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어느 하루 눈부시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 대중문화평론가 정덕현의 가슴에 오랫동안 남은 명대사들
정덕현 지음 / 페이지2(page2) / 2024년 6월
평점 :
"가슴을 후벼파는 드라마 속 대사 한마디에서 촉발된 감정, 경험, 추억, 사람에 대해 고백하는 시간!"
처음에는 이름만 말하면 알만한 쟁쟁한 작가들(김은숙, 박지은, 박해영, 이남규, 이우정, 임상춘)의 추천사를 받은 이 책의 저자가 궁금했다. 그러다 책을 읽으며 지극히 사적인 나의 추억과 이야기들을 떠올려 보게 되었다.
보통 드라마에는 우리의 인생이 담겨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막장 소재든, 법정 드라마든, 달콤한 연애 이야기든 우리는 드라마를 보며 그 속에 빠져들어 울고 웃으며 주인공에 동화되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저자 역시 드라마 속 대사 한마디에서 그런 자신의 삶을 떠올리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기에 이토록 그의 내밀하고 사적인 감정, 경험, 추억, 그리고 사람에 대해 신명 나게 담아낸 것이 아닐까 한다.
총 5개의 파트로 구성된 이 책은, 유수의 드라마들 중 저자의 가슴에 와서 콕 박힌 대사 한마디를 중심으로 지극히 사적인 여러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그래서 만약 추천사나 드라마 제목만을 보고 특정 드라마의 내밀한 무엇을 기대했다면, 살짝 실망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거기에서 책장을 덮지 말고, 천천히 읽어보라고 말하고 싶다.
읽다 보면 '이 대사에서 이런 전개로 발전한다고?'하는 지점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러다 어느 순간 돌아보면 저자의 이야기가 아닌, 나의 삶과 나의 이야기로 전환되어 있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우리의 가슴을 울리고, 때론 충만하게 채워주는 드라마 속 한 줄. 어쩌면 이 한 줄이 우리를 살게 하고, 또 웃고 울리는지도 모르겠다. 나보다 내 마음속을 더 잘 알아주는, 드라마 속 한 줄을 통해 모처럼 내 삶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한다.
=====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우울증으로 자신의 심연 속으로만 파고 들어가는 선아에게 동석은 '나중'은 없다며 "등만 돌리면 다른 세상이 있다"라고 말한다. '나중에'. 굴을 파고 들어가는 이들이 자주 쓰는 말이다. 하지만 나중으로 자꾸 미루다 보면 거기에만 머물러 그 어떤 새로운 일도 벌어지지 않게 된다. 그러니 누군가 열심히 굴을 파고 있는 이가 있다면, 커피라도 한잔 내주며 잠시 등 돌리게 해주는 것도 좋을 게다.
25페이지 中
=====
실상 우리 삶을 되돌아보면, 나중으로 미루는 일들이 너무나 많다. 그래서 변화는 더디고, 늘 삶은 쳇바퀴처럼 굴러간다. 만약 다른 삶을 꿈꾸고 있다면, 나중으로 미루기보다 지금 당장 실행해 보는 선택을 해보자.
약간의 변화만으로도 충분히 우리는 전혀 다른 세상을 마주할 수 있다. 늘 마음속에 해보지 않은, 하고자 했던 무언가가 있다면 지금, 오늘, 아니면 이번 주 주말에 꼭 해보기를 추천한다.
실제로 진행해 본 자의 경험으로 이야기해 보자면, 해냈다는 뿌듯함과 개운함 뒤에는 새로운 뭔가가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그러면 거기에서부터 다시 또 출발점으로 삼고 앞으로 나아가면 된다.
=====
"내가 어떤 사회적인 어려움이 있더라도, 이렇게 요가하듯이 살면 될 것 같아. 나 혼자 숨 들이마시고 내쉬고." 함께 요가를 하는 아내가 언젠가 돌아오는 길에 그렇게 말한 적이 있다. 뭔가를 가지려고 아등바등하면서 살아가지만, 결국 온전한 내 것이란 바로 요가 매트 정도의 공간과 그 위에 누워 있는 내 몸 정도라는 걸, 한 시간 동안의 요가 자세로 욱신거리는 몸이 알려주는 것만 같다. 그러니 가끔은 눈을 감고 들숨과 날숨에 집중해 보자. 낡아서 삐걱대는 것이지만 온전한 내 것이 얼마나 소중한가. 모든 걸 잃는다고 해도 늘 내 것으로 남아 있는.
96~97페이지 中
=====
소유욕에 눈이 멀어 이것저것 사들일 때는 내 손안에 들어오는 모든 것이 모두 내 것 같지만, 실상 진짜 온전한 내 것인가 하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생각도 든다.
물건들은 언제든 버려지고 사라질 수 있는 것들로, 그런 것들을 진정한 내 것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조금 부족해 보인다.
그렇다면 진정한 내 것은 무엇일까? 늘 나와 함께 하고, 나를 지탱해 주고, 늘 나의 편에 서서, 늘 내 것으로 남아 있는 것. 어쩌면 몸뚱이야말로 세상에서 하나뿐인 진정 내 것이 아닐까?
