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율의 시선 (반양장) - 제17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 ㅣ 창비청소년문학 125
김민서 지음 / 창비 / 2024년 4월
평점 :
"내면 깊은 관점으로 나와 세상을 자세히 들여다보게 만들었던 율의 시선!"
읽는 내내 수십 개의 밑줄을 긋게 만들었던 소설! 청소년 문학으로 분류되어 있지만, 사실 어른들이 읽어보면 더 좋을 소설! 나는 이 책을 이렇게 소개하고 싶다.
깊은 상처를 받은 아이가 바라보는 세상은 어떨까? 보통 겉치레식 위로와 인사는 건넬지언정 실상 그 아이가 가슴에 품은 생각에 대해서는 아무도 자세히 들여다보려 하지 않는다.
너도 나도 모두 저마다의 상처와 아픔을 가지고 있지만 하나같이 모두 똑같다. 공감과 이해에 앞서, '평범'과 '정상'의 범주 안에 들어야 한다는 생각만 가득 차서 그것만을 강요하고 또 밀어붙인다.
그 속에서 상처는 아물기보다 오히려 덧나고 희망보다는 좌절에 가까워지며 진심은 깊은 심연으로 가라앉는다. 그렇게 너도 나도 가면을 쓴 모습으로 타인을 대하고 의미 없는 관계만 지속할 뿐이다.
여기, 자신이 아버지를 죽였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한 아이가 있다. 그 아이는 삶과 관계에 있어 깊은 무력감과 공허함에 빠져있다. 그리고 '정상인'처럼 살아야 한다는 주변의 압박에 아이는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숨기고 헛헛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이 소설은 그 아이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세상과 타인에 대해 그리고 있는 소설로, 그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나의 세계는 물론, 타인의 세계까지 이해할 수 있는 시선을 가지게 될 것이다.
총 4부로 구성된 이 책은 율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세상과 타인에 대해 그리고 있는 소설로, 상처를 입은 한 아이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봄과 동시에,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진짜 세상에 대해서도 함께 확인해 볼 수 있다.
특히 율이가 세상의 시선과는 다른 눈으로 자신을 바라봐 주고 보듬어 주는 도해를 만나 변화하고 성장해가는 모습은 매우 경이롭게 다가온다.
또 그 마음을 받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고스란히 자신만의 방법으로 되돌려주는 모습을 보면서 더불어 살아가는 모습이란 바로 이런 거구나 생각하게 만든다.
남의 일에는 나몰라라하는 세상 속에서 마음을 다친 율이가 도해를 만나 다시 씩씩하게 앞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을 함께 지켜보며 당신도 힘을 냈으면 좋겠다.
위로가 필요한 순간, 나의 세상이 온통 검게 물들여져 있다고 느껴지는 순간, 타인의 몰 이해에 나만 고립되어 있다고 생각되는 순간 이 책을 꺼내 들어보자.
그렇게 율이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나만의 세상이 새롭게 열리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
등장인물 소개
=====
■안율
-열다섯 살(중학교 3학년)
-아버지가 사고로 돌아가시면서 엄마와 단둘이 살고 있음
-자신 대신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아빠로 인해 PTSD(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고 있음
-서진욱/김민우/김동휘는 같은 반 친구이자 가장 친한 친구들
-율이는 네 명 중에서 가장 만만하고 약한 애
■이도해
-열다섯 살
-반에서 왕따
-불행한 가정에서 어렵게 살고 있음
-율의 변화에 큰 영향을 끼친 친구
-이도해라는 이름을 싫어하며, 북극성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를 원함(북극성이라고 불리면 나도 빛날 것 같아서)
-잠깐 시선을 떼면 영영 사라져 버릴 것만 같은 아이
■서진욱
-열다섯 살
-게임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고 공부도 잘한다.
