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널 살아 볼게 - 그림 그리는 여자, 노래하는 남자의 생활공감 동거 이야기
이만수.감명진 지음 / 고유명사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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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내가 만나 다른 듯, 닮은 듯한 우리로!"



요즘은 타인의 일상을 들여다보거나 들을 일이 잘 없는데, 이 책을 읽으며 모처럼 타인의 이야기를 엿볼 수 있었다. 그림 그리는 여자 '명진'과 노래하는 남자 '만수'가 만나 동거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책에는 소소한 일상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보통 동거 이야기나 남녀 연애 이야기라고 하면 사랑 이야기나 남녀의 차이에 대한 약간은 뻔하고 진부한 이야기들이 주를 이루는데, 이 책에서는 그런 이야기는 제외되고 담담하게 일상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어 오히려 더 시선이 간다.


일상의 습관, 너와 나의 차이(남녀의 차이가 아님), 함께 하며 닮아가는 점, 다른 관점 등을 각자의 시선으로 풀어놓고 있어 이것들을 구분하면서 보는 재미가 은근히 있다.


같은 것을 두고도 다른 것을 생각하고, 느끼는 너와 나. 하지만 함께 하기에 어느새 닮아가는 우리. 그것을 남녀로 구분하지 않고 너이기에, 나이기에 다르다고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모습에서 편안함이 느껴진다.



총 3장으로 구성된 이 책에는 같은 주제에 대한 만수와 명진의 다른 이야기를 함께 만나볼 수 있다. 여기에 더해 개성 넘치는 명진의 일러스트까지 더해져 재치 넘치는 상황들을 눈으로도 확인해 볼 수 있다.


소소하지만 다정다감한 이들의 일상 이야기를 통해 우리네 삶을 떠올려보는 시간을 가져봐도 좋겠다. '함께' 한다는 것이 무엇일까 문득 의문이 드는 순간이 있다면, 이들의 이야기에서 힌트를 얻어봐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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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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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인 이야기를 드러내기가 민망하고 어색한, 소심한 성격의 명진과 만수는 서로를 이해하고, 지나가는 순간들을 붙잡아 두고 싶어 하루하루를 기록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들은 처음 만난 날도, 처음 데이트 한 날도 기억하고 있는데 그림을 그리는 명진에게 몇 번 짜 쓰고 남은 고가의 물감을 전해준다는 핑계로 약속을 잡았고 그렇게 2012년 봄, 둘은 만났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은 함께 지내고 있다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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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자세히 들여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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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


<만수>

진이와 함께 살기 시작한 뒤로 산책은 우리가 즐겨 하는 데이트가 되었다. 소문난 커피집들을 찾아가고, 하릴없이 동네를 돌아다니며 길고양이 밥을 챙겨주는 재미가 쏠쏠하다. 같이 살게 되면서 함께 있는 시간은 늘었지만 같은 공간에서 각자 일하는 게 익숙해지면서 오히려 입을 꾹 다물고 말없이 지낼 때가 많았다. 산책은 그랬던 우리에게 '햇볕 따라가기' 같은 것이다.


<명진>

오빠와 함께한 시간이 깊어지면서 오빠 취향이 점점 내 것이 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산책이 그중 하나다. 이따금 오빠의 산책에 따라나서곤 했는데, 이제는 내가 먼저 산책을 다녀오자며 현관에서 오빠가 준비하길 기다리곤 한다.


사람은 변하기 어렵다고들 하는데 어쩌면 내가 변한 게 아니라 나조차 모르던 나의 취향을 오빠 덕분에 찾은 게 아닐까.



■키 생각


<만수>

그리 크지 않은 키로 진이를 안아줄 때마다 군 시절 내게 키를 떼주고 싶다던 후임 생각이 난다. 그렇게만 해준다면 지금이라도 너를 등에 업고 군 생활을 다시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키 생각을 하다가 이런 우스운 상상을 다 해본다.


<명진>

내 조카는 어느새 초등학교 3학년이 되었다. 만날 때마다 여전히 아가 같은 얼굴로 냉큼 달려와 안기는 나의 첫 조카. 이제는 내가 달려가 안겨야만 할 것처럼 키가 훌쩍 커버렸다. 나는 이제 작아질 일만 남았네 하는 생각에 금세 우울해진다.


