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크의 별이 빛나는 밤 - 고독 속 절규마저 빛나는 순간
이미경 지음 / 더블북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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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about 뭉크!"


'절규'의 화가로 유명한 뭉크의 탄생과 예술, 죽음까지 모두 만나볼 수 있는 이 책 덕분에 뭉크의 삶과 그의 작품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보통 미술을 어렵다고들 많이 이야기하는데, 그 이유는 예술을 즐기는 방법보다 '미술사'에 더 주목하여 가르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미술사보다 뭉크라는 한 사람의 개인에 집중해서 이야기를 펼쳐 나가면서 보다 즐겁게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특히 뭉크는 어릴 적부터 항상 그림자처럼 우울과 불안, 외로움 등의 감정들이 작품에 영감을 주며 많은 영향을 끼쳤는데, 때문에 그의 내면에 품고 있는 이런 감정과 그런 감정에 영향을 끼친 삶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제대로 그의 작품을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자칫 잘못 받아들이거나 오해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는데, 이를테면 그의 작품으로 유명한 <절규> 또한 그렇다. 대충 그림만 보고서는 절규하는 대상이 얼굴을 부여잡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실상 작가가 의도한 것은 사람이 아닌 '자연'의 절규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 나서 보면, 작품을 보는 재미가 한층 격상되고, 또 새로운 눈이 생기게 되는데 은근히 쏠쏠한 재미가 있다.


총 5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뭉크의 삶 전반은 물론, 작품에 얽힌 이야기에 이어, 사후 그가 머물렀던 집 이야기까지 뭉크의 전 생이 담겨 있는 책이다.

때문에 띄엄띄엄 알고 있던 뭉크에 대한 지식을 차곡차곡 채워나갈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몸이 약해 태어난 순간부터 이미 죽음을 가까이에 두고 있었던 뭉크는 어린 시절 어머니의 죽음을 시작으로 줄줄이 가족들의 죽음을 겪게 된다.

이로 인해 정서적, 육체적으로 고달픈 삶을 살아가야 했던 뭉크는 이를 예술로써 승화하며 삶을 이어 나간다. 때문에 그의 작품에 있어 영감의 원천은 모두 그를 둘러싼 사람들(가족, 연인, 지인들)과 그의 삶에 있었다.

이 책에는 그러한 뭉크의 삶과 작품을 둘러싼 이야기들을 가득 만나볼 수 있는데, 이러한 설명 덕분에 나도 모르게 작품을 더 자세히 감상하게 되는 매직을 경험하게 된다.

참고하면 좋을 그의 유년 시절과 그리고 그의 작품에 얽힌 이야기를 위주로 정리하여 구성해 보았다. 만약 아직 뭉크에 대해서 잘 모르거나 뭉크가 궁금하다면 이 글을 통해 한층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감정을 표출하는 '표현주의' 화가로 유명한 뭉크의 삶과 작품들에 대한 자료는 여타 예술가에 비해 많은 기록으로 남겨져 있다. 이는 기록광이었던 뭉크 자신이 직접 남긴 일기, 메모, 스케치, 편지 등을 통해 남긴 덕분이다.

사망 직전의 삶에 대해서는 막냇동생 잉게르가 뭉크의 프라이버시를 지켜주기 위해 일부 처분하여 자세히 알 수 없지만, 그 외의 것들은 직접 목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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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크의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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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인간의 감정을 그리는 일에 흥미를 느낀 뭉크는 예술에 씌워진 규칙을 걷어내면 내면으로부터 가장 본질적인 것을 포착해 낼 수 있다고 믿었다.

뭉크의 가족, 연인, 지인 등과 그가 직접 경험한 일들은 뭉크 예술의 모티브이자 출발점이다. 따라서 뭉크가 그린 세상에는 인간관계에서 오는 불안, 공포, 환희, 두려움, 질투, 고독 등 미묘한 감정의 변화가 담겨 있다.

바로 이 점이 미술사에서 뭉크를 인간의 내밀한 감정을 그리기 시작한 화가로 평가하는 이유이며 영혼의 해부학자라 부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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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크의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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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크의 가족은 아버지, 어머니, 소피에, 뭉크, 안드레아스, 라우라, 잉게르 다섯식구와 그리고 카렌 이모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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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크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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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3년 12월 둘째로 태어난 뭉크. 뭉크 가족의 비극은 예술적 감성이 풍부했던 어머니 라우라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됐다. 라우라는 1868년 12월 서른다섯 살에 다섯 남매를 남겨두고 죽음을 맞았다.

어린 나이에 경험한 어머니의 죽음은 평생 뭉크를 괴롭혔다. 뭉크의 어머니가 사망한 후 카렌 이모가 어린 조카들을 돌보기 위해 같이 살게 되었는데, 경제적 어려움은 늘 뭉크 가족을 힘들게 했다.

어머니를 잃은 어린 뭉크의 무의식 속에는 주변 사람들이 언제든 나를 떠날 수 있다는 강박이 자리 잡았고, 강박은 불필요한 집착을 만들었으며 집착은 주변 사람들을 지치게 했다. 이런 상황은 뭉크의 생애 내내 반복되었다.

한편 아버지의 외로움은 슬픔을 넘어 광기로 변했고 아버지는 시간이 갈수록 종교에 의지하고 병적으로 집착했다. 그의 종교에 대한 강박적 신념과 정서적 학대는 아이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뭉크의 어린 시절은 어머니의 죽음과 아버지의 종교적 엄격함, 불완전한 가정 환경에 의해 지배되었다.

뭉크는 태어날 때부터 몸이 약했던 탓에 생후 4개월이 되어서야 세례를 받았다. 그는 어려서부터 기관지염이나 류머티스성 관절염 등 병치레가 잦아 학교보다는 집에서 지낸 날이 더 많았다. 그러나 가정교사를 둘 형편은 못 되어 뭉크는 한 살 터울의 누나 소피에와 함께 많은 시간을 보냈다.

병약했던 뭉크는 자신의 주변을 맴도는 죽음을 두려워했다. 열세 살 무렵 뭉크에게 어지럼증과 함께 온몸에 열이 나면서 경련 증상까지 나타났는데, 뭉크는 그날 밤 고열로 인한 환각 증상을 겪었다.

죽음 직전까지 갔던 그날의 기억을 뭉크는 도저히 떨쳐낼 수 없었다. 뭉크가 앓은 병은 결핵으로 밤새 입으로 피를 쏟았다. 그러나 카렌 이모와 소피에의 극진한 간호와 기도 덕분인지 뭉크는 그날 밤 고비를 간신히 넘길 수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누나 소피에가 엄마와 뭉크가 앓았던 그 병을 앓게 된다. 그때는 그 병이 정확히 무엇인지 아무도 몰랐는데, 결핵은 1882년이 되어서야 학계에서 알려진 병명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입으로 피를 쏟는 그 병에 걸리면 죽을 수밖에 없는 병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어린 소피에는 의자에 앉아 조용히 죽음을 맞았다. 뭉크와 달리 소피에는 병을 견디지 못하고 열다섯 살에 숨을 거두고 말았다. 뭉크 가족은 그렇게 또 한 번 비극을 맞았다.

누나의 죽음은 사춘기를 맞은 뭉크에게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왔다. 열네 살 뭉크의 정서와 감정은 더욱더 불안정해졌다. 그는 언제고 죽을 수 있다는 공포에 사로잡혔고 두려움과 불안감 그리고 죄의식에 휩싸였다.

소년 뭉크는 자신의 병이 소피에에게 전염되었다고 자책했으며 자신을 대신해 누나가 죽은 것이라는 극심한 죄의식을 느꼈다. 이 마음의 부담감은 9년 후 <아픈 아이>로 탄생했다.

그림 속 소피에는 생명이 꺼져가는 순간에도 카렌 이모를 위로하고 있는데, 떠나는 자가 남겨진 자를 위로하는 모습이라 더 슬프다.

뭉크는 1886년부터 1927년까지 40여 년에 걸쳐 유화로 여섯 점의 <아픈 아이>를 제작했다. 이 작품은 그가 가장 많이 반복한 모티브 가운데 하나다.

뭉크는 한 살 터울의 누나가 더는 자신의 곁에 있지 않다는 상실감과 자신만 살아남았다는 죄책감 때문에 죽은 누이를 그리는 일에 병적으로 집착했다.

그렇게 엄마와 누나의 죽음을 지켜본 뭉크는 죽음에서 오히려 삶을 찾았다.

뭉크는 <아픈 아이>를 1886년 10월 《추계전》에 출품했다. 스승 크로그의 호평과 달리 이 작품은 노르웨이 미술계로부터 혹평을 받았다.

비평가들은 특히 주제와 테크닉이 낯설고 난해하다고 평가했다. 그들은 <아픈 아이>는 주제가 기분 나쁘고 손도 하나 제대로 그리지 못할 정도로 테크닉이 미숙하다고 비웃었다. 가장 비난받은 요소는 눈물을 흘린 것처럼 얼룩진 표면이었다. 사실 지저분하게 흘러내린 얼룩은 뭉크가 흐르는 눈물을 표현한 것이다.

소피에가 사망하고 웃음기가 사라진 뭉크의 집은 적막하기 그지없었다. 집에서 대화가 사라졌다. 특히 사춘기에 접어든 장남 뭉크와 아버지의 관계는 늘 평행선을 달렸다.

아버지는 아이들에게 종교에 헌신적으로 매달리는 순종적인 삶을 강요했다. 그러나 뭉크는 아버지처럼 종교에 집착하는 삶을 원치 않았다. 게다가 그렇게 빌었건만 신은 야속하게도 의지하던 누나 소피에를 데려갔다. 뭉크는 더 이상 종교에 의지하지 않았다.

뭉크는 아버지와 진로와 진학 문제로 사사건건 부딪쳤다. 그러다 아버지의 뜻대로 공업학교에 진학하지만 잦은 병치레로 얼마 다니지도 못한 채 자퇴하게 된다.

그 후로 뭉크는 집에서 드로잉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마침내 뭉크는 화가가 되기로 결정하게 된다. 1880년 뭉크는 왕립 미술 디자인 학교에 입학했다. 그곳에서 뭉크는 실물 모델 드로잉을 접하며 자신의 재능이 깨어남을 느꼈다.

이 시기 뭉크는 자화상을 세 점 선보였다. 이 자화상들에는 예술가로 첫발을 내딛는 뭉크의 불안함과 긴장이 서려 있다. 이 자화상을 시작으로 그는 평생 80여 점에 달하는 자화상을 그렸다. 1882~1883년에 그려진 <자화상>은 프랑스 인상주의의 영향을 받은 작품이다.

뭉크는 인상주의의 빛의 효과를 실험하면서 동시에 아카데미 화풍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그는 더 이상 화면을 매끈하게 다듬는 노력을 들이지 않았다. 대신 화면에서 불필요한 부분을 제거해 점점 본질만 남기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뭉크가 처음으로 서명한 작품인 1886년의 <자화상>은 화가로서 뭉크의 자의식이 자리 잡은 그림이다. 3년 전의 자화상보다 표정이 부드러워졌으며 몸에 대한 묘사는 사라졌다. 더 이상 눈썹이나 머리카락 등 세부 묘사에 공을 들이지 않고 본질만 남기려는 시도가 돋보인다.

뭉크는 1889년 여름 노르웨이 국비 장학금을 받아 프랑스에서 공부할 수 있게 되었다. 아버지도 이 소식을 듣고 무척 자랑스러워했다. 그러나 겉으로 내색하지는 않았다.

뭉크가 프랑스행 배를 타고 떠나는 날 그를 배웅하기 위해 항구에 아버지가 나왔는데 그날 백발의 구부정한 노인이 손을 흔드는 모습이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땐 그 사실을 서로 몰랐다.

뭉크의 아버지는 뭉크가 화가로서 막 기지개를 켤 무렵 사망했다. 당시 뭉크는 노르웨이 국비 장학금을 받아 프랑스에서 유학 중이었다.

어느 날 뭉크는 자신에게 온 편지를 읽고 순간 얼어버린다. 아버지와 살가운 사이가 아니었지만 그는 엄마와 누나에 이어 또 한 번의 큰 상실감을 느껴야만 했다. 뭉크는 이 상실감을 <생 클루의 밤>으로 표현했다.

창가에 앉은 노인은 생각에 잠겨 있다. 창틀의 십자가 모양과 바닥에 비친 십자가는 광적으로 신앙에 집착한 뭉크의 아버지를 연상시킨다.

어두운 방 안에 외롭게 앉아 있는 남성을 그린 <생 클루의 밤>은 종교적 신념에 일생을 바친 아버지를 향한 헌사다.

이때 뭉크는 아버지의 죽음을 생각하며 삶, 예술, 살아 움직이는 것에 관심을 갖게 되는데, 뭉크의 이러한 심경 변화는 1890년 '생 클루 선언'에 잘 나타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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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내가 본 것을 그대로 그릴 것이다.
나는 책을 읽는 사람들이나 뜨개질하는 여성들이 있는 그저 그런 실내 풍경을 더 이상 그리지 않을 것이다.
내가 그리는 사람들은 살아 있는 생생한 사람들이 될 것이다.
나는 살아 숨 쉬고, 느끼고, 아파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릴 것이다.
8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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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 클루 선언'은 사랑하고 괴로워하는 인간의 살아 있는 감정을 그리겠다는 뭉크의 다짐이다. 뭉크는 1892년 이후 더는 자연주의 인상주의 화풍의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이런 '생 클루 선언'으로 뭉크는 새로운 예술의 방향을 선언했다.

아버지의 죽음을 알게 된 그날 밤, 뭉크는 아버지와의 관계에 대해 생각했다. 그는 자신을 이해해 주지 않고 일방적인 순종만을 강요했던 아버지가 여전히 몹시 미웠다.

그러나 아버지에 대한 원망은 점점 자신을 향한 원망으로 바뀌었다. '먼저 사랑한다고 손을 내밀걸. 조금만 더 다정하게 대할걸. 한 번만이라도 따뜻하게 안아줄걸.' 뭉크는 아버지에게 걱정만 안겨주었던 자신이 미웠다. 아버지와의 불화를 부추긴 예게르도 미웠다.

아버지가 더 이상 이 세상에 없다는 사실은 뭉크 가슴 한편에 커다란 구멍을 만들었다. 아버지의 죽음은 생각보다 많이 뭉크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파리에서의 생활은 엉망이 되었고 허약한 체질 때문에 늘 달고 다니는 감기와 몸살도 더욱 심해져 쉬이 낫지 않았다.

거기다 무절제한 술과 담배, 매춘행위로 그의 삶은 완전히 망가졌다. 뭉크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힘들어져 대인기피증까지 생겼다.

이런 뭉크에게 동생 라우라에 관한 절망적인 소식까지 전해졌다. 뭉크는 점점 광기의 씨앗이 자라는 라우라를 보며 자기 속에서도 광기가 자라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훗날 이 광기가 예술가로서의 삶에는 도움이 되었지만 개인의 삶은 지옥으로 만들었다고 술회했다.

뭉크는 당시의 절망적인 상황을 낙서로 끄적였다.

죽음의 공포에 시달리는 자신이나 상태가 점점 더 심해지는 라우라를 떠올리면 모두가 죽은 나무의 열매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는데, 그는 이 불길한 나무의 수액을 먹고 자라는 자신의 몸에 점점 더 죽음의 기운이 퍼지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뭉크는 죽음의 나무에 가족의 얼굴들을 걸쳐놓았다. <가계도>에는 뭉크의 아버지, 어머니, 누나 소피에 말고도 뭉크의 마음을 아프게 한 라우라가 있었다.

뭉크는 자신이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늘 삶을 비관적으로 다뤘다. 그러나 이 <가계도>에는 삶에 대한 간절함도 담겨 있다. 바로 창틀로 묘사된 십자가다.

그 창틀 십자가 뒤에서 누군가 조용히 기도를 드리고 있다. 이것은 신과 멀어지려 했던 뭉크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신에게 기도한 단 하나의 기도 그림이다. 뭉크는 아버지에게 간절한 기도를 보냈다.

지독한 뭉크 가족의 비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6년 후, 동생 안드레아스가 서른 살 젊은 나이게 폐렴으로 급작스럽게 사망한 것이다.

안드레아스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의사가 되었고, 덕분에 뭉크 가족 중 유일하게 안정적인 수입을 가진 사람이었다. 평소 매우 건강한 그였기에 가족들은 그의 죽음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게다가 안드레아스는 한창 신혼 생활을 즐기던 무렵이었고, 아내의 배 속에는 아이가 자라나고 있었다. 그는 1895년 4월에 결혼했고, 같은 해 11월에 폐렴으로 사망했다.

아버지에 이어 안드레아스마저 세상을 떠나자 뭉크는 실질적인 가장의 역할을 떠맡게 되었다. 이 시기에 제작된 뭉크의 자화상을 보면 그 무게감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뭉크는 석판화로 삶을 뚫어지게 응시하는 자화상을 제작했다. 이 자화상은 뭉크의 얼굴이 검은 배경에 그려져 있는데, 특이하게도 위에는 묘비석처럼 뭉크의 이름과 연도를, 아래에는 팔뼈를 그려 넣었다.

<팔뼈가 있는 자화상>속 뭉크는 삶에 대한 의지를 잃은 채 죽음에 더 가까운 모습이다. 뭉크는 80여 점에 이르는 많은 자화상을 남겼는데, 그 가운데 이 작품은 가장 무거운 표정의 자화상이다.

뭉크는 이즈음 생계를 위해 판화를 대중적 판매 전략으로 삼았다. 그는 판화라는 매체를 실험하고 기존에 없던 판화기법을 만들어냈다. 예를 들어 유화본에는 없는 요소들을 판화에 새겨 넣는 것은 뭉크가 발전시킨 판화 기법이다. 이런 이유로 뭉크는 판화사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뭉크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자살 충동에 시달렸다. 또 동시에 죽음에 대한 공포도 그를 괴롭혔다. 거기에 가장의 역할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자 삶의 무게가 더욱 버거워졌다.

뭉크는 나이가 서른이 넘었지만 이뤄놓은 것이 없다는 생가기 들었다. 또 가장으로서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그는 거대한 작품을 의뢰받을 만큼 예술가로서 성공했지만, 가장으로서 재정 상황은 그렇지 못했다.

