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레카 팝송 영어회화 200 - 유튜브 레슨과 카톡으로 익히는 팝송영어
Mike Hwang.챗GPT 지음 / 마이클리시(Miklish) / 2023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학창 시절부터 현재까지 줄곧 '해결해야 할 무엇'으로 남아있는 영어 공부는 마음처럼 쑥쑥 실력이 늘거나 실천이 잘 따라와 주지 않아 쉽지 않다고 느끼는 것 중 하나다.

 

아무리 AI의 시대고, 좋은 기기들 덕에 영어를 잘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지만 직접 소통하지 못하는 답답함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래서 기회가 되면 이런저런 방법들을 시도해 보거나 살펴보면서 나에게 잘 맞는 방법을 모색하고는 하는데, 이번에 팝송을 통해 공부할 수 있는 책이 있다고 해서 만나보았다.


사실 처음에 책을 제대로 보기 전에는 앞서 출간된 여러 팝송 책과 별반 다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꼼꼼히 살펴본 결과 생각보다 디테일이 남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쩌면 이것은 영어와 작곡을 복수 전공한 저자가 가장 자신 있는 분야이기에 가능했던 것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책의 구성만 봐도 복잡하게 설명되어 있을 만큼, 한 권에 많은 것을 담아냈는데, 처음에 이것만 봤을 때는 '대체 무슨 소리야?'라는 생각을 했는데, 천천히 페이지를 넘기면서 보니 저자의 마음이 한껏 담긴 이정표 같은 페이지였다.

 

더불어 마구 퍼준다는 느낌도 들었는데, 공부 잘하는 친구의 노트를 빌려보는 느낌처럼 여겨져 살짝 웃음이 나기도 했다.

 



빼곡한 글씨로 눈 돌아갈 것처럼 수많은 리스트를 보다 보면 행복한 기분이 들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약간 부담스러운 느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 없다. 생각보다 다양한 페이지 구성으로 지루하거나 어렵지 않게 팝송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총 210곡 구성된 이 책은 숨겨진 히든 페이지가 존재하는데, 책에 실리지는 않았지만 적극 활용한 QR코드 덕에 더 많은 정보와 팝송을 만나볼 수 있다.

 

▶본책 17곡: 저작권 허락을 받아 전체 가사가 수록되어 있다.

▶추가 10곡: 책에 싣지는 못했지만, QR코드로 접속하면 위의 17곡과 같은 구성으로 된 PDF 파일로 받을 수 있다.

▶추가 책 3곡: 본책과는 별도로 이벤트 참여시 받을 수 있는 책으로, 17곡과 같은 구성이며 저자의 취향을 담은 곡들이다.

▶180곡: 저작권을 허락받지 못하여 책에는 가사를 제외한 단어와 뜻만 확인해 볼 수 있는데, 곡 시간별로 등장하는 단어들을 통해 가사의 의미를 유추해 볼 수 있다. 하지만 QR코드로 들어가면 앞선 곡들과 마찬가지로 전체 가사와 해석, 뮤직비디오를 만나볼 수 있다.

 

17곡+10곡+3곡+180곡=210곡
(책에서 만나볼 수 있는 곡: 총 197곡+별도 다운로드 10곡)

 

곡 선정은 MBC 라디오 설문조사에서 한국인이 좋아하는 팝송 200을 뽑아 선정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익숙한 곡들이 눈에 많이 띄었는데, 귀에 쏙쏙 들어와 신나게 듣고 따라 부르며 영어 공부를 할 수 있었다.

 

신나서 흥얼흥얼 거리기만 했지 제대로 가사를 음미하거나 살펴보지는 못했던 곡들이 이 책을 통해 다시금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작품성/대중성/재미/영어난이도/노래난이도와 같은 수준별 난이도가 표시되어 있어 자신에게 맞는 맞춤형 곡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도 제공받을 수 있었다.

 

이를 통해 조금 더 재미있고 자신 있게 부를 수 있는 곡을 선택한다면, 영어 공부가 약간은 더 쉽고 재미있게 다가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좌우 페이지를 살펴보면 영어 빈칸 채우기와 한글 영어 발음, 한글 뜻과 영어 단어를 동시에 확인할 수 있다. 해당 곡을 잘 안다면 그대로 빈칸을 채워봐도 좋지만, 제대로 된 가사를 잘 알지 못한다면, QR코드를 통해 곡을 먼저 들어보자!

 

개인적으로는 빈칸 채우기보다 QR코드를 통해 해당 곡과 관련된 배경지식, 뮤직비디오, 영어 가사와 한글 가사 등을 미리 충분히 습득한 뒤에 빈칸 채우기를 해보기를 추천하고 싶다.

 

모처럼 뮤직비디오를 보며 음악도 즐기고, 배경지식도 알고, 영문 가사와 영어 발음, 한글 가사를 통해 뜻과 음까지 알면 일석삼조가 아닐까?

 




나 역시 처음에 무턱대고 빈칸 채우기를 해보려고 하니 조금 막막했는데, 음악을 듣고 흥얼흥얼 따라 하고 난 뒤 다시 책으로 돌아왔더니 쉽게 빈칸을 채울 수 있었다.

 



또 해당 곡에서 사용빈도가 높은 문장들의 사용 패턴과 응용 문장들도 만나볼 수 있었는데, 예시문을 통해 실생활에서 유용하게 쓸 수 있는 작문 방법과 활용방법도 알 수 있었다.

 



저작권을 허락받지 못한 180곡은 위와 같이 곡의 타임라인에 따라 등장하는 단어와 뜻이 수록되어 있었다. 그리고 추가적으로 QR코드를 통해 아래와 같이 곡의 자료와 뮤직비디오, 영어 가사, 한글 발음 등 동일한 정보를 함께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추가적으로 받은 미니 책자 역시 본 책자와 같은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가벼운 팝송 책이라고만 생각했던 것을 꼼꼼히 살펴보니 꽤 알차게 구성되어 있어 제대로만 공부한다면 꽤 좋은 영어책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특히 익숙한 멜로디와 가사들을 무의식적으로 눈으로 좇고, 귀로 들으며, 입으로 나온다는 것은 꽤 좋은 학습효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제대로 한 곡을 마스터해보니 1시간은 너끈히 지나갔다. 곡의 배경지식을 알고, 뮤직비디오를 보고 영어 가사와 한글 가사들을 꼼꼼히 살펴보면서, 빈칸도 채워보고, 단어도 외우고, 자료도 이것저것 보다 보니 그냥 곡 전체에 대한 이해뿐만 아니라 영어 공부가 절로 되는 느낌이었다.

