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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움직인 열 가지 프레임 - 현대 문명의 본질과 허상을 단숨에 꿰뚫는 세계사
수바드라 다스 지음, 장한라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6월
평점 :
은연중에 서구 문명을 당연하게 상위에 두고, 살아온 우리들에게 건네는 물음! 여기에 더해 미처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한 신념을 열 가지 핵심 가치로 조목조목 짚어내며 서구 권력이 어떻게 생겨났고, 또 어떻게 자리 잡게 되었는지를 밝힌다.
이로 인해 어쩌면 여태껏 우리가 진리처럼 여기며 읊어왔던 가치들이 사실은 '가짜'였음을 깨닫게 될지도 모르겠다.
이를테면, '아는 것이 힘이다', '시간은 돈이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와 같은 말들로, 이로 인해 법의 정의, 과학의 합리성, 교육의 힘, 시간의 중요성, 글의 영향력 등이 사실은 권력집단에 의해 만들어진 억압과 착취의 결과였음을 알게 될 것이다.
이번 기회를 통해 너무 오래 당연한 것처럼 여겨져 온 현대 문명의 본질과 허상을 제대로 파헤쳐 보면서 당연한 것이 사실은 당연한 것이 아니었음을, 그 이면에는 누군가의 눈물과 희생이 있었음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총 10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은, 우리 주변에서 당연한 진리처럼 자리하고 있는 10가지 주제들이 사실은 서양 세력의 권력과 프레임 속에서 자라난 특정 계층을 위한 영향력에 의해 만들어진 허상이었음을 밝힌다.
이를 통해 많은 것들이 달라졌고, 또 이것들에 의해 우리 삶이 얼마나 많은 영향을 받았는지를 알게 될 것이다. 때문에 어떤 면에서는 배신감 혹은 기만이라는 감정을 느끼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저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며 산업혁명 이후 얼마나 더 발전했는지, 또 얼마나 나아졌는지에만 매달려 더 나은 생활, 더 편리한 삶만 생각하기 바빴는데, 이번 기회를 통해 그 이면에 숨겨져 있던 진실을 파헤쳐 봄으로써 문명의 발전과 역사의 흐름을 제대로 마주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꽤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것 같다.
이 책의 내용을 전하기에 앞서, 간단히 이 책이 전하고자 하는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책 전반에 걸쳐서 문명화된 서양의 일부가 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이며, 애초에 이런 관념이 어떻게 등장했는지,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는 이런 관념들이 주장하는 것과 현실이 일치하는지를 탐구할 것이다.
또 과학을 비롯한 여러 중요한 가치들이 왜 그리고 지배적인 프레임으로 전파되었고, 서구 세계가 어떻게 판을 짰는지 살펴볼 것이다. 그 너머에는 우리가 배웠던 진실과 더불어, 망각하도록 배웠던 진실과 사람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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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누구의 말도 그대로 믿지 말라: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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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 철학에 대한 신념이 근대적인 서양 과학의 기틀을 만들었다.
2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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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턴 컬렉션은 진리를 찾아나가는 과정에서 그토록 처참한 실수가 어떻게 일어났는가가 아니라, 왜 일어났는가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이른바 과학자라는 사람들이 왜 그와 같이 근거 없는 조사를 추구했으며, 아무런 근거도 없는 광범위한 자료를 증거라고 받아들였는가? 아주 단순하게도 그 이유는 과학자들이 그러기로 선택했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 그 과학자들이 믿고 있던 질서였으며, 자신들이 진실이라고 입증했다고 믿고 있는 것들이었다. 이것이 바로 학교 박물관 속에 감춰져 있다시피 하며, 얄팍한 철제 상자 뚜껑 아래 꽉 붙들려 있던 과학, 인종, 우생학의 역사였다.
4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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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인종, 문명이 강력하게 결합한 결과, 비서구인들은 단순히 이해하기 힘든, 알 수 없는 행동을 하는 것처럼 '읽혔을' 뿐인지도 모르는 때조차도, 과학적으로 봤을 때 뼛속부터 글러먹었다는 의미가 되어버린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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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서구 지역 출신인 사람들, 특히 인종적으로 백인으로 취급되지 않는 사람들이 자신들도 인간이라고 얘기한다면 그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리 없다. 그 사람들을 믿을 책임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이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 책임이 그 사람들에게 있는 것이다.
(...)
백인이라는 것, 그리고 문명화되었다는 것은 동시에 강력해진다는 뜻이 된다.
