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널 살아 볼게 - 그림 그리는 여자, 노래하는 남자의 생활공감 동거 이야기
이만수.감명진 지음 / 고유명사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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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내가 만나 다른 듯, 닮은 듯한 우리로!"



요즘은 타인의 일상을 들여다보거나 들을 일이 잘 없는데, 이 책을 읽으며 모처럼 타인의 이야기를 엿볼 수 있었다. 그림 그리는 여자 '명진'과 노래하는 남자 '만수'가 만나 동거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책에는 소소한 일상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보통 동거 이야기나 남녀 연애 이야기라고 하면 사랑 이야기나 남녀의 차이에 대한 약간은 뻔하고 진부한 이야기들이 주를 이루는데, 이 책에서는 그런 이야기는 제외되고 담담하게 일상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어 오히려 더 시선이 간다.


일상의 습관, 너와 나의 차이(남녀의 차이가 아님), 함께 하며 닮아가는 점, 다른 관점 등을 각자의 시선으로 풀어놓고 있어 이것들을 구분하면서 보는 재미가 은근히 있다.


같은 것을 두고도 다른 것을 생각하고, 느끼는 너와 나. 하지만 함께 하기에 어느새 닮아가는 우리. 그것을 남녀로 구분하지 않고 너이기에, 나이기에 다르다고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모습에서 편안함이 느껴진다.



총 3장으로 구성된 이 책에는 같은 주제에 대한 만수와 명진의 다른 이야기를 함께 만나볼 수 있다. 여기에 더해 개성 넘치는 명진의 일러스트까지 더해져 재치 넘치는 상황들을 눈으로도 확인해 볼 수 있다.


소소하지만 다정다감한 이들의 일상 이야기를 통해 우리네 삶을 떠올려보는 시간을 가져봐도 좋겠다. '함께' 한다는 것이 무엇일까 문득 의문이 드는 순간이 있다면, 이들의 이야기에서 힌트를 얻어봐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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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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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인 이야기를 드러내기가 민망하고 어색한, 소심한 성격의 명진과 만수는 서로를 이해하고, 지나가는 순간들을 붙잡아 두고 싶어 하루하루를 기록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들은 처음 만난 날도, 처음 데이트 한 날도 기억하고 있는데 그림을 그리는 명진에게 몇 번 짜 쓰고 남은 고가의 물감을 전해준다는 핑계로 약속을 잡았고 그렇게 2012년 봄, 둘은 만났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은 함께 지내고 있다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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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자세히 들여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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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


<만수>

진이와 함께 살기 시작한 뒤로 산책은 우리가 즐겨 하는 데이트가 되었다. 소문난 커피집들을 찾아가고, 하릴없이 동네를 돌아다니며 길고양이 밥을 챙겨주는 재미가 쏠쏠하다. 같이 살게 되면서 함께 있는 시간은 늘었지만 같은 공간에서 각자 일하는 게 익숙해지면서 오히려 입을 꾹 다물고 말없이 지낼 때가 많았다. 산책은 그랬던 우리에게 '햇볕 따라가기' 같은 것이다.


<명진>

오빠와 함께한 시간이 깊어지면서 오빠 취향이 점점 내 것이 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산책이 그중 하나다. 이따금 오빠의 산책에 따라나서곤 했는데, 이제는 내가 먼저 산책을 다녀오자며 현관에서 오빠가 준비하길 기다리곤 한다.


사람은 변하기 어렵다고들 하는데 어쩌면 내가 변한 게 아니라 나조차 모르던 나의 취향을 오빠 덕분에 찾은 게 아닐까.



■키 생각


<만수>

그리 크지 않은 키로 진이를 안아줄 때마다 군 시절 내게 키를 떼주고 싶다던 후임 생각이 난다. 그렇게만 해준다면 지금이라도 너를 등에 업고 군 생활을 다시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키 생각을 하다가 이런 우스운 상상을 다 해본다.


<명진>

내 조카는 어느새 초등학교 3학년이 되었다. 만날 때마다 여전히 아가 같은 얼굴로 냉큼 달려와 안기는 나의 첫 조카. 이제는 내가 달려가 안겨야만 할 것처럼 키가 훌쩍 커버렸다. 나는 이제 작아질 일만 남았네 하는 생각에 금세 우울해진다.


하아. 그런 점에서 보면 오빠는 내게 꼭 맞춰 태어난 듯하다. 오빠 품에 안기면 언제나 심장 소리를 들을 수 있어서 좋다.



■서울


<만수>

큰 꿈을 안고 상경한 지도 10년이 훨씬 지났다. 새로운 곳에서 느끼는 설렘, 초심자의 열정, 치기 어린 자신감 같은, 그 당시 가졌던 감정과 다짐들은 온데간데없지만 지금도 변함없이 남아 있는 건 오로지 사투리. 그것만이 나를 증명해 준다는 사실에 헛웃음이 나온다.


같이 산다는 건 어쩌면 잘 알아듣기 어려운 낯선 타지의 말을 가만히 들어주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명진>

낯섦 사이로 오빠의 익숙한 사투리가 들려오면 그래도 서울이라는 곳에 내 곁이 하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식사습관


<만수>

처음 진이를 만났을 때 놀랐던 건 밥을 화난 것처럼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먹는 것이었다. 늘 대화가 가득한 식사시간을 동경해왔던 나로서는 섭섭하고도 답답한 장면이었다.


<명진>

나는 배가 고프면 먼저 손발이 떨리고 날이 선다. 먹기 시작하면 그 어느 때보다 최고의 집중력을 발휘해서 후다닥 먹어치운다. 그래서 밥 먹을 때는 말할 틈도 없다.


연애 초기에 오빠는 이런 나에게 화가 났냐고 자주 묻곤 했다. 그때마다 어릴 때부터 밥상에선 말하는 것이 예의가 아니라고 배워서 그렇다며 당당하게 아빠 핑계를 대곤 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그런 습관이 생긴 건 나의 식탐 때문이다.



■자전거, 삶의 질이 달라집니다


<만수>

몇 달을 벼르고 별러서 자전거를 샀다.

덕분에 가까운 곳은 걸어 다니고 먼 거리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그만이던 우리의 행동반경에 큰 변화가 생겼다. 요즘은 가보지 못한 새로운 길을 발견하는 재미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명진>

오빠 하나, 나 하나, 자전거를 샀다.

하루하루가 똑같았던 내 일상에 자전거가 활기를 불어 넣어준다. 걸어 다닐 때와는 다르게 자전거를 타면 보이는 풍경이 다르고, 느껴지는 촉감이 다르다는 걸 새삼 느낀다. 게다가 십 년 가까이 살아온 동네가 이렇게까지 새로워 보인다는 게 놀랍기만 하다.


"행복은 멀지 않은 곳에 있어요"라는 말에 이제껏 별로 공감하지 못했는데 정말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아직도 자전거를 살까 말까로 고민한다면 고민하지 말고 어서 판매점으로 가시기를.



■칫솔


<만수>

진이의 파랑색 새 칫솔은 또 금세 복슬복슬 귀여워졌다.

진이의 웃음 소리 같다.


<명진>

칫솔을 볼 때마다 오빠와 나의 성격이 보이는 것 같아 웃음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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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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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 이야기에서는 서로 닮아가는 모습이 보이고, 「키 생각」 「서울」에서는 서로의 생각이 전혀 다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식사습관」에서는 연애 초반에 오해할 뻔한 상황을 엿볼 수 있었고, 「자전거, 삶의 질이 달라집니다」에서는 서로의 시선이 같아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칫솔」에서는 다름이 서로에게 매력으로 보인다는 점에 있어 귀엽게 다가오는 부분이다.


이처럼 연애는, 함께 산다는 것은 다른 너와 내가 함께 만나 '우리'가 된다는 것이다. 남녀로 구분 짓기에 앞서 다른 환경, 다른 습관, 다른 생각을 품은 너와 내가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존중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들은 12년을 함께 하며 서로의 삶, 생각, 습관, 행동 패턴 등을 나눴고, 이제는 각자 또 따로의 삶을 잘 영위하며 닮은 듯 다른 나와 우리의 삶을 이어나가고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내가 하고, 내 마음에 차지 않는다고 해서 화를 내거나 잔소리를 하지 않는 것. 좀 서툴러도 마음에 차지 않아도 그대로 인정해 주고 받아들여주는 것.


함께 산다는 것은 그런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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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하루 눈부시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 대중문화평론가 정덕현의 가슴에 오랫동안 남은 명대사들
정덕현 지음 / 페이지2(page2)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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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을 후벼파는 드라마 속 대사 한마디에서 촉발된 감정, 경험, 추억, 사람에 대해 고백하는 시간!"


처음에는 이름만 말하면 알만한 쟁쟁한 작가들(김은숙, 박지은, 박해영, 이남규, 이우정, 임상춘)의 추천사를 받은 이 책의 저자가 궁금했다. 그러다 책을 읽으며 지극히 사적인 나의 추억과 이야기들을 떠올려 보게 되었다.

보통 드라마에는 우리의 인생이 담겨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막장 소재든, 법정 드라마든, 달콤한 연애 이야기든 우리는 드라마를 보며 그 속에 빠져들어 울고 웃으며 주인공에 동화되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저자 역시 드라마 속 대사 한마디에서 그런 자신의 삶을 떠올리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기에 이토록 그의 내밀하고 사적인 감정, 경험, 추억, 그리고 사람에 대해 신명 나게 담아낸 것이 아닐까 한다.


총 5개의 파트로 구성된 이 책은, 유수의 드라마들 중 저자의 가슴에 와서 콕 박힌 대사 한마디를 중심으로 지극히 사적인 여러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그래서 만약 추천사나 드라마 제목만을 보고 특정 드라마의 내밀한 무엇을 기대했다면, 살짝 실망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거기에서 책장을 덮지 말고, 천천히 읽어보라고 말하고 싶다.

읽다 보면 '이 대사에서 이런 전개로 발전한다고?'하는 지점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러다 어느 순간 돌아보면 저자의 이야기가 아닌, 나의 삶과 나의 이야기로 전환되어 있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우리의 가슴을 울리고, 때론 충만하게 채워주는 드라마 속 한 줄. 어쩌면 이 한 줄이 우리를 살게 하고, 또 웃고 울리는지도 모르겠다. 나보다 내 마음속을 더 잘 알아주는, 드라마 속 한 줄을 통해 모처럼 내 삶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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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블루스》에서 우울증으로 자신의 심연 속으로만 파고 들어가는 선아에게 동석은 '나중'은 없다며 "등만 돌리면 다른 세상이 있다"라고 말한다. '나중에'. 굴을 파고 들어가는 이들이 자주 쓰는 말이다. 하지만 나중으로 자꾸 미루다 보면 거기에만 머물러 그 어떤 새로운 일도 벌어지지 않게 된다. 그러니 누군가 열심히 굴을 파고 있는 이가 있다면, 커피라도 한잔 내주며 잠시 등 돌리게 해주는 것도 좋을 게다.
2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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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상 우리 삶을 되돌아보면, 나중으로 미루는 일들이 너무나 많다. 그래서 변화는 더디고, 늘 삶은 쳇바퀴처럼 굴러간다. 만약 다른 삶을 꿈꾸고 있다면, 나중으로 미루기보다 지금 당장 실행해 보는 선택을 해보자.