시간이 갈수록 라우라는 점점 가족들의 짐이 되었다. 다혈질인 기질 때문에 또래 아이들은 물론이고 가족들과의 관계에도 어려움을 겪었다. 그녀는 감정 기복이 심했고 누구와도 정상적인 의사소통이 불가능했다. 라우라는 질책 받는 것을 참지 못했고 분노를 조절하지 못했다.

또 거짓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 가족들이 조금이라도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으면 자해로 시선을 끌었다. 그녀는 길거리에서 자기도 하고 망상에 사로잡힌 행동으로 가족들을 곤란하게 했다.

사실 이런 행동들은 전형적인 조현병 증상이다. 그러나 19세기 사람들은 이 증상을 광기에서 비롯된 것으로 여겼다. 사람들은 뭉크의 아버지에 이어 라우라까지 뭉크 집안에 정신병이 깃들었다고 수군거렸다.

라우라의 상태는 아버지가 사망한 이후 더욱 급격히 나빠졌다. 아버지가 아이들이 말썽을 부릴 때마다 "엄마가 하늘에서 지켜보신다"라며 쏟아낸 엄한 질책은 라우라의 정신을 잠식했다.

뭉크는 라우라에 대한 책임감을 홀로 감당해야 했다. 뭉크는 라우라를 끝까지 책임 지리라 속으로 다짐했다. 그러나 야속하게도 라우라의 상태는 끝내 나아지지 않았다.

라우라는 29세의 나이에 정신질환을 판정받았다. 그 후 정신 병원에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고, 시간이 갈수록 가족들의 심리적, 경제적 부담감을 가중되었다.

<라우라>를 보면 그녀는 한곳을 응시한 채 눈을 깜빡이지 않는다. 이런 자세는 뭉크가 주문한 것이 아니다. 평소 가만히 한곳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라우라를 그렸을 뿐이다. 그녀의 초상화에서는 10대 소녀의 밝은 모습을 전혀 찾을 수 없다.

한 살 터울의 라우라와 잉게르 자매는 라우라의 정신질환 때문에 잘 지내지 못했다. <여름 햇살 아래 라우라와 잉게르>를 보면 두 사람은 한여름 햇살 아래서 눈길조차 마주치지 않고 따로 서 있다.

차가운 푸른색 옷을 입은 두 사람을 통해 냉랭한 뭉크 가족의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다. 특히 감정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모자를 깊게 눌러쓴 라우라의 불안한 모습에서 이후 정신질환의 판명을 예상할 수 있다.

30대의 라우라를 그린 작품 <멜랑콜리, 라우라>에서 라우라는 초점 없이 앞을 보며 가만히 앉아 있다.

라우라 앞에 있는 빨간 탁자는 뭉크가 당시 의학잡지에서 본 신경증을 앓는 뇌의 단면도를 그린 것이다. 이것은 어떻게든 동생의 병을 고쳐주고 싶은 뭉크의 마음을 담은 것이다.

<멜랑콜리, 라우라>는 의학잡지까지 읽어가며 동생을 이해하고 고쳐보려 했던 뭉크의 간절함이 엿보여 슬픈 초상화다.

라우라는 자신만의 어두운 세계 속에 갇혀 살다 1926년 사망하고 말았다. 라우라는 인생의 반을 정신병원에서 보냈다.

뭉크가 예술가로서 명성을 얻고 작품도 잘 팔리게 되자 가장 먼저 한 일은 1892년 라우라를 위해 병원에 독방을 마련해 준 일이다. 비록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뭉크는 라우라를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켰다.

안드레아스를 떠나보낸 후 뭉크가 의지할 수 있는 가족은 이모 카렌과 막냇동생 잉게르뿐이었다. 그들은 자신보다 서로를 먼저 생각했으며 몇 푼 안 되는 돈도 너무 많이 보냈다며 매번 감사해 하고 미안해했다. 남겨진 가족들은 서로를 아끼고 보살펴주었다. 이들의 유대감은 누구보다도 강력하고 끈끈했다.

카렌 이모는 결핵으로 젊은 나이에 죽은 언니와 달리 1931년 92세까지 살다 세상을 떠났다. 그녀는 조카들을 정성껏 키웠으며 뭉크 가문의 안주인으로서 검소하고 소박하게 살림을 유지했다. 카렌 이모는 뭉크의 재능을 가장 먼저 알아본 사람이었다.

카렌 이모는 뭉크와 아버지 사이를 조율하기도 했고 아픈 라우라를 돌봤다. 그녀가 없었다면 뭉크 가족의 삶은 더 삭막하고 막막했을 것이 분명하다. 카렌 이모는 때로는 조력자로 때로는 조언자로 뭉크 가족을 돌봤다.

뭉크는 잉게르를 모델로 많은 그림을 그렸다. 처음 미술 교육을 받았을 때도 사실적이고 전통적인 아카데미 테크닉으로 초상화 <잉게르>를 제작했다.

잉게르를 그린 또 다른 그림은 <여름밤, 해변의 잉게르>다. 이 그림이 그려진 시각은 오후 10시 무렵으로, 잉게르의 흰색드레스는 푸른 이끼가 낀 돌과 이제 해가 지고 있는 바다의 색과 대조를 이룬다.

뭉크는 화강암 바위로 가득 찬 오스고르스트란 해변의 풍경을 외로움, 우울, 불안을 표현하는 배경으로 삼았다. 이곳은 뭉크의 인생에서 아주 중요한 곳이다. 이곳에서 첫사랑을 만났고 생애 처음 마련한 집도 이 근처였다.

뭉크는 <검정과 바이올렛의 잉게르>에서 두 손을 가지런히 앞으로 모은 자세를 통해 잉게르가 매사 행동과 표정을 조심하는 사람임을 표현했다.

뭉크는 잉게르의 표정, 눈빛, 자세에만 초점을 맞추기 위해 주변의 모든 것을 제거했다. 똑바로 선 잉게르의 자세는 그녀의 강한 독립심을 잘 드러낸다.

잉게르는 피아노 교사로 일하며 전시를 위해 자주 해외에 머물던 뭉크를 대신해 가장 역할을 도맡았다. 그녀는 결혼하지 않았으며 뭉크의 작품은 물론 그와 관련된 편지, 메모들까지 관리했다. 뇌졸중으로 쓰러진 아버지의 임종을 지킨 것도 잉게르였다.

뭉크의 가족 중 잉게르만 뭉크보다 오래 살았다. 그래서 잉게르는 뭉크 사망 이후 그의 작품을 관리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그녀는 뭉크 작품들의 연대기를 작성하거나 제작 일지 등의 서류를 보완함으로써 뭉크 작품의 아카이빙의 기초를 다졌다.

뭉크의 비극적인 가족사를 들여다보면 질병, 죽음, 광기의 연속이다. 그러나 뭉크는 이에 굴하지 않았다. 그는 평생 자신을 따라다닌 질병, 죽음, 광기를 덮어두거나 외면하지 않고 이를 정면으로 마주하는 삶을 택했다. 뭉크의 일기를 보면 그가 이러한 고통을 자기 삶의 일부로 받아들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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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통은 나 자신과 예술의 일부이다.
고통은 나와 하나이기에 그것이 파괴되면 나도, 예술도 파괴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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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크 예술의 위대함은 고통을 자신의 삶으로 받아들여 예술로 승화시켰다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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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크의 여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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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 테울로브

>>>에드바르 뭉크, <그 다음 날>, 1894
1885년 여름 뭉크는 밀리를 처음 만났다. 뭉크는 아름다운 외모에 화려하게 치장한 밀리에게 첫눈에 반했다. 그리고 뭉크가 밀리를 다시 만난 것은 그란 호텔에서 열린 사교 파티에서 밀리를 다시 만나게 되면서 완전히 푹 빠지게 된다.

사촌 형수이자 자신을 후원하는 프리즈 태울로브의 제수라는 것을 알고 있던 뭉크는 사랑해선 안 될 사람이라는 사실 때문에 오히려 더 깊이 빠져들게 만든다. 금지된 사랑에 빠진 뭉크는 극심한 사랑의 열병을 앓게 된다.

두 사람은 예술과 파리 얘기로 밤을 지새웠다. 자유분방한 삶을 추구하는 밀리가 수줍음 많고 어리숙한 뭉크를 유혹했다. 뭉크는 매사에 당당한 밀리에 비해 부끄럼을 많이 타는 자신이 한없이 초라해 보였는데 그래서 먼저 말을 걸거나 대화를 주도하지 못했다.

이처럼 뭉크와 밀리의 사랑은 동등하지 않았다. 비밀스러운 관계 때문에 뭉크는 밀리에게서 사랑과 욕망뿐 아니라 수치심과 굴욕감을 느꼈다.

<그 다음 날>은 밀리와 사랑을 나눈 아침을 그린 작품이다. 생전 처음 여성과 육체적 관계를 맺은 그리고 그 이상의 관계를 거절당한 수치심은 뭉크 작품 전반에 드러난다.


>>>에드바르 뭉크, <빨강과 흰색>, 1894
뭉크는 밀리에게서 순수, 열정, 관능을 보았다. 그녀는 성녀와 요부 두 가지 모습을 동시에 보여준 여성이었다.

뭉크는 밀리에게서 관찰한 여성의 두 가지 측면, 즉 관능적인 여성과 순수한 여성을 <빨강과 흰색>으로 그렸다. 빨강은 뜨거운 사랑에 빠진 여성의 열정을 상징하며 흰색은 순결, 순수함을 연상시킨다.


>>>에드바르 뭉크, <이별>, 1896
뭉크의 첫사랑은 두 계절 만에 일방적으로 끝났다. 그러나 그는 밀리를 떠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뭉크는 밀리와 이별한 후 느낀 심장을 도려내는 듯한 아픔을 <이별>로 그려냈다.

첫사랑 밀리는 뭉크의 심장이었다. 뭉크는 사람이 이별할 때 심장이 아프다는 것을 자신의 경험으로 똑똑히 느꼈다.

뭉크는 <이별>을 그리기 전 뜯겨진 심장을 직접 보기 위해 도살장을 방문해 소의 도축 과정을 지켜보기도 했다. 무자비한 도축업자처럼 밀리는 뭉크의 심장을 도려냈다. 뭉크의 사랑도 멈췄다.


■다그니 율

>>>에드바르 뭉크, <사춘기>, 1894
뭉크는 다그니를 모델로 <사춘기>, <마돈나>, <질투>, <뱀파이어>를 그리며 창작 에너지를 폭발시켰다.

<사춘기>는 벌거벗은 소녀가 침대 가장자리에 수줍게 앉아 있는 모습을 묘사했다. 뭉크는 사춘기에 접어든 소녀가 느끼는 불안과 두려움, 우울을 애처로운 모습으로 나타냈다.

<사춘기>는 뭉크가 불안한 감성을 그린 최초의 그림이며, 뭉크 작품의 공식인 '성'과 '죽음'이 처음 등장한 그림이다. 이 작품의 모델이었던 다그니의 관능적이면서 순수한 매력은 사춘기 소녀가 가진 미성숙한 모습과 성숙한 모습 모두를 표현하기에 적합했다.

소녀의 존재 못지않게 눈에 띄는 것은 대각선으로 길게 늘어선 그림자다. 그림자는 불안과 두려움, 소녀의 몸과 마음속에서 깨어나는 섹슈얼리티를 그린 것이다.


>>>에드바르 뭉크, <질투>, 1895
다그니는 프시비셰프스키와 만난 지 5개월 만에 즉흥적으로 결혼식을 올린다. 그러나 그들의 결혼 생활은 처음부터 순탄치 않았다.

현실감각이 없는 남편 프시비셰프스키는 자기 부부와 뭉크의 얘기를 담은 실화 소설로 돈을 벌겠다는 허황된 생각을 품었고 실제로 <배 밖으로>를 출간했다. 소설에서 프시비셰프스키는 뭉크를 파렴치한 인간으로 묘사했는데 뭉크는 이에 크게 화를 냈다.

당시 프시비셰프스키를 향한 분노, 화, 불쾌함은 <질투>에 반영되었다. <질투>에는 세 사람이 등장한다. 아담과 이브, 그리고 의문의 남성이다. 이 작품은 뭉크와 다그니, 프시비셰프스키의 삼각관계 이야기다.


>>>에드바르 뭉크, <질투>, 1907
뭉크의 또 다른 <질투>에서 무관심한 프시비셰프스키의 모습을 담았다. 전면에 크게 그린 프시비셰프스키의 얼굴은 녹색으로 칠해져 있다. 독일어로 '녹색'은 애송이, 풋내기'라는 의미여서 다그니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는 프시비셰프스키를 조롱하는 뭉크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에드바르 뭉크, <붉은 담쟁이>, 1900
뭉크는 다그니가 살해되기 1년 전 <붉은 담쟁이>를 그렸다. 아래에 있는 남성은 왠지 불안한 표정이다. 남성의 몸에서 뻗어 나온 붉은 담쟁이는 붉은 집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 인물은 프시비셰프스키다.

벽을 타고 흐르는 피와 벽을 타고 기어오르는 담쟁이는 다그니와 프시비셰프스키의 위험한 관계를 상징한다. 이 작품은 다그니의 비참한 죽음의 책임이 프시비셰프스키에게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에드바르 뭉크, <담배를 든 자화상>, 1895
>>>에드바르 뭉크, <다그니 율의 초상>, 1893
뭉크가 다그니의 결혼 후에도 계속 만남을 이어갔는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그러나 뭉크가 다그니를 특별하게 생각한 것은 사실이다.

그는 <다그니 율의 초상>과 <담배를 든 자화상>이 하나의 쌍을 이루도록 그렸다. 이것은 뭉크가 다그니를 사랑했다는 결정적 증거다.

독립된 두 개의 초상화가 하나의 쌍을 이루게 그리는 것은 당시 상류층들 사이에서 유행한 부부 초상화를 그리는 방식이었다. <담배를 든 자화상>에서 뭉크는 담배 연기로 가득 찬 어두운 그림자에 둘러싸여 있다.

다그니 역시 연극 무대와 같은 곳에서 신비한 미소를 짓고 있다. 뭉크와 다그니의 두 초상화는 둘 다 검은색 배경이며 길이도 비슷하다. 이는 마치 한 공간 속에 있는 두 연인을 그린 것 같은 인상을 준다.

뭉크는 전시장에 두 초상화를 마치 부부의 초상화인 것처럼 나란히 배치하기도 했다. 이로 인해 뭉크가 다그니를 사랑한다는 소문이 나돌기 시작하자 소문에 놀란 다그니 아버지는 아직 결혼하지 않은 딸을 걱정하며 뭉크에게 딸의 초상화를 내려 달라고 정중히 요청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한다. 뭉크는 요청에 따라 다그니의 초상화를 철거한다.

그는 <다그니 율의 초상>을 평생 자신의 침실에 걸어두었다. 현실에서는 맺어질 수 없는 사이였지만 뭉크의 마음속에서 그리고 꿈속에서 다그니는 그의 연인이었다. 뭉크의 작품 속 다그니는 대체 불가한 유일한 뮤즈였다.


>>>에드바르 뭉크, <마돈나>, 1894~1895
마돈나'는 귀부인에 대한 존칭으로 쓰이는 이탈리아 말이다. 그것은 중세를 지나오면서 성모 마리아를 지칭하는 말로 변화되었다.

그러나 뭉크의 마돈나는 성스러운 성모 마리아가 아니다. <마돈나>의 여인을 성모 마리아로 볼 근거는 머리 뒤 붉은 후광뿐이다. 뭉크의 마돈나는 가슴을 드러내 보이고 있으며 관능적 시선으로 관람객을 바라보고 있다. 그녀는 에로티시즘을 나타내는 관능적 성모상이다.

뭉크는 다그니를 모델로 <마돈나>를 다섯 점이나 제작했으며 1895년부터 1902년까지 여러 점의 판화로도 제작했다.


>>>에드바르 뭉크, <마돈나>, 1895, 석판화

뭉크는 <마돈나>의 석판화 테두리에 유화에는 없는 태아와 정자 모양의 생명체를 추가했다. 이 두 가지는 <마돈나>의 의미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다. 정자는 잉태를 상징하고, 해골 형상의 태아는 죽음을 상징한다. 이는 마돈나의 운명을 축약해 보여준다.

뭉크의 마돈나는 종교를 초월해 완전히 자유로운 존재로 거듭났다. 성스러움과 관능적인 매력을 동시에 지닌 다그니는 뭉크가 만든 새로운 마돈나 그 자체였다.


>>>에드바르 뭉크, <뱀파이어>, 1895
<뱀파이어>는 뭉크 자신의 두려움일 뿐 아니라 19세기 말 남성들이 느끼는 집단적 두려움의 표현이었다.

뭉크는 여성을 열망하면서도 자신을 파괴할 수 있는 두려운 존재로 만들었다.


■툴라 라르센

>>>에드바르 뭉크, <유전>, 1897~1899
자신이 건강한 가족을 갖지 못할 것이라는 뭉크의 불안은 <유전>에 잘 드러나 있다. <유전>은 매독에 감염된 어머니와 선천성 매독에 걸린 아이를 그린 그림이다. 이것은 뭉크가 파리 병원에서 목격한 한 여성이 아리를 안고 울고 있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뭉크는 두려워졌다. 자신도 울고 있는 저 여인처럼 건강한 가족을 이루지 못할까 두려웠다.


>>>에드바르 뭉크, <물질대사>, 1898~1899
뭉크와 툴라의 어정쩡한 관계는 <물질대사>에 잘 드러나 있다. 뭉크와 툴라의 어색한 관계처럼 두 남녀는 시선을 떨구고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이대로 결혼한다면 뭉크와 툴라의 결혼생활은 불행해질 거라고 말하는 듯하다.

뭉크는 다른 작품들과 달리 <물질대사>는 액자의 틀까지 디자인했다. 뭉크가 그린 <물질대사>는 순환의 개념이지만 뭉크는 사회에 보탬이 되는 건강한 사회 구성원으로서 가족을 꾸릴 자신이 없었다. 뭉크의 불안은 점점 심각해지는 툴라의 집착으로 이어졌다.


>>>에드바르 뭉크, <수술대 위에서>, 1902~1903
뭉크는 지긋지긋한 툴라와 헤어지기로 결심하고 이 문제를 매듭짓고자 오스고르스트란의 집에 마주 앉았다. 둘은 말싸움으로 시작해 몸싸움을 벌였고 이 과정에서 실수로 뭉크가 집에 가지고 있던 권총에서 총알이 발사되었다.

