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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요 - 내면의 상처와 트라우마로부터 벗어나는 열 번의 대화
브루스 D. 페리.오프라 윈프리 지음, 정지인 옮김 / 부키 / 2022년 4월
평점 :
수많은 유명인들 중에서도 '오프라 윈프리'의 행보와 그녀의 삶, 그리고 토크쇼는 꽤나 많이 알려져 있다. 그녀의 쇼를 본 적이 없어도, 그녀를 직접 만나본 적이 없어도 그녀의 불우했던 어린 시절과 그녀가 풀어가는 토크쇼는 그만큼 유명세를 치르고 있다. 한때는 우리나라에서도 '오프라 윈프리' 붐이 일 정도로 핫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 덕인지 나에게도 오프라 윈프리는 꽤 궁금한 사람 중 한 명이었다.
평소 심리학이나 관계성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어 타인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책이나 이와 관련한 유튜브를 종종 보곤 하는데 그런 맥락에서 오프라 윈프리가 전하는 <당신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요>라는 책은 호기심과 함께 제목부터 깊게 다가왔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무슨 일이 있었나요?'라는 물음에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을까마는 요즘에는 쉽게 들을 수 없는 질문이라 더 마음이 갔다.
특히 그녀가 가지고 있는 배경도 한몫했는데, 불우한 환경을 잘 이겨내고 그녀가 현재 행하고 있는 선행과 위로, 그리고 그녀가 이끌었던 토크쇼에 대한 궁금증을 풀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아 한껏 기대감을 가지고 책을 읽어내려갔다.
이 책은 오프라 윈프리와 아동 정신의학자가 트라우마와 뇌, 치유와 회복탄력성에 관해 나눈 대화로 총 10가지 대화 내용을 담고 있다. 아동부터 성인까지 근본적으로 일어나는 문제점들의 원인과 뇌과학을 통해 알아본 이것의 상호 작용과 영향력, 그리고 이를 치유하는 방법과 긍정적 작용으로 순화하는 방법까지 담고 있다. 그동안 막연히 알고 있던 이론에 구체적이고 상세한 설명은 물론 체계적인 뇌과학 지식이 곁들여지면서 근본적인 것들의 문제점을 이해하는데 꽤 도움이 되었다. 무엇보다 자신과 타인을 더 잘 이해하고 진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는 시간이었던 것 같아 또 하나를 배운 가치 있는 시간이었다.
답을 찾고자 한다면, "너는 뭐가 잘못된 거니?"라는 질문 대신에 "당신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요?"라고 물어야 한다.
큰 사고를 겪지 않아도 요즘은 흔하게 가지고 있는 트라우마. 내재된 잠재의식 속에서 무심코 흠칫 두려움을 느끼거나 피하게 되는 행위, 갑작스럽게 폭발적으로 드러나는 폭력성, 심리적으로 불안한 상태에서 드러나는 신체 이상 증상 등 왜 이런 현상들이 일어나고 어떻게 이를 치유하고 회복할 수 있는지 그들의 대화를 통해 알 수 있었는데 책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봐도 좋을 것 같다.
이 책에서는 핵가족화된 가족 구성, 비대면의 일상, 끊긴 관계, 독박 육아, 마주 보고 집중하는 시간의 결여, 지나친 미디어 노출, 직접 경험의 부재, 공동체의 파괴, 지지자나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의 결여, 통합의료시스템 체계가 아닌 단편적 의료시스템, 사회적 고립 등을 거론하며 우리의 트라우마와 깊은 연관이 있는 문제점이자 치유를 어렵게 하는 요인이라 말한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면 모두 우리가 쉽게 접하거나 자주 듣는 이야기들이 많다. 경제가 발전하고 과학은 발달하면서 겉으로는 '잘'사는 모양새를 갖췄지만, 이면에 그것들에 밀려 잃어버렸거나 결여된 것들이 결국 우리의 내면을 갉아먹고 있는 것이다.
