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방랑
후지와라 신야 지음, 이윤정 옮김 / 작가정신 / 2009년 7월
평점 :
품절


"삶의 진정성을 찾고자 떠난 천일 간의 인도 여행 기록을 담고 있는 책!"


아주 오래전부터 여행지로서의 인도에 대한 의견을 들어보면, 이상하게 호불호가 크게 갈리는 나라 중 하나였다. 꼭 한번 가봐야 하는 나라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고, 절대 가서는 안 되는 나라라는 의견이 팽팽해서 어느 쪽도 편을 들어주기 어려웠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였는지 선뜻 여행지로 인도를 가보겠다는 용기를 내지는 못했는데, 그럼에도 인도의 풍경을 담은 사진이나 영상을 볼 때면 마음속으로는 내심 한 번쯤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총 2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1960년대 인도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책으로, 여행책이라기 보다 다큐멘터리를 보는 느낌이 더 강하게 든다.

천 일, 약 3달간 인도에 머무르며 현지인들 속에서 먹고, 자고, 사진을 찍고, 그들과 일상을 나누며 보낸 이야기는 여느 인도 여행이야기와는 느낌이 완전히 다르다.

특히 갠지스강을 중심으로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이야기는 숙연해짐과 동시에 여러 생각이 교차하는 지점이다. 한때는 많은 사람들에게 실질적&상징적으로 삶과 생명의 물줄기였던 그곳이 이제는 그저 상징으로만 남아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씁쓸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인도인들이 머무르는 아주 가까이에서 그들의 삶과 인도 그 자체를 담아내려 애쓴 저자의 인도 이야기는 인위적이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풍경, 삶, 대지가 엿보인다.

1960년 일본은 고도성장을 이루던 시기다. 그런 때 저자는 모든 것을 버리고 홀연히 인도로 떠나게 된다. 그렇기에 어쩌면 더 비교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스물네 살의 청년 후지와라는 1960년대 말, 고도성장이라는 괴물에 사로잡혀 죽음조차 관리되어가는 사회 시스템이 주는 폐색감을 떨치고 삶의 진정성을 묻고자 인도로 떠나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빛과 어둠, 흐름과 멈춤, 탄생과 소멸, 혼돈, 그리고 이 우주의 무수한 '허'의 순간과 공간을 마주하게 된다.

그러면서 자신이 여태껏 존재했고, 배워왔던 세상의 허위를 깨닫게 되면서 새삼 당시 일본 사람들은 잃어버린 '열'을 발견하게 된다.

여기서 열은 다양한 의미로 추측할 수 있는데, 열의, 열정, 최선을 다함, 삶에 대한 의지, 끈끈함, 협동, 굳건한 믿음 등등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물질적으로는 빈곤할지언정 자신만의 '열'을 잃지 않고 사는 인도 사람들의 모습에서 저자는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잃어버린 존재의 이유 그 자체를 알게 된 것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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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인도방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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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방랑>은 저자가 스물네 살 나이에 처음 그 열구 밑 대륙에서 노닐던 때의 기록이다. 처음 그 대지를 밟은 1960년대 말, 일본은 고도성장이 한창이었다.

저자는 대학을 버리고 모든 경력을 버리고 인도에 갔다. 이 나라는 빈곤했다. 그러나 그곳에서 저자가 본 것은 물질적 빈곤과 더불어 지금 우리가 잃어가고 있는 열이었다고 전한다.

이 지상에 있는 생명의 존재 장소를 분명하게 보았고, 아울러 내 생명의 존재 장소도 분명하게 보았다고 전하며, 그것은 저자의 이십 대에 있어서 하나의 혁명이었다고 말한다.

인간 집단의 최소 단위인 가족까지도 붕괴 조짐을 보이는 오늘날, 저자는 때때로 인도의 지상에 꿈틀대는 온갖 열들에 대해 생각한다며, <인도방랑>은 그 열에 들떴던 내 젊은 날의 부끄러운 첫 기록이라 전하고 있다.

이 책을 통해 저자는 젊은이들에게 자신을 얽어맨 굴레를 벗어던지고 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라는 말을 전하고 싶다고 말한다. 그러면 전혀 다른 세계가 눈앞에 펼쳐질 것이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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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에 남았던 문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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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하지 않는다는 건, 정보를 일절 들이지 않는 거였어요.
(...)
정보가 많을수록 안심은 커지지만 실상은 멀어지지요.
(...)
요즘 같은 정보화 사회의 여행은 이 병이 무섭도록 깊습니다. 오히려 실상을 보는 게 두려운 건지. 실상이 자신을 침범하지 않도록 정보로 보호막을 치는 건지도 모르지요.
3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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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인도 여행을 떠남에 있어 특별히 정보를 들이지 않았다고 말한다. 이 때문인지 그의 책을 살펴보면 그날 날것 그대로의 인도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우리는 보통 여행을 떠날 때 이런저런 정보 수집은 물론 사전에 시뮬레이션까지 하며 극강의 정보를 끌어모으기 바쁘다.