4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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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인들이 스스로를 문명화되었다고 부르는 까닭은 자신들의 사회가 합리적 사고와 과학을 바탕으로 삼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들의 과학은 비서구인들이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사고를 할 능력이 없다는 이유로 문명화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
합리성을 향하여 거침없이 나아가는 이런 여정에 대한 믿음은 서양 사상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테마다.
(...)
바로 이 때문에 그들은 그들의 과학을 사실이라 받아들이고, 그들의 법이 공정하고 정의롭다고 여기고, 그들의 민주주의가 신성불가침한 것이라 생각한다. 자신들의 사상의 합리적인 진실을 믿고, 이 틀에서 벗어나는 것을 모조리 부정하는 것은 어쩌면 서양 문명의 정수일지도 모른다. 이는 서양이라는 관념을 세우는 바탕이 된 수많은 거짓말 가운데 제일 첫 번째이기도 하다.
인종 과학은, 그러니까 백인 우월주의를 유지시키는 과학의 사실들은 합리적이지 않다. 단 한 번도 합리적이었던 적이 없다. 그럼에도 서양 과학자들은 연구 대상으로 상정한 사람들의 말보다 백인 동료들의 말을 더 우선시했다. 그들은 서양이 최고이며, 서양의 방식이 바로 유일하게 문명적인 방식이라는 자신들의 말을 그대로 믿었고 전 세계에 전파했다.
5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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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챕터부터 뒤통수를 거하게 맞은 듯 얼얼함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서양 문명에 대해 말할 때 절대적이며 정수라고 말할 수 있는 과학의 발전이 이런 과정들을 거쳐 우리들의 인식에 깊이 파고 들었다는 점은 기만행위처럼 느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믿고 싶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뿌리 깊이 이어져온 인종차별 속에서 무언가 교육을 받고, 지원을 받을 수 있었던 이들이 유일하게 백인들뿐이었다는 점을 감안해 보면 독점과 권력에 의해 과학의 결과물조차 날조되고 변형되어 대단한 것으로 둔갑되는 것이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저 우리가 너무 안일하게 '그렇다'라고 믿어버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새삼 반성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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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아는 것이 힘이다: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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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하게도 교육은 중립적인 과정이 아니며, 모든 이들에게 이득을 주고자 존재하는 것만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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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것이 힘'일지도 모르나, 앞으로 살펴보게 될 것처럼, 이는 애초에 가르치는 '선생님'이 얼마나 강력한지에 달려 있기도 하다.
6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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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교육이 사회적 고위층의 중요한 특징으로 자리 잡은 것은 권력이 군주에게 의회로 넘어간 역사적 순간으로 여겨지는 1688년 명예혁명 이후였다. 이 당시 사회 고위층이란 바로 영국 신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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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작품은 교육을 잘 받은 신사의 자식과 노동 계급의 자식을 가르는 요소였다. 조지 그로트의 말을 따오자면, 이들은 "문명적인 사람들의 모임에서 쓰는 언어"를 구사했기 때문이었다.
66~6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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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이라는 기치 아래 서양은 자신의 우월성을 확립하고 유지하기 위해서라면 마음에 드는 그 어떤 권력과 수단도 사용할 수 있었다. 제국의 여파 속에서, 구체적으로는 서양의 주요 작품이, 보다 광범위하게는 서양의 지식이 결합해 강력한 정치적 도구를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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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라틴어, 고대 그리스어, 영어가 어째서 단순히 중립적인 국제어가 아니라, 사상과 생각을 통제하는 복합적이고 섬세한 도구가 되는지를 보여주었다. 문화는 싸움에서 이기고 깃발을 꽂는 것과 마찬가지로 제국주의의 한 형태다. 그러니 식민지가 되는 것은 단순히 땅만이 아니다. 사람들의 정신도 식민지가 되는 것이다.
7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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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의 교육은 언제나 정치적이었다. 자국에서나 해외에서나 말이다. 서양에서 벌어진 교육의 역사를 살펴보면 이는 이론이라기보다는 차이를 기술하는 도구에 가까웠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특히 계급의 차이, 그리고 한편으로 과학과 관련해서 살펴봤던 것처럼 이른바 인종 사이의 차이를 말이다. 이런 것이야말로 맞서 싸워야 하는 지식의 독점이다.
8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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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과 언어가 새삼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더불어 일제 식민지 시대, 언어 통제를 통해 정신마저 식민지화하려고 했던 지독했던 일본의 악행을 떠오르게 만든다.
