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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이닝
욘 포세 지음, 손화수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3월
평점 :
책 제목인 <샤이닝>을 보고 이 책을 선택했다면, 조금 당황스러울지도 모르겠다. 샤이닝이라는 의미와는 완전히 다른 양상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샤이닝이라는 제목이 납득이 되는 건 그 속에서 만난 미지의 존재들 때문이다.
책 내용을 살펴보면 어렵지 않은 문장이나 단어들이 반복됨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모르게 내용은 무게감을 지닌다. 기묘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또 익숙하기도 한 분위기는 어쩐지 삶과 죽음의 중간 그 어딘가를 나타내는 듯도 하다.
침착한 고요함 속에서 한 번씩 들리는 목소리와 이곳에서 만날 수 없는 이들과의 조우, 그리고 어긋난 듯 보이지만 미묘하게 들어맞는 답변들이 자꾸만 책 속으로 더 깊이 파고들게 만든다.
지루함을 이기지 못하고 어느 날 갑자기 떠난 여행에서 바퀴가 빠져 숲에 갇히게 된 '나'는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이후 크게 바뀌지 않은 공간과 배경 속에서 침묵과 내면의 소리, 생각, 고민, 그리고 미지의 무엇들과 만나는 것으로 오로지 이야기는 전개된다.
언뜻 단조롭게 느껴질 수도 있으나, 단조로움 속에 자리한 복잡함 때문에 오히려 생각이 많아지는 이 소설은 내면의 소리를 담아내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머릿속을 이야기하는 것 같기도 하며, 또 다른 한편으로는 삶과 죽음의 경계선을 이야기하는 듯도 하다.
자꾸만 무언의 질문을 던지는데, 어느 곳에서도 물음표는 발견할 수 없으며, 쉼표와 마침표를 통해 어떤 의미를 짐작하거나 단정하거나, 의심하거나 결단하거나 고민한다.
'내'가 바라보는 저것은 무엇이고, 저것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를 끊임없이 고민해 보지만, 실상 제대로 알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래서 혼란스러우면서도 그냥 그렇다고 받아들이게 되는 것도 있다.
어둠에 갇힌 것 같은 폐쇄성이 느껴지다가도 끝없이 펼쳐진 숲이 주는 개방감이 느껴지고, 물속에 나 홀로 잠긴 것 같은 고요함이 느껴지다가도 어느 순간 다가오는 목소리나 빛으로 인해 혼자라는 느낌은 들지 않는, 이상야릇한 이 소설을 통해 내면의 소리 혹은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나 만나봄직한 상황을 대면하는 특이한 독서를 경험해 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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욘 포세 알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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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큰 소리로 책을 읽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글을 쓰는 사람의 고독한 삶 속으로 발을 들였고 이후로 계속 그곳에 머물게 된다.
이처럼 그는 자신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글을 썼는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을 쓰고 싶었다.
자크 데리다는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말로 할 수 없으며, 오직 글로 쓸 수 있다고 표현했는데, 저자 역시 침묵의 발화에 말글을 내주고 싶었던 마음이 컸던 것 같다.
실제로 욘 포세는 희곡을 쓸 때 '사이'라는 단어를 활용해 침묵을 표현했는데, 말로 할 수 없는 것, 말하고 싶지 않은 것 또는 차라리 말하지 않는 게 더 좋은 것들이 '사이'에 존재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글 쓰는 행위에 대해 듣는 행위여야 한다고 말했는데, 이를 통해 그의 글쓰기는 음악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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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략한 줄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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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가을 저녁, '나'는 갑자기 엄습한 삶의 지루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작정 차에 올라 운전을 시작한다. 이내 곧 숲길 한가운데에서 바퀴가 빠지게 되면서 꼼짝도 못하게 된다.
방향을 바꾸는 것도 불가능하고 후진도 할 수 없다. 게다가 해는 저물고 갑자기 눈까지 내리기 시작하면서, 차를 벗어나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길을 떠난다. 하지만 이내 '나'는 숲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게 된다.
