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 웨이 - 시장점유율 98%, 경쟁자들을 지워버리는 대체 불가 기업의 비밀
이덕주 지음 / 더퀘스트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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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인 정직성'을 바탕으로 실패를 딛고 일어선 젠슨 황과 엔비디아를 파헤치다!"


인터넷 기사나 뉴스를 볼 때면 종종 등장해서 궁금증을 자아냈던 기업과 한 인물이 있다. 바로 검은 가죽 재킷을 입고 늘 등장했던 젠슨 황, 그리고 그가 CEO로 있는 엔비디아다.

이 사람과 기업이 언급될 때면 어김없이 우리나라 산업의 주축을 이루고 있는 반도체와 함께 연이어 삼성전자, SK하이닉스가 언급되고는 했는데,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솔직히 어떤 연관성이 있는 건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래서 그저 반도체와 연관된 어떤 산업에 엔비디아가 큰 역할을 하고 있고, 그래서 자주 언급된다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또 주식 관련 내용으로 많이 언급되었기에 주식과 관련된 어떤 것이라는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크게 중점을 두고 있는 분야가 아니었기에 그렇게 물음표를 가지고 있는 상태로 지내고 있던 차에, 이번에 엔비디아에 대한 책을 만나게 되면서 그동안 가지고 있던 물음표를 해소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또 젠슨 황과 엔비디아 외에도 함께 언급되었던 TSMC와 HBM와 같은 용어에 대한 이해는 물론, 한때 그래픽카드 대란으로 난리가 났던 이유도 마침내 알 수 있었다.

뭔가 하나씩 열쇠를 찾아나가는 기분이 들어 신나게 읽을 수 있었는데, 이는 아마도 이런 용어에 익숙하지 않은 초보자들도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풀어쓴 저자의 배려가 녹아들어서가 아닐까 싶다.


총 5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젠슨 황과 엔비디아에 대해 쉽게 풀어쓴 책으로, 기본적으로 이들이 다루는 산업이 무엇이고, 또 지금의 엔비디아가 있기까지의 과정, 그리고 그 속에서 중심 역할을 제대로 해주었던 젠슨 황의 성장담이 담겨있다.

▶파트 1에서는 엔비디아가 현재 AI 반도체 산업에서 어떤 위치를 점하고 있으며 어떻게 반세기 가까이 왕좌를 지켜왔던 경쟁사들을 끌어내리며 산업 지형을 변화시키고 있는지 살펴본다.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해자를 만들어낸 이들만의 특징은 무엇인지 탐색한다.

▶파트 2에서는 엔비디아의 탄생과 성장 그리고 그래픽 카드 회사에서 어떻게 '인공지능 회사'로 변모하게 되었는지 그 전략적 방향 전환의 과정을 설명한다.

▶파트 3에서는 엔비디아의 급성장을 견인한 데이터센터 산업을 비롯해 이들이 현재 어떤 시장에서 미래의 먹거리를 찾고 있는지 논의한다. 또한 '서비스 기업'으로의 변화를 이루어내고 있는 이들의 새로운 비전도 함께 살펴볼 수 있다.

▶파트 4에서는 회사 창립 이후 30년 넘게 CEO 자리를 지키고 있는 젠슨 황의 독특한 리더십과 엔비디아의 특별한 조직문화에 대해 이야기 한다. 그리고 혁신의 최전선을 이끄는 이 기업에 어떤 사람들이 일하고 있는지 살펴본다.

▶파트 5에서는 엔비디아가 지금과 같은 시장 지배력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지, '엔비디아로부터의 독립'을 외치며 뒤를 바짝 추격하고 있는 '빅 4' 테크 기업들을 비롯해 스타트업까지 현재 주목해야 할 기업들로는 누가 있는지 자세히 알아볼 것이다.


이를 통해 그들이 주력으로 하고 있는 산업과 미래 먹거리로 생각하고 있는 분야, 그리고 이들이 현재 반도체 시장에서 끼치고 있는 영향력과 더불어 주총 1위까지 찍은 비결도 함께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과정들 속에서 우리 기업이 배워야 할 점과 참고하면 좋을 기업문화도 엿볼 수 있었는데, 동서양의 장점만을 쏙쏙 골라 차용한 것을 보고 '이래서 다들 엔비디아를 선호하는구나' 알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엔비디아라는 기업과 젠슨 황이 궁금해서 이 책을 읽게 되었는데, 시기적절한 타이밍에 잘 읽었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덕분에 앞으로는 해당 기업과 인물에 대한 내용을 또 보거나 듣게 된다면 흘려듣지 않고 반갑게 귀를 쫑긋하며 집중하게 될 것 같다. 더불어 앞으로의 발전 모습도 조금 더 관심 있게 지켜보게 될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며 반도체 분야에 대한 지식은 물론, 컴퓨팅에 대한 지식, 상식, 국제 정세, 올바른 기업문화, 미래 먹거리 등 여러 가지를 배우고 깨우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덕분에 오랜만에 배움에 대한 신선한 자극을 받는 것은 물론,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점도 다시 한번 되새길 수 있었다.

아래는 뉴스를 보며 머릿속에 물음표로 남았던 부분에 대한 해답, 명확하게 알지 못했던 개념 위주로 정리해 보았다. 만약 더 나아가 깊이 있는 지식을 원한다면 직접 책을 통해 확인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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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이 책을 통해 전하는 두 가지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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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엔비디아라는 한 회사를 통해 독자들에게 두 가지 시선을 제공하고자 했다.

하나는 컴퓨팅(계산)의 발전이라는 큰 그림이다. 인류가 지금처럼 눈부신 기술적 발전을 이루어낼 수 있었던 배경에는 컴퓨팅의 발전이 있었다. 어느새 맞이하게 된 4차 산업혁명을 엔비디아가 더 빠르게 발전시키고 있는 것이다.

다른 하나의 시선은 젠슨 황이라는 한 인물의 '아메리칸 드림 스토리'를 보는 것이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엔비디아가 지금과 같이 반도체 업계의 중심에 선 것은 5년도 채 되지 않은 일이다. 고난과 역경을 거치고 엔비디아는 전 세계 기업 시가총액 1위를 기록했고, 젠슨 황은 전 세계 부자 20위 내에 이름을 울렸다. 이는 그 자체로 인간 승리이자 오직 미국에서만 가능한 '아메리칸 드림'이기도 하다.

일론 머스크나 마크 저커버그가 팬만큼이나 많은 안티를 몰고 다니는 것과 달리 젠슨 황은 적이 많지 않다. 실력과 겸손, 유머를 두루 갖춘 데다가 자신을 찾는 곳이면 어디든지 달려가는 그의 소탈한 성품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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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비디아라는 기업에게서 한국 기업이 배울 수 있는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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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기업과도 유사한 엔비디아가 결정적으로 한국 기업과 다른 점을 살펴보면, 젠슨 황이 자주 언급하는 '지적인 정직성'이 아닐까 한다. 그가 말하는 지적인 정직성이란 진실을 추구하고, 실수에서 배우고, 배운 것을 공유하는 것이다.

많은 고위 경영진들이 높은 자리에 올라가면 자신이 듣고 싶은 얘기만 듣고, '진실'을 알리려는 참모를 내치는 경우도 많다. 젠슨 황은 이런 문화를 크게 경계하며 모든 정보를 평등하게 공유하고 사실을 바탕으로 결과를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한다.

정직성은 경영자뿐 아니라 기술을 개발하는 엔지니어들에게도 아주 중요한 덕목이다. 엔비디아에는 리더부터 실무자까지 자연스럽게 이 문화가 녹아 들어가 있다.

주식투자가 아니라 엔비디아라는 기업과 젠슨 황에 대해서 알고 싶어서 이 책을 읽게 된 독자가 있다면 '지적인 정직성'이라는 단어를 꼭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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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히 들여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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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비디아의 등장과 지금에 이르게 된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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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비디아가 지금의 위치에 오르게 된 것은 전적으로 인공지능 덕분이다. 엔비디아가 AI를 학습 시키는 데 가장 중요한 부품인 GPU 반도체를 생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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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기술과 딥러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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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우리가 AI라고 부르는 기술은 AI의 하위 분야인 '딥러닝'에 가깝다. 딥러닝은 사람의 뇌 신경망과 유사한 '인공 신경망'을 컴퓨터 소프트웨어로 만들고 이것을 학습시키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딥러닝은 대량의 데이터를 가지고 AI가 스스로 학습한다. 사람이 하는 일은 대량의 데이터를 준비하고, AI 학습에 필요한 컴퓨터를 제공하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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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학습 진행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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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하게 설명하면 더하기와 곱하기를 몇백 조 번씩 반복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계산을 해야 하는 숫자가 어마어마하게 크기 때문에 AI 학습에는 엄청나게 좋은 성능의 컴퓨터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성능 좋은 컴퓨터 안에 우리가 GPU라 부르는 엔비디아의 반도체가 사용된다. GPU라는 명칭은 컴퓨터에서 연산을 처리하는 반도체인 CPU에서 따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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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PU와 GPU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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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PU와 GPU의 가장 큰 차이는 데이터 처리 방식에 있다. CPU는 순차처리 라고 해서 일이 들어오는 순서대로 하나씩 처리하고, GPU는 병렬처리라고 해서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처리한다.

현재 엔비디아의 GPU가 딥러닝 기반 AI의 핵심적인 인프라를 이루고 있는 상황에서 AI의 사용이 늘어날수록 엔비디아의 반도체 역시 점점 더 많이 필요해질 수 밖에 없다.

엔비디아가 인터넷 세상을 열어준 마이크로소프트의 뒤를 이어 오늘날 새롭게 왕좌에 오른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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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에 대한 기본 개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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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는 용도에 따라 크게 로직 반도체와 메모리 반도체, 그리고 DAO 반도체 이 세 가지로 나뉜다.

데이터를 저장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하는 D램, S램 그리고 플래시 메모리 등이 대표적인 메모리 반도체에 속한다. D램은 전원이 공급되어도 주기적으로 충전을 해줘야 기억이 유지되는 반도체이고, S램은 전원이 공급되는 한 기억이 유지되는 반도체이며, 플래시 메모리는 전원이 공급되지 않아도 기억이 유지되는 반도체다.