서양의 식민지는 일본의 그것과는 다를 것처럼 은연중에 생각하지만, 생각해 보면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확연히 다른 교육 환경과 지배계층이 갖는 독점적인 혜택은 식민지의 국민들은 절대 갖지 못할 절대 권력이었을 것이다.
때문에 노동력 착취, 언어 제한, 계급과 신분의 차등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졌고, 이로 인해 사상과 생각 또한 통제당하면서 서양문물은 더 우위에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전파되지 않았을까 추측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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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펜은 칼보다 강하다: 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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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인들이 고대 이집트의 상형문자를 해독하는데 그렇게나 오랜 시간이 걸린 까닭은, 상형문자는 표음문자보다 덜 복잡할 것이라고 애초부터 가정을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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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학자들은 자신들의 이미지 속에서 문명이라는 관념을 만들어내며 계속 똑같은 실수를 저질렀다. 이들은 '문명적인 사람'이었고, 이들의 문자는 표음문자였으므로, 더 오래전에 쓰던 다른 언어들은 기본적으로 덜 복잡한 것이 이치에 맞는다고 여긴 것이다.
10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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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 기록된 말에는 힘이, 내재적인 가치가 있어서, 누구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누구의 이야기는 들려주지 않을지를 결정하는 무기로 휘두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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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 쓰인 말은 언어학적 기술이라는 관점에서 얼마나 정교한지와 상관없이, 기본적으로 역사적인 기록의 기능을 한다. 서양의 기준으로 본다면 글은 문명의 징표로 자리를 잡았다. 그 연장선상에서 봤을 때, 고대 사회이든, 역사 시대의 사회이든, 비서구사회든 간에 어떤 사회에 글이나 문자 기록이 없다는 것은 비문명적이라는 표식이 된다. 그 결과 우리는 그들의 이야기를 놓쳤던 것이다. 잉카의 모든 문자 기록은 스페인의 정복 이후에 만들어진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는 잉카 사람들 스스로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정말로 접해본 적이 없다는 의미다. 이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도록 허락받지 못했다. 설령 허락을 받았다 할지라도, 서양에서 그 말을 들을 사람이 하나라도 있었을까?
121~12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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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인들이 가지고 있던 고정관념 때문에 우리는 더 많은 문화와 이야기를 잃었다. 단지 그것이 표음문자(글이나 문자 기록)가 아니라는 이유로 상현 문자로 남겨진 기록은 등한시된 것이다.
지금은 '이토록 어리석을 수 있을까'하고 생각할 수 있지만, 당시 절대적이었던 서양 사람들의 기준과 지표는 당연하게 여겨졌을 것이다.
때문에 이들의 기준에 부합하지 못했던 이들은 비문명인 혹은 야만인으로 해석되었다. 때문에 선택적으로 그들의 언어인 상형문자는 지워져버렸다. 이제 우리는 그들이 직접 남긴 언어로서의 이야기는 다시 만나볼 수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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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정의의 여신은 눈을 가리고 있다: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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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체계는 서양 문명의 보편적인 양상으로서 모두에게 이롭도록 발달해온 것이 아니라, 항상 있었던 그 자리에 그대로 머물렀다. 바로 소수 특권층의 손안에 말이다. 그러다 보니 법이 전하는 정의는 일부 사람에게만 유리하도록 확실하게 기울어졌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해를 끼쳤다.
12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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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7년 새로운 왕인 헨리 3세의 찬조 아래 윌리엄 마셜이 마그나 카르타를 수정했을 때 삼림헌장도 함께 발표되었다. 대헌장은 반역을 일으켰던 남작들에게 적용되었던 반면에, 삼림헌장은 이보다 광범위한 영국인들과 관련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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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림헌장이 공표되었을 시기, 이 헌장은 영국 본통의 절반 정도에 적용되었다. 이 지역은 1066년 노르만 침략 이후 다양한 왕들이 소유권을 주장했던 삼림 지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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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림헌장에 따라, 헨리 2세 시절부터 규정되었던 모든 삼림 지역은 비삼림한 되었다. 다시 말해, 왕의 손에서 벗어나서 남작들이 원하는 대로 할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다. 그렇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남작과 다른 영국 귀족들이 할 수 있는 일들을 제한해둠으로써, 평범한 사람들의 자유와 생계도 함께 보장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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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림헌장은 단지 돈 많고 힘센 사람들만이 아니라 누구나 자원에 접근할 수 있도록 보장해 주었다.
