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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 살아 있는 이들을 위한 열네 번의 인생 수업
미치 앨봄 지음, 공경희 옮김 / 살림 / 2017년 6월
평점 :
"삶과 죽음을 통해 인생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고민해 보게 한 책!"
이 책을 읽는 내내 두 인물이 떠올랐다. 한 명은 초등학교 은사님이고, 또 다른 한 명은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이라는 책의 주인공인 이어령 선생이었다.
저자인 미치 앨봄은 자신의 대학 시절 은사님이었던 모리 슈워츠 교수의 임종을 앞둔 서너 달 동안 함께 시간을 보내며 인생수업을 듣게 된다. 그리고 이 책은 모리 교수의 제안으로 쓰게 된 그들의 '마지막 논문'이자 모리 교수의 엄청난 치료비에 도움을 준 고마운 책이기도 하다.
모리 교수는 루게릭병을 앓고 있으면서도 다양한 사람들과의 만남을 가지며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들을 아낌없이 나눠준다. 서서히 몸이 마비되어 가고,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축소되어가는 상황에서도 좌절하거나 우울해하기보다 '오늘'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에 더 몰두한다.
총 26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저자 미치 앨봄이 화요일마다 노은사와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듣고 배운 인생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으로, 생명이 꺼져가는 상황 속에서도 제자와의 만남과 대화를 미루지 않았던 노은사 덕분에 탄생할 수 있었다.
수많은 날들을 경험한, 그리고 죽음을 앞두고 있는 모리 교수의 수업을 통해 살아있는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고, 또 어떤 마음가짐으로 오늘을 살아가면 좋은지에 대한 가르침을 한 수 배워보면 어떨까 한다.
진정한 스승이 많이 사라진 시대에서 발견한 보석 같은 이야기들이라 더 많이 마음에 담고, 또 기록으로 정리해 보려 노력했다.
미치처럼 영혼의 결핍을 느끼고 있는 상황이거나, 가족문제, 죽음, 두려움, 나이가 든다는 것, 결혼, 의미 있는 삶 등에 관심이 있다면 모리 교수가 전하는 이야기를 통해 다시 마음을 다잡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혹은 나를 진정으로 위해주고 아껴주었던 스승을 떠올려보는 시간을 가져봐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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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문화는 우리 인간들에게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도록 하네. 그러니 스스로 제대로 된 문화라는 생각이 들지 않으면 그것을 굳이 따르려고 애쓰지 말게."
(...)
"인생을 의미 있게 보내려면 자신을 사랑해 주는 사람들을 위해서 살아야 하네. 자기가 속한 공동체에 봉사하고 자신에게 생의 의미와 목적을 주는 일을 창조하는 것에 헌신해야 하네."
91~9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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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우리를 둘러싼 문화를 신경 쓰느라 정작 나 자신을 챙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모리 교수는 거부감이 들거나 자신에게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면 굳이 따르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다.
더불어 인생을 의미 있게 보내려면 타인의 '무엇', 외부의 '무엇'을 따르기보다 자신을 사랑해 주는 사람들을 위해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어쩌면 우리는 우리 주변부를 너무 신경 쓰느라 우리 가까이에 진짜 중요한 가치들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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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병을 앓으며 배운 가장 큰 것을 말해 줄까?"
(...)
"사랑을 나눠 주는 법과 사랑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는 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거야."
(...)
"사랑을 받아들이게. 우리 모두는 '나는 사랑받을 만한 자격이 없어.'라고 생각하지. 또 사랑을 받아들이면 너무 약한 사람이 될 거라고 생각해. 하지만 레빈이란 현명한 사람이 제대로 지적했네. '사랑이야말로 유일하게 이성적인 행동이다,'라고 말이야."
(...)
"미치, 그러니까 다음 화요일에 다시 온단 말이지."
그가 속삭였다.
104~10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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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 '사랑'만큼 중요하고 이성적인 행동은 없다고 말할 수 있는 건, 아마도 충분한 경험과 죽음을 앞둔 모리 교수이기에 할 수 있는 말이 아닐까 한다.
왜냐하면 진짜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는 눈 감는 순간이 되어서야 제대로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죽음을 앞둔 이들이 공통적으로 '사랑'을 더 주고받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는 것을 보면, 분명 이 말은 진실이다.
마지막에 모리 교수가 제자인 미치에게 다음 주에 또 만나는 거냐며 재확인하는 말에서 어쩐지 짠함과 귀여움이 동시에 느껴졌다. (나만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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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보이는 것을 믿을 수 없을 때에는 느껴지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여러분을 믿게 만들려면 여러분 역시 그들을 믿고 있음을 느껴야 합니다. 여러분이 어둠 속에 있을 때에나 뒤로 넘어지고 있을 때조차도 말입니다."