그리고 이런 메모리를 조종하고 명령을 내리는 반도체가 바로 로직 반도체다. 이름 그대로 기억이 아니라 논리를 처리(계산) 하는 것이 로직 반도체의 역할이다. 우리가 앞서 얘기한 CPU와 GPU가 대표적인 로직 반도체로, 엔비디아, 인텔, 퀼컴, 미디어텍 등이 대표 기업이며 삼성전자, 애플, 아마존, 구글도 자체적으로 로직 반도체를 생산한다.

DAO 반도체는 하나의 반도체를 의미하는 게 아니라 '개별소자 반도체'와 '아날로그 반도체' 그리고 '기타'를 합친 말이다. 개별소자 반도체는 트랜지스터나 다이오드같이 단일 기능을 수행하는 저렴한 반도체를 뜻한다.

아날로그 반도체를 아날로그 신호를 디지털 신호로 바꾸는 반도체로, 자동차에 많이 사용되는 MCU가 대표적이다. 미국 기업 텍사스 인스트루먼트, 아날로그 디바이스, NXP 반도체 등이 대표 아날로그 반도체 기업이다.

기타는 기별소자 반도체나 아날로그 반도체를 제외한 반도체를 의미한다. 주로 광전자 소자와 센서 등인데, 소니가 전 세계 1위를 하고 있는 이미지 센서가 대표적인 기타 반도체에 속한다.

크게 보면 한국은 메모리 반도체 시장, 미국은 로직 반도체 시장, 일본과 유럽은 DAO 반도체 시장에서 점유율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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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설계와 제조의 분리
#팹, #TSMC, #팹리스, #파운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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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두드러지는 부분은 반도체 설계와 제조의 분리다. 과거에는 반도체를 설계하는 회사가 직접 반도체를 제조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웨이퍼에 반도체 회로도를 입력하는 작업을 'fabrication'이라고 하는데 이를 줄여서 '팹'이라고 부른다.

1980년대 말 반도체 위탁제조 전문 회사인 TSMC가 등장하면서 설계와 제조가 분리되었다. TSMC는 타이완 반도체 제조 회사의 약자로, 세계 최대의 독립 반도체 파운드리(반도체 제조업체)이다.

TSMC는 고객이 설계한 대로 반도체를 제조해 주는데, 오늘날 삼성전자와 인텔을 제치고 전 세계 주요 반도체 설계 회사들의 가장 큰 신뢰를 받고 있다.

지금은 삼성전자와 인텔을 제외한 대부분의 기업이 제조 시설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이처럼 팹 없이 설계만 하는 반도체 회사를 '팹리스', 위탁제조만 해주는 회사를 '파운드리'라고 부른다.

이처럼 반도체 설계와 제조가 분리된 이유는 반도체 제조 시설을 만드는 데 긴 시간과 막대한 자본 투자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파운드리가 등장하면서 팹리스 기업들은 좀 더 생산성이 높은 설계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또 제조와 설계의 분리는 기존에 반도체를 만들지 않던 빅 테크 기업이 자신들만의 반도체를 설계하고 이것을 파운드리에 맡겨 생산하는 것도 가능하게 만들었다.

이런 '반도체 독립'을 시작한 대표적인 기업이 바로 애플이다. 애플은 아이폰, 맥북, 아이패드에 들어가는 반도체를 직접 설계하고 TSMC에 생산을 맡긴다.

다만 메모리 반도체는 팹리스와 파운드리의 분리가 이뤄져 있지 않은데, 메모리 반도체를 로직 반도체처럼 높은 집적도가 필요하지 않고 복잡도가 높은 기술을 요하기보다는 저렴하고 안정적으로 생산하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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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삼성전자는 엔비디아가 되지 못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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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는 왜 엔비디아가 만드는 AI 반도체를 만들지 못하는 걸까? 대답은 간단하다. '삼성전가가 가장 잘 만드는 반도체와 엔비디아가 가장 잘 만드는 반도체의 종류가 다르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메모리 반도체를 가장 잘 만들고 엔비디아는 로직 반도체인 GPU를 가장 잘 만든다. 두 반도체의 성격이 매우 다르기 때문에 그 경쟁력을 쉽게 따라갈 수가 없다.

삼성전자는 매우 특이한 회사라 할 수 있다. 메모리 반도체도 잘 만들지만 로직 반도체(스마트폰 AP인 엑시노스)도 만들고, 이를 자체적으로 생산하는 데다가 또 다른 기업들의 주문을 받아 파운드리에서 위탁 생산도 해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모든 일을 다 하는 삼성전자도 사업이 메모리 반도체 쪽에 크게 치중된 탓에 최근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현재 GPU 시장의 90% 이상을 잠식한 엔비디아를 따라잡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더구나 이 물량은 삼성전자의 강력한 경쟁자인 대만의 TSMC가 생산을 전담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삼성전자 말고도 또 하나의 막강한 반도체 기업이 있다. 바로 엔비디아의 부상과 함께 날아오른 SK하이닉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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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분야에서 SK하이닉스가 삼성을 앞지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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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여름, 가장 잘나가는 한국 반도체 회사는 어디일까? 바로 SK하이닉스다. SK하이닉스가 엔비디아에 메모리 반도체인 HBM을 공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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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BM 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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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의 규모가 점점 커짐에 따라 발생하는 병목현상을 해결한 것이 D램을 층으로 쌓은 HB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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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성형 AI의 인기로 인해 발생한 GPU 부족 현상과 엔비디아의 급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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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성형 AI가 엄청난 사업 기회를 제공할 것으로 보이자 이들 하이퍼스케일러들은 앞다퉈 엔비디아에 GPU를 주문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수요는 너무 많았고 엔비디아가 만들 수 있는 GPU 수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러자 빅 테크 기업들은 엔비디아의 GPU를 어마어마한 규모로 사들였다.

특히 이러한 GPU 부족 상황은 2023년 8월에 제일 심했는데 '엔비디아의 H100을 누가, 얼마나 언제 구했는지가 실리콘 밸리의 가장 큰 가십거리'라는 말이 나도 나돌 정도였다.
한참 뉴스에서 그래픽카드 대란으로 난리가 났던 적이 있는데, 이러한 이유로 그렇게 전 세계적으로 난리가 났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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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비디아가 독점에 가까운 위치에 오를 수 있었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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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비디아는 어떻게 지금과 같은 시장점유율 90%가 넘는 독점에 가까운 위치에 오를 수 있었을까? 이토록 빅 테크 기업들이 엔비디아의 GPU 반도체를 구하기 위해 줄을 서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바로 엔비디아가 다른 기업들은 절대 넘볼 수 없는 소프트웨어와 플랫폼이라는 강력한 '해자'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GPU 품귀 현상은 독점의 폐해가 아닌 이들이 가진 '경제적 해자' 덕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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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자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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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자'라는 단어는 경영학에서 자주 쓰이는 말로, 현대 경영학에서는 어떤 기업이 다른 기업과의 경쟁에서 갖는 절재적인 우위 요소(저비용 생산, 높은 전환 비용, 무형자산, 네트워크 효과, 규모의 경제 등)를 '경제적 해자'라는 표현을 사용해 설명하곤 한다.

AI 반도체 시장에서 엔비디아는 다른 기업이 절대 진입할 수 있는 강력한 해자를 가진 기업으로 평가받는다.

엔비디아는 GPU를 비롯해 하드웨어를 만드는 기업이지만, 사실 이들이 가진 경제적 해자의 원천은 소프트웨어와 이를 지탱하는 생태계에 있다. 엔비디아의 소프트웨어 생태계를 이해하려면 바로 그들이 개발한 프로그래밍 도구인 CUDA에 대해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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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비디아를 지금의 자리에 있게 한 CUDA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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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DA는 'Compute Unified Device Architecture'의 약자로 2006년에 엔비디아가 발표한 기술이다. CUDA는 CPU가 아닌 GPU에게 명령을 내리기 위한 프레임워크와 라이브러리를 모아놓은 소프트웨어 플랫폼이다.

AI 학습의 경우, 초기 연구자들이 GPU를 사용해왔고 엔비디아가 이를 훌륭하게 지원해 줬기 때문에 계속 엔비디아의 GPU를 사용해왔다.

현존하는 AI 코드의 대부분이 CUDA를 기반으로 짜여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마디로 엔비디아의 GPU가 AI 개발의 '업계 표준'으로 정해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더 우수한 성능의 GPU 반도체가 나온들 이를 사용하려면 기존에 해왔던 모든 것들을 갈아엎어야 하는데 그런 리스크를 감당하려는 기업이 어디에 있겠는가.

무엇보다 경쟁 제품의 성능이 좋아진다고 해도 엔비디아도 이전 세대보다 더 좋은 제품을 계속해서 내놓고 있기 때문에 시간을 두고 기다리면 엔비디아 GPU의 성능이 더 좋아질 테니 더더욱 바꿀 이유가 없다.

이렇듯 '비싸도 사용할 수 밖에 없는' 압도적 성능과 생태계 지배력을 가진 덕분에 엔비디아가 GPU가 가진 경제적 해자를 깨기란 정말 어렵다.

엔비디아 GPU의 대체제를 찾기 어려워질수록 엔비디아는 자신들의 해자를 더욱 강력하게 구축할 것이다. 지금, 그리고 앞으로도 우리가 엔비디아를 계속해서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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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비디아의 현재 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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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포머 모델의 등장과 챗 GPT의 부상은 생성형 AI 시장이라는 기존에 없던 새로운 거대한 시장을 만들어냈다. 그래서 혹자는 챗 GPT를 2008년 스마트폰 혁명을 가져온 아이폰과 비교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 모든 발전의 기저에 바로 엔비디아의 GPU가 쓰이고 있다. 엄청난 능력을 발휘하고 있는 AI를 학습시키고 이를 바탕으로 서비스를 하려 할 때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GPU다.

사람 같은 혹은 사람을 능가하는 능력을 가진 AI를 개발하기 위해 빅 테크 기업부터 스타트업까지 수많은 기업들이 뛰어든 가운데, 이 전쟁에서 가장 큰돈을 벌고 있는 기업이 바로 GPU라는 무기를 파는 엔비디아 인 것이다.

생성형 AI라는 거대한 물결 속에서 우리가 또 하나 주목해야 할 점은 그 물결을 일으키는 동력인 엔비디아의 GPU를 대신할 제품이 없다는 사실이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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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비디아를 대체불가 기업으로 만든 네 개의 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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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비디아는 오직 네 종류의 고객만을 가지고 있다. 바로 데이터센터, 게임, 자율주행, 그래픽 전문가다. 그래서 이들은 실적을 발표할 때도 이 네 부문으로 나누어 발표하곤 한다.

