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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읽는 시간
이유진 지음 / 오티움 / 2021년 8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는 인생을 축제처럼 살기 위해 죽음을 공부하기로 했다."
내가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고 내 삶을 다시 돌아보게 된 것이 대략 10년이 넘은 것 같다.
물론 그전에도 사춘기를 지나고 이런저런 일을 겪으면서 나름대로는 '나는 왜 사는가'라는 질문부터 심도 있는 삶에 대한 여러 가지 것들을 꽤 고민했다고 생각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정말(!) 삶을 바라보는 가치관을 바꿀 만큼의 시점은 대략 10여 년 전으로 생각된다.
그저 남의 일로만 생각하던 '죽음'이라는 것이 어느새 나의 문턱까지 다가와 있는 줄 꿈에도 몰랐던 그 시절..
아무리 대형 사건사고가 뉴스를 통해 보도되어도 그저 매체로만 보이던 그것은 나와 내 주변에서 어느새 소리 소문 없이 번져가고 있었다.
'죽음'이라는 것이 먼 훗날의 일도, 남의 일도 아닌 바로 나와 우리의 삶 가까이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 삶을 바라보는 시각이 많이 달라졌다. 그저 막연하게 생각했던 무한의 시간이 유한적이라는것, 내일이 아니라 오늘이 행복해야 내일도 행복할 수 있다는 것, 준비되지 않은 죽음에 대한 막연함과 어려움, 누구도 죽음 앞에서는 순서가 정해져 있지 않다는 것, 소소하고 작은 것에서도 충분히 나만의 행복과 만족감을 가질 수 있다는 것등 여러 가지 가치관과 생각들이 변화를 가져왔다.
그래서 더 죽음을 공개적으로 논하고, 그것을 위한 나만의 삶에 대한 플랜과 방향성, 그리고 오늘을 살아가는 나에게 더 집중하는 삶에 포커스를 맞춰 타인의 말이나 시선보다 내가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더 많이 가지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때로는 그러한 '죽음'에 대해 논하는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도 있었고 이상한 방향으로 오해하고 이상한 취급을 하는 이도 있었다. 그때는 그런 것들이 그저 숨기고 각자 해결해야 하는 문제처럼 사회적으로 인식되어 있어 더 그러했던 부분도 있었던 것 같다.(예전에는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것들이 사회적인 문제처럼 감추고 숨기는 문화나 인식들이 팽배했다.) 무언가 내가 생각한 개념들에 대해 '잘'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그럼에도 이미 트인 나의 생각이 나 가치관을 굳이 바꾸고 싶지 않았고 나중에 시간과 경험이 쌓이면 타인들도 충분히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는 범위라고 여겼기에 그저 나를 더 단단히 하고 마음을 다잡으려 노력했다.
그런 와중에도 때로는 주변의 시선과 말 한마디에 탄탄히 뿌리내리고 있다고 생각했던 기둥이 흔들리는 경험도 있었고 잘하고 있는 게 맞는지 스스로를 의심하는 일도 간간이 있었지만, 그런 나를 온전히 다시 잡아준 건 꾸준히 읽어왔던 '책'이었다.
장르 상관없이 다양하게 기회가 닿는 대로 읽어왔던 책 속에서는 비슷한 생각과 가치관도 발견할 수 있었으며 '죽음'이라는 것에 대한 다양한 견해와 실제 경험 사례를 통해 삶을 바라보는 여러 해석과 생각들도 알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모두가 행복하자고, 행복한 삶을 살겠다고 말하지만 삶=고통 그 자체이며 누구나 '죽음'은 필연적으로 맞게 되는 당연한 이치다. 그래서 더 궁금했고 더 냉정하게 현실을 바라보고 싶었으며 오늘을 사는 것에 더 집중하고 싶었다.
