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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락 ㅣ 아르테 한국 소설선 작은책 시리즈
은모든 지음 / arte(아르테) / 2018년 12월
평점 :
때는 자율주행 차량이 상용화되고 돌봄 노동의 지극히 일부가 기계화된 근미래. "육체적, 정신적으로 지속적인 고통에서 벗어날 가망이 없는 상태, 삼 개월 이상의 숙려 기간, 자의에 의한 선택 등(47)"을 조건으로 안락사를 허용하는 법안이 국민 투표로 통과된다. 법이 통과된 후 임종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을 가족에게 밝히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화자 '지혜'의 할머니는 이미 발빠르게 임종 계획을 세워두었고 가족에게 찬성 투표를 독려하기도 했다. "원래 사람이 자기 살날 다 살면, 자기 죽을 날을 아는 거야. 병원 들어가서 장사 지내고 그러기 시작한 지 백 년도 안 됐는데 원(59)"이라면서.
기술적으로 이 소설은 작가의 다른 작품인 <모두 너와 이야기하고 싶어 해>보다 투박하다. 던지고자 하는 화두가 지나치게 선명하고 직선적이기 때문이다. 두 작품에는 공통적으로 어딘지 만사에 의욕 없어 보이는 화자와 그 주변에서 벌어지는 담백한 신파가 등장한다. 평범하고 익숙해서 기시감이 드는 그런 신파들. 아마 여기에서 호불호가 갈릴 것이다.
나는 이 소설에서 지혜가 할머니에게 가서 자두주를 담그는 방법을 배우는 장면이 가장 좋았다. 누군가와의 이별은 다시는 그 사람이 해주는 음식을 먹을 수 없는 일이 되기도 한다. 그러니까 그걸 배우느라 함께 보낸 시간, 레시피를 가르쳐준 사람이 부재하더라도 배운 걸 직접 만들어 먹을 수 있다는 감각, 떠난 사람을 기억하는 이들에게 내가 만든 걸 나눌 수 있다는 가능성이 분명 이별의 충격을 덜어줄 것이다.
내겐 늘 주위 사람들과의 이별을 셈해보는 버릇이 있다. 도망치고 싶은 것들에서 도망치지 못했던 10대에 대한 앙갚음이라도 하듯 20대를 내내 도망치는 데 썼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 만남과 이별 사이에는 때로 레시피 교환이 있었다.
그중 지금도 자주 해먹는 음식은 지우(Diu)라는 브라질 친구에게 배운 변형된 라따뚜이다. 커다란 냄비 가득 양파와 가지를 썰어넣고 토마토 퓨레와 다진 마늘을 넣은 뒤 뭉근하게 끓이다가 칠리, 파프리카 가루, 바질, 오레가노, 소금, 후추 등 수중에 있는 온갖 향신료를 손어림으로 넣고 얼추 간이 맞으면 약불에서 잘 저어가며 마저 끓이면 된다. 우리는 이걸 크래커나 빵 위에 올려먹었고, 가끔은 덮밥으로도 먹었다. 지우는 브라질에, 나는 한국에 있고, 더는 페이스북으로도 연락하지 않지만 이 음식을 해먹을 때면 지금도 나는 우리가 함께 했던 시간들을 떠올린다.
(147) 할머니는 이 술은 꿀꺽 삼키는 게 아니라 입술을 넘어 혀끝을 적시듯 조금씩 맛보는 것이라고 했다. 그 말대로 잔을 살짝 기울여 입안에 소량의 술을 흘려 넣자 산뜻한 산미와 달콤한 기운이 입안 가득 퍼졌다. 목 넘김은 와인에 비하면 다소 묵직한 편이었으나 더 이상 소주의 독한 뒷맛이 입안에 남지 않았다. 숙성하면 맛이 달라진다는 말이 이런 뜻이었구나, 하면서 나는 다시 한번 술잔을 들었다.
자두주 아니라 뭐라도 마시고 싶어진다.
죽음에 지나치게 너른 선택이 주어져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죽음까지 선택의 문제가 되는 것도 암담할 뿐더러, 선택이란 게 오묘하고 얄궂은 것이라 선택을 하는 주체에게만 달린 것도 아니고, 그 자체로 불완전하고 가변적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모른다.
그러니 레시피를 나누자. 오해는 미리 풀고 사랑의 말은 그때그때 아낌없이 퍼붓자. 이삭이 지혜에게 다가오듯 그 다가오는 모양만으로도 저 사람이 나를 사랑하는구나 알 수 있는 방식으로. "환하게 웃는 얼굴로, 새치를 흩날리며 성큼성큼 걸어오는 그의 모습을 보며 내가 느낀 감정은 한마디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의 걸음걸이와 미소에 불확실한 지점은 하나도 없었다. 내내 풀리지 않던 어려운 문제에 대한 답을 허무할 정도로 쉽게 구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