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계의 두 고수가 만났다. 한겨레 '책과 지성' 팀장으로 인문사회 도서를 꾸준히 소개해온 고명섭 기자와 '로쟈의 저공비행'이란 블로그로 강호를 평정한 로쟈 이현우. 알라딘은 고명섭 기자의 서평집 <즐거운 지식> 출간을 기회로, 꼭 함께 보고 싶었던 둘을 한자리에서 만났다. 오프라인과 온라인의 최고수가 만났으니 불꽃이 튈 만하다. 당대 최고의 '책꾼'들이 풀어내는 이야기는 책에서 서평으로, 다시 앎에서 삶으로 이어지며 듣는 이의 머리와 가슴에 횃불을 놓았다. 오늘 그 끝없을 이야기의 실마리를 풀어본다.                                                                 
                                                                  (인터뷰 진행 및 정리: 알라딘 인문MD 박태근)

 

 

책의 바다를 항해하라!

사회 : 오늘 책의 달인 두 분을 함께 모시고 이야기를 나누게 되어 무척 반갑고 즐겁습니다. 특히 고명섭 선생님께서는 이번에 <즐거운 지식>이란 서평집을 출간하셨지요. 축하드립니다. 오늘은 책의 세세한 내용보다는 책을 둘러싼 다양한 이야기를 함께 나누면 어떨까 합니다. 우선 고명섭 선생님께서는 <담론의 발견>에 이어 이번 <즐거운 지식>에서도 독서를 항해에 비유하셨는데요. 그 까닭이 궁금합니다.

고명섭 : <담론의 발견> 때 왜 서문을 그렇게 썼는지는 사실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데, 노이라트의 배가 그때 내 마음을 잘 보여주는 것 같아서 그러지 않았을까 싶어요. 대양 한가운데서 배가 고장 났는데 되돌아갈 곳도 의지할 곳도 없고, 오직 배 안에서 부품이든 도구든 찾아 고칠 수밖에 없다는 대목이 마음에 확 와 닿았지요. 그렇게 우리는 전망을 찾기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다는 이야기로 들렸고요. 돌아보면 그 시절에 앎을 향한 도전을 항해에 비유하는 말들이 심심찮게 있었는데, 니체 텍스트가 유행을 하는 것과 관련이 있지 않나 싶어요. 이번 책에서는 지난번에 이어 자연스레 항해라는 비유를 쓴 듯하고요.

사회 : 이현우 선생님께서는 <즐거운 지식>에 추천사를 써주셨는데요. 여기에서 고명섭 선생님을 ‘일등 항해사’라 부르셨습니다. 선생님 책인 <책을 읽을 자유>에서는 ‘지의 항해사’라는 호칭도 나오는데요.

이현우 : 서문에서 항해가 나오길래, 왠지 기대하셨을 듯해서요. (웃음) 또 마침 그때 <모비딕>을 읽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자연스레 그런 이미지가 떠올랐어요. ‘지의 항해사’는 편집자가 붙인 문구고요. 비평고원에 있는 제 게시판 이름도 ‘책의 바다’거든요, 이것 역시 제가 만든 건 아니지만 그런 표현을 자주 쓰게 되네요.

사회 : 저는 이런 비유가 익숙하면서도, 뭔가 어긋난 느낌을 받았거든요. ‘항해’라는 건 지금 우리가 하는 행위라기보다는 고전적인 느낌이 강한데, 독서라는 행위는 근대적 경험의 측면이 있으니까요.

이현우 : 그러니까 올드하다는 이야기인 거죠? (웃음)

사회 : 어떤 영화에서처럼 클래식하다고 해두겠습니다. (웃음)

고명섭 : 사실 맞는 지적이에요. 처음에 그 표현을 쓸 때 이게 올드냐 클래식이냐 걱정을 좀 했거든요. 저는 항해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어렸을 적 본 영화 <모비 딕>이에요. 그레고리 펙이 주연했죠. 그리고 말론 브랜도가 출연한 <바운티호의 반란>(1962)이 기억에 강하게 남아 있는데, 세 번 정도 본 듯해요. 선상 반란으로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망망대해에 갇힌 존재, 이런 이미지가 있어요. 옛날 얘기라는 말이지요.
  변명을 좀 하자면 역시 책은 옛날 책이 좋고, 책 이야기를 예스럽게 해 보자, 정도로 이해해주시면 어떨까 합니다. 사실 제가 심리적으로는 반근대주의자예요. 현대성에 반감이 많습니다. 그래서 기계식 동력기관이 출현하기 이전 세상이 좋았다는 생각이 있어요. 예를 들면 배도 풍력으로 가는 배가 좋고 터빈을 돌려서 가는 배는 배라고 생각을 안 하거든요. 정리하면 올드패션이지만, 저는 이게 정서적으로 좋고 편하다는 말이지요.

이현우 : 항해에 대해 조금 심층적인 이유를 말씀해주셨는데, 저는 항해보다는 ‘책의 바다’라는 말. 너무 많고 망망대해를 보는 듯 막연하고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가야 할지 궁금하기도 하고 두렵기도 한, 그런 이미지를 보존하려다보니 항해나 항해사 이미지가 따라붙게 된 게 아닐까 싶어요. 근대에 반대하거나 이런 이유는 아니고요. (웃음)

고명섭 : 저는 전근대주의자 혹은 반근대주의자적인 태도가 있는데 그간 공표를 하지 못하고 살았어요. 반동으로 몰릴까봐서요.(웃음) 그런데 마르크스주의가 망가지고 나서 여러 대안담론이 다시 소개됐잖아요. 예를 들면 아나키즘을 이야기할 때 중세의 도시, 근대 이전의 살을 모델로 삼기도 하거든요. 라다크처럼 말이죠. 이렇게 ‘과거가 사실 미래’라는 담론들이 나오는 상황이다 보니, 전근대주의자라고 얘기해도 예전처럼 이상하게 보지는 않는 것 같기도 하고요.
  