-중1 때 전학 왔는데도 반에서 가장 인기가 많음
-축구선수 지망생
-가난한 슈퍼집 아들이지만 남들에게는 비밀
■김민우
-열다섯 살
-공부를 잘하고 자존심이 세고 집이 부유함
-김지민을 짝사랑 중
■김동휘
-열다섯 살
-수다스럽고 언변이 좋음
-모든 소문은 김동휘를 거침(좋게 말하면 분위기 메이커, 나쁘게 말하면 입이 싼 놈)
■김지민
-서진욱한테 고백했다 차인 후 옥상에서 율과 마주치게 되면서 친해짐
-후에는 율의 짝꿍이 되면서 서로 토닥여주는 관계가 됨
-씩씩하고 캔디 같은 근성을 가진 아이
=====
줄거리 살펴보기
=====
자신을 대신해 죽은 아버지에 대한 자괴감을 온 마음에 품고 사는 율이는 엄마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쉽게 그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의사는 2년이면 극복할 거라고 이야기했지만, 이미 그 시간이 훌쩍 지났음에도 나아지지 않는 상태로 인해 율이는 깊은 자책과 미안함, 우울감에 빠져든다.
그 일 이후 율이는 타인과 시선을 마주하는 것에 대한 극도의 불쾌한 공포에 사로잡히게 되면서 어느새 타인을 마주칠 때면 자꾸만 발로 시선을 향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어느새 습관처럼 굳어진다.
이뿐 아니라 율이는 또래 친구들의 힘자랑이나 외부의 그 어떤 것에도 흥미를 가지지 못하게 되면서 속으로는 늘 시니컬한 태도를 유지하게 된다. 하지만 '정상'처럼 보여야 한다는 생각에 겉으로는 최대한 몸을 낮추고 친구들의 행동 패턴에 적당히 맞추며 티 나지 않는 일상을 살아간다.
그리고 다행히 1학년 때부터 가깝게 지내던 인기 있는 친구들 사이에 끼어있어 이런 율의 행동은 크게 주목받지 않은 채로 넘어가게 된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비 오던 날, 엄마의 심부름을 다녀오는 길에 이상한 피비린내와 함께 맨발에 죽은 고양이를 두 손에 들고 있는 한 소년을 만나게 된다. 그 소년은 '비밀'이라는 말만 남기고 유유히 사라졌는데, 빗줄기 너머로 같은 학교 교복 명찰에 노란색 3학년 명찰, 이름은 이도해라고 쓰여있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그렇게 강한 인상을 남기고 사라진 그 소년을 다시 만나게 된 것은 다른 반과 하는 합동 체육시간에서였다. 그리고 그 수업을 통해 율이는 그가 1반의 왕따일 뿐만 아니라 남들에게 '비정상' 취급을 받는다는 것을 추가로 알게 된다.
하지만 어쩐지 율이는 그가 싫지 않았고 옥상에서 몇 번의 만남을 가지게 되면서 서서히 다른 사람에게서는 느껴보지 못한 생경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
한곳에 정착하고 머무르기를 바라는 율과 변화하고 떠나고 싶어 하는 이도해는 정반대되는 성향을 지녔지만 함께 있으면 어쩐지 편안해지는 기분을 율은 느낀다.
이도해는 다른 사람과 다르게 있는 그대로를 수용해 주고, 또 율이의 솔직한 속내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해 주면서 율을 이끈다. 이에 율은 반응하게 되면서 서서히 자신 안의 뭔가가 변화하는 것을 느끼게 된다.
한편 이도해는 결석하는 날이 종종 있었는데, 어느 날은 그 기간이 길어지며 완전히 행적을 감추게 된다. 그러면서 율의 마음에도 파동이 일기 시작한다. 어딘가 모르게 톱니바퀴 하나가 빠져 모든 것들이 어그러지는 기분을 느끼게 된 것이다.
그때쯤 율은 동네 슈퍼에 들렀다가 모든 것이 잘나서 그저 동경의 대상으로만 여겨졌던 서진욱이 사실은 가난한 슈퍼집 아들이라는 비밀을 알게 되고, 김지민이 서진욱에게 고백했다 차이면서 사총사의 관계가 서먹해지는 상황을 맞닥뜨리게 된다.
여기에 더해 이도해를 찾아 옥상에 올랐다가 울고 있는 김지민의 이야기를 들어주게 되면서 어느새 묘한 친분을 쌓게 된다. 그러다가 마침 바꾼 자리의 짝꿍이 김지민이 되면서 둘은 남들 모르게 쪽지로 소통을 이어나가게 된다.