가장 첫 번째로 꼽을 수 있는 사업 군은 지금의 급격한 성장을 이끈 AI 반도체 즉, GPU를 판매하는 데이터센터 사업 부문이다. 2017년을 기점으로 폭발적으로 성장하여 현재 전체 매출의 78%를 차지하는 엄청난 규모가 되었다.

두 번째는 1993년 엔비디아 설립 때부터 2020년까지 약 27년간 엔비디아라는 회사를 이끌어온 게임 사업 군이다.

세 번째 사업은 전문가 비주얼 사업 부문으로, 엔비디아의 반도체와 서비스가 영화나 드라마 산업에서 많이 사용되고 있다. 메타버스와 디지털 트윈 분야도 이 사업 부문에 들어간다.

마지막으로 네 번째 사업은 오토모티브 사업 부문으로, 자동차 회사들에게 반도체와 솔루션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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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비디아가 미래 먹거리로 생각하고 있는 사업군 네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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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새로운 산업 혁명의 핵심 엔진, 데이터센터
지금과 같은 엔비디아의 급성장을 견인한 사업은 뭐니 뭐니 해도 데이터센터 사업이다. 엔비디아는 자신들이 개발한 GPU, DPU, NV링크 등을 가지고 반세기 넘게 테크 업계의 공식으로 자리 잡은 무어의 법칙을 변화시키며 1000조 달러 규모의 새로운 AI 산업혁명을 이끌고자 하고 있다.


2. '제 2의 먹거리' 메타버스와 디지털 트윈
메타버스와 디지털 트윈은 AI와 데이터센터 다음을 바라보는 엔비디아의 대표적인 사업이다. AI가 모든 산업에 보편화되고 이동통신처럼 인프라 투자가 완료되면 그다음엔 무엇을 가지고 성장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많다. 엔비디아는 그다음 먹거리 중 하나로 '메타버스'를 보고 있다.

지금 확실한 시장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산업용 메타버스 정도다. 하지만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시장이 흘러간들 이에 대응할 수 있도록 엔비디아는 모든 것을 준비하고 있다.


3. 인간의 삶을 개선시키는 로보틱스와 자율주행 솔루션

■로보틱스
오늘날 생성형 AI 만큼 그 발전 속도가 빠른 분야가 바로 로보틱스다. 문자 그대로 '자고 일어나 보니 달라졌다'라고 할 만큼 불과 1~2년 사이에 새로운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다. 어째서 최근 들어 로보틱스가 이렇게 주목을 받게 된 걸까?

첫째, 전동모터와 배터리 기술의 발달 때문이다. 덕분에 훨씬 정밀한 움직임의 휴머노이드 로봇을 만드는 것이 가능해졌다.

둘째, AI 때문이다. 보스턴 다이내믹스처럼 머신러닝을 통해 로봇이 인간처럼 걷고 움직이는 것이 가능해졌고, 이는 이미지 인식과 대화 등의 영역에도 확장되고 있다.

■자율주행 솔루션
자율주행차 붐이 막 일어날 무렵, 자율주행차의 핵심이 컴퓨팅이 될 것임을 간파한 엔비디아는 재빨리 이 시장에 뛰어들었다. 물론 그들이 만든 것은 자동차 외장이 아니라 '자율주행 플랫폼'이었다.

자율주행차에 들어가는 전용 반도체와 OS, 그리고 이를 학습시킬 수 있는 데이터센터 인프라도 함께 판매함으로써 엔비디아는 다른 많은 기업들이 전기차를 비롯해 자율주행차 시장에 뛰어들 수 있게 해주었다.
이처럼 엔비디아는 로보틱스와 자율주행 산업에서도 매우 높은 수준에 올라와 있다. 물론 아직까지 엄청난 매출이 발생하고 있지는 않지만 지금 이 분야에 진입하는 스타트업들에게 어떤 플랫폼을 쓰는지 물어보면 대다수가 엔비디아의 추론칩과 플랫폼을 사용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AI와 마찬가지로 엔비디아는 지금 미래 기술을 선점한 채, 사과가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4. AI 산업의 최강자, 바이오 산업의 핵심 기업이 되다
젠슨 황에 따르면 헬스케어 업계는 이미 15년 전부터 엔비디아 GPU를 사용해서 연구를 해왔다. 그리고 점점 컴퓨팅 파워가 발달하면서 GPU를 활용한 신약 개발 연구가 보편화되고 있다.

그런 이유로 젠슨 황은 생성형 AI가 생물학 연구에도 적용될 거라 이야기 한다. 엔비디아는 생성형 AI가 신약 개발을 비롯해 헬스케어 분야에서도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오리라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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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심을 잃지 않는 엔비디아의 기업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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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비디아는 실리콘밸리에서도 가장 독특한 기업문화를 가진 조직으로 손꼽힌다. 보통의 기업에서는 지위가 높아질수록 고급 정보를 가지게 되고, 이 정보가 곧 권력으로 작동한다.

하지만 엔비디아에서는 매니저든 팀원이든 해당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으면 모든 정보를 동등하게 알 수 있다. 그래서 1:1 회의를 하지 않으려고 한다. 대신 팀에 속한 모든 사람이 모이는 회의를 선호한다.

팀은 철저하게 프로젝트 중심으로 구성되며, 직원들은 자신이 원하는 프로젝트에 지원해서 참여할 수 있다.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므로 당연히 만족도도 높은 편이다.

조직이 프로젝트 단위로 움직이면 팀장이 팀원을 영입하는 것이 중요한데, 그러다 보니 일을 떠맡기거나 상대를 공격하기 보다는 도와주는 매니저가 인기가 많고, 그런 팀장이 자연스레 팀원을 영입하기가 쉽다. 모든 팀이 이런 식으로 구성된 까닭에 조직 전체에 우호적인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다.

혹자는 실리콘밸리의 문화와 동아시아 기업의 문화를 가장 잘 결합한 곳이 엔비디아라고 말하기도 한다. 수평적인 기업문화와 수평적인 정보, 교류, 솔직함과 자율성은 대표적인 실리콘 밸리 스타일의 기업문화다. 반면 사람을 쉽게 해고하지 않고, 장기근속 하는 것은 동아시아 기업의 전형적인 스타일이다.

이직과 정리해고가 잦은 실리콘밸리에서 엔비디아는 고용 안정성이 가장 튼튼한 기업으로 손꼽힌다. 심지어 직원들도 이직하기보다는 엔비디아에 남는 것을 선호한다.

이 같은 조직문화를 엔비디아가 시가총액 1위의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됐다. 창업자이자 CEO인 젠슨 황의 비전과 능력도 중요했지만 엔지니어들이 자발적으로 자신의 창의력을 발휘한 부분도 상당했던 것이다.

그의 말처럼 직원이 회사에서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을 찾고, 열정을 가지고 거기에 몰두하게 만드는 것이 엔비디아가 지닌 특별한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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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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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구 뒤엉켜서 잘 이해되지 않던 개념들을 차근차근 정리하다 보니 어느새 엔비디아라는 기업과 창업자이자 CEO인 젠슨 황에 대한 기본적인 내용을 습득할 수 있었다.

더불어 최근 4차 산업혁명의 키워드로 급부상하고 있는 여러 개념들과 국제 정세, 그리고 미래 먹거리까지 확인할 수 있어 뜻깊은 시간이었다.

점점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 속 전문적인 용어들이 혼재되면서, 실상 제대로 공부하지 않으면 모르고 넘어가는 개념들이 많은데, 이 책을 계기로 한발 더 나아갈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 것 같아 은근히 성취감도 느낀다.

사실 처음에는 경제, 경영에 관련된 책이라 좀 어렵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쉽게 풀어서 설명하고 있어 꽤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또 의문으로만 남아있던 단어와 개념들을 하나씩 채워나가며 그것을 제대로 이해하고 또 일상에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 있어 꽤 유익한 시간이었다.

과거와는 달리 요즘은 정보가 곧 돈이 되고, 또 도움이 되는 시대다. 주식투자에 관심이 없더라도, 적어도 뉴스에서 자주 언급하는 용어나 기업, 특정 키워드들은 미리 공부해 두면 도움 되는 경우가 많다.

일부러 여기저기서 찾아서 습득하는 것이 어렵다면 누군가 잘 정리해둔 개념들을 통해 지식을 쌓아보면 어떨까? 이 책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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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방랑
후지와라 신야 지음, 이윤정 옮김 / 작가정신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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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삶의 진정성을 찾고자 떠난 천일 간의 인도 여행 기록을 담고 있는 책!"


아주 오래전부터 여행지로서의 인도에 대한 의견을 들어보면, 이상하게 호불호가 크게 갈리는 나라 중 하나였다. 꼭 한번 가봐야 하는 나라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고, 절대 가서는 안 되는 나라라는 의견이 팽팽해서 어느 쪽도 편을 들어주기 어려웠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였는지 선뜻 여행지로 인도를 가보겠다는 용기를 내지는 못했는데, 그럼에도 인도의 풍경을 담은 사진이나 영상을 볼 때면 마음속으로는 내심 한 번쯤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총 2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1960년대 인도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책으로, 여행책이라기 보다 다큐멘터리를 보는 느낌이 더 강하게 든다.

천 일, 약 3달간 인도에 머무르며 현지인들 속에서 먹고, 자고, 사진을 찍고, 그들과 일상을 나누며 보낸 이야기는 여느 인도 여행이야기와는 느낌이 완전히 다르다.

특히 갠지스강을 중심으로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이야기는 숙연해짐과 동시에 여러 생각이 교차하는 지점이다. 한때는 많은 사람들에게 실질적&상징적으로 삶과 생명의 물줄기였던 그곳이 이제는 그저 상징으로만 남아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씁쓸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인도인들이 머무르는 아주 가까이에서 그들의 삶과 인도 그 자체를 담아내려 애쓴 저자의 인도 이야기는 인위적이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풍경, 삶, 대지가 엿보인다.