 

후에 만약 어디선가 그렇게 공부한 곡이 흘러나온다면 왠지 발걸음을 멈춰 서서 듣고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드는 건 나뿐일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모든 계절이 나를 만들었다 - 아픈 만큼 단단해지고 있기에 당신의 모든 날은 헛되지 않다
김신일 지음 / 미다스북스 / 2023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계절이 당신을 만들어 줄 것입니다!"

 

시간과 계절의 변화에 따라 솔직하게 자신의 감정들을 담아낸 저자의 에세이를 읽으며 나의 일상을 '끄적끄적' 적어 내려간 글들이 문득 떠올랐다.

 

길을 걷다 마주친 하얀 눈송이가 예뻐 보이던 날, 사람에 치여 속상함에 눈물짓던 날,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싶어 정리를 시작한 날 등 나에게도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 흔적들이 글을 통해 남아있었다.

 

생각해 보면, 삶은 우리에게 예상치 못한 불운과 행운을 건네며 울게도 하고 웃게도 한다. 덕분에 좌절과 불운이 들이닥치는 날에는 앞도 보이지 않는 컴컴한 길을 나 홀로 헤매는 듯한 불안과 초조함을 경험을 하기도 하고, 반대로 예상치 못한 행운이 깃드는 날에는 달콤한 과실을 입안 가득 베어 문 듯 활짝 미소 짓기도 한다.

 

돌아보면 시간과 계절 속에는 그런 우리의 성숙과 성장의 모든 나날들이 담겨있다. 당시에는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라며 허공을 향해 발길질하는 날들도 있지만, 새삼 이제 와 생각해 보면 그때 그 경험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음을 이제는 안다.

 

저자 역시 그 모든 불행과 행운의 날들을 글로 기록하며 하루하루를 견뎠다. 어쩌면 한때는 세상 어디에서 속하지 못한다는 불안감과 허망함이 자리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무언가를 시도해 보는 도전을 멈추지 않음으로써 이제 저자는 빚은 청산하고, 병도 완치되었으며, 자신감도 얻게 된다. 여기에 더해 이제는 목돈도 생겼다.

 

한때는 여자친구와 직장 생활을 하는 친구들을 보며 열등감과 자격지심이 폭발해 초라해진 자신의 모습에 고개를 수그리던 때도 있다. 하지만 이런저런 변화들을 겪으며 이제는 덤덤하게 자신의 성장담을 누군가에게 솔직하게 내보일 수 있을 만큼 발전했다.

 

힘든 나날 속에서도 오롯이 버틸 수 있었던 유일한 이유였던 저자의 글을 통해 우리의 삶은 안녕한지, 또 우리가 보내고 있는 사계절은 어떠한지 살펴보는 시간을 가져봤으면 좋겠다.

 

=====
사람이 외롭다는 말은 홀로여서가 아닌 사랑 받지 못해서 마음이 공허해서일 겁니다. 사람들과 있어도 소속감이나 친밀감이 느껴지지 않을 때 스스로 작아집니다.

 

공허함을 사람으로 채운다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공허함은 무언가로 채우는 것이 아닌 자연스러운 감정이기 때문이다. 결핍을 채우려고 사랑하는 것만큼 위험한 일도 없을 것입니다.

 

'그동안 외로웠구나! 사랑받고 싶었구나,'
(...)
이 말 한마디가 그토록 듣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32페이지 中
=====

 

타인을 통해 나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려고 하면 자꾸만 서운함이 돋아난다. 나의 감정은 내 것이기에 나에게 부족한 부분은 내 스스로 채워보려는 노력을 기울여 보면 어떨까?

 

외롭다고 느낀다면, 공허하다고 느낀다면 지금 나의 외로움과 공허함의 근본적인 이유는 뭔지, 이것을 채우기 위한 방법은 무엇일지 곰곰이 생각해 보자.

 

 


=====
마음이 예쁘고 말을 예쁘게 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면 내가 먼저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좋은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사람은 어느 정도 비슷한 사람끼리 만나기 때문입니다.
62페이지 中
=====

 

어릴 때부터 많이 듣던 소리지만, 사람들은 어느새 이 말을 슬며시 잊어버리며 산다. 그리고 타인에게만 이 모든 조건이 충족되기를 '바란다'.

 

하지만, 바라기만 해서는 이 모든 것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만약 실제로 이루어졌다면 '마음이 예쁜 척' 하거나 '좋은 사람인 척' 하는 것은 아닌지 점검해 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내가 좋은 사람이 아니라면, 나부터 좋은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 보자. 그러면 자연스럽게 좋은 사람이 곁에 다가올 것이다.

 

 


=====
30대가 되면서 있는 그대로의 나를 지지해 주는 심리상담사를 만나 얘기도 하고 조언도 구했습니다.

 

예전이었다면 사랑만 주다 상처를 받았을 테지만 이제는 주는 것보다 사랑을 받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랑은 주고받는 것만도 받는 것만도 아님을 알았습니다. 사랑을 받아본 사람이야말로 제대로 된 사랑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69페이지 中
=====

 

사랑은 일방적일 수 없다. 사랑은 주고받는 것인지 일방적으로 주거나, 일방적으로 받아서는 성립되지 않는다. 제대로 사랑하고 싶다면, 많이 사랑해 주고, 많이 사랑받자!

 

 


=====
어디에도 당연한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당연히 나는 이런 성격이니까 네가 이해해 줘야 해.
(...)
당연한 것이 있다면 굳이 인간관계를 노력하며 살 필요가 있을까요? 굳이 노력하며 사랑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하니까 네가 이해해 줘야 한다.'는 말은 스스로 바꿀 수 없고 바꾸려고 노력할 생각이 없으니 자신을 그대로 이해해 주고 품어달라는 말로 해석됩니다.
(...)
상대에 대한 배려와 예의 존중 없이 당연한 것을 바라는 것은 일방적인 요구를 하는 것과 같습니다.
77~78페이지 中
=====

 

우리는 '당연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사실을 때때로 잊고 산다. 쉽게 내뱉는 '당연한 거 아냐?'라는 말, 이제는 조금 생각해 볼 타이밍이 아닐까?