누가 총을 발사했는지 정확히 알 길은 없지만 뭉크가 남긴 기록에서는 툴라가 총을 발사했고 자신이 그 총의 총구를 막다가 손가락에 총상을 입은 것이라 했다.

총알이 박힌 뭉크의 왼손에서는 피가 철철 흘렀고 그는 이내 의식을 잃었다. 깨어난 뭉크는 마취를 거부하고 자신의 수술을 두 눈으로 지켜보았다. 뭉크는 이 과정을 이를 악물고 지켜보았다.

이제 툴라와의 관계는 모두 깨져버렸다. 이 권총 오발 사고는 뭉크 인생 최악의 사건이며 그의 손에 영원한 장애를 남겼다. 뭉크는 이후 평생 왼손에 검은 가죽 장갑을 착용하고 남들 앞에서는 절대 맨손을 드러내지 않았다.


>>>에드바르 뭉크, <초대받지 못한 손님>, 1932~1935
툴라와의 싸움에 지친 뭉크는 이제 쉬고 싶었다. 그는 오스고르스트란의 자기 집에서 안정을 취하고 건강을 회복하려 노력했다. 그러나 그의 노력은 5년이 못 되어 물거품이 되었다.

그곳에서 두 번째 총기 사고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두 번째 총기 사고는 1905년 친구 루드비크 카슈튼과의 사소한 싸움으로 인해 벌어졌다.

카슈튼과 집에서 술을 마시던 뭉크는 저녁이 되자 그에게 그만 돌아가 달라고 부탁했다. 취기가 오른 카슈튼은 장난스럽게 안 가겠다고 고집을 부렸고 이에 주먹다짐까지 하며 그를 집에서 내보냈다.

술에 취한 카슈튼은 뭉크가 잠이 든 뒤 정원에서 바스락거리며 그의 신경을 긁어댔고 화가 난 뭉크는 침대에서 일어나 총을 가져오더니 카슈튼을 향해 발사했다.

이날에 대한 뭉크의 기억은 25년 후 <초대받지 못한 손님>에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초대받지 못한 손님>의 주방 식탁 위에는 술병이 잔뜩 널려 있다. 아마도 뭉크는 이미 과음한 상태다. 그는 창밖에 있는 사람을 향해 총을 겨누고 있다.


■에바 무도치

>>>에드바르 뭉크, <브로치>, 1903
뭉크는 에바를 모델로 <브로치>를 제작했다. 이 작품은 뭉크가 사랑의 감정을 담아 부드러운 선을 사용한 것이 특징이다.


>>>에드바르 뭉크, <살로메, 에바 무도치와 뭉크>
뭉크가 에바와의 연애를 더 발전시키지 못한 채 머뭇거리던 태도는 <살로메, 에바 무도치와 뭉크>에 잘 나타나 있다.

이 작품에서 풍성한 머리카락에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은 에바와 달리 뭉크의 표정은 경직되어 있다. 이는 여성에 대한 뭉크의 내재된 불안과 두려움, 공포를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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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크의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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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바르 뭉크, <예게르 초상>, 1889
예게르는 냉소적인 나르시시스트였다. 뭉크가 그린 <예게르 초상>의 비스듬하게 앉은 자세는 예게르의 냉소적인 성격을 드러낸다. 안경 너머로 보이는 냉정한 눈빛에서는 예게르의 리더로서의 카리스마를 느낄 수 있다.


>>>에드바르 뭉크, <크리아티아니아 보헤미안 Ⅱ>, 1895
크리스티아니아 보헤미안 그룹의 핵심 인물이었던 크로그, 오다, 예게르 세 사람은 자유연애를 주장하며 사회의 모든 구속을 벗어버리자고 했다. 크로그와 오다는 부부 사이였으며 예게르는 오다와 불륜 관계였다. 셋은 자유 의지로 삼각관계를 형성했고, 이 삼각관계는 그룹 내에서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다의 자유로운 연애사와 남성 편력은 <크리스티아니아 보헤미안 Ⅱ>에 잘 드러나 있다. 뭉크는 오다의 행동을 주의 깊게 관찰하여 연인들에게 둘러싸인 그녀를 여러 번 변주해 그렸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남성들은 뭉크를 제외하고 모두 오다와 과거에 연인 관계였거나 혹은 현재 연인 관계인 인물들이다.

뭉크는 이 그룹에서 오다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은 유일한 인물이었다. 뭉크는 크로그, 오다, 예게르가 만든 삼각관계를 이해할 수 없었다.

한때 뭉크가 존경했던 예게르는 때로는 치사하고 파렴치하기도 했다. 뭉크는 크리스티아니아 보헤미안 그룹 사람들의 역겨운 싸움에 신물이 났다.

크리스티아니아 보헤미안 그룹은 후에 삼각관계, 치정, 음모, 재산 싸움, 자살 등 온갖 구설수로 해체되었다.


>>>에드바르 뭉크, <라파예트 거리>, 1891
뭉크는 1891년 한 번 더 장학금을 받아 파리에서 유학할 기회를 얻었다. 그는 라파예츠 49번지의 집을 임대했다. 이곳에서 뭉크는 화사하고 밝은 인상주의 색채로 이제 막 새롭게 태어난 파리를 그렸다.

그는 마차와 사람들이 분주하게 오가는 파리 거리와 이를 발코니에 서서 한가로이 지켜보는 사람의 모습을 <라파예트 거리>에 담았다.


>>>에드바르 뭉크, <니스의 밤>, 1891
뭉크는 프랑스에서 유학하던 시기에 병의 재발을 겪게 된다. 1890년 두 번째 유학길에서 큰 고비를 맞게 된다. 바다의 찬 바람을 맞으며 추운 선실에서 생활하다 류머티즘이 도저 배에서 고열에 시달리게 된 것이다.

그는 요양을 위해 파리가 아닌 따뜻한 니스로 목적지를 바꾸었고 그곳에서 건강 회복에 전념했다.

그래서 호텔 바깥을 돌아다니지 않고 호텔 옥상에 올라 니스 시내를 둘러보는 간단한 산책을 즐겼다. 이때 뭉크가 본 니스 풍경은 <니스의 밤>에 잘 드러난다.

에드바르 뭉크, <몬테카를로의 룰렛 테이블에서>, 1892

니스에서 뭉크의 병은 호전되었지만 두 달 치 입원비와 해를 넘겨도 전달되지 않는 장학금으로 인해 재정 상황은 더 나빠지게 된다. 여기에 더해 스튜디오에 화재가 발생하게 되면서 생존을 위협받기에 이른다.

그러던 중 카지노에서 도박으로 필요한 돈을 얻을 수 있다는 소식에 솔깃해진 그는 몬테카를로 카지노에 발을 들이게 된다.

그리고 이내 그는 도박의 함정에 빠지게 되는데 이때 자신의 기억과 기록을 토대로 <몬테카를로의 룰렛 테이블에서>를 그렸다. 또한 이 그림을 토대로 기록을 남겼다.

<몬테카를로의 룰렛 테이블에서>의 왼쪽에 있는 사람들 틈 바구니에는 한탕을 위해 기웃거리는 뭉크가 있다. 이 일로 뭉크는 결국 도박 중독 증상을 보이게 되고 결국 그곳에서 살다시피 하게 된다.


>>>에드바르 뭉크, <봄>, 1889
1892년 뭉크는 베를린 미술가 협회 소속의 노르웨이 화가 아델스테인 노르만의 추천으로 베를린 전시에 초대되었다.

협회 역사상 처음으로 열린 개인전으로, 베를린 미술가 협회 관계자들은 물론이고 베를린 예술계의 모든 눈과 귀가 노르웨이에서 온 이방인 뭉크에게 쏠렸다.

고상하고 건전한 그림을 기대했던 베를린 미술가 협회 관계자들은 <봄>을 보자마자 크게 실망했는데, <봄>의 거친 붓 터치와 조화롭지 못한 색감은 당시 예술 상식에 반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지속하자는 쪽과 철회하자는 쪽으로 나뉘게 되면서 투표로 결정하게 되었고 120대 105로 전시는 폐쇄 결정된다. 이 결정으로 뭉크의 전시는 일주일도 못 돼 막을 내렸다.

노르웨이 화가 뭉크가 베를린 미술계에 일으킨 파란은 전시 폐쇄로 끝나지 않았다. 뭉크의 전시가 촉발시킨 싸움은 베를린 미술가 협회의 원로 대 신진의 싸움으로 비화되었다. 이 싸움은 독일 현대 미술사를 통틀어 최대의 스캔들로, 바로 '뭉크 스캔들'이다.


>>>에드바르 뭉크, <스트린드베리 초상>, 1896
>>>에드바르 뭉크, <스트린드베리 초상>, 1896
한번은 뭉크가 호의로 스트린드베리에게 초상화를 그려주었다. 그런데 초상화 테두리에 스트린드베리의 이름을 적다가 철자 'R'을 빠뜨리는 실수를 저질렀다. 그런데 스트린드베리는 이 단순한 실수를 뭉크가 고의적으로 자신을 모욕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또한 스트린드베리는 초상화의 테두리에 벌거벗은 여성과 머리카락을 그려 넣은 것을 보고는 더욱 펄쩍 뛰었다. 자신이 여성을 싫어하는 것을 알면서 뭉크가 일부러 여성을 등장시켜 자신을 욕보이려 했다고 불같이 화를 낸 것이다.

그는 사소한 실수를 이해하고 용서해 줄 만한 아량이 없었다. 그가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버렸기 때문이다.

뭉크는 스트린드베를 이해하고 관계를 회복하려 했다. 우선 그가 그토록 싫어하던 벌거벗은 여성의 형태를 지우고 이름에서 빠진 철자 'R'을 추가해 다시 초상화를 제작했다. 그러나 정신착란 증상이 심해진 스트린드베리의 마음을 돌릴 순 없었다.


>>>에드바르 뭉크, <프시비셰프스키의 초상>, 1895
검은 새끼 돼지 그룹에서 만난 친구 중 하나인 스타니스와프 프시비셰프스키는 호감형 외모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많은 이들의 주목을 끌었다. 특히 술에 취하면 즉흥 연주로 사람들을 즐겁게 했다. 그러나 논쟁을 벌일 때 자주 비아냥거리고 빈정대고 조롱하는 투로 말했기 때문에 그를 따르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프시비셰프스키는 심리학 연구서를 여러 편 저술할 정도로 심리학과 철학에 해박한 지식을 가졌다. 그는 뭉크 작품을 분석한 글을 출간하거나 자신의 소설 속 주인공을 뭉크로 설정하기도 했는데 뭉크는 프시비셰프스키의 분석과 평가에서 용기와 힘을 얻었다.

뭉크는 <프시비셰프스키의 초상>에서 그를 스물일곱 살의 청년 모습으로 재현했다.


>>>에드바르 뭉크, <손들>, 1893~1894
검은 새끼 돼지 그룹에서 다그니는 '정신', '영혼'이라는 의미의 폴란드어 '두하'로 불렸다.

뭉크, 스트린드베리, 프시비셰프스키 세 사람을 포함해 모두 다그니에게 호기심을 보이다 결국 그녀를 추종했다. 그녀의 매력은 지적이면서 관능적이라는 데 있었다.

다그니를 그린 <손들>을 보면 당시 다그니의 인기가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다그니를 향한 수많은 손들은 다그니를 향한 마음들이었다.


>>>에드바르 뭉크, <옌스 티스>, 1909
다국적 모임인 검은 새끼 돼지 그룹 멤버 중에는 옌스 티스도 있었다. 티스는 후에 노르웨이 국립 미술관 초대 관장이 되어 뭉크 미술을 후원하고 체계적으로 정리, 관리한 인물이다.

후에 뭉크는 검은 새끼 돼지 그룹에서 만난 스트린드베리, 프시비셰프스키, 다그니와는 연락 두절, 절교, 사망으로 헤어졌다. 그러나 티스는 까다로운 성격의 뭉크가 말년까지 의지하며 만난 몇 안 되는 친구 가운데 하나였다.

뭉크는 티스와 같이 의지가 되어 주는 이들의 전신 초상화를 그려 그 그림들을 야외 스튜디오에 호위무사처럼 둘러 세웠다. 그 전신 초상화들은 뭉크가 죽는 순간까지 그의 곁을 지켰다.


>>>에드바르 뭉크, <다리 위의 소녀들>, 1901
사실 뭉크는 꽃을 싫어했다. 뭉크는 꽃이 인간보다 빨리 시들고 죽기 때문에 죽음을 연상시킨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는 어머니와 누나, 아버지의 죽음을 연상시키는 모든 것을 싫어했다. 뭉크는 죽음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이것이 뭉크의 작품에 꽃이 없는 이유다.

뭉크는 오스고르스트란을 배경으로 <다리 위의 소녀들>을 제작했다. 소녀들이 서 있는 곳은 다리로 보이지만 사실 이것은 항구로 이어지는 둑이다. 세 소녀가 둑 난간에서 물을 내려다보고 있다.

뭉크의 작품 가운데 <다르 위의 소녀들>처럼 소소한 일상을 그린 작품은 드물다. 늘 신경이 날카롭게 서 있던 뭉크에게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주는 일상은 없었다.

늘 비난, 언쟁, 격정과 폭력으로 마음 편할 날 없었던 뭉크였지만 생애 처음 마련한 집에서 마침내 소소한 행복을 누릴 수 있었다.

뭉크 작품 가운데 유일하게 평온한 풍경을 그린 이 작품은 그래서 인기가 좋다. 뭉크는 오스고르스트란에서 인생 2 막을 시작했다.


>>>에드바르 뭉크, <절망>, 1892
1890년대 초반 과도한 음주와 잦은 병치레, 절제되지 않은 생활 습관으로 뭉크의 몸은 몹시 쇠약해졌다. 뭉크는 이때 느낀 우울과 불안을 메모에 남겨두었다.

그리고 이때의 절망감을 <절망>에 풀어놓았다. 배경은 <절규>와 같은 에케베르크 언덕으로, 1892년 <절망>은 '해 질 녘의 아픈 분위기'라는 제목으로 전시되었다.

사실 <절망>의 기억은 니스에서 장학금과 생활비를 도박 자금으로 탕진한 후의 것이다. 그런 자신의 절망적인 상황과 스스로에 대한 실망감을 <절망>에 잘 드러나 있다.


>>>에드바르 뭉크, <절망>, 1894
뭉크는 <절망>을 다시 변주해서 그렸다. 피오르를 바라보는 중절모 쓴 남자 대신 젊은이가 앞을 향한 모습으로 그렸다. 눈을 감고 있는 이 남성은 이제 <절규>에서 해골 모양의 사람으로 대체될 것이다.

그리고 물결치는 하늘과 혼란한 순간은 그대로 <절규>에 표현된다. 뭉크의 <절망>은 노트 속 스케치에서 <절규>로 이행되는 과도기적 그림이다. <절망>의 배경과 구성은 그대로 <절규>로 이어진다.


>>>에드바르 뭉크, <절규>, 1893, 판지에 유채와 템페라
>>>에드바르 뭉크, <절규>, 1893, 판지에 파스텔과 크레용
>>>에드바르 뭉크, <절규>, 1895, 판지에 파스텔
>>>에드바르 뭉크, <절규>, 1910, 판지에 템페라

뭉크의 대표작 <절규>는 네 점의 채색본에 판화본까지 포함하면 50점에 달한다. 네 점의 채색본은 재료도 각각이고, 작품 구성도 조금씩 다르다.

뭉크가 쓴 '자연을 가로지르는 무한한 비명'이라는 글과 <절규>의 원제가 '자연의 절규'라는 점에서 절규하는 주체는 인물이 아니라 자연이다. 따라서 해골 모양의 인물은 비명을 지르는 게 아니라 자연의 비명 때문에 귀를 막고 있는 모습이다.

에케베르크 언덕에 오르면 뭉크는 가족들이 생각났다. 그리고 가족을 생각하면 현기증과 어지럼증을 느꼈고, 강박 증세가 나타났다. 순간 그는 붉은 핏빛 저녁놀을 보자 불안 증세가 도져 숨을 쉴 수 없었다. 뭉크가 극도의 두려움과 불안을 느낀 이 증상은 공황발작이다.


>>>에드바르 뭉크, <카를 요한 거리의 저녁>, 1892
>>>에드바르 뭉크, <카를 요한 거리의 봄날>, 1891
<카를 요한 거리의 저녁>과 그보다 1년 전에 그린 <카를 요한 거리의 봄날>을 비교해 보면 뭉크의 기법과 심리가 많이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카를 요한 거리의 저녁>은 뭉크의 불안한 심리를 드러낸 작품이다. 뭉크는 작품을 제작할 때 객관적 현실보다 주관적 감정을 강조했다. 즉 같은 공간을 그렸어도 그대의 감정이 다르면 다른 그림이 되었다.


>>>에드바르 뭉크, <린데 박사의 네 아들>, 1903
1903년 4월부터 3주간 린데 박사는 뭉크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해 작품을 의뢰했다.

린데 박사의 네 아이들은 공원에서 놀다 집으로 돌아오라는 부름을 듣고 지금 막 도착했다. 마치 스냅사진처럼 보이는 이 작품에서 네 아이들은 외국에서 온 손님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뭉크는 낯선 이를 바라보는 아이들을 관찰한 대로 그렸다.

네 아이를 여러 차례 관찰한 뭉크는 책임감이 강한 아이, 독립심이 강한 아이, 사회성이 발달한 아이, 귀여운 아이로 각각의 특징을 그려냈다.


>>>에드바르 뭉크, <태양>, 1911
오슬로 대학교는 1911년 개교 100주년을 맞이해 아울라 대강당을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장식하고자 했다. 그래서 공모전을 열었으나 출품된 작품 대부분 모더니즘 경향을 띠어 실망하게 된다.

이에 출품작 전체를 거부하고 부랴부랴 조각가 비겔란과 화가 뭉크의 비공개 경쟁을 제안했는데 이에 뭉크는 대강당 벽화의 중심 주제를 '빛'으로 정하고 이를 표현하고자 했다.

뭉크는 매일 아침 크라게뢰 앞바다에서 태양이 내뿜는 광선과 에너지를 관찰한 후에 작품을 그려나갔다. '태양'은 그가 정신병원에서 나와 선택한 모티브로 광선은 에너지를 주는 힘의 원천이며 학문에 대한 경외감의 표현이다.

