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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 아저씨 - 한 지휘자가 옮긴 감동 있는 음악이야기
이상환 지음 / 바른북스 / 2021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음악이라는 범주를 가만히 살펴보면 가요만 존재하는 것이 아닌데, 우리는 생각보다 꽤 좁은 범주의 음악만 즐기고 사는 것이 아닌가 가끔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물론 자신의 취향, 직업 등 필요에 따라 클래식이나 트로트 등을 즐겨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특정 음악만 듣고 즐기는 것 또한 사실이기에 한편으로는 안타깝다는 생각도 든다.
그 원인에 대해 생각해 보면, 학창 시절 음악을 제대로 처음 접했던 시기에 너무 '공부'로서만 다가왔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그래서인지 오히려 다 큰 성인이 된 후에야 뒤늦게 책이나 영화, 드라마, 광고음악, 지인의 추천 등의 계기로 빠져드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는 생각도 해본다.
총 2부로 구성된 이 책은 음악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품고 있는 책으로, 한 지휘자가 세계 여러 나라의 음악과 악기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베토벤, 브람스, 베르디 등의 유명한 작곡가를 비롯해, 풍금, 가야금, 꽹과리, 바이올린, 피아노, 첼로, 피리 등의 악기, 그리고 클래식과 대중가요, 왈츠 등 분야를 막론하고 다양한 음악과 악기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이렇듯 음악의 범주 안에 있는 다양한 이야기를 마치 옛이야기 듣듯 읽다 보면 새삼 몰랐던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호기심을 자극해 나도 모르게 빠져들게 된다.
그리고 새삼 그 이야기에 등장하는 곡, 가사, 악기 등이 새삼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 때론 감동으로 다가오기도 하고, 어떨 때는 깊은 슬픔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지금과는 다른 시대적 배경이나 상황으로 인해 서글픈 애환이나 안타까움으로 다가오는 것도 있었는데, 그렇게 배경지식을 하나씩 쌓고 보니 더 많은 것들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아래는 몇 가지 인상 깊었던 에피소드를 추려 소개해 보려 한다. 나처럼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도 흥미로운 이야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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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는 모두의 마음을 하나로 만들어주는 힘이 있다. 하나의 숭고하고 감동적인 멜로디는 백 마디의 말보다 더 큰 감화력과 영향력을 발휘할 때도 있다. 어느 때는 그것에 내 의지와 관계없이 나의 마음까지도 내어주어야 할 때도 있고, 또 그 멜로디 하나가 서로 다른 마음들을 하나 되게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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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노래와 멜로디는 마음을 움직이는 중계자로 오래도록 우리와 함께 해왔다. 그래서 지금도 나라에서는 국가를 학교에서는 교과를 그리고 단체나 군대에서는 단가와 군가를 불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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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이유에서 글과 말은 사람의 지성을 설득하기 위함이지만, 음악은 인간의 원초적인 감성을 움직이는 능력이 있다고 말하지 않나 생각한다.
24~2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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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우리는 많은 매체를 통해 음악의 힘을 충분히 경험하고 있다. 영화를 볼 때, 드라마를 감상할 때, 게임을 할 때, 광고를 볼 때 등등 음악이 빠진다면 정말 적막한 상황이 연출될 것이다.
음악은 이렇듯 우리의 심신을 릴랙스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때론 심장을 뛰게 만드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음악 별거 있어?'싶지만, 실상 음소거로 처리하고 많은 일들을 실행해 보면 얼마나 시간이 안 가는지, 또 흥미가 떨어지는지 알게 될 것이다.
이처럼 음악은 우리의 원초적인 감성을 움직이며 우리가 미처 자각하지 못하는 사이, 물리적인 시간과 행동마저 다르게 느끼도록 만든다. 그리고 이러한 점이 바로 음악의 위대함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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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기의 추억'은 포스터가 작곡한 미국 노래로 그가 작곡한 '스와니 강'과 '금발의 제니'등과 함께 우리에게도 많이 알려진 곡이다.