1960년 일본은 고도성장을 이루던 시기다. 그런 때 저자는 모든 것을 버리고 홀연히 인도로 떠나게 된다. 그렇기에 어쩌면 더 비교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스물네 살의 청년 후지와라는 1960년대 말, 고도성장이라는 괴물에 사로잡혀 죽음조차 관리되어가는 사회 시스템이 주는 폐색감을 떨치고 삶의 진정성을 묻고자 인도로 떠나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빛과 어둠, 흐름과 멈춤, 탄생과 소멸, 혼돈, 그리고 이 우주의 무수한 '허'의 순간과 공간을 마주하게 된다.

그러면서 자신이 여태껏 존재했고, 배워왔던 세상의 허위를 깨닫게 되면서 새삼 당시 일본 사람들은 잃어버린 '열'을 발견하게 된다.

여기서 열은 다양한 의미로 추측할 수 있는데, 열의, 열정, 최선을 다함, 삶에 대한 의지, 끈끈함, 협동, 굳건한 믿음 등등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물질적으로는 빈곤할지언정 자신만의 '열'을 잃지 않고 사는 인도 사람들의 모습에서 저자는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잃어버린 존재의 이유 그 자체를 알게 된 것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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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인도방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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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방랑>은 저자가 스물네 살 나이에 처음 그 열구 밑 대륙에서 노닐던 때의 기록이다. 처음 그 대지를 밟은 1960년대 말, 일본은 고도성장이 한창이었다.

저자는 대학을 버리고 모든 경력을 버리고 인도에 갔다. 이 나라는 빈곤했다. 그러나 그곳에서 저자가 본 것은 물질적 빈곤과 더불어 지금 우리가 잃어가고 있는 열이었다고 전한다.

이 지상에 있는 생명의 존재 장소를 분명하게 보았고, 아울러 내 생명의 존재 장소도 분명하게 보았다고 전하며, 그것은 저자의 이십 대에 있어서 하나의 혁명이었다고 말한다.

인간 집단의 최소 단위인 가족까지도 붕괴 조짐을 보이는 오늘날, 저자는 때때로 인도의 지상에 꿈틀대는 온갖 열들에 대해 생각한다며, <인도방랑>은 그 열에 들떴던 내 젊은 날의 부끄러운 첫 기록이라 전하고 있다.

이 책을 통해 저자는 젊은이들에게 자신을 얽어맨 굴레를 벗어던지고 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라는 말을 전하고 싶다고 말한다. 그러면 전혀 다른 세계가 눈앞에 펼쳐질 것이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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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에 남았던 문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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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하지 않는다는 건, 정보를 일절 들이지 않는 거였어요.
(...)
정보가 많을수록 안심은 커지지만 실상은 멀어지지요.
(...)
요즘 같은 정보화 사회의 여행은 이 병이 무섭도록 깊습니다. 오히려 실상을 보는 게 두려운 건지. 실상이 자신을 침범하지 않도록 정보로 보호막을 치는 건지도 모르지요.
3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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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인도 여행을 떠남에 있어 특별히 정보를 들이지 않았다고 말한다. 이 때문인지 그의 책을 살펴보면 그날 날것 그대로의 인도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우리는 보통 여행을 떠날 때 이런저런 정보 수집은 물론 사전에 시뮬레이션까지 하며 극강의 정보를 끌어모으기 바쁘다.

여태껏 이렇듯 정보를 모으는 이유에 대해 낯선 곳에서 당할 조난이나 위협으로부터 나를 보호하기 위함이라고만 생각해 왔는데, 이 책을 읽고 보니 한편으로는 실상이 나 자신을 침범하지 않도록 정보로 보호막을 친 것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아니 어떤 한편으로는 실상을 보는 게 두려워서일지도 모르겠다. 적나라의 인도의 모습을 읽으며, 현지인들처럼 머물 자신이 없는 것을 보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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갠지스....
무릇 갠지스에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제아무리 대단하고 제아무리 하찮은 것이라도 모두 흘러간다.

가령 삼백초 잎사귀의 구역질 나는 고약한 냄새부터 재스민 꽃의 천국에라도 오를 것만 같은 냄새까지.
갠지스에 흐르지 않는 것이란 없다.

가령 사용법을 몰라 내다 버린 전기세탁기부터 아직 전기가 없던 시대에 죽은 수만의 인간 뼈까지... 도무지 갠지스에 흐르지 않는 것이란 없다.

그리고 강바닥에서는 수만의 죽은 자의 뼈가 꿈실꿈실, 꿈실꿈실, 꿈실꿈실, 꿈실꿈실 바다를 향해 흘러가고 있는가 하면, 강 표면에서는 1910년대에 처음 물에 띄워진 낡아빠진 고물선이 1972년 현재 먹고 먹히며 살아가는 인간들을 꿈실, 꿈실, 꿈실, 꿈실 실어 나르고 있다.
(...)
갠지스는.... 가령 2001년이 되어 어디 먼 나라에서 흰 까마귀가 새카만 사람 아기를 낳는다고 해도 역시 흐르고 있을 것이다.
206~20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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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갠지스강은 생명과 정화의 상징과도 같은 곳이었다. 인도인들에게는 특히 종교의 의미까지 더해져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지점이기도 했다.

그런 이유로 세월이 한참 흐른 현재까지도 갠지스강은 인도인들에게 있어 절대적인 공간이자 신성한 공간이다. 그러나 현실적이고 객관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이제는 수질이 악화된 최악의 강 중 하나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여전히 사람들은 그곳에서 의식을 치르고, 또 목욕을 하고 먹기도 하지만, 강바닥에는 죽은 자의 뼈가 떠내려가고, 또 시체를 담그기도 하며, 때론 사체를 떠내려 보내기도 하는 곳이다.

갠지스강은 과거에도, 현재도 흐르고 있다. 아마 미래에도 흐르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새 회복 불능의 상태가 되어 그저 흐르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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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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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다 보면 인도의 아주 깊숙한 내면까지 자세히 살펴볼 수 있는데, 이를테면 화장실을 이용하는 것과 같은 아주 사적인 내용부터 사후의 의식을 치르는 내용처럼 민감하게 생각할 부분까지 말이다.

특히 갠지스강을 중심으로 써 내려간 글과 사진들에는 들개들에 물어뜯기는 사체, 시신을 태우는 장면, 그리고 장례 의식을 치르는 어린아이의 모습들이 담겨있어 조금 불편하게 다가올 수도 있다.

하지만 매일 행해지고 있는 현지의 모습이기에, 어쩌면 저자에게 있어서는 절대 빠뜨릴 수 없는 장면이었으리라 생각된다.

매일을 수없이 맨발로 걸어 다니며 하루를 열심히 사는 이들 너머, 땅거미가 지고 고요한 풍경을 맞닥뜨릴 때면 저자는 많은 생각에 젖어 들었던 것 같다.

어쩌면 태어나고 자란 당시의 일본이 떠오르며, 오로지 경제부흥, 돈, 풍요만 생각하는 삶이 일순 허무하게 느껴지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한편으로는 인도 사람들을 보며, 가난하고 가진 것 없지만 그냥 하루를 온전히 살아내고, 열심히 땀 흘리며 살아가는 것에 대한 의미를 다시 되새겨 보는 시간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됐다.

스물넷의 젊은 청춘에 모든 것을 내던지고 아무 정보도 없이 떠돌았던 인도 여행은 당시 저자에게 있어서는 충격이자 새로움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덕분에 인도 여행이 약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우리도 살다 보면, 이처럼 삶의 존재 이유는 물론 삶의 의미를 잃어버리는 때가 있다. 그럴 때 이 책에서 말하는 '열'을 한 번씩 떠올려 보면 어떨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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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마음대로 살아보겠습니다 - 현실은 엉망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원지 지음 / 상상출판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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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원지'를 있게 한 짠내나는 인생이야기"


단발의 뽀글 머리를 장착하고 늘 여행을 떠나는 그녀는 라테, 카레, 노란색, 안경, 눕는 것을 좋아한다. 그녀의 이름은 '원지'로 지금은 라디오와 각종 매체를 통해 얼굴이 알려져 아마 이전보다는 더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알고 있지 않을까 한다.

여행을 좋아하지만 코로나 이후 뚝 끊을 수밖에 없었던 발걸음, 그리고 그런 아쉬운 마음을 달래고자 이것저것 뒤적이던 중 우연찮게 보게 된 한 유튜브 채널에서 나는 '원지'를 알게 된다.

이색적인 말투, 단발의 뽀글 머리(사실 이전에는 생머리의 똑단발이었다)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는데, 보다 보니 은근히 중독성 있게 계속 그녀의 채널을 찾게 되었다. 그리고 여전히 나는 그녀의 채널이 업로드되면 어김없이 찾는다.


총 5개의 파트로 구성된 이 책은 지금의 원지를 만든 토대이자 인생 이야기에 더해 여행 유튜버 초창기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녀의 유튜브 채널에서는 만날 수 없었던 속 깊은 이야기와 고민, 그리고 그녀가 열심히 살아왔던 짠 내 나는 성장기를 만나볼 수 있는데, 읽다 보면 공감 가는 여러 이야기들을 만나볼 수 있다.

이를테면 진로, 박봉, 야근, 나이를 먹음에 따라오는 압박감,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 사이에서의 갈등, 삶에 대한 고민 등이다.

그녀의 유튜브를 보고 어떤 이들은 그녀의 말투나 눕는 것을 즐겨 하는 행동, 여행 유튜브 등의 키워드만 보고 고민 없이 살지 않을까 오해할 수도 있는데, 가끔 그녀의 브리핑을 듣다 보면 그녀 또한 꽤 머릿속이 복잡함을 알 수 있다.

단지 그것을 유튜브를 통해 심각하게 드러내지 않을 뿐이며, 가끔 드러낼 때는 그 현상에 대해 스스로 어느 정도 정리하고 받아들인 뒤에 결론까지 내린 상황을 공유하기 때문에 어쩌면 쉽게 느끼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꽤 시간과 공을 들여 애쓰고 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원지가 책을 썼다는 것을 알고 언젠가 한번 꼭 읽어봐야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마침내 읽게 되었다.



이 책에는 여행 유튜버로서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이전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담겨있었는데, 가끔 유튜브에서 조각조각 언급하던 이야기들의 실체를 마주할 수 있었다.

쉽게 이야기하기 힘든 집안 이야기는 물론, 무대뽀로 도전한 꿈과 열정에 관한 이야기, 어설프지만 해보겠다는 일념으로 배고프고 힘들어도 해나갔던 이야기 등.