약간의 변화만으로도 충분히 우리는 전혀 다른 세상을 마주할 수 있다. 늘 마음속에 해보지 않은, 하고자 했던 무언가가 있다면 지금, 오늘, 아니면 이번 주 주말에 꼭 해보기를 추천한다.

실제로 진행해 본 자의 경험으로 이야기해 보자면, 해냈다는 뿌듯함과 개운함 뒤에는 새로운 뭔가가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그러면 거기에서부터 다시 또 출발점으로 삼고 앞으로 나아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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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떤 사회적인 어려움이 있더라도, 이렇게 요가하듯이 살면 될 것 같아. 나 혼자 숨 들이마시고 내쉬고." 함께 요가를 하는 아내가 언젠가 돌아오는 길에 그렇게 말한 적이 있다. 뭔가를 가지려고 아등바등하면서 살아가지만, 결국 온전한 내 것이란 바로 요가 매트 정도의 공간과 그 위에 누워 있는 내 몸 정도라는 걸, 한 시간 동안의 요가 자세로 욱신거리는 몸이 알려주는 것만 같다. 그러니 가끔은 눈을 감고 들숨과 날숨에 집중해 보자. 낡아서 삐걱대는 것이지만 온전한 내 것이 얼마나 소중한가. 모든 걸 잃는다고 해도 늘 내 것으로 남아 있는.
96~9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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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욕에 눈이 멀어 이것저것 사들일 때는 내 손안에 들어오는 모든 것이 모두 내 것 같지만, 실상 진짜 온전한 내 것인가 하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생각도 든다.

물건들은 언제든 버려지고 사라질 수 있는 것들로, 그런 것들을 진정한 내 것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조금 부족해 보인다.

그렇다면 진정한 내 것은 무엇일까? 늘 나와 함께 하고, 나를 지탱해 주고, 늘 나의 편에 서서, 늘 내 것으로 남아 있는 것. 어쩌면 몸뚱이야말로 세상에서 하나뿐인 진정 내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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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다 살아나 보니까 다 필요가 없더라." 《닥터 차정숙》에서 의사 남편 내조하며 20년을 전업주부로 살아왔던 차정숙은 간 이식 수술을 받아야 살 수 있는 상황을 겪으며 각성한다. 믿었던 남편조차 간 이식을 해주는 걸 두고 갈등하는 모습을 보면서 의사 아내로서 그럭저럭 만족하며 살아가던 삶이 다 무의미하게 느껴진 것이다.

죽음에 대한 실감은 이처럼 자신의 삶이 보다 소중하다는 걸 알게 해준다. 그래서 그 삶을 바꿔놓을 수 있는 힘이 있지만 우리는 이를 그저 지나치면서 별 게 아닌 것처럼 생각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죽을 수도 있는 위험천만한 일들은 우리 가까이 늘 있지 않을까.

난 죽을 뻔했던 경험이 있다. 아마 여러분들도 그럴 것이다.
117~11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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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죽을뻔한 경험을, 죽음과 가까운 경험을 한 사람들은 마인드가 확 바뀌는가 보다. 스치고 지나갈 땐 별것 아닌 것처럼 생각하다가 그것을 몸소 경험한 뒤에야 비로소 삶이 얼마나 소중한 지를 깨닫는 것이다.

우리 삶에는 매 순간 삶을 바꿔놓은 힘과 기회들이 도사리고 있다. 중요한 건 이것을 어떻게 활용하느냐, 그리고 어떤 마음으로 삶을 살아가느냐가 아닐까 한다.

입버릇처럼 삶이 중요하고 소중하다고만 말하지 말고, 진정으로 내 삶을 아끼고 소중히 다뤄보면 어떨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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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생활을 하면서 감정을 드러내는 일은 불이익으로 돌아오기 마련이다. 그래서 어려서는 그토록 잘 웃고 잘 울던 사람이 나이가 들어갈수록 포커페이스가 되어간다. 자신의 패를 들키면 이 판에서 이길 수 없다는 걸 아는 우리들은 어떤 패가 들어와도 내색을 하지 않으려 한다. 그래서 영화를 보거나, 드라마를 볼 때 과장되게 웃고 때론 몰래 눈물을 훔치는 것이 그 작품 때문인가 싶어질 때가 있다. 작품이 너무 웃기고 눈물 나서 감정을 드러내는 게 아니라, 그런 감정을 마음껏 드러내기 위한 핑계로 작품들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그런 감정들을 꺼내놓을 수 있는 공간이나 순간 혹은 사람들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때론 신나게 노래하고 싶어 노래방을 찾듯이, 꾹꾹 눌러놓은 감정들이 수위를 넘어 넘쳐흐르려 할 때 저마다 찾아갈 수 있는 소중한 공간과 순간과 사람들이 있다는 건 얼마나 행운인가. 만일 당장 그런 걸 당장 찾기 어렵다면 가까운 한증막이라도 찾을 일이다. 소설책 하나 챙겨 들고. 홀로 드라마나 영화 한 편 이라도 볼 일이다. 단단히 채워놨던 감정의 빗장을 열어놓고.
123~12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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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내 솔직한 감정을 털어놓는 것이 힘들어졌다는 것을 실감한다. 아마도 사회생활을 하며 이런저런 경험이 쌓인 때문이 아닐까 한다.

저자의 말처럼, 감정을 드러낸다는 것이 결코 사회생활에서 플러스로 작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어쩌면 우리는 회색도시의 회색 인간처럼 변해 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때로는 응어리진 감정을, 꾹꾹 눌러 담은 감정을 풀어내는 것도 필요하다. 어떤 핑계를 대어서라도 가끔은 솔직한 감정들을 풀어내보자.

소설을 읽으며, 드라마를 보며, 영화를 보며, 아무도 없는 공간을 활용해 나의 희로애락을 풀어보면 어떨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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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통증이 몸의 신호라는 걸 모르는 이들은 없다. 그래서 그걸 방치하면 마치 사과 궤짝에 멍든 사과 하나를 빨리 꺼내놓지 않아 다른 사과들이 상하는 것처럼 더 안 좋은 상황을 일으키게 된다. 그래서 통증을 느끼는 건 살아있다는 뜻이고 또 어떤 면에서는 살고 싶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지만 가족들을 보면 다른 이가 아플 때는 티 좀 내라고 그래야 큰 병 안 만든다고 하면서도 정작 자기가 아플 때는 티를 내지 않으려는 이들이 많다. 썩어서 가족들에게까지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저 스스로 가족이라는 궤짝을 떠나려는 이들조차 있지 않은가.

하지만 그건 이타적인 게 아니라 이기적인 생각이다. 그렇게 떠나버리면 남은 이들이 느낄 상실감과 아픔은 어쩔 것인가. 그러니 몸이든 삶이든 아프면 티를 내야 한다. 그래야 그 아픔을 덜어내고 치유할 수 있을 테니.
17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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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게 타인에게는 한없이 관대하면서 자신에게는 유독 무심한 사람들이 은근히 많다. '괜찮다' 말하지만, 실상 타인에게는 당장 병원 가보라고 말할 상태이면서도 말이다.

나는 나에게 있어 가장 소중하고, 또 최우선이 되어야 한다. 고로, 몸이든 삶이든 아프면 티를 내어 방법을 찾아야 한다. 남을 챙기기에 앞서 나부터 챙겨야 남도 제대로 챙길 수 있음이다.

통증을 살아있음의 증표로만 여기지 말고, 살아가기 위해 치유를 더 먼저 고려해 보기를 추천한다. 그래야 나, 너, 우리가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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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보면 나이 든다는 건 '견딜 수 있는 고통이 커져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피하고 싶은 고통들이 우리네 삶 도처에 지뢰처럼 깔려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차라리 즐기는 마음으로 버텨내라 말하고 결과로 돌아올 성장을 열매처럼 이야기하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그 달달한 열매 때문에 모든 고통을 감내할 필요는 없다. 너를 죽이지 못한 모든 고통은 결국 너를 성장시킬지도 모르지만, 너를 성장시킬 고통이 너를 죽일 수도 있으므로
21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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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책이 논란이 된 적이 있는데, 청춘이라고 해도 모두 아파야 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견디지 못할 고통이 나를 짓누르고 있다면 굳이 감내할 필요는 없다.

때로는 돌아가거나 포기하는 것도 정답이 될 수 있으니, 부디 고통을 버텨내는 방법으로만 마주하려고 하지 말자. 죽을 만큼 힘들다면, 죽음으로써 고통을 감내하려고 하지 말고, 나를 성장시킬 딱 그만큼만 받아들이고 이후에는 피해 가자. 지뢰는 피하는 게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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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쉬운 게 어딨어. 자꾸 해 봐야 쉬워지고 재밌어지지." 어느 날 아들이 내게 주문을 걸듯 그렇게 말했다. 그 말이 맞았다. 재미있는 것도 연습이 필요하다. 억지로라도 일 바깥으로 나와 헛짓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을 게다. 그래서 매일 걷기로 했다. 한 시간 정도 땀이 날 정도로 무작정.

사색을 하는 그런 게 아니라 아무 생각도 안 하고 온전히 몸에만 집중하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그렇게라도 일 바깥으로 나오는 연습을 하다 보면 어느 날 마술처럼 내게도 하고 싶은 일들이 막 떠오르지 않을까 싶어서다.

그리고 알게 됐다. 내가 걷는 걸 상당히 좋아한다는 걸. 안나라수마나라-
261~26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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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몸이 익숙해지려면 무엇이든 연습이 필요하다. 하물며 재미있는 것 역시도. 해보지 않으면 우리는 알 수가 없다. 내가 좋아하는지, 관심 있는지, 싫어하는지, 재미있 어하는지, 잘 맞지 않는지.

그래서 억지로라도, 헛짓처럼 여겨지더라도 시도하고 도전하는 것이 필요하다. 저자도 이를 위해 바깥으로 나와 걷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이 걷는 걸 상당히 좋아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다면, 일단 저자처럼 걷는 것부터 시작해 보면 어떨까? 그렇게 살고 있는 동네, 00동, 00시, 대한민국 등으로 서서히 대상을 넓혀가는 것이다.

그렇게 하다 보면, 새로운 도전 목록들이 점차 많아질 것이고 하나씩 경험해 보다 보면, 나에게 맞는 것들이 점차 쌓여갈 것이다.


*****

이 책에 담긴 45개의 드라마를 살펴보면, 본 것도 있고 보지 못한 것도 있다. 하지만 그 드라마를 대표하는 대사 한마디는 어딘가 모르게 익숙하다. 그래서 책을 읽지 않아도, '차례'를 쭉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뭔가 인생 이야기가 절로 펼쳐지는 기분이다.

임팩트 있는 한 줄은 영화는 물론 드라마가 오래 회자되게 하는 데 톡톡한 역할을 하는 만큼 그 위력은 상당하다. 하지만 이 글에서만큼은 꼭 그 한 줄에 집착하기보다 저자의 이야기를 거쳐 나온 내용을 바탕으로 써보고자 했다.

훅 치고 들어오는 무엇을 바탕으로, 거기에서 떠오른 나의 감정, 생각, 추억들을 고이 담아 보았다. 덕분에 앞으로 살아가면서 삶에 무엇을 더해 봐야겠다는 결심 혹은 목표가 생겼다.