처음 이 책을 마주한 느낌은 편안함이었다. 뜨거운 한낮의 해가 지고 어느덧 뉘엿뉘엿 해가 넘어가는 저녁시간, 황금빛으로 물든 노을의 표지에서 '쉼'을 느낄 수 있었다. 페이지 구성도 따뜻한 주황색으로 되어 있어 책을 읽는 내내 나의 노년도 이처럼 따뜻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 책은 미국의 호스피스 완화의료 전문가로 다양한 경험을 갖고 있는 정신과 의사 이유진 님의 여러 경험과 사례들을 엮어 쓰인 책이다. 작가 본인의 경험과 삶, 그리고 실제 환자들을 상담하고 치료한 경험을 토대로 '죽음'의 끝에 다다른 사람들의 감정과 상황, 호스피스 완화의료에 대한 한국과 외국의 사례와 인식, 죽음의 디데이 속에서 삶을 바라보고 대하는 여러 사례와 작가 본인이 정신과 의사에서 미국까지 건너가 호스피스 완화의료 전문가로 다시 시작하게 된 이야기들을 3장으로(1장. 죽음을 공부하는 의사 / 2장. 남은 삶이 단 하루라도 후회 없이 살기 위하여 / 3장. 아프고 힘들어도, 그래도 삶) 엮어 이야기를 풀어냈다.
어떤 계기로 처음에 의사가 되었고, 한국에서 정신과 전문의로, 노인 정신의학 세부 전문의로 일을 하다가 어느 날 미국행을 결심하고 미국 밴더빌트 대학병원에서 정신과 과정을 다시 밟으며 호스피스 완화의료 세부 전문의, 정신과 의사로 일을 하고 있는 의사로서의 개인적인 삶과 성장스토리 외에도 상담을 하면서 만났던 수많은 환자들의 이야기도 함께 담고 있다.
삶의 한계치는 누구에게나 정해져 있다. 단지 그 기간을 점치기는 어렵지만 짧든, 길든 누구에게나 끝은 반드시 온다는 말이다. 어느 날 갑자기 삶의 끝자락에 섰을 때 당황하고 좌절하다가 시간을 허비할 수도 있고 온전히 자신의 의지대로 천천히 정리하고 떠나갈 수도 있다.
유한하기에 지금의 시간이 더 빛날 수 있고, 더 소중하게 느낄 수 있다. 이왕이면 처음, 한번사는 내 인생을 보다 찬란하고 후회 없이 살다가 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책을 읽으면서 몇몇 기억에 남는 구절, 그리고 가슴에 새긴 구절, 의미를 주었던 구절, 생각하게 하는 구절, 또 다른 책이 생각나는 구절 등이 있었다. 나 또한 '죽음'이라는 이름 앞에서 평등한 한 사람으로서 오늘을 보다 사랑하며 살 수 있기를 기대하며 기억하기 위해 한 번 더 남겨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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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모든 순간에서, 타인이 아니라 내가 먼저다.
3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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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자아, 진짜 나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내가 행복할 수 있는 법을 알아가는 게 모든 것에서 가장 우선순위다.
별 다섯 개!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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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꿈을 좇는 삶도, 지금 여기를 사는 삶도 똑같이 가치 있는 삶이라는 것을.
행복은 내 안에 있고 나다움 속에 있다는 것을. 내게 주어진 삶을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는 일, 그것만이 중요하다는 것을. 나는 이미 잘 알고 있다는 것을.
7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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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을 향해 달리는 삶도, 머무르며 현재를 즐기는 삶도, 어떤 삶도 모두 가치 있는 삶이다.
내게 주어진 삶 그 자체를 온전히 누리며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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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하지 않고 얼마가 남았을지도 모를 나의 시간을 하필 너에게 쓴다는 것의 의미는 그래서 무겁다.
누군가에게 시간을 쓴다는 것은 서로의 공책에 기록되는 일이고 서로의 일부가 되는 사건이다.
9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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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누군가가 '나와 함께' 하는 그 시간 자체가 소중하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다. 이는 나의 행복과 건강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앞으로 누구를 만나 어떤 시간을 보내면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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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삶과 좋은 죽음이란 그저 덜 고통스러운 삶, 덜 고통스러운 죽음일지도 모른다.
12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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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는 순간부터 우리는 고통 속에 놓이게 된다. 삶을 시작하는 고통, 살아가는 고통, 죽어가는 고통!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는 말이 있듯이, 조금이라도 완화시키며 살아간다면 조금은 살만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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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 예고되었다면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그 의미가 되어주었던 이들과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 이것이 남겨질 이들에 대한 배려이자 죽음의 두려움 속에서도 삶을 사랑하는 방법이다.
17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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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러운 죽음은 남겨진 이들에게는 더할 수 없는 고통을 남긴다. 그래서 죽음에는 준비가 필요하다. 적어도 예고된 죽음의 시간 앞에서 나눈 대화만큼 소중한 시간은 없을 것이라 자신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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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을 삶으로 받아들이고 달라진 삶을 인정해 했다. 이것은 무기력함도 포기도 아닌 그저 살아갈 용기다.