 



어디에 어떻게 쓸 것인가 하는 문제

사회 : 고명섭 선생님께서 쓰시는 서평은 신문지상에 공개되는 게 전제인데 블로그에 올리는 서평과 다른 지점들이 무엇일까요? 또 사적 서평이라는 지점에서 혹 남몰래 조용히 하고 계신 블로그가 있나요?

고명섭 : 공적 지면과 사적 지면의 차이에 대한 질문 같은데요. 이번 책은 제가 공적 지면에 쓴 걸 묶은 건데 사적 지면에 비해 뻣뻣한 기준이 적용되고 주장에도 엄격한 제한이 있어요. 물론 정확하고 엄밀한 글쓰기 훈련을 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요. 그 제한에 대해 더 얘기하면, 제가 기자생활이 18년인데 그 절반 정도가 책 기사 쓰는 일이었어요. 지면이 공적이라는 건 뭐냐면, 제 개인적인 관심사를 무조건 반영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 주에 신문사에 배달된 책을 대상으로 해야 하고 그 중에 여러 사정상 꼭 원하는 책이 아니어도 써야 하는 경우가 자주 있으니까요.

일동 : 그런데 거의 원하시는 것만 쓰시는 것 같은데요? (웃음)

고명섭 : 독자들이 그렇게 볼지 모르겠는데, 사실 자기 설득 작업을 거치는 거예요. 이 책이야말로 내가 진정 원하는 책이다, 이렇게 자기 최면을 걸고 기사를 쓰죠.

사회 : 그래도 고명섭 이미지와 딱 맞는 책만 쓰시는 듯하거든요. 이런 책도 쓰나 싶은 책은 거의 없었던 것 같은데요.

고명섭 : 사실 거슬러 올라가면 온갖 종류의 책을 다 다뤘어요. 어린이 책부터 자기계발서까지요. <담론의 발견>에서는 ‘담론성’을 담고 있는 것만 골라서 낸 거지요. 제가 책팀장을 몇 년 했는데, 팀원들이 전부 선배예요. 팀장은 잡일도 있고 팀원도 배려해야 하거든요. 기사 쓰는 시간이 줄 수밖에 없어요. 그러니 선배들에게 지면을 내주는 거예요. 그러다보면 제가 딱딱한 걸 맡게 되는 거죠. 이렇게 하다보면 이게 자연스레 자기 일이 되는 겁니다. 지면이 문학, 청소년, 실용 모두 따로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딱딱한 분야를 맡게 되는 거죠.

이현우 : 의도하지 않은 이미지란 말씀인 거죠?

고명섭 : 네, 그러다보니 매우 딱딱하고 엄숙하고 어두운 이미지로 저를 생각하더군요. 사실 저는 유머를 즐기는 사람인데 어느 날 돌아보니 어둡고 무거운 이미지를 갖게 된 거죠. 공부를 할 기회를 얻는다는 장점도 있지만 대중성을 잃어 손해를 본 점도 있습니다. 독자 폭이 협소해진 면이 있거든요. 물론 좋다는 분도 있지만. 

사회 : 이현우 선생님께서는 어떠신가요. 워낙에 다양한 매체에서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계셔서 각각 감각이 다를 듯한데요.

이현우 : 공적지면, 사적지면 차이는 아니고 매체의 차이인데요. 인터넷도 완전히 사적인 공간은 아니고 절반은 공적인 공간이라고 봐야겠지요. 그래도 상대적으로 자유롭고, 돈 받고 쓰는 게 아니니까  구속을 덜 받는 장점은 있어요. 지면에 대해 생각했을 때 제가 보기에 오히려 중요한 건 분량이고요. 분량 맞추는 게 제약이라면 제약인데 다른 한편 재미이기도 해요. 쓰기 싫을 때는 안도감도 있죠. 여기까지면 쓰면 된다는 게 있으니까요. (웃음) 기본적으로는 제약인데 제가 적응하다보니까 이제는 긴 글을 쓰는 데는 적응이 안 되더군요.

사회 : 고명섭 선생님께서는 서평이 아니라 ‘기사’라는 표현을 쓰시는데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고명섭 : 공적인 지면에 쓰다 보면 객관성, 공정성을 늘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주관적인 의견을 드러내는 걸 의식적으로 절제하는 편입니다. 기사의 성패는 절제에 있다고 생각하고요. 신문의 책 소개 기사들은 인상비평이거나 독후감이어서는 곤란합니다. 평론가나 칼럼니스트의 글은 주관성에 호소하더라도 최소한의 근거만 있다면 문제될 게 없지요. 그런데 기자는 사태를 정확히 전달하는 게 우선입니다. 사태의 핵심, 본질이 무엇인지 정확히 포착해서 사진을 찍듯 전달하는 게 기자의 역할이니까요. 사회부 기자가 화재 사건을 취재할 때 불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났다, 이런 걸 알리잖아요. 마찬가지로 이 책은 어떤 책이다, 라는 사실 자체를 잘 전달하는 게 1차 임무죠. 가능하면, 주관성이 개입할 여지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개인적 논평을 자제하려 하고 서평이라는 말도 안 쓰려고 하는 거예요. 서평이라기보다는 책이라는 사건의 전말을 전달해준다는 의미에서 리뷰기사나 책 소개 기사라는 말을 쓰고 있지요.

사회 : 이현우 선생님께서는 <한겨레>에 ‘로쟈의 번역서 읽기’를 연재하시죠? 이건 당연히 기사가 아니라 서평이겠죠?

이현우 : 그것도 평까지 가는 건 아니에요. 분량 상 그렇게 쓰기는 어렵거든요.

고명섭 : 그렇죠. 분량 때문에 깊이 들어가지는 않지만 그래도 본인의 취향을 가지고 쓰시잖아요? 저는 그런 부분을 자제하려는 거고요. 그걸 딱딱하게만 전달하면 읽기 어려우니까 양념을 넣기는 하지만 그래도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는 태도가 있는 거죠.

이현우 : 고명섭 선생님께서는 서평기사 쓰실 때 ‘지은이는 이렇게 말한다’라는 표현을 많이 쓰시는데 거기서 안정감을 느끼시나요? 일종의 전달자 역할에 머무는 듯한데요.