 

너와 나는 생각하는 것도, 살아온 환경도, 원하는 바도 모두 다르다. 하지만 우리는 상대방의 헌신이나 사랑, 배려를 너무도 쉽게 '당연한' 것으로 치부한다.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 만약 상대방이 당신에게 배려와 존중을 보여줬다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넘길 게 아니라, 감사함과 고마움을 전해보자. 그것이 미덕이고 인지상정이다.

 

 


=====
우리가 배우는 모든 일은 살아가면서 언젠가 다 도움이 될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 쓰일 일이 있듯이 헛된 배움은 없습니다. 경험은 여러 면에서 양분이 되어 도움이 되기에 훗날 어떤 일을 할 때 이용되어 도움이 되는 날이 있을 것입니다.
88페이지 中
=====

 

아주 사소한 일이 후에 나에게 어떤 도움으로 다가올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누군가는 쓸데없다고 여기거나, 비웃는 일일지라도 나만큼은 진지하게 받아들여보자.

 

모든 배움에는 다 쓰임이 있다는 믿음은 무언가를 도전함에 있어 주저함보다는 자신감을 북돋아 줄 것이다. 이로 인해 더 다양하고 폭넓은 경험은 후에 우리의 자산이 될 것이다.

 

 

개인적인 생각들을 어딘가에 기록으로 남긴다는 것은 참 좋은 방법인 것 같다. 과거에는 손으로 쓰는 방법밖에는 없었지만, 요즘은 마음만 먹으면 여러 방법(아날로그&디지털)으로 기록할 수 있으며, 다양한 기기들도 활용할 수 있다.

 

공개 여부는 필수가 아닌 선택이므로, 자신이 좋아하는 방식으로 오늘부터 자신만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보면 어떨까? 완전 강추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작별하지 않는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장편소설
한강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무엇을 향해 가는지도 모르고, 이야기의 흐름에 맡기고 따라가다 보면, 우리의 아픈 역사와 아직도 찾지 못한 사랑하는 가족의 유해를 찾아 헤매는 이들을 만날 수 있다.

 

언젠가부터 꾸기 시작한 경하의 악몽에서부터 시작되는 이야기는 그렇게 인선을 거쳐 인선의 부모님의 이야기로까지 연결되는데, 단순한 악몽을 넘어 가슴 아픈 우리 역사에까지 이른다.

 

당시에는 차마 말할 수 없었던, 알릴 수 없었던 이야기를 이제서야 꺼내들며 묻어둔 옛이야기를 그렇게 시작한다. 혹독한 겨울 속에 존재하는 침묵, 그리고 수면 위 잔잔함과는 다른 가슴속에 묻어둔 뜨거운 불길들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총 2부로 진행되는 이야기를 살펴보면, <1부-새>에서는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의 발단이 되는 부분이다. 표면적으로는 경하가 새와 엮이게 된 사연이 공개되는 장으로, 인선의 요청으로 폭설에 뒤덮인 인선의 제주 집에 홀로 남겨진 새를 구출하러 가게 되는 계기가 담겨 있다.

 

더불어 경하와 인선이 현재 겪고 있는 상황과 그들의 삶이 어떠한지 알 수 있는 장이기도 하다. 어쩌면 이렇게 깔아둔 밑밥이 있었기에 후반부 2장에 진행되는 이야기가 더 설득력을 얻는지도 모르겠다.

 

<2부-밤>에서는 중의적 표현으로 여러 '밤'이 전개된다. 어렵사리 제주에 도착하지만 폭설로 인해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경하의 상황, 정전으로 인해 인선의 제주 집이 암전 된 모습, 그리고 본격적으로 듣게 되는 인선의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 등 실제 존재하는 밤과 상황에 대한 밤이 함께 공존하고 있는 장이다.

 

 


어쩌면, 조금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처음에 페이지를 넘기면서 나 역시 그랬으니깐. 꾸고 싶지 않은 악몽으로 시작하는 이야기는 내내 밝음보다는 어둠의 비중이 훨씬 더 컸다.

 

사 년 째 반복되는 악몽, 거기에는 눈 내리는 벌판과 수천 그루의 검은 통나무, 물에 잠긴 무덤들, 뼈들이 가득했다.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가늠할 수 없는 상황들이 지속적으로 꿈에 나타난다.

 

처음에 경하는 그것이 그 무렵에 꾸었던 다른 악몽들과 마찬가지로 지난 책(도시의 학살에 대한 책)에서 다룬 학살에 대한 꿈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 꿈의 의미를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한 두 번에 그칠 것으로 생각한 그 꿈이 사 년째 이어지면서 현실에도 영향을 주기 시작하면서 자신이 생각한 것과 다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초반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서였는지 당시에는 목공 일을 하는 친구 인선에게 꿈에 대해 이야기하며 함께 그 꿈과 연관된 작업을 영상으로 만들자는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두 사람의 일정이 맞지 않아 미루고 또 미뤄지면서 어느새 사 년이 넘게 된다.

 

그리고 그 사이 처음 그 꿈을 꾸었던 밤과 그 여름 새벽 사이 사 년 동안 경하는 몇 개의 사적인 작별을 하게 되면서, 힘든 시간을 보내게 된다. 한때는 부모님도, 남편도, 아이도, 그리고 직장도 있었지만 이제 더 이상 돌볼 가족도, 일을 할 직장도 남아 있지 않게 된다.

 

때문에 경하는 7월이 올 때까지 대부분의 시간을 침대에 누워 보내면서 잠은 거의 자지 못했고, 음식도 만들지 않았으며, 현관 밖으로 나가지도 않았다.

 

그러다 고질적인 위경련을 동반한 편두통이 시작되면 먹은 것을 모두 변기에 토했고, 유서는 어느 밤 이미 써두었다. 그러나 유서의 수신인 이름은 적을 수 없었는데, 그런 폐를 끼쳐도 될 사람이 누구인지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어느 날 경하는 수신인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게 되고 그렇게 죽음이 그녀를 비껴가게 된다.