=====
"죽다 살아나 보니까 다 필요가 없더라." 《닥터 차정숙》에서 의사 남편 내조하며 20년을 전업주부로 살아왔던 차정숙은 간 이식 수술을 받아야 살 수 있는 상황을 겪으며 각성한다. 믿었던 남편조차 간 이식을 해주는 걸 두고 갈등하는 모습을 보면서 의사 아내로서 그럭저럭 만족하며 살아가던 삶이 다 무의미하게 느껴진 것이다.
죽음에 대한 실감은 이처럼 자신의 삶이 보다 소중하다는 걸 알게 해준다. 그래서 그 삶을 바꿔놓을 수 있는 힘이 있지만 우리는 이를 그저 지나치면서 별 게 아닌 것처럼 생각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죽을 수도 있는 위험천만한 일들은 우리 가까이 늘 있지 않을까.
난 죽을 뻔했던 경험이 있다. 아마 여러분들도 그럴 것이다.
117~118페이지 中
=====
그래서 죽을뻔한 경험을, 죽음과 가까운 경험을 한 사람들은 마인드가 확 바뀌는가 보다. 스치고 지나갈 땐 별것 아닌 것처럼 생각하다가 그것을 몸소 경험한 뒤에야 비로소 삶이 얼마나 소중한 지를 깨닫는 것이다.
우리 삶에는 매 순간 삶을 바꿔놓은 힘과 기회들이 도사리고 있다. 중요한 건 이것을 어떻게 활용하느냐, 그리고 어떤 마음으로 삶을 살아가느냐가 아닐까 한다.
입버릇처럼 삶이 중요하고 소중하다고만 말하지 말고, 진정으로 내 삶을 아끼고 소중히 다뤄보면 어떨까 한다.
=====
사회생활을 하면서 감정을 드러내는 일은 불이익으로 돌아오기 마련이다. 그래서 어려서는 그토록 잘 웃고 잘 울던 사람이 나이가 들어갈수록 포커페이스가 되어간다. 자신의 패를 들키면 이 판에서 이길 수 없다는 걸 아는 우리들은 어떤 패가 들어와도 내색을 하지 않으려 한다. 그래서 영화를 보거나, 드라마를 볼 때 과장되게 웃고 때론 몰래 눈물을 훔치는 것이 그 작품 때문인가 싶어질 때가 있다. 작품이 너무 웃기고 눈물 나서 감정을 드러내는 게 아니라, 그런 감정을 마음껏 드러내기 위한 핑계로 작품들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그런 감정들을 꺼내놓을 수 있는 공간이나 순간 혹은 사람들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때론 신나게 노래하고 싶어 노래방을 찾듯이, 꾹꾹 눌러놓은 감정들이 수위를 넘어 넘쳐흐르려 할 때 저마다 찾아갈 수 있는 소중한 공간과 순간과 사람들이 있다는 건 얼마나 행운인가. 만일 당장 그런 걸 당장 찾기 어렵다면 가까운 한증막이라도 찾을 일이다. 소설책 하나 챙겨 들고. 홀로 드라마나 영화 한 편 이라도 볼 일이다. 단단히 채워놨던 감정의 빗장을 열어놓고.
123~124페이지 中
=====
언젠가부터 내 솔직한 감정을 털어놓는 것이 힘들어졌다는 것을 실감한다. 아마도 사회생활을 하며 이런저런 경험이 쌓인 때문이 아닐까 한다.
저자의 말처럼, 감정을 드러낸다는 것이 결코 사회생활에서 플러스로 작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어쩌면 우리는 회색도시의 회색 인간처럼 변해 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때로는 응어리진 감정을, 꾹꾹 눌러 담은 감정을 풀어내는 것도 필요하다. 어떤 핑계를 대어서라도 가끔은 솔직한 감정들을 풀어내보자.
소설을 읽으며, 드라마를 보며, 영화를 보며, 아무도 없는 공간을 활용해 나의 희로애락을 풀어보면 어떨까 한다.
=====
사실 통증이 몸의 신호라는 걸 모르는 이들은 없다. 그래서 그걸 방치하면 마치 사과 궤짝에 멍든 사과 하나를 빨리 꺼내놓지 않아 다른 사과들이 상하는 것처럼 더 안 좋은 상황을 일으키게 된다. 그래서 통증을 느끼는 건 살아있다는 뜻이고 또 어떤 면에서는 살고 싶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지만 가족들을 보면 다른 이가 아플 때는 티 좀 내라고 그래야 큰 병 안 만든다고 하면서도 정작 자기가 아플 때는 티를 내지 않으려는 이들이 많다. 썩어서 가족들에게까지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저 스스로 가족이라는 궤짝을 떠나려는 이들조차 있지 않은가.
하지만 그건 이타적인 게 아니라 이기적인 생각이다. 그렇게 떠나버리면 남은 이들이 느낄 상실감과 아픔은 어쩔 것인가. 그러니 몸이든 삶이든 아프면 티를 내야 한다. 그래야 그 아픔을 덜어내고 치유할 수 있을 테니.