책은 전반적으로 신경학적 해부 느낌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복잡한 내용은 떼어놓고 중점이 되는 삶의 정신적 트라우마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언급하며 신체적 안녕과 정서적 건강이 긴밀히 연결되어 있음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실제 정신적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을 경우 신체에 이상 증상이 나타나는 경험을 해 본 사람이라면 이에 대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병원 검사를 받아보면 특정 이상은 없으나 어딘가 불편한 신체 증상을 겪거나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을 정도의 고통을 겪는 것이 이런 경우라고 말할 수 있다. 이렇듯 원인불명의 정신적 건강과 신체적 안녕에 대해 경험을 해본 자들이라면 이 책을 통해 그동안 몰랐던 자신에게 나타나는 증상의 근본적인 원인과 자신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특히 아동 관련 트라우마에 대한 부분은 중대하고 깊게 다루고 있는데 태아의 뇌 발달 시기에 경험하게 되는 것들은 삶을 살아가는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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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는 자궁에서부터 시작해 삶의 경험들을 저장하기 시작하는데 태아의 뇌 발달은 엄마의 스트레스를 비롯해 식생활 및 활동 패턴 등 다양한 요인들에서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생후 첫 9개월 동안은 뇌가 폭발적으로 발달하는데 생애 초기에 만들어진 연상들은 너무나 강력하게 모든 면에 영향을 미친다.
3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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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 생애 최초 기록되는 경험들은 그 이후 어떤 긍정적이고 좋은 경험들을 덧대어도 이를 지워버리지 못할 만큼 강력하다고 하는데, 이를 통해 초기 발달 경험 시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시기는 한사람 개인의 역사의 시작이자 '나'라는 사람을 구성하는 특유의 뇌를 생성하는 시기이며, 이때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뇌의 핵심 시스템들이 조직되고 기능하는 방식을 형성하면서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자아 형태가 형성되는 거라고도 말할 수 있다. 결국 트라우마는 여기에서부터 시작되는 거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트라우마는 이렇듯 뇌가 형성되는 시기부터 시작해 우리가 일상에서 겪는 모든 것들에 영향을 주고받으며 내가 기억하고 연상하는 것들이 뇌에 축적되면서 세계를 어떤 식으로 받아들이게 될 것인지를 판별하게 된다. 만약 이때 최초 경험한 기억을 통해 새로운 경험이 불안하거나 위험하다고 느껴지게 되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이성적 판단을 하는 피질까지 가보지도 못하고 생각은 뇌간에서 차단당해 버린다. 순간 몸이 얼어붙거나 체온이 올라가고 호흡이 불안정해지며, 심장이 빨리 뛰는 현상이 바로 이것이다. 이성적으로 무슨 일이 생겼고, 어떻게 이것을 해결할 것인지 생각하기 보다 기본적인 신체반응으로 이상 감지를 하는 것이다.
이렇듯 세상을 살아가면서 느낀 모든 감각들이 모두 연결되어 있어 누군가를 이해하려고 할 때 '당신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요?'라고 질문하는 것은 그래서 매우 중요하다.
그렇다면 이렇게 살면서 겪는 고난이나 역경으로 얻게 된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방법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이 방법은 '회복탄력성'을 통해서 설명하고 있는데, 이 또한 어려서 받는 사랑이 회복탄력성을 결정하는데 중요 키포인트가 된다고 하니 명심하면 좋겠다. 공동체를 통해서 맺게 되는 관계와 능력 조절, 조절 받는 능력, 보상하고 보상받는 능력, 그리고 이를 통해 받는 보상이 매우 긍정적인 선순환 효과를 불러온다고 설명하고 있는데, 이웃과 관계가 돈독하여 자주 교류가 이루어졌던 시절에는 이 과정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트라우마가 극복되고 치유되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이때는 이웃뿐만 아니라 할아버지, 할머니, 이모, 언니, 동생 등 다양한 구성원을 통해 꼭 하나쯤은 지지해 주거나 신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안정적인 관계성을 통해서 회복탄력성을 가지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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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태어날 때부터 양육자가 아이를 대하는 방식이 그 아이의 삶이 탄탄대로가 될지 고생길이 될지 초석을 깔아주는 일이로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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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방식으로 사랑을 받았는지가 중요한 신경망들, 특히 앞에서 말한 핵심 조절 신경망이 형성되는 방식에 고스란히 스며든다는 것이네요.
10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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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어릴 적 이런 긍정적 관계나 경험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은 영영 트라우마에 시달리게 되는 것일까? 다행스럽게도 우리의 뇌는 사용하고 연습하면 그 능력들이 생겨날 수 있다고 한다. 이전과 똑같아 지거나 트라우마 자체를 삭제할 수는 없지만 심리 치료를 통해 새롭고 건강한 인식을 덧입혀주는 형태로 치유를 하면 트라우마를 다른 긍정적인 형태로 인식하고 이성적으로 판단하여 고통이 지혜로 탈바꿈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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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자신을 용서하고, 그들을 용서하세요. 당신의 과거에서 걸어 나와 나와 당신의 미래로 가는 길로 들어서세요.(...) 고통은 진실을 알기 위해 필요했던 것일 뿐이에요.