포스터는 3백 곡에 가까운 가곡을 남겼다. 하지만 그는 37세 짧고도 짧은 인생을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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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많은 곡들 중에서 특히 '메기의 추억'은 노래 가사와 멜로디가 잔잔한 감동을 주는 명곡 중 하나이다. 이 곡은 미국 선교사를 통해 한국에 처음 들어온 후 우리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았는데, 가슴을 아프게 하는 작곡 배경이 곡에 대한 애잔한 감동을 더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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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을 갓 졸업한 젊은 선생님 조지 존슨은 한 고등학교의 영어교사로 부임한다. 존슨은 그곳에서 학생이었던 메기 클락을 만나게 된다. 그런데 영어 선생님으로 온 존슨과 제자인 여학생 메기는 서로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그리고 메기가 학교를 졸업하면서 둘은 미래를 약속하며 행복한 결혼식을 올렸다.
그런데 아름다운 신혼의 단꿈이 채 가시기도 전에 그만 아내 메기에게 폐결핵이 찾아오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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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아내는 결혼 1년 만에 어린 갓난아이와 남편을 남겨두고 세상을 떠나고 만다. 사랑하던 아내를 잃은 존슨은 어린아이를 등에 업고 아내와 행복하게 살던 시골 고향 언덕에 그녀를 묻는다.
그토록 사랑하던 여제자였던 아내를 떠나보낸 존슨은 깊은 슬픔에 잠겼다. 그 후 그는 시인이 되었다. 그리고 죽은 아내를 생각하며 "메이플의 사랑"이라는 시집을 펴내게 되었고, 시집 첫머리에 아내 메기와의 추억이 담긴 시 한 편을 써넣었다.
그것은 지울 수 없는 메기와의 아름다운 추억을 그리워하며 지은 시였다.
63~6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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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기의 추억'이라는 곡을 들어보면 익숙한 멜로디와 가사에 저도 모르게 흥얼거리게 된다. 그런데 이 곡의 뒤 배경에 이렇듯 슬픈 사연이 숨어있을 줄은 몰랐다.
얼마나 사랑했으면 직업도 바꾸고 오롯이 아내만을 생각하며 시를 남기게 되었을까? 이 내용을 알고 다시 가사를 보니 왠지 모르게 그리움이 절절히 느껴지는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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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의 찬미'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윤심덕은 1900년대 초 활동했던 한국 최초의 소프라니스트였다. 하지만 그녀는 29살의 아주 짧은 인생을 살다 간 비운의 성악가였다.
그녀는 일제 강점기 당시 어려운 상황 가운데에서 스타 소프라니스트의 꿈을 안고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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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윤심덕이 유학 중 순회공연차 고국을 방문했는데 공연 도중 처자식이 있는 한 유부남을 만나게 된다. 그 남자는 김우진이라는 극작가였는데, 둘은 빠르게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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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춰야 하는 길인 것은 알았지만 그 둘의 관계는 이미 돌이키기에 너무 늦어버린 관계가 되어 있었다.
당시 보수적인 시대적 상황에 비추어 보아도 그들의 사랑을 이루기는 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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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그때 그녀는 '사의 찬미'라는 곡을 쓰게 된다. 그리고 그 노래로 이루지 못한 자신의 사랑을 비관하며 죽음의 비극을 알리는 메시지를 남기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라는 그녀가 쓴 '사의 찬미'의 노래 가사처럼, 그녀가 그토록 사랑하던 김우진과 함께 이 세상을 떠나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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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곡은 원래 한 루마니아 음악가가 작곡한 '다뉴브강의 잔 물결'이라는 원곡에 윤심덕이 가사를 붙인 번안곡이었다.
윤심덕에 의해 작곡된 후 이 곡은 1926년 발매되어 대중음악의 효시 격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불렸다. 또 이 노래는 실연의 아픔을 이기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로하는 애창곡으로도 즐겨 불렸다.
