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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날에, 흔들리는 나를 - 고단한 삶의 현장에서
서영식 지음 / 진담 / 2024년 4월
평점 :
"쓸쓸한 날을 견딘 기록들이 주는 담담한 위로"
이 책에 실린 글은 저자가 스스로를 위로하고 싶을 때 쓴 글로, 일종에 쓸쓸한 날을 견딘 기록들을 담고 있는 책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글 곳곳에는 짙은 삶의 무게감이 묻어난다.
일상 속에 찾아온 고됨을 저자는 그저 나직한 목소리로 덤덤히 풀어내는데, 그래서인지 더 울컥하는 순간들이 종종 발견된다. 억지로 위로하지 않아서, 강요하지 않아서 더 오래 곁에 두고 읽고 싶은 기분이다.
일상 속에 들이친 아픔과 괴로움, 얼룩진 생채기를 조용한 언어로 남기며 약하고 흔들렸던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는 저자의 모습은 어쩐지 모든 것을 이미 득도한 이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홀로 눈물짓고 있는 모습이 떠올라 꽤나 힘들었겠구나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요란하지 않아서 덩달아 읽고 있는 나조차도 차분해지는 저자의 시와 산문은 혹독한 겨울날의 벽난로를 연상케 한다. 무어라 말하지 않아도 타닥타닥 타들어 가는 장작 소리에 절로 위로가 되고 힘이 되는 것처럼.
일상에서 만나게 되는 수많은 절망 앞에 타인이 건네는 위로의 말이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할 때, 그저 말없이 건네는 따스한 손 하나가 더 큰 위로가 될 수 있음도 깨닫게 해준다.
저자가 풀어내는 나직한 속삭임에서 흔들리는 삶의 다른 이면을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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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요.
흔들리고 있는 채로 더 흔들리고 있는 이를 향해 가만히 손을 뻗어 주는 일이 곧 사랑이 아닐까요.
2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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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손잡이를 잡으면 더 흔들릴 것 같지만, 실상은 흔들리는 나와 손잡이 모두 흔들리지 않도록 고정시켜 준다. 넘어지지 않도록 해준다. 어쩌면 세상도 그렇지 않을까?
세상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나보다 더 흔들리는 이를 잡아주면 그나마 버티고 있던 나마저도 넘어질까 싶어 모른척했다면, 앞으로는 기꺼이 손을 잡아주자.
덕분에 나와 너 우리 모두 넘어지지 않고 버티며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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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장 난 시계처럼 멈추어 설 때가 있다.
몸부림치는 일마저도 여의찮을 때,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도 모른 채
고장 난 삶을 껴안고 옴짝달싹 못 할 때가 있다.
그런 날 내가 가장 듣고 싶은 소리는 이런 것.
"고장이 아닌 거 같아.
그냥 잠시 휴식하고 있는 걸 거야."
그리고 내가 시계에서 그렇게 해주었던 것처럼
그럴 땐 그들도 가만히 나를 기다려 주었으면 좋겠다.
고장이 아니라 단지 충전이 필요했던 것처럼
그런 날, 내가 나에게도 그런 휴식의 시간을
줄 수 있는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다.
59~6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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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빨리'를 일삼는 대한민국에서 멈춰 선 시계는 그저 고장 난 것으로 치부된다. 왜 멈췄는지 제대로 살펴보지도 않고 그저 그렇게 버려진다.
그럴 때 만약 누군가 '잠시 휴식하고 있는 거야'라고 말해준다면, '배터리를 교체하면 된다'라고 말해주면 어떨까?
번아웃이 왔을 때, 지쳐 나동그라졌을 때 잠시 충전할 수 있는 시간을 기다려줄 수 있는 여유가 주어진다면, 그렇게 기다려주는 누군가가 있다면 어쩌면 조금은 더 살맛 나는 세상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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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진짜 얼굴이란 게 있기나 할까.
내가 알고 있는 사람에 대하여 나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심지어 사물도 다른 각도에서 보면 달라 보이는데
하물며 사람을, 하물며 사람의 이름을
우리는 왜 그토록 하나의 틀 안에 가둬두고 있을까.
14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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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사이에서 트러블이 일어나는 이유는 어쩌면 그 사람의 다른 모습을 인정하려 하지 않아서는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수천 가지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 그 사람을 자신이 원하는 하나의 틀에 가둬두려 했기에, 인정하려 하지 않았기에 어쩌면 멀어지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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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다른 각도에서 보도록 노력해야 한다."
우리가 사물을 틀 안에 가두고 있는 것처럼
사람 또한 자기만의 틀 안에 가두고 산다.
맥주병에도 꽃을 꽂으면 꽃병이 되는데
하나의 이름이 그 이름 이상의 것이 되지 못한다면
사람의 입장에서 이보다 서운한 일이 또 있을까.
뒤집어 보고, 바꾸어 보아야 한다.
그것이 사람이 사람을, 사람답게 이해하는
가장 바람직한 시선은 아닐까.
17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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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서 읽었는데, 한국 사람만큼 본래의 용도를 넘어 다른 용도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많은 곳도 없다고 한다. 그런데 정작 사람을 대할 때는 완전히 다른 양상을 보이는 걸 보면 정말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물은 그토록 다양하게 활용하면서, 왜 정작 사람을 대할 때는 요모조모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보지 못할까?
사람도 뒤집어 보고, 바꿔보고, 다르게 바라보자. 관점에 따라 상대방은 물병이 되기도 하고, 꽃병이 되기도 하며, 재활용품이 되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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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 그렇다.
아무리 예쁘게 포장하고 매력 있게 다듬어도
그의 마음을 내가 먼저 알지 못하면
그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은 어려워진다.
어떤 상황인지, 무슨 말을 듣고 싶어 하는지
무엇을 싫어하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그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게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우리는 이것을 관심이라 부른다.
관심이 있어야 마음이 보이고
관심이 사람을, 관심이 사랑을 부른다.
18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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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작정 내 마음을 들이대는 것은 범죄이며 악취미다. 누군가의 마음을 얻고자 한다면, 먼저 상대방이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무엇에 관심 있어 하는지를 파악하는 게 우선이다.
상대방을 소중히 하는 마음, 즉 관심에서부터 서서히 시작해 보자. 진심은 언제나 통하는 법이다.
저자가 덤덤히 풀어낸 글을 읽으며, 삶에서 진짜 필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다시 돌아보게 된다. 일상에서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사물과 행동들이 그냥 넘겨지지 않는다.
살면서 흔들리는 날, 고되고 힘이 드는 날 외로운 마음을 묵묵히 들어주는 이가 있다면, 조용히 어깨를 내어주는 이가 있다면 조금 더 버티며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연대의 힘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꼭 무언가 대단한 것을 하지 않아도, 작고 소소한 것을 함께 나누고 손잡아 주는 일, 그것이야말로 진짜 연대의 힘이라 생각한다.
나를 온전히 나로 바라봐 주는 것, 가만히 기다려주는 것, 다르다고 배척하지 않는 것. 진정한 위로는 거기에서 발휘되는 것이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