고명섭 : 예. 전달자로서의 역할에 그친다는 거죠. 기사 쓰기는 논평 욕구와의 싸움이에요. 내가 동의할 수 없는 것을 그대로 전달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물론 그 경우에도 앞뒤 맥락을 살피면 내가 동의하지 못한다는 것을 독자들이 알 수는 있지만, 그래도 그대로 전해주면서 논평을 안 하는 거죠. 독자의 판단에 맡기는 겁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책 기사는 기자의 주관적인 의견이 드러나야 한다고 말하는데, 저는 팀원들에게 가능하면 주관적인 생각으로 논평하지 않는 게 좋겠다는 원칙을 주문했습니다. 어떤 책을 소개하기로 선택하는 것이 이미 하나의 논평이니까요.

이현우 : 선택과 기사 크기 자체도 논평이라는 말씀이죠?

고명섭 : 그렇죠. 그걸로 이미 주관적 판단이 되었으니 책 내용을 객관적으로 전달하면 그걸로 된 거다, 독자들이 알아서 판단한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왜 그러냐면 기자들보다 독자들이 더 똑똑하거든요. 기자들이 종종 자신들이 똑똑하다고 생각하고 독자를 가르치려고 하는데, 이게 한국 저널리즘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가르치려는 태도를 버리고 책을 통해 뭘 배웠는지를 쓰면 되거든요. 그러면 기사가 정갈해지고 내용도 더 깔끔해지고, 독자를 속일 일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너무나 많은 기자들이 독자를 속여요. 책을 쓴 사람, 만든 사람, 그 분야 전문가들은 다 알고 있죠. 물론 제 주문에 대해 반발도 많았지요. 그러면 독자들이 읽지 않는다고. (웃음)
 



자신의 서평에 대해 생각하다

사회 : 이렇게 서평에 대한 두 분의 차이가 드러나는 것 같네요.

이현우 : 직업차이인 것 같은데요. 직업적으로 서평을 쓰게 되면 고명섭 선생님처럼 더 많은 책임과 부담감이 있는데 저는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편이고 사람들이 기대하는 바도 다르지요. 기자라면 객관성에 대한 요구에 있는데 사람들이 저에게는 그런 요구까지 하는 것 같지 같습니다. 저도 만일 기자라는 타이틀이 붙으면 한 번 더 신중하게 읽고 써야겠지만 ‘인터넷서평꾼’에게는 약간의 면책특권 같은 것이 주어지는 듯해요.

고명섭 : 아이러니한 것은 기사에 대한 반응이 오는 경우는 대개 기사에 하자가 있을 때거든요. 바로 이메일로 항의가 오지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옵니다. 그래서 하자 없는 공사, 혼이 담긴 시공, 이게 제 모토예요. 그게 목표다 보니 반응이 별로 없습니다. 반응이 많아야 좋은 글이라 하는데 저는 반응이 없는 글을 쓰는 게 목표에요. 이런 얘기는 처음 들어보시죠? 이현우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사회 : 이현우 선생님의 경우는 반응이 바로 오지요? 강호의 한가운데에서 활동을 하시니까요.

이현우 : 제 경우는 오히려 반응이 없으면 문제가 없는 게 아닌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웃음) 그런데 궁금한 건 객관적인 것을 쓰시다 보면 분명 하지 못한 주관적인 말들이 있을 텐데, 이걸 따로 기록해 두시나요?

고명섭 : 아니오, 안 합니다. 목표는 하자 없는 시공인데 마음에 드는 기사는 적습니다. 실패했다고 생각하는 기사가 대부분이고 아닌 경우는 열에 하나, 둘 있을까 말까인데요. 최근에는 이현우 선생님께서 번역하신 <폭력이란 무엇인가>가 만족스러웠던 경우예요.

이현우 : <즐거운 지식>에서도 지젝을 맨 앞에 두셨죠.

고명섭 : 네, 그런데 이렇게 마음에 드는 경우는 정말 드뭅니다. 항상 제 기사가 너무 부실하고 문제가 많다는 생각을 하거든요. 자괴감을 느끼는 경우도 있는데 내용을 더 쉽게 풀어쓸 수 없을 때가 그렇습니다. 본인의 능력이 모자란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지요. 수도 없이 많은 예 중 하나가 지젝이 셸링에 대해 쓴 책을 소개한 기사였는데요, 처음에는 제가 할 수 있을 줄 알았거든요. 한번 용기를 내서 써 봤는데 정말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기사를 쓴 후에 실패했다고 느꼈는데, 결국 이번 책에도 편집자가 넣지 않은 것 같아요. 편집자 역시 너무 어렵거나 문제가 많은 글이라고 생각한 것 같아요.

사회 : 본인의 능력이라 말씀하셨지만 사실 마감 시간도 중요한 원인이겠죠?

고명섭 : 예, 시간도 작용하고 지면도 작용하지요. 사전 공부의 양도 작용하고요. 이 세 가지가 좌우합니다. 지면이 좀 넉넉하면 사례를 넣어 쉽게 풀 수도 있는데, 그걸 못해서 압축하다 보니 안 되는 경우도 있지요. 마감시간의 경우는 마지노선이 금요일 오후 4시예요. 오후 1~2시 정도가 되면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하죠.

이현우 : 2시간이면 굉장히 빨리 쓰시네요.

고명섭 : 그렇게 마감에 쫓기면 페이스를 잃고 힘들 때도 있지요. 아까 공적지면과 사적지면 얘기가 나왔는데, 저는 블로그를 전혀 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기사에 집중하기 위함이기도 하고, 성격적으로도 한 번에 여러 가지를 못하기 때문이기도 해요. 또 트위터나 블로그도 다른 사람들이 찾아올 테니 순수하게 사적인 공간은 아닐 테고, 여기에 글을 쓴다고 해도 결국 기사 쓰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느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현우 : 그러지 않으셔도 제가 기사를 많이 옮겨 놓아서 괜찮을 겁니다. (웃음)

고명섭 : 그러게요. 저공비행을 통해 보는 독자가 더 많을 것 같네요. ‘인터넷 한겨레’에 들어와서 보시는 분들보다요. (웃음)

사회 : 이현우 선생님께서는 최근에 방송대 TV에 출연하셨죠? 다채로운 매체에서 활동을 하시는데, 특별히 가리지 않으시는 듯합니다.

