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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먼 것이 좋아 보이는가 - 우리 본성의 빛과 그림자를 찾아서, 윌리엄 해즐릿 에세이집
윌리엄 해즐릿 지음, 공진호 옮김 / 아티초크 / 2025년 2월
평점 :
처음 접해보는 작가의 글인데, 읽다 보니 통쾌함과 사이다를 들이켠 것 같은 매력적인 글귀에 금방 한 권을 뚝딱 읽게 되었다. 더불어 그를 왜 최고의 문장가요 에세이스트라고 소개하는지 알 수 있었다.
블로그를 운영하며 글을 쓰고, 책을 읽다 보니 때때로 권위나 여론, 대중을 명분으로 유혹의 손길을 뻗쳐오거나 반협박성의 말을 건네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럴 때마다 내가 한결같이 추구하는 건 '내 방식대로 가겠다'는 것이다.
이 작가도 비슷한 행보를 갔던 것으로 보이는데, 소개 글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그는 인간 심리의 묘한 깊이를 모색하고 세상사의 이치를 찾아내기를 좋아하며, 그 어떤 흔한 말이나 감동 뒤에 숨은 불명료한 원인들을 찾아내는 일에 누구보다 뛰어났다.
또 절대로 권위와 타협하지 않았고 여론을 존중한다는 명분으로 자신의 고유성과 개념을 버리거나 변형하지 않았다고 말이다.
총 7편의 인문 에세이로 구성된 이 책은 저자가 바라본 세상과 사람에 대한 행동력과 본성에 대해 통찰력을 가지고 서술한 글들로 채워져 있다.
'왜 그럴까?'라는 물음으로 시작해 깊이 파고드는 방식으로 서술하고 있는데, 그 속에는 휴머니즘과 사랑이 깃들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날카롭고 속 시원한 쾌감이 느껴져 독자로 하여금 절로 빠져들게 만든다. 7편 중 저자의 필력이 돋보이거나 공감 가는 문장을 중심으로 정리해 보았는데, 함께 감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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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윌리엄 해즐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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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해즐릿은 당대 최고의 문장가요 에세이스트였다. 그는 자유사상가이자 이단아였고, 반체제 운동의 열렬한 옹호자였다 그런 견해를 갖는 것은 위험한 시대였다.
해즐릿은 놀라운 분량의 문학 비평과 인간사에 대한 에세이를 남겼으며 그가 규정한 문학 비평론은 월터 페이터와 토머스 칼라일은 물론 현대의 비평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적극적인 지식인이었던 해즐릿은 문학 비평 이전에 정치와 사회 문제를 보도하고 해설하는 일을 했다.
해즐릿은 사회에 근본적 변혁이 필요하다는 신념을 죽을 때까지 조금도 굽히지 않다가 1830년 런던 소호의 허름한 하숙집에서 쓸쓸히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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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 들여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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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가의 노년에 관하여
1. 놀레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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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로한 국왕이 흉상을 위해 포즈를 취했을 때의 일이다. 한번은 놀레켄스가 윗입술에서 이마까지의 길이를 측정하려고 대리석 조각을 다루듯이 국왕의 얼굴에 컴퍼스를 갖다 댔는데 한쪽 끝이 콧구멍에 들어갈 뻔했다.
(...)
국왕은 다른 모든 사람과 자신을 가르는 방대한 감격을 모르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재미있어 했다.
놀레켄스는 충성심도 충성심이지만 그보다는 그 사람 자체를 좋아했으며 왕이라는 사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
놀레켄스는 점토를 다루듯이 왕을 다뤘으며, 자신의 일은 최고의 흉상을 만드는 것이고, 늘상 하던 대로 한다는 생각 말고는 대상에 대한 다른 관념은 없었다.
이 꾸밈없고 순진한 태도에는 그의 작품이 발하는 견고하고 무미건조한 느낌과 더불어 놀레켄스 특유의 수수한 태도를 실감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었다.
18~1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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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레켄스에 대해 서술한 장면들을 살펴보면, 이 미술가 또한 권력이나 아첨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저자 역시 그를 칭송하는 글을 남겼던 것이 아닐까?
2. 노스코트

토머스 고갱이 판화로 재현한 노스코트의 <켄타우로스 난파선) 178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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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스코트는 사람들과 함께 있어도 혼자 있는 것 같다고나 할까, 자신의 생각을 상대하고 있는 사람 같다. 국회의원이든 미인이든 어린아이든 젊은 미술가든 누가 그의 작업실에 들어와도 노스코트가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는 차별이 없다. 마치 함께 사는 가족의 일원처럼 자연스럽게 그들에게 말을 건다.
(...)
얼마 전에는 난파선에서 보트로 올라탄 사람들을 묘사한 그림을 마주 보며 "이건 내 그림들 중에서 스케일이 제일 크고 독창적이지!"라는 그의 말을 듣고 기분이 좋았던 적이 있다. 자만에서 나온 말이 아니었다. 그 말에는 진실과 순수의 아름다움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그 그림은 실로 구상이 훌륭하고 활기찼다.
3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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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스코트가 평소 사람을 대하는 태도나 작품 활동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저자는 노스코트의 말을 의심하거나 왜곡해서 보지 않았던 것 같다.