138~13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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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림헌장은 그 어떤 버전의 마그나 카르타보다 훨씬 더한 급진적인 변화들을 도입했다. 또 삼림헌장은 관습적인 권리를 합법적으로 만들면서 노동계급 정치의 시작이 되었다.
14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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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 영은 인클로저 운동의 주요 옹호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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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과 그의 추종자들에게 인클로저는 땅을 관리하는 가장 계몽적이고 합리적인 방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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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 주인들이 새로운 작품과 4회 윤작 같은 새로운 농업 기술을 도입할 수 있도록 울타리와 산울타리를 이용해 땅을 폐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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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인클로저 운동이 독보적인 현상이 된 까닭은 바로 압도적일 정도로 강력한 법적 현상이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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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법률 체계는 국회법이 관습법보다 우선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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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클로저 운동의 사례에서는 땅을 폐쇄할 수 있도록 국회에 청원을 한 사람들이 바로 국회의원들 본인이었고, 이들은 자신들의 제한적이고 집하적인 이해관계를 지키는 결정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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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의 특권층을 위해 수많은 빈곤층의 삶을 모른 체한 것이다.
300년이 넘는 시간이 흘러 20세기에 접어들게 되자, 28,000 제곱킬로미터 정도 되는 땅이 인클로저가 되었다. 이는 영국 전체 영토의 5분의 1 정도다. 인클로저 운동은 정말이지 자본주의의 자연스러운 귀결이자, 18세기와 영국의 제국 시대에 우세한 지위를 차지했던 문명화된 경제의 정점이다.
141~14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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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림헌장은 우리가 생각하는 정의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드러낸다. 정의란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것, 곁에 두고 살아가고자 하는 것, 그리고 이를 위해 싸움에 나서고자 하는 무엇이다. 우리의 정의가 법에 의존한다면, 정의는 국회의원들의 수준만큼만 좋기 마련이다.
14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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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문명적이고 누가 그렇지 않은가는 간단하거나 정당한 절차를 거쳐 정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체로키족이 오랫동안 살아왔던 땅을 넘겨주게 된 것은 이들이 문명적인 생활방식을 받아들이고 실천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그렇지만 모래 위에 그은 선과도 같은 문명과 야만이라는 구분은 정치적인 바람이 어느 쪽으로 부는가에 따라 쉽게 바뀔 수 있다.
156~15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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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사법 시스템은 딱 이를 만들어낸 권력자들의 수준까지만 좋거나, 아니면 딱 그만큼까지 나쁜 경우가 많다. 오늘날도 여전히 그렇다. 깨어나서 행동에 나서지 않는 한, 상황은 바뀔 리 없어 보인다.
15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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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과 관련된 이야기에서는 영국의 법체계 변화와 더불어 이것의 정점에 권력과 정치가 개입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이러한 법체계가 현재까지 이어져오고 있으며, 이로 인해 권력자들의 수준에 따라 좋고 나쁘고가 결정되는 것도 알 수 있었다.
마그나 카르타(=대헌장)에서 혁명과도 같았던 삼림헌장을 거쳐, 인클로저 운동까지. 여기에 국민은 없고 그저 탐욕에 눈이 멀어버린 정치인과 권력자들만 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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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민중에게 권력을: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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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문명을 한데 묶어 주는 진정한 이상은 바로 사회적 위계라는 관념이다. 그리고 위계질서는 진정한 민주주의와 정반대되는 것이다. 철학적으로 본다면, 민주주의는 평등과 자유가 교차하는 지점이다. 그렇지만 역사적으로 본다면 민주주의는 이런 사상들의 끊임없이 패배를 겪은 지점이었다. 인종과 계급이라는 사회적 불평등과 더불어, 젠더와 장애 여부를 바탕으로 하는 불평등의 서양 사회에는 너무나 깊이 새겨져 있어, 실제로는 자유도 평등도 전혀 가능하지 않은 수준이다. 그렇다면, 그 연장선상에서 본다면, 서양에서는 민주주의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말이 합당하다.