 

그렇게 인생과 화해하지 않았지만 다시 살아야겠다고 마음먹게 되면서, 편두통과 위경련, 카페인 함량이 높은 진통제 복용의 악순환을 끊기 위해 규칙적으로 먹고 몸을 움직이게 된다.

 

그렇게 죽집을 드나들며 죽을 먹기 시작하면서 편지를 처음부터 다시,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새로 써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그걸 쓰려면 생각해야 했다.

 

=====
어디서부터 모든 게 부스러지기 시작했는지.
언제가 갈림길이었는지.
어느 틈과 마디가 임계점이었는지.
17페이지 中
=====

 

그 악몽이 시작된 것은, 2012년 겨울, 그 책을 쓰기 위해 자료를 읽으면서부터 시작된다. 가족에게-특히 딸에게-어두운 영향을 주고 싶지 않았으므로 집에서 도보 십오 분 거리에 작업실을 얻었다. 글쓰기는 작업실에서만 하고, 그곳을 나서는 즉시 아무렇지 않은 일상으로 돌아올 계획이었다.

 

그러나 마치 몸이 절반으로 갈라지듯, 그 모든 사적인 순간들에까지 그 책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있었다. 수면의 질이 차츰 더 나빠지고 호흡이 짧아지던 2013년 늦봄, 새벽 한시경 악몽에 소스라치며 일어나 다시 잠을 이루는 걸 포기하고 생수를 사려고 집을 나서면서 이상한 것을 목격하게 된다.

 

건너편 인도를 따라 예비군복을 입은 서른 명가량의 남자들이 소리 없이 줄을 지어 걷고 있는 것을 목격한 것이다. 그 남자들은 장총을 어깨에 메고, 군기를 전혀 느낄 수 없는 느슨한 자세로, 앞서가는 소풍 행렬을 따르듯 느리게 걷고 있었다.

 

이것을 보고 그녀는 내가 정말 저것을 보고 있는가? 그 순간은 악몽의 일부가 아닌가? 나의 감각을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꿈도 아니었고, 졸리지도 않았다. 술 같은 건 한 방울도 마시지 않았다. 하지만 그 순간 경하 자신이 본 것을 믿을 수도 없었다.

 

이후 책은 정확하게 5월 중순에 맞춰 나왔고, 악몽은 물론 그 후에도 계속되었다.

 

 

=====
여전히 깊게 잠들지 못한다.
여전히 제대로 먹지 못한다.
여전히 숨을 짧게 쉰다.
나를 떠난 사람들이 못 견뎌했던 방식으로 살고 있다. 아직도.
28페이지 中
=====

 

그렇게 살던 어느 날 12월 하순의 아침, 경하는 인선에게서 문자 한 통을 받게 된다. 인선은 잡지사에서 일할 때부터 약 이십 년을 친구로 지낸 사이라 그녀의 습관들에 대해 알만큼 아는 사이였다.

 

인선은 제주에 살고 있었는데, 형제자매 없이 마흔둥이로 태어나 자란 그녀는 팔 년 전 제주 중산간 마을로 돌아가 어머니를 돌보다 사 년 만에 여의었고, 그 후로도 그 집에서 혼자 머물렀다.

 

인선은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했는데, 이십 대 후반부터 다큐멘터리 영화에 관심을 가졌고 그 일을 십 년 동안 끈기 있게 했다. 그러다 제주에 내려간 뒤에는 목공일을 하고 있었다.

 

그런 인선이 갑자기 연락을 해오며 서울의 봉합수술 전문병원으로 와달라고 부탁을 해왔다. 인선은 손가락에 붕대를 감고 있었는데, 회복을 위해 삼 주 동안 바늘로 절단 부위를 삼분에 한 번씩 찔러야 하는 아픔을 견디고 있었다.

 

인선은 제주 집에 갈 수 없는 자신을 대신해 오늘 해떨어지기 전에 도착해 새를 돌봐달라는 부탁을 해온다. 안 그러면 새가 죽는다며 자신이 퇴원할 때까지만 아마(새)를 돌봐달라고 부탁한다.

 

경하는 그 순간 정말로 부탁할 사람이 자신뿐인 건지, 또 더 이상 일도, 가족도, 계속할 일상의 의미도 존재하지 않게 된 사람인 자신이 새를 돌보는 게 맞는지 의문을 가지지만 어떤 이유라 해도 거절할 방법이 없어 수락하게 된다.

 

우연인지 운명인지 그렇게 마지막 비행기 편으로 섬으로 들어오고, 인선의 마을로 데려다줄 마지막 지선버스에 올라타게 되면서 무사히 제주에 입성하게 된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버스에서 내려 인선의 집이 있는 산을 오르던 중 눈길에 미끄러지게 되고 이내 정신을 잃게 된다.

 

캄캄한 어둠 속 지치고 힘들어 이대로 그만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들지만, 인선이 부탁한 새의 안부를 확인하기 위해 그대로 잠들지 못한다. 그렇게 다시 깨어난 경하는 빛을 따라 겨우 인선의 목공방에 이르게 된다.

 

하지만 소망과는 다르게 새는 이미 죽어있었고, 경하는 그 즉시 새를 손수건에 감싸 작은 통에 담고 또다시 수건에 감싸 나무 밑에 소중히 묻어준다.

 

여기까지는 사실 추위에 뒹굴면서 다친 자신의 몸보다 오늘 밤을 넘기면 죽을 수도 있는 새의 안위를 살피는 것이 먼저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후부터 전개되는 이야기들에서는 현실감각이 모호해지기 시작하면서 어떤 것이 현실이고 거짓인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이런 패턴은 이야기의 끝까지 그대로 이어지는데, 경하 자신도 이런 모호한 감각과 상황에 대해 자신이 죽은 것인지, 아니면 인선이 죽은 것인지 지금 상황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헷갈려 한다.

 

=====
죽으러 왔구나. 열에 들떠 나는 생각한다.
죽으려고 이곳에 왔어.
172페이지 中
=====

 

더불어 한편으로는 폭설에 제주까지 굳이 내려온 것이 사실은 자신이 죽으려 온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이제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제주에 있는 인선의 집을 배경으로 넓게, 더 넓게 펼쳐진다. 이들이 함께 영상으로 제작하기로 한 프로젝트 '작별하지 않는다'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불현듯 인선이 제주 집에 나타나면서 인선이 품고 있던 이야기를 듣게 된다.