아니,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추가되었다. 해봐야 할 것들이 많아지니 실패한 것에 굳이 미련가질 필요도 없고, 죽을 만큼 힘든 고통을 굳이 떠안고 갈 필요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대신 더 많은 것들에 도전해 봄으로써 나를 더 알아가는 시간, 나에 더 집중하는 시간, 나를 더 채워가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한다. 그러다 보면 내 삶 전체가 '어느 하루 눈부시지 않은 날이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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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과 귀와 입 그리고 코
곽흥렬 지음 / 맑은샘(김양수)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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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나 표지 디자인과는 다르게 내용적으로는 꽤 연륜이 느껴졌던 수필집 한편을 만났다. 최근에 읽었던 여타 책들과는 다르게 처음 보는 어휘와 표현들이 그걸 증명해 주고 있었는데, 그래서 몇몇 단어들은 검색을 통해 정확한 뜻을 확인해 보기도 했다.


책에 실린 내용 전반의 이야기들은 저자 본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성찰하거나 의미를 되새겨보는 내용들이 주를 이뤘는데, 이제는 사라진 풍경과 모습들이 많이 담겨 있었다.


그래서 읽는 독자의 연령대에 따라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이를테면, 부모님 세대들에게는 추억과 공감이, 요즘 세대들에게는 처음 접해보는 이야기들이 아니었을까 싶다.



총 5부로 구성된 이 책에는, 저자의 삶과 추억, 당시의 풍광들을 비롯해 삶을 바라보는 자세와 발견, 깨달음에 대한 내용들이 가득 담겨 있다.


단순히 삶의 체험에 대한 내용만 서술하기 보다 이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사유에 대해 함께 담고 있어, 읽으면서 나 역시 함께 사유하고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던 것 같다.


1부에서부터 시작해 5부까지 읽다 보면, 뭔가 과거에서 현재로 서서히 넘어오고 있는듯한 느낌을 받게 되는데, 실제로 저자가 담고 있는 주제가 그러해서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인지 공감 가는 내용들은 주로 후반부에 많이 배치되어 있었는데, 그럼에도 딱 한 가지 만큼은 '꼰대 같아!'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전혀 공감할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


이후 부랴부랴 저자의 프로필을 검색해 나이를 확인해 보니 60대인 걸 확인할 수 있었는데, 나이를 감안해도 현시대와 너무 동떨어진 사상이라 받아들이기 좀 힘들었다.


이외에는 대체적으로 무난하게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우리에게 필요한 것, 부족한 것, 넘치는 것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또 한 번쯤 멈춰서 생각해 봐야 하는 것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살펴보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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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 깊었던 작가의 말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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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람되지만, 비록 잘 쓰지는 못해도 나름대로는 혼을 쏟아서 썼다는 것만큼은 감히 자부하고 싶다.

(...)

나의 작품을 읽는 독자들에게 일생 동안 단 한 번밖에 주어지지 않은 소중한 시간을 빼앗기게 해서는 아니 된다는, 눈곱만큼 한 작가로서의 양심 같은 것이라고 해도 좋겠다.

2~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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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적어도 책을 내는 작가들이 기본적으로 이런 마음가짐은 장착해야 한다고 본다. 타인의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그것을 귀하게 여겨주는 마음.


그게 결국 쌓이고 쌓여 오래도록 독자와 작가를 이어주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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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을 때 참고하면 좋을 어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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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요하다: 재물을 풍부하게 가지고 있다.


※부유 vs 부요

부유: 재물이 넉넉함

부요: 생활이 넉넉함


●오불관언: 옆에서 일어나는 일에 모른 척하는 모습


●나타하다: 행동, 성격 따위가 느리고 게으르다.


●하마: 본래는 '벌써'라는 뜻이지만, '얼른'이라고 번역할 수도 있음


●간구하다: 바라고 구하다.


●일쑤: 흔히 또는 으레 그러는 일


●설하다: 도리, 이치, 학설 등을 풀어서 이야기하다.


●부박하다: 천박하고 경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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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보면 좋을 문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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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리와 풍요는 추억이 깃들 공간을 앗아가 버렸다. 먹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이면 그것이 무엇이든 언제 어느 때라도 득달같이 대령해 주는 세상이다. 그러다 보니 아쉬움이랄까 결핍 같은 부족함이 갖는 의미를 더 이상 배우지 못한다.


모자람이 없으니 기다릴 것도 없다. 어렵게 만나고 어렵게 해어지던 뚝배기 식에서 쉽게 만나고 쉽게 헤어지는 냄비 식으로 바뀌고 말았다. 남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기보다는 자기 이야기만 잔뜩 쏟아 놓다가, 미련 없이 자리를 털고 일어나 건성으로 흘리는 인사 한마디씩을 뒤로한 채 각자 타고 온 자동차를 몰고 뿔뿔이 흩어져 간다.


깔끔한 뒷마무리, 구접스럽고 구질구질하지 않아서 참 좋긴 하다. 하지만 어쩐지 동지섣달 칼바람 앞에 선 듯 가슴이 시려 오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3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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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요즘 시대를 꼬집는 말이 아닐까 한다. 아쉬움, 부족함, 결핍이 없으니 내가 먼저고 내가 우선이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에게 더 이상 배려나 기다림을 기대할 수도 없다.


어떤 면에서는 참 깔끔하고 좋은데, 또 다른 면에서는 너는 너 나는 나, 대면하고 있어도 왠지 따로 노는듯한 기분이 들어 씁쓸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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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란 순간순간마다 삶과 죽음의 경계선을 넘나드는 존재자라고 하지만, 어찌 보면 '불편해서 치열함'과 '편리해서 나타함' 사이의 선택을 놓고 간단없이 고뇌하고 번민하는 유한자이기도 하다. 고통은 우리를 벼리는 용광로가 되지만 안락은 우리를 좀먹히는 벌레가 된다. 이러한 불변의 이치를 번연히 알면서도 불나방처럼 무모하게 안락 쪽으로 몸을 던지는 것이 또한 인간인가 한다.


영원히 풀릴 것 같지 않은 이 삶의 모순, 그 앞에서 나는 오늘도 스스로에게 길을 물으며 더듬이 잃은 방아깨비처럼 갈팡질팡 헤매면서 살아간다.

8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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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는 이 두 가지 선택은, 모순이지만 또 잘 어우러지는 한 쌍이기에 우리 삶이 이토록 잘 굴러가는 것이 아닐까 한다. 사람이기에 항상 치열할 수 없고, 또 항상 나타한 모양새로 살 수 없다.


때론 불편하지만 치열하게, 또 어떨 때는 편리한 것을 누리며 느릿하고 게으르게 살기에, 꿍짝꿍짝 밸런스가 맞는 거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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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화의 병으로 고통받는 이에게는 울음이 최고의 치유제가 된다. 웃음은 스트레스를 날려 주지만 울음은 카타르시스를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래서이리라. 많이 웃고 나면 마음속이 허전해지는 데 반해 실컷 울고 나면 가슴속이 후련해진다. 이것이 울음의 본질적인 속성이며 가치가 아닌가 한다. 웃음이 엔도르핀을 자아낸다고 하지만 울음이 생성해 내는 엔도르핀 수치에는 까마득히 미치지 못할 것 같다.

(...)

눈물이 흔한 사람은 그만큼 마음에 때가 묻지 않은 맑은 영혼의 소유자임이 분명할 것 같다. 나는 때때로 진실한 울음에서 가슴을 녹여내는 순정한 인간상을 만나곤 한다. 분별없이 웃음이 헤픈 사람치고 생을 진지하게 사는 이가 과연 얼마나 될까. 나이 들면서 눈물이 많아진다는 것은 그만큼 생에 대한 진정성이 높아 간다는 방증일 터이다.


울어야 할 때는 마음 놓고 실컷 울어 볼 일이다. 울고 있는 모습처럼 인간적인 것이 없기에.

84~86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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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수록 눈물이 많아진다고 한다. 어쩌면 공감, 연민, 경험들이 어우러져 삶을 더 깊이 이해하고 받아들이기에 눈물이 많아지는 것은 아닐까 한다.


과거에는 눈물을 아껴야 한다는 말들을 많이 하고는 했는데, 요즘 시대에는 오히려 필요할 때는 속시원히 펑펑 울라는 조언을 많이 한다.


마음에 차곡차곡 채워두지 말고, 눈물로 속시원히 씻어내라며, 그렇게 비워내고 다시 앞을 향해 나아가라 이야기한다.


웃음은 때로 무언가를 감추기 위한 도구로 활용된다. 하지만 눈물만큼은 무언가를 비워내기 위해 사용된다. 만약 내 안에서 무언가가 부피를 키워가고 있다면, 감당하기 어려울 때까지 버티지 말고 이제 그만 비워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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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물일지라도 젖소가 마시면 우유를 만들어 내지만 뱀이 마시면 독을 뿜어낸다고 <화엄경>은 설하여 놓았다. 이를테면, 투입 조건은 똑같더라도 산출 결과는 극과 극으로 달라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우리가 평소 삶을 영위해 가면서 별 의식 없이 주고받게 되는 말의 경우에서도 마찬가지 아닐까. 한편으로는 칼처럼 요긴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칼같이 위험한 것이 말이라는 무형의 에너지이다.

(...)

몇 해 전, 무릎에 탈이 나서 찾았던 어느 병원의 접수대 옆 게시판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붙어 있었다.


"개에 물린 사람은 반나절 만에 치료받고 돌아갔고, 뱀에 물린 사람은 사흘 만에 치료를 끝내고 돌아갔다. 그러나 말에 물린 사람은 아직도 입원 중이다."


아! 무릎을 치게 만드는 이 촌철살인의 경구라니....

무릇 그 무엇이든 소중한 것일수록 함부로 다루어서는 아니 되리라. 이것이 세상사의 엄숙한 이치 가운데 하나임을, 말을 통해서 새삼 가르침 받는다.

134~13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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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입 조건은 같은데, 어떻게 쓰이느냐에 따라 완전히 달라질 수 있는 말! 어떤 이들은 이것을 칼처럼 요긴하게 쓰지만, 또 어떤 이들은 칼같이 위험하게 사용하고 있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하는데, 요즘 말을 사용하는 이들을 보면 '곱다, 예쁘다'라는 말보다, '위험하다, 날카롭다'라고 느껴지는 때가 훨씬 더 많은 것 같다.


이제는 나의 말은 조금 아껴두고, 타인의 말에 경청해 보면 어떨까? 그리고 필요한 때에 적절한 말로 마음을 나눠보면 좋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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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프랭클린의 명언을 인생살이의 교분으로 환치시켜 보고픈 충동을 느낀다. 둘 사이에 유비가 서로 썩 어울림직 하다는 전제를 세우고 들어간다면, 대강 다음과 같은 이야기쯤이 될 것 같다.


'많이 사귀어라, 그러나 많은 사람을 사귀지는 마라.'

이래 놓고 보니 이 말은, 사람을 사귀되 어중이떠중이 덮어 놓고 사귀지 말고 진정 사람다운 사람을 깊이 있게 사귀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겠거니 싶다.

(...)

오늘 같은 날이면, 지금껏 수십 년 세월 동안 그리 적달 수 없는 책을 읽었으되 과연 얼마만큼 가려서 읽었는지 새삼 되돌아보게 된다. 육십갑자가 넘도록 살아오면서 이런저런 친구를 사귀었으되 그 가운데 정작 몇이나 제대로 사귀었는지 곰곰이 되짚어 보게도 된다.