17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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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적이고 문명적인 이상이라고 추켜세우며 과도한 인기를 얻고 있지만, 서양식 민주주의가 지닌 문제는 바로 한 번도 실제로 존재했던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모든 현대적인 민주주의가 채택하고 있는 대의제 민주주의에서 우리가 내리는 선택은 누가 권력을 지닐 것인가를 결정하는 데에 국한된다. 그 사람들이 그 권력으로 실제로 어떤 행동을 하는지는 결정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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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의제 민주주의에서 우리가 내릴 수 있는 결정이란 누가 우리를 통치할지를 고르는 것으로 제한되어 있지, 본래 취지처럼 어떤 방식으로 우리를 통치할 것인가와는 무관하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우리는 대표자와 지도자를 고르면서, 그렇게 고른 결과로 일어날 수 있는 어떤 결정에 대한 결정권도 내려놓는다.
대의제 민주주의는 부패하기 쉽다.
190~19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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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는 퍼뜨릴 가치가 있는 사상 가운데서는 최고일지 모르지만, 그렇게 퍼져 나간 사상은 사실 민주주의가 아니었다. 단 한 번도 국민에게 권력이 주어진 적이 없다. 언제나 남작들이 권력을 쥐고 있었다. 마그나 카르타를 만들어낸 왕과 남작들부터, 오늘날 엘리트 정치 계급에 이르기까지, 정부는 늘 있던 바로 그 자리를 유지해왔다. 국민을 위하는 국민에 의해서가 아니라, 소수가 수많은 사람에게 행사하는 권력을 통해서 말이다.
19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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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우리나라의 정치와 정치인들을 보며 느낀 감정이 이 챕터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우리에게 대표자와 지도자를 고를 결정권은 주어지지만 정작 그 결과로 일어날 수 있는 어떤 결정에 대한 결정권도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 그래서 그들의 대다수는 부패했다.
나라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고, 개인의 이득만 취하다 보니 그 권력을 얻는 것에만 혈안이 되어 있지, 정작 권력을 움켜쥔 이후에는 나 몰라라식이다.
새삼 왜 우리는 정치인과 대표자를 뽑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그들의 배를 불리기 위해? 아니면 국민의 혈세를 그들에게 퍼주기 위해? 아니다! 그럼에도 명목뿐인 민주주의를 대신할 다른 좋은 대안이 없어 그저 지켜만 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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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시간은 돈이다: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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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의 이론은 수많은 서양인들이 한 세기도 넘게 주장할 사회적 다윈주의의 암묵적 가정이 탄생할 만한 바탕을 만들어주었다. 사회적 다윈주의자들의 주장이란 바로 뉴질랜드에 있는 마오리족과 더불어, 최초의 오스트레일리아인, 그리고 전 세계의 다른 토착민들은 너무나 원시적이고, 비문명적이고, 후진적이어서, 안타깝게도 멸종할 운명이었다는 것이다.
21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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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오스트레일리아인에게 시간은 돈이 아니었다. 시간은 재화가 아니라, 가장 효과적으로 공동체를 구성하고 주변 환경을 관리하는 방식이었다. 이와 같은 세계관에 붙인 영문 명칭은 드리밍으로, 인류학자 W.E.H 스태너가 1953년에 만들어낸 어휘였다. 유럽 계몽주의 사상가들에게 시간은 고정되고 선형적인 대상, 다시 말해 한 방향으로만 흘러가는 대상이었다.
결정적으로 이런 틀로 보면 시간은 측정 가능한 대상이 된다. 그리고 개별 생산 단위에서 측정한 시간이라든가, 인간의 기술 또는 사상의 진보의 척도라는 시간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이런 시간은 확실히 서양의 구성물이다.
반면에 드리밍은 오히려 시간에 저항하거나 심지어는 시간을 거부하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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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리밍은 서로 다른 가족, 씨족, 민족에게 특정한 동물과 식물을 토템으로 부여하는 분류학적 체계다. 사람들은 이렇게 정해진 토템과 직접 연결되며, 이들을 보살필 책임을 진다.
218~21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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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리밍 지식은 특수하면서도 보편적이어서,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을 종횡으로 가르며 노랫길이 뻗어 있다. 전통은 아주 잘 발달되고 섬세해서, 대륙을 제일 잘 관리하는 방법을 담은 이런 노래들은 공간과 시간을 넘어 전달되면서도 정확성을 유지했다. 심지어는 대륙을 가로지르며 다른 언어로 번역이 되어서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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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일러식 시간 경영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드리밍은 자연스럽고 원활하면서 아주 효율적이었기 때문에 서양인들은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거의 알아채지조차 못했을 것이다. 혼란스러운 면도 거의 없었다.