173~17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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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진의 와이프 입장에서는 정말 억울한 상황인데, 시대적 배경과 가사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하면서 어떻게 보면 비운의 연인처럼 보이는 윤심덕과 김우진의 사랑 이야기인 '사의 찬미'는 어떤 입장에 서서 노래를 감상하는지에 따라 다르게 들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더불어 이런 스토리 덕에 오히려 사람들의 연심을 자극한 것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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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작은 여름이면 오케스트라를 데리고 그의 여름 별장에 가서 시간을 보내곤 했었다. 그런데 그해 여름에는 예년보다 별장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지쳐갔고 또 고향과 가족에 대한 깊은 향수가 생겨났다. 결국 악장 하이든에게 그 고충을 토로하게 이르렀다.
하이든은 그 난처한 상황으로 인해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그때 지혜로운 하이든은 후작의 뜻을 거스르지 않고 단원들의 고충을 알릴 수 있는 묘안을 찾아내게 된다. 바로 이 '고별'이라는 교향곡을 통해 후작에게 이별의 뜻을 알리기로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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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회는 시작되었고 이제 마지막 악장에 다다랐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인지 갑자기 베이스 연주자가 하던 연주를 중단하고는 악기를 들고 자리를 뜨는 것이었다. 곧이어 다른 연주자들도 한 사람 한 사람씩 무거운 표정을 하고는 무대 뒤로 사라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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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사이 벌써 연주를 하던 단원들의 자리는 거의 비워졌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악장과 또 한 명의 연주자만이 무대에 남아 있게 되었다. 그들도 지친 표정으로 마지막까지 연주를 이어갔고 연주는 그렇게 마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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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까지만 해도 그런 형식의 작품은 소개되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쉽게 이해할 수도 없는 장면이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그날 연주를 다 들은 후작은 하이든의 뜻을 헤어졌다고 한다. 그리고 다음 날로 지쳐 있던 단원들에게 그동안 늦어졌던 여름휴가를 보내게 되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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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든의 이 작품은 지금에 와서도 그 의미가 적지 않다. 그 이유는 행위를 접목한 이런 형식의 작품은 순수 절대음악에 있어서 음악과 퍼포먼스를 접목한 역사상 첫 작품으로 평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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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게도 하이든은 그 오랜 옛적에 사회의 통념을 깨고 그런 시도를 했던 것이다. 아마도 하이든의 인격과 성품이 아니었다면 그 당시 어느 누구도 쉽게 생각하거나 시도할 수 없는 아이디어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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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말보다 글이 더 필요할 때가 있다고 한다. 또 때로는 글이나 말보다 적절한 제스처가 더 큰 효과를 가져올 때도 있다.
178~18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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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이는 아이디어에 획기적인 퍼포먼스가 음악과 결합된 당시로서의 매우 파격적인 연주가 아니었나 싶다.
사실 중간에서 매우 난처했을 텐데, 하이든은 이것을 오히려 기회로 삼아 후작의 면을 살려주는 것은 물론 지쳐있던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의중까지도 전달할 수 있는 상황으로 만들었다.
단순히 오케스트라 단원들을 이끄는 악장으로써만 생활했다면 급작스러운 상황에 이런 아이디어는 절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깊이 있게 음악을 대하고 늘 고심했기에 나온 지혜가 아니었나 싶다.
이제서야 말이지만, 당시에는 저질러 놓고도 뒤에서는 얼마나 조마조마한 마음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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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들었으면 '그냥' 넘겼을 음악, 작곡가, 악기 소리를 이렇듯 흥미롭고 감동적인 이야기를 통해 알게 되니 새삼 다르게 다가온다.
이래서 '아는 것이 힘'이라고 하는가 보다. 덕분에 조금 멀게 느꼈던 음악들과도 꽤 가까워진 느낌이다. 어떤 음악을 들었을 때 이렇게 한번 콕 짚어진 것들은 새삼 반갑게 다가올 것만 같다.
그때 '엇! 이 음악은~ ' 하면서 마치 아는 사람인 것 마냥 반갑게 맞이할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