 

폭설 속 고요하게 내려앉은 산 중 깊은 인선의 집 안에서 오롯이 들리는 건 인선의 조근조근한 말과 이따금 날아오르는 그림자를 통해 비춰드는 죽은 새(혹은 살아있는) 아마의 형상이다.

 

=====
인선과 뜨거운 차를 마시면서 불현듯 경하는 생각한다.
인선이 혼으로 찾아왔다면 나는 살아 있고, 인선이 살아 있다면 내가 혼으로 찾아온 것일 텐데. 이 뜨거움이 동시에 우리 몸속에 번질 수 있나.
194페이지 中
=====

 

의구심이 들었지만 경하는 이에 대해서는 조금도 말을 꺼내지 않는다. 다만 곳곳에서 이상함을 감지할 뿐이다.

 

 


인선은 자신이 처음 제주공항에서 뼈를 본 이야기부터 시작해 아버지, 어머니의 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가며 마침내 그동안 가슴속에 꼭꼭 숨겨두고 있었던 이야기들을 하나씩 풀어낸다.

 

=====

뼈들을 본 뒤부터야.
만주에서 돌아오던 비행기에서.

 

그 가을에 유골들이 발굴됐어.
제주공항, 활주로 아래에서.
209페이지 中
=====

 

이 방식의 흐름을 살펴보면, 인선의 아버지가 죽기 전 어머니에게 전하고, 또 인선의 어머니가 인선에게 건네고, 다음으로 인선이 또 경하에게 전하는 방식을 취하는데, 어쩐지 구전으로 전해지는 전래동화처럼, 혹은 그때 그 일을 잊으면 안 된다는 무언의 약속처럼 그렇게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다. 마치 스며들듯이.

 

=====
우리 말고는 아무도 없는 집의 어둠 속에서, 그 으스러지는 포옹이 계속될수록 점점 엄마와 나의 몸을 구별할 수 없게 되었어. 얇은 피부, 그 아래 한 줌 근육, 미지근한 체온과 혼란이 나의 것들과 뒤섞여서 한 덩어리가 되었어.
312페이지 中
=====

 

이를 통해 경하는 자신이 미처 몰랐던 그때 그 사건들의 중심에 있던 사람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살아남으려 애를 썼는지, 또 얼마나 처참하게 죽임을 당했는지를 알게 된다.

 

더불어 인선이 제주의 집에 홀로 남아 있었던 이유와 전에 그녀가 자신의 영화에 이 이야기를 왜 담지 못했는지도 알게 된다.

 

또 프로젝트를 그만두자고 했던 경하의 말에도 끝끝내 실행하기를 원했던 인선의 마음이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지도 알게 된다.

 

=====
피에 젖은 옷과 살이 함께 썩어가는 냄새, 수십 년 동안 삭은 뼈들의 인광이 지워질 거다. 악몽들이 손가락 사이로 새어나갈 거다.
287페이지 中
=====

 

과거 제주에서 일어난 4.3 사건은 제주에 살고 있던 주민들을 빨갱이로 치부하며, 젖먹이 아기까지 절멸시키는 게 목적이었다.

 

인선의 어머니 때부터 모아온 자료들은 인선이 조금씩 빈 공간을 채우기 시작하면서 그렇게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열쇠이자 인선의 부모님, 더 나가서는 제주에 살고 있던 이웃들과 시민들의 억울하고 피눈물을 삼킨 이야기를 품고 있었다.

 

인선은 프로젝트를 위해 나무들을 모았다고 했지만, 결국 모든 것은 하나로 귀결되고 있었다. 어쩌면 경하가 4년 동안 꾸었던 꿈 역시 이것을 간접적으로 예지몽 내지 데자뷔, 혹은 과거의 모습을 간접적으로 암시한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당시 사람들은 무자비하게 죽어나갔다. 군이 데려간 사람들은 P 읍에 있는 국민학교에 한 달간 수용돼 있다가 지금 해수욕장이 된 백사장에서 12월에 모두 총살되었고, 온갖 마을은 불타 없어졌다. 이처럼 학교 운동장에 모은 다음 근처 밭이나 물가에서 죽이는 것이 모든 마을에서 행해지던 보통의 패턴이었다.

 

이 와중에 인선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인연이 이어진 것도 어머니가 외삼촌의 행적을 찾아 나서면서 아버지와 외삼촌이 함께 대구형무소에 수감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부터라는 것도 밝혀진다.

 

인선은 어머니가 정신을 놓기 시작하면서 어머니의 나약한 모습만을 기억하고 있었기에 나약하다고만 생각했는데, 어머니가 외삼촌을 찾기 위해 모아둔 자료들을 발견하게 되면서 사실은 매우 강한 사람이었음을 알게 된다.

 

=====
세상에서 가장 나약한 사람이 엄마라고 생각했어.

 

허깨비.
살아서 이미 유령인 사람이라고 생각했어.

 

그 삼 년 동안 대구 실종 재소자 제주 유족회가 정기적으로 그 광산을 방문했다는 걸 나는 몰랐어.
엄마가 그들 중 한 사람이었다는 것도.

 

그때 엄마 나이가 일흔둘에서 일흔넷. 무릎 관절염이 악화되던 때야.
288페이지 中
=====

 

이 이야기는 군부가 물러나고 민간인이 대통령이 될 때까지, 1948년 제주 4.3사건에서부터 1960년 419혁명까지 이어지는 길고 긴 이야기다. 여기에 더해 실종된 가족을 찾기 위한 생존자의 길고 고요한 투쟁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작별하지 않는다>라는 제목은 경하와 인선의 프로젝트 제목이기도 하지만, 사실 이 책에 담긴 내용으로 봐서는 여러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말이기도 하다.

 

4.3사건으로 인해 쓰러져간 사람들과 작별하지 않는 것, 그때 겪었던 아픔과 고통들을 여전히 기억하는 것, 또 아직도 유해를 수습하지 못한 그 사람들을 찾을 때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 폭력에 훼손되고 공포에 짓눌려도 가족과 삶을 포기하지 않는 것 등과 같은 많은 의미를 포함한다.