아무리 생각에 생각을 거듭해도 영 자신이 서지 않는다. 나의 독서도 그리고 교우도는, 모르긴 모르지만 그예 실패작으로 끝나고 말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이제까지의 부끄러움에다 또 다른 부끄러움들을 보태게 될 판이다.


사람살이, 이래저래 호락호락하지 않은 화두다.

228~22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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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건 '양'이 아니라 '질'이다. 독서든, 교우관계든 많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니다. 특히 나이를 먹어갈수록 절실히 느끼게 된다.


제대로 아는 것, 제대로 사귀는 것, 제대로 읽는 것! 그것을 지금부터라도 실천하면서 살면 어떨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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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스럽다고 하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아이가 생각이 깊고 의젓하다는 의미를 지닌 용어이다. 이는 어른처럼 영악하다는 뜻이 아니다. 순수성을 잃은 어른 같다는 뜻도 아니다.


어른들의 노래를 멋도 모르고 불러 대는 아이들의 행동은 절대 어른스러움이라 할 수 없다. 그냥 어른 같음일 뿐이다.


어른들은 아이들의 이런 어른 같은 모습에 침을 질질 흘리면서 "잘한다" "잘한다"며 박수를 쳐 댄다. 참 한심스럽고도 서글픈 사회현상이 아닐 수 없다. '어른스러움'은 긍정의 어감으로 쓰이는 말인 반면, '어른 같음'은 부정의 어감을 지닌 말이 아니던가.

24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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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읽으며 문득 얼마 전에 본 유튜브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삼대가 한 카페에 머물며 잠시 휴식을 취하는 동안, 아이는 할머니의 차와 함께 곁들여 나온 쿠키를 탐낸다. 그리고 이내 가져다가 반으로 쪼개고서는 작은 조각을 할머니에게 건네며 할머니 작은 거 먹으라고 말한다.


이를 보고 아이의 엄마는 '자기 몫을 야무지게 챙긴다'라며 칭찬한다. 보면서 '헛'하는 소리가 절로 나왔는데, 댓글은 더 가관이었다. 칭찬 일색!


'아이가 귀엽다'와 같은 댓글을 남기는 것을 보고 '요즘 엄마들은 다 이런가' 싶었다. 저자가 말하는 '어른스러움'과 '어른 같음'과는 조금 벗어난 주제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위의 글을 읽고 잘못된 어른들의 태도와 행동이 눈에 많이 밟혔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말과 행동을 보고 배운다. 아이들은 기억 못 할 거라고, 잘 모를 거라고 이야기하는 어른도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나름 속으로 잘하는 행동이구나, 이렇게 하니깐 어른들이 칭찬해 준다고 느끼지 않을까?)


트로트를 잘 부르는 아이를 보고 박수 치고 좋아하는 어른들, 할머니의 쿠키를 가져다가 자기 몫을 더 많이 챙기는 아이를 보고 칭찬하는 엄마를 보고 배운 아이는 후에 어떤 어른으로 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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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터에서 아이들의 재깔거리는 웃음소리가 사라졌다. 그 풍경 너머, 공원에는 무료를 달래는 노인들로 넘친다. 자연 노인이 천덕꾸러기 신세가 될 수밖에 없다. 귀하면 대접받고 흔하면 괄시당하게 마련인 세상사의 엄숙한 이치는 어느 누구라도 거스르지 못할 것이다.


이러한 시대 상황 속에서 장수가 과연 축복일까 재앙일까. 단순 논리로 따지면야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어쨌든지 오래오래 생을 누리다 떠나는 것이 지상 최대의 축복일 수도 있으리라. 마르고 닳도록 살고 싶은 욕망은 인간 존재의 본능과도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초저출산 추세가 이어지는 한, 장수는 더 이상 축복이 아니라 점점 재앙으로 이행될 개연성이 커지는 것이 피치 못할 현실이다.


노인이 예전처럼 공경 받을 수 있는 시대는 이제 영영 물 건너간 것인가. 나날이 떨어져 가는 출산율 추이를 지켜보면서, 앞으로 펼쳐질 세상의 흐름이 자못 걱정스러워진다.

26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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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사라지고, 노인이 급격히 늘어나는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노인들은 자신들의 권리만을 주장한다.


남이야 어떻든 자신의 권리만, 나의 이익만 추구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행동을 보이기에, 어쩌면 지금 세대들은 노인들을 괄시하고 천덕꾸러기로 여기는 것이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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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꼰대 아냐?'라는 생각이 절로 들게 만들었던 존칭어에 대한 저자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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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살 안팎의 청소년들이 팔구십 노인에게 뻣뻣이 선 채로 고개만 까딱거리며 인사랍시고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할머니 안녕하세요" 해댄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어디 제 친구인가. 연세 지긋한 어르신한테는 당연히 "안녕하십니까"라는 정중한 표현을 써야 제대로 된 인사말 아니겠는가. 다소곳이 머리를 숙이지 않는 무람없는 행동이야 차치하고라도, 그처럼 예의에 어긋난 말투를 아무렇지 않게 내뱉고 있으니 훗입맛이 씁쓸하다.

26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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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칭어에 대한 다른 내용은 나 역시 공감하는 부분들이 꽤 많았다. 어색하게 극존칭을 사용하거나, 사용하지 않아야 하는 물건이나 상황에 존칭을 중복으로 사용하는 어설픈 존칭어 사용이 불편하게 다가왔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이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만큼은 공감이 안 갔다. 요즘 시대에 인사라도 하면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친구 사이, 지인 사이, 제자 사이 등등 인사말조차 생략되는 경우가 흔하다.


심지어 친족 사이에서도 그런데 길거리 노인에게 인사를 인사할리 만무하다. 여기에 더해 존칭어까지 요구하는 건 너무 큰 욕심 아닐까?


'안녕'이라고 인사한 것도 아니고, 단지 '안녕하십니까'라고 인사하지 않았다고 해서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말이 욕먹을 일은 아니라고 본다.


그런데 너무 강건하게 이에 대해 저격하는 글을 보고는 홀로 갸우뚱했다. 나는 인사는 말 그대로 그냥 반갑게 서로 인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생각한다. 여기에 극존칭과 존칭어는 크게 필요하지 않다고 본다.


글로벌 시대, 노인들의 이름을 부르며 '하이'하고 인사하는 나라도 있는데, '안녕하세요'는 양반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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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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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에 한 번쯤 생각해 보면 좋을 내용들이 많이 담겨 있어, 읽으면서 나도 함께 사유하고 고민하는 시간을 가져볼 수 있었다. 미디어나 매체에 노출되는 것들을 보며 가끔 나 홀로 '저건 좀' 하던 것들을 누군가도 불편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며 나 역시 공감받는 느낌을 받는다.


과거에 비해 많이 풍족해진 요즘이라고 하지만 실상 가만히 들여다보면, 겉으로 보이는 것만 풍족해졌지 진짜 중요한 것은 잃어버렸다는 생각을 가끔 할 때가 있다.


결핍이 있기에 더 해내고자 하는 의지와 노력, 바로 소통이 어렵기에 만나면 더 느껴지는 애틋함, 그래서 함께 하는 순간만큼은 서로에게 더 집중하려는 태도와 같은 것들 말이다.


관계도, 일도, 사랑도 무엇 하나 쉽게 포기하고 제대로 할 생각이 없는 사람들을 볼 때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 보게 된다. 의지일까? 결핍일까? 노력일까?


아니 어쩌면 너무 넘치게 가지고 있어서 진짜 발휘해야 할 것이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이 책을 읽으며, 처음에는 어릴 적 묻어둔 추억이 새록 떠올랐다가 어느 순간 삶을 되돌아보는 방향으로 꺾였다. 지금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사회가, 사람이, 풍경이 그다지 아름답게 느껴지지 않아 실망스럽기도 했고, 또 한편으로는 지금 무엇에 힘을 쏟아야 할까 생각해 보게 된 시간이기도 했다.


과거나 현재나 여전히 사람의 얼굴에는 눈과 귀, 입 그리고 코가 붙어 있다. 이것이 진정 더 아름다워 보이려면, 더 아름다운 얼굴이 되려면 우리는 이것의 쓰임을 제대로 활용해야 한다.


이것들이 잘 어우러질 수 있도록, 더 예쁜 것들을 눈에 담고, 귀로 듣고, 입으로 내뱉으며 그리고 좋은 향을 맡아야 비로소 우리는 완성형의 아름다움을 가질 수 있다.


인위적으로 보이는 척, 들리는 척, 말하는 척, 느끼는척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 오히려 탈만 날뿐이다. 그러니 부디 이 모든 것들을 잘 활용하기를 바란다.


유한한 삶이 더 빛날 수 있도록, 후회가 남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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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롯이 내 인생이잖아요 - 밀라논나 이야기
장명숙.이경신 지음 / 김영사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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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의 세대 차이를 아우르는 공감, 소통, 삶을 담고 있는 책"


이 책을 읽으면서 문득 깨달았는데, 나는 과거에 현재의 나이를 떠올리며 이 책에서 논하는 이야기를 주변 사람들과 나누리라 예상했었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가 않더라.

함께 나누는 주제나 흐름이 긍정적이거나 건설적, 혹은 미래지향적, 희망적이기보다 깎아내리거나, 하소연, 부정적, 회피 등과 같은 형태로 흘러가다 보니 이상과 현실은 매우 다르구나 느끼게 되었다.

특히 그 갭이 크게 느껴졌던 경우는 미혼자와 기혼자가 만나는 자리였는데, 가족에만 뜻을 두고 있는 기혼자와 그보다는 삶에 대한 주제에 관심이 많은 미혼자는 확실히 구분되는 듯했다.

그래서인지 나는 이 책에서 다루는 주제와 전개 방식에 흠뻑 빠져들었다. 52년생 '논나'와 82년생 '경신'의 이야기는 내가 과거 꿈꾸던 형태의 대화였으며, 또한 지금의 나에게 매우 도움이 되는 내용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의 옆에 곁다리로 끼어앉아 관찰하듯이 흥미롭게 두 눈 크게 뜨고 지켜보게 되었다. 한없이 목마름을 가지고 있던 어른의 이야기를, 자기다움을 지키는 방법을, 사랑하며 사는 이야기를 관심 어린 시선으로 살펴볼 수 있었다.


총 7부로 구성된 이 책은, 52년생 '논나'와 82년생 '경신'이 같은 주제를 가지고 대화를 나누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잘 늙는 법, 마음 다스리는 법, 대화법, 생각법, 의식주 생활법, 함께 일하는 법, 사랑하는 법에 대한 이야기다.

30년이라는 세대 차이를 넘어서서 이들은 서로가 궁금했던 것들을 질문하고, 정성껏 답하면서 각자의 생각을 소신 있게 전하는데, 현실적인 삶의 주제에 대한 현실적인 이야기들이라 여러모로 공감 가는 부분이 많았다.

특히 논나가 전하는 이야기들은 내가 종종 그녀의 유튜브를 즐겨보는 이유이기도 했는데, 현시대에서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어른'의 이야기라 더 마음 깊이 다가왔다.

경신의 경우는 비슷한 또래의 입장이라, 그녀가 하는 질문과 답변들이 마치 내 이야기처럼 다가왔는데, 취향, 비혼, 나이 듦, 번아웃, 관계 등에 대한 이야기들이 특히 그러했다.