174페이지 中
=====
이상하게 타인에게는 한없이 관대하면서 자신에게는 유독 무심한 사람들이 은근히 많다. '괜찮다' 말하지만, 실상 타인에게는 당장 병원 가보라고 말할 상태이면서도 말이다.
나는 나에게 있어 가장 소중하고, 또 최우선이 되어야 한다. 고로, 몸이든 삶이든 아프면 티를 내어 방법을 찾아야 한다. 남을 챙기기에 앞서 나부터 챙겨야 남도 제대로 챙길 수 있음이다.
통증을 살아있음의 증표로만 여기지 말고, 살아가기 위해 치유를 더 먼저 고려해 보기를 추천한다. 그래야 나, 너, 우리가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다.
=====
어찌 보면 나이 든다는 건 '견딜 수 있는 고통이 커져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피하고 싶은 고통들이 우리네 삶 도처에 지뢰처럼 깔려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차라리 즐기는 마음으로 버텨내라 말하고 결과로 돌아올 성장을 열매처럼 이야기하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그 달달한 열매 때문에 모든 고통을 감내할 필요는 없다. 너를 죽이지 못한 모든 고통은 결국 너를 성장시킬지도 모르지만, 너를 성장시킬 고통이 너를 죽일 수도 있으므로
211페이지 中
=====
한때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책이 논란이 된 적이 있는데, 청춘이라고 해도 모두 아파야 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견디지 못할 고통이 나를 짓누르고 있다면 굳이 감내할 필요는 없다.
때로는 돌아가거나 포기하는 것도 정답이 될 수 있으니, 부디 고통을 버텨내는 방법으로만 마주하려고 하지 말자. 죽을 만큼 힘들다면, 죽음으로써 고통을 감내하려고 하지 말고, 나를 성장시킬 딱 그만큼만 받아들이고 이후에는 피해 가자. 지뢰는 피하는 게 답이다.
=====
"처음부터 쉬운 게 어딨어. 자꾸 해 봐야 쉬워지고 재밌어지지." 어느 날 아들이 내게 주문을 걸듯 그렇게 말했다. 그 말이 맞았다. 재미있는 것도 연습이 필요하다. 억지로라도 일 바깥으로 나와 헛짓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을 게다. 그래서 매일 걷기로 했다. 한 시간 정도 땀이 날 정도로 무작정.
사색을 하는 그런 게 아니라 아무 생각도 안 하고 온전히 몸에만 집중하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그렇게라도 일 바깥으로 나오는 연습을 하다 보면 어느 날 마술처럼 내게도 하고 싶은 일들이 막 떠오르지 않을까 싶어서다.
그리고 알게 됐다. 내가 걷는 걸 상당히 좋아한다는 걸. 안나라수마나라-
261~262페이지 中
=====
우리 몸이 익숙해지려면 무엇이든 연습이 필요하다. 하물며 재미있는 것 역시도. 해보지 않으면 우리는 알 수가 없다. 내가 좋아하는지, 관심 있는지, 싫어하는지, 재미있 어하는지, 잘 맞지 않는지.
그래서 억지로라도, 헛짓처럼 여겨지더라도 시도하고 도전하는 것이 필요하다. 저자도 이를 위해 바깥으로 나와 걷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이 걷는 걸 상당히 좋아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다면, 일단 저자처럼 걷는 것부터 시작해 보면 어떨까? 그렇게 살고 있는 동네, 00동, 00시, 대한민국 등으로 서서히 대상을 넓혀가는 것이다.
그렇게 하다 보면, 새로운 도전 목록들이 점차 많아질 것이고 하나씩 경험해 보다 보면, 나에게 맞는 것들이 점차 쌓여갈 것이다.
*****
이 책에 담긴 45개의 드라마를 살펴보면, 본 것도 있고 보지 못한 것도 있다. 하지만 그 드라마를 대표하는 대사 한마디는 어딘가 모르게 익숙하다. 그래서 책을 읽지 않아도, '차례'를 쭉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뭔가 인생 이야기가 절로 펼쳐지는 기분이다.
임팩트 있는 한 줄은 영화는 물론 드라마가 오래 회자되게 하는 데 톡톡한 역할을 하는 만큼 그 위력은 상당하다. 하지만 이 글에서만큼은 꼭 그 한 줄에 집착하기보다 저자의 이야기를 거쳐 나온 내용을 바탕으로 써보고자 했다.
훅 치고 들어오는 무엇을 바탕으로, 거기에서 떠오른 나의 감정, 생각, 추억들을 고이 담아 보았다. 덕분에 앞으로 살아가면서 삶에 무엇을 더해 봐야겠다는 결심 혹은 목표가 생겼다.
아니,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추가되었다. 해봐야 할 것들이 많아지니 실패한 것에 굳이 미련가질 필요도 없고, 죽을 만큼 힘든 고통을 굳이 떠안고 갈 필요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대신 더 많은 것들에 도전해 봄으로써 나를 더 알아가는 시간, 나에 더 집중하는 시간, 나를 더 채워가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한다. 그러다 보면 내 삶 전체가 '어느 하루 눈부시지 않은 날이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