여기에 더해 서진욱의 비밀이 학교에 발각되며, 진욱은 유일하게 비밀을 알고 있는 율이를 의심해 주먹을 휘두르지만 결국 앞서 다친 다리로 인해 상황이 이상하게 꼬이며 둘은 오해를 풀고 금방 화해하기에 이른다.
이때 진욱은 자신 안에 꼭꼭 숨겨두었던 속 깊은 이야기를 율이에게 털어놓게 되는데, 율은 완벽한 진욱 또한 깊은 아픔을 가지고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된다.
한편 병원에 함께 갔다가 길거리에서 우연히 진욱의 아버지를 마주치게 되면서 진욱은 그 자리를 피해 도망가게 되고, 남아있던 율은 진욱의 아버지에게 따끔한 충고를 건네게 된다. 이 일로 두 부자의 사이가 달라지게 되면서 진욱은 율에게 고마움을 표한다.
이 와중에 율은 점점 극도의 감정에 내몰리게 되는데 그때쯤 또 죽은 고양이를 안고 있는 이도해를 우연히 맞닥뜨리게 된다. 둘은 함께 새끼 고양이를 묻어주고, 다시 떠나가려는 도해의 등위에서 마치 둑이 무너지듯 율은 자신의 아픔을 토해내게 된다.
도해는 율의 이야기를 차분하게 들어주고 사람들로부터 상처받은 율이의 마음을 어루만져 준다. 이로 인해 율은 오랜만에 진심으로 울고 웃으며 가장 깊은 곳에 외면하고 있던 것들을 다 꺼내놓게 된다.
그 후 율이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처음으로 홀로 봉안당을 찾아 그동안 하지 못했던 마지막 인사를 건네게 되고, 이로써 마침내 꽉 막혀있었던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그 길로 엄마에게 가서 비로소 진심으로 사귄 친구가 있음을 밝힌다.
율은 그렇게 다시 일상을 이어나간다. 그리고 틈틈이 자신만의 소설을 써 내려가며 현재의 고통을 하나씩 털어내 간다. 마치 인생의 오답노트를 써 내려가듯이.
이도해는 또다시 오랫동안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고, 그런 이도해의 흔적을 쫓던 율은 조각조각 흩어져 있던 흔적들을 마침내 하나로 연결하게 된다. 그렇게 정체불명 이도해의 정체를 제대로 파악하게 된다.
늘 떠나고 싶다던 이도해의 말
엄마에게 버려진 새끼 고양이
상한 삼각김밥을 먹던 이도해
이들이 있다던 주정뱅이 아줌마
쓰레기 집에 산다는 우리 또래의 애
하지만 이도해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상태였고, 율은 도저히 그를 찾을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뉴스에서 한 소년이 쓰레기장에서 의식을 잃은 채 발견되어 병원으로 옮겨졌다는 소식을 접하게 된다.
신고자는 서진욱의 아버지로 쓰레기 집에서 기척이 없는 것을 수상하게 여기고 신고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특별한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머뭇거리던 경찰은 쓰레기 장에서 쓰러진 이도해를 발견하게 되면서 마침내 본격적인 수사에 들어가게 된다.
그렇게 또다시 도해 없이 시작된 2학기, 도해는 가정 폭력 피해자로 밝혀지게 된다. 약 두어 달 동안 폐렴까지 번져 위험한 고비를 무사히 넘기고 이제는 의식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상황이었다.
율은 마침내 자신만의 소설을 완결 짓고, 그 소설을 쓴 공책을 들고 도해의 병실을 찾게 된다. 첫 독자가 되어주겠다고 했던 도해에게 가져다주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다음날 도해는 그 공책을 가지고 또다시 사라졌다. 이후 율은 사라진 도해가 다시 앞을 향해 나아갈 수 있기를 고대하며 쓰레기로 가득 찬 도해의 집을 청소하고 전단지를 붙이는 등 도해의 공간을 다시 만들어 나간다. 이에 율의 엄마도 함께 동참한다.
시간은 흘러 어느새 중학교 졸업식을 맞이하게 되었고, 거기에 출석 일수가 부족했던 도해의 이름은 없었다.
중학교의 마지막 하굣길, 집에 들어가다가 우편함에서 율은 이도해의 병실에 두고 온 자신의 소설이 담긴 공책을 발견하게 된다. 도해가 이곳에 들렀다 간 것이다.