제대로 대화를 하고 있다는 느낌, 무언의 뭔가를 주고받고 있다는 느낌, 의미 있는 시간이라는 느낌이 물씬 풍기는 이들의 대화는 그래서 더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배우고, 숙고하고 그러면서 나의 존엄성은 지키되 함께 사는 방법을 나누는 이야기를 통해 진정한 공감, 소통, 삶이란 무엇인가를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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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기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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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1952년생 '밀라논나' 장명숙과 1982년생 유튜브 <밀라논나> 제작자 이경신이 교환한 산문, 편지글, 문자 메시지, 대면 대화를 바탕으로 했다.

두 저자는 2019년 여름 처음 만나 5년간 청년과 중년, 노년의 삶에 관해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빛과 어둠을 나누며 서로에게 기댈 언덕이 되어주었다.


■논나 이야기
세파에 시달렸다는 핑계를 대며 순수함을 잃고
성숙하지 못한 궤변을 늘어놓는
중늙은이가 된 듯해
제 자신에게 혐오를 느끼는 순간이
점점 잦아져 염려스럽습니다.

이제 제게 잘 되라고 책망하는 어른들이
주변에 계시지 않고
제게 조언을 구하는 인생 후배만 늘어나니
혼자 자주 탄식합니다.
어른들이 살아 계실 때
더 많이 삶의 지혜를 여쭤볼 것을....
이제야 철들 준비를 하는가 봅니다.
철들자 망령이 될까 겁이 납니다.


■경신 이야기
현재를 등한시하고 미래를 사느라
늘 불안하고 초조했던 저에게
선생님은 지금 여기에 집중하며 살도록
손을 잡아주신 어른입니다.
그런 선생님의 온기는 제게 용기를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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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 있게 다가왔던 문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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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

<경신>
좋은 취향을 갖는 것은 하나의 재능이라고 생각해요.

(29페이지 中)


<논나>
자기 자신을 잘 아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저는 매 순간 저 자신에게 물어요. "명숙아, 지금 즐겁니? 행복하니?" 이렇게 묻고 제게 귀 기울이지요. '즐겁고 행복한 순간의 나'와 '슬프고 불행한 순간의 나'가 곧 나 자신이잖아요. 그런 순간이 누적되어 내 취향을 만들고요.

내가 지금 무엇을 소비하느냐가 내 취향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요.
(...)
내가 오랜 시간 무엇을 체득했느냐가 내 취향이 아닐까요? 물론 취향은 바뀔 수 있고요.

내 시간과 에너지는 유한하지요. 내 에너지를 내가 진짜 좋아하는 일에 쓰라고 권하고 싶어요. 남들이 하는 것, 사는 것, 먹는 것을 따르지 말고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것에 귀 기울여보세요. 외부 환경이 아니라 자기 내면에 집중하다 보면 자기 취향이 생길 거예요.

(29~30페이지 中)


■비혼

<논나>
요즘은 결혼과 출산이라는 길을 걸어보기도 전에 비혼을 선택하는 사람이 많은 듯합니다. 연애와 결혼, 출산을 모두 하지 않으려는 이유는 뭘까요?

(42페이지 中)


<경신>
한마디로 모든 곳에서 위기 상황이라고 사이렌이 울리고 있어요. 위험하니 도망치라고요. MZ 세대에게는 그 도망이 비혼이고, 비출산인 듯합니다. 내 삶이 불행한데 나라를 지탱하자고 자식을 낳고 싶은 젊은이는 없을 테니까요.

'아이를 낳으면 얼마를 지원해 준다'라는 정책은 아이를 낳은 사람에게 분명 도움을 줄 테고 또 필요한 것이지요. 그러나 '당장 하루하루를 버티기도 힘든데 그 지원금을 받자고 아이 낳을 결심을 하는 사람이 있을까?'라는 생각도 듭니다. 결국 이 문제는 젊은이들이 '이제 좀 살만하다'라는 생각이 들어야 해결되지 않을까 싶어요.

(43~44페이지 中)


■늙음

<논나>
저는 젊은이들이 어떤 경우에 늙음이 혐오스럽지 않고 '아! 나도 저런 어른처럼 나이 들고 싶다'라고 느끼는지 궁금합니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66페이지 中)


<경신>
젊은이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은데 뭘 하면 좋을지 고민하시는 것만으로도 선생님은 이미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으세요.

그런 연유로 답을 모두 알고 계실 선생님에게 따로 드릴 조언은 없습니다. 다만 저도 이 기회에 어떤 어른이 되고 싶은지 진지하게 고민해 보았습니다.

①저는 나이 듦을 무기 삼지 않는 어른이고 싶습니다.

②저는 젊은이들에게 "고맙다" "미안하다" "기쁘다" "행복하다" "축하한다" 같은 긍정적 표현을 많이 하는 어른이고 싶습니다.

③마지막으로 외적 노화를 부정하기보다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모습이 더 멋지게 느껴집니다.
(...)
제가 그리는 노년의 모습을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하네요. 어디서 봤는지는 비밀로 하겠습니다.

(67, 69~70페이지 中)


■자존감

<논나>
젊은이들에게 말해주고 싶어요. 자신을 들볶지 말고 자기 한계를 긍정할 때 자존감이 회복된다고. '이래야 해'라는 기준을 세우고 그 기준에 발목 잡히지 말라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는 편안함이 있어야 한다고. 나는 세상에 하나뿐이라고. 익히 들은 말일 수 있지만 정말 그렇다고.

(82페이지 中 )


<경신>
그런데 나를 사랑하고 긍정하는 방법을 찾기란 매우 어렵지요.

저는 그 방법을 선생님에게 배웠어요. 바로 매 순간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지요. "아, 그건 제가 서른일곱 살 때 읽은 책이에요." "마흔다섯 살 때 두 달간 탱고를 배우러 다녔어요." "그 바느질은 중학교 때 가정 시간에 한 거예요."

처음 그런 말씀을 들었을 때는 큰 의미를 두지 않았습니다. 한데 시간이 지날수록 '어떻게 지난 일을 다 기억하시는 거지?' 궁금해지더라고요. 그래서 어느 날 제가 여쭤봤지요. 그걸 다 어떻게 기억하시냐고요. 그때 선생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내가 살아온 날을 나는 기억해 줘야지. 나는 내 하루를 최대한 정성껏 산다고."

그 말씀을 듣는 순간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했습니다.
(...)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제가 메모장에 쓴 문장이 있어요.
"내가 내 삶을 극진히 대우해야겠구나. 내가 나에게 예의를 갖춘 시간이 모여 내 가치가 소중해지고 빛나는 것이구나."

(82~83페이지 中 )


■인연

<경신>
시절 인연이라는 불교 용어가 있지요. 불교에서는 모든 인연에 다 때가 있다고 봅니다. 사람의 관계도 잘 풀리다가 어느 순간부터 자꾸만 엇나가면 그때를 인연이 다한 시기로 여긴다고 합니다.

시절 인연이라는 이야기를 하니 떠오르는 친구 한 명이 있습니다. 저와 학창 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지요.
(...)
어느 날 기억도 나지 않는 사소한 문제로 다퉜습니다. 그때 서로를 찌르는 말을 했지요.
(...)
우리는 그날을 끝내 봉합하지 못한 채 멀어지고 말았습니다.
(...)
그 친구와의 인연이 그리 끝난 것은 제게도 큰 상처였습니다. 10년 넘도록 추억이 떠올라도 고개를 저으며 생각하지 않고 덮어두려 노력했습니다. 시간이 약이라더니 이제는 억지로 기억을 덮으려 하지는 않습니다. 상처가 많이 아물었다는 뜻일까요.

(104~106페이지 中)


<논나>
저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하루하루 살아가는 우리네 삶을 '시간의 기차 여행'으로 여기곤 합니다.
(...)
우리 각자에게는 자기 삶의 열차가 있습니다. 어떤 속도로, 어느 인연을 중시하며 살아갈지는 본인의 선택이겠지요.

내 삶의 열차에 탑승했다가 인연이 다해 하차한 인연은 그들의 삶을 향해 가게 내버려두고, 나와 여행을 떠나려고 승차한 새로운 사람에게 최선을 다하자는 다짐을 합니다. 이런 결론에 도달하니 마음이 한결 홀가분해지고 다시는 친구와 만나는 허탈한 꿈도 꾸지 않게 되었답니다.

(107~108페이지 中)


■상처

<경신>
상대에게 진심을 주면 상대도 그럴 것이라는 순진한 생각을 버릴 나이가 됐건만 여전히 그것이 쉽지 않습니다. 저만 진심인 상황은 늘 속상합니다.

(117페이지 中)


<논나>
상처는 가까운 사람들에게 받는다는 말에도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왜냐면 기대가 있으니까요.
(...)
두 개체 간의 에너지가 동일 질량이 아닐 때 무척 버겁고 상처받는다는 느낌이 듭니다.

경신 씨가 상처받은 경우도 두 개체 간의 에너지 밀도가 달라서 발생한 현상이 아닐까요? 경신 씨는 이른바 너울이 넓어서 많이 품을 수 있고 또 속내도 꺼내놓는 성향이지만, 친구는 자신의 문제를 시시콜콜 이야기하는 데 익숙지 않은 내향적 성격일 수 있잖아요. 말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꺼내야 할지 몰라 망설이다가 시기를 놓친, 그런 상황이었을지도 모릅니다.

(117~119페이지 中)


■말의 힘

<경신>
저는 종교가 없지만 말로 기도를 하곤 해요. 말에 강력한 힘이 있다고 믿거든요.
(...)
부정어를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은 결국 부정적 삶을 살게 되더군요. 반대로 긍정어가 입에 밴 사람은 뜻밖의 행운을 얻지요.
(...)
오늘도 제 인생을 위해 우주에 에너지를 보냅니다.

(131~132페이지 中)


<논나>
특히 자신에게 하는 말은 자기 암시가 되잖아요. 말이 우주 공간으로 퍼져가는 에너지라고 생각해 보세요. 좋은 말을 쓰면 좋은 에너지가 모이고, 좋은 에너지가 모이면 좋은 일이 찾아올 거예요.

(133페이지 中)


■충고

<경신>
충고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들어도 맵습니다. 충고는 각오를 단단히 하고 해도 떨립니다. 상처를 받을 수도 줄 수도 있는 말이니까요.

(145페이지 中)


<논나>
잔소리는 듣기 싫게 꾸짖거나 시시하게 참견하는 말이고, 쓴소리는 듣기에 거슬리지만 도움이 되는 고언이지요.
(...)
저는 상대가 요청하지 않은 섣부른 충고나 조언은 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만약 제 견해가 듣고 싶다고 요청하면 마지못해 입을 열지만 그전에 일종의 사탕을 준비하지요. 그 사탕이란 아주 부드러운 말투와 칭찬입니다.
(...)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정혜신 박사는 '충조평판' 금지를 이야기합니다. 충고, 조언, 평가, 판단을 하지 말라는 것이지요. 사실 충고나 조언은 상대방 행동을 평가하고 판단한 후에 나오는 것이잖아요. 그러니 그것을 듣는 이는 마음이 얼마나 불편하겠어요.

쓴소리는 쓴 약과 같아서 상대의 상태와 기질을 잘 살펴서 해야겠지요. 너무 강하거나 너무 약하면 효험이 떨어지니까요.