11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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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심장하게 다가왔던 두 문장이다. '눈에 보이는 것을 믿을 수 없을 때는 느껴지는 것을 믿어라',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나를 믿게 만들려면 나 역시 그들을 믿고 있음을 느껴야 한다.'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중요하고 또 중요한 가르침이 아닐까 한다. 내가 느끼는 감각, 스스로에 대한 확신과 믿음, 그리고 에너지 상호작용을 통해 우리는 한 발 한 발 앞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
이 모든 것을 행하려면, 일단 모든 감각을 열어두고 나 자신을 신뢰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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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게 되리라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정작 자신이 죽을 거라고는 아무도 믿질 않는단 말이야. 만약 그 사실을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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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은 왜 그리 어려울까요?"
(...)
"다들 잠든 채 걸어 다니는 것처럼 살고 있기 때문이지. 우린 세상을 충분히 경험하지 못하고 있어.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일을 기계적으로 하고, 반쯤은 졸면서 살고 있거든."
"그럼 죽음에 직면하면 모든 게 변하나요?"
"그래. 모든 거추장스러운 것들을 다 벗겨 내고 결국 핵심에 초점을 맞추게 되지. 자기가 죽게 되리라는 사실을 깨달으면 모든 일들이 아주 다르게 보인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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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죽어야 할지 배우게.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배우게 될 거야."
139~14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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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배우면 삶을 배우게 될 거라는 말에 동감한다. 현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특히 더 내일 우리의 모습을 예측하기 어렵다. 내가 언제 어떻게 될지 아무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럴 때일수록 더 불필요한 것들에서 벗어나 진짜 중요한 핵심 가치에 목적을 두고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나중에 후회가 없다.
그러니 죽음을 피하려고만 하지 말고, 나도 언젠가 죽을 수 있다는 점을 받아들이고 인정하자. 거기에서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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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들이 자신을 온전히 꿰뚫고 지나가게 하지 못한다면 겁이 나서 어쩔 줄 몰라 할 거야. 고통이 겁나고 슬픔이 두렵지. 또 사랑의 감정에 뒤따르는 약해지는 마음 때문에 겁이 나게 된다네."
(...)
"하지만 이런 감정들에 온전히 자신을 던져서 스스로 그 안에 빠져들도록 내버려두면, 그래서 온몸이 거기에 빠져들어 가게 되면 그때는 그 감정들을 제대로 경험할 수 있게 돼. 고통이란 게 뭔지를 알게 되는 거지.
(...)
그럼 그제야 이렇게 말할 수 있지. '좋아, 난 지금껏 그 감정을 충분히 느꼈어. 이젠 그 감정을 너무도 잘 알아. 그렇다면 이제 잠시 그 감정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겠군'이라고 말이야."
(...)
일상생활에서도 이런 태도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
수도꼭지를 틀어 놓고 감정으로 세수를 한다. 그렇게 하면 오히려 큰 도움이 되고 마음이 상하지 않는다. 두려움이 안으로 들어오게 내버려두고 그것을 늘 입는 셔츠처럼 입어 버리면 자신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좋아, 이건 그냥 두려움일 뿐이야. 요놈이 나를 좌우하게 내버려두지 않을 거야. 이 감정을 있는 그대로 보자고."
167~16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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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문장에 대해 이런 제목을 달아주고 싶다. '감정을 다스리는 법'이라고.
우리는 감정을 대체적으로 억누르거나 감추려고 노력한다. 슬픔, 기쁨, 우울, 불안 등 어떤 감정도 마찬가지다. 특히 부정적 감정들에 대해서는 더 감추려는 경향이 강한데 그럴 경우 감정을 경험해 보지도 않고 우리는 지레 겁을 먹게 된다.
하지만 맞닥뜨리고 온전히 그 감정에 푹 빠져보고 나면, 더 이상 겁을 먹거나 불안해할 필요가 없다. 대체적으로 모르는 것에 대해 사람은 불안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게 되면 '이제 그만 빠져나오자'는 생각을 하게 되고 그렇게 별것 아닌 일이 되어버린다. 스스로 감정 정리가 되는 것이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무조건 피하려고만 하지 말고, 감정 속에 푹 빠져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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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은 늙어 가는 것이 두렵지 않으셨어요?"
"미치, 난 나이 든다는 사실을 껴안는다네."
(...)