당신에게 일어난 모든 일은 당신을 위해 일어난 일이기도 하다는 사실이니까요. 그리고 그 모든 시간, 그 모든 순간에 당신은 힘을 키우고 있었던 겁니다. 힘 곱하기 힘 곱하기 힘은 곧 역량입니다.
당신에게 일어난 일은 당신의 역량이 될 수 있습니다.
-오프라 윈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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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위해서 적절한 타이밍을 맞춰 다음과 같은 경험을 쌓아 정서적으로 안정감을 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다.
하나. 긍정적인 인간과 상호작용을 나눔으로써 조절 및 결속력을 높여주고 안전하다는 믿음을 줄 수 있는 '관계성'을 통해 신뢰성을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
두울. 부분적 주의가 아니라 온전히 함께 하는 주의가 필요하다.
세엣. 의사소통, 가르침, 코칭, 양육, 치료를 위한 조언이 효과를 내려면 <개입의 순서: 조절→연결→설득>를 인식하고 그 순서를 잘 지켜야 한다. 조절에 생긴 문제들을 해결한 후에야 관계적 치료나 인지적 치료도 효과를 낼 수 있다.
트라우마를 그저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만 보지 않고, 타인의 감정에 이입할 수 있는 역량, 지혜로워질 수 있는 역량을 키워주는 성장의 발판으로 지칭하며, 이것을 인생을 성찰하고 배우고 성장하는 데 도움을 주는 '선물'이라고 지칭하는 페리 박사의 말이 인상 깊게 남았다.
치유 과정을 읽으면서 우리 사회에서 가장 빨리 시정되었으면 하는 부분이 두 가지 있었는데 하나는 이상행동을 하는 아이들을 단순한 처방으로 병명을 진단하지 말고 '이 아이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하고 우선적으로 질문해 보는 것이다. 개입 순서(조절→연결→설득)를 통해 과거부터 이 아이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파악하는 게 가장 먼저 선행되어야 한다고 본다. 두 번째는 단편적 치료가 아닌 통합적 치료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각 과별로 분리해서 진단하는 것이 아닌 전체적인 맥락에서 치료 순서와 방법을 정하고 이를 통해 순차적으로 접근해가는 방식이 절실해 보인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이상적인 의사의 모습은 '낭만 닥터 김사부'와 같은 드라마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신체에 일어난 문제만 들여다볼 것이 아니라 그들의 심리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고려하고 각 과의 원활한 협진을 통해 치료하는 방법이 더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음을 인지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삶=고난"이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살면서 무수히 많은 고난이나 역경을 우리는 마주하며 살아간다. 그 속에서 때론 여러 가지 이유로 트라우마를 갖게 되는데, 이는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결핍에서 발생되는 이슈도 적지 않다. 감정은 '전염'되고 때론 대물림 되기도 하면서 부정적 심리가 불안과 우울증 가중시키기도 하지만 분명한 건 우리의 노력이 더해진다면 유연한 '뇌'는 서서히 회복탄력성 상태로 옮겨갈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여정은 외상 후 지혜를 만들어 남다른 강점과 관점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되는데 우리는 이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어떤 긍정적 에너지로 바꿀 것인가를 고민해가며 나와 타인을 이해하는 새로운 관점을 가질 수 있다.
트라우마로 주저앉아 자신을 탓하며 우울감에 오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이들에게 "당신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요?"라는 질문은 어쩌면 한줄기 희망의 빛과 같은 질문일지도 모르겠다. 항상 무언가에 놀라고 한껏 예민해져 움츠러져 있는 깊숙한 나의 내면을 안정시키는 법은 생각보다 쉽고 가까이에 있다. 체온을 나누고, 신뢰할 수 있는 누군가와 관계를 맺으며 생각을 전환하는 것. 이를 통해서 서서히 안정감을 찾아가는 나를 깨달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용기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통해 내 안의 나를 위로하고 토닥이며 상처를 치유하고 위로를 얻을 수 있기를 바란다. 오늘, 스스로에게 이 질문을 건네보면 어떨까?
"당신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