렇게 하라고 한나라당에서 국민들을 자꾸 ‘서민들’이라고 부르는 것 아닌가? 국민은 무서워도, 서민은 무섭지 않다. 그게 존재론적인 서민경제의 실체 아닌가?
상황이 이러니, 대다수 국민들은 한 명 한 명씩 ‘신빈곤’의 광야로 끌려나와 그야말로 ‘회중’을 형성할 것이다. 교회에서는 이들을 출애굽의 전설에 따라‘나온 자’라고 불렀고, 마르크스는 Lump, 즉 덩어리를 형성한 자들이라는 의미에서‘룸펜’이라고 불렀다. 그 룸펜프롤레타리아트의 시대가 21세기의 첫 10년을 지나고 다시 한국에 돌아오고 있고, 일부는 이를 ‘위태로운’이라는 형용사인 precarious와 접목시켜‘프레카리아트(precarriat)’라고 부르기도 한다. 20~30대를 중심으로 상황을 본다면‘프리터(freeter)’현상이 될 것이고, 세대의 특징을 해소한 채 노동형태의 눈으로만 본다면 ‘워킹 푸어’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노동빈곤계층, 아무리 일해도 가난을 벗어날 수 없는 지금의 구조에 이제 진행되기 시작한 ‘디버블링(debubbling)’과 함께 하우스 푸어가 등장했다. 각자 처해진 상황과 양상에 따라서 다른 변주와 다른 양상을 가지겠지만, ‘국민일반 가난시대’라고 할 수 있는‘신빈곤의 시대’에서 한국의 민중들은 서로 만나게 될 것이다. 서민이든 중산층이든 노동계층이든 대체로 경제적 안정성이라는 관점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게 되는 대중 평등의 시대에, 우리가 20세기에 던져놓고 온 민중들이 다시 돌아오는셈이다. 물론 주체로서의 민중이 과연 21세기라는 강을 넘어서 우리 앞에 돌아오게 될지는, 그건 역사가 남겨놓은 숙제이고 미스터리일 것이다.
그러니 경제학자들이 다음에 만나게 될 이론적 사거리는 빈곤이 아닐 수 없다. 대중들이 빈곤의 광야에서 길을 잃고 있는데, 학자들만 혼자서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그런 나라는 없다. 결국 탈토건에서 한번 만났던 이 이론적 흐름이 결국은 신빈곤에서 다시 한번 만나게 되지 않을까? 그게 내가 생각하는 정상적인 사회와 학자 사이의 관계이고, 현실과 이론 사이의 관계이다. 그것은 정치경제학일 수도 있고, 생태경제학일 수도 있고, 지역학일 수도 있고, 정통 수리경제학일 수도 있는데 아직 한국에는 학자적 양심을 버리지 않은 좋은 학자들이 많이 있다고 본다. 그러나 앞으로 당분간 한국에서 경제학이든 아니면 사회과학이든, 빈곤현상을 빼고 한국 경제에 대해 논하는 것은 불가능한 순간이 올 것이다.
이 책의 부제에서 나는 ‘정치경제학’이라는, 21세기라는 시간에서 토건경제와 공사주의(工事主義)에 익숙한 많은 사람들이 껄끄러워할 게 분명한 제목을 집어들었다. 경제학의 연구대상은 재화와 서비스의 재생산, 경제적 주체의 재생산 그리고 마지막으로 경제제도의 재생산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19세기의 정치경제학이 상품의 재생산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면, 나는 생명의 재생산 즉 사람과 사람 아닌 것들이 어떻게 국민경제라는 틀 내에서 재생산되며 경제로부터 영향을 받고, 다시 경제계에 영향을 주는지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즉, 나는 ‘생식’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경제학도인 셈이다. 토건과 빈곤 그리고 생식의 문제는 국민경제 내에서 그리고 국토생태 내에서 아주 긴밀하고도 은밀한 변증법을 형성한다. 생태와 빈곤이 한국 자본주의라는 매우 특수한 국민경제 내에서 빚어내는 현상황은, 여전히 경제학은 곧 정치경제학이라는 고전적 테마로 향하게 만드는 것 같다.
나 혼자서 ‘경제 대장정’이라고 부르는 12권의 시리즈는 4권의 책으로 구성되는 세 개의 작은 시리즈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은 그 중의 제7권에 해당하며, 생태경제학 시리즈로는 셋째권에 해당한다. 전체적으로도 하일라이트에 해당하고, 개인적으로도 내가 지금까지 했던 공부들을 2010년의 한국경제라는 특수 상황에 맞춘 채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서 노력했던 책이기도 하다. 아직은 대정정을 끝내기 위해서 갈 길이 좀더 남았는데, 지금까지 이 길을 도와준 많은 분들에게 이 기회를 빌어서 잠시 감사를 드리고 싶다.
이 책을 계기로 나에게 작은 소망이 있다면, 『정치경제학 원리(Principles of Political Economy)』에서 보여진 존 스튜어트 밀이라는 아주 매력 넘치는 학자의 경제적 영감에 대해서 한국의 독자들이 한번쯤 만날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다. 전쟁 없는 사회, 소녀들이 노동과정에서 착취당하지 않는 경제, 그리고 여성들이 참정권을 가지고 투표할 수 있는 정치, 그렇게 존 스튜어트밀이 가졌던 로망은 19세기의 양심일지도 모른다. 생산과 전쟁의 시대였던 20세기 내내 밀의 정치경제학은 망각되었지만, 신빈곤의 시대로 가면서 우리는 다시 한번 이 오래된 사상가의 낭만적이면서 매력적인 사유를 만나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2011년 2월, 우석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