이현우 : 저는 원고청탁도 거절을 잘 못해요. 유일하게 거절했던 기억이 KBS에서 카이스트 학생들 자살사태에 대해 토론해달라는 거였는데 저와는 안 맞는 것 같다고 생각해서 사양했지요. 그거 이외에는 청탁을 거절 한 기억이 많지 않아요. 책을 많이 읽는 문화를 만들기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하자는 생각입니다.

사회 : 활동 공간 가운데 어디가 가장 편하세요?

이현우 : 물론 집에서 블로그 하는 게 가장 편하죠. 서평 쓰는 것도 괜찮은 일인데 항상 마감이 지나서 쓰거든요. 마감만 아니면 책을 더 살펴볼 수 있는데 마감이 지나면 못 그러거든요. 그래서 매번 애를 먹이게 되는 편집자들에게 미안하기도 해요. 정리하면 서평 쓰는 일은 좋아하는 일이기는 한데 약간 민폐도 끼친다는 거죠. 가장 좋아하는 건 저 혼자 글 쓰는 건데 요즘은 아쉽게도 그럴 여유가 별로 없네요.

고명섭 : 저도 마감이 세상에서 가장 괴로운 일이더라고요. 저는 그래서 처음부터 청탁을 받지 않습니다. 열에 아홉은 거부합니다. 하도 거부했더니 이젠 아예 청탁이 들어오지도 않아요. (웃음)

이현우 : 월간 <인물과사상>에 쓰시잖아요.

고명섭 : 그건 제가 쓰겠다고 한거죠.

이현우 : 청탁을 넣으신 거군요.

고명섭 : 예, 그렇죠. 그런데 그래놓고도 2년이 넘게 준비하느라 시작이 늦었어요.  

 



윤봉길의 벤또처럼, 책을 세상에 던지다

사회 : 이현우 선생님께서는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글을 많이 쓰셨잖아요. 논란을 예상하면서도 굳이 그런 글을 쓰시는 거죠?

이현우 : 예상까지 한 건 아니고요, 예상 밖으로 논란이 생긴 경우가 있었지요. 서평의 경우는 아니고 오역 문제였는데, 사실 제가 번역한 <폭력이란 무엇인가>에도 오역이 조금 있어요. 쇄를 더 찍을 때 수정을 해야 합니다. 표현에 문제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론서나 철학서는 많이 나가는 책이 아니라서 한 번 나오고 끝나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런데 이게 교정되지 않고 남는 건 독자와 저자 모두에게 손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달랑 정오표만 올려놓으면 재미도 없고 해서 오역을 지적할 땐 동기부여 차원에서 ‘내러티브’를 부여하는데 이런 게 필화 사건이 된 경우도 있지요.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한 경우도 있고요. ‘당신이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의 오역을 보게 될 것이다’라고 한마디 적었다가 강서경찰서에 가서 조사를 받았어요. 나중에 학위증명서도 검사실에 팩스로 보내고 했었죠. 작년에 강유원씨 공역서 관련으로 문제가 된 일도 기억이 나네요. 의외였거든요. 신뢰받는 출판사에서 그렇게 책이 나왔다는 게 놀랍기도 하고요. 그 이전에는 주로 지젝 책 관련한 이야기들이 있었고요.

사회 : 대개 학자 사회에서는 알고도 모른 척 넘어가는 게 상례 아닌가요?

이현우 : 저는 이게 품앗이라고 생각해요. 요즘은 번역비평학회 일도 하고 있는데, 사람들을 만나 보면 자기 전공 분야에 대해서는 어떤 책에 무슨 문제가 있다는 걸 대개 알아요. 그런데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는 경우는 많지 않아요. 한국사회의 안면 문제도 있고요. 그런데 각자 알고 있지만 사회적으로는 공유되지 않는 지식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어요. 교정되지 않는 지식, 이건 지적 냉소주의라고 생각해요. 이런 문화는 바뀌어야 한다고 보고요. 그 과정에서 불편하고 불쾌한 일들이 있더라도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좀 나아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언젠가 한 이론서의 역자를 만났는데 저 때문에 한 번 더 보게 된다는 말을 들었어요. 책잡히지 않기 위해서 말이죠. 이런 것도 저 나름대로는 기여라고 생각되네요.

고명섭 : 앞서 말씀해주신 맥락에서 한겨레 지면에서도 ‘로쟈의 번역서 읽기’를 해보면 좋겠다고 이야기가 나온 거죠.

이현우 : 아, 그것 때문이었나요? 요즘은 거의 소설만 쓰고 있는데요.

고명섭 : 얼마 전에도 특종 하나 하셨죠. <안나 카레니나>.
 
이현우 : 그것도 필화사건이죠.

고명섭 : 그걸 최재봉 선배가 다시 기사로 썼는데, 일종의 칼럼 특종이죠.

이현우 : 들은 이야기로는 기사거리가 없어서 쓰셨다는 이야기도 있던데요. (웃음) 그 이후로 문학동네 블로그가 꽤나 시끄러웠어요.

사회 : 고명섭 선생님께서는 쓴소리를 잘 안 하시죠?

고명섭 : 쓴소리요? 저는 책 기사 쓸 때 기본적인 태도가 쓴소리를 할 책은 쓰지를 말자예요. 일주일에 책팀에 300여 종의 책이 오면 1차로 걸러서 5, 60종이 회의실 탁자에 올라오거든요. 문제가 많은 책은 아예 회의실에 들어오지 못하고, 혹 거르지 못하고 채택된 책도 나중에 읽다가 문제가 발견되면 다른 책으로 바꾸기도 해요. 어쩔 수 없는 경우에만 쓴소리를 하는데, 가능하면 그런 책은 쓰지 말자는 게 기본 입장이에요. 이진경씨 표현인데, 마르크스가 고전파 경제학의 하자를 알고 있었지만 리카도의 노동가치설의 약점을 보완해가면서 읽어서 이것을 완성시켰다, 란 평가가 있어요. 이처럼 책을 읽어서 내가 완성시키면서 읽자, 이런 태도도 있어요. 좋은 내용이기 때문에 배우는데, 약간의 부족한 부분은 내가 보충해가면서 읽자는 태도가 있어서 쓴소리를 안 하게 되는 거죠. 가능하면 장점을 찾아보려고 애를 써요.  쓴소리를 싫어해서 그런 건 아니고요.

