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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어른
이옥선 지음 / 이야기장수 / 2024년 8월
평점 :
읽을 책 목록에 담아 두었던 책 한 권을 또 하나 꺼내들었다. 그리고 쌓아둔 책 중에 선뜻 손이 향한 관계로 일단 읽어본다.
그런데 생각보다 호탕하고 유쾌한 입담에 혼자 'ㅋㅋ' 거리며 계속 읽게 된다. 76세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씩씩하고 또 막힘이 없다.
어릴 적 시골에 가면 동네 할머니들에게 들었던 고리타분한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깨주는 맛에 읽는 사람도 신명 난다.
여기에 더해 내가 바라 마지않는 노년의 삶과 마인드로 살고 있는 것 같아 부러운 마음도 든다.
총 2부로 구성된 이 책은 76세 저자가 노년의 일상을 유쾌하고 호탕하게 풀어낸 책으로, 킬링 포인트가 되는 부분이 여럿 등장한다.
자식을 모두 키워 출가시키고, 남편마저 하늘나라에 먼저 보낸 후 혼자 보내는 노년의 삶에는 고독보다 오히려 모든 숙제를 끝마친 것과 같은 홀가분함이 엿보인다.
모든 것을 정리하고 가볍고 산뜻하게 일상을 살아내는 저자의 삶을 살펴보며, 나의 노년은 어떻게 보내고 싶은지 미리 상상하며 그려보면 어떨까 한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난 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우리가 그토록 긴 시간을 고군분투하며 살았던 이유는 저자와 같은 평온한 노년을 위해서였던 것은 아닐까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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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언처럼 다가왔던 킬링 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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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꿈은 고독사
●아끼지 않는다
●절대 유명해지지 마라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
●너 아무도 안 쳐다봐
●젖가슴이 큰 게 그리 좋은가?
●남자 잘못 만나 인생 망한 여자는 있어도 안 만나서 망한 여자는 없다
●결혼 생활에 해피엔딩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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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 깊게 다가왔던 문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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옳든 그르든 전혀 새로운 세상이 된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러니 새로운 판을 짜야 옳다. 한국의 여자들은 너무 똑똑하고 교육도 다 잘 받았다. 사태 파악이 빨라 비혼자도 늘었다(남자 잘못 만나 인생 망한 여자는 있어도 안 만나서 망한 여자는 없단다). 더러 남자들도 비혼을 선호하고, 결혼하고도 아이 없이 사는 풍조도 늘어간다. 출생률이 세계에서 제일 낮다는 것이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지구의 부담을 줄여주는 일이니까.
2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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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들은 인구 감소를 두고 여성들에게 출산을 해야 한다며 강요 아닌 강요를 하고는 한다. 그럴 때면 여성이 아이 낳는 기계인가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는데, 이렇듯 화끈한 언변으로 이야기해 주는 사람들이 있어 그럴 때마다 사이다를 벌컥벌컥 들이켜는 느낌이다.
어떤 일이든 장단점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인간들로 인해 지구가 병들어 가고 있는 시점에서 어쩌면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이 지구를 위해서는 더 똑똑한 선택일지도 모르겠다.(물론 이 이유 하나로 출산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더불어 여성의 인생도 지킬 수 있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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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나는 팔자가 늘어진 최고의 인생 한 시절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어린 시절 이후 이렇게 자유롭고 편안한 시절을 보낸 적이 있었나 싶다.
(...)
나는 오롯이 나의 생각만 하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만 해도 되는 인간으로서 누구도 부럽지 않고 아무도 나를 귀찮게 하지 않는 그야말로 황금의 시기를 보내고 있다.
28~2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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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당당하고 떳떳하게 '지금 나는 황금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말하는 저자 앞에 누가 과연 돌을 던질 수 있을까? 그저 박수갈채를 보내고 싶을 뿐이다.
그동안 아내 노릇, 딸노릇, 엄마 노릇 등등하느라 고생 많았던 저자가 이제는 부디 그 마음 그대로 오래도록 즐거운 인생을 살았으면 좋겠다.
더불어 나 역시 언젠가 인생 최고 황금의 시간을 보내고 있음을 알아채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시간이 오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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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바람이 있다면 심근경색으로 고독사 하기를 바랍니다. 죽는 순간 누군가의 눈에 띄기라도 하면 119에 실려 병원 갑니다. 그러면 중환자실에서 며칠 보내다가 겨우 회복되어도 결국은 요양병원행입니다. 그러니 죽는 순간에 들키지 않는 게 최곱니다. 이것이 여기 오는 젊은 사람의 시각이 아닌 죽어도 아깝지 않을 나이인 제가 생각한 마지막입니다.