아울라 대강당 벽화 습작들은 대중들에게도 인기가 있어 1911년 오슬로 대학교에서 대중의 강력한 지지를 받은 뭉크의 작품들을 벽화로 결정했다.

오슬로 대학교로부터 의뢰받은 벽화 연작들은 뭉크 인생에서 가장 빛나고 강한 에너지를 발산하는 그림들이다.


>>>에드바르 뭉크, <별이 빛나는 밤>, 1893
뭉크는 밤하늘의 풍경이 아니라 외롭고 우울한 밤의 본질을 그렸다. 뭉크는 <별이 빛나는 밤>을 1893년 처음 그렸다.

이 그림은 자연의 아름다움과 압도적인 슬픔이 공존하는 노르웨이의 겨울 밤하늘을 그린 것이다.


>>>에드바르 뭉크, <별이 빛나는 밤>, 1900~1901
뭉크가 1900년대 초에 그린 <별이 빛나는 밤>의 구도는 눈 쌓인 땅과 하늘이 지배하는 구도다.


>>>에드바르 뭉크, <별이 빛나는 밤>, 1922~1924
>>>에드바르 뭉크, <별이 빛나는 밤>, 1922~1924
>>>에드바르 뭉크, <별이 빛나는 밤>, 1922~1924
뭉크는 1920년대 <별이 빛나는 밤>을 세 점 그렸다. 깊은 밤 잠을 이루지 못하는 예순이 넘은 뭉크의 자전적 슬픔과 고독이 묻어 나오는 작품이다.

1922년과 1924년 사이에 그린 세 점의 <별이 빛나는 밤>은 모두 에켈리에서 그려진 것이다.

뭉크의 <별이 빛나는 밤>에는 뭉크가 노쇠하고 병들어가고 나약해지는 과정이 진실하게 담겨 있다. 밤하늘에서 빛나는 것은 뭉크 자신이었다.


>>>에드바르 뭉크, <시계와 침대 사이의 자화상>, 1940~1943
<시계와 침대 사이의 자화상>은 삶과 죽음이라는 두 세계에 대한 적극적인 대면 의지가 잘 반영된 작품이다. 사실 뭉크는 이 무렵 두 발로 똑바로 서 있기 힘들 정도로 보행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 작품은 뭉크가 이제 정말 편하게 죽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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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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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크의 삶과 작품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면서 들었던 생각은, 자식 같았던 작품 그 자체가 뭉크를 대변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자신의 감정과 마음, 현재의 상태를 고스란히 작품에 쏟아내며 예술로 승화시켰다. 현실 속에서 겪어야 했던 감당할 수 없는, 외로움, 불안, 우울, 사랑 등의 감정을 그림에 온전히 담으며 평생을 그림과만 함께 한 것이다.

그래서 그의 그림을 보면 뭉크 본연의 자신이 엿보인다. 현실 속에서 오래 자신을 지지해 주고 지원해 주었던 이를 그림으로 그려 밖에 세워두는가 하면(자신을 지켜달라는 의미), 사랑하는 이와의 관계가 변화되면 그때마다 그것을 그림으로 그려 심경 변화를 표현했다.

어쩌면 뭉크는 태어난 순간부터 죽음이라는 그림자를 곁에 두고, 또 가족들을 하나 둘 잃으면서 현실에서 직접적인 소통의 창구를 잃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때문에 그림을 통해 자신의 심정을 대변한 것은 아니었을까, 그렇게 한 풀이를 한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지난한 삶을 살았던 뭉크의 삶을 그림으로 살펴보고 나니, 예술가로서는 성공했을지언정 한 사람으로서는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에 가슴이 아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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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이 좋아서 - 정원을 가꾸며 나를 가꿉니다
더초록 홍진영 지음 / 앵글북스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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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절 정원을 가꾸며 느낀 치유와 회복의 시간에 대한 이야기!"


사람들은 저마다 마음속에 나만의 정원을 가꾸며 살아간다. 때론 실패하고 좌절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꿋꿋이 인내하고 노력하며 정원이 늘 건강하고 아름다울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한다.

이 책을 쓴 저자는 실제 정원을 가꾸며 그런 시간들을 가진다. 시작은 갑작스럽고 숙제 같았지만, 흙을 만지고 식물과 교감하며 서서히 정원 가꾸기에 빠져들게 된다.

그러다 서서히 욕심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이내 텅 빈 공터는 꽃과 나무들로 가득 차게 된다. 그리고 마음속에도 어느새 초록을 가득 들이게 된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총 4개의 챕터로 구성된 이 책은, 계절별로 달라지는 정원의 모습과 함께 마음의 변화까지 불러온 저자의 삶을 엿볼 수 있다.

가드닝을 하며 인내와 실패는 물론 체념과 여유의 마음을 배운 저자는 덕분에 치유와 회복의 시간을 경험하게 된다. 이 책에서 저자는 그런 시간에 대한 소박한 이야기를 편안하고 따뜻하게 담았다.

혹시 오해할까 봐 미리 말하지만, 이 책에서 직접적인 가드닝 비법 같은 건 찾을 수 없다. 그저 7년간 정원을 가꾸며 느꼈던 소회를 소박하게 담은 '이야기'만 존재할 뿐이다.

그래서 더 따뜻하고 감성적으로 다가온다. 포근한 흙냄새와 내리쬐는 햇볕, 흩날리는 꽃향기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정원에서 경험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힐링'이라는 감정뿐이다.

이는 텍스트에서뿐만이 아니라 페이지 곳곳을 수놓은 사진 속에서도 느낄 수 있는데, 사계절 피고 지는 화려한 꽃들의 향연과 싱그러움을 가득 머금은 초록이들, 그리고 싱싱하게 자리한 채소는 자꾸만 시선을 잡아 끈다.

=====
정원을 보살피는 일은
매일 작은 기쁨이
차곡차곡 쌓이는 일이다.
1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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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이러한 가드닝 일상으로 얻은 즐거움과 다정한 위안을 나누고 싶어 독자들에게도 자신만의 정원을 가꿔보라 권한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저자의 이러한 권유가 없어도 절로 삶에 초록을 들이고 싶어질 것이다. 초록을 꿈꾸게 될 것이다. 내가 그러했던 것처럼.


=====
정원일에 서툴던 초반에는 성공보다는 실패가 주를 이뤘다. 열심히 해도 달라지는 게 없었다. 당장 결과가 나오는 일에 익숙했던 내게, 정원은 뜸을 들이는 일도 중요하다는 걸 일깨워 주고 싶었나 보다. 종종 불확실성의 폭풍을 견딜 인내가 필요하다는 것, 기다림은 지침이 아니라 설렘이라는 것. 그리고 소중한 것들은 천천히 자라나니 조바심 내지 않아도 된다는 것. 3년 만에 꽃피운 작약의 선물이다.
48페이지 中
=====

나만의 정원을 가지고 있거나 반려 식물을 키워본 이들은 안다. 인내와 기다림은 기본 옵션이라는 사실을.

분명 금방 꽃을 볼 수 있을 것 같아 보여도, 실상은 바로 결과를 보여주지 않는다. 짧게는 몇 개월, 길게는 몇 년이 걸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오랜 시간 지켜보며 기다리게 된다. 길고 긴 폭풍의 시간을 견뎌야만 소중한 것들이 서서히 자라나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
정원일은 절대 내 생각이나 예상대로 풀리지 않는다. 노력한다고 실패를 피할 수도 없다. 여기서 실망하고 저기 낙담하는 게 일이다. 그런데 참 신기한 게, 밥 먹듯 실패하니 도리어 실패의 무게감이 점점 가벼워지는 게 아닌가. 나중에는 거의 깃털 하나의 무게감밖에 안 돼서 '아이고, 이것도 텄네, 텄어....' 하고 넘길 수 있게 됐다. 실패에서 너그러워지고 종종 웃음이 나기도 했다. 무수한 실패는 나에게 산뜻한 체념을 가르쳤다. 뭐, 어쩔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지. 안 되는 건 받아들이고 다음에 잘하면 되지 않을까? 그건 내가 실패에서 연상했던 절망이나 열패감과는 전혀 다른 모양의 어떠한 희망이었다.
80~84페이지 中
=====

살다가 겪는 여러 실패들은 자꾸만 우리를 작아지게 만든다. 그런데 정원을 가꾸면서 겪는 실패는 반대로 점점 우리를 가벼워지게 만든다.

처음에는 애지중지 마음 쓰던 것도 어느새 산뜻한 체념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다. 내가 무얼 잘못해서가 아니라 피할 수 없는 실패가 있음을 깨닫기 때문이다.

덕분에 실패에서 너그러워지고 여유가 생긴다. 다음을 기약하는 체념도 배우게 된다.


=====
정원이 어느 정도 모양을 갖춘 뒤에는 식물을 보태는 '덧셈'보다는 뽑아내고 제거하는 '뺄셈'을 더 자주 하게 된다.

빽빽이 채우기보다 여백을 마련하기, 전력투구보다 감당할 수 있는 만큼 사부작거리기, 시간도 공간도 에너지도, 조금쯤 여유롭게 남겨두기, 정원을 가꾸며 되새긴 세상의 이치다.
107페이지 中
=====

만약 지금 '덧셈'에서 '뺄셈'으로 넘어갔다면 이제 안정권에 들어섰다는 이야기와도 같다. 삶도 이와 비슷하다.

너무 빽빽해서는 주변을 돌아볼 수 없다. 내가 숨 쉬고 편안해질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해야만 다음 스텝으로 넘어갈 수 있다.

때로는 반대의 경우도 필요한데, 뺄셈을 통해 공간 확보를 하고, 필요한 것만 남겨두는 것으로 안정적인 삶을 개척할 수도 있다.

식물이건, 사람이건 우리에게는 조금쯤 여유가 필요하다.


=====
세상은 약육강식을 들먹이며 강해지라 다그치지만, 꾸준한 연약함으로 살아온 나는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안다. 살아남는 전략은 저마다 다르다. 약하게 타고났어도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나는 유연함이 있다면 승산은 있다. 연약한 몸으로 치열하게 하루하루 버티는 식물들에게 동병상련을 느끼며 작은 응원을 보낸다.
112페이지 中
=====

인간 사회에서는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한 방향의 방식을 강요하거나 옳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식물의 세계에서는 피고 지고 자라는 방식이 다르다고 해서 누군가 강요하거나 보채지 않는다. 그저 존중하고 기다릴 뿐이다.

특성이나 종에 따라 살아남는 방식은 저마다 다르다. 선천적인 약함이나 유함과는 상관없이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나는 유연함과 지속할 수 있는 지속성만 있다면 살아남을 수 있다.

이것이 우리가 식물에게 배워야 하는 또 다른 '깨달음'이다.


=====
소중한 사람을 잃은 고통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인생의 절댓값이다. 상실감에 당당히 맞서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한 방 맞고 쓰러지는 이가 부지기수일 거다. 그럴 때 일어나려고 안간힘을 써봤자 헛수고다. 언젠가 다시 카운터 펀치를 맞는 날이 오면, 나는 잠시 죽은 듯 쓰러져 있을 테다. 그사이 없어질 것들이라면 애초에 내 것이 아닌 거다. 놓아야 할 것들은 산뜻하게 놓은 뒤, 또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일어서겠지. 언젠가는 그날조차 웃으며 이야기할 때가 올 거다. 지금껏 그랬듯, 앞으로도.
156페이지 中
=====

내려놓을 줄 아는 것. 우리 삶에 어쩌면 가장 어렵고 필요한 일이 아닐까 한다. 안간힘을 쓰고 버티고 이겨내려고 하는 마음도 좋지만, 피할 수 없는 상실 앞에서는 잠시 내려놓고 시간에 몸을 맡겨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만약 이때 무언가를 잃어버린다면 그것은 내 것이 아닌 것이다. 그럴 때는 그저 마음 편히 놓아주자. 그것이 정답이다.


*****

초록을 가까이해보면, 그것이 주는 매력을 반드시 알게 된다. 이런저런 이유로 미뤄두기만 했던 나 역시 큰맘 먹고 초록을 하나 둘 삶에 들이기 시작하면서 그 매력을 알게 되었는데, 이제는 '덧셈'보다 '뺄셈'으로 여백의 미를 주며 즐기는 중이다.

처음에는 답답하기도 했다. 어리숙한 초보 가드너였기에 실패하는 이유를 몰라 여기저기 찾아보기도 하고 방법을 달리해봐도 성공보다 실패가 주를 이뤘기 때문이다.

그래도 꾸준히 관찰하고 살피며 공을 들였다. 그리고 계속해서 눈에 들어오는 다양한 꽃과 식물들을 하나 둘 들여놓으며 개체수를 늘리기도 했다.

그렇게 저자가 말한 과정들을 하나 둘 겪어 나가며 실패에 대해 언젠가부터는 체념과 수용을 배웠고, 인내의 끝에 다디단 열매가 있음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성장을 목격했을 때는 환호가 터지기도 했다. 이런 과정들을 겪으며 이제는 사계절이 있는 이유와 초록이 주는 기쁨을 매일 체감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이 책을 읽으며 공감 가는 부분이 꽤 많았다. 더불어 새로운 꿈도 꾸어본다. 저자처럼 큰 정원까지는 아니더라도 앞마당에 작은 모종과 야채를 손수 키워 먹을 수 있는 텃밭을 가진 공간을 가져보는 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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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으로의 여행 이탈리아를 걷다 - 맛과 역사를 만나는 시간으로의 여행 시간으로의 여행
정병호 지음 / 성안당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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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핵심인 맛과 역사를 만나는 여행"


'해외여행'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두 가지를 꼽자면 바로 '먹는 것'과 '역사'가 아닐까 싶다. 이 책은 이러한 두 가지 항목에 포커스를 두고 이탈리아 방방곡곡을 누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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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곳을 여행하든 우리가 여행에서 가장 먼저 다르다고 느낄 수 있는 것은 보는 것과 먹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로마 제국의 역사가 깃든 이곳에서 비슷하지만 다른 것을 보고 먹고 느끼는 것은 또 다른 경험이 될 것이다.
20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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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부, 중부, 남부 세 지역으로 나누어 여행객들이 꼭 한번 방문하면 좋을 도시들을 선별해 그곳의 전통 음식과 문화, 여기에 맛을 더해 소개한다.

보통의 여행책에서 소개하는 흔한 식당, 흔한 음식이 아닌 지역별 특색에 맞춘 음식과 맛에 대해 소개하고 있어, 만약 이탈리아 미식여행에 관심이 있다면 이 책을 통해서 사전 점검을 해봐도 좋을듯하다.


총 3편의 본편과 부록으로 구성된 이 책은 이탈리아 20개 주의 미식여행을 즐길 수 있도록 요리와 치즈, 디저트, 와인까지 다채롭게 담고 있다.

여기에 더해 기본적으로 장착하면 좋을 문화와 역사에 대한 내용도 함께 담고 있어 도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특히 퀄리티 있는 사진과 친절한 표기들은 텍스트로 와닿는 않는 상상 속의 음식들을 시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돕는다. 덕분에 음식의 모양이나 형태, 색감까지 확인할 수 있으며 설명을 통해 맛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을 정도다.

풀어가는 방식은 대략적인 도시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설명을 시작으로, 음식, 치즈, 디저트, 와인 순으로 나열한다. 이를 통해 공통적으로 이탈리아의 음식에는 치즈와 와인이 빠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 두 가지가 매우 풍족하다는 것 또한 알 수 있다.

그리고 디저트가 매우 발달한 나라라는 것 또한 알 수 있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다양하고 다채로워 놀라웠다. 텍스트와 사진을 쫓으며 눈으로나마 이탈리아 미식여행을 즐길 수 있도록 되도록이면 소개하는 도시의 사진을 다양하게 첨부했다.

더불어 개인적인 견해로, 역사와 미식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 보고 싶은 도시를 위주로 선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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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북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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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경제의 중심지로, 산업이 발달하고 문화의 다양성이 풍부한 곳
▶알프스산맥과 호수가 인상적인 자연 경관을 형성하고 있으며 밀라노, 토리노와 같은 국제적이고 현대적인 도시와 고대의 문화유산을 간직한 도시가 공존
▶이탈리아에서 가장 경제적으로 발전한 지역으로, 지역민이 높은 삶의 질을 유지하고 있다.


<피에몬테>
로마제국과 중세 군주들의 통치 아래 번성하였으며, 특히 포르투갈 왕조의 영향 아래 중세 도시로 번성했다. 피에몬테 요리는 특유의 풍부한 맛과 다양한 향신료를 활용한 요리로 유명하며 특히 트러플과 와인으로 유명하다.


■도시&역사정보
▷'산기슭'을 의미하는 피에몬테는 이탈리아 북서부에 위치하고 있는 주이다.

▷아름다운 자연과 오랜 역사로 유명하며, 알프스산맥과 아펜니노산맥이 이 지역을 둘러싸고 있다.

▷ 이 지역은 비옥한 토양과 전략적 위치 때문에 고대부터 무역과 상업의 중요한 중심지가 됐다.

▷11세기 이 지역은 이탈리아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귀족 가문인 사보이 왕가의 통치 아래 통합됐다.

▷주도인 토리노 또한 예술, 문학, 과학의 중심지가 됐으며 풍부한 천연자원과 전략적 위치 덕분에 경제적으로 번영했다.

▷13세기에는 토스카나 대공국이 이곳을 정복했고, 19세기 초에 이르러 이탈리아 통일 운동이 일어나면서 이탈리아의 일부가 됐다.


■음식
▷음식 애호가들은 피에몬테에서 진정한 미식 경험을 할 수 있다. 이 지역의 요리는 대부분 로즈마리, 세이지, 마늘 등의 허브와 향신료로 향과 맛을 더 많이 전달한다.

▷피에몬테 지역에서 유명한 파스타는 '타야린'이라고 불리는 생면 파스타로, 다양한 소스와 함께 즐길 수 있지만, 특히 피에몬테 지역에서는 트러플 소스나 풍미가 강한 라구 소스와 함께 먹는 경우가 많다. 가을에는 '알바'지역에서 유명한 흰 트러플을 얇게 썰어 얹은, 섬세하고 세련된 맛의 타야린이 매우 인기가 있다.

▷'바냐 카우다'는 마늘과 멸치가 올리브유에 맛있게 녹아들 때까지 볶아 냄비에 담아내고 작은 불로 따뜻하게 유지하면서 야채나 빵, 때로는 트러플을 담가 먹는 음식이다.