흔히 청춘이라 말하는 피, 땀, 눈물에 대한 성장기가 오롯이 이 책에 담겨있었다. 어떨 때는 맨땅에 헤딩하는 느낌으로 도전하는 이야기도 만나볼 수 있었는데 어쩌면 그때의 그런 도전과 경험이 있었기에 지금의 든든한 '원지'가 자리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무턱대고 떠난 아프리카로의 여행, 그리고 거기서 발견한 또 하나의 희망. 여기에 더해 본격적으로 여행 유튜버로서 자리하기까지의 성장담을 보며 인생이란 무엇이며, 어쩌면 우리는 나이에, 세상의 틀에 갇혀 사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됐다.

스스로 기회를 찾아 떠난 원지의 여행을 통해 한 번쯤 내 인생을 제대로 사는 것이란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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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 파산, 눈물과 한숨. 모든 불행은 정해진 각본처럼 느리지만 정직하게 흘러갔다. 아빠는 신용불량자가 됐다. 자식들에게 빚을 무려 줄 수는 없다며 파산 신고를 했고, 곧 엄마와 이혼을 했다. 이런 일들을 겪으며 자연스럽게 아빠와는 따로 살게 되었고, 세 모녀의 본격적인 단칸방살이가 시작되었다. 바닥부터 시작하는 기분이었다.
(...)
우리 가족은 기초수급대상자가 되었고, 매달 쌀 한 포대씩 을 받았다.

나는 그렇게 국가에서 인정한 공식 '흙수저'가 되었다.
30~31페이지 中
=====

어쩌면 그녀 인생에서 불행의 시작이라 일컬어지는 시점을 그녀는 이때로 삼은 것 같다. 가족의 붕괴 그리고 단칸방에서 시작한 삶.

하지만 당시 그녀는 그것을 어려움으로 여기지 않고, 그저 즐거움으로 받아들였다. 바퀴벌레가 나오기 전까지는 나만의 다락방이 생겼다는 즐거움에 한동안은 매우 좋아했던 것을 보면 꽤 긍정적 마인드를 보유한 사람이 아니었나 싶다.


=====
나는 장기 여행에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헤어스타일'이라고 감히 생각하고 있었다. 며칠 감지 않아도 기름진 것이 티가 안 나며 머리를 감고 대충 털고 말려도 그럴싸한 형태가 유지되는 그런 헤어스타일 말이다. 며칠을 고민하다가 떠올린 것은 바로 '이은미 머리'였다.
(...)
"제일 얇은 롤로 앞머리까지 빡시게 말아주세요!"
(...)
그렇게 완성된 나의 '장기 여행자 머리'는 결과적으로 여행 내내 다른 여행자들에게서 "Nice Hair!"라는 칭찬을 질리도록 듣게 해주었다.

탁월한 선택이었다.
61~62, 64페이지 中
=====

지금은 당연한 듯 여행을 앞두면 동네 미용실을 찾아 뽀글 머리 파마를 하지만, 과거 동영상을 찾아보면 처음 아프리카를 찾을 당시만 해도 그녀는 똑단발의 생머리였다.

그런 그녀가 언젠가부터 뽀글 머리를 하고 털털하게 여행을 떠나는 모습을 보며 내심 그 이유가 궁금했는데, 그 이유를 여기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런데 신기한 건 그런 뽀글 머리가 너무 잘 어울린다는 거! 왠지 그녀의 영상을 보다 보면 '나도 한번 해볼까?'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물론 생각에만 그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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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후에는 어떻게 살지?' 하는 오지랖과 꼰대 같은 발상이 내 안에서 자연스럽게 스쳤다.
그때보다 몇 년이 흐른 지금의 나는 다행히 답을 알고 있다. 퇴사를 하든 안 하든, 장기 여행을 하든 안 하든 '앞으로 무엇을 하며 먹고 살 것인가'라는 문제는 각자 죽을 때까지 평생 안고 가야 할 숙제라는 것을 말이다.
94페이지 中
=====

20대에 들어서면서부터 모두가 하는 이 고민은 아마 '앞으로 무엇을 하며 먹고 살 건인가'하는 문제가 아닐까 싶다.

대학을 입학하면, 취업하면 다 해결될 줄 알았는데 이 모든 게 해결되고 나이를 먹어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이 질문은 아마 평생 우리 모두를 따라다니지 않을까 싶다.


=====
스콜이었다. 수분을 가득 머금은 차가운 바람이 몸을 스쳤다.
(...)
오랜만에 온몸에 물이 가득 쏟아져 흐르니 콧노래가 나왔다.

"최고다. 그치?"
"응. 기분 좋다."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프로란스와 나는 소나기 아래 발가벗고 한참을 깔깔거렸다. 세수도 사치라 여기며 살다 보니 당연한 것 하나에도 기쁨이 배가 된다. 삶이 이런 것인가 싶다. 그래 인생 뭐 있나. 이런 게 행복이지.
14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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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삶에 있어 아프리카에서의 경험은 유독 특별하다. 뭔가 제대로 갖춰진 게 없는 곳, 상식이 통하는 않는 나라인 이곳에서 그녀는 일찍이 인생의 깨달음을 얻게 된다.

뭐든 다 부족했고, 여러 사건사고를 겪었지만 그럼에도
자연 속에서 자유롭게 생활하며 얻은 삶의 가치는 그녀에게 도전의식과 꿈을 심어주었다.

당시만 해도 아프리카는 제대로 된 정보를 얻기 힘든 나라 중 하나였다. 오로지 부정적인 '카더라'만 존재하던 시절, 그녀는 그곳에서 그런 정보가 모두 사실이 아님을 몸소 느끼며 몇 달을 보낸다.

지금 생각해 보면 쫄보인 그녀가 어떻게 홀로 그 먼 나라에서 그 모든 것을 감내하며 살았는지 새삼 신기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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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제작부터 영업, 마케팅, 회계 등의 일을 적은 인력으로 해내야 하는 스타트업의 세계는 일당백으로도 모자랐다. 밤늦게 사무실을 나서는 날들이 이어졌지만 이전의 야근과는 많이 달랐다. 먹고 싶은 과자 한 봉지에 고민을 해야 할 만큼 가난해도 매일이 새로웠고 피곤했지만 의욕은 넘쳐났다. 하루에도 몇 번씩 마주하는 새로운 환경과 인연, 겪어보지 못한 일이지만 처음이 아닌 것처럼 해내야 하는 것까지. 내일을 장담할 수 없는 하루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여행을 가지 않아도 매일 여행을 하는 기분이었다.
16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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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보다 오히려 창업이나 스타트업 경험이 더 많은 그녀의 이력을 살펴보면, 참 용감하고 도전적이고 모험적인 일들을 많이 감행했음을 알 수 있다.

이 내용은 청년창업 지원 사업에 도전한 경험에 대한 이야기로,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느끼는 도파민, 의욕,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같은 야근이라도 억지로 하는 야근과 하고 싶어서 하는 야근은 천지차이라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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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취업사이트를 뒤지며 이력서 양식을 찾다가도 어느 틈엔가 켜져 있는 건 결국 유튜브였다.
(...)
"나도 영상이나 만들어 볼까?"
(...)
'이 엉망진창 볼품없는 인생을 영상으로라도 한번 기록해 보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
그렇게 유튜브에 일상을 영상으로 기록하기 시작했다. 모두에게나 똑같이 흘러가는 24시간을 내 마음대로 돌려도 보고 순서도 바꿔보며 편집하는 것. 마치 똑같은 하루를 한 번 더 사는 기분이었다. 영상을 편집하다 보니 매 순간순간 내 모습에 조금 더 집중할 수 있었다. 별거 없는 하루라는 덩어리도 쪼개보니 의외로 즐거운 순간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이제는 결과보다 과정 자체를 즐겨보기로 했다.

이러나저러나 힘들 거라면 하루하루를 즐기는 거다.
168~16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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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처음 유튜브를 시작하게 된 계기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내용이다. 무엇이든 억지로 시작하거나 뭔가 대단한 걸 해보겠다는 생각을 가지고서는 보통 시작조차 하기 힘들다.

하지만, 가벼운 마음으로 '한번 해볼까?'하는 생각으로 도전하는 일들은 의외로 재미를 붙이고 오래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 순간을 즐기게 되면서 지금의 '원지의 하루'가 존재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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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나는 아프리카 우간다에서 다시 한번 창업에 도전하게 되었다. 그동안 결과만 보고 헛된 노력이었다고 우울해했던 모든 '짓'들은 지나고 보니 쓸데없는 시간 낭비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
아이러니하게도 이 모든 것들은 이 이상한 글로벌 사업 아이디어의 '실현 가능성' 부분에 높은 점수를 안겼다.

'이번에는 결과보다 과정의 즐거움을 찾아보자. 행여나 또 한 번 실패한다 해도 절대 우울해하지 말자.'

이렇게 다짐하며 5년 만에 다시 우간다를 찾게 되었다.
17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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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작정 떠난 아프리카 여행 이후 이런저런 일을 겪으며 어떤 순간에는 분명 그 모든 노력들이 그저 헛짓이라고 생각되는 때도 있었을 것이다.

과정이야 어쨌든 결과는 매번 실패로 돌아왔고, 시간만 계속 흘러가는 것에 우울한 순간도 있었을 것이다. (친구나 주변인들과 비교되는 때도 분명 있었을 텐데, 그녀의 이야기 속에 그런 '비교'에 대한 이야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런 일들이 하나둘 차곡차곡 쌓이기 시작하면서 계속 새로운 문이 열리기 시작했고, 그렇게 그녀에게 또 한 번 아프리카 우간다에서 새롭게 일할 기회가 생기게 된다.

그제야 비로소 저자는 과정을 즐기는 법을, 지금까지의 노력과 경험이 헛되지 않았음을 깨닫게 된다.


=====
떠나고 보니 내가 알고 있던 기준은 오직 한국에서만 적용되는 것이었다. 세상에는 상식이 비상식이 되기도, 비상식이 상식이 되기도 하는 수천수만 가지의 삶의 방식이 존재했다. 때론 '디스 이즈 아프리카!'란 말처럼 '디스 이즈 원지!'라고 외칠 수 있는 용기를 가질 수 있기를.
20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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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많이 다녀본 사람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이 통하지 않을 수도 있음을 일찍이 알고 있다. 저자 또한 아프리카 여행을 통해 몸으로 체험하면서 상식이 비상식이 되기도 하고, 비상식이 상식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더불어 추후에는 '디스 이즈 원지!'라고 외칠 수 있는 용기를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는데, 이미 그녀만의 브랜드를 론칭한 순간 이 말은 지켜진 게 아닐까 싶다.


