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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그리고 별이 기다리고 있음을 나는 안다 - 찬란한 은둔자 헤르만 헤세, 그가 편애한 문장들
헤르만 헤세 지음, 두행숙.유혜자 옮김 / 문예춘추사 / 2024년 6월
평점 :
"보고, 쓰고, 되새기며 헤세가 꿈꾸고 그리던 인생을 만나볼 시간!"
끊임없이 쓰고, 그리고, 사색을 즐기던 헤세는 외적으로나 내적으로나 참 멋진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허례허식을 배제하고, 자연을 예찬하며, 자신의 삶을 수없이 마주 보며 남긴 그의 글과 그림이 이를 증명하고 있으며, 그의 책에서 간간이 보이는 사진 속에서 단정함과 깔끔한 신사의 모습이 엿보이기 때문이다.
헤세가 애정하고 편애한 문장들로 가득한 이 책은 그런 그를 마음껏 되새기며 사색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 더 의미 있게 다가온다.
때로 빽빽한 글자들로 가득 찬 책들을 볼 때면 답답한 도시의 모습이 떠오를 때도 있는데, 이 책은 여백 덕분인지 그가 가까이했던 자연을 떠올리게 한다.
비어있기에 우리는 더 많은 것을 담을 수 있다. 숨 쉴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가질 수도 있고, 그의 문장을 음미할 시간도 가질 수 있다. 또 나의 삶에 대입해 보며, 반성하고 되돌아볼 수도 있다.
필사하고, 되새기며, 마음껏 시간을 할애해 보자. 얼마를 머무르든 공간은 내가 채우면 채우는 대로, 비우면 비우는 대로 그대로 착실히 담길 것이다.


더욱이 명상이나 필사에 방해되지 않는, 사철 누드 제본 방식으로 제작되어 더 특별하게 다가온다. 활짝 펼쳐둔 상태로 머물러도 책 손상은 물론, 접히거나 닫히지 않아 온전히 이 시간을 즐길 수 있다.
총 5부로 구성된 이 책은, 114편의 글과 헤세가 직접 그린 그림, 그리고 헤세의 사진도 함께 만나볼 수 있다. 더불어 매 페이지마다 필사할 수 있는 페이지가 함께 첨부되어 있어, 이를 활용해 문장을 필사하거나, 그의 글에서 받은 생각이나 느낌을 메모할 수도 있다.
고요히 이 책을 가만히 들여다보다 보면, 문장들이 자정 너머 듣는 어느 라디오 DJ의 차분하고 담백한 음성처럼 다가오는데, 그 시간을 즐겨봐도 좋을 것 같다.
첫 페이지를 펼쳐들면, 헤세에 대한 간략한 소개와 사진을 함께 만나볼 수 있는데, 만약 헤세의 문장을 처음 접한다면, 이 페이지를 통해 그를 알아가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아니, 어쩌면 여느 책보다 이 책을 통해 헤세의 문장을 처음 경험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고요한 새벽녘에 즐기는 헤세의 문장 중, 마음에 들이고 싶은 문장들 위주로 선별해 보았다. 읽고, 마음에 새기고, 읊다 보면 나만의 방식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기대를 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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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성에 대하여
수천 갈래의 길이 있다.
그것들은 밖에서 보기에는 알 수 없는 어둡고 신비로운 원시림을 통과하여 수천 가지의 목표 지점으로 독자들을 이끌어 간다.
그런데도 그 어떤 목표도 최후의 것이 아니다.
모든 목표 뒤에는 또다시 새로운 지평이 열려 있다.
1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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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표에 다다랐다고 생각했는데, 실상 가보면 또 다른 길이 펼쳐지는 것을 보고 혹자는 끝이 어디냐며 투덜거릴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다르게 생각해 보면, 이것은 수많은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무한함을 의미한다. 인생은 이렇듯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를 수없이 통과하는 것으로 그 자체로 우리에게 다양한 기회가 있다고 말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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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
우리가 받아들일 줄 모르고 사랑할 줄 모르며
고맙게 받아 마실 줄 모르는 것은 모두 독이다.
그리고 우리가 사랑할 수 있고 우리의 삶이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모두 생명이며 큰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들이다.
2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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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어떤 사람이고, 상황 판단을 하기 위해서는 때때로 멈춤이 필요하다. 멈춰서 지금 내가 사랑하는 것은 무엇인지, 고맙게 여기는 것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지금 나의 상태는 어떠한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 명상을 통해 한 번씩 자신을 점검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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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한 걸음
세상에는 크고 작은 길들이 너무나 많다.
그러나 도착지는 모두가 다 같다.
말을 타고 갈 수도 있고, 차로 갈 수도 있고 둘이서 아니면, 셋이서 갈 수도 있다.
그러나 마지막 한 걸음은 혼자서 가야 한다.
그러므로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혼자서 하는 것보다 더 나은 지혜나 능력은 없다.
4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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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생과 죽음은 결국 한길로 통한다. 홀로 왔다 홀로 가는 것이다. 중간에 어떤 삶을 살았든, 결국 마지막 한 걸음은 모두 혼자서 가야 한다.
이 마지막 한 걸음을 잘 걷기 위해서는 살아있는 동안 홀로 걷는 연습이 필요하다. 누가 도와줄 수도, 대신 걸어줄 수도 없기에 더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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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 속 빛
슬픔에 잠긴 채 혼자 멀리 떨어져 있다면 가끔은 아름다운 시의 구절을 읽고, 즐거운 음악을 들으며, 수려한 풍경을 둘러보고, 당신 생애에 가장 순수하고 행복했던 시간을 떠올려 보라!
당신이 간절한 마음을 담아 그렇게 했다면 곧 기분 좋은 시간이 찾아올 것이며, 미래는 든든하게 여겨지고, 삶은 어느 때보다도 사랑스러워 보이는 기적이 일어날 것이다!
19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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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슬픔이나 우울에 잠기는 순간이 온다면 그때는 아름답고, 즐겁고, 순수한 것들을 가까이해보면 어떨까? 예술, 음악, 그림, 자연 등 그 어떤 것도 좋다.
잠시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가까이하는 것만으로도 곧 기분 좋은 시간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더 나은 미래를 꿈꿀 수 있을 것이다. 잘 될 거라는 믿음이 마음 깊숙이 자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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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정 어린 삶
나는 전적으로 삶을 신뢰했고 그 마음이 변치 않기를 바랐다.
살아가기 위해서는 삶을 향한 신뢰가 중요한 것을 깨닫고 삶을 사랑하게 되었다.
23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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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떤 것보다, 그 누구보다 가장 우선시해야 할 것은 바로 나 자신이다. 내가 나를 애정하고 믿어줘야만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또 그것이 추진력이 되어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
어떤 일이 발생하더라도, 자신에 대한 신뢰나 애정만큼은 절대 놓치지 말기를, 살아가는데 이것만큼 중요한 자산도 없다는 것을 기억하기를 바란다.
오른쪽 상단에는 독자의 편의를 위해 작품의 장르가 표기되어 있는데 추후 원문을 읽어보고 싶을 때는 참고해 봐도 좋을듯하다.


헤세가 직접 그린 그림을 보며 힐링의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그림 속의 모습은 헤세가 마주하던 풍경으로 추측된다. 고요하고, 다정하고, 편안하게 다가오는 모습은 어쩌면 그가 추구하던 삶에 대한 소망과 의지가 반영되어서는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