사회 : 그럼 책에 대한 ‘화’를 어떻게 다스리십니까?

고명섭 : 기사를 쓰고 나서 출판사에 전화해서 이런 식으로 책 만들지 말라고 화를 낸 적도 여러 번 있어요. 기억 나는 사례가 20세기 좌익 혁명가 평전인데요. 출전 주를 다 빼고 출간을 한 거예요. 그래서 기사는 쓰고 나중에 출판사에 전화해서 따졌죠. 예전 같으면 왜 출전 주를 삭제했는지 기사에서 비판했을 텐데, 요즘 제 태도는 그런 말은 쓰지 말자예요. 그 인물 이야기를 예로 들면, 이데올로기나 제국주의와의 관계를 이야기해주는 것이 더 중요하고 급한 거예요. 좁은 지면에 그 이야기만 해도 부족한 거죠. 이야기를 다 쓰고도 지면이 남았으면 출전 주 이야기를 했을지도 몰라요. 한국사회라는 시공간에서 이 책이 어떤 의미가 있는가, 어떤 문제를 던지는가를 앞세우다 보니까 못 한 거죠. 이를테면 책을 사회를 비판하는 무기로 삼는 거예요. 제가 가끔 ‘벤또’라는 비유를 쓰는데, 윤봉길 의사가 훙커우 공원에서 제국주의, 식민주의를 향해 던졌던 벤또 있지요, 책을 벤또 삼아 이 사회를 향해서 던지자는 거지요. 그래서 책이 벤또 모양이다, 이렇게 생각해요. (웃음) 저자나 편집자를 대신해서 신문을 통해서 벤또를 던져주는 거죠.

이현우 : 꼭 ‘벤또’여야 하는 거죠?

고명섭 : 네, 도시락이라고 하면 맛이 안 납니다. (웃음)

이현우 : 일종의 책-벤또론이군요.

고명섭 : 이 벤또를 던지는 게 급하거든요. 벤또로서 제 기능을 하는 정도면 일단 던질 필요가 있는 거예요. 모양에 조금 문제가 있거나 맛에 문제가 있는 건 다음 문제라는 거죠.

 

 


내가 읽는 책, 내가 읽고 쓰는 책

사회 : 제가 인문사회 출판사 분들을 만날 때 이 책은 이현우 선생님께서 추천을 해주시겠구나, 고명섭 기자가 한겨레에서 서평을 쓰겠구나 하는 이야기를 하거든요. 두 분께서 요즘 벤또의 주재료로 삼는 주제가 있을까요?

고명섭 : 이 책의 배열이 그런 건데요. 우선 성능 좋은, 화력이 좋은 벤또를 던진 거죠. 지젝-벤또 같은 거요. 세상을 바꿔보려는 생각이 충만한 책들에 우선 관심을 보이는 거고요. 그 다음에는 유장한 호흡으로, 답이 안 보이는 시대에 훗날을 길게 보는, 카렌 암스트롱 식으로 말하면 ‘축의 시대’로 돌아가서 그 시대에 현자들이 고민했던 이야기를 다시 보는 거죠. 그중에서도 제가 관심을 두는 부분은 정치사상, 정치철학 쪽이에요. 그러다 보니 그런 책들이 눈에 빨리 띄겠지요.

이현우 : 저는 조금 잡다한데. 블로그를 하다 보니 제가 개인적으로 관심 있는 책 말고도 그 책에 대한 정보나 서평이 공유되면 좋겠다 싶은 걸 많이 다루거든요. 블로그에 기사를 스크랩해두지만 정작 제가 관심을 덜 갖는 책도 있거든요. 그래도 이런 책이 나왔다는 사실 정도만 알아도 좋겠다 싶을 때가 있는 거죠. 책이란 건 읽으면 좋겠지만 시간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다수가 읽는 게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에요. 내가 지금 못 읽어도 우리 중에 누군가는 읽는다는 사실. 커다란 독서공동체 비슷한 걸 생각하는 거지요. 한 개인이 할 수 있는 건 한계가 분명하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제가 문학 전공이다 보니 철학이건 문학이건 생각을 자극하거나 충격을 주는 책들이 좋아요, 통념을 뒤집어보는 도전적인 책이요. 이런 게 철학이나 이론서가 갖는 강점이죠. 독서공동체 관점에서 생각해보면 너무 어려운 책을 눈높이에 적절하게 맞춰주는 부분도 중요하죠. 블로그에서 이런 작업을 해왔어요. 지젝을 재미나게 같이 읽을 수 있도록 미끼를 던지는 일 같은 거요. 서평도 그런 중개의 역할이고요. 책을 당장 읽지 않을 사람에게도 책의 정보나 중심 맥락, 흥밋거리를 던져줄 수 있으니까요. 나중에라도 관심 가질 수 있겠죠. 그런 기능이 있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더 하고 싶은 일은 사실 서평보다는 비평 쪽인데, 이게 만족도가 더 높아요. 서평은 분량이 제한적이고 자기 주관을 드러낼 여지가 적으니까요. 조금 여유를 두고 진행할 생각이에요.

사회 : 고명섭 선생님께서는 서평집으로는 두 번째인데요. <지식의 발견>은 서평보다는 비평의 맥락에 닿아 있는 책이죠?

