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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연기처럼
이시헌 지음 / 좋은땅 / 2024년 5월
평점 :
"무얼 전하고 싶었던 걸까?"
처음에 제목을 보고 한껏 기대감에 들떠있었다. 공연, 예술, 전시 등을 자주 접하지는 못하지만 늘 관심은 가지고 있던 분야였기에 더 그러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기대 때문인지, 제목 때문인지 초반까지는 저자가 뮤지컬 배우 혹은 연기자라고 생각했다. 저자 소개글까지 꼼꼼하게 읽었지만, 초반부까지는 어쩐지 모호하게 표현되는 문장들 때문에 저자의 직업이 더 헷갈렸던 것 같다.
하지만 이내 저자는 연기자가 아니며, 그저 뮤지컬을 좋아하는 애호가로서 자신의 삶과 연관 지어 글을 썼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 사정이 있었음에도, 그게 그다지 중요한 사항은 아니었기에 이때까지만 해도 별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페이지가 넘어갈수록 어쩐지 자꾸 멈추게 되는 사태가 일어났다.
뮤지컬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이야기가 진행되기는 하는데, 어쩐지 자꾸 덜커덩 거리며 이야기가 자꾸 끊기는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선지 집중이 전혀 되지 않았고, 대체 저자는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인가에 대해 자꾸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이는 챕터가 이어질수록 계속되었는데, 때문에 읽을수록 점점 더 나락으로 떨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총 5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뮤지컬을 좋아하는 저자가 자신의 삶과 뮤지컬, 그리고 글쓰기에 대한 소재를 한 데 엮어 에세이 형태로 엮은 책이다.
매 장, 매 챕터가 거의 비슷한 형태로 진행되는데, 각 이야기는 어쩐지 억지로 끼워 맞춘듯한 느낌을 준다. 자신의 성장 이야기 - 뮤지컬 이야기 - 글쓰기에 관한 이야기(혹은 생각 느낌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하나의 주제에 3개의 문단이 나눠져 있는 셈이다.
챕터의 서론 부분을 장식하는 이야기는 주로 개인적인 자신의 경험담에 대한 이야기로, 대체로 어둡고 부정적인 이야기들이 많다. 여기에는 직업, 사랑, 유년 시절, 관계, 어머니 등 다양한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다.
다음으로 이어지는 뮤지컬 이야기는 앞선 경험담과 연관되는 특정 단어나 연관된 소재를 다룬 뮤지컬을 소개하는 형태로 진행된다. 이를테면 직장에서 겪은 번아웃과 꿈에 대한 내용에는 뮤지컬 <모차르트>를 엮는 식으로 진행된다.
마지막 문단에서는 앞선 내용들에 대한 정리 혹은 수습하는 형태로 저자의 생각이나 다짐들이 담겨있는데, 첫 번째 문단과는 대조되는 억지스러운 밝음 혹은 결심들이 느껴진다. 예컨대, 일기를 쓰며 '오늘 엄청 우울한 날이었는데, 내일은 기분 좋은 일들이 가득할 거야'라며 애써 스스로를 위로하고 담대하게 넘어가려는 느낌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다.
책의 '들어가는 글'과 '마치는 글', 그리고 책 소개 페이지에는 분명 뮤지컬을 통해 얻은 인생의 진리나 희망, 도전의식, 뮤지컬을 통해 달라진 삶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이라 소개하고 있는데, 개인적으로 느낀 감상은 오히려 뮤지컬이라는 소재를 활용해 저자의 속 이야기를 풀어내고자 했다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든다.
오히려 원래의 의도대로, 뮤지컬을 통해 달라진 삶에 대한 내용들만 다뤘다면 어땠을까? 전반적인 내용을 가라앉게 만드는 저자 개인의 경험담이 꼭 필요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하나의 챕터를 이끌어가는 주제는 결국 서문에서 다루는 저자 개인의 이야기에서부터 비롯되고, 그것이 뮤지컬과 결론에까지 다다르다 보니 다 읽고 보면 뮤지컬에 대한 내용은 실상 기억에 크게 남지 않는다. 암울하고 우울한 저자의 이야기만 남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뮤지컬에 대한 애정은 지속적으로 과하게 반복되는데, 이를테면 30번을 넘게 봤다거나 연기자가 아님에도 연기자의 입장에서 서술하는 장면들이 종종 발견된다.(이 때문에 사실 저자가 연기자라고 착각하게 된 것이다) 이런 것들이 자연스럽게 다가오기보다, 좀 억지스럽고 과하게 느껴지면서 한편으로는 과시하고 싶은 걸까 하는 생각도 잠시 해보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애정하고 관심 있는 것에는 몇 번, 몇 개와 같은 수치가 별 의미 없다고 생각한다. 직접 대면하지 않고도 마음으로 애정 하는 크기가 클 수도 있는 건데, 굳이 이 크기를 지속적으로 독자들에게 노출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좀 어린아이 같은 마음이 숨겨져 있다는 생각도 든다.