율은 공책을 펼쳐보았고 그 속에는 자신이 쓴 것이 아닌 문장 하나가 쓰여 있었다.
'그럼에도 새는 또다시 날아 보기로 했다'
율은 그 문장을 보는 순간 큰 소리로 웃었다. 이도해가 비로소 지구에서 나아가는 길을 선택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살아가기로 마음먹은 그의 마음을 알아차린 것이다.
어느새 율은 변해있었다. 율의 시선이 발에서 눈으로 바뀌어 있었다. 상대의 눈을 편하게 쳐다보기 시작한 것이다. 오랫동안 고쳐지지 않았던 습관이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서서히, 자연스럽게 허물어져 버린 것이다.
율은 변했고, 그렇게 성장했다.
=====
인상 깊게 다가왔던 문장들
=====
이 책은 간략한 줄거리로 내용을 파악하기보다, 본편을 통해 문장 하나하나의 맛을 제대로 살려서 읽는 것을 추천한다.
-----
나는 외계인에 가까웠다. 옛날 영화에서 본, 인간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외계인.
22페이지 中
-----
정신과 병원에서 의사는 율을 두고 사회 부적응자 취급을 한다. 율은 의사가 '정상'으로 돌아오는데 2년이면 충분하다 말했지만, 2년이 한참 지난 뒤에도 율은 자신의 상태가 이전과 별반 다르지 않음에 크게 낙담한다.
이런 상황을 두고 율은 자신을 외계인에 가깝다고 말하며 인간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말하는데 얼마나 율이 고립되어 있는지를 엿볼 수 있다.
그 어떤 사람도 율이의 이런 내면을 제대로 보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에서 더없이 아프게 다가왔던 문장이다.
-----
친구 관계란 참 이상하다. 내가 서진욱, 김민우, 김동휘와 친구가 된 지 벌써 삼 년째였다. 중학교 1학년 때 같은 반에다 자리가 가까웠던 것이 계기였다. 하지만 함께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나는 친구라는 존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되었다.
39페이지 中
-----
이 문장을 읽으며 율의 세계와 나의 세계가 연결되어 있음을 느꼈다. 나 역시 어느 순간 친구라는 존재에 대해 그동안 내가 알고 있던 것이 맞는지 의문을 품게 되었는데, 그때 그런 생각을 했었다.
어쩌면 나는 친구에 대해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봐서 진짜 친구의 존재에 대해서는 몰랐거나 아니면 우리가 나눈 것은 진짜 우정이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고 말이다.
-----
"이름은 단순히 부르기 위해 있는 게 아니야. 기억하기 위해 있는 거지."
48페이지 中
-----
율은 어울려 다니는 친구들의 이름 외에 다른 이들의 이름은 기억하지 못한다. 이런 율에게 도해는 이름은 부르기 위한 게 아니라 기억하기 위해 존재하는 거라 말한다.
나를 각인시키기 위한 목적, 그것이 진정한 이름의 존재 이유인가 보다.
생각해 보면, 기억하기 때문에 이름을 부를 수 있고, 부를 이름이 있기에 우리는 그 사람을 기억할 수 있다. 새삼 이름이 갖는 중요한 의미를 되새겨 보게 되었다.
-----
아침의 하늘은 파랗고, 저녁의 하늘은 붉고, 밤의 하늘은 검다. 하늘은 이 세 가지 색만을 띤다고 한다. 하지만 나만 아는 사실인데, 저녁이 밤으로 바뀌는 순간의 하늘은 녹색이다.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그 녹색이다. 녹색은 변화의 색, 변화는 고통을 가져온다. 그리고 나는 더 이상 고통을 겪고 싶지 않다.
53페이지 中
-----
-----
"좋아. 나는 변하고 싶은 사람이라서."
이도해는 고여 있다 보면 언젠가는 썩어 버릴 거라고 덧붙였다. 나는 흘러가기보다는 익숙한 곳에 고여 있고 싶었다.