하아. 그런 점에서 보면 오빠는 내게 꼭 맞춰 태어난 듯하다. 오빠 품에 안기면 언제나 심장 소리를 들을 수 있어서 좋다.



■서울


<만수>

큰 꿈을 안고 상경한 지도 10년이 훨씬 지났다. 새로운 곳에서 느끼는 설렘, 초심자의 열정, 치기 어린 자신감 같은, 그 당시 가졌던 감정과 다짐들은 온데간데없지만 지금도 변함없이 남아 있는 건 오로지 사투리. 그것만이 나를 증명해 준다는 사실에 헛웃음이 나온다.


같이 산다는 건 어쩌면 잘 알아듣기 어려운 낯선 타지의 말을 가만히 들어주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명진>

낯섦 사이로 오빠의 익숙한 사투리가 들려오면 그래도 서울이라는 곳에 내 곁이 하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식사습관


<만수>

처음 진이를 만났을 때 놀랐던 건 밥을 화난 것처럼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먹는 것이었다. 늘 대화가 가득한 식사시간을 동경해왔던 나로서는 섭섭하고도 답답한 장면이었다.


<명진>

나는 배가 고프면 먼저 손발이 떨리고 날이 선다. 먹기 시작하면 그 어느 때보다 최고의 집중력을 발휘해서 후다닥 먹어치운다. 그래서 밥 먹을 때는 말할 틈도 없다.


연애 초기에 오빠는 이런 나에게 화가 났냐고 자주 묻곤 했다. 그때마다 어릴 때부터 밥상에선 말하는 것이 예의가 아니라고 배워서 그렇다며 당당하게 아빠 핑계를 대곤 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그런 습관이 생긴 건 나의 식탐 때문이다.



■자전거, 삶의 질이 달라집니다


<만수>

몇 달을 벼르고 별러서 자전거를 샀다.

덕분에 가까운 곳은 걸어 다니고 먼 거리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그만이던 우리의 행동반경에 큰 변화가 생겼다. 요즘은 가보지 못한 새로운 길을 발견하는 재미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명진>

오빠 하나, 나 하나, 자전거를 샀다.

하루하루가 똑같았던 내 일상에 자전거가 활기를 불어 넣어준다. 걸어 다닐 때와는 다르게 자전거를 타면 보이는 풍경이 다르고, 느껴지는 촉감이 다르다는 걸 새삼 느낀다. 게다가 십 년 가까이 살아온 동네가 이렇게까지 새로워 보인다는 게 놀랍기만 하다.


"행복은 멀지 않은 곳에 있어요"라는 말에 이제껏 별로 공감하지 못했는데 정말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아직도 자전거를 살까 말까로 고민한다면 고민하지 말고 어서 판매점으로 가시기를.



■칫솔


<만수>

진이의 파랑색 새 칫솔은 또 금세 복슬복슬 귀여워졌다.

진이의 웃음 소리 같다.


<명진>

칫솔을 볼 때마다 오빠와 나의 성격이 보이는 것 같아 웃음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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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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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 이야기에서는 서로 닮아가는 모습이 보이고, 「키 생각」 「서울」에서는 서로의 생각이 전혀 다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식사습관」에서는 연애 초반에 오해할 뻔한 상황을 엿볼 수 있었고, 「자전거, 삶의 질이 달라집니다」에서는 서로의 시선이 같아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칫솔」에서는 다름이 서로에게 매력으로 보인다는 점에 있어 귀엽게 다가오는 부분이다.


이처럼 연애는, 함께 산다는 것은 다른 너와 내가 함께 만나 '우리'가 된다는 것이다. 남녀로 구분 짓기에 앞서 다른 환경, 다른 습관, 다른 생각을 품은 너와 내가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존중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들은 12년을 함께 하며 서로의 삶, 생각, 습관, 행동 패턴 등을 나눴고, 이제는 각자 또 따로의 삶을 잘 영위하며 닮은 듯 다른 나와 우리의 삶을 이어나가고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내가 하고, 내 마음에 차지 않는다고 해서 화를 내거나 잔소리를 하지 않는 것. 좀 서툴러도 마음에 차지 않아도 그대로 인정해 주고 받아들여주는 것.


함께 산다는 것은 그런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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