그러고는 어머니와 아버지, 검은 양복을 입은 신사, 순백색의 존재 등 현실에서는 결코 만날 수 없는 이들과 수수께끼 같은 조우를 하게 되는데, 스스로 이 상황이 현실에서는 존재할 수 없음을 인지하면서도 어쩐지 그곳을 빠져나올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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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수 없는 존재들의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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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한가운데서 차가 빠진 후 한참이 지난 후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떠난 그 앞에 나타난 신비한 존재들의 정체는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첫 번째, 순백색의 흰빛을 내뿜는 존재
그것은 희망이었을까 아니면 천사의 존재일까? 명확한 형체도 없는 그 빛이 상징하는 것은 무엇일까?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두 번째, 어머니와 아버지로 보이는 노부부
처음에는 희미하게 보이는 형상으로만 인식되던 그것이 어느 순간 부모님처럼 보이기 시작하고, 부모님이 되었다가, 부모님이 맞았던 걸까가 되는 알쏭달쏭 한 모습으로 그려진다.
원래 그 자리에는 있을 수 없는 부모님의 형상은 스스로 가장 믿고 의지하는 이들이기에 나타난 것일까? 아니면 지치고 피곤한 상황에서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이들이기에 나타난 것일까? 그들이 하는 말 또한 힌트가 되지는 못한다.
●세 번째, 검은색 양복을 입은 남자
컬러로 봐서는 흰빛을 내뿜는 존재와 대조되지만, 단순히 컬러로만 이 존재들을 구분 짓기는 어려워 보인다. 어떤 상황, 어떤 모습에 이것들을 대입하느냐에 따라 존재의 의미는 달라지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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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 들여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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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찾아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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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을 읽다 보면 반복되는 단어나 문장들을 확인할 수 있는데, 마음만 다잡고 실제 행동으로는 옮기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그러다 못내 겨우 한발 떼고 나서도, 또 반복적으로 고민하고 생각하고 번복하면서 무한의 굴레에 빠져드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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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누구 없나요-
(...)
누군가의 말 소리가 들린다: 나는 여기 있습니다. 나는 항상 여기 있고, 여기에는 항상 내가 있습니다-
3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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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컴컴한 숲을 헤매며 외친다. 누구 없냐고.
그러다 문득 누군가의 말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는데, 의미심장한 말을 내뱉는다.
답을 준 누군가는 누구였을까? 어쩌면 그는 나 자신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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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몸을 돌려 주위를 둘러보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단지 크고 둥그런 노란 달빛과 셀 수 없이 반짝이는 별빛 아래, 가지에 눈을 이고 서 있는 나무와 나무뿐이다.
4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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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한가운데 덩그러니 나만 남아있는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는 장면이다. 고요한 풍경 속에 까만 밤하늘, 그리고 숲을 빽빽이 채우고 있는 나무와 나무뿐.
어찌 보면 조금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느껴지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고요함 속에 자리 잡은 숲 그 자체가 연상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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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서는 안 될 것 같다. 그들에게 다가가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제자리에 가만히 서 있다.
57~5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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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인 '내'가 하는 생각과 행동에 대한 무한 루프를 잘 그리고 있는 문장이다. '나'는 지속적으로 머릿속에 무언가를 고민하고 생각하고 결정하다가 이내 되돌리는 일을 수도 없이 반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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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처음부터 여기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들이 여기 있다고 믿었던 것은 나만의 상상이었을지도 모른다. 내게 말을 걸어오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들었다고, 어머니가 내게 무슨 말인가를 했다고 상상한 것이다. 아니, 절대 그럴 리 없다. 그들은 분명 여기 있었다. 나의 어머니는 여기 있었다. 나의 아버지도 여기 있었다. 나는 그들이 바로 저 앞에 있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
6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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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도 믿기 어려운 상황들이 빈번히 펼쳐지면서 주인공 역시 혼란스러워하는 장면이다. 현실이 아님을 스스로 인지하고 있지만, 어쩐지 보고 듣고 경험한 것에 대해 거짓이라는 확신을 가지지도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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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물어볼 필요도 없는 질문을 하는 구나. 우리는 우리가 있는 곳에 있지. 다른 곳일 리 없잖아. 왜 그런 걸 묻니.
6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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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앞에 나타난 존재들은 묻는 것에 대답은 하지만, 원하는 명확한 대답을 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질문에 대해 어긋나는 답은 아니어서 그저 그러려니 하고 넘기는 부분도 꽤 많다.
오묘하고 미묘한 답 때문에 이 소설의 분위기가 한층 더 미스터리하고 신비롭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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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몸을 움직일 수 있다. 나는 어디든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다. 아무도 나를 저지할 수 없다. 아무도. 그런데 나는 왜 여기 가만히 서 있기만 하는가. 나는 왜 아무것도 하지 않는가.
6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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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스스로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누군가 나를 꽁꽁 묶어둔 것도 아니고 나를 억압하는 사람도 없다. 그런데 이상하게 나는 무언가를 하려 하지 않는다.