80페이지 中
-----
율의 기억 속에 각인처럼 남아있는 그날의 녹색, 녹색은 변화의 색이다. 아름다운 저녁이 두려운 밤으로 변하는 시간. 교통사고로 아버지를 잃었던 고통을 대변하는 색인 녹색은 그래서 율에게 있어 두려움과 고통을 상징한다.
율은 아버지가 없어진 세상, 자신의 세상에 고립된 세상에서 벗어나고 싶다. 그런 변화가 없었던 이전의 평화로운 세상에서 머물고 싶다. 하지만 현실은 이미 이만큼 흘러왔다.
율의 어두운 내면을 컬러감과 시각적 표현력으로 표현한 이 문장 덕분에 왜 율이 변화를 싫어하는지, 또 어떤 심리적 고통을 겪고 있는지 깊이 들여다볼 수 있었다.
-----
사람들은 원래 자기 불리한 일은 안 하려고 한다. 그 말이 나를 사로잡았다. 엉켰던 의문의 실타래가 비로소 풀린 기분이었다.
도덕 같은 건 전부 거짓말이다. 사람들이 원래 이익이 없으면 다른 사람을 돕지 않는다. 그게 당연한 것이다. 타인은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
그러니 나도 쓸모없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 울지도, 화를 내지도 누군가를 돕지도 않을 것이다.
그게 인간다운 거니까.
(...)
무감각 해진다는 것은 정말 편리한 일이다.
71페이지 中
-----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공감할 이야기가 바로 이 부분이 아닐까 한다. 무감각해지는 것이 편리하고, 나에게 쓸모없는 일은 하지 않는 것, 그것이 인간다움으로 포장되는 사회.
중학생 율이는 아버지가 죽는 순간 도움을 주기는커녕 구경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깊은 분노를 느낀다. 그리고 '사람들은 원래 자기 불리한 일은 하지 않는다'는 구급 대원들의 말에 비로소 의문의 실타래가 풀린 기분을 느꼈다고 표현했다.
자기를 대신해 죽은 아버지에 대한 죄책감에 더해,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사회적 고립 속에서 홀로 아픔을 삭히며 살았을 율이. 그런 율이에게 사람들은 비정상이라는 꼬리표를 붙이며 '정상'이 되어야 한다는 더한 압박감까지 주었다.
그래서 율이는 방어 기제로 감정과 이성을 분리한 다음 감정을 이성으로 설명하여 해소하려는 행위(주지화)를 하며 감정을 억누르려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감정은 불쑥불쑥 올라와 율이를 괴롭혔다.
한 아이가 세상에 발 디디며 살기 위해 나 홀로 얼마나 고군분투했을까 생각하니 너무 마음이 아팠다.
-----
나는 말주변이라는 것이 꺼려지기만 했다. 말주변은 공허하다. 어차피 잊힐 말들이 쭉 늘어설 뿐이다. 주변은 시끄러운데 나는 조금씩 침잠한다. 이렇게 많은 애들이랑 같이 있어도 나는 혼자라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다.
73페이지 中
나는 미래를 상상할 수 없었다. 의사는 그게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증상이라고 했다. 미래가 단축된 느낌을 받는 것, 예를 들면 직업, 결혼 등 정상적이라고 여겨지는 삶을 기대하지 않는 것.
74페이지 中
-----
-----
물이 들어 있을 때는 가지고, 비어있을 때는 버린다. 잔뿐만 아니라 사람도 마찬가지일까.
76페이지 中
-----
이 세 문장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부분은 시니컬한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는 점이다. 그런데 어딘지 모르게 낯설지가 않다.
율이는 아버지를 잃고 겪는 PTSD 증상 중 하나라지만,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은 그런 외상을 겪지 않고도 이미 스트레스 장애의 증상을 겪고 있다.
이게 정상인 사회인 걸까?
-----
세상은 늘 내게 평균치의 사람이 되라고 가르쳤는데, 이도해는 손쉽게 내게서 평균의 잣대를 빼앗았다. 그러자 검열되지 않은 생각들이 일제히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날것 그대로의 상태로 '정상'이라는 수문을 넘어, 더 이상 쏟아지는 생각을 수용할 틈이 없도록 만들었다. 이도해는 늘 이런 식으로 사람을 뒤흔들었다. 적어도 나는 이도해 앞에서 매일 흔들렸으니.