=====
그날 밤 나는 또다시 새로운 공간, 한동안 '내 방'이라 부를 공간에 누웠다. 머릿속에선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이 떠다녔다.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는 이 생활은 언제까지 계속될까. 10년쯤 더 지나면 나는 스스로를 어른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그때는 앞으로 뭘 할 것인가라는 고민보다 과거에 뭘 했나를 더 돌아보게 될까. 나이에 맞게 산다는 건 도대체 누가 정한 걸까. 그 기준에 맞게 살면 이런 고민들은 사라질까.

정해진 답은 없어 보였다. 그렇다면 그런 것에 휘둘리지 말고 각자의 속도대로 살아가면 그만 아닐까.
226페이지 中
=====

저자의 이런 사고와 생각들은 가끔 유튜브를 통해 만나볼 수 있는데, 그때 그녀의 철학과 결론을 듣다 보면 나도 모르게 비슷한 고민을 함께 하게 될 때가 있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정해진 답은 없다. 한 번씩 그렇게 머리가 복잡할 날, 흔들리는 때가 있을 때는 저자처럼 종이에 적으면서 정리해 보거나 아니면 근처 공원이나 산을 오르는 등 몸을 움직여 보면 어떨까 한다.


=====
어느 날, 자전거를 타고 평소 가보고 싶었던 카페를 찾았다. 좋아하는 라테를 주문하고 전자책을 꺼냈다. 1시간이 흘렀지만 페이지를 단 한 장도 넘어가지 않았다. 그때 누군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Can you do me a favor?(부탁 좀 들어줄래요?)"

(...)
한 손에 포스트잇과 볼펜을, 그리고 한쪽 어깨에는 커다란 백팩을 걸친, 정돈되지 않은 머리의 백인 남자가 서 있었다.
(...)
그는 노란 포스트잇에 무언가를 적고서 나에게 건넸다. 거기엔 이런 말이 적혀 있었다.

Stay awesome. (계속 멋있어줘요)

쪽지와 친절한 웃음을 남기고는 그는 유유히 카페를 나갔다. 돌아가는 그의 뒷모습과 노란 쪽지를 번갈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가끔은 누군가에게 별 이유 없이 그냥 '괜찮아. 잘하고 있어'라는 따뜻한 말 한마디가 듣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모르는 남자가 건네고 간 그 작고 노란 포스트잇은 그 후로도 오랫동안 미국에서 버틸 수 있는 힘을 주었다.
235~23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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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 순간들이 있다. 그럴 때 나와 전혀 접점이 없는 누군가가 건네는 소박한 인사말은 때로 큰 힘이 되기도 한다.

한 시간 내내 멍한 상태로 자리를 지키고 있던 저자,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며 힘내라며 응원의 메시지를 센스 있게 건넸던 어떤 남자.

당시의 그 노란 포스트잇은 그 어떤 응원의 말보다 더 힘을 주는 문장이 아니었을까?

어떤 남자가 건넨 노란 포스트잇 그리고 그가 가지고 있던 볼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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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분명 나 혼자 노력한다고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안다. 대신 개미 같은 존재지만 나 한 명조차도 움직이지 않으면 영영 변하지 않는다는 것도 배웠다. 100명이 보고 100명이 모두 옳다 할 수 있을 만큼 당당한 일이라면 움직이는 게 맞다.
25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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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러니 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움직이는 몇몇 소수의 사람들 덕분에 세상이 돌아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때문에 '시작은 미약하나 끝은 창대하리라'가 적용되는 것이 아닐까?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가만히 있기보다, 필요하다면 화를 내기도 하고 때론 부딪혀 보기라도 해보자! 그 미약한 움직임이 후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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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일들을 겪으며 조금이나마 나를 위로해 주었던 것은 헛짓거리라 생각하며 벌여온 일들이 (금전적 보상은 아니더라도) 어떤 식으로든 꼭 돌아온다는 것이었다. 반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정말 놀랍도록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25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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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도움이 되든 되지 않든, 뭐든 하면 그게 어떤 식으로든 후에 결과로 돌아온다. 반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새로운 기회를 만들고 싶다면, 지금 당장 어떤 것에 도전해 보자. 그게 금전적 보상으로 돌아오지 않더라도, 그저 시간을 허비하는 일처럼 여겨져도 그 과정을 즐길 수 있다면, 지금의 나를 위로해 주었다면 그것으로 만족하고 시도해 보자.

경험은 돈으로 살 수 없다. 그저 몸으로 익히고 체험해야만 가질 수 있다. 여기에 더해 시간과 노력이 곁들여진다면 후에 새삼 놀라운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

이 책에는 저자의 고등학생 시절부터 20대, 그리고 본격적인 여행유튜버가 되기로 마음먹은 30대 초반까지의 일들이 담겨 있다.

지금의 10~20대라면 상상할 수도 없는 일들을 겪으며, 꿋꿋이 자신의 길을 걸어온 그녀의 삶을 살펴보다 보면, 어떤 내공이 느껴진다.

한참 사춘기 예민한 시기에 겪은 가정의 불운, 그리고 대학 입학을 위해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으로 생긴 학자금 대출(빚), 공식적으로 공인된 흙수저 등등. 도전하고 또 도전하지만 자꾸만 실패로 되돌아오는 일들은 어쩌면 좌절하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그래서였는지 뜻밖의 행운들이 찾아와 그녀를 일으켜 주었고, 그녀는 새로운 삶의 도전을 이어갈 수 있었다.

'노력하는 자에게 기회가 온다'라는 말이 있는데, 저자를 보면서 이 말의 진실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누군가는 최근 가장 각광받는 직업인 유튜버, SNS(블로거/인스타그램/틱톡/숏츠), 콘텐츠 크리에이터 등의 직업을 가진 사람들을 만만하고 쉽게 보는 사람들이 있는데, 잘 된 사람들을 보면 직업에 생각보다 진심임을 알 수 있다.

저자 또한 그렇다. 수많은 고민과 좌절, 그리고 다시 도전하는 시간들을 통해 지금의 자리에 이르게 된 것이다. 유명인들을 보면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 한다'라고 한번 유명세를 타면 그대로 여기저기 방송을 남발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오히려 그럴 때 한숨 돌리며 쉬는 저자를 보면서 나만의 속도와 방향을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깨닫는다.

때론 후회하거나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는 상황도 분명 있을 것이다. 여기에 더해 비교당하거나 좌절하거나, 우울해지는 상황도 발생할 것이다.

그럴 때는 잠시 쉬어가며 나만의 길을 다시 점검해 보자. 무엇이든 하나씩 도전하고 해내다 보면, 분명 언젠가 그것에 대한 보상(혹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녀가 그러했던 것처럼.

저자는 여행유튜버로 방향을 정하고 성장하는 과정에서 종종 우울감과 좌절감을 맛봤다. 하지만 몇몇의 도전들, 그리고 앞서 경험한 것들이 새로운 기회로 이어지며 어려운 순간들을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

유튜브 구독자와 함께 한 '두마게티 여행'도 그중 하나였는데, 한참 다운되어 있던 그때 독자들과 함께 한 여행 덕분에 다시 에너지를 얻었다고 전한다.

이후 그녀는 여행 유튜버로서 다시 힘을 장전하여, 여러 나라들을 여행하며 많은 이야기들을 우리에게 전해주었다.

부딪히고 넘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이제는 꿋꿋이 자기만의 길을 걸어가는 저자의 인생 여정을 살펴보며, 나 또한 일상을 여행처럼 살아가야지 다짐하게 된다. 헤매고 돌아가는 한이 있더라도 그 또한 삶의 하나라고 생각하다 보면 여행처럼 인생도 설레도 즐겁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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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 아저씨 - 한 지휘자가 옮긴 감동 있는 음악이야기
이상환 지음 / 바른북스 / 2021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음악이라는 범주를 가만히 살펴보면 가요만 존재하는 것이 아닌데, 우리는 생각보다 꽤 좁은 범주의 음악만 즐기고 사는 것이 아닌가 가끔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물론 자신의 취향, 직업 등 필요에 따라 클래식이나 트로트 등을 즐겨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특정 음악만 듣고 즐기는 것 또한 사실이기에 한편으로는 안타깝다는 생각도 든다.


그 원인에 대해 생각해 보면, 학창 시절 음악을 제대로 처음 접했던 시기에 너무 '공부'로서만 다가왔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그래서인지 오히려 다 큰 성인이 된 후에야 뒤늦게 책이나 영화, 드라마, 광고음악, 지인의 추천 등의 계기로 빠져드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는 생각도 해본다.



총 2부로 구성된 이 책은 음악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품고 있는 책으로, 한 지휘자가 세계 여러 나라의 음악과 악기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베토벤, 브람스, 베르디 등의 유명한 작곡가를 비롯해, 풍금, 가야금, 꽹과리, 바이올린, 피아노, 첼로, 피리 등의 악기, 그리고 클래식과 대중가요, 왈츠 등 분야를 막론하고 다양한 음악과 악기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이렇듯 음악의 범주 안에 있는 다양한 이야기를 마치 옛이야기 듣듯 읽다 보면 새삼 몰랐던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호기심을 자극해 나도 모르게 빠져들게 된다.


그리고 새삼 그 이야기에 등장하는 곡, 가사, 악기 등이 새삼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 때론 감동으로 다가오기도 하고, 어떨 때는 깊은 슬픔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지금과는 다른 시대적 배경이나 상황으로 인해 서글픈 애환이나 안타까움으로 다가오는 것도 있었는데, 그렇게 배경지식을 하나씩 쌓고 보니 더 많은 것들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아래는 몇 가지 인상 깊었던 에피소드를 추려 소개해 보려 한다. 나처럼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도 흥미로운 이야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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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는 모두의 마음을 하나로 만들어주는 힘이 있다. 하나의 숭고하고 감동적인 멜로디는 백 마디의 말보다 더 큰 감화력과 영향력을 발휘할 때도 있다. 어느 때는 그것에 내 의지와 관계없이 나의 마음까지도 내어주어야 할 때도 있고, 또 그 멜로디 하나가 서로 다른 마음들을 하나 되게도 한다.