고명섭 : 네, 꼭 그런 건 아니고요. <지식의 발견>은 2003년~2005년에 월간 <인물과 사상>에 연재했는데, 신문 책면의 기사 분량이 제한돼 있다 보니까, 매번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못하고, ‘이만 총총’인 거예요. 하나의 책, 하나의 주제를 가능하면 충분히 써보고 싶었지요. 그래서 <인물과 사상>에 제안을 해서 연재를 했죠. 50매 분량을 쓰니까 처음에는 좀 힘들더라고요. 나중에는 익숙해져서 75매 분량을 썼는데, 여기에서도 기본 태도는 책 기사 쓸 때와 별 차이가 없었어요. 다만 제 목소리를 조금 더 넣고, 책 내용이나 저자 주장의 단순 전달로 그칠 게 아니라 내용에 개입해서 전달하자는 태도가 있었죠. 주제를 정확하게 전달하려고 노력했어요. 책 하나로 부족하다 싶으면 다른 책을 엮어서 쓰기도 했고요. 처음부터 뚜렷하게 의도한 건 아닌데, 연재를 해 가면서 국내 저자의 책, 현실과의 접점이 넓은 책을 소개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국내 저자의 현실 발언을 담론 차원에서 다루는 책이 된 거죠. 근본적으로는 <즐거운 지식>과 차이가 없다고 봐요. 단지 분량과 주제 전달 방식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는 거지요.

사회 : 최근 부서를 옮기셔서 이전에 정기적으로 쓰시던 서평 지면이 없어졌는데요. 여유가 생기실 테니 <지식의 발견> 같은 시도를 다시 해볼 생각은 없으신가요?

고명섭 : 시간이 된다면 하면 좋겠는데, 저는 항상 시간이 없더라고요. 나만 그런가 모르겠지만….

이현우 : 다 그래요. 물어보면 시간 있다는 사람이 없어요. (웃음)

사회 : 정기적인 지면에 글을 쓰실 계획은 없으신가요?

고명섭 : 현재로서는 지금 연재하고 있는 니체를 빨리 마무리하는 데에 집중하고 싶어요.

사회 : 이현우 선생님께서는 지젝 연재를 마무리하셨죠?

이현우 : 네, 연재는 마쳤고 <실재의 사막> 번역 출간을 타진해보고 있는데 좀 늦어진다고 하네요. 다시 번역을 하게 된다면 연재 내용도 거기에 맞춰서 출간을 준비해야겠지요. 여름까지는 정리를 해볼까 싶어요. 그리고 지젝 해설서를 하나 더 쓸 텐데요. 이번에는 <시차적 관점> 읽기입니다.

고명섭 : <자음과 모음>에 연재하신 지젝 해설은 읽어보지 못했는데요.

이현우 : 책으로 나오면 읽어보시죠.
 

 



좋은 서평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가능한가

사회 : 서평 혹은 리뷰라는 말이 흔해졌지요. 많은 분들이 블로그에 쓰고 계시고요. 많은 독자분들께서 두 분께 가장 궁금해 하는 부분이 좋은 서평이 무엇이고 어떻게 쓸 수 있느냐 하는 건데요.

고명섭 : 저는 네 가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우선 사전지식이 필요합니다. 두 번째는 성실성, 세 번째 정직성, 마지막이 글쓰기 훈련인데요. 어떤 책에 대한 서평을 잘 쓰려면 그 책 하나만 잘 읽어서는 부족하고요. 그 책을 둘러싼 지식을 사전에 읽고 공부가 되어 있어야만 그 책의 가치를 정확하게 포착해서 전해줄 수가 있거든요. 신문기자의 경우는 언제 어떤 책이 나올지 모르기 때문에 항상 방어적 자세를 갖춰야 해요. 어떤 책이 나오든 이미 알고 있었던 것처럼 쓰려면 그 분야에 대해서 항상 생각을 하고 있어야 해요. 다음으로 좋은 리뷰를 쓰려면 성실하게 책을 읽어야 해요. 주마간산으로 읽으면 리뷰도 그렇게 겉핥기밖에 안 됩니다. 성실하게 읽을수록 좋은 글이 나와요. 크루즈 미사일이 지면 위에 붙어 날아가듯 책의 지면에 최대한 가까이 밀착해서 읽어야 해요. 주파 혹은 독파라고 표현할 수 있는데 이게 성실성이에요. 정직성이란 것은 내가 아는 만큼 이야기한다는 거예요. 아무리 성실하게 읽어도 내가 그 분야에 대한 지식이나 고민이 부족하면 딱 그 만큼밖에 이야기할 수 없거든요. 내가 느낀 만큼, 배운 만큼, 깨달은 만큼 이야기한다는 거예요. 책에 대한 예의 같은 거죠. 이런 걸 다 하면서도 개성 있고 문장이 깔끔하고 산뜻하고 신선하면 좋겠죠. 문체까지 자기만의 분위기가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고요.

이현우 : 말씀해주신 건 일반 독자를 위한 서평 쓰기보다는 좋은 서평 기자가 되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대개 이해가 가는데, 성실성은 어렵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감 시간에 쫓기면서 크루즈 미사일처럼 읽어내실 수 있나요?

고명섭 : 그래서 고통인데요. 두 가지 고통이 있어요. <담론의 발견>에서 플라타너스 잎사귀만한 지면에 글을 쓰는 게 매번 고통이고 도전이었다고 쓴 적이 있어요. 우선 지면에 응축해서 쓰는 거 자체가 괴로움인데요. 그보다 괴로운 건 마감을 앞두고 책을 독파하지 못하는 거예요. 그래서 하는 데까지 해보자는 거죠. 예를 들어 <시차적 관점> 소개 기사를 쓰는데 이건 도저히 물리적으로 다 읽어낼 재간이 없는 거죠.

이현우 : 아까 ‘독파’라고 하셨는데, 그러니까 결국 할 수 있는 데까지 하면 되는 거죠? (웃음)

고명섭 : 네, 그렇죠. <폭력이란 무엇인가> 같은 책은 다 읽을 수가 있으니까요.

이현우 : 300쪽 이내 책은 독파하고, 그 이상은 하는 데까지. (웃음)

고명섭 : 제가 왜 이걸 강조하느냐면, 너무나 많은 기자들이 책을 안 읽고 써요.