(145~146페이지 中)


■환불 메이크업

<경신>
환불 메이크업은 사람보다는 돈, 규정보다는 힘으로 사람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단면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아닌지 진지하게 생각해 봅니다.

(152페이지 中)


<논나>
이참에 저도 환불받으러 갔던 기억을 곰곰이 떠올려보았습니다. 1980년대 중반 한창 일할 때 큰맘 먹고 장만한 유명 디자이너의 코트가 생각나네요.
(...)
훗날 취업한 저는 밀라노 첫 출장길에 업무를 마치자마자 그 매장으로 달려갔습니다. 마침 진열장에 걸려 있는 호피 무늬로 안감을 댄 호박색 캐시미어 코트가 제 눈길을 사로잡았습니다. 무려 한 달 월급을 지불해야 하는 고가였지요. 살까 말까 망설이다가 차마 구입하지 못하고 발길을 돌렸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 밤새 그 코트가 눈앞에 아른거려 쉽게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
밤새 고민한 저는 결국 그다음 날 매장 문이 열리자마자 코트를 구입했습니다.
(...)
그날 저녁, 거래처 대표의 저녁 초대가 있어서 착복식을 겸해 큰맘 먹고 그 코트를 입고 나갔습니다.
(...)
한데 걸음을 뗄 때마다 코트 안감과 함께 입은 니트 원피스가 뒤엉켜 옷이 말려 올라가는 게 아니겠어요?
(...)
이런 날벼락이! 거의 눈물이 나올 지경이었습니다.
또다시 날밤을 지새우게 됐습니다. 그렇게 벼르고 별러서 산 코트에 문제가 있다니요.
(...)
그리고 다음 날 다시 매장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습니다.
코트를 포장해서 들고 갈까 하다가 일부러 니트 원피스 위에 입고 갔습니다.
(...)
어디나 문제 상황에서는 매니저가 등장하지요. 제 모습을 본 매니저의 반응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
"이 원단을 안감으로 사용하면 이런 불편이 생기리라고 미처 생각지 못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그녀는 안감 교체든, 교환이든, 환불이든, 뭐든 고객 입장에서 처리하겠다며 제게 진심으로 사과했습니다.
(...)
환불 메이크업 같은 것을 하지 않아도, 큰소리로 윗사람을 불러오라며 화내지 않아도 상식선에서 서로 대화해 해결하는 것이 표준인 사회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첫눈에 반했지만 종국에는 입지 못한 그 코트의 아름다운 실루엣과, 정중하게 사과하던 매니저의 응대가 떠오르네요.

(152~154페이지 中)


■번아웃

<경신>
저도 번아웃을 경험한 적 있습니다. <밀라논나>를 촬영할 적이었어요.
(...)
문득 회사가 제 업무를 인정하는지, 제가 제대로 보상받고 있는지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
그 무렵 선생님도 제게 휴식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리고 회사에서 제 몸과 마음을 정비할 시간을 주었지요. 일터에서 멀리 떨어져 일을 지켜보니 다시 중심이 잡히더라고요.

(169페이지 中)


<논나>
과로가 누적되면 번아웃이 생기지요.
(...)
번아웃이 온 사람들이 제게 길을 물어온다면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절대로 서두르지 말고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상태,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을 때까지 자신을 다독이며 기다리라고요.
자기 시간을 가지라고요. 자기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여보라고요. 샘물도 다 퍼 올리면 다시 차는 데까지 시간이 걸리지 않나요?

(169~171페이지 中)


■갑질과 참어른

<논나>
철없이 함부로 촐싹거리며 날뛰는 사람을 '천둥벌거숭이'라고 하지요. 옛 어른들은 세상 물정 모르는 순진한 인간 유형을 천둥벌거숭이라고 부르셨어요. 순진함이 남아 있으면 개과천선할 가능성이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남은 인생을 어찌 살아갈지 한편 걱정스럽기도 합니다.

잠시 침묵하다가 "허허" 웃었다니 그분은 '참어른'이네요.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속으로 '하룻강아지에게 무슨 대꾸를 하리'라고 생각하며 어른다운 인내심을 발휘한 게 아닌지 미루어 짐작해 봅니다.
(...)
갑질 상황을 요령껏 피하는 지혜도 살면서 배워야겠지요. 참으로 삶의 무게가 꽃잎처럼 가볍지 않습니다.

(185페이지 中)


■미움받을 용기

<경신>
직장은 선택해서 들어가도, 직장 내 사람은 선택할 수 없지요. 직장에서는 '미움을 받을 용기'를 내는 것도 '미움을 받아들이는 평정'을 유지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254페이지 中)


<논나>
타인이 나를 미워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
상대방의 마음을 얻으려고 애쓰지 마세요. 자기 마음도 수습이 안 되는데 남의 마음을 어떻게 수습하겠어요. 모든 이유를 내게서 찾으며 자신을 괴롭히지 마세요.

다만, 정공법으로 대응하는 방법도 있어요. 왜 나를 싫어하느냐고 직접 물어보는 것이지요. 그리고 상대방이 뭐라고 대답하든 혼자 생각하는 겁니다.
'어차피 너는 나를 못 이겨!'

(254~255페이지 中)


■용서

<논나>
제가 생각하는 용서는 타인을 무조건 이해하고, 그가 내게 한 잘못을 무작정 받아들이자는 게 아닙니다. 저는 내 마음속의 부정적 쓰레기를 버리는 과정이 용서라고 생각합니다. 피해자는 대부분 그 상황을 피하지 못했던 자신을 향한 분노와 원망도 함께 지니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자책하지 마세요.

저는 스스로를 향한 분노의 감정을 먼저 정리하고 내려놓으라고 말하고 싶어요. 힘들고, 억울하고, 속상하고, 분해서 감정의 소용돌이에 휩싸인 내 내면아이를 안고 위로해 주세요. 내가 나를 이해하고 내 편을 들어주는 것이 나를 가두는 고통에서 벗어나는 첫걸음입니다.

(266페이지 中)


■어른의 예의

<경신>
'어른의 예의'라는 글이 소셜미디어에서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첫째, 남의 서랍은 열지 않는다(사적인 비밀에 호기심을 갖지 않는다)
둘째, 뭔가 지르면 부러워해준다.
셋째, 지나간 일을 꺼내지 않는다.
넷째, 조언하기 전에 감탄부터 한다.
다섯째, 친구를 사귀려면 칭찬과 선물을 한다.
여섯째, 뭔가가 좋다고 말할 때 찬물을 끼얹지 않는다."

이 글에 세대를 불문하고 공감했습니다. 선생님에게 어른의 예의란 무엇인가요?

(275페이지 中)


<논나>
당연한 예의가 회자되고 있다니 재미있지만 씁쓸하네요. 예의를 갖춘 어른이 많지 않나 봅니다.

첫째, 저는 '나 때는--'으로 시작하는 말을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둘째, 가능하면 젊은이들에게 양보하는 삶을 살려고 노력합니다.
셋째, 새로운 문화를 이해하려 노력하되 그것을 흉내 내거나 평가하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남에게 도움을 줄 때 공치사를 하지 않고 그 일을 최대한 빨리 잊으려고 합니다.
(...)
나이 듦을 긍정하며 그 과정에서 품격을 유지한다면, 충분히 아름다운 어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276~277페이지 中)


■사랑

<논나>
사랑을 시작하든 종결하든 연장하든 《논어》에 나오는 이 말을 기억해 보세요. 결국 애지욕기생. "사랑한다는 것은 그게 살게끔 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사랑한다면 그가 살고 싶은 대로 살게끔 해줘야 하지요.
마음껏 사랑하세요.

(320페이지 中)


=====
마무리
=====

살아온 시대나 나이는 상관없이 허심탄회하게 나누는 진정한 '대화'란 바로 이런 게 아닐까? 두 명의 저자는 서로가 '겪은' 혹은 '겪고 있는' 삶의 문제와 현상들에 대해 조언하거나 충고하지는 않되, 깊이 사유하고, 존중하며 대화를 나눈다.

여기에 더해 논나는 경험에서 우러나온 이야기에 지혜를 더해 건넴으로써 우리가 주변에서 흔하게 보는 꼰대처럼 굴지 않는다. 상황적인 부분에 있어 직설적으로 이야기는 하되, 선택은 본인에게 맡긴다.

이들은 서로의 차이를 인정한다. 그렇기에 어쩌면 이런 대화가 오고 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논나와 경신의 대화 속에는 자신과 타인을 존중하면서 즐겁게 살아가는 방법에 대한 해법들이 많이 담겨 있다.

혼자 최소한 먹고사는 법부터 둘이 최대한 사랑하는 법까지. 저마다의 방식으로 자기다움은 지키면서 내일의 어른다움은 키워갈 수 있는 노하우가 가득하다.

'어떤 어른이 되고 싶은가'에 대한 질문을 시작했다면,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 본 적이 있다면 이 책에서 건네는 대화들이 당신의 물음에 지혜를 더해줄 것이다.

어떻게 나를 지키고, 어떻게 너를 대하고, 어떻게 즐기며 살 것인가를 제대로 배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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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비밀을 묻어드립니다 어쩌다 킬러 시리즈
엘 코시마노 지음, 김효정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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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된 시간, 한정된 장소에서 펼쳐지는 핀레이의 '싹쓸이' 찾기 프로젝트!"


핀레이의 '어쩌다 킬러'는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계속 쭉 이어진다. 전편의 '싹쓸이'를 찾아내라는 펠릭스의 협박성 메시지가 이번 편에서 이어지며, 핀레이는 또 한 번의 위기를 경험하게 된다.

더불어 그가 맡게 되는 사건과 함께 그녀의 로맨틱 스릴러 소설 집필도 함께 이루어지는데, 소설이 막힐 때마다 기가 막히게 찾아오는 사건들은 마치 단짝처럼 함께 한다.

'어쩌다 시리즈'의 3편 <당신의 비밀을 묻어드립니다>는 앞선 이야기들보다 훨씬 더 복잡해졌다. 등장하는 인물도 많고, 1편과 2편에서 다룬 사건들도 다시 한번 거론되며, 인물 간의 관계성과 심리를 더 주의 깊게 파고든다.

말 그대로 '어쩌다' 킬러로 오인받아 시작된 일이 어쩐지 '어쩌다'가 아닌듯한 조짐들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하는데, 자세히 알아갈수록, 관계를 파고들수록, 사건을 살펴볼수록 수상하지 않은 것이 없다.

끝난 것 같은 사건들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며,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는 사실을 지속적으로 핀레이에게 주지시키는 통에 핀레이는 하루도 긴장감을 내려놓을 수가 없다.

결국 어떤 일이든 덮어두고 사는 것이 정답은 아니라는 것을 제대로 알려주려는 건지, 저자는 지속적으로 수상쩍은 사건들에 핀레이를 투입시키며 그녀가 사건을 제대로 파헤치고, 추리하도록 이끈다.(아니 어쩌면 핀레이 입장에서는 강요일지도)

이야기가 더해갈수록 관계는 복잡 미묘해지고, 스토리는 더 깊은 집중력과 몰입감을 선사한다. 어쩌면 7권까지 이어질 이 시리즈에서 우리가 진정으로 바라게 될 가장 큰 목표는 아마도 핀레이의 평범한 일상 되찾기가 되지 않을까 한다.