오히려 그가 내뱉은 말 너머의 진실을 발견하고, 순수하게 기뻐했다는 것을 보면 제대로 사람과 작품을 볼 줄 아는 사람이 아니었나 추측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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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다수 미술가들이 죽음보다는 가난을 두려워한다. 빈곤 속에서 인생을 시작해서 그런지 빈곤 속에서 끝마치리라는, 채무로 기소되지 않기 위해 죽는다는 생각이 그들을 따라다니며 괴롭힌다. 그렇지 않다면 그들은 "점괘를 무시하고" 더 오래 세상에 남아 있을지 모른다!
5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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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마인드와 태도를 지닌 미술가들이 가난으로 인해 안타깝게 죽음을 맞이한 것에 대한 저자의 심정이 담겨있는 문장이다.
역사를 살펴보면, 실제로 많은 미술가들이 작품의 진가를 알아보지 못한 대중과 시대상으로 인해, 결국 가난에 시달리다 목숨을 잃는 경우가 많았다.
그들이 조금만 덜 가난했다면, 아니면 지금처럼 작품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면 더 오래 세상에 남아 더 많은 작품들을 보여줄 수 있지 않았을까?
■왜 먼 것이 좋아 보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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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장소나 사물과는 달리 가까이 있거나 친할수록 더 호의적인 느낌을 준다는 말로 이 에세이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장소와 사물이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좋아 보이는 이유는 그것들을 비방하는 데는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은 공간적으로 가까워지고 잘 알게 될수록 그 사람에게 이롭다. 그 사람에 대해 여러 사람의 입을 거쳐 잘못 전해진 사실들을 걷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어떤 사람을 둘러싼 소문이나 상상은 실제로 만났을 때 그 사람에게 크게 실망할 정도로 그에 대한 우리의 평가를 높이 끌어올리지 않는다. 한편 편견과 악의는 언제나 결점을 실체보다 크게 과장한다. 우리가 실제로 아는 사람들은 거의 모두 아주 평범하다. 우리는 무지만으로도 그 사람들을 괴물이나 유령으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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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우리가 잘 아는 사람을 어지간해선 증오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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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민을 느끼는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우리가 품었던 부당한 경멸심은 산만해진다.
73~7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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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말한다. 먼 것이 더 좋아 보이는 건 비방하지 않는 대상에 국한해서라고. 이를테면 장소와 사물 같은 것들 말이다.
반면, 사람은 가까이 있거나 친할수록 더 호의적인 느낌을 준다고 전하며, 멀리 있을수록 실체보다 크게 과정 되거나 편견에 사로잡힐 수 있어 사람만큼은 가까이 두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실제로 우리 삶을 살펴보면, 뜬금없는 소문이나 왜곡된 시선이 먼 관계에서 더 멀리, 빠르게 퍼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실제로 그 사람을 가까이에서 지켜봤거나 아는 사람들은 면전에 대고 증오하거나 오해할 만한 말을 쉽게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결국 어떤 사람을 괴물이나 유령으로 만드는 것은 서로의 관계나 인식, 생각, 가치관이 '멀기' 때문이 아닐까?
■패션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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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은 외모 경쟁에서 앞서려거나 뒤떨어지지 않으려는 일반 대중과 소수 엘리트 집단 사이에서 벌어지는 끝없는 몸부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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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은 특이성과 보편화를 가장 싫어하지만 언제나 특이성으로 시작해서 보편화로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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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은 그 자체로는 대단한 게 아니다. 자신의 가장 큰 자랑거리와 장식으로서 패션에 의존하는 사람들의 어리석음과 허영일뿐, 패션은 아무런 상징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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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상함과 상스러움은 너무너무 가깝다. 그 간격은 백지 한 장 차이라고 할 수 있다. 고상함을 가장하는 태도가 많은 곳에 반드시 두 배로 많은 상스러움이 있다고 확신해도 좋다.
97~99, 11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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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패션의 아이콘'등과 같은 단어들이 우후죽순 생겨나며 '패션'을 한껏 추켜세우는 시대도 있었다. 그런데 요즘의 시대를 살펴보면, 패션은 그저 개인의 개성이자 선택이라는 인식이 더 강해졌다. 그만큼 노멀 해지고 평범해진 것이다.
그런 일련의 과정들을 겪고 난 뒤, 저자가 패션에 대해 서술한 내용들이 살펴보니 어쩐지 더 확 와닿는 느낌이다. 과거 패션이라는 단어에는 분명 거품이 끼어있었다. 그리고 그 속에는 분명 고상함을 가장한 상스러움이 함께 공존하고 있었다.
현재는 그 거품이 다 걷어지고 그저 '나'만 남았다. 그래서 더 편안하고 더 좋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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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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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찰력을 담은 글 치고 쉽게 다가오는 글이 잘 없는데, 이 책은 의외로 쉽게 다가온다. 줄 사이 간격이나, 글자 크기 등의 편집 부분을 포함해 문체 또한 시원시원해서 금방 페이지가 넘어간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또 내용이 가벼운 것은 아니라, 다 읽고 난 뒤에 허무함이 남는 일도 없다.
1778년 태생인 저자가 쓴 글임에도 200년이 지난 2025년인 현재 읽었을 때 전혀 위화감이 들지 않는다는 것을 보면, 여전히 사람의 속성은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는 일이라 어떤 면에서는 씁쓸함을 느끼기도 한다.
사람이 갖춰야 할 조건은 무엇이고, 우리가 사랑해야 할 것들은 무엇이며, 또 진정한 도덕적 용기란 무엇인지를 이 책을 통해 확인해 보면 어떨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