이현우 : 예전에는 보도자료 읽고 쓰면 됐는데 요즘에는 보도자료가 온라인서점에 그대로 공개되니까 기자들이 더 힘들어진 거 같아요. 특히 짧은 기사들이요. 3매 기사 이런 걸 쓰는 데 다 읽고 쓰는 기자는 거의 없을 듯하거든요.

사회 : 이현우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좋은 서평은 어떤 걸까요?

이현우 : 저는 좋은 서평의 조건보다는 효과 면에서 말씀을 드릴게요. 저는 어떤 책을 안 읽도록 설득해주는 서평이 제일 좋아요. 돈과 시간을 절약하게 하거든요. 별 하나짜리 서평을 설득력 있게 쓰는 거죠. 본인은 불만이겠지만 다른 많은 이들에게는 유익하니까요. 별 다섯 개짜리 서평보다 오히려 하나짜리 좋은 서평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아마존에서 서평을 볼 때 별 하나짜리와 다섯 개짜리를 보는데, 하나짜리도 짧은 거는 특별히 새길 게 없어요. 그런데 길게 차근차근 왜 이 책이 별 하나인가를 알려주는 서평은 좋은 글이라고 생각해요. 그 다음으로 좋은 서평이라면 이 책을 꼭 읽어야 한다고 설득하는 서평. 돈과 시간을 요구하는 서평이죠. (웃음) 사서 꽂아두기라고 해야겠다는 마음을 부추기는 글 말이에요. 세 번째는 잘 정리해주는 서평인데, 살 수도 있고 안 살 수도 있지만 읽은 척할 수 있게 해주는 서평이죠. 어디 가서 한 마디 던질 수 있는 서평이요. 고명섭 선생님께서 이런 서평을 많이 써주시죠.

고명섭 : 저도 그 세 번째 기사를 쓰려는 노력을 많이 하죠. 그래서 제 기사를 보고 참 좋다는 사람들이 많아요. 책을 사서 볼 필요가 없다는 거죠. (웃음) 기사를 읽고 나면 책을 한 권 다 읽은 듯한 느낌이라는 거예요. 바로 그걸 노린 거죠. 어떻게 하면 그런 기사를 쓸 것인가 고민하거든요.

이현우 : 출판사들이 좋아하지 않을 것 같은데요. (웃음)

고명섭 : 맞아요, 그래서 기사를 쓰면 출판사들이 아주 싫어한다는 거예요. (웃음)

이현우 : 저는 가급적이면 출판사 매출을 올려주려고 써요. 안 좋은 평을 쓸 때도 말이지요. 출판사들이 문을 닫으면 곤란하니까.

고명섭 : 논란이 될 때가 책한테는 가장 좋죠. 혹평이든 호평이든 말이죠.

 

 


내가 책을 읽는 방법

사회 : 이번 주에 에코의 <책의 우주>가 나왔는데. 에코의 장서가 5만 권정도 된다고 하더군요. 지인들이 찾아와서 다 읽은 거냐고 자주 묻는다고 해요. 그럼 에코는 다음 주부터 읽을 책들이다, 고 대답을 하고, 책을 언제 읽느냐고 물으면, 자기는 글을 쓰는 사람이라 책을 읽을 시간이 없다고 유쾌하게 대답을 한다고 합니다. ‘글을 쓰는’ 두 분께서는 책을 얼마나 많이 읽고 사시는지요.

고명섭 : 에코가 매주 칼럼을 쓰는데요. 그렇게 20년 넘게 매주 칼럼을 쓸 수 있다는 게 무척 부럽더라고요. 가벼움이 부러워요. 저는 너무 무거워서 문제인 거 같아요. 저는 출판 담당할 때 기준으로 보면 정독으로 한 달에 대여섯 권 정도 되는 듯해요. 발췌독이나 읽다가 덮어두는 책들은 조금 더 많고요. 그런데 돌아보면 정독한 책만 남는다, 사실 정독한 책도 안 남는다, 정독이라도 해야 남을 가능성이 조금 있다, 이런 생각이 들어요. 저는 책에 밑줄을 그으면서 읽는데, 발췌독의 경우는 나중에 그 책을 보면 밑줄은 수도 없이 있는데 읽은 기억이 전혀 없는 거예요.

이현우 : 저는 책의 용도가 다르다고 생각해요. 종류에 따라 다른 독서법인 거죠. 문학 전공이다 보니 느리게 천천히 자세히 읽는 걸 훈련받았고 그런 걸 좋아해요. 시집을 한 시간에 다 읽었다, 이런 건 별 의미는 없잖아요. 잘 읽기 위해서 쓴다는 관점에서 ‘자기화’하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이게 제가 좋아하는 독서이고 권장하는 독서인데, 시간의 한계 때문에 이렇게만 읽을 수는 없다는 거죠. 때로는 속독을 필요로 하는 책들도 있거든요. 최근 원자력 관련 책들이 많이 나오는데 깊이 있는 독서를 필요로 하는 책은 많지 않거든요. 시사적인 책들의 경우에는 빨리 읽으면서 필요한 내용을 습득하는 독서를 요구하기도 하죠.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고요. 그에 반해 정독을 요구하는 책은 다시 읽는 걸 요구하죠. 두 번, 세 번 말이죠. 문학 강의를 하다 보니까 어떤 책은 매 학기, 일 년에 두세 번 이상 읽는데 그래도 재미있는 건 그때마다 작품에 대한 생각이나 이해가 달라지고 추가되고 교정된다는 거죠.
  피에르 바야르의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에 동의하는 부분이 굉장히 많았어요. 그 책에서 <특성없는 남자>에 나오는 도서관 사서를 예로 드는데, 모든 책을 읽기 위해서 한 권의 책도 읽지 않기로 선택한 자기희생 정신이 투철한 사서예요. 사서가 책에 몰입해 읽게 되면 자기 역할을 다 할 수가 없는 거죠. 서평가도 부분적으로 그런 운명을 갖고 있지 않나 싶어요. 그러니까 정독하면 좋겠지만 한 권의 책을 정독하기 위해서 열 권의 책을 거들떠 볼 수도 없는 경우도 있고, 거꾸로 열 권의 책을 보기 위해서 책을 정독하면 안 되는 처지도 있죠. 전자가 더 나은 운명이긴 하죠. 그런데 이런 경우는 소수일 듯하고요. 후자의 역할도 필요하다는 생각이에요.