▷'바롤로 리소토'도 이곳의 대표적인 요리이다. 고급 바롤로 와인으로 만든 이 리소토는 매우 맛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알프스산맥을 끼고 있어 목축과 낙동이 발달한 피에몬테는 고기 요리도 유명하다. '비텔로 톤나토'는 얇게 썬 송아지 고기에 참치 소스, 마요네즈, 멸치, 케이퍼를 곁들인 차가운 요리이자 맛있고 상큼한 전채 요리이다.


■치즈
▷피에몬테 치즈는 풍부하고 다양하며 지역의 다양성을 반영하는 전통 치즈가 유명하다.

▷'로비올라'치즈는 소나 양, 염소의 젖으로 만든 것으로 이 지역에서 가장 잘 알려진 전통 치즈 중 하나이다. 신선하고 크리미한 섬세함으로 높이 평가된다.

▷'토마'치즈는 피에몬테의 또 다른 전통 치즈로, 11세기 로마 제국 시대부터 만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역사적으로 아주 오래됐고 지역적으로 다양하게 변형됐다. 토마 치즈는 생산 지역과 가공 기술에 따라 단단함의 정도가 다를 수 있다.

▷'카스텔마뇨'는 장기간 숙성된 압착 치즈로, 13세기부터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강하고 매운맛으로 유명하며 퐁듀나 전통 요리의 재료로 사용된다.

▷'브라 두로'는 일반적으로 최소 6개월 동안 숙성하는 단단한 치즈로, 강렬한 맛을 지니고 있으며 보통 단독으로 먹거나 신선한 파스타에 갈아서 먹는다.

▷'고르곤졸라'는 원래 롬바르디아산이지만, 피에몬테에서도 인기가 있다. 이 치즈는 독특한 풍미와 '청맥이라 불리는 치즈를 관통하는 청록색 줄무늬로 유명하다.

▷'오첼리 알 바롤로'는 피에몬테 지역의 대표적인 고급 치즈 중 하나로, 바롤로 와인과의 특별한 조합으로 유명하다. 치즈의 표면은 포도 찌꺼기로 덮여 있어 붉은색의 독특한 외관을 보여준다.


■디저트
▷'토르타 피에몬테제'는 피에몬테 지역의 전통적인 헤이즐넛 케이크이다. 가장 유명한 버전은 밀크 초콜릿이 포함된 '토르타 잔두이아 피에몬테제'이다.

▷잔두이아를 틀에 찍어 만들기 시작한 '잔두이오토'는 피에몬테의 전형적인 초콜릿과 현지 헤이즐넛을 혼합해 만든 것으로 삼각형 모양이 특징이다. 이 초콜릿은 기념품으로 판매되기도 하며 피에몬테 초콜릿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복숭아는 피에몬테의 전통적인 여름철 디저트이다. 복숭아 속을 파내고 부서진 아마레티 비스킨, 코코아, 설탕 및 리큐어의 혼합물로 채운 후 오븐에서 구워 휘핑 크림과 함께 먹는다.


■와인
▷피에몬테의 와인 문화는 전통과 혁신의 조합이 특징이다. 많은 생산자가 전통적인 와인 제조 방법을 유지하면서도 와인의 품질을 개선하기 위해 새로운 기술을 채택하는 데 개방적이다.

▷피에몬테는 이탈리아의 가장 유명한 와인 산지 중 하나로, 매우 우수하고 독특한 와인을 생산한다.


<발레 다오스타>
중세에는 다양한 왕국과 대립하여 그 역사가 풍부한 지역이다. 요리는 간결하면서도 풍부한 맛을 자랑하며, 육류와 치즈 그리고 현지에서 생산된 재료를 사용한 요리가 주를 이룬다.


■도시&역사정보
▷이탈리아 서북쪽에 위치하고 있는 발레 다오스타는 알프스산맥으로 둘러싸인 주이다.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몽블랑'도 이 지역에 속한다.

▷이곳의 독특한 문화는 이탈리아, 프랑스, 스위스의 영향이 혼합된 것이다.

▷아오스타는 발레 다오스타의 주도로, 인구 3만 5000명의 소도시이다.

▷이 아름다운 마을은 이탈리아 알프스의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고 멋진 산, 계곡 및 빙하로 둘러싸여 있으며 풍부한 역사, 독특한 문화, 숨 막히는 자연의 아름다움으로 유명하다.

▷이 지역은 로마 시대의 중요한 군사 전초 기지 역할을 했으며 여러 군사 막사와 요새가 이곳에 세워졌다. 또한 이곳은 알프스를 넘어가는 주요 무역로의 거점 역할을 했다.

▷아오스타의 자연은 매우 아름답다. 이 마을은 우뚝 솟은 산, 무성한 녹색 계곡, 맑은 강으로 둘러싸여 있다. 이곳에서 가장 인기 있는 관광 명소 중 하나는 산양, 독수리 등 희귀하고 멸종 위기에 처한 여러 야생 동물의 서식지인 '그란 파라디조 국립공원'이다. 이곳에서는 스키, 하이킹, 암벽 등반 등 다양한 야외 활동을 즐길 수 있다.

▷아오스타는 목각, 자수, 레이스 제작 등 전통 예술과 공예품으로도 유명하다.


■요리
▷발레 다오스타의 요리는 따뜻하고 맛있으며 까다로운 미각을 만족시키기에 적합한 특징을 지니고 있다. 또한 이 지역에서는 진정한 산악 요리를 경험할 수 있다.

▷추운 산악 지방을 오가며 굳은 치즈를 녹여 먹은 것에서 유래한 스위스의 '라클렛', 프랑스의 '퐁뒤'와 같은 '폰두타'를 즐겨 먹는다.

▷폰티나 치즈와 우유, 버터로 만든 '발도스타나 폰두타'는 발레 다오스타에서 가장 인기 있는 요리중 하나다.

▷전통 요리 중 하나인 '폴렌타 콘치아'는 폰티나 치즈가 폴렌타와 층을 이루고 오븐에서 구워진 푸짐하고 맛있는 요리이다.

▷이 지역의 전통 수프는 산악 지대의 기후와 식문화에 맞춰 고안된 따뜻하고 영양가 높은 요리이다. 대표적인 예로는 '주파 알라 발펠리넨체' 수프를 들 수 있다.

▷고기는 발레 다오스타 요리의 기본 요소이다. 버섯과 허브 폴렌타를 곁들인 '로스트 비프'와 쇠고기, 양파, 적포도주로 만든 고기 스튜인 '카르보나다' 등이 있다.

▷또 다른 전통 요리 '코테키노 콘 렌티키에'는 돼지고기 소시지인 '코테키노'와 렌틸콩'을 결합해 다양한 맛의 균형을 이룬다.

▷'아르나디'는 다오스타 계곡에서 생산되고 이탈리아 식품에서 최고 등급을 부여하는 'DOP' 햄의 일종으로, 지역 환경 덕분에 독특한 맛을 지니고 있다.


■디저트
▷발레 다오스타는 지리적 위치와 풍부한 역사가 만든 다채로운 문화 요소를 반영하는 독특하고 맛있는 디저트로 풍부한 곳이다.

▷호두와 꿀로 만든 케이크인 '토르타 디 노치'는 보통 디저트로 먹거나 축제 기간에 참가자들에게 제공된다.

▷'테골레'는 '지붕 타일'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 발레 다오스타의 전통적인 얇고 바삭바삭한 쿠키이다.

▷'파네토네 발도스타노'는 발레 다오스타의 전통적인 크리스마스 케이크이다.

▷'밀레폴리에'는 '수천개의 잎'이라는 의미이다. 이는 퍼프 페이스트리와 샹티이 크림을 번갈아 겹겹이 쌓고 그 위에 신선한 베리나 현지 꿀을 뿌린 요리로, 특별한 날에 딱 맞는 디저트이다.

▷'살리뇽'은 리코타 치즈에 향신료와 허브를 섞어 만든 전통적인 치즈 요리이다.


■와인
▷발레 다오스타는 와인으로도 유명하다. 이곳의 와인은 과일 향과 매운맛으로 유명하며 현지 요리와 함께 즐기는 것이 가장 좋다.

▷발레 다오스타는 고도가 높은 포도원에서 자란 적포도에서 얻은 '토레테 스푸만테'와 같은 스파클링 와인도 유명하다.

▷발레 다오스타에서 널리 재배되는 '프티 루즈' 포도 품종으로 만든 '앙페 다르비에'는 상쾌함과 스파이시함이 균형을 이룬 독특한 개성을 지닌 로제 와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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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 다오스타의 와인은 산악 지역과 생산자의 열정을 반영하는 독특한 생태적인 보물이다.


<프리울리-베네치아 줄리아>
고대 로마, 비잔티움 제국, 오스트리아, 베네치아 공화국 등 다양한 제국과 국가에 속해 있었다. 이 지역의 요리는 여러 문화의 영향을 받아 특유의 다양성과 풍부한 맛을 자랑하며, 특히 해산물 요리와 신선한 채소를 활용한 요리가 유명하다.


■도시&역사정보
▷이탈리아 북동부에 위치하고 있는 아름다운 지역으로, 풍부한 역사와 문화, 독특한 자연의 아름다움, 다양한 요리 전통이 있어 여행객에게 완벽한 곳이라 할 수 있다.

▷이곳의 요리는 지리적 위치와 역사의 영향을 받아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및 슬로베니아의 다양성이 독특하게 혼합됐다.

▷프리울리-베네치아 줄리아는 수많은 축제, 박람회, 행사가 열리는 활기찬 곳으로도 유명하다. 가장 유명한 행사 중 하나는 전 세계의 영화 제작자와 영화광을 끌어들이는 '트리에스테 국제 영화제'이다.

▷이 매력적인 도시는 '우니타 디탈리아 광장'과 아름다운 '미라마레 성'을 비롯한 많은 문화 명소가 있는 곳이다. 이 지역은 '고라치아 성'과 우디네 성' 등 많은 성이 있어서 중세 시대를 엿볼 수 있다.

▷프리울리-베네치아 줄리아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지역이기도 하다. 또 아름다운 해변과 맑고 투명한 바다가 있는 멋진 아드리아 해안선의 본고장이기도 하다.


■음식
▷이탈리아, 슬로베이나, 오스트리아의 영향으로 다양한 요리가 발달한 미식의 천국이다.

▷'프로슈토 디 산 다니엘레'와 같은 질 좋은 절인 고기와 '몬타지오', '아시아고' 같은 맛있는 치즈도 유명하다.

▷이곳의 유명한 요리 중 하나는 바삭한 치즈 팬케이크인 '프리코'이다. 다른 인기 있는 요리는 '조타'로, 저린 고기인 '살라메 디 사우리스'도 유명하다.

▷이곳은 아드리아해와 인접해 있어 해산물 요리도 유명하다.

▷가장 유명한 요리로는 '브로테토', 소금에 절인 대구 스튜인 '바칼라 알라 트리에스티나'와 토마토 기반의 소스로 요리한 스캄피 요리인 '스캄피 알라 부자라'는 이곳의 주식이기도 하다.


■치즈
▷이 지역은 지역성을 반영하는 다양한 치즈로 유명하여 잘 알려진 치즈 중 하나는 주로 우디네 지방과 고리치아 지방에서 생산되는 단단한 치즈인 '몬타지오'이다.

▷프리울리-베네치아 줄리아의 양유 치즈는 이 지역의 중요한 유제품 유산을 대표하며 독특한 특성으로 높이 평가된다.

▷'페코리노 프리울라노'는 이곳에서 생산된 양유로 만든 전통 치즈이다. 약간 단단하고 헤이즐넛 향이 나는 산미가 느껴진다.

▷'루스티코 프리울라노'는 양유와 우유, 때로는 양유와 염소유를 혼합해 얻은 치즈이다. 이 치즈는 산악 지역에서 생산되며 숙성돼 독특한 맛이 난다.

▷우유로 만든 반경질 압착 치즈인 '라테리아'도 이곳의 자랑이다.


■디저트
▷'구바나'는 프리울리 지역에서 탄생한 전통 디저트로 발효한 반죽과 재료를 달팽이 집 모양으로 말아 굽는다. 단면에도 나선형 무늬가 나타나며 그라파나 화이트 와인과 함께 먹으면 맛이 풍부해진다.

▷'프레스니츠'는 특히 트리에스테 지역과 연관이 있는 디저트이다. 이것도 달팽이 집 모양으로 감아 굽는다. 이 케이크는 19세기 초 오스트리아 황제를 위해 처음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프리코'는 정확히 디저트는 아니지만, 달콤한 버전도 있는 전통 요리이다.

▷'스트루콜로 데 포미'는 트리에스테의 전형적인 디저트인데 사과, 건포도, 잣, 계피로 채워진 슈트루델이다.

▷'토르타 살라타'는 다양한 재료를 사용한 짭짤한 타르트로, 프랑스의 바삭한 케이크인 갈레트와 비슷한 반죽을 얇게 펴서 채소, 치즈, 고기 등을 채워서 굽는다.


■와인
▷이곳의 와인 지역인 '콜리오'는 여행객이 꼭 방문해야 할 곳이다. 이탈리아 최고의 화이트와인을 생산하는 곳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프리울라노'는 콜리오의 가장 특징적인 화이트와인 중 하나이다.

▷레드 와인의 '메를로'는 콜리오에서 가장 많이 재배되는 적포도 품종이다. '폴리오 메를로'는 부드럽고 둥근 보디감, 잘 익은 붉은 과일 향과 매콤한 향으로 높이 평가된다.

▷'콜리오 카베르네 프랑' 와인은 검은 과일, 허브, 향신료의 복합적인 향과 우아한 구조감, 입안에 오래 지속되는 여운이 특징이다. 이 와인은 좀 더 전통적인 스타일로 양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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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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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역사의 중심지로, 풍부한 문화유산을 간직한 지역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술관과 박물관을 포함한 수많은 관광 명소가 위치하고 있으며, 또한 피자, 파스타와 같은 이탈리아 요리의 고향이기도 하다.
▶역사와 예술을 중시하는 곳으로서 매년 많은 관광객이 이곳을 방문한다.


<마르케>
로마 제국의 영향을 받으면서 중세에는 도시 국가로 번성했고, 이탈리아 르네상스기의 중요한 발전 지역 중 하나가 되었다. 마르케 요리는 단순하면서도 풍부한 맛을 자랑한다. 특히 트러플, 신선한 해산물 요리가 인기가 많다.


■도시&역사정보
▷이탈리아의 아드리아해 연안에 위치하고 있는 지역으로 아름다운 해변과 산악 지형을 볼 수 있으며 문화유산이 풍부한 곳이다.

▷금속 가공과 도자기 생산 기술로 유명한 '피체니족'이 거주했던 로마 이전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고대 역사를 지니고 있다. 고대 로마는 피체니족이 살던 곳을 정복하여 '피체눔'이라 불렀다.

▷중세 시대에는 마르케 지역의 많은 도시가 상업과 문화의 중심지로 번성해 예술, 건축, 문학의 발전에 기여했다.

▷르네상스 시대에 마르케는 예술적, 문화적 번영을 경험했다. 르네상스 3대 거장 '라파엘로 산초'를 비롯한 많은 예술가가 이곳에서 태어나거나 활동하며 이탈리아와 세계 예술계의 큰 흔적을 남겼다.

▷19세기 이탈리아 통일 이후 마르케 지역은 이탈리아 왕국의 일부가 돼 국가의 경제적, 사회적 발전에 기여했다.

▷오늘날 마르케는 아름다운 경치, 예슬과 문화유산은 물론, 전통 요리와 고급 와인으로 유명하다. 이 지역은 역사와 전통이 풍부하고 전 세계에서 방문객을 끌어들이는 매혹적인 장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대표적인 관광지로는 '아스콜리 피체노'와 '우르비노'가 있다.


■음식
▷마르케는 해안을 따라 널리 퍼져 있는 해산물 요리와 내륙의 인기 있는 요리법으로 해안과 내륙 지역의 영향을 골고루 반영한 다양한 요리의 전통을 자랑한다.

▷새우, 조개 등의 해산물과 함께 올리브유, 와인, 트러플 등의 특산물이 유명하다.

▷'올리브 아스콜라네'는 이탈리아 전역에서 유명한 애피타이저이다.

▷'브로테토'는 화이트와인과 마늘로 맛을 낸 토마토소스와 다양한 현지 해산물로 만든 해물 스튜이다.

▷'빈치스그라시'는 파스타, 미트 소스, 베샤멜 소스, 파마산 치즈를 겹겹이 쌓은 라자냐 요리이다. 단맛이 나며 마르케 요리의 상징이기도 하다.

▷'탈리아텔레 알 타르투포'는 트러플 생산으로 유명한 이곳의 파스타 요리이다.

▷'크레시아 스폴리아타'는 마르케 지역의 전형적인, 속을 채운 포카차의 일종으로, 얇은 반죽 층에 치즈, 절인 고기 또는 야채를 채우기도 한다.


■치즈
▷마르케 지역은 여러 가지 종류의 치즈도 생산한다.

▷'카시오타 두르비노'는 우유와 양유를 혼합해 만든 부드러운 숙성치즈로, 섬세하며 고소한 풍미가 있다.

▷'페노리노'는 양유 치즈로, 신선하고 순한 것부터 숙성된 톡 쏘는 맛까지 여러 숙성 단계를 거친 것들이 있다.

▷'라비졸로'는 우유 또는 혼합유로 만든 신선한 치즈이다.


■디저트
▷마르케에는 흥미로운 디저트도 많다.

▷'피코나티는 마르케에서 유명한 디저트이다.

▷'치암벨로네'는 부드러운 질감과 약간의 레몬 향이 나는 전통적인 케이크이다.

▷'프루스틴고'는 말린 과일, 견과류, 꿀, 향신료로 만든 크리스마스 케이크이고 '판체로티'와 '칼초니'는 여러 재료를 혼합해 속을 채운 달콤한 만두 같은 피자이다.

▷사과 튀김인 '프리텔레 디 멜레'는 이곳의 전통 디저트이다.

▷'치체르키아타'는 마르케 지역의 크리스마스 디저트로, 작은 공 모양의 반죽을 튀겨서 꿀과 섞은 일종의 달콤한 도넛이다.