여태껏 이렇듯 정보를 모으는 이유에 대해 낯선 곳에서 당할 조난이나 위협으로부터 나를 보호하기 위함이라고만 생각해 왔는데, 이 책을 읽고 보니 한편으로는 실상이 나 자신을 침범하지 않도록 정보로 보호막을 친 것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아니 어떤 한편으로는 실상을 보는 게 두려워서일지도 모르겠다. 적나라의 인도의 모습을 읽으며, 현지인들처럼 머물 자신이 없는 것을 보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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갠지스....
무릇 갠지스에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제아무리 대단하고 제아무리 하찮은 것이라도 모두 흘러간다.

가령 삼백초 잎사귀의 구역질 나는 고약한 냄새부터 재스민 꽃의 천국에라도 오를 것만 같은 냄새까지.
갠지스에 흐르지 않는 것이란 없다.

가령 사용법을 몰라 내다 버린 전기세탁기부터 아직 전기가 없던 시대에 죽은 수만의 인간 뼈까지... 도무지 갠지스에 흐르지 않는 것이란 없다.

그리고 강바닥에서는 수만의 죽은 자의 뼈가 꿈실꿈실, 꿈실꿈실, 꿈실꿈실, 꿈실꿈실 바다를 향해 흘러가고 있는가 하면, 강 표면에서는 1910년대에 처음 물에 띄워진 낡아빠진 고물선이 1972년 현재 먹고 먹히며 살아가는 인간들을 꿈실, 꿈실, 꿈실, 꿈실 실어 나르고 있다.
(...)
갠지스는.... 가령 2001년이 되어 어디 먼 나라에서 흰 까마귀가 새카만 사람 아기를 낳는다고 해도 역시 흐르고 있을 것이다.
206~20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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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갠지스강은 생명과 정화의 상징과도 같은 곳이었다. 인도인들에게는 특히 종교의 의미까지 더해져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지점이기도 했다.

그런 이유로 세월이 한참 흐른 현재까지도 갠지스강은 인도인들에게 있어 절대적인 공간이자 신성한 공간이다. 그러나 현실적이고 객관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이제는 수질이 악화된 최악의 강 중 하나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여전히 사람들은 그곳에서 의식을 치르고, 또 목욕을 하고 먹기도 하지만, 강바닥에는 죽은 자의 뼈가 떠내려가고, 또 시체를 담그기도 하며, 때론 사체를 떠내려 보내기도 하는 곳이다.

갠지스강은 과거에도, 현재도 흐르고 있다. 아마 미래에도 흐르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새 회복 불능의 상태가 되어 그저 흐르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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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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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다 보면 인도의 아주 깊숙한 내면까지 자세히 살펴볼 수 있는데, 이를테면 화장실을 이용하는 것과 같은 아주 사적인 내용부터 사후의 의식을 치르는 내용처럼 민감하게 생각할 부분까지 말이다.

특히 갠지스강을 중심으로 써 내려간 글과 사진들에는 들개들에 물어뜯기는 사체, 시신을 태우는 장면, 그리고 장례 의식을 치르는 어린아이의 모습들이 담겨있어 조금 불편하게 다가올 수도 있다.

하지만 매일 행해지고 있는 현지의 모습이기에, 어쩌면 저자에게 있어서는 절대 빠뜨릴 수 없는 장면이었으리라 생각된다.

매일을 수없이 맨발로 걸어 다니며 하루를 열심히 사는 이들 너머, 땅거미가 지고 고요한 풍경을 맞닥뜨릴 때면 저자는 많은 생각에 젖어 들었던 것 같다.

어쩌면 태어나고 자란 당시의 일본이 떠오르며, 오로지 경제부흥, 돈, 풍요만 생각하는 삶이 일순 허무하게 느껴지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한편으로는 인도 사람들을 보며, 가난하고 가진 것 없지만 그냥 하루를 온전히 살아내고, 열심히 땀 흘리며 살아가는 것에 대한 의미를 다시 되새겨 보는 시간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됐다.

스물넷의 젊은 청춘에 모든 것을 내던지고 아무 정보도 없이 떠돌았던 인도 여행은 당시 저자에게 있어서는 충격이자 새로움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덕분에 인도 여행이 약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우리도 살다 보면, 이처럼 삶의 존재 이유는 물론 삶의 의미를 잃어버리는 때가 있다. 그럴 때 이 책에서 말하는 '열'을 한 번씩 떠올려 보면 어떨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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