고명섭 : 정보로서의 책 읽기가 있는데, 우리는 보통 교양으로서의 책 읽기를 말하거든요. 문사철이죠. 당연히 이 경우에는 정독이 좋은 듯하고, 정보로서의 책 읽기는 빨리 찾아가서 포착하는 게 필요하죠. 저는 실용서나 자기계발서도 많이 보는 편인데, 자기계발서도 내 것으로 소화하려면 정독이 필요하거든요. 역시 생각의 힘을 기르는, 내적인 삶을 풍요롭게 하는 차원에서의 책 읽기는 천천히 저작하듯이 읽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을 합니다. 이야기가 너무 공식적이군요. (웃음)

사회 : 그럼 저도 공식질문을 하겠습니다. (웃음) 알라딘 인터뷰의 마지막 질문인데요. 서점이다 보니 추천 도서를 부탁드립니다.

고명섭 : 얼마 전에 아는 분하고 이야기를 하는데, 최근에 의미 깊게 읽은 책으로 김용규 선생의 <서양문명을 읽는 코드, 신> 그리고 <축의 시대>를 말씀하시던데요. 저는 여기에 더해서 김영사에서 나온 조철수 선생의 <예수 평전>을 함께 읽으면 더욱 좋을 거라고 얘기했습니다. 요즘 제가 개인적으로 관심을 두는 분야이기도 해서, 이 세 책을 함께 읽어 보면 ‘잃어버린 신’에 대해서 지적으로 풍요롭게 고민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게 ‘공식적인’ 생각입니다.

사회 : 이현우 선생님께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추천해주고 계시지만, 그래도 부탁을 드립니다.

이현우 : 읽은 책이라고 하면, 요즘 강의 때문에 읽은 책밖에 없어서. <러시아 문화에 관한 담론>이란 책이 최근 나왔는데, 전공서처럼 되어 있지만 사실 교양서거든요. 서양 중세에 대한 이야기는 사람들이 좀 읽는데 다른 문화권에 대해서는 잘 읽지 않는 것 같아요. 그리스나 중세 문화는 교양서이고 러시아나 일본에 대한 책은 학술서로 분류가 되거든요. 관심의 폭을 넓힐 필요가 있어요. 형평에 맞게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에요.

고명섭 : 아까 책-벤또 이야기를 했지만, 이건 사회적 차원의 이야기고, 개인적, 실존적 차원에서 보자면 책은 도끼여야 합니다. 카프카가 대학시절 ‘책은 우리 정신의 두꺼운 얼음판을 깨뜨리는 도끼여야 한다’고 친구에게 말했지요. 그렇게 강력하게 우리 정신을 흔드는 책을 읽을 때 우리의 삶과 사고의 관습이 깨지고 창조적 카오스 상태를 거칠 수 있다고 봅니다. 니체는 ‘나는 피로 쓴 글만 믿는다.’라고 했는데, 피로 쓴 글, 피로 쓴 책만이 정신의 얼음판을 깨는 도끼 노릇을 할 수 있을 겁니다. 자기 혼을 바쳐서, 혼이 흔들리는 강렬함 속에서 쓴 책이 독자의 혼을 흔들고 깨울 수 있지 않을까요.  평소 제가 마음에 품고 다니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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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좋은 서평이란 무엇인가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11-05-15 12:58 
    지난달 언젠가 알라딘과 사계절출판사의 주선으로 <즐거운 지식>(사계절출판사, 2011)의 저자인 고명섭 기자와 대담을 나눈 바 있다. 알라딘 인문MD님의 대담을 정리해서 글을 올려주셨는데, '서평'에 관해 내가 몇 마디 거든 내용을발췌해놓는다.사회 : 이현우 선생님께서는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글을 많이 쓰셨잖아요. 논란을 예상하면서도 굳이 그런 글을 쓰시는 거죠?이현우 : 예상까지 한 건 아니고요, 예상 밖으로 논란이 생긴 경우가 있었지요. 서
  2. mm-area의 생각
    from mimoarea's me2day 2011-05-16 10:35 
    [인터뷰] 서평계의 두 고수, 고명섭 기자와 로쟈 이현우를 함께 만나다
 
 
루쉰P 2011-05-13 2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묵직한 인터뷰 내용이 도움이 많이 되네요. 좋아하는 두 분의 대담이라 그런지 제가 책을 읽을 때 도움도 많이 되구요. 알라딘 MD님도 고생하셨어요. ^^

인문MD 바갈라딘 2011-05-16 09:15   좋아요 0 | URL
그러고 보니 제 인터뷰도 늘 '묵직'해서 걱정이네요. 고명섭 기자처럼요. ^^ 좀더 자주, 가볍고 경쾌하게 찾아갈 수 있도록 노력해볼게요. 고맙습니다.

2011-05-16 12: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5-16 17: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룰루브이 2011-05-16 1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지식인을 알게 되었네요~~^^ 머리가 든든해지는 글 잘 읽었습니다.

인문MD 바갈라딘 2011-05-16 17:13   좋아요 0 | URL
네, 고명섭 기자의 강연회도 진행하니 살펴주세요. http://blog.aladin.co.kr/culture/4791733 고맙습니다.

ziyeoni 2011-05-18 0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 분 각각의 내공에 압도 당한 기분입니다. 긴 글은 끝까지 잘 안 읽게 되는데, 마지막까지 집중해서 읽었습니다. 가볍고 경쾌한 인터뷰도 기대하겠습니다 ^^

인문MD 바갈라딘 2011-05-18 09:26   좋아요 0 | URL
네, 고맙습니다. 그러나 다음 인터뷰도 만만치 않은 내공을 만나게 될 터라. 가볍고 경쾌한 거 하나 만들어야겠습니다, 정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