여기에 더해 솔직하게 털어놓은 사적인 이야기들을 살펴보면 투정 부리거나 하소연하는듯한 느낌도 적지 않게 받게 되는데, 그래서 읽으면서 자꾸 지치고 멈추게 되는 일이 반복된다는 생각도 든다.
실상 200페이지가 조금 넘는 책을 읽으며 이렇게 여러 번 읽다 말다를 반복한 책도 처음인 것 같다. 불운했던 어린 시절 이야기, 좋아하는 사람과 연락이 끊겨서 힘들었던 일, 게임으로 폭력까지 행사하는 이들에 대한 이야기, 외모 콤플렉스에 관한 이야기, 프리랜서로서의 불안하고 초조한 삶에 대한 이야기, 직업에 관한 불만 혹은 힘듦에 관한 이야기들이 아니라, 저자가 본 뮤지컬에서 얻은 순수한 영감과 희망, 배울 점, 깨달음, 설렘 등이 한층 부각되어 드러났다면 이토록 마음이 무겁지는 않았으리라 생각된다.
책 표지에 새겨진 문구처럼, '단순히 공연을 관람하는 것이 아니라 특별한 의미를 두었다. 뮤지컬은 내면의 Key이다'라는 말처럼 말이다.
저자를 움찔움찔, 찌릿찌릿하게 만든 뮤지컬의 힘을 기대했으나, 이렇듯 저자의 개인적 성토에 의해 뮤지컬에 대한 내용이 연기처럼 사라지면서 나는 이 책을 읽어야 하는 목적과 방향을 잃었다.
그리고 수십 번 책을 열었다 덮었다를 반복하다 결국 다다른 결론은 뮤지컬이라는 것을 앞세워 저자 깊숙이 침잠해 있던 이야기를 꺼내놓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다다랐다.
이를테면 뮤지컬이 '주'가 아니라 '내 이야기'가 '주'인 것이다. 진실은 알 수 없지만, 한 명의 독자로써 느낀 이 책에 대한 소감은 이렇다.
미처 섞이지 못한, 한 챕터에 자리한 세 가지 소재(저자 이야기+뮤지컬 이야기+글쓰기에 대한 이야기)를 살펴보다, 처음의 기대와는 다른 아쉬움과 씁쓸함만 등 뒤에 남겨두게 되었다.
이런 사정으로 이 서평을 쓰기에 앞서 고민이 많았다. 그래서 여러 사람들의 서평도 살펴보고, 이 책에서 찾고자 했던 핵심 내용인 뮤지컬에 대한 내용만 쏙 골라 적어볼까도 생각해 봤지만 역시 그건 아니라는 생각에 다다랐다.
내가 진짜 느낀 감정은 그게 아닌데, 자기 기만으로 내용을 채우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여태껏 그래왔듯 느낀 그대로의 감상평을 남겨본다.
읽는 포인트에 따라 어떤 이들은 서문에 자리한 저자의 경험담보다 중반과 후반에 자리한 뮤지컬에 대한 이야기 혹은 이에 대한 저자의 생각이나 결론에 더 초점이 맞춰질 수도 있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 이 책은 저자의 이야기에서 시작된, 저자의 이야기를 풀어내기 위해 뮤지컬이 추가된 형태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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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에 대한 애정을 엿볼 수 있었던 문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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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작품을 관람하게 되면 간절함을 느낄 수 있다. 배우들의 뜨거운 열정과 헌신을 바라보며 절실한 마음이 느껴졌다. 조금이라도 멋진 삶을 살기 위해선 시도하고 도전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단순히 공연을 관람하는 것이 아니라 특별한 의미를 두었다. 뮤지컬은 내면의 세계를 여는 'Key'이다.
1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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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들이 연기하는 모습을 보거나 노래를 듣고 있으면 목 끝에 탄산을 머금은 듯한 느낌이 든다. 음악이 관객들에게 주는 힘이 굉장하다고 느낀다. 보이지 않지만 내 안에서 무언가 꿈틀대는 게 느껴졌다. 음악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만드는 힘이 있다.
29~3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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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을 통해 느낀 순수한 감정들을 엿볼 수 있는 장면으로, 간절함, 열정, 음악의 힘 등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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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에 관련된 문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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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행복을 찾기 위해 글을 쓰고 있는 작가이다.
4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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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이루고자 의자에 앉아 글을 쓰는 일에 깊이 빠져들었다. 살아온 경험을 토대로 글을 써야 하는데, 사랑, 성공, 행복에 대한 글은 내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
글을 쓰게 되면서 삶은 조금씩 달라질 수 있었다.
(...)
뮤지컬은 내 마음을 뛰게 해주었고 책은 꿈을 갖게 해주었다.
5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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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찾기 위해, 꿈을 이루기 위해 글을 쓴다는 저자는 글쓰기에 대한 항목을 지속적으로 할애할 만큼 글쓰기에 대한 애정도 깊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