 

몽환적이고 모호함 속에서 이토록 현실감 있게 전해지는 이야기는 과거 죽음을 그리며 기다리던 경하와 인선에게 스며들기 시작하면서 어느새 다른 의미로 다가오고, 현재의 내 인생이 원래 무엇이었는지 더 이상 알 수 없게 되어 버린다.

 

서서히 미처가고 있다는 느낌 위에 윤곽이 선명해지던 어느 시점부터 스스로가 변형되는 느낌은 그렇게 경하와 인선에게 다가와 어느새 이들을 덮쳐버린다.

 

=====
한 발씩 힘껏 땅을 디디고 그 바람을 가르며 걷던 한순간 생각했어. 그들이 왔구나.
무섭지 않았어. 아니, 숨이 쉬어지지 않을 만큼 행복했어.
(...)
너와 하기로 한 일을 이제 시작할 수 있겠다고.
318페이지 中
=====

 

인선의 삶은 불행 속에 싹튼 삶이었다. 그리고 경하는 서서히 불행에 잠식 당하는 형태를 취한다. 이 이야기 속에는 매섭도록 차가운 겨울과 검은 통나무, 물에 잠긴 무덤, 널려있는 뼈들이 등장하며 어두운 그림자를 쉼 없이 드러낸다.

 

어느 순간 삶을 포기한 이들의 한가운데는 그럼에도 살아가야 할 의미로 4.3사건이 재조명되며 떠오른다. 아픈 역사 속에 자리한 이들의 이야기 속에서 '사랑'을 본다.

 

어딘가 모르게 자꾸 궁금증을 유발하는 두 여성의 삶을 통해 비극적 역사와, 우리의 현재, 미래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지금껏 우리를 살아가게 한 사랑의 힘은 결국 그들의 고통과 슬픔, 희생 덕에 얻어진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작별하지 않는다.
아니, 작별하면 안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메피스토펠레스의 유혹, 지우개
작가 水 지음 / 좋은땅 / 2023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떤 이야기를 시나리오를 통해 만나보는 건 처음인데 소설이나, 에세이 등의 장르로 만나보는 것과는 다른 느낌이다. 감독 혹은 삼자의 관점에서 조금 떨어져 무대의 배경과 인물 하나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어 색다른 재미가 있다.

 

지문이나 스토리 외의 요소들이 이야기를 파악하는 데 오히려 방해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잠시 했었는데, 전혀 그런 느낌은 들지 않는 것도 신기하다.

 

총 다섯 편의 시나리오로 만나보는 단편집들은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는 소재를 중심으로 삶에서 진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고찰하도록 인도하고 있다.

 

단지, 네 번째 이야기인 갈릴리 병원만큼은 예외다. 사회적 이슈나 삶의 중요 가치에 대해 논하기 보다 저자 개인의 취향 혹은 종교적 신념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
시나리오별 콘셉트와 간단 줄거리
=====

 

1. 메피스토펠레스의 유혹, 지우개

 

▶드라마 콘셉트
기억을 팔아 현실을 도피하고자 했던 기막힌 사연을 간직한 중년 여성이 기억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는 판타지, 스릴러 드라마

 

▶작의
우리는 지난 기억들을 추억으로 간직할 수 있는 삶을 살고자 한다. 그러나 생의 어느 순간, 어느 지점은 떠올리기조차 숨 막히는 기억으로 존재한다. 해서 그 기억만 없다면 자신의 생은 완벽해질 것만 같은 바람을 갖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완벽한 착각이다. 오늘의 나를 '나'이게 하는 그것은, 바로 '기억'이기 때문이다.

 

드라마 <지우개>가 다루고 있는 '기억의 상실'은 기억이 당신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다시금 상기하게 할 것이다.

 

 


2. 호상 好喪

 

▶희곡 콘셉트
박판례 할머니가 식물인간이 되자, 무능한 아들 셋은 집안의 기둥인 판사 딸과 좌충우돌한다. 이때 박 할머니가 들어 놓은 보험에서 거액의 사망보험금이 지급된다는 소식을 들은 세 아들들은 마음이 심란해지는데.

 

▶작의
호상은 2020년 대한민국 사회에 물음을 던진다. 대한민국 일원으로 현재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들이 개인이 혼자 이룬 것이 아니라면, 우리 구성원의 노쇠함과 죽음을 언제까지 개인의 문제로 방치할 것인가를 말이다.

 

오로지 자본주의 경제 논리로 운영되는 사회가 아닌 '자본주의의 인간화' 즉 인간의 존엄한 가치가 우선시되는 사회로 바뀌어야 구성원 모두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

 

돌봄의 경제 철학 아래, 국가는 구성원의 안전과 건강, 그리고 복지를 위해 존재한다는 각성이 절실히 필요한 때임을 전하고 싶다.

 

 


3. 새순

 

▶희곡 콘셉트
1980년 5월 광주, 평범한 고등학생 달래와 행진 쌍둥이 남매는 서울에서 배낭여행을 온 대학생 상철과 형준을 만난다. 달래와 행진은 묵을 곳을 찾는 상철과 형준을 집으로 데려가 즐거운 한때를 보내게 된다. 그것이 마지막 밤인 줄도 모르고.

 

▶작의
5.18광주 민주화운동에 대한 이야기로, 오랜 세월 '폭도'라 오해받고 사지로 내몰렸던 시민들이 어떻게 시민 군이 되었는지 그 탄생의 날을 돌아보고자 한다. 

 

오늘날 반드시 회상되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그 기억을 통해 현재의 우리가 누구인지 정체성을 바로 세우기 위함이다. 또한 민주주의 불씨가 된 5.18의 참혹했던 기억을 회상함으로써 다음 세대가 역사의 '새순'으로 자라날 것임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죽음을 불사하는 광주시민의 숭고한 저항은 폭동이 아닌 참된 민주주의 혁명으로 계승되어야 함을 <새순>에 담아 세계에 전한다.