그저 가만히 서서 머릿속만 복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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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생각해도 신발을 벗은 기억은 없다. 하지만 나는 지금 분명히 맨발이다.
(...)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일은 너무나 많다. 예를 들어 나는 왜 이 숲속에 있는지. 왜 차를 버려두고 이 숲속으로 들어왔는지, 모두 이해할 수 없는 일들뿐이다.
7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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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나'는 지루함 때문에 차를 타고 숲으로 오게 되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 차바퀴가 빠지고 숲에 갇히게 되면서 오랜 시간을 이 숲에서 보내게 된다.
그러다 알 수 없는 존재들을 만나고,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수많은 상념과 질문들을 하게 되면서 어느새 자신이 왜 여기에 왔고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게 된다.
이 공간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현실 속에서 어떤 상태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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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단지 거기 있을 뿐이고, 그것들은 모두 의미 그 자체다.
8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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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것들에 대해 함축적으로 표현하자면 이 한 문장으로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모든 것은 거기 있을 뿐이고, 그것들은 모두 의미 그 자체였다!"
그것들은 존재하는 듯하지만 존재하지 않았고, 빛 속에 들어와 있지만 빛이 아닌 것이었다.
단지, 그 의미들에 어떤 것을 투영하느냐에 따라 각기 다르게 보이고, 다르게 들리고, 다르게 다가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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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난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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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독자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나올 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삶의 끝자락에 선 한 남자의 삶을 다루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마주하는 소중한 이의 흔적(부모님의 살아생전 모습) 그리고 스치듯 지나가는 삶(하얀 빛)의 형태와 다가오고 있는 죽음(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은 그의 인생을 압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듯하다.
사는 것이 지루하다 느끼는 남자가 당도한 숲의 모습은 무의 세계, 아무것도 없는 고요함과 적막함이 가득하다. 그저 어둠 속 반짝이는 별과 달, 그리고 묵직한 분위기만 가득할 뿐이다.
죽음을 앞둔 그는 스스로 계속해서 되뇐다. 자신에게 묻고, 답하고, 질문하고, 확신하다, 의문을 제기하며 계속해서 삶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 끊임없이 쏟아지는 질문은 그렇게 물음표가 되지 못하고 쉼표와 마침표가 되어 삶을 하나씩 정리해 나가는 과정을 겪는다.
살아생전 그가 어떻게 살았고, 어떤 배경을 지녔는지는 아무것도 드러나지 않는다. 그저 깊은 상념과 복잡한 속내만 엿보일 뿐이다.
그래서인지 몸은 그저 늘어지고 피곤하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이내 어쩔 수 없는 상태에 다다르자 차 밖으로 나와 도와줄 이를 찾아 나서지만, 이내 곧 멈춰서 또다시 상념에 빠져든다.
아무것도 없는 깊은 숲속에 자리한 것은 오로지 자신뿐인데, 어쩐지 어둠에 갇혀있는 듯한 느낌도 든다. 어디로 가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도무지 모르겠는 그는 그래서 현실이 아님을 알면서도 빠져나오지 못하고 그저 멍하니 서있기만 한다.
가만히 살펴보면, 차를 타고 숲까지 온 그의 모습은 마치 다시는 되돌아갈 수 없는 우리네 인생을 떠올리게 하는데, 그래서 그는 그토록 되돌아가는 길을 찾지 못하고 헤매고 있는가 보다.
그렇게 인생에 대입해 보고 나니, 마지막으로 만난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가 어쩐지 인생의 끝을 알리는 존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죽음은 어쩌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많이 다를지도 모른다. 저자는 그 누구도 경험해 보지 죽음을 이렇듯 어둠 혹은 깊은 심연에 비유해 삶의 마지막을 정리하는 순간을 밀도 있게 그려냄으로써 오로지 홀로 견뎌내야 하는 시간을 더 감각적이고 돋보이게 그려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등장하는 '무엇'들은 특정 어떤 것을 명확히 단정 짓기 어렵다. 그저 이 소설을 읽는 독자에 따라, 해석 방식에 따라 의미가 되고, 또 해석이 달라질 것이다.
죽음에 이르는 과정은 저자가 이 소설에 담고 있는 것처럼 고요함 속에서 묵상하고 명상하며 하나씩 삶에 쉼표와 마침표를 찍어나가는 행위일지도 모르겠다. 때문에 이 소설에 등장하는 '나'는 그토록 홀로 그 어둠 속에서 그토록 많은 질문을 쏟아내며 마침표를 찍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