82페이지 中
-----
세상은 율이를 '정상'이나 '평균치'의 틀에 가두려고만 했다. 때문에 율이는 자신의 감정을 죽이고 세상에 맞춰 살아야만 했다.
하지만, 도해는 그 틀을 깨부쉈다. 도해와 함께 있을 때면 비일상적인 감각이 율이를 안일하게 만들었고 그 틈새로 날것 그대로의 감정이 넘나들었다.
때문에 율은 서서히 마음의 문을 열 수 있었고, 심지어는 자신의 진짜 속마음까지 꺼내놓을 수 있었다. 거기에 더해 새로운 희망을 품도록 유도함으로써 율은 정체되어 있지 않고 앞을 향해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
"너는 네 눈앞에서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할 거야?"
(...)
"잘 모르겠는데."
(...)
"아마 껴안아 줄 것 같아."
이도해의 목소리는 나를 소스라치게 할 정도로 강한 힘을 품고 있었다.
(...)
"떠나는 길이 조금이라도 따뜻해지도록 안아 줄 거야."
87페이지 中
-----
비록 시궁창 같은 현실에 살지언정 도해는 따뜻한 온기를 품고 있는 사람이었다. 이 대답 한마디에 율은 어쩌면 평생 가슴에 그때의 그 순간을 후회로 남길지도 모르겠다.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니기 보다, 차라리 떠나는 길이 조금이라도 더 따뜻해지도록 꼭 안아줄걸 하고 하고 말이다.
-----
"사람은 각자 스스로 부여하는 이야기 속에 살아. 현실을 아름답다고 생각하는지 끔찍하다고 생각하는지, 어떤 이야기를 적용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삶은 180도 달라지는 거지."
119~120페이지 中
-----
-----
"아무것도 못 할지 아니면 무언가를 해낼지는 전부 너한테 달렸으니까."
143페이지 中
-----
도해가 해줬던 이야기 속에 삶의 해답이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나는 스스로에게 어떤 이야기를 적용할 것인가, 무언가를 해낼 것인가 그것은 온전히 내가 결정하기에 달렸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덕분에 오늘부터 새로운 페이지를 새롭게 써나가야겠다는 다짐도 해본다.
-----
어쩌면, 아주 어쩌면 말이지, 사람들은 모두 각자만의 세계를 가진 외계인일지도 모른다.
모두가 외계인이라서 우리는 죽을 때까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불안해하고 헐뜯고, 그리고 나를 이해해 줄 사람을 찾아 평생을 헤매는 것이다.
144페이지 中
-----
앞서 율이는 자신은 인간들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외계인 같다고 이야기했는데, 점차 친구들의 속 사정과 아픔을 마주한 뒤에는 이렇듯 서서히 생각이 변화한다.
나만 고립되고, 나만 이해받지 못한다고 생각했던 것에서 어쩌면 우리 각자 모두가 각자만의 세계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그래서 우리는 죽을 때까지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불안해하고, 평생을 자신을 이해해 줄 사람을 찾아 헤매는 것은 아닐까 하고.
어쩌면 타인에게 이해를 바라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렇기에 반대로 나만큼은 나를 이해하고 다독여주는 존재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다짐도 해보게 된다.
-----
나는 그게 무서워. 아버지는 날 살리려고 달리는 차에 몸을 던졌는데, 엄마는 나를 벌어 먹이기 위해 자신의 행복을 버리고 일만 하는데, 정작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어.
(...)
나를 위한 희생들이 너무 벅차. 제대로 된 인간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은 하지만 결국 무엇도 되지 못했어. 나는 너무 부족한 인간이야.
168페이지 中
-----
사람들이 무심코 하는 말들이 날아들어 가슴을 후벼판다. 부모의 희생 아래 생존한 율이에게 거는 주변의 기대와 바람이 결국 아이를 짓누른다.
분명 그 사람들은 돌아서면 기억도 하지 못한 말들일 텐데, 당사자인 아이는 이토록 평생을 후회와 자책을 품에 안고 산다.
그렇기에 힘든 일을 겪은 이들에게는 아무리 어린아이라 할지라도, 섣불리 아무 말이나 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
"다른 사람들의 말에 휘둘리지 마. 타인의 기준은 상대적인 거야. 정말 중요한 건 너지. 절대적인 건 너 자신뿐이야. 그러니까 너를 봐. 네 마음을 봐."