 

 


4. 갈릴리 병원

 

▶희곡 콘셉트
경영난으로 문 닫을 위기에 처한 심장이식 전문 병원에 새로 부임하기로 한 원장이 행방불명된다. 병원을 빨리 문 닫고 헐값에 팔아 버리려는 재단 이사장과 병원 가족들은 심각한 갈등을 겪게 되는데, 과연 갈릴리 병원은 회생할 수 있을까?

 

▶작의
종교적 색채를 띠고 있는 이 줄거리는 삶의 곳곳에서 예수님을 만날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고난 중에도 주님이 계심을 믿는다면 우리의 삶이 축복이 될 거라는 내용이다.

 


5. 수목장 樹木葬

 

▶드라마 콘셉트
사랑하는 엄마를 안락사시킨 간호사와 그녀를 사랑한 담당 검사, 그리고 이들을 둘러싼 사회적 통념을 다룬 현실 사회 문제극.

 

▶작의
생사의 결정이 누구의 영역이어야 하는가의 질문을 떠나서 경제적, 육체적, 정신적 어려움 속에 하루하루를 버티며 환자를 지켜내야 하는 가족의 고통을 돌아보고, 우리 모두가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이들의 고통에 관심을 기울여야 함을 말하고 싶다.

 

 


=====
자세히 들여다보기
=====

 

다섯 가지 시나리오 중 네 가지 이야기 모두 현실에 도래하고 있는 여러 사회문제와 우리가 한 번쯤 생각해 보아야 하는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특히 두 가지 이야기가 인상 깊어 더 깊이 들여다보려고 한다.

 

이를 통해 우리 삶에 진짜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 또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한 번쯤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메피스토펠레스의 유혹, 지우개

 

평범한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시정은 잊고 싶은 기억을 간직한 채 하루하루를 죽지 못해 살아가는 중년의 여성이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재회한 고향 친구 유미로부터 젊음과 미모, 삶의 활력을 되찾을 수 있는 성형외과를 소개받는다. 그녀는 그곳에서 젊음과 기억을 맞바꾸자는 제안을 받게 된다.

 

한편 50대이지만 20대의 미모를 가지고 있는 유미는 이시정의 어릴 적 친구로 본명은 이점순이다. 현재 500억 매출의 '아기 피부화장품' 회사의 대표이사로, 자신이 가지고 있는 20대의 미모와 젊음을 이용해 승승장구 중이다.

 

그러나 실상은 유미 역시 기억과 젊음을 맞바꾸어 유지하고 있는 상황으로 더 이상 맞바꿀 기억이 남아있지 않은 유미는 간당간당하게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어렸을 때부터 놀림과 설움을 당하는 것은 물론 성인이 되어서도 불운한 삶을 살았던 유미에게 어쩌면 그 모든 과거의 기억은 지우고만 싶었던 기억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러한 와중에도 어렵사리 키운 하나뿐인 아들의 기억마저 지워버리는 상황이 되자 어느덧 끝없는 과욕에 치닫게 되면서, 결국 삶의 끝에 이르게 된다.

 

한편, 최근 삼 년 사이 하나뿐인 소중한 아들과 시어머니를 잃게 되면서 우울과 고통 속에 살아가고 있던 시정은 늙고 소외된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가벼운 마음으로 성형외과를 찾는다.

 

딱 일 년 치의 기억을 지우고 찾고 싶었던 생기와 아름다움이 자신의 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면서 어느새 유미와 같은 중독에 빠지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

시정(F): 분명, 일 년간의 기억이라고 했어. 일 년... 그런데, 삼 년 전에 돌아가셨다는데 난 기억이 나질 않아. 그럼, 그것들이 나한테 거짓말을 했다는 거여 시방? 이것들을 그냥!

53페이지 中

-----


단순히 불운하고 불행했던 기억을 지우고 싶었던 것이 결국 정말 소중한 사람들의 기억마저 지워버리게 되면서 어느새 삶의 의미와 방향마저 잃어버리게 된 것이다.

 

-----

늙은 간호사: 사람들은 너무도 쉽게 자신의 주름을 지워 버리려고만 해.
시정: (눈에 눈물이 맺혀서) 몰랐응께. 기억이란 것이 이렇게 소중한 것인 줄 몰랐응께라.
82페이지 中

-----


젊고 아름다운 사람들이 가득한 성형외과에서 유일하게 늙은 간호사는 "사람들이 너무 쉽게 자신의 주름을 지워버리려고 한다'고 말한다.

 

이에 뒤늦은 후회를 하는 시정은 '기억이란 것이 이렇게 소중한 것인 줄 몰랐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내 이미 허물어진 기억의 구멍들은 더 큰 나락으로 시정을 이끌게 된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때로 암울했던 어두운 과거의 기억을 지워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이불킥하던 순간들만 사라지면 왠지 더 당당하고 아름답고, 완전무결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불행의 순간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음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기억의 조각은 케이크 자르듯 떨어져 나가는 것이 아니기에, 그것을 도려내는 순간 무수히 복잡하고 많은 관계와 선들은 갈 곳을 잃게 된다.

 

지금의 나는 누구이고, 내가 살아가는 방향은 무엇인지, 또 내가 소중하게 생각했던 사람들은 누구인지 모두 잊게 되는 엄청난 일을 겪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불행했던 순간마저도 소중하게 감싸 안아 주자.

 

지금, 현재의 내가 서 있을 수 있는 이유 중 하나에 불행과 고난도 섞여 있음을 인정하자. '기억' 이 있음에 지금의 내가 있음을 기억하자. 그리고 살아온 과거의 모든 순간을 사랑해 주자.

 

 


■수목장

 

어릴 때 폐병으로 돌아가신 어머니, 난봉꾼으로 불리던 아버지 사이에서 어렵사리 큰 삼 형제는 칠 년 째 식물인간으로 누워 있는 아버지의 병실 앞에서 각자만의 이유로 한숨이 나오는 상황이다.

 

특히 어릴 적 술만 먹으면 어머니를 때리던 아버지가 칠 년 전에 뇌출혈로 반신불수가 돼서 이들의 앞에 나타나면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던 삼 형제는 냉혹한 현실 앞에 아버지의 처우를 두고 갈등 중이다.

 

한편 이들 아버지의 담당 간호사인 현주 또한 엄마가 말기 암으로 암 병동에서 치료 중으로, 통증이 심해서 늘 괴로워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고통이다.