(...)

이처럼 노래와 멜로디는 마음을 움직이는 중계자로 오래도록 우리와 함께 해왔다. 그래서 지금도 나라에서는 국가를 학교에서는 교과를 그리고 단체나 군대에서는 단가와 군가를 불러왔다.

(...)

그런 이유에서 글과 말은 사람의 지성을 설득하기 위함이지만, 음악은 인간의 원초적인 감성을 움직이는 능력이 있다고 말하지 않나 생각한다.

24~2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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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우리는 많은 매체를 통해 음악의 힘을 충분히 경험하고 있다. 영화를 볼 때, 드라마를 감상할 때, 게임을 할 때, 광고를 볼 때 등등 음악이 빠진다면 정말 적막한 상황이 연출될 것이다.


음악은 이렇듯 우리의 심신을 릴랙스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때론 심장을 뛰게 만드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음악 별거 있어?'싶지만, 실상 음소거로 처리하고 많은 일들을 실행해 보면 얼마나 시간이 안 가는지, 또 흥미가 떨어지는지 알게 될 것이다.


이처럼 음악은 우리의 원초적인 감성을 움직이며 우리가 미처 자각하지 못하는 사이, 물리적인 시간과 행동마저 다르게 느끼도록 만든다. 그리고 이러한 점이 바로 음악의 위대함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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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기의 추억'은 포스터가 작곡한 미국 노래로 그가 작곡한 '스와니 강'과 '금발의 제니'등과 함께 우리에게도 많이 알려진 곡이다.


포스터는 3백 곡에 가까운 가곡을 남겼다. 하지만 그는 37세 짧고도 짧은 인생을 살았다.

(...)

그의 많은 곡들 중에서 특히 '메기의 추억'은 노래 가사와 멜로디가 잔잔한 감동을 주는 명곡 중 하나이다. 이 곡은 미국 선교사를 통해 한국에 처음 들어온 후 우리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았는데, 가슴을 아프게 하는 작곡 배경이 곡에 대한 애잔한 감동을 더해주었다.

(...)

대학을 갓 졸업한 젊은 선생님 조지 존슨은 한 고등학교의 영어교사로 부임한다. 존슨은 그곳에서 학생이었던 메기 클락을 만나게 된다. 그런데 영어 선생님으로 온 존슨과 제자인 여학생 메기는 서로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그리고 메기가 학교를 졸업하면서 둘은 미래를 약속하며 행복한 결혼식을 올렸다.


그런데 아름다운 신혼의 단꿈이 채 가시기도 전에 그만 아내 메기에게 폐결핵이 찾아오고 만다.

(...)

결국 아내는 결혼 1년 만에 어린 갓난아이와 남편을 남겨두고 세상을 떠나고 만다. 사랑하던 아내를 잃은 존슨은 어린아이를 등에 업고 아내와 행복하게 살던 시골 고향 언덕에 그녀를 묻는다.


그토록 사랑하던 여제자였던 아내를 떠나보낸 존슨은 깊은 슬픔에 잠겼다. 그 후 그는 시인이 되었다. 그리고 죽은 아내를 생각하며 "메이플의 사랑"이라는 시집을 펴내게 되었고, 시집 첫머리에 아내 메기와의 추억이 담긴 시 한 편을 써넣었다.


그것은 지울 수 없는 메기와의 아름다운 추억을 그리워하며 지은 시였다.

63~6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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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기의 추억'이라는 곡을 들어보면 익숙한 멜로디와 가사에 저도 모르게 흥얼거리게 된다. 그런데 이 곡의 뒤 배경에 이렇듯 슬픈 사연이 숨어있을 줄은 몰랐다.


얼마나 사랑했으면 직업도 바꾸고 오롯이 아내만을 생각하며 시를 남기게 되었을까? 이 내용을 알고 다시 가사를 보니 왠지 모르게 그리움이 절절히 느껴지는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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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의 찬미'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윤심덕은 1900년대 초 활동했던 한국 최초의 소프라니스트였다. 하지만 그녀는 29살의 아주 짧은 인생을 살다 간 비운의 성악가였다.


그녀는 일제 강점기 당시 어려운 상황 가운데에서 스타 소프라니스트의 꿈을 안고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

(...)

그런데 윤심덕이 유학 중 순회공연차 고국을 방문했는데 공연 도중 처자식이 있는 한 유부남을 만나게 된다. 그 남자는 김우진이라는 극작가였는데, 둘은 빠르게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

멈춰야 하는 길인 것은 알았지만 그 둘의 관계는 이미 돌이키기에 너무 늦어버린 관계가 되어 있었다.


당시 보수적인 시대적 상황에 비추어 보아도 그들의 사랑을 이루기는 쉽지 않았다.

(...)

바로 그때 그녀는 '사의 찬미'라는 곡을 쓰게 된다. 그리고 그 노래로 이루지 못한 자신의 사랑을 비관하며 죽음의 비극을 알리는 메시지를 남기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라는 그녀가 쓴 '사의 찬미'의 노래 가사처럼, 그녀가 그토록 사랑하던 김우진과 함께 이 세상을 떠나가 버렸다.

(...)

이 곡은 원래 한 루마니아 음악가가 작곡한 '다뉴브강의 잔 물결'이라는 원곡에 윤심덕이 가사를 붙인 번안곡이었다.


윤심덕에 의해 작곡된 후 이 곡은 1926년 발매되어 대중음악의 효시 격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불렸다. 또 이 노래는 실연의 아픔을 이기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로하는 애창곡으로도 즐겨 불렸다.

173~17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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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진의 와이프 입장에서는 정말 억울한 상황인데, 시대적 배경과 가사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하면서 어떻게 보면 비운의 연인처럼 보이는 윤심덕과 김우진의 사랑 이야기인 '사의 찬미'는 어떤 입장에 서서 노래를 감상하는지에 따라 다르게 들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더불어 이런 스토리 덕에 오히려 사람들의 연심을 자극한 것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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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작은 여름이면 오케스트라를 데리고 그의 여름 별장에 가서 시간을 보내곤 했었다. 그런데 그해 여름에는 예년보다 별장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지쳐갔고 또 고향과 가족에 대한 깊은 향수가 생겨났다. 결국 악장 하이든에게 그 고충을 토로하게 이르렀다.


하이든은 그 난처한 상황으로 인해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그때 지혜로운 하이든은 후작의 뜻을 거스르지 않고 단원들의 고충을 알릴 수 있는 묘안을 찾아내게 된다. 바로 이 '고별'이라는 교향곡을 통해 후작에게 이별의 뜻을 알리기로 한 것이다.

(...)

연주회는 시작되었고 이제 마지막 악장에 다다랐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인지 갑자기 베이스 연주자가 하던 연주를 중단하고는 악기를 들고 자리를 뜨는 것이었다. 곧이어 다른 연주자들도 한 사람 한 사람씩 무거운 표정을 하고는 무대 뒤로 사라져갔다.

(...)

그사이 벌써 연주를 하던 단원들의 자리는 거의 비워졌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악장과 또 한 명의 연주자만이 무대에 남아 있게 되었다. 그들도 지친 표정으로 마지막까지 연주를 이어갔고 연주는 그렇게 마쳐졌다.

(...)

그때까지만 해도 그런 형식의 작품은 소개되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쉽게 이해할 수도 없는 장면이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그날 연주를 다 들은 후작은 하이든의 뜻을 헤어졌다고 한다. 그리고 다음 날로 지쳐 있던 단원들에게 그동안 늦어졌던 여름휴가를 보내게 되었다는 것이다.

(...)

하이든의 이 작품은 지금에 와서도 그 의미가 적지 않다. 그 이유는 행위를 접목한 이런 형식의 작품은 순수 절대음악에 있어서 음악과 퍼포먼스를 접목한 역사상 첫 작품으로 평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

놀랍게도 하이든은 그 오랜 옛적에 사회의 통념을 깨고 그런 시도를 했던 것이다. 아마도 하이든의 인격과 성품이 아니었다면 그 당시 어느 누구도 쉽게 생각하거나 시도할 수 없는 아이디어였을 것이다.

(...)

때로는 말보다 글이 더 필요할 때가 있다고 한다. 또 때로는 글이나 말보다 적절한 제스처가 더 큰 효과를 가져올 때도 있다.

178~18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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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이는 아이디어에 획기적인 퍼포먼스가 음악과 결합된 당시로서의 매우 파격적인 연주가 아니었나 싶다.


사실 중간에서 매우 난처했을 텐데, 하이든은 이것을 오히려 기회로 삼아 후작의 면을 살려주는 것은 물론 지쳐있던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의중까지도 전달할 수 있는 상황으로 만들었다.


단순히 오케스트라 단원들을 이끄는 악장으로써만 생활했다면 급작스러운 상황에 이런 아이디어는 절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깊이 있게 음악을 대하고 늘 고심했기에 나온 지혜가 아니었나 싶다.


이제서야 말이지만, 당시에는 저질러 놓고도 뒤에서는 얼마나 조마조마한 마음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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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들었으면 '그냥' 넘겼을 음악, 작곡가, 악기 소리를 이렇듯 흥미롭고 감동적인 이야기를 통해 알게 되니 새삼 다르게 다가온다.


이래서 '아는 것이 힘'이라고 하는가 보다. 덕분에 조금 멀게 느꼈던 음악들과도 꽤 가까워진 느낌이다. 어떤 음악을 들었을 때 이렇게 한번 콕 짚어진 것들은 새삼 반갑게 다가올 것만 같다.


그때 '엇! 이 음악은~ ' 하면서 마치 아는 사람인 것 마냥 반갑게 맞이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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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적의 단어들
이적 지음 / 김영사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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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적의 글들은 노래 가사를 비롯해 SNS를 통해 가끔 마주하기에 어떻게 보면 나에게 있어 그의 글은 믿고 보는 글이나 다름없다. 그의 감성과 똑 부러지는 글솜씨는 군더더기가 없고 명확한 메시지와 내용을 전달하기에 더 그렇다.


한동안 약속된 것들을 이행하느라 바빠 정작 읽고 싶은 것들을 가까이할 수 없었는데, 이제서야 한숨 돌릴 기회를 포착하고 모처럼 읽고 싶은 책 목록을 뒤져 이적의 책 한 권을 집어 든다.