'어쩌다 킬러' 시리즈의 세 번째 이야기로, 당신의 비밀을 묻기 위해 거침없이 진실을 파헤쳐야만 하는 핀레이와 베로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편으로, 전편의 사건과 새롭게 등장하는 인물 사이에 숨겨진 비밀에 대한 에피소드를 만나볼 수 있다.

전체 시리즈 7편 중 중반에 들어서는 지점에 있는 이번 이야기는 본격적인 사건의 서막에 발을 들인 느낌이다. 앞선 1편과 2편은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깔아둔 밑밥이었다면 3편부터는 안면을 튼 진짜 악당들과 한판 뜨기 전의 상황이라고나 할까?

그래선지 전편에서는 스쳐 지나갈 법한 인물들이 이번 편에서만큼은 보다 구체적으로 서술된다. 악당과 직접적으로 엮이는 것은 물론, 악당 가까이에 있는 인물과 직접 대면하는 일도 생긴다. 또 예상하지 못한 새로운 관계성을 깨닫는 것과 동시에 꺼림직한 '무언가'를 감지하게 된다.

이제 그만 평화로운 일상을 되찾고 싶은 핀레이와 베로지만, 작가는 그들은 그냥 놔두지 않는다. 복주머니를 풀어놓듯 서서히, 그리고 보다 집요하게 이들을 사건으로 끌어들인다.


=====
등장인물 살펴보기
=====

■핀레이 도너번
-'어쩌다' 킬러로 이미지가 굳혀지며, 자신도 모르는 사이 사건을 맡게 되고 그것을 풀어가는 과정에 로맨틱 스릴러 소설을 쓰며 아이 둘을 기르고 있음

■베로니카 루이스(베로)
-핀레이의 아이들을 돌보는 유모이자 회계 일을 도와주고 있는 조력자로, 사건을 함께 해결하는 파트너
-여학생 클럽의 돈을 훔쳤다는 누명을 쓰고 도망치다 사채업자에게 20달러를 빚짐. 그 일로 사채업자 마코와 여학생 클럽 자매들에게 쫓기고 있음


<베로를 쫓는 사채업자>
■마코
-고리대금업자로 베로에게 20달러를 빌려준 후 돈을 돌려받기 위해 압박 중
-알려진 정보가 거의 없음

■아이코
-마코가 보낸 똘마니로 핀레이와 베로를 죽이려는 듯 집요하게 쫓음
-애스턴마틴을 보자마자 차를 가져가려고 실랑이를 하다 결국 차에 깔려 사망


<핀레이에게 관심 있는 남자들>
-닉: 형사
-웨이드: 사격을 가르치는 교관
-스티븐: 전남편
-줄리언: 로스쿨 학생으로 전남친


<악당 일당>
■펠릭스 지로프
-경찰도 함부로 하지 못하는 거물 중의 거물
-전편에서 핀레이에게 싹쓸이의 정체를 밝히라며 협박

■에카타리나 리바코프(캣)
-펠릭스 지로프가 총애하는 변호사
-아이코가 차에 깔려 죽는 모습을 목격하고 핀레이에게 협박


<주요 용의자>
■싹쓸이
-펠릭스 지로프의 웹사이트에서 활동하던 의문의 살인 청부업자
-웹사이트 폐쇄로 자신이 입은 손해를 물어내라며 마피아를 협박했고, 펠릭스는 그 모든 책임을 핀레이에게 돌림
-압박을 느낀 핀레이는 결국 싹쓸이의 정체를 밝히는 일을 도맡게 됨


<경찰 조직>
■조지아
-핀레이의 친언니이자 경찰

■닉 앤서니
-형사이며 조지아와 동료
-전작에서 다리를 다쳐 금속 지팡이를 짚고 다님
-핀레이와 썸 타는 사이

■찰스 콕스(찰리)
-닉의 옛 파트너
-구강암 진단을 받으며 결국 퇴직했지만 여전히 경찰 조직에서 일하고 있음

■조지프 밸러펀트(조이)
-닉의 현 파트너
-의문스러웠던 조이의 일부 정체의 이번에 드러남

■로디
-전작에서 핀레이의 집 앞을 지켰던 형사

■타이리스
-수습 형사, 신참

■새머러 베커(샘)
-유일한 여성
-첨단범죄팀 소속
-마약조직범죄 수사팀과의 합동 태스크포스에 얼마 전에 합류
-조지아와 썸 타는 사이

■웨이드 코피
-사격 교관
-전 형사
-14년 동안 경찰생활을 하며 마약조직범죄 수사팀에서 위장요원으로 근무 중 무릎을 다쳐 그만둠
-어딘가 의뭉스러운 구석이 있음
-일반인과 경찰 관계자들의 사격을 지도

■모하메드 샤리프 박사(모)
-총기 조사관
-월마트 화장실에서 핀레이 아들 재크와 에피소드가 있었음

■스튜어트 커비(스튜)
-뿔테 안경을 쓰고 있음
-해당 경찰서를 전담하는 정신과 의사


<그 외 인물들>
■하비
-하비, 베로, 라몬은 어릴 때부터 붙어 다닌 친구 사이
-잠긴 문을 잘 따고, 베로가 얼굴을 붉힐 정도로 화를 돋울 수 있는 유일한 사람
-베로와는 과거 연인 사이로 추측 됨
-이번에는 라몬을 대신해 하비가 핀레이와 베로의 조력자 역할을 함

■스티븐
-핀레이의 이혼한 전남편
-죽을뻔한 위기를 넘기고 먼 곳에 있다가 다시 최근에 돌아옴
-미스터리한 행보를 보임

■캠
-한 달 뒤면 열여덟 살이 되는 소년으로, 해커
-몇 주 전까지만 해도 소년원에 들어가지 않는 대신 경찰의 비밀 정보원으로 활동
-현재는 그의 해킹 실력을 알게 된 펠릭스 지로프의 제안으로 그의 밑에서 일하고 있음
-실상 정확히 어느 편에서 일하고 있는지 알 수 없음
-캠을 정보원으로 쓰던 경찰과의 진짜 관계가 이번 편에 드러남

■라일리 / 맥신
-방송을 하는 팟캐스터
-경찰 아카데미 교육신청자

■줄리언 베이커
-핀레이의 전 연하 남친
-로스쿨 3학년 학생

■파커
-줄리언의 룸메이트
-줄리언에게 호감이 있는 듯 보임
-검사실 수습 검사


=====
핀레이가 수행해야 하는 미션 3가지
=====

1. 2주 안에 싹쓸이 정체를 밝혀 마피아 보스 펠릭스의 협박으로부터 벗어나는 것

2. 애스턴마틴을 처리하여 돈을 모아 사채업자 마코에게 돈을 갚는 것

3. 실비아의 원고 수정요청을 마무리 지어 원고료를 받는 것


=====
캠이 알려주는 싹쓸이에 대한 힌트
=====

●경찰인 것은 분명함
●싹쓸이를 찾기 위해서는 경찰들이 잘 가는 장소부터 시작할 것
●싹쓸이는 정직하고 깨끗한 형사들, 자기 일에 가장 걸림돌이 될 법한 형사들과 친하게 지내며 늘 그들의 주변을 맴돌며 감시하고 있을 것임
●그들이 모여서 잡담을 나누는 장소를 우선 찾아볼 것
(예: 경찰서, 술집, 도넛 가게 등)

캠으로부터 싹쓸이에 대한 힌트를 들은 핀레이는 마약조직범죄팀의 일원 중 하나일 것이라는 추측을 하게 된다.


=====
문제를 풀 핵심 키워드
=====

◎무기를 다루는 방식(어떤 총을 가지고 다니는지)
◎관계성
◎도청&네트워크


=====
줄거리 살펴보기
=====

일반인인 핀레이는 어느 날 '어쩌다 킬러'로 오인받으면서 청부살인 의뢰를 받게 된다. 실제로 핀레이가 살인을 저지른 적은 없지만, 우연이 겹쳐 핀레이가 마치 처리한 것처럼 소문이 나기 시작하면서 어느새 핀레이는 베로와 짝을 이뤄 사체를 처리하기에 이른다.

그러다 경찰도 함부로 하지 못하는 거물급 인사인 펠릭스 지로프와 엮이게 되고, 그는 자신을 협박하는 '싹쓸이'를 처리하기 위해 핀레이를 협박하며 2주 안에 정체를 알아내라는 메시지를 보낸다.

여기에 더해 베로의 과거가 수면 위로 떠오르며, 베로를 찾아다니는 무리들로부터 위협을 받게 된다. 한 무리는 베로에게 20달러를 빌려준 고리대금업자 마코이며, 또 다른 무리는 여학생 클럽으로, 과거 베로가 애틀랜틱시티에 살 때 절도 혐의로 누명을 썼는데, 이를 해결하지 않고 도망치면서 이들이 베로를 찾아 나선 것이다.

이런 상황이 되자, 일단 몸을 피해있는 것이 필요하다는 판단하에 핀레이와 베로는 아이들을 곧 돌아올 전남편 스티븐에게 맡겨두고 일주일간 경찰 아카데미에서 머물며 3가지 문제를 해결하기로 마음먹는다.

첫째, 닉의 파트너인 수상한 조이의 정체를 확인할 것
둘째, '싹쓸이'의 정체를 파헤칠 것
셋째, 수정요청이 들어온 원고를 수정하여 발송한 후 원고료를 받을 것

무엇보다 현재 핀레이가 가지고 있는 의문점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경찰 조직, 특히 마약 조직범죄팀과 가까워지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는데, 이를 위해서 경찰 아카데미에 잠입하여 경찰들과 친분을 쌓고, 경찰 교육을 통해 정보를 모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래서 핀레이와 베로는 경찰 아카데미에 입성하여 경찰들을 면밀히 살펴보는 한편, 싹쓸이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애쓴다.

그러다가 수상한 일들이 하나 둘 일어나기 시작하고, 이 와중에도 펠릭스의 협박과 사채업자들의 위협은 끊임없이 이어진다. 원하는 않는 상황에 놓인 핀레이는 지속적으로 펠릭스와 엮이지 않기를 바라지만, 이들은 그녀를 쉽게 놓아주지 않는다.

여기에 더해 전남편 스티븐은 다시 합치기를 원한다며 적극적으로 다가오고, 평소 호감을 표했던 닉을 포함해 전남친 줄리언, 그리고 새로운 인물까지 핀레이에게 관심을 보인다.

이 와중에 고리대금업자 마코의 돈을 갚기 위해 핀레이와 베로는 그동안 골칫거리로 남아 있던 애스턴마틴을 팔기로 마음먹는데, 이 또한 쉽지 않다.

베로를 돕기로 한 하비는 차를 팔기는커녕 위험한 상황에 노출되고, 마침내는 애스턴마틴을 도난당하기에 이른다.

경찰들이 가득한 경찰 아카데미 안에서 조차 아무도 믿을 수 없는 핀레이와 베로는 모든 사람을 의심하며, 면밀히 그들의 행보를 주시하기 시작하는데, 이들이 찾는 싹쓸이와 그리고 의심스러운 조이의 정체를 과연 밝혀낼 수 있을지 지켜보는 재미가 있을 것이다.

이번 편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침착하고 순발력 있게 대응하는 핀레이의 대처가 돋보였는데, 갑작스럽게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상황, 목숨을 위협받는 상황 모두에서 핀레이는 상황을 수습하고 누군가를 돕기 위해 서슴없이 몸을 던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또 의심은 하지만, 그렇다고 함부로 단정 짓거나 자신이 살기 위해 타인을 위험에 빠뜨리는 행동은 하지 않는다. 덕분에 누군가는 목숨을 구하고, 또 누군가는 호감을 가지게 된다.