18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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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론 고칠 수 없는 병을 삶의 끝까지 함께 끌어안고 가야 할 때도 있다. 언제나 죽음의 공포는 도사리고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삶에 더 집중하며 살 수 있다.
죽음은 실패가 아니며,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한다.
개인적으로 '잘' 사는 것만큼, 웰 다잉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은데 존엄사와 안락사도 이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생명에 관련된 일이므로 많은 논란과 찬반 의견들이 현재까지도 팽배한데 한국과 미국에서의 그 개념이 매우 다르다고 한다.
생이 얼마 남지 않은 사람들이 취할 수 있는 존엄사와 안락사. 내가 온전히 나로서 살 수 있는 시간, 딱 그만큼만 살다가 존엄하게 죽고자 하는 개인의 의지이며 권리에 대해서는 한 번쯤 깊이 있게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다.
(154~171 페이지)
작가는 서툴 수밖에 없는 죽음 앞에서 초보자를 위한 죽음 안내서를 정리해두었는데 개인적으로 이 페이지만큼은 꼭 한 번씩 읽어보기를 권유하고 싶다.
어느 날 문득 어떠한 순간이 왔을 때 정말 큰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202~205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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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앞둔 사람과 가족들이 서로 나누어야 할 가장 주요한 네 가지 대화 주제!
"나를 용서해 줘!"
"나도 너를 용서할게."
"그동안 고마웠어"
"사랑해"
어쩌면 우리가 죽음을 앞두고 해야 할 말들은 오늘 당장 해야 할 말인지도 모른다.
210~21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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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과 애도 앞에서 각자가 겪는 상실감의 무게와 크기는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다. 그렇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세상에서 가장 큰 상실은 내가 겪는 상실이고 가장 큰 고통은 '나의 고통'이다.
21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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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산다 해도 바꿀 것은 하나도 없다는 확신이 들 정도로 오늘 당신의 삶과 타인의 삶에 최고의 하루를 선물하라고 말이다.
278~27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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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를 잘 살아간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무한 반복되는 삶이 그대로 재현된다면 천국일지 지옥일지를 생각해 보자. 적어도 다시 살아도 바꿀 것이 하나도 없다는 확실히 드는 삶이라면 천국이라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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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 이르는 길은 다양하다. 그 중 지금 스스로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을 꼽자면, 오늘의 나를 사랑하고 나의 사람들에게 감사하며 사랑을 전하고 내일 펼쳐질 나의 하루도 괜찮을 것이라고 믿어보는 것이다.
29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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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이 책의 몇몇 언급되는 내용에서, 이전에 읽었던 특정 도서가 생각나 함께 읽으면 좋을 것 같아 정리해 본다.
1. 자신의 고통을 자살로써 마감하기로 결심한 한 환자의 계획을 알고 병원에서 강제적으로 관을 삽입하여 음식을 주입한 이야기(226페이지 中)
>한강의 '채식주의가' 3부 나무 불꽃에서 언급되었던 영혜의 이야기가 문득 떠올랐다.
https://blog.naver.com/art_bunny/222314883605
2.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닐의 이야기를 통해 나에게는 삶의 존재 이유가 뭘까? 삶의 의미가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324~329 페이지 中)
>조조 모예스 '미 비포 유'
건강하고 활동적인 삶을 살았던 윌이 한순간의 사고로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 그런 그에게는 더 이상 삶이 의미가 없다. 자신이 자신으로써 존재할 수 없음에 스스로 결정한 존엄사.
어떤 의미에서는 그런 윌의 선택은 존중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https://blog.naver.com/art_bunny/221043776973
>위지안 '오늘 내가 살아갈 이유'
차근차근 밟아온 인생에서 이제 마지막 최고의 결과를 목전에 둔 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져 버렸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병마는 그녀를 죽음으로 몰고 갔다.
하지만 그녀는 거기서 주저앉지 않고 죽음을 두려워하지도 않았다. 그녀와 그녀 가족들이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 한 순간들은 소중했고 찬란했다.
https://blog.naver.com/art_bunny/220988105423
언제, 어떤 죽음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지만 죽음의 공포 앞에서 주저앉아 두려움에 떨고 있지 말고 삶을 더 사랑하자.
우리 모두에게 건투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