7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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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고독사'라는 말에 살짝 움찔했는데, 마침표가 찍힌 문장까지 읽다 보니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사실 나 역시 중환자실과 일반 병실을 오가며 어렵사리 연명하고 싶은 생각이 없기에 어쩌면 더 공감되는 문장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한 가지 염려되는 건 여러 사건사고 영상들을 통해 익히 봐왔듯, 고독사 하는 그 자체보다 너무 길게 방치될까 봐 그것이 좀 걱정된다. 뒤처리가 쉽지 않음을 알기 때문이다.
또 저자와 같이 자녀가 있는 경우 자녀 입장에서는 고독사한 부모의 유해를 수습하는 마음이 얼마나 애달플까 싶어 그것 또한 염려된다.
하지만 본인 입장에서야 여러 고통 속에 죽어가는 것보다 이렇듯 단번에 사망할 수 있다면 이보다 더 큰 축복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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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남자들은 나이 들어갈수록 모든 면에서 무심해지는 것 같다. 스포츠에 열광하는 것 빼고는 일상생활에서 여자보다 잘하는 게 별로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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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은 언제나 대우받고 사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보니 다른 사람을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것 같아 보이고, 늙어서도 서로 자신의 힘을 과시하려는 마음이 남아 있어서 자기들끼리 가진 술자리에서도 끝에는 다툼으로 끝나는 수가 많다. 그러나 여자들의 모임에는 좋은 기분을 유지하려는 태도가 있고, 서로 돌보고 위로하는 관계가 되어가기에 나이 든 지금은 여자들의 모임이 훨씬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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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를 잘 이어나가고 서로를 돌보는 면에서도 여자들이 유능하다. 알고 보면 의리라면 여자인 것이다.
9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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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노년의 많은 여성과 남성을 비교 분석해 보면 저자가 언급한 내용들이 거의 99% 들어맞는 경우가 많다. 워낙 젊은 시절부터 온화하고 집안일을 잘 해오던 남자가 아니고서야 웬만해서는 나이가 들수록 남자들은 일상에서 여자보다 더 잘하는 게 별로 없는 듯해 보인다.
예컨대 둘 중에 한 명이 입원을 한 경우를 살펴보면 확실히 느낄 수 있다. 여성이 입원한 경우 병간호는 물론 집안도 엉망이 된다. 반면 남성이 입원한 경우에는 병간호는 물론 집안도 평소와 다름없이 깔끔하게 유지된다.
보편의 가정에서 보이는 상황으로, 나이가 들수록 여성이 좀 더 관계나 생활력에서 더 앞선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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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생활에는 해피엔딩이 없지만, 인생의 끝이라고 해서 그것이 불행한 것만은 아니다. 노쇠하고 내 주변의 모든 것이 변하고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이 왔을 때 인생의 끝 지점으로 갈 수 있는 것도 축복이다.
12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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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결국 모두 죽음으로 연결되기에 결혼 생활에는 해피엔딩이 없다고 말한다. 또 인생의 끝 지점으로 갈 수 있는 것 또한 축복이라 말하는데, 죽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말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계속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것보다 어쩌면 모든 것을 내려놓고 마지막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더 행복일 수도 있음을 기억한다면, 저자가 하는 말의 깊은 의미를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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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이만큼 먹고 곰곰 생각해 보니 모든 것은 이미 지나갔거나 지나가고 있거나 지나갈 것들이다. 그러니 인간끼리의 관계를 너무 심각해하지 말고 가뿐하게 생각하고 유연한 마음으로 서로를 대하는 게 좋지 않겠나 싶다.
244~24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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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우리 집을 둘러싼 소음으로 인해 여러 문제를 껴안고 있었는데, 이 문장을 읽으며 조금 마음을 진정시켜본다. 언젠가 모두 지나갈 것들이라고 그렇게 마음을 다잡으며 심각하게 생각하기보다 가뿐하게 넘겨보려 한다.
겪고 있는 지금은 고통스러울지언정, 지나고 나면 또 별것 아닌 일로 남을 것을 알기에 차분히 시간이 흘러가기를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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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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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몇 어른다운 어른을 제외하면 '진짜'어른을 찾기가 굉장히 힘든 세상인데, 이 책을 통해 또 하나의 어른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특히 노년의 나이가 되면 '이렇지 않을까'하고 막연히 생각하던 것들이 있는데, 현실에서는 그런 어른을 쉽게 찾아볼 수 없어 상상에서만 가능한 일인가 보다 생각하고 있던 차에 만나게 된 책이라 더 반갑게 다가왔다.
거기에 더해 홀로 사는 노년의 삶이 우울함이나 고독함보다 오히려 더 신명 나고 즐거운 일상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손수 보여준 것 같아 내심 노년의 삶에 대한 기대감이 샘솟는 기분이다.
요즘 같은 혼란스러운 시대에서는 연애, 결혼, 출산과 같은 대소사를 비롯해 나이가 들어가는 것조차 불안감을 느끼게 되는 시대인데, 이 책을 통해 그런 부정적 감정은 떨쳐버리고 보다 희망적이고 긍정적인 모습을 그려보면 어떨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