1편과 2편에서 우리가 무심코 넘겼던 이야기와 인물들을 저자는 이번 편에서 한 번 더 언급하며, 좀 더 세밀하게 서술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를 예측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전남편 스티븐의 수상한 행동, 닉과의 로맨스, 사라진 하비와 애스턴마틴과 같은 것들 말이다.

마지막에 핀레이는 모든 일이 끝나고, 따뜻한 목욕, 깨끗한 속옷, 포근한 잠옷, 소파에서 아이들을 껴안고 뒹굴거리는 시간, 길고 긴 휴식을 원했지만 하비와 애스턴마틴이 사라진 것을 보고 곧장 애틀랜틱시티로 가게 된다.

아마 다음 이야기는 애틀랜틱시티에서 시작되지 않을까 한다. 어쩌면 그동안 꽁꽁 숨겨져 있던 베로의 과거, 그리고 하비와의 관계에 대해 알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시간이 갈수록 추리력이 날로 늘어가는 핀레이의 스릴 넘치는 일상 속 이야기는 읽는 독자들마저 아드레날린이 폭발하게 만든다. 그런 한편 너무 조심성이 많아 오히려 뒷전으로 밀리던 로맨스는 이번에 미약한 진전을 보여주었는데, 앞으로 어떻게 발전할지, 이 부분도 궁금증을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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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 깊었던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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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에는 나도 새사람이 되고 싶었다. 나는 범죄자도 살인자도 아니다. 적어도 자의로 누구를 죽은 적은 없다.

석 달 전, 내 미니밴에서 죽은 채로 발견된 해리스 미클러라는 추잡한 회계사 역시 결코 내 손에 살해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의 아내, 퍼트리샤는 기어코 내게 수고료를 지불했다. 나는 살인 청부업자가 아니라고 미클러 부인에게 몇 번을 설명했는데도 자꾸만 비슷한 일감이 찾아왔다.

2주 전, 나는 새해를 맞으며 세 가지 중요한 결심을 했다. 정크푸드 끊기, 남자 멀리하기, 내 차에 시체 싣지 않기. 딱히 우선순위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1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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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웃픈 새해 결심이다. 어느 모로 보나 평범한 새해 결심은 아니다. 원치 않지만 '어쩌다' 자꾸 벌어지는 상황으로 인해 핀레이는 남자가 꼬이고, 시체를 자꾸 차에 싣는 일이 발생한다.

소설에서 이런 결심을 했다는 것은 앞으로도 결국 이런 일이 벌어질 거라는 암시가 아닐까?

우선순위를 떠나서 이 중 몇 가지는 이번 편에서 이미 어겼다. 핀레이의 결심을 무너뜨리게 만든 원인(?)이 무엇이었는지는 직접 책을 통해 확인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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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너번 씨,

내 인내심에는 한계가 있어요. 딱 2주 드리죠.

-Z

2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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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일상을 살고 싶어 하는 핀레이에게 왜 자꾸 이런 악당들이 꼬이는 걸까? 이번에 핀레이는 제대로 악당에게 코가 꾀었다.

덕분에 내내 협박에 시달리며, 그가 원하는 '싹쓸이'의 정체를 밝혀내지만, 결국 그는 핀레이의 목숨까지 빼앗으려 들었다.

언제쯤 핀레이는 악당과 시체에서 벗어나 편안한 일상을 살아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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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문제가 뭔지 알아요? 스스로 그 남자를 차지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래서 그렇게 거리를 두고 있잖아요. 자신이 형편없는 사람이라는 터무니없는 생각을 갖고 있으니까요.

해리스, 안드레이, 칼, 아이크에게 닥친 일에 죄책감을 느끼잖아요. 그중 한 명도 안 죽였는데 말이죠. 당신이 한 일은 전부 누군가를 보호하려고 한 일이에요. 아이들, 어머니, 전 남편, 그런데 아무도 몰라주죠..."
(...)
"닉은 그냥 당신을 원하는 거예요, 핀. 그러니까 당신한테 자격이 없다는 소리는 집어치워요."
298~29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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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만 움츠러들고 피하기만 하는 핀레이를 보다 못한 베로가 핀레이를 다그치는 부분이다. 자신의 감정을 속이지 말고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이야기하는 부분이다.

앞서 핀레이의 감정이나 생각은 무시하고 마구 밀어서 은근히 베로의 태도가 짜증 났는데, 이 장면만큼은 나 역시 동의하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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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증을 유발하게 만들었던 장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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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짜증 유발자: 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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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소식은 뭔데요?" 나는 방으로 들어온 순간에 본 베로의 표정을 떠올리며 조심스레 물었다. 그녀는 내 컴퓨터를 보고 있었다.
(...)
"실비아가 새 결말이 마음에 든대요."
(...)
"결말을 쓰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새 결말이 마음에 들 수가 있죠?" 싱글거리는 베로를 보니 심장이 철렁했다.

"우리가 점심 먹고 있을 때 실비아가 당신 휴대전화로 결말을 어떻게 고치고 있느냐고 물었죠. 마침 당신이 줄을 서 있기에 내가 답장을 보냈고요. 주인공들이 황홀한 섹스 후에 멕시코의 뜨거운 해변에서 마르가리타를 마시고 있다고 했어요."

"아니, 안 돼요!" 나는 양말을 벗어 그녀의 머리에 던지며 소리쳤다.
(...)
"방금 당신이 어떻게 수정할지 요약한 자료를 실비아에게 보냈어요." 베로는 단호하게 덧붙였다. "마감일을 미뤄달라는 요구도 했고요. 감사 인사라면 접어둬요."
혈압이 치솟아 머리까지 쿵쿵 울렸다.
208~20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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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 작가는 핀레이다. 그리고 그것을 집필할 권리와 스토리 진행 방법 역시 핀레이에게 있다. 그런데 자꾸만 주변 사람들은 핀레이의 로맨스에 있어 딴지를 건다. 소설과 현실 모두를 감놔라 배놔라 하다가 결국에 선을 넘어 베로는 자신이 핀레이를 대신해 저질러 버린다.

나라면 엄청 짜증 났을 것 같은 장면이다. 특히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중요시하는 미국에서 이런 게 허용되는지가 의문이다.

내가 없을 때 함부로 내가 쓴 소설의 원고를 읽고, 출판 담당자에게 맘대로 답장을 한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다.


■두 번째 짜증 유발자: 스티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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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합숙인지 훈련인지 뭔지가 끝나면 말이야, 우리는 가족으로서 이 문제를 상의해야 돼." 그는 호주머니에서 꺼낸 명함을 내밀었다. "상담 전문의 연락처야. 내 변호사가 몇 달 전에 소개해 줬어.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야."

나는 그의 면전에서 명함을 구긴 다음 쓰레기통을 찾아 주위를 두리번 거렸다. "전문가 따위는 필요 없어, 스티븐!"

"가족 상담 전문의야, 핀레이. 우리 둘이 같이 가야 해! 가이도 그게 좋겠대." 나는 구겨진 명함을 스티븐에게 던졌다. 그는 그것을 다시 내 외투 주머니에 넣었다." 정신이 돌아오면 아이들과 함께, 집에서 보자고." 스티븐이 이를 악물고 말했다.
289~29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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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가 바람을 피워 이혼까지 해놓고 다시 핀레이에게 재결합을 원하는 전남편 스티븐의 행동은 뻔뻔함을 넘어 폭력적이다.

'가족으로서'의 관계는 이미 끝났다. 그리고 여기에 핀레이에게 무자비하게 굴었던 그의 친구이자 변호사 '가이'는 절대 핀레이에게 환영받을 수 없는 인물이다.

가족 상담은 양쪽 모두 마음이 있을 때, 수락했을 때나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지금의 상황을 놓고 보면, 스티븐의 일방적인 구애 혹은 폭력적인 요구로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가뜩이나 사는 것이 고달픈 핀레이인데,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이 더 한 고통을 주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읽는 내내 짜증이 났던 장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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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표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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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디저트를 원했다. 결과야 어찌 되든.
32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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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에서도 그렇고 이번 편에서도 닉과의 관계는 언제나 디저트 혹은 후식으로 비유된다. 그만큼 달콤한 것, 달달한 것, 계속 생각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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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증으로 남은 사항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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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의 궁금증 중 3가지는 이번 편에서 해소되었다.

▶'싹쓸이'의 진짜 정체
▶의뭉스러운 '조이'의 정체
▶스티븐을 죽이려 했던 쉐보레 세단을 모는 사람의 정체

그렇지만 또다시 새로운 궁금증이 배로 늘었다.

▷바버라가 있는 웨스터버의 집 숲에서 찰리는 정말 덤불에서 핀레이를 발견하지 못했을까?
▷마코의 진짜 정체
▷캠은 누구의 편일까?
▷전 남편 스티븐은 대체 무슨 일을 저지른 것일까?
▷핀레이는 펠릭스와의 관계를 제대로 끊어낼 수 있을까?
▷폐차장 입구에서 남색 아우디에 뉴저지 번호판을 달고 몰래 사진을 찍고 있던 사람의 정체는?
▷조이의 정체는 밝혀진 게 전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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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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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레이의 소설은 핀레이가 직접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쓰인다. 그래서 소설과 실제 현실 속 사건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로 자리 잡게 된다.

사건은 언제나 핀레이의 소설이 막힐 때쯤이면 어김없이 벌어진다. 그리고 현실 속 사건이 해결되면 소설도 빛의 속도로 마무리가 되며 출판사 담당자의 오케이 사인과 함께 원고료가 지급된다.

여기에 더해 핀레이의 추리력과 촉은 점점 더 발달하며, 현직 경찰들이 감지하지 못하는 부분까지 추측하기에 이른다.

덕분에 하나 둘 목숨을 빚지는 사람들도 늘어난다. 핀레이는 누군가를 돕기 위해 비밀을 만들고, 추리를 하고, 목숨을 건 사투를 이어 나간다.

늘 평범하고 평화로운 일상을 꿈꾸는 그녀지만, 현실은 그와 많이 동떨어져 있다. 이번에 그녀는 또다시 그들 자신의 안전을 위해, 사건 해결을 위해, 하비를 구하기 위해, 빼돌린 차를 되찾기 위해 애틀랜틱시티로 가게 된다.

부족한 잠도, 갈아입을 옷도, 아이들도 챙기지 못하고 또다시 베로와 함께 여행 가방을 싸고 떠나야 하는 것이다. 이쯤 되니 이제는 좀 안쓰럽다는 생각도 든다.

일상에서 시체를 보는 것, 그것을 처리하는 것, 목숨의 위협을 받는 것, 누군가를 구해내는 일이 얼마나 큰 피로감과 트라우마를 줄 수 있는지 알기에 더 그렇다.

물론 독자인 나는 그녀들의 버라이어티 한 일상과 스릴러 넘치는 추리를 한껏 즐기겠지만, 인간 대 인간으로 보자면 좀 쉬는 타이밍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어쩌다 킬러'로 오해받아 벌어진 이 해프닝의 끝에 과연 어떤 결말이 기다리고 있을지 숨죽이며 지켜보게 된다. 핀레이의 행복을 응원하며 다음 편을 기약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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