서양인들이 드리밍을 이해하지 못한 또 다른 이유는 문명화된 사람들과 비교해서 야만인들이 할 수 있는 일에 관한 이들의 관념이 너무나 제한적이었는지라, 이 틀을 넘어서서 주변을 둘러싼 현실을 인정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220~22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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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라는 합의에 의존하고 있던, 그리고 나아가서는 진보는 오로지 서양의 권한이라 여겼던 시각에 의존하고 있던 서양의 문명화 사명이라는 맥락 속에서는 이런 사실이 전혀 말도 안 된다고 여겨졌다. 자신들이 만든 틀 안에 둘 수 없는 것이었다. 일단 다른 집단을 열등하다고 취급해야, 그들에게 자신의 우월함을 보여줄 수가 있다. 그 대가로 우리는 좁고 옹졸한 시간 너머의 세계를 떠올리는 능력, 그리고 다른 비서구적 세계관과 그 밖의 시각들도 가치가 있다고 인정할 수 있는 능력을 잃고 말았다.
22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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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용설명서가 아니라 드리밍 같은 것이다. 세상에 관한 유용한 관념과, 세상 속에서 의미 있게 살아가는 방법 말이다.
23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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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완전히 다르게 쓰는 계몽주의 사상가들과 최초의 오스트레일리아인들을 살펴보며 이제서야 다시금 시간을 쓰는 방법을 되돌리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떠올려보게 되었다.
통상적으로 '시간은 금'이라며 재화에 비유에 이야기하고는 하는데, 이것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또 이것이 얼마나 하찮은 이유로 여기까지 이어져오게 된 것인지 알게 되었다.
자신들의 우월함을 보여주기 위해 그 외의 것들은 배척하거나 차단해버린 서양인들의 어쭙잖은 시각으로 인해 세상을 제대로 바라보고, 살아가는 방법을 잃어버린 우리네 모습이 새삼 처량해 보이는 것은 나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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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국가는 당신을 원한다: 국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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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더 배타적이고 인종차별적으로 바뀌어가는 영국의 이민법 뒤에 자리 잡은 생각은 바로 흑인과 갈색 피부를 지닌 이민자들은 이득을 얻어내기 위해 혈안이 된 사람들이며, 이들은 복지국가가 제공하는 문명적인 관대함을 누리기 위해 야만적인 고국을 떠나 영국으로 온다는 생각이다. 이런 생각 속에는 결핍에 대한 위협이 자리 잡은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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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상을 따져보면 이는 가치판단의 문제이며, 이런 생각이 담고 있는 메시지는 간단하다. 이들이 어느 것도 누릴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여기 있을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이는 아프리카, 아시아, 카리브해 지역 국가의 이민자들이 영국에 온 이유라고 밝히는 것들과 완전히 상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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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피아 귀화법은 1948년 영국 국적법으로 대체되었음에도 유고슬라비아의 알렉산다르 왕세자를 귀화하는 데에 여전히 활용되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왕족이라는 지위에 따라서 어떤 법이 어떤 사람들에게 어떤 식으로 적용되는지를 보여주는, 그리고 어쩌다 보니 대모가 여왕이라면, 다시 말해 누군가가 엄청난 특권을 지니고 있다면, 나라와 나라 사이의 물을 가로지르는 여정이 아주 부드러운 항해가 될 것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극명한 사례다.
(...)
이곳 서양에서는 돈을 지불할 수만 있다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어디 출신인지, 아니면 무얼 할 수 있는지를 신경 쓰지 않는다. 역사 속에서 돈이 애초에 평등하게 분배되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지금의 상황이 중세라든가 존 왕과 그 남작들 사이에서 마그나 카르타가 만들어졌던 시절보다 크게 다르거나 진전되었다고 보기란 어렵다.
262~26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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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이 갖는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국가는 국민을 원하지만, 그냥 국민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조건이 붙는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상쇄할 수 있는 단 한 가지가 있는데, 바로 빵빵한 재력이다. 돈만 지불할 수 있다면, 서양의 그 어떤 조건에도 부합될 수 있음이다. 유고슬라비아의 알렉산다르 왕세자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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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예술을 위한 예술: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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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은 예술이 무엇인가라는 정의는, 또는 예술 작품이 좋은지, 획기적인지, 아니면 충격적인지는 사실 상관이 없다는 점을 보여주는 가장 좋은 사례다. 예술은 특정한 사람들이 무엇이라고 하는지, 또 사람들이 무엇을 진실이라 여기는지에 관한 문제다.