이 책을 마주하고 처음 드는 생각은 '아! 금방 읽겠다'였는데, 그만큼 부담 없는 구성과 편집이 시선을 끌었다. 보통 책을 처음 마주하면 책 앞뒤 표지와 목차, 페이지들을 주르륵 넘기며 살펴보는 게 일련의 패턴인데, 그렇게 대강 마주한 책에서 '얼른 읽어보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총 5부로 구성된 이 책을 살펴보면, 인생의 넓이, 상상의 높이, 언어의 차이, 노래의 깊이, 자신의 길이를 주제로 하여 각 단어에 얽힌 이야기를 짧게 나열하는 형태로 담겨있다.


단어로 보자면, 인생, 상상, 언어 차이, 노래, 자신에 대한 이야기라고도 말할 수 있는데 길지 않은 글자 속에서 이런저런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


생각지 못한 발상, 날카로운 유머, 되돌아봐야 할 나 자신 등 짧게 남긴 메모 같은 글에서 여러 생각과 감정이 교차함을 느낀다. 익숙한 단어를 발견할 때는 내심 반가웠다가, 글을 읽고는 공감을 하기도 하고, 다른 의미에 혀를 내두르기도 했다.


어디서 끊어 읽어도 부담스럽지 않고, 언제 어디서 마주해도 헷갈릴 일이 없어 이 책은 출퇴근길이나 쉬는 시간, 점심시간을 활용해서 읽어봐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적의 수많은 단어들 중, 내 마음에 콕 하고 다가왔던 몇몇 단어들을 지금부터 소개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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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받은 인성 교육 이야기를 들려준다.


"종이에 사람을 그리세요. 그리고 그 사람에게 나쁜 말을 하며 종이를 구겨보세요. 이제 좋은 말을 하며 종이를 다시 펼치세요. 어때요. 구겨졌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죠? 그래요. 나쁜 말을 하고 나면 나중에 아무리 좋은 말을 해도 상처가 완전히 없어지지 않는 답니다. 그러니까 친구한테 나쁜 말을 하면 안되겠지요?

2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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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은 때로 아이들을 통해 삶을 배울 때가 있다. 그리고 그걸 캐치하는 순간 나도 모르게 부끄러움을 느끼게 된다.


타인에게 상처를 주면 안 된다는 내용은 이미 유치원 때부터 귀에 딱지가 앉도록 배운다. 때문에 말을 조심해야 하고, 타인에게 상처가 될 말들은 하지 않는 게 옳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하지만, 어른이 된 우리들은 때론 생각 없이, 또 어떨 때는 일부러 타인에게 상처 줄 말들을 서슴없이 내놓는다.


알고 했던 모르고 했던, 타인에게 상처가 될 말들은 되돌릴 수 없으니 오늘부터라도 자중하고 조심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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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폰


호젓한 산길을 걷고 있는데 맞은편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려온다. 아니나 다를까, 한 등산객 목에 걸린 휴대전화 스피커에서 음악이 쩌렁쩌렁 울리고 있다. 보기 싫은 건 고개를 돌리면 그만이지만 듣기 싫은 건 고개 돌려봐야 피할 방도가 없다. 혹시 이어폰이란 게 발명된 걸 아직 모르나 싶어 가방 속 내 것이라도 건네줄까 하다가, 이어폰 끼면 경적 소리를 못 들어 위험하다며 음악을 스피커 최고 볼륨으로 틀어놓고 달리던 자전거 라이더가 생각나, 그냥 살포시 내 귀에 꽂기로 한다. 이럴 때 이어폰은 귀마개이자 마스크. 유해한 것들로부터 내 몸은 내가 지킬 수밖에.

2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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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카롭게 다가왔던 일상에서 흔히 겪는 공감 가는 이야기 중 하나로, 혀를 차게 되는 내용이기도 했다.


요즘은 민폐 끼치는 이들은 오히려 활개를 치고 다니고, 오히려 정상 범주의 사람들이 피해 다니는 꼴이라니 어떻게 보면 어처구니없고, 어떻게 보면 참 아이러니하다는 생각도 든다.


개인적으로 저자의 말에 하나를 더 덧붙이고 싶다. '보기 싫은 건 고개를 돌리면 그만이지만 듣기 싫은 것, 맡기 싫은 냄새는 고개를 돌려봐야 피할 방도가 없다'라고.


그래서 내 가방은 언제나 빵빵하다. 꼭 봐야 할 때를 대비한 안경(평소에는 시력이 나빠도 안경을 쓰지 않는다), 귀에 꼽을 이어폰, 향을 없애기 위한 핸드크림이나 향수는 필수이자 기본 옵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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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스톱


(...)

전 국민이 열광하는 것처럼 보였던 어떤 것도 한 세대가 지나면 마이너로 사라져간다. 세상은 소리 없이 빠르게 변화한다.

4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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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명절이면 누구나 즐기던 고스톱, 그리고 가장 먼저 발명된 고스톱 게임을 언급하며 이제는 수그러들어 서서히 마이너로 사라져 가는 현상을 이야기한다. 얼마나 세상이 소리 없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지를 콕 짚어 이야기한다.


맞다! 어느 것도 영원한 것은 없다. 눈 깜짝할 새 많은 것들은 메이저에서 마이너로 사라져가고, 또 마이너에서 메이저로 변화해간다.


유행은 적응할 새도 없이 급속히 변하고 또 변한다. 뒤돌아 봐야 알아챌 만큼 우리는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살아가고 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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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사람


A 씨는 폭설이 내린 다음 날 남자친구와 거리를 걷다가, 길가에 놓인 아담한 눈사람을 사정없이 걷어차며 크게 웃는 남자친구를 보고, 결별을 결심했다. 이유를 구구절절 설명하진 않았다. 저 귀여운 눈사람을 아무렇지 않게 부술 수 있다는 게 놀라웠고, 진심으로 즐거워하는 모습이 소름 끼쳤으며, 뭐 이런 장난 가지고 그리 심각한 표정을 짓느냐는 듯 이죽거리는 눈빛이 역겨웠다. 눈사람을 파괴할 수 있다면 동물을 학대할 수 있고 마침내 폭력은 자신을 향할 거라는 공포도 입에 담지 않았다. 단지 둘의 사이가 더 깊어지기 전에 큰 눈이 와준 게 어쩌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뿐이었다.

9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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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특히 뉴스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데이트 폭력의 전조증상을 목격한 느낌이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라는 말처럼, 처음은 사소하고 작은 것들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렇기에 특히 여성이라면 일상의 이런 일들을 가벼이 넘기기 보다 신중하게 지켜보고 현명한 판단을 내려야 하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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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떡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어"라는 건 개떡같이 말한 쪽에서 염치없이 강요할 예기가 아니라, 감성과 지력을 총동원하여 마침내 상대가 원래 전하고자 했던 의미를 포착하는 일에 성공한 쪽에서 "개떡같이 말씀하셨어도 찰떡같이 알아들었어요." 라고 한숨을 돌리며 토로할 얘기가 아닐까. 어느 쪽 입장이든 개떡같이 말했다는 사실만은 변하지 않으니, 찰떡같이 말해주세요.

12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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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읽으며 세상이 참 거꾸로 돌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런 말조차 제대로 된 의미 파악을 하지 못하고 오히려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해석하는 상황이라니.


한때 문해력 논란이 이슈가 되었던 적이 있는데, 이런 해석조차 문해력 부족으로 봐야 하는 건지 아니면, 이기심으로 봐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타인이 자신에게 맞추기를 강요하고 원하기 보다, 자신이 먼저 타인이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먼저 배려해 보면 어떨까 한다.



=====

고수


고수를 좋아하게 된 건 서른 살부터였다. 그 전까지 고수를 먹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했다.

(...)

서른 살 때 보스턴의 한 베트남 식당에서, 속는 셈 치고 시도해 보라는 친구의 말에, '그래, 그래 외국까지 왔는데 눈 딱 감고 마지막으로 먹어보자'라는 생각으로 고수와 쌀국수를 입에 듬뿍 밀어 넣은 순간, 이 허브의 존재 이유가 온몸으로 납득이 되며 덜컥 사랑에 빠졌다.


어떤 맛은, 어떤 경험은 그러하다. 벼락같이 기호를 바꾸고 인생을 그 이전과 이후로 나눈다. 그러니 마음을 열어두자. 완성된 취향 따위는 없다. 우리는 끊임없이 바뀔 때 젊다.

19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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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는 아직 전자의 경험에 가깝다. 고수를 먹지 못한다. 그렇기에 '왜 고수를 먹지?'쪽에 더 가깝다.


하지만 어떤 맛이나 경험이 벼락같이 뇌를 강타하는 순간이 있다는 것은 알기에 마음은 열어두고 있는 편이다. 고수를 언젠가 저자처럼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내심 기대하며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젊다는 것은 이처럼 새로운 것을 서슴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이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있는 것이 아닐까 한다. 그런 의미에서 완성이라는 것이 삶에 과연 존재할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우리 마음은 늘 청춘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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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


싫은 사람과는 같이 일하지 않아도 먹고사는데 지장이 없는 상태.

21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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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다! 성공이 뭐 별거냐? 그저 싫은 사람과 함께 일하지 않아도 먹고사는데 지장이 없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우리 모두는 그것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음 편히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것! 이 말속에는 싫은 사람과 함께 하지 않아도 된다는 깊은 뜻이 숨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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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적의 생애 첫 산문집인 이 책은 고루하지 않아서 좋다. 조잡한 단어와 말들로 장황하게 늘어놓기 보다 명확하고 분명한 의도를 간략하고 명확하게 전달함으로써 쿡하고 웃어넘기거나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는 등 즉각적인 반응을 내보일 수 있어 좋다.


딥하지 않은 상상력을 발휘할 수도 있고, 나 자신과 삶, 언어의 또 다른 차이, 저자가 직접 쓴 가사의 비하인드까지 함께 만나볼 수 있어 지루할 틈이 없다.


순서 상관없이 원하는 주제를 먼저 만나보아도 되고, 멈춰 서고 싶을 때는 언제고 멈춰서 머물러도 된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읽어나가되, 그의 시선이나 생각 속에 깃든 것들을 하나하나 짚어나가는 재미가 있어 결코 독서하는 시간이 헛되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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