169페이지 中
-----
도해와 율의 대화를 살펴보면 우리가 가슴에 새기면 좋을 이야기들을 많이 담고 있다. 만약 누군가의 말이나 행동에 휘둘리고 있다면, 도해의 이 말을 꼭 기억하기를 바란다. 절대적인 건 너 자신뿐이라는 말, 너의 마음을 보라는 말 말이다.
-----
의사는 내가 이 년이면 치료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이미 이 년은 한참 지났고 나는 어느덧 열다섯을 넘겼다.
그러니까 어쩌면 이건 고통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뇌의 착각으로 고통을 느낄 뿐, 진짜 고통은 아닌 것이다. 마음의 고통이란 결국 허상에 불과하다.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확실히 알 수 있다. 이건 절대 허구의 고통이 아니다.
(...)
"아파."
나는 인정하기로 했다. 나는 아프다.
169~170페이지 中
-----
아픈 게 익숙한 율은 의사가 말한 기한이 지났음에도 고통이 느껴지는 것을 보고 이건 허구라고, 진짜 고통은 아닐 거라고 스스로 되뇐다. 하지만, 도해를 만난 후로 이제는 그것이 진짜 고통임을 깨닫는다.
어떤 이들은 특정 상황으로 인해 이처럼 자신의 고통을 억누르며,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회복하려면 상처를 방치하기보다 제대로 마주 봐야 한다는 사실을 꼭 기억했으면 좋겠다.
-----
"너만큼은 너 자신을 떠나지 마."
(...)
"너는 의미 있는 사람이야."
(...)
그 말들은 내 마음에서 나왔다. 내 마음 깊숙한 곳에 묻혀 있다가 이도해의 입을 통해 세상 밖으로 나온 것이었다.
172페이지 中
-----
의도적으로 자신의 마음을 방치했던 율. 하지만 어느새 도해의 입을 통해 율은 자신의 마음 깊숙이 숨겨두었던 마음의 소리를 꺼내 보이게 된다.
나는 이 말을 이렇게 표현하고 싶다. 너 자신만큼은 너를 포기하지 말라고. 너는 충분히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
"왜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던 건데."
(...)
나 사는 것도 힘드니까. 방관자가 당사자보다는 편하니까.
(...)
"넌 가족에게 사랑받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냐?"
(...)
"당하지 않은 사람은 몰라 가족은 행복한 것이라고 믿어야 모두가 평화로우니까. 다들 쉽게 눈 감아 버리지."
(...)
"근데 가족이 있어서 행복한 게 아니라 불행한 경우도 있어. 세상에는 자기밖에 모르는 부모도 있다고. 그런 부모에게 자식은 그저 부산물에 불과하지. 남남인 거야. 근데 진짜 불공평한 게 뭔지 알아?"
(...)
"자식에게 부모는 세계야. 싫어도 애정을 갈구하게 되는 세계."
193~194페이지 中
-----
율이도 도해도 사람들에게 외면당한 후로 줄곧 나만의 세계 속에서 살아왔다. 특히 세상 누구에게도 기댈 곳 없었던 도해는 더 했을 것이다.
성인이 되기 전까지는 오롯이 부모의 그늘 아래 기대야만 생존할 수 있는 아이에게 있어 그 세상을 잃어버린다는 것은 과연 어떤 의미였을까?
가정 폭력 속에 방치되어 있었기에 언제든 상황이 변하기를 바라던 혹은 떠날 날만을 꿈꾸던 도해의 마음이 이제는 조금 이해가 되는 바다.
우리가 사는 세상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과거보다는 나아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가족이나 부부 문제에 있어 사람들은 쉽게 눈을 감아버린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폭력에 노출되거나 목숨을 잃는다.
-----
"지금은 이런 생각이 들어. 삶은 고난의 연속이 아니라 극복의 연속이라고. 우리는 극복하며 살아가는 거야. 그 끝에 기다리고 있을 더 멋진 나를 위해. 그러니까 포기하면 안 돼. 포기하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아."