27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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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계를 조금만 살펴보면 예술이라는 관념은 내재적으로 물질적이며 분열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지금 살펴봐야 하는 질문은 예술의 의미를 이루는 것이 무엇인가와는 그다지 관련이 없다. 그보다는 이 책에서 소개한 관념들과 마찬가지로, 누가 예술의 의미를 결정하는 가다.
27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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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에서 예술이란 곧 서양이 규정한 틀에 맞는 것이며 예술이 적절하게 보살핌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서양뿐이라는 점이다. 이와 같은 보살핌에 관한 관념에는 내재적인 폭력이 있다. 이는 서양 문명의 또 다른 보루가 세운 벽 안에서 생겨나는 폭력이다. 바로 박물관이라는 보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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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품성을 추종하는 자들 사이에서는 진품이라 입증하는 자가 왕이다. 박물관은 모조품과 재산을 구분하고, 맞고 틀린 것을 구분하고, 문명적인 것과 비문명적인 것을 구분하는 일에 아주 오랫동안 몸을 담아왔다.
28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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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은 강력하면서도 유독 잘 뒤바뀌는 문화적인 분류의 장이었다. 서양이 최고라는 점을 드러내는 장소였다. 실제로 서양이 어떤 일을 하는지와는 상관없이 말이다.
29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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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전시장에서 볼 수 있는 것 그 이상이다. 이는 단순히 물건을 전시한 것이 아니라 권력을 전시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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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의 예술품을 살펴보고 싶다면 지하로 내려가야 한다. 우리의 예술 감상 여정의 마지막 단계는 바로 그곳이다. 이곳은 국립 미술관이 지닌 또 다른, 어쩌면 훨씬 더 명백한 기능을 보여주는 장소다. 바로 전쟁 약탈품을 저장하는 창고라는 기능이다.
296~29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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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만을 위한 예술이라는 관념은 베냉 장식판을 국립 미술관에 전시하는 행동을 정당화한다. 베냉 왕국의 후손들의 이 물건들이 자기 조상과 친척의 영혼을 체현하고 있다고 여긴다는 사실은 염두에 두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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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식판은 죽은 사물이 아니다. 이 장식판이 부재한다는 사실과 이 도난에 대한 기억은 후손들에게 크나큰 상처로 남아 있다. 베냉 장식판은 곧 사람이며, 이들의 민족은 그 상실을 계속해서 절감하고 있다.
30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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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은 예술의 가치를 비롯해서 이와 같은 예술을 만들어낸 사람들의 가치를 여전히 마음대로 결정한다. 서양은 비서구 지역의 문화적 유산이 전승되고 또 역사와 미래 세대 정체성의 자양분이 될 수 있는 길을 계속해서 막아선다. 균열을 치유한다는 것은 곧 유의미한 문화적 교류와 연결을 만듦으로써 문명적인 것과 비문명적인 것 사이의 구분을 끝낸다는 의미다. 이와 같은 관계를 구축하려면 모두 동등한 수준에서 대화 석상에 모여야 한다. 바로 이런 사회적 상호작용이야말로 사실은 그 자체로 예술이다.
30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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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이나 서양 문화권에서 인기 있는 것 중 하나인 박물관을 바라보는 시선을 달리하게 만드는 챕터다. 서양인들이 문화재를 오롯이 자신들이 기준에서 구분 짓고 가치를 매겨 전시하는 장소마저 기능의 차이를 둔다는 점은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누군가에게는 전통을 계승하고 소중하게 다뤄질 예술품이 서양의 박물관에서는 하찮게 여겨진다는 점에서 이미 미래세대까지 은연중에 균열을 조장하고 구분 짓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그들의 기준에서 문명적인 것과 비문명적인 것을 구분 짓기보다 그저 모두 가치 있는 예술작품으로 보아줄 수는 없는 걸까 하는 질문을 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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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죽음 앞에서는 모두가 평등하다: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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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은 죽음이 모두를 평등하게 해준다고 믿지만, 사실 현실에서는 여느 다른 일들과 마찬가지로 빈곤층과 노동 계급은 언제나 더 큰 비용을 지불해야 했다.
31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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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들과 함께 일하는 경험은 서양 사회에서 죽음을 대하는 방식에 관한 고유한 통찰을 가져다준다. 죽은 신체는 아주 특정한 공간으로 밀려나고 그곳에만 국한된다. 병원, 영안실, 장례식장, 그리고 훨씬 더 드문 경우지만 박물관에 말이다. 물론 위생이라든가 질병의 확산을 막는다는 실질적인 이유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또 다른 이유는 바로 죽음은 눈과 마음에서 멀어지는 편이 낫다는 생각 때문인 것 같다. 서양 사람들은 죽음을 그다지 잘 이야기하지 못한다.