■와인
▷마르케 지역은 훌륭한 와인 생산으로 유명하다. 이 지역의 와인은 '베르디키오', '로소' 등이 유명하다.

▷'라크리마 디 모로 달바'는 향기가 인상적인 와인이다. 라크리마는 '눈물'이라는 뜻인데, 포도가 숙성했을 때 눈물처럼 진액이 흘러나오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라치오>
고대 고마의 중요한 항구 도시로서 역사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특히 로마 제국의 휴양지로 유명하며 라치오 요리는 지중해 특유의 신선하고 풍부한 맛을 가진다. 특히 해산물 요리와 신선한 채소를 활용한 요리가 인기가 있다.


■도시&역사정보
▷이탈리아 중부에 위치하며 로마를 비롯한 다양한 도시와 아름다운 자연 경관, 맛있는 음식과 와인으로 유명하다.

▷밀라노, 피렌체 등과 같은 대도시들과 교통이 잘 연결돼 있고, 로마 제국의 유산으로 잘 알려진 고대 로마시가 있어 풍부한 문화와 역사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로마 제국 시대의 유적지인 '콜로세오', '판테온', '팔라티노' 등은 라치오 지역의 대표적인 관광지이다. 또한 '바티칸 시국', 교황의 별장인 '카스텔 간달포' 등도 유명하다.

▷이 밖에 '티볼리 정원', 테르미니의 '스파 타운' 등이 있다. 티볼리 정원은 전통적인 이탈리아풍의 아름다운 정원과 로마 제국 시대에 건설된 아르데코 양식의 빌라로 유명하다.


■음식
▷라치오 지역은 이탈리아의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음식과 와인이 풍부하고 로마 요리로 유명하다. '파스타 카르보나라', 로마식 피자 카프레제', '아마트리치아나 파스타' 등이 많이 알려져 있다.

▷'스파게티 알라 카르보나라'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로마에 주둔한 미군이 베이컨과 달걀을 식량으로 가져왔을 때 탄생했다고도 한다. 덕분에 식량이 부족했던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이탈리아 요리의 독창성을 보여 줬던 간단하면서도 믿을 수 없을 만큼 풍미가 가득한 요리이다.

▷'부카티니 알라마트리치아나'는 또 다른 로마 요리의 고전으로 통하는 파스타이다.

▷'살팀보카 알라 로마나'는 생햄과 세이지 잎으로 덮은 송아지 고기 조각을 화이트와인, 버터와 함께 팬에 조리한다. 섬세하고 향긋한 맛이 나는 요리이다.

▷'수플리'는 주먹밥에 라구, 모차렐라 치즈를 넣고 튀긴 것으로, 보통 간식이나 애피타이저로 먹는다.

▷'아바키오 알라 스코타디토'는 어린 양고기를 절여 구워 낸 요리이다.

▷라치오의 요리는 로마라는 도시의 역사와 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다. 신선하고 소박한 재료를 사용한 다양한 요리들은 수 세기에 걸친 이 지역 여러 공동체의 영향을 보여 주기도 한다.


■치즈
▷라치오 지방은 다양하고 맛있는 치즈를 탄생시킨 전통으로 유명하다. 이곳의 전형적인 치즈 종류는 다음과 같다.

▷'페코리노 로마노'는 라치오의 가장 상징적인 치즈로, 파스타나 수프에 갈아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카초피오레'는 라치오의 비테르보 지방의 대표적인 치즈이다. 부드러운 식감과 달콤하고 섬세한 맛이 있어 치즈 자체만 먹거나 갓 구운 빵과 함께 먹어도 좋다.

▷'피오레 델 라치오'는 '라치오의 꽃'이라는 의미로, '피오르 디라테'라고도 알려진 꽃 모양의 치즈이다. 부드러운 질감으로 인해 빵에 바르거나 신선한 과일과 함께 즐기기에 적합하다.

▷풍부한 토지와 목초지를 갖춘 라치오 지방은 지역의 낙농 전통을 반영하여 독특한 맛의 다양한 치즈를 생산한다.


■디저트
▷라치오에서 인기 있는 디저트로는 '마리토초', '크로스타타 디리코타', '칸놀리 알라 로마나', '모스타촐리', '주파 잉글레제', '판잘로' 등이 있다.

▷'마리토초'는 달콤한 전통적인 로마식 롤빵으로, 아침 식사 또는 디저트로 먹는다.

▷'크로스타타 디 리코타'는 전통적인 이탈리아 리코타 치즈 타르트이다.

▷'칸놀리 알라 로마나'는 부드러운 스펀지 케이크와 비슷한 반죽으로 만든 파이프 모양의 페이스트리이다.

▷'모스타촐리'는 꿀, 아몬드, 코코아로 만든 다이아몬드 모양의 쿠키이다.

주파 잉글레제
▷'주파 잉글레제'는 라치오뿐 아니라 이탈리아 전역에서 인기 있는 디저트이다.

▷'판잘로'는 전통적인 로마의 크리스마스 디저트로, '판잘로'라는 이름은 이탈리아어로 '노란 빵'을 의미하는 '파네 잘로'에서 유래했으며 황금색 빵을 의미한다.


■와인
▷라치오의 대표적인 와인으로는 가벼운 맛과 깨끗한 향이 특징인 화이트와인 '칸넬리노디 프라스카티'와 레드 와인 '체사네제델 피글리오 DOCG'가 있다. 칸넬리노 디 프라스카티는 로마에서 40km 떨어진 프라스카티 지역에서 생산되며 약간 스파이시한 맛이 특징이다.

▷'마리노'는 맛이 진하고 강한 향이 있으며 '카스텔리 로마니'는 과일 향이 강하고 달콤하다.

▷'트레비아노'는 밝은 노란색을 띠며 과일 향과 깔끔한 맛이 특징이다.

▷'세자네제'는 향이 풍부하고 산미가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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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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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해변과 섬들로 유명하며 지중해의 따뜻한 기후를 즐길 수 있는 자연적인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농촌 지역이 많아 신선한 농산물과 해산물 그리고 풍미 있는 와인과 더불어 맛있는 음식을 맛볼 수 있다.
▶그리스, 로마 유적지와 중세 시대의 마을이 많이 있으며 고대 유적지도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있다.
▶이탈리아 남부는 다양한 문화의 영향을 받은 지역으로, 그 특성이 고대부터 이어져 내려와 복합적이고 다양한 문화를 지니고 있다.


<바질리카타>
로마 제국 시대에는 군사적 중요성을 갖췄으며, 중세 시대에는 성장하면서 도시 문화가 번성했다. 요리는 지중해의 신선한 재료를 활용하여 특유의 간단하면서도 풍부한 맛을 자랑한다.


■도시&역사정보
▷'루카니아'라고도 알려진 바질리카타는 이탈리아 남부에 위치하고 있는 지역으로, 유구한 역사와 문화를 지니고 있으며 멋진 풍경과 독특한 요리, 인상적인 역사적 명소로 유명하다.

▷오늘날 바질리카타를 방문하는 여행객들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고대 도시 '마테라'를 포함한 많은 역사적인 랜드마트를 둘러볼 수 있다. 마테라는 구석기 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던 것으로 여겨지는 '사시'라고 알려진 독특한 동굴 거주지로 유명하다.

▷바질리카나는 자연의 아름다움으로도 유명하다. 이곳에는 '폴리노 국립공원'과 '아펜니노 루카노 국립공원'이 있으며 두 곳 모두에서 이탈리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연 경관을 경험할 수 있다. 또한 모래사장과 맑은 바닷물이 특징인 해안선도 아름답다.


■요리
▷바질리카나는 담백하고 신선한 재료를 사용해 풍성한 맛을 내는 요리로 유명하다.

▷유명한 전통 요리는 '파스타 콘 이 페페로니 크루시'로, 마른 고추를 얹어 바삭해질 때까지 튀긴 파스타이다. 이 요리는 현지 재료 사용과 지역 요리의 창의성을 보여 주는 전형적인 예이다.

▷또 다른 전통 요리로는 나무 화덕에서 굽는 소박한 빵의 일종인 '파네 디 마테라'가 있다. 이 빵은 바삭한 크러스트와 부드러운 크림으로 유명하며 다양한 요리의 베이스로 사용된다.

▷'루카니카'는 바질리카타의 전형적인 소시지로, 다진 돼지고기를 채워 현지 향신료로 맛을 낸다.

▷말린 잠두콩과 향기로운 허브로 맛을 낸 걸쭉한 수프인 '파바 코토라'와 같은 콩류 요리도 유명하다.

▷바질리카타의 상징적인 요리인 '파스타 알라 포텐티나'는 목동들의 소박한 식사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파스타 알라 포텐티나는 가장 맛있는 식사가 장 단순한 재료와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탄생할 수 있다는 점을 상기시켜 준다.


■치즈
▷바질리카타의 치즈는 달콤한 향기와 부드러운 식감, 풍부한 맛을 가진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치즈 중 하나이다. 특별한 모습과 풍미로 이탈리아 요리의 정수를 표현하는 치즈이다.

▷'리코타 디 카프라'는 염소유로 만드는데, 치즈를 만들 때 젖을 거르고 남은 액체로 만든 신선한 치즈이다. '리코타'는 '재생', '다시 요리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일반적으로 치즈 만드는 과정에서 남은 우유를 재활용해서 만든다. 크리미한 농도와 섬세한 맛이 있어 달콤하고 풍미 있는 요리에 자주 사용된다.

▷이 밖에도 강하고 향긋한 풍미가 있는 숙성된 페코리노 치즈인 '코리노 디 필리아노'를 비롯한 다양한 치즈를 생산한다.


■디저트
▷'모스타촐리'는 꿀, 초콜릿, 견과류, 향신료가 들어간 페이스트로 만든 직사각형 또는 원통 모양의 비스킷이다. 구운 후 초콜릿 아이싱이 감싸기도 한다.

▷'카르텔라테'는 밀가루, 레드 와인, 기름, 설탕으로 만들어 페이스트를 얇은 장미 모양으로 튀긴 디저트이다. 튀긴 후 보통 꿀이나 달콤한 과일 시럽인 빈 코토에 담근다.


■와인
▷바질리카타는 현지에서 재배한 토종 포도로 만든 와인으로도 유명하다. 이곳은 이탈리아 최고의 적포도 중 하나로 꼽히는 '알리아니코' 포도로 만든 풀보디 레드 와인 '알리아니코 델 불투레'의 고향이기도 하다. 이 와인은 검은 과일, 가죽, 담배 향 등 복합적인 풍미를 지니고 있다.

▷'알리아니코 델 불투레'는 화산 토양에서 자란 포도에서 오는 독특한 미네랄리티와 구조가 특징이다. 이 와인은 강한 타닌과 높은 산도, 체리, 초콜릿, 향신료 향을 갖고 있다. 오래 숙성할수록 풍미가 좋으며 숙성 후에도 맛이 좋다.

▷알리아니코 포도로 만든 '로자토 디 리오네로'와 같은 로제 와인도 생산한다. 이 로제 와인은 신선함과 생동감으로 높이 평가된다.

▷이곳의 또 다른 토종 포도나무는 신선하고 향긋한 화이트와인을 만드는 '그레코 비앙코'이다. 흰색 과일, 감귤류 및 꽃 향을 지니고 있으며 지역 고유의 테루아를 반영한다.

▷바질리카타의 와인 생산은 전통적인 장인 정신과 함께 현지 와인의 진정성과 특성을 보존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바질리카타 와인은 뛰어난 특성과 복합성을 지닌 레드 와인으로, 지역의 독특한 생태적 유산을 나타낸다. 와인 애호가이거나 이탈리아의 잘 알려지지 않은 와인의 분위기를 알고 싶다면 바질리카타의 와인은 확실히 경험해 볼 가치가 있다.

▷바질리카타는 종종 소화제로 사용되는 쓴맛의 허브 리큐어인 '아마로 루카노'와 같은 리큐어로도 유명하다. 또 다른 리큐어로는 야생 허브와 꿀로 만든 달콤한 '사사노'가 있다.


<시칠리아>
이탈리아의 가장 큰 섬으로, 지중해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다. 고대 그리스 식민지로 시작하여 로마 제국의 영토가 되었으며, 중세에는 다양한 왕국과 군주들의 통치를 받았다. 시칠리아 요리는 지중해의 풍부한 재료를 활용하여 다양한 맛과 향을 자랑하며, 특히 피자, 파스타, 카포나타 등이 유명하다.


■도시&역사정보
▷지중해에서 가장 큰 섬인 시칠리아는 이탈리아 남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본토와의 사이에 메시나 해협을 두고 있다..

▷시칠리아는 세계에서 45번째, 유럽에서 7번째로 큰 섬이며 지중해 중심부에 자리하고 있다.

▷시칠리아는 고대 그리스의 문화 중심지였으며 다양한 문화가 이 지역에 영향을 미쳤던 역사적 배경으로 인해 그리스, 로마, 바로크 등 다양한 스타일의 건축물과 문화유산이 발견된다.

▷아름다운 해안선을 자랑하는 '팔레르모'는 시칠리아의 주도이자 최대 도시이다.

▷이곳의 여러 시장 중 '발라로', '부치리아', '카포'는 국제적으로 유명하다.

▷카타니아 인근의 에트나 화산은 유럽에서 가장 높은 화산으로 유명하며 아름다운 경관을 감상할 수 있는 인기 있는 관광지이다.


■음식
▷시칠리아의 먹거리는 이 지역을 여행하는 이들에게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 이곳은 자연에서 재배되는 식물과 고유의 조리법으로 만들어진 요리가 많고, 지중해의 다양한 식재료와 문화적인 영향이 결합하여 다른 이탈리아 지역의 음식과는 또 다른 특별한 맛과 향을 자랑한다.

▷시칠리아 지역에서 유명한 음식 중 하나는 '아란치니'이다. 아란치니는 10세기부터 만들어 먹던 이탈리아의 전통적인 안티파스토 요리이다. 둥글게 뭉쳐서 굽거나 튀긴 모양이며 간단하고 맛있어서 인기가 매우 높다.

▷'카르파초 디 페셰'는 연어, 참치, 농어 등 생선을 얇게 썰어 레몬즙, 올리브유, 소금, 후추로 절인 후 신선한 샐러드나 크루통과 함께 먹는 가볍고 세련된 요리이다.

▷생선 튀김인 '푸리투라 디 파란차'는 다양한 작은 생선과 해산물을 반죽에 넣고 바삭하게 튀긴 요리이다.

▷'스카차타 카타네제'는 맛있는 시칠리아의 치즈 파이로, 카타니아 지역의 전통적인 크리스마스 요리이다.

▷시칠리아는 파스타의 고향이라고도 한다. 많은 파스타 중에서 '부카티니 콘 레 사르데'는 신선한 정어리와 허브, 사프란, 건포도, 잣, 소금에 절인 엔초비 등이 들어가며, 아랍 요리의 영향을 받은 파스타이다. 우리가 많이 알고 있는 '리소토'라는 음식도 밀라노에서 기원한 것이 아니라 시칠리아에 들어온 아랍인들이 만들어 먹었던 쌀 요리이다.


■치즈
▷미식 전통이 풍부한 섬인 시칠리아는 풍요로움을 반영하는 고품질 치즈 생산으로 유명하다.

▷'페코리노 시칠리아노 DOP'는 양유로 만드는 단단한 치즈이다.

▷'라구자노 DOP'는 이탈리아의 고유한 치즈로, 고대부터 전통적으로 시칠리아에서 생산됐다.

▷'프로볼라 데이 네브로디'는 네브로디 산맥 지역에서 생산되는 늘어지는 연한 치즈이다. 둥근모양과 일관성 있는 탄력을 지니고 있으며 호두나무와 밤나무로 훈연 가공해 맛은 달고 살짝 스모키한 향이 난다.

▷'카네스트라토'는 시칠리아의 여러 지역에서 생산되는 단단한 치즈이다. 이름은 전통적인 바구니 모양에서 유래됐다. 강하고 향긋한 맛이 있으며 맛을 내기 위해 양념을 하기도 한다.


■디저트
▷'칸놀리', '카사타', '세테벨리', '그라니타', '젤라토'와 같은 디저트는 시칠리아에서 처음으로 시작된 디저트로 알려져 있다.

▷파이프 모양으로 튀긴 페이스트리 속을 크림 등으로 채운 '칸놀리'는 팔레르모 지역에서 유래하거나 유명해진 디저트이다.

▷'그라니타'는 슬러시처럼 얼음을 갈아 커피, 아몬드, 과일주스 등을 넣은 것이고 우리에게도 익숙한 젤라토는 쫀득한 이탈리아식 아이스크림이다.


■와인
▷시칠리아 와인은 섬의 풍부한 역사, 문화 및 테루아를 반영하는 독특하고 다양한 맛으로 유명하다.

▷이곳에서 인기있는 와인 중 하나인 '네로 다볼라'는 어두운 과일 향과 향신료 향이 나는 풀보디 레드 와인이다.

▷네로 다볼라를 비롯한 시칠리아 와인은 발표와 숙성을 위해 테라코타 암포라를 사용하는 등 독특한 와인 제조 기술을 사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러한 기술한 대대로 전해지는 섬의 풍부한 문화유산 중 하나이다.

▷섬은 따뜻하고 햇볕이 잘 듦과 동시에 바다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온도를 조절하면서 포도 재배에 완벽한 조건을 조성한다. 섬의 토양은 화산 토양, 석회암 및 점토로 매우 다양하며 모두 시칠리아 와인의 독특한 풍미와 향에 영향을 미친다.

▷시칠리아의 주요 와인으로는 '에트나 로소', 마르살라', 파시토 디 판텔레리아' 가 있다.

▷'에트나 로소'는 에트나산의 화산 토양에서 자란 포도로 만들며, 뛰어난 미네랄리티, 높은 산미, 복합적인 과일 향을 가진다.

▷'마르살라'는 강화 와인인데, 숙성과정에서 캐러멜, 견과류, 말린 과일 향이 난다. 드라이부터 스위트까지 다양한 스타일이 있고 주로 요리 재료로 사용하지만, 디저트 와인으로도 즐길 수 있다.

▷'파시토 디 판텔레리아'는 건포도로 만든 디저트 와인이다. 농축된 과일 향과 높은 당도를 자랑한다.