206~207페이지 中
-----
엄마가 율이에게 건넨 말이다. 단어 하나만 바꿨는데 의미가 완전히 달라지는 느낌이다. '고난'의 연속이 아닌, '극복'의 연속! 이 말을 꼭 가슴에 새겨야겠다.
-----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이 있고, 내가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은 아주 행복한 일이다. 그러나 그 행복이 평등하지 않다는 것은 아주 불행한 일이다.
210페이지 中
-----
일반론에 대입해 보면 모든 것은 동화처럼 아름답게 느껴진다. 하지만 문제는 모든 사람이 그 일반론에 포함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고로, 그 범주에 속하지 못한 사람은 불행할 수밖에 없다.
행복도, 불행도, 부모도, 가족도, 세상 그 무엇도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주어지지 않는다. 모든 것을 다 가졌다고 행복한 것은 아니지만, 아주 기본적인 것조차 주어지지 않는 경우 대게 불행하다 느낄 수밖에 없다.
도해에게는 자신을 사랑해 줄 부모도, 자신이 돌아갈 곳도 없었다. 그래서 홀로 그 모든 것을 감내하며 살아가야 했다. 아이에게 있어 이것은 세상 불행한 일이 아니었을까?
-----
의미는 타인이 아니라 자신이 만들어 가는 것이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슬퍼하기보다 나아가기를 선택했다. 그러니까 나는 북극성이 되기로 했다. 북극성은 길잡이별, 비록 가장 밝고 큰 별은 아니어도 누구나 찾을 수 있는 별이니까.
211페이지 中
-----
도해는 의미 없는 자신의 이름을 싫어했다. 대신 길잡이 역할을 하는 북극성으로 불리기를 원했다. 아무도 없는 상황에서 스스로 자신만의 의미를 찾아 앞으로 나아가기로 결심했기에 선택할 수 있었던 이름이 아니었을까?
-----
인간은 나약하다. 너무 쉽게 부서지고 무너진다. 타인의 시선을 두려워하고 자신을 숨기며 끊임없이 상처를 입는다. 하지만 그렇게 부서지고 무너지면서 강인해진다. 모순적이었다.
모순적이기에 인간은, 삶은 매력적인 것이었다.
216페이지 中
-----
율이도 도해도 진욱이도 나약한 인간이었다. 그렇기에 휘둘리고 부서지며 무너졌다. 타인의 시선이 무서워 시선을 마주치지 못하거나, 자신의 비밀을 감추며 살았다.
하지만 그런 것들을 겪고 이겨내며 결국 강인해졌다. 앞으로 나아갈 힘을 길렀다. 모순적이지만, 그런 시련이 있었기에 더 강해질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 삶도 그렇지 않을까? 마냥 온실 같은 곳에서 안락한 삶만을 산다면 우리는 더 강해질 결심을 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넘어지고 부딪히는 시련을 겪었기에 어쩌면 위기로부터 방어하는 법, 중심을 잡는 법, 시련으로부터 나를 지키는 노하우 같은 것들을 쌓아나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한다.
=====
마무리
=====
이 책을 읽으며 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의 아픔과 시련을 겪고 있음을 깨닫는다. 더불어 각자 자기만의 세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인지하게 되었다.
그렇기에 어쩌면 타인을 완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살아온 환경, 성향, 가치관, 부모, 가족 등 나를 이루는 모든 요소가 제각각이기에 더 그렇다.
그래서 우리는 온전히 세상에 하나뿐이고, 또 유일무이한 존재라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로 인해 우리는 외롭고, 불안하고, 또 나를 이해해 줄 사람을 늘 찾게 된다. 나와 쌍둥이 같은 사람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음을 알면서도 말이다.
그렇게 인생을 살다가 어느 순간 각기 다른 성정, 환경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면 부딪히고 깨지면서 변화와 성장을 겪게 되고, 또 한고비 한고비 넘기며 살아가는 것이 바로 인생이 아닐까 한다.
물론 그 만남 속에는 상생이 좋지 않은 율과 동휘와 같은 관계도 있을 것이고 또 때로는 서로를 돕고 이끄는 율과 도해와 같은 인연을 만나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 세계를 잘 보존하는 것, 그리고 나와 완전히 다른 세계를 가진 사람도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삶이 조금은 더 편안하게 다가오지 않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