"아주 간단해, 사람은 성장하면서 점점 많은 것을 배우지. 스물두 살에 머물러 있다면 언제나 스물두 살만큼만 알게 될 거야. 나이 드는 것은 단순한 쇠락이 아니라 성장이야. 그것은 곧 죽게 되리라는 부정적인 사실, 그 이상이지. 그것은 죽게 될 거라는 것을 이해하고 그 덕분에 더욱 좋은 삶을 살게 되는 긍정적인 면도 가지고 있다네."
"하지만 나이 먹는 게 그렇게 귀중한 일이라면 왜 모두들 '아, 다시 젊은 시절로 돌아갔으면....'하고 말하는 걸까요?"
(...)
"그게 뭘 반영하는 것인지 아나? 인생이 불만족스럽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거야. 성취감 없는 인생, 의미를 찾지 못한 인생 말일세. 삶에서 의미를 찾았다면 더 이상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 하지 않아. 오히려 앞으로 나아가고 싶어 하지. 더 많은 것을 보고 더 많은 일을 하고 싶어 하게 돼. 아마 예순다섯 살이 되고 싶어 견딜 수 없을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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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와 같은 사람들 모두는 나이 먹는 것에 맞서 싸우면 언제나 불행해진다는 걸 알아야 해. 어쨌거나 결국 나이는 먹고 마는 것이거든."
185~18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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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먹어가는 것에 대한 가장 명쾌하고 현명한 답이 바로 이것이 아닐까 한다. 우리가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이유는 결국 미련이 남았거나 불만족스럽기에 가지는 생각이다.
하지만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현재와 과거 모두가 만족스럽다면 굳이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할 필요가 없다. 그렇기에 이들은 뒤를 돌아보기 보다 오히려 앞을 향해 나아가고자 한다.
이러나저러나 결국 먹게 되는 나이를 자꾸 탓하고 붙잡으려 하기보다 오늘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하는 게 더 현명한 태도가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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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하면 질투가 나지 않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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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치, 늙은 사람이 젊은이들을 질투하지 않는 건 불가능한 일이야. 하지만 자기가 누구인지 받아들이고 그 속에 흠뻑 빠져드는 게 더 중요해."
(...)
"살아가면서 현재 자신의 인생에 무엇이 좋고 진실하며 아름다운지를 발견해야 하네. 뒤돌아보면 경쟁심만 생기지. 하지만 나이는 경쟁할 만한 문제가 아니거든."
(...)
"사실 내 안에는 모든 나이가 다 있네. 난 세 살이기도 하고, 다섯 살이기도 하고, 서른일곱 살이기도 하고, 쉰 살이기도 해. 그 세월들을 다 거쳐 왔으니까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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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나이든 될 수 있다는 걸 생각해 보게. 지금 이 나이에 이르기까지 모든 나이가 다 내 안에 있다네. 이해가 되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다 거쳐 온 시절인데 자네가 있는 그 자리가 어떻게 부러울 수 있겠나?"
188~18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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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 나보다 어린 나이의 사람을 부러워할 때도 있었는데, 이 글을 읽고 난 후에는 단박에 굳이 그럴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가 거쳐온 수많은 날들이 다 내 안에 있는데, 굳이 남의 인생을 부러워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이제 내 인생에 더 충실하는 것으로 방향을 바꿔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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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말은 스스로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내야 한다는 뜻이네. (...) 어떻게 생각할지, 어떤 가치를 중요하게 여길지 등과 같이 커다란 줄기에 관한 것들에 대해서는 스스로 결정을 내려야 하네. 다른 사람이나 사회가 우리 대신 그런 사항을 결정하게 내버려두면 안 돼."
(...)
"모든 여자들이 날씬하지 않은 것이나 모든 남자들이 부자가 아닌 것도 마찬가지야. 그런 건 문화가 우리에게 중요하다고 강요한 것들일 뿐이야. 이들 역시도 절대로 믿지 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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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서로 비슷하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다는 게 문제라네. 백인과 흑인, 천주교 신자와 개신교 신자, 남자와 여자, 모두 다 똑같아. 서로 비슷하다는 점을 안다면 우리 모두는 이 세상의 인류라는 대가족에 합류하고 싶을 거야. 그래서 지금 우리가 가족을 돌보는 것처럼 인류라는 대가족을 서로 돌보고 싶어질 거야."
(...)
"우리가 아기로 삶을 시작할 때는 누군가 우릴 돌봐 줘야 생명을 유지할 수 있어. 그리고 나처럼 아파서 삶이 끝나 갈 무렵에도 누군가 돌봐 줘야 생명을 유지할 수 있어. 그렇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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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비밀이 있네. 아이 때와 죽어 갈 때 이외에도, 즉 살아가는 시간 내내 사실 우린 누군가가 필요하네."
229~23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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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기준과 가치에 따라 삶을 살아가는 게 아니라, 내 기준과 가치에 따라 삶을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문장이다.