<사르데냐>
지중해에 있는 이탈리아 섬으로, 카르타고와 로마 제국의 영토가 되었으며, 중세에는 피사 왕국의 아라곤 왕국의 영향을 받았다. 사르데냐 요리는 특유의 풍부한 향신료와 해산물을 사용하여 맛을 낸다는 특징이 있다. 그중에서도 파스타, 해산물 요리가 유명하다.


■도시&역사정보
▷이탈리아 반도의 중간쯤에 위치하고 있는 섬으로, 오래전부터 여러 문명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볼거리가 풍부하다.

▷이탈리아의 섬 중 두 번째로 큰 사르데냐에서는 지중해 해안의 푸른 바다와 함께 신비로운 석호, 웅장한 산맥 등 자연의 아름다움과 풍부한 음식, 와인, 디저트를 만나볼 수 있다.

▷중세 성당, 요새 등 많은 역사 유산을 가지고 있으며 이 지역만의 독특한 언어와 전통을 유지하고 있다.

▷사르데냐의 주도인 '칼리아리'는 중세 요새와 성당 등 전통적인 건축물, 돌로 만들어진 성벽과 탑 등이 매력적인 해안 도시이다. 아름다운 해변과 해상 생태계로 유명해 다이빙, 스노클링, 서핑 등 다양한 수상 활동을 즐길 수 있다.


■음식
▷사르데냐의 먹거리는 지중해 음식의 전통과 풍부한 식재료를 기반으로 한 특색 있는 음식들이 많다. 사르데냐에서는 지중해의 전통적인 먹거리를 즐길 수 있고, 유기농 농장과 과수원이 많아 신선한 과일과 채소를 맛볼 수 있다.

▷사르데냐의 대표적인 음식인 사르데냐 양고기 요리는 이 지역에서 자주 먹는 전통 요리로, 양고기를 구운 후 로즈마리, 생강, 감귤 등 다양한 향신료와 함께 즐기는 것이 특징이다.

▷또 다른 유명한 음식은 '포르세토'로, 이는 돼지고기를 구운 후 고추, 로즈마리 등의 허브와 함께 먹는 이탈리아 전통 요리이다.

▷'포르세두'로 알려진 돼지고기 요리도 매우 유명한데, 오로지 어미의 모유만 먹은 무게 8kg이 채 되지 않는 새끼 돼지로 만들어서 매우 부드럽다.

▷이 지역에서 즐겨 먹는 음식은 꼬치구이 '스피에디노'와 '쿨루르조네스 파스타'이다. '스피에디노'는 양고기, 돼지고기, 소고기 등 다양한 육류와 채소를 꼬치에 꽂아 불에 구운 요리이며 '쿨루르조네스 파스타'는 지중해 지역에서 유래된 것으로, 쇠고기, 치즈, 감자 등을 가득 채운 파스타이다.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해산물 요리인 '스파게티 알레 봉골레'는 바다에서 채집한 조개로 조리해 매우 싱싱하고 가벼운 맛을 느낄 수 있다.

▷'파네 카라자우'라고 불리는 빵은 독특한 맛과 긴 유통 기한으로 사랑받는 사르데냐 요리의 아이콘이다.

▷'페코리노 사르도'는 양유로 만들며 1991년 원산지 지명을 부여받았다. 유럽 연합의 보호를 받는 치즈 중 하나이다. 이 치즈는 깊은 맛과 함께 씹는 맛과 향이 일품이다.

▷이곳에서만 생산되는 아주 독특한 치즈로는 파리 유충을 이용해 발효시킨 양유로 만든 페코리노인 '카주 마르추'가 있다. 곤충 알이 치즈 안에 있는 것으로 알려진, 일명 '썩은 치즈' 또는 '구더기 치즈'이다. 발효 과정을 넘어 부패돼 치즈 안의 유충이 죽은 상태가 되면 이 치즈는 먹을 수 없으므로 유충이 살아 있을 때 먹는다고 한다. 전통 사르데냐 치즈이며, 미국에서는 판매가 금지된 치즈이다. 대담한 맛과 전통 생산 방식으로 유명한 독특한 치즈이다.


■디저트
▷이곳은 독특하고 맛있는 진미를 포함한 풍부한 제과 전통으로 유명하다.

▷잘 알려진 디저트 중 하나는 얇은 반죽에 신선한 치즈를 채우고 꿀에 찍어 튀긴 '세아다스'이다.

▷다른 전통 디저트로는 부드러운 아몬드 맛의 비스킷인 '사르데냐 아마레티'와 건포도와 말린 과일로 만든 작은 과자인 '파파시니'가 있는데, 크리스마스 기간에 많이 만들어 먹는다.

▷또 다른 유명한 디저트로는 '세미프레도'이다. 세미프레도는 '반 얼음 상태'를 의미하는데, 마치 아이스크림과 케이크가 합쳐진 것 같은 맛이다. 프레드는 특히 여름에 인기 있는 디저트이다.

▷새콤달콤한 딸기와 마스카르포네 치즈로 만든 '푸디나'도 사르데냐 지역에서 많이 먹는 디저트 중 하나이다.


■와인
▷사르데냐의 포도 재배는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이 지역은 독특한 와인으로 유명하다.

▷'칸노나우 디 사르데냐'는 주로 지역 특산품인 칸노나우 포도로 만드는 사르데냐의 독특한 와인 중 하나이다. 칸노나우 와인은 사르데냐뿐 아니라 이탈리아 전역에서 사랑받는 와인이다.

▷누라기 석탑의 전설은 칸노나우를 한 모금 마실 때마다 숨어 있는 마법과 아름다움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준다. 칸노나우를 함께 마시는 것은 지역 사회의 유대감을 강화할 수 있다고 여겨진다.

▷'베르멘티노 디 갈루라'는 신선하고 향기로운 고급 화이트와인으로, 사르데냐의 생선 요리와 아름답게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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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와인&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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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 더 알아보기

1. 와인의 역사
와인은 포도가 발효해 만들어진 알코올 성분의 술을 말한다. 우리나라 말로는 '포도주', 영어로는 '와인', 프랑스어로는 '뱅', 독일어로는 '바인', 스페인어와 이탈리아어로는 '비노'라고 한다. 포도주를 의미하는 이러한 단어는 '비눔'이라는 라틴어에서 유래했다.

처음 와인을 누가 언제 만들었는지는 알 수 없다. 와인은 기원전 600년경에 고대 로마로 전해지면서 누구나 마실 수 있는 술이 됐으며 이러한 와인의 보급은 로마 제국 원정기에 이르러 더욱 확산됐다. 유럽의 많은 지역을 정복한 로마군은 석회가 많고 오염된 물 대신 마실 수 있는 와인을 나눠 줬다고 한다.

와인은 4세기 초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기독교를 공인한 후 교회 성찬용으로 사용되면서 유럽에서 빠르게 확산됐고, 로마 제국의 멸망 후 중세 시대에도 로마 제국에서 그랬던 것처럼 종교적 의미를 유지하였다.

이렇게 와인은 역사의 발전과 함께 지역 생산품의 한계를 넘어서 오랜 시간에 걸쳐 세계화되었다.


2. 와인의 등급
와인 등급의 시작은 나폴레옹 3세가 1851년 최초의 만국 박람회장에서 영국의 최신 건물 등을 보고 자극받아 그들에게 없는 와인을 소개하기로 하면서 시작됐다.

1855년에는 프랑스의 공식 분류 등급이 만국 박람회에 소개됐다. 이것이 최초의 와인 등급이며 이후 프랑스는 1935년 <원산지 통제법>을 제정, 국가적인 와인 품질 관리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이러한 등급 체계는 와인을 생산하던 스페인, 이탈리아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탈리아 와인 등급 시스템은 와인의 품질과 원산지를 보장하기 위해 도입된 체계이다.

①DOCG
최고 등급의 와인으로, 원산지와 품질을 엄격하게 관리한다.

②DOC
DOCG보다 약간 낮은 등급이지만, 품질과 원산지를 엄격히 관리한다.

③IGT
비교적 자유로운 규제를 받는 와인 등급으로,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와인을 만들기 위해 도입되었다.

④VdT
가장 낮은 등급의 와인으로 일반적으로 '테이블 와인'이라고 한다.

이러한 등급 시스템은 소비자에게 와인의 품질과 원산지를 보장하며, 이탈리아 와인의 명성을 유지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이러한 등급이 와인 맛의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다.

와인을 선택할 때 등급에 연연하지 말고, 자신의 입맛에 맞는 와인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3. 와인의 구분
와인은 레드 와인, 화이트와인, 로제 와인, 스파클링 와인, 아이스 와인, 강화 와인으로 나눌 수 있다. 색에 따라 레드 와인, 화이트와인, 로제 와인으로 구분하고, 탄산가스가 함유된 발포성 와인은 스파클링 와인으로 분류한다.

①레드 와인
이탈리아인들이 매일 식사할 때 함께 마시는 레드 와인은 세포가 노화하는 것을 막아주고, 염증을 유발하는 효소를 억제해 면역력을 증가시킨다. 그리고 콜레스테롤을 제거하고 혈관을 튼튼하게 만들어 성인병을 예방하는 데 도움을 준다. 같은 레드 와인이라도 빛깔과 맛이 다른 이유는 포도 품종이 다르기 때문이다.

②화이트와인
화이트와인은 레드 와인 못지않게 건강에 좋다고 알려져 있다. 근육 생성에 도움을 주고, 식중독을 예방하기도 하며 항균 작용이 있어 식중독을 예방할 수 있다고 한다.

화이트와인은 청포도나 껍질을 제거한 적포도의 알맹이만을 사용해서 만드는 와인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레드 와인보다 낮은 온도에서 만들어지는데, 보통 7~13도 사이의 시원한 온도는 와인의 신선한 향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

화이트와인은 가볍고 신선한 요리와 잘 어울리는데, 예를 들어 해산물, 생선, 가금류, 신선한 치즈 및 야채 요리와 함께 먹는 것이 좋다.

화이트와인도 드라이 와인부터 스위트 와인까지 다양한 스타일이 있다. 화이트와인은 신선함과 향의 생동감을 느끼기 위해 숙성되기 전에 마시는 것이 좋다. 그러나 샤르도네와 같은 일부 품종은 숙성으로 인해 이점을 얻을 수 있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깊은 맛을 지닌다.

③로제와인
레드 와인과 화이트와인 말고도 그 중간 정도의 색을 띠는 예쁜 핑크빛의 로제 와인이 있다. 로제 와인은 포도가 익었을 때 수확하되, 너무 달지 않도록 해야 하고, 원하는 색상을 얻기 위해 수확 시기를 조정한다.

로제 와인을 만드는 데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그중 하나는 블랜딩 하는 방법이다. 또 다른 방법은 레드 와인과 마찬가지로 포도의 알과 껍질을 넣고 껍질의 색소와 타닌을 침용 과정을 거쳐 발효시키는 과정에서 핑크빛이 우러나오면 그 포도즙을 가지고 로제 와인을 만드는 방법이다. 이 밖에 아무런 과정 없이 원하는 색이 나올 때까지 압착해서 만드는 방법도 있다. 다른 와인은 수 주일에 걸쳐 발효시키는 반면, 로제 와인은 6시간에서 48시간 이내로 발효시킨다.

로제 와인의 경우, 신선한 향을 보존하기 위해 더 낮은 온도를 유지하는 것이 좋다.

④스파클링 와인
결혼식 파티, 경기에서의 승리 등 축하할 일이 있는 장소에서 흔히 사용하는 와인이 스파클링 와인이다. 스파클링 와인은 와인 속에 탄산가스가 많이 들어 있다. 일반 와인과 달리 잔에 따르면 발포성 기포가 올라온다.

스파클링 와인은 지역에 따라 다양한 종류가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스푸만테', '스페인에서는 '카바', 독일에서는 '젝트', 프랑스에서는 '샴페인'이 유명하다.

스푸만테처럼 발효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를 이용해 스파클링 와인을 만들 때 보통 두 가지 방법이 쓰인다. 2차 발효를 병에서 진행하는 것과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에서 진행하는 방법이다. 병에서 발효하는 것은 '메토도 클라시코'라고 불리는 고전적인 방법이고 탱크에서 발효하는 것은 19세기에 개발된 좀 더 현재적인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⑤귀부 와인
썩은 포도, 즉 곰팡이가 핀 포도로 아주 맛있는 와인을 만든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곰팡이 핀 포도로 만든 와인을 '귀부 와인'이라고 한다.

'귀부'라는 단어는 '귀할 귀'와 '썩을 부'라는 한자를 사용한다. 영어의 '노블 럿'을 한자로 표현한 것이다. 귀부와인은 아무 곰팡이가 아니라 '보트리티스 시네레아'라는 회색 곰팡이가 핀 포도로 만든다.

이 곰팡이는 포도의 수분을 빨아들여 당도가 높은 스위트 와인을 만들게 하는데, 일반 스위트와는 다른 맛을 낸다. 이러한 귀부 균은 아무 데나 생기지 않고 몇 가지 자연적인 기후 조건이 맞아야만 생긴다.

귀부 균이 생기면 포도는 수분이 날아가 쭈글쭈글해지지만, 당분은 그대로 남아 있어 매우 달콤한 맛을 낸다.
세계 3대 디저트 와인으로는 헝가리의 '토카이', 프랑스의 '소테른', 그리고 독일의 '트로켄베렌아우스레제'를 들 수 있다. 이 셋의 공통점은 바로 귀부 와인이라는 것이다.

⑥아이스 와인
귀부 와인만큼 유명한 아이스 와인은 수확기가 지나도 포도나무에 남아 있다가 겨울 추위에 자연적으로 얼어붙은 포도를 이용해 만든다. 이 공정을 통해 천연 당도 함량이 높은 달콤하고 강렬하며 향기로운 와인을 생산할 수 있다.

아이스 와인의 특징은 포도를 겨울에 수확한다는 것이다. 아이스 와인의 수확은 포도나무의 포도가 얼어붙을 만큼 기온이 낮은 겨울의 이른 아침 시간에 이뤄진다.

언 포도를 냉동 상태에서 압착하여 얼음과 기타 고형물은 남기고 고농축 즙만 추출한 후 농축된 머스트를 발효시켜 와인으로 만드는 것이다. 당도가 높기 때문에 달지 않은 와인보다 발효 과정이 좀 더 오래 걸릴 수 있다. 이러한 아이스 와인은 강렬한 단맛과 신선한 산미가 균형을 이루는 것으로 유명하다.

아이스 와인은 디저트 와인으로 즐기거나 단독으로 마시거나, 달콤한 치즈와 함께 즐길 수도 있다. 생산하기 힘들고 특별한 기후 조건이 필요하기 때문에 독특하고 귀중하다.

⑦강화 와인
강화 와인은 와인을 만드는 과정에서 포도로 만든 증류주인 브랜디를 첨가한 와인이다. 일반적으로 와인의 도수는 12도에서 15도 사이인데 강화 와인은 15도에서 22도 정도 된다고 볼 수 있다.

발효 중 또는 발효 후에 알코올을 첨가해 와인 도수를 높이는 관행은 와인의 감각적 특성을 보존하고 개선하는 등 여러 가지 이유로 개발됐다.

대표적인 강화 와인으로는 스페인의 '셰리' 와인, 포르투갈의 '포르토' 와인을 들 수 있다.

강화 와인은 보통 전통적인 이탈리아 요리에 사용되어 깊이와 풍미를 더하며 휴일 및 축하 행사에서도 많이 사용된다.


■커피 더 알아보기

1. 이탈리아의 지역별 커피 문화
이탈리아는 그 무엇보다도 커피 문화로 유명하며 지역별로 고유한 커피 스타일과 전통이 있다.

①이탈리아 북부
이탈리아 북부는 진한 에스프레소를 선호한다. 밀라노의 토리노 같은 도시에서는 에스프레소보다 짧게 추출한 '리스트레토'나 에스프레소에 우유 거품을 살짝 올린 '마키아토'를 많이 마신다.

이곳 북부의 카페는 현대적이고 세련된 분위기를 가지고 있으며, 빠른 서비스와 함께 서서 커피를 마시는 문화가 일반적이다.

②이탈리아 중부
이탈리아 중부, 특히 로마에서는 '카페'라고 불리는 표준 에스프레소를 많이 마시며 카푸치노보다 더 많은 우유를 넣은 커피인 카페라떼도 인기가 있다. 이 지역의 커피는 부드럽고 균형 잡힌 맛이 특징이다.

로마의 카페는 역사적이고 전통적인 분위기를 가지고 있으며, 카페에서 앉아 천천히 커피를 즐기는 문화가 있다. 아침에는 카푸치노와 크루아상을 함께 먹는 것이 일반적이다.

③이탈리아 남부
남부, 특히 나폴리에서는 강하고 진한 에스프레소를 선호한다. '카페 알라 나폴레타나'라고 불리는 나폴리 스타일의 커피는 매우 진하고 풍부한 맛이 특징이다.

나폴리의 커피는 일반적으로 진한 로스팅을 사용하여 강렬한 맛을 낸다. 남부의 카페는 활기차고 사교적인 분위기를 가지고 있으며 커피를 마시며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문화가 중요하다.


2. 이탈리아의 커피 브랜드
우리에게도 익숙한 '라바차', '일리', '킴보'는 모두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커피 브랜드이다.

이탈리아 커피 브랜드의 총개수는 정확하게 집계하기는 어렵지만, 대략 100개 이상의 브랜드가 존재한다고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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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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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이탈리아 안에서도 지역별(북부/중부/남부)로 확연히 차이나는 놀라운 이탈리아의 미식문화를 살펴보며 이탈리아는 역사적, 문화적인 부분 외에도 경험하고 참고할 만한 것들이 참 많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특히 중북부에 비해 비교적 잘 알려지지 않은 남부의 문화까지 함께 살펴보며 이탈리아 전반의 역사적 특징과 미식문화까지 알 수 있어 유용한 시간이었다.

지역별로 다른 특성에 더해, 도시별로 환경, 기후, 토양 등의 차이에 따라 다른 형태와 모양, 맛으로 드러나는 음식, 치즈, 디저트, 와인은 살펴볼수록 침샘을 자극한다.

한국에는 그다지 발달하지 않은 크리스마스 케이크나 종류별로 다양한 치즈는 쉽게 볼 수 없기에 더 눈길이 간다.

이탈리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와인과 커피에 관해서는 부록에서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볼 수 있어 좋았는데, 본편에서 언급되는 와인의 품질등급이라던가, 기본 상식선에서 알아두면 좋을 내용들을 무겁지 않게 핵심 내용만 담고 있어 참고하면 좋을듯하다.