 

그러던 중 현주의 사정을 알고 있던 남자친구는 이별을 고하고, 환자와 보호자로 마주치면서 어느새 민철과 현주는 연인 사이가 된다.

 

그 사이 정신적, 육체적 고통과 경제적 어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환자와 보호자가 동반 자살하는 일이 벌어진다. 그리고 현주 또한 고통으로 괴로워하는 엄마의 요청에 따라 더 지켜보지 못하고 안락사를 감행한다.

 

이에 담당 검사와 피고로 만난 이들은 어쩔 수 없는 대치 상황에 놓이게 된다. 아직 안락사에 대한 아무런 법안이 없는 상황이라 존속살인으로 인정되는 분위기 속에서 과연 이것이 정당한 것인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증인으로 나온 동료 간호사인 은주는 안락사에 대해 '살인'이라고 말하는데, 그녀가 이렇듯 직업적 소명만을 주장할 수 있는 건 그녀가 가진 배경도 한몫한다. 의사 가족과 부유한 집안 덕에 경제적 어려움이나 장기입원에 따른 어려움을 고려 대상에 넣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은주와 같은 배경을 가지지 못한다. 특히 식물인간이나 암 병동과 같은 장기입원 사례의 경우 경제적인 부분은 물론, 돌봄과 치료에 있어 꽤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치료 과정 중 환자가 겪어야 하는 정신적, 육체적 고통은 물론이고, 이를 함께 겪어 나가는 가족들조차 현재를 이어나가기 어려운 많은 어려움을 토로하면서 결국 안락사와 같은 안타까운 결정을 내리게 되는 것이다.

 

-----

변호인: 피고와 같이 돈 없고, 빽 없고, 자신이 어머니의 유일한 가족인 사람은 이러한 경우, 존속 살인자가 되어 저 자리에 앉아 있어야만 하는 이 현실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피고 이현주가 존속살해 혐의로 이 재판정에서 판결을 받아야 한다면 세계 최고의 초고령화 사회로 가파르게 올라서고 있는 대한민국은 머지않아 수천, 수만의 존속 살인자 공화국이 되고 말 것임을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본 변호인은 피고가 안락사에 대한 아무런 법안이 없는 법정에 나와 재판을 받아야 하는 이 부당한 현실을 고발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301페이지 中

-----


현주의 이러한 안타까운 상황에 대해 변호인은 위와 같이 언급한다. 초고령사회에 진입하는 대한민국은 조만간 수천, 수만의 존속 살인자 공화국이 될것이라고.

 

돈 없고, 빽 없고, 유일한 가족인 경우 대처할 수 있는 방안이 없는 데다 특히 민감한 문제라는 이유로 안락사의 문제에 대해 뒤로 미루기만 하고 아무런 법안이 없는 경우 변호인의 말처럼 이 문제는 조만간 대대적으로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될 것이다.

 

-----

기욱: 가족이라 생각했으니까 자신들도 그 개만큼 아프고 괴로운 기라. 가족이라면 우째 그걸 따로 생각할 수 있겠노? 가족 모두가 함께 아프다 이 말이다.
307페이지 中

-----


안락사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현주와 같은 이들은 단순히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안락사를 선택한 것이 아니다. 가족이기에, 유일무이한 사랑하는 가족이기에 함께 아파하다가 결국 모두를 위한 마지막 결정을 내린 것이다.

 

현주는 판결 이후 민철의 면회를 거부하다 끝내 한 줌의 재로 돌아오는데, 민철은 이에 현주의 엄마와 현주를 같은 나무 아래 묻어주는 수목장을 치러주면서 이야기는 끝이 난다.

 

어쩌면 식물인간이 된 아버지를 칠 년간 지켜보며 자신도 한 번쯤 생각해 보았을 안락사. 사실 그즈음 이미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처해있던 형들은 이미 이것에 대한 논의가 조금씩 나오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철은 미루고 또 미루며 버티고 있던 상황에서 가장 힘이 되어주었던 연인인 현주를 통해 맞닥트리게 된 것이다.

 

 

안락사를 한 개인의 문제로 본다면, 이 같은 형국의 문제는 분명 그저 존속살해로 결말 지어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것은 분명 그보다 훨씬 복잡한 문제로 보는 것이 맞다.

 

그렇기에 경제적, 육체적, 정신적 어려움 속에 하루하루를 버티며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인 환자의 가족들까지 고려해 사회적 합의를 거쳐 여러 변화를 이끌어 내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특히 초고령 사회로 급격히 진입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더 이상 이 문제를 회피하기보다 깊게 다가서서 관심을 기울이고 이들의 고통을 마주 보는 것이 필요할듯하다.

 

삶과 죽음, 그리고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발버둥 치는 욕망과 과한 욕심 사이에서 우리에게 진짜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했던 이야기들이었다.

 

어찌 보면 젊고 아름다워지고 싶은 욕구, 잘 살고 싶은 욕구, 편하고 싶은 욕구, 괴로움에서 탈피하고 싶은 욕구 등 이 시나리오에서 거론되는 것들은 인간 본연의 기본적인 욕구들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욕구들이 심하게 넘쳐흐르거나 현실적인 문제들에 가로막혀 탈출구가 없어지는 상황에서는 오히려 잘못된 판단과 사고에 빠질 수 있음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사회, 법, 공동체라는 울타리가 필요하며, 이것들이 제대로 작동되어야 모두 함께 잘 살 수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그저 남의 이야기라며 등 돌리고 있을 게 아니라, 나와 우리의 이야기라는 관점에서 조금 더 주변을 관심 있게 살펴봐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새로운 개념의 산티아고 순례길 City & Town 가이드북 #해시태그 트래블
조대현 지음 / 해시태그(Hashtag) / 2024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을 통해 33일간의 시뮬레이션을 실행해보자. 특히 첫 순례길에서는 마음보다 단단한 준비가 먼저다. 단순한 여행이나 쉼이 아닌, 오랜시간을 오로지 내 두 다리에 의지해 걸어야 하기에, 사전점검과 준비, 그리고 철저한 계획은 필수다. 그래야 걷는 동안 다른 걱정으로 고민하는 시간이 적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