34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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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이후 신체가 밀려나는 공간과 죽음의 의식을 치르는 것에 대해 세세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이 챕터를 통해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생각해 보면 토속문화를 따르는 이들은(서양에서 흔히 비문명적이라고 일컫는 사람들) 죽음을 가까이에 두고 일상에 함께 한다. 우리나라도 아주 오래전에는 죽음의 의식을 집에서 치렀다.
그런데 서양문명이 들어온 이후부터는 당연하게 죽음을 멀리한다. 병원에서, 영안실에서, 화장터에서 등등. 저자가 언급했듯이 어쩌면 서양인들에게 있어 죽음은 여러 가지 이유로 멀리해야 할 것들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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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우리는 한배를 타고 있다: 공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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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은 결핍 모델에 따라 작동한다. 한 사람은 학위를 취득하는 것처럼 일종의 사회적인 성과를 보여주거나 또는 재산을 축적해서 사회적인 지위를 획득해야 한다. 그러니까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시작해서 노력을 통해 사회 속 위치를 높인다는 것이다. 표면적으로 살펴보면 이는 능력주의 사회를 이루는 완벽한 기초인 것만 같다. 모두가 평등한 만큼, 열심히 노력하면 그에 따라 성취를 이루고 보상을 받을 것이다. 그렇지만 앞서 사상이 발전하는 과정을 한 단계 한 단계, 한 장 한 장 살펴보았듯이, 서양에서는 결코 모든 것이 평등하지 않다. 우리가 같은 배를 타지 않았다는 사실은 아주 분명하다. 서양에서 실패하거나, 순응하기를 거부하거나, 사회경제적인 제약 때문에 순응할 수 없는 사람들은 열등한 사람 또는 완전한 실패자라는 취급을 받는다.
366~36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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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같은 배를 탔어'라는 말을 종종 하고는 하지만, 실상 이는 누군가를 끌어들이기 위한 사탕발림일 뿐이지 실상은 같은 처지에 있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는 서양이 추구하는 평등과 기회균등에서도 드러나는데, 능력주의를 통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거나 성취에 따라 보상받을 수 있다는 말은 결국 성취를 위한 노력을 끌어내기 위한 방편이거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 누군가를 잠시 이용하기 위해 상황에 지나지 않는다.
결국 가진 자나 권력자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상황에 휩쓸려 갈 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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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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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너무 당연하다 여기며 살았던 10가지 주제를 하나하나 곱씹으며 읽다 보니 새삼 의문이 생긴다. 왜 이토록 중요한 주제에 대해 단 한 번도 의문을 제기해 보지 않았을까?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금방 알아챌 수 있는 내용들인데, 마치 누군가 이래야 한다고 주입한 것처럼 오랜 시간 이들의 사상과 가치관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일상에서 자잘하게 '이건 아닌데'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이렇게 흘러오게 된 배경까지는 미처 들여다보지 못한 것 같다.
이를 계기로 앞으로는 조금 더 넓고 다양한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의도하지 않았지만, 시대적 배경이나 사상에 휩쓸려 나도 모르는 사이 고정관념을 갖거나 특정 가치관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되는 경우도 있어 주의가 필요해 보인다.
누군가는 이렇듯 하나하나 반박하며 곱씹는 것이 세상을 삐뚤게 보는 것처럼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때론 다른 시각,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세상이 균형을 이룰 수 있으며, 이로 인해 피해를 보거나 억울한 이들이 덜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한 가지 사상에 치우쳐 무언가를 판단하고 평가하는 건 대단히 위험한 생각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이제는 서양문물을 조금 다른 시각에서 다각도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세상엔 무조건적으로 좋은 것은 없기에)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을 살펴보면, 완벽히 부합하는 책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여태껏 우리가 믿고 있던 신념을 완전히 무너뜨릴 만큼 다른 관점을 제시하고 있는 것은 물론, 여기에 더해 어떤 의미에서는 불안감마저 야기할 수도 있을 정도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 현실을 직시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당연하게 믿고 있던 가치관과 개념을 완전히 뒤집음으로써 제로에서 다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만든다.
그동안 너무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과 가치관으로 세상을 바라봤구나 반성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