신선하고 새로운 내용들이 가득 들어차 있어 마치 이탈리아 전역을 미식여행을 하듯 살펴볼 수 있었던 이 책 덕분에 오늘도 흥미로운 책으로의 여행을 잘 다녀올 수 있었던 것 같다.

언젠가 장기 여행으로 이탈리아를 방문할 수 있게 되면 곳곳에 기록해둔 전통음식과 디저트를 맛보고, 와인 생산지에서 와인과 치즈를 즐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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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틈의 온기 - 출근길이 유일한 산책로인 당신에게 작가의 숨
윤고은 지음 / 흐름출판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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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빈틈 속에서 만나는 특별한 일상!"


수많은 책 목록 중 한 권을 아무런 정보 없이 그냥 읽었는데, 뭔가 눈이 번쩍 뜨이는 느낌을 경험해 본 적이 있는가? 책을 읽다 보면 가끔 예상치 못한 포인트에서 나를 놀래키는 책들이 있는데 이 책도 그중 하나였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아무런 정보 없이'인데, 사전에 간단한 소개 글이나 작가 정보, 심지어 장르조차 모르고 읽다가 불현듯 빠져드는 책을 만나게 되면, 마치 보물 찾기를 하다 꼬깃하게 접힌 종이를 수풀 속에서 우연히 발견한 듯한 느낌이 들어 더없이 즐겁고 행복해진다.

이 책에는 일상의 빈틈 속에서 발견한 소소하지만 특별하고 사랑스러운 순간들이 가득 담겨 있는데,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지나쳤던 비슷한 경험들이 절로 소환될 것이다. 더불어 흐릿하게 자리 잡고 있던 기억들에 새로운 색이 입혀지는 느낌이 들지도 모르겠다.

재치 있는 필체에 다소 엉뚱한 허당끼까지 더해진 저자의 일상을 들여다보다 보면 흔한 일상이 다채롭게 변화하는 것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총 4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일상의 빈틈 속에서 발견한 소소하고 특별한 하루들이 약 60여 편의 산문으로 에피소드처럼 담겨있다.

특히 1장의 내용들은 웃음 포인트가 꽤 많은데,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해 봄직한 에피소드들이 많아 더 집중하며 읽게 된다.

그렇다고 모두에게 적용되는 일상만 기록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페이지가 뒤로 넘어갈수록 점차 자신만의 감성이나 취향, 버릇 등이 반영된 에피소드들도 만나볼 수 있는데, 이것들을 만나는 재미가 꽤 쏠쏠하다.

간략히 살펴보면, 1장에는 일상 속 저자의 빈틈으로 인해 발생한 에피소드들이 주로 담겨있다. 2장에는 왕복 세 시간의 지하철 출근길에서 상상하고 경험한 에피소드들이 담겨있다. 3장에서는 여행과 관련된 저자의 취향과 에피소드들을 만나볼 수 있다. 마지막 4장에서는 기록으로 남겨둔 저자의 취향과 일상의 빈틈에 대한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다.

사실 따지고 보면 별것 아닌 일로 생각하고 넘어갈 수도 있는 에피소드들인데, 저자의 빈틈(허당끼)과 기록, 여기에 더해 재치 있는 필력이 더해지며 '특별한 일상'으로 기록된다. 덕분에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는 웃음을 유발하는 포인트가 된다.

일상에서 우리가 매일 겪는 웃음, 고단함, 슬픔 등을 저자만의 감성으로 절묘하게 포착해 낸 빈틈을 살펴보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 '그럴 수 있지', '나도 그랬는데'하며 위안과 위로를 얻게 될 것이다.

살면서 때때로 마음이 무너지거나 회색 인간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 때, 이 책의 내용을 떠올리며 웃음 지어보면 어떨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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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새벽에 깨어 있으면 책장이 수상해 보일 때가 있다. 섣불리 건드린 책 한 권이 그 에너지를 누적해두었다가 내가 잊고 있을 때 툭, 옆으로 눕거나 아래로 추락하기도 하니까.

영화 <인터스텔라>를 본 사람이라면 그 순간 조금은 긴장할 것이다. 책장 뒤에 무엇이 있을지 나는 모른다. 책장 뒤 세계에 대해 장담할 수 없고. 그러니까 다 의도한 거라고 말하고는 있지만 고백하자면 나는 속수무책으로 유영할 뿐이다.
3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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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과 저자의 상상력이 더해지며 유쾌하게 그려진 이 에피소드는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해 봄직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꼭 책이 아니더라도 집에서 두고 쓰던 물건이 꼭 쓰려고 하면 사라지는 마법!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해 봤을 것이다.

아무도 건드리지 않았는데 책이 불현듯 툭 쓰러진다거나, 찾으면 없다가 새로 사면 튀어나오는 일들은 우리 일상에서 흔하게 겪는 일 중 하나다.

그런 흔하고 흔한 일상에 영화 <인터스텔라>의 내용을 접목해 상상을 더하니 어쩐지 꽤 참신한 일상이 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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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남지의 '오이'→궁남지의 '오리'
오이와 오리, 상관없는 두 세계의 소개팅 성공이다.
(...)
블레이크와 크레이그. 켄 로치 감독의 <나, 다니엘 블레이크>라는 영화를 좋아하는데 꼭 다니엘 크레이그가 함께 떠오른다는 게 황당하다.
(...)
워런 버핏과 워런 비티. 이 둘도 자꾸 섞여서 워런 버핏과 아네트 베닝을 부부로 만들곤 한다. 워런 비티는 콜라를 좋아하는 사람으로.

안데르센과 나폴레옹. 둘 다 우리 동네에 존재하는 빵집인데 늘 두 곳을 혼동한다. 안데르센과 나폴레옹은 전혀 닮지 않았는데 왜 자꾸 섞이는지 모를 일.

따옴표와 깜빡이. 자동차 깜빡이와 문장부호인 따옴표가 흡사하게 보이는 거, 나에게만 해당되나?
(...)
강력한 후보와 덜 강력한 후보의 차이는 미미하다. 오류의 세계에서 어떻게 실력을 논한단 말인가. 다만 올해의 오타상의 후보들이 우리를 피식 웃게 하는 건 확실하니 일단 후보는 많이 모아야 한다.
54~5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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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이 보면 황당하다 할 수 있는데, 나만 헷갈리고 나만 버퍼링이 걸리는 단어나 말들이 있다. 경험과 어떤 이미지가 만나 생성되는 나만의 조합은 이처럼 때로 웃음을 유발하며 일상에 활력을 더한다.


=====
내가 열차의 네모난 창문을 액자 삼아 서울의 일몰을 본다는 것은 겨우 몇 초간 허락된 호사인 것이다. 아침에 말간 표정을 짓고 있던 도시가 얼마만큼 화려해지는지 알고 싶다면 해 질 무렵 한강 다리를 지하철로 건너가야 한다.
(...)
압구정역과 옥수역 사이, 한강을 건너는 구간은 노련한 승객이든 서툰 승객이든 3호선을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책갈피 역할을 하고 있다.
(...)
잠시 고개를 들어 저 바깥 풍경에 마음을 내어주고, 열차가 다시 어둠 속으로 내려가면 마음도 제자리를 찾는다.

이 구간에서 운이 좋으면 지하철 디제이를 만날 수 있다. 지하철에도 디제이가 있다.
(...)
바쁜 하루 중에 잠깐 고개를 들어 창밖의 풍경을 보시라는, 오늘도 힘내시라는 목소리가 열차 안 방송으로 흘러나올 때 마음이 말랑말랑해졌던 기억이 난다. 우리는 출근길에도 사랑받는다, 누군가가 우리의 하루를 응원해 준다. 열차 안의 사람들이 다 그런 표정을 짓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
그 목소리는 지하철에 올라타 무심하게 이동하고 있을 때 우연히 만나야만 가능한 것이니까. 약간의 피로와 권태 속에서 아무 기대 없이 만나야만 가능한 것이니까. 그러니 가장 좋은 건 열차의 승객으로서 우연히 지하철 디제이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다.

그리고 어느 퇴근길에 선물 같은 순간을 한 번 더 만날 수 있었다. 그것도 가장 사랑하는 구간인 옥수역과 압구정역 사이에서. 지하철 디제이가 말했다. 한강을 지나고 있으니 고개를 들어 밖을 보시라고, 잠깐이라도 마음에 여유를 가지시라고 마침 해가 지고 있었고 세상에 다시없을 따뜻한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고 나는 자리에 앉아 있었고 그 모든 게 엄청나게 황홀한 우연, 그러니까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137~13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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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역시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어 이 에피소드가 눈에 딱 들어왔다. 정확히 기억나지 않으나 내가 탔던 열차 역시 어쩌면 저자가 말하는 3호선 압구정과 옥수역 사이였을지도 모르겠다.(설사 아니라고 해도 상관없다. 중요한 건 이게 아니기에)

당시엔 그런 멘트를 하는 분들을 지하철 디제이라 지칭하는지도 몰랐고, 그저 어느 날 문득 맞닥뜨린 선물 같은 안내 멘트에 울컥 감동이 차올랐던 경험만 강렬하게 남아있다.

그 기억을 잊고 싶지 않아 그날 다급히 집으로 돌아와 블로그 <끄적끄적>에 남기며 색다른 경험을 이야기했던 때가 있다.

책을 통해 비슷한 기억을 공유하고 그때의 감정을 다시 떠올릴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다. 어느 날 우연히 마주친 노을과 지하철 디제이의 조합은 지금 떠올려봐도 환상 그 자체라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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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오른쪽에 앉은 사람에게 묻고 싶다. 대체 왜 이렇게 많은 자리를 놔두고 모르는 이 옆에 붙어 앉으셨나요? 우리가 그 옛날 박카스 CF를 찍는 건 아니잖아요? 들어올 대답이 크게 기대되진 않는다. 둘 중 하나가 아닐까. 인식하지 못했거나, 아니면 귀찮거나.
16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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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역시 텅 빈 지하철을 이용할 때마다 옆 사람에게 꼭 한번은 묻고 싶은 말이었다. 좀 널찍이 떨어져 앉으면 안 되나요?

보통 이런 경험을 하는 경우 떨어지고 싶은 사람은 여성, 붙어앉는 쪽은 남성이 많은데 이상하게 텅 빈 수많은 자리를 놔두고 상대방은 꼭 옆에 붙어 앉는다.

저자의 경우는 이미 앉아있는 상태에서 사람들이 빠진 경우라 그 이유에 대해 두 가지로 정리했는데, 여기에 개인적으로 하나를 더 붙이고 싶다.

변수가 한 가지 더 있기 때문이다. 널찍한 지하철에 이제 막 탄 승객이 널찍한 자리를 두고 굳이 꼭, 여성의 옆에 붙어앉는 경우다.

이런 경우는 '여성의 옆에 붙어앉고 싶어서'라는 이유를 하나 더 붙여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모든 남성을 그런 취급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지만, 꼭 그런 사람들이 있다. 그런 경우 대게 여성들이 앉아있던 자리를 포기하고 이동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나 역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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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만남이 그렇듯이 책과의 만남도 시기를 탄다. 그 책을 만날 때 내가 어떤 상황에 있었는지, 인생의 어떤 계절을 통과하고 있었는지에 따라 책의 존재감이 달라지는 것이다. 그래서 책이 누군가의 삶을 구원하거나 도발하거나 위로했다는 말을 들으면 한 권의 책과 한 사람이 만났던 어느 시점에 대해 상상하게 된다. 책은 우리 산책의 가로등 같은 것. 가로등이 없어도 우리는 걸을 수 있지만 있으면 더 외롭겠지.

306~30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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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에 깊이 공감한다. 어떤 책이 내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느냐는 결국 당시 내가 어떤 상황에 있었는지에 따라 크게 좌지우지되기 때문이다.


만약 어떤 책이 유독 내 마음에 깊이 다가온다면 반대로 지금 내 상태는 이렇구나라고 생각해 보면 어떨까?


운명 같은 이끌림에 의해 나와 책이 만났을지도 모른다는 전제는 혹은 그렇기에 더 크게 다가오는 존재감은, 나를 더 깊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은 물론, 책을 통해 더 넓은 세상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는 말이 아닐까 한다.



*****

무심히 지나칠 일상을 저자의 눈으로 바라보니, 세상은 온통 신기하고 재미있는 것들로 넘쳐나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가 놓친 1% 빈틈 사이 자리한 그 온기가 꽤 즐거운 웃음을 유발한다.

여기에 더해 저자의 엉뚱한 허당끼는 '어쩔'이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시럽을 손소독제로 알고 식탁을 닦으며 느꼈을 끈적함, 목욕탕에서 모르는 사람이 밀어달라며 내민 때수건, 여기에 더해 보답이라며 등을 밀어주는 이상한 경험, 치약 대신 사용한 폴리덴트(틀니 접착제) 등.

'윽, 헉, 악'이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저자의 일상 에피소드들은 그렇게 웃음과 함께 강력하게 뇌리를 관통한다. 덕분에 오랜만에 따뜻하고 말랑한 마음을 가득 담아 간다.

가끔은 저자처럼 찰나의 시간을 붙잡아 새로운 시선으로 살피고 기록으로 남겨보면 어떨까? 새로운 나만의 에피소드들이 흘러넘쳐 삶을 사랑한 이유가 더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드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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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글몽글 행복 컬러링북 - 색칠할수록 즐거워지는
김민선 지음 / 마음책방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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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문득, 일상이 무료하거나 지루하다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다. 하는 것 없이 시간은 흘러가는데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 색다른 경험을 하고 싶어지는 순간, 불행하다 느껴지는 순간 이 컬러링북을 펼쳐보면 어떨까?

하얀색 바탕의 스케치 위에 내가 꿈꾸는 일상과 계절을 색칠하며 어쩌면 또 다른 꿈을 꾸게 될지도 모른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어떤 일상을 보내고 싶은지, 또 어떤 행복을 누리고 싶은지 잘 모르겠다면 이 책의 페이지를 한 장 한 장 넘기며 소중한 일상을 되찾아보자.

스케치를 따라 색을 입히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 잊고 있던 일상의 행복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새로운 도전의 기회를 포착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사계절별 일상 속에서 해봄직한 총 30컷의 스케치 속에는 마음속에만 담아두고 미처 해보지 못한 일들도 있고, 또 일상 속에서 자주 경험한 일들도 포함되어 있다.

생각 없이 일상을 살아갈 때는 '그저 그런 일'로 치부되던 것들인데, 하나하나 곱씹으며 살펴보다 보면 평소 느끼지 못한 새로운 감정이 모락모락 피어날 것이다.

더불어 '올 여름엔 뭘 해볼까?', '겨울에는 새로운 도전을 해봐야겠다'와 같은 새로운 도전의식과 꿈을 꾸게 될지도 모르겠다.

봄에는 홈베이킹으로 만든 쿠키를 포장해서 벚꽃을 보러 가고, 여름맞이 다이어트를 시작하는 한편, 종종 집 근처 꽃집에 들러 봄을 만끽해 보자.

무더워진 여름에는 수영장에 가서 더위를 식히거나, 파릇한 홈가드닝으로 온전한 여름을 느껴봐도 좋겠다. 비가 오는 날에는 우산을 쓰고 빗소리를 음악 삼아 걸어보면 어떨까?

가을에는 가까운 곳에 피크닉을 떠나거나, 커피를 마시며 한가로운 오후를 즐겨봐도 좋겠다. 1박 2일로 캠핑을 떠나보는 것도 가을을 즐기는 또 다른 방법이 되지 않을까 한다.

겨울에는 기차를 타고 조금 멀리 떠나보자. 뜨끈한 온천욕을 즐기거나, 색다른 장소에서 크리스마스를 맞이한다면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이다. 연말연시를 맞아 누군가에게 미처 전하지 못한 말이나 인사말을 남겨보는 것도 일상을 보내는 또 다른 방법이 되지 않을까 한다.

색을 칠하며 일상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다 보면, 결국 몽글몽글한 행복도 덩달아 피어날 것이다. 평범한 일상을 특별한 날로 만들고 싶다면, 지금 다른 시각으로 '현재'를 바라보면 어떨까?


일상의 행복을 꿈꾸는 이들에게 전하는 저자의 응원의 편지를 지금부터 하나하나 자세히 만나보자. 좌측에는 완성된 이미지를, 우측에는 흰 바탕에 스케치로만 채워진 그림을 만나볼 수 있는데 참고용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예시본과 동일하게 색칠해도 되지만, 꿈꾸는 이상향이 있다면 나만의 컬러로 색을 입혀봐도 괜찮다. 행복의 색은 모두 같지 않으므로.



그림체를 마주하는 순간, 어쩐지 책 제목처럼 '몽글몽글'이라는 말이 절로 떠오른다. 그리고 이내 오늘은, 이번 주는, 이번 달은, 올여름에는 무얼 해볼까 하고 고민해 보게 된다.



하얀 공간을 어떤 색과 무늬로 채워 넣을지는 전적으로 내 선택에 달려있다. 하얀 여백으로 남기고 싶다면 굳이 채워 넣지 않아도 된다.표현 방법, 방식 모두 내가 그리고 싶은 대로 채워나가면 된다.



색연필, 마카, 크레파스, 사인펜, 연필, 어떤 도구로 칠하고 마무리하느냐에 따라 스케치는 완전히 다른 모양으로 자리하게 될 것이다.

색을 하나씩 입히다 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 여러 생각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지기를 반복했는데, 이를테면 이런 것들이다. 어릴 적 읽었던 동화의 어떤 장면이 떠올랐다가 이내 올여름이 다 가기 전에 비 오는 거리를 우산을 쓰고 걸어봐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다 바스락바스락 낙엽 지는 가을이 오면, 조금 먼 곳으로 여행을 다녀오거나 자전거를 타고 한강을 달려봐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다, 이내 겨울이 오면 뜨끈한 방구석에 드러누워 맛있는 간식과 재밌는 볼거리를 한 아름 쌓아두고 보면 참 행복하겠다는 생각에까지 다다랐다.

별것 아니지만, 하나하나 살펴보다 보니 어느새 일상을 즐기는 방법은 물론, 잃어버린 일상을 되찾은 기분이다. 만일 조금 무료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면 이처럼 오늘을 즐거움으로 가득 채울 수 있는 나만의 '무언가'를 찾아보면 어떨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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