더불어 우리 인류는 태어나서 죽는 날까지 서로가 필요하다는 말을 통해 연대와 도움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한 번 더 짚어준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로 뭉뚱그려 이야기할 때는 잘 와닿지 않던 부분이, 모리 교수의 말을 통해 들으니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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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 전에 자신을 용서하라. 그리고 다른 사람도 용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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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용서해야 할 사람은 타인만이 아니라네. 미치, 우린 자신도 용서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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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여러 가지 이유로 우리가 하지 않은 일들에 대해서 용서해야 하네. 했어야 하는데 하지 않은 일에 대해서 말이야. 일이 이러저러하게 되지 않았다고 자신을 탓할 수만은 없지. 나 같은 상황에 빠지면 그런 태도는 아무런 도움도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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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자기 자신과 주위의 모두와 화해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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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과 자신을 용서하게. 시간을 끌지 말게, 미치. 누구나 나처럼 이런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건 아니야. 누구나 다 이런 행운을 누리지는 못하지."
240~24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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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앞에서는 자책이나 미움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모리 교수의 말은, 실제 그런 상황에 놓여있는 사람의 말이기에 더 신뢰가 간다.
우리는 타인뿐만 아니라, 나 자신에 대해서도 인색한 면을 가지고 있다. 이제부터라도 나와 주위의 모든 것들과 화해하는 것으로 마음의 평온을 얻어보면 어떨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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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시간만 건강해진다면요."
"아침에 일어나서 운동을 하고 롤 케이크와 홍차로 멋진 아침 식사를 한 후에 수영하러 가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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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다음 산책을 나가겠어. 나무가 있는 정원으로 가서 여러 가지 나무도 보고 새도 구경하면서 오랫동안 보지 못한 자연에 파묻힐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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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에는 모두 레스토랑에 가서 스파게티를 먹고 싶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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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다음 나머지 저녁 시간 동안에는 춤을 추고 싶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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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나서 집에 와서 깊고 달콤한 잠을 자는 거야."
(...)
정말 소박했다. 너무도 평범했다. 사실 난 좀 실망했다.
(...)
생각해 낼 수 있는 온갖 이색적인 일을 말할 줄 알았다. 그런데 오랜 시간 누워서 한 발자국도 걷지 못한 끝에 어떻게 그렇게도 평범한 하루에서 완벽함을 찾을 수가 있을까?
그제야 비로소 깨달았다. 바로 그것이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임을.
254~25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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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는 시한부 삶을 살고 있다. 단지 그 기간이나 죽음에 이르게 되는 과정만 다를 뿐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똑같이 죽는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한한 삶을 사는 것처럼 하루를 보낸다. 그래서인지 시한부 인생이 자신에게 닥쳤을 때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에 대해 물으면 거창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싶다는 말을 서슴없이 꺼내고는 한다.
포인트는 바로 이것인데, 이런 이들 중에 하루하루를 제대로 사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그래서 평범한 하루가 얼마나 소중하고 중요한지 잘 모른다. 그렇기에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소박하고 평범한 하루가 모여 하루가 되고, 그 하루가 모여 한 달, 일 년이 된다. 그런 것들이 차곡차곡 쌓이다 보면 내가 만들어지고 내 삶이 완성되는 것이다.
저자는 모리 교수의 답에서 그것을 발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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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화요일마다 이루어진 모리 교수와의 수업을 통해 저자는 인생의 교훈을 얻게 된다. 가족의 의미와 인생의 중요한 가치, 결혼을 통한 결합,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주는 교훈 등 세상의 문화와 기준에 기대 살던 저자는 모리 교수와 함께 한 열네 번의 인생수업 덕분에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지게 된다.
덕분에 병으로 홀로 고통받고 있는 동생과 다시 소통할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고, 또 삼촌의 죽음으로 인해 지고 있던 마음의 상처도 회복할 수 있게 된다.
또 결혼은 했으나 일에 빠져 사느라 등한시하던 아내와도 관계를 다시 회복하게 되었고, 추후에는 아마 출산과 양육을 통해 더 많은 사랑을 나누며 살지 않을까 하는 예측까지 해볼 수 있다.
모리 교수의 인생 수업을 들으며 세상이 정해둔 방식으로 살기보다, 왜 사는지, 무엇 때문에 사는지를 제대로 고민해 볼 필요성을 느낀다.
또 제대로 살기 위해 죽어감의 의미를 되새겨볼 필요도 있음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이를 계기로 평소 내가 중요하다 생각했던 것들을 점검해 보면서 무의미한 것들에 매달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또 놓치고 있는 가치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를 살펴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