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로 쓰는 시 - 하마탱 툰포엠
하마탱 지음 / 호밀밭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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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책을 읽다 보면 새로운 시도들이 종종 눈에 띈다. 책도 다 같은 책이 아니라서 어떤 시도와 노력을 기울였느냐에 따라 독자들에게는 다르게 다가오는데, 신선하고 매력적이라 개인적으로는 선호하는 편이다.

독서 인구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는 만큼, 출판사나 제작자, 작가의 이런 시도는 필요한 부분이라 생각한다. 더불어 언제나 이런 새로움에 대한 도전은 늘 옳다고 믿는다.

이 책은 그런 새로움을 시도한 작가의 책으로 '만화'와 '시'를 결합한 '툰포엠' 장르의 책이다. 소개 글에서는 '툰포엠'을 이 책의 저자 하마탱의 시그니처 장르라고 소개하고 있는데, 하마탱이라는 작가와 그가 쓴 책은 처음이지만 앞서 '시'와 '만화'가 결합된 다른 작가의 책은 만나본 적이 있어 낯설지는 않다.

총 3부로 구성된 이 책에는, 일상의 다양성과 유머러스함이 만화와 시로 표현되어 있다. 보고,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으악'하는 순간도 있고, 깊게 스며드는 순간도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범위에 따라 '일상', '가족', '사회'로 나눠 구분해 두었는데, 1부 '일상으로의 초대' 챕터에서는 끝없이 이어지는 나 자신과의 분투를 그리고 있다. 마음과 마음 간의 갈등을 풀어보려는 노력을 엿볼 수 있다.

2부 '가족이라는 토대' 챕터에서는 우리를 가장 힘나게 하면서도 동시에 힘들게 하는 가족 이야기가 담겨 있다. 양면성을 보다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이 담겨 있다.

3부 '세상을 보는 줏대' 챕터에서는 끝없이 이어지는 사회 문제 속에서 글과 그림으로라도 착한 놈들이 이기는 사회를 응원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목차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이 책은 개인의 일상에서 점차 가족, 사회로 확장되는 개념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을 읽는 독자 역시 나에서부터 시작해, 가족, 사회로 점차 인식을 넓혀가는 형태로 읽어나가 보면 어떨까 한다.


이 책의 만화를 보다 보면 절로 아찔해진다. 나도 모르게 숨을 들이쉬고, 자꾸만 뒷걸음질 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시와 동떨어진 내용은 아니라서,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돌려 바라보지만, 이내 곧 다시 푸하하 웃어버리거나 징그러운 마음에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게 된다.

만화에 유머가 깃들어 있어 진지하게 시를 읽다가도, 이내 그 무게감은 감쪽같이 사라진다. 하지만 다시 시를 읽다 보면 절로 공감하는 마음에 젖어든다.

나도 어쩌지 못하는 내 마음, 내 가족, 우리가 함께 살고 있는 사회의 모습들이 필름처럼 지나가며 '그렇고말고!' 하는 추임새가 절로 나온다.

이 책에 실린 108편 중 개인적으로 재미있게 읽었던 몇 편의 시와 만화를 소개해 보려 한다. 읽으면서 과연 나는 시의 내용과 얼마나 비슷한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 혹은 얼마나 다른 형태로 살아가고 있는지 비교하며 읽어봐도 재미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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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식으로 쓰는 시

먹고 있어도 배고프다, 보고 있어도 그립듯이.
거울은 말하지, 너 먹는 거만 봐도 배부르다고.
둘이 먹다 하나 죽으면, 아싸 나 혼자 2마리.
치킨 2마린 질리지, 그럼 그럼 진리지.
살을 또 왜 빼시나, 뼈나 좀 다 빼시지.
먹을 땐 말 시키지 마, 주유 중엔 엔진 정지.
모래주머니나 살주머니나, 운동 되긴 마찬가지.
운동은 내일이고, 먹는 건 내 일이지.
나도 복근이란 게 있다, 덮어놔서 안 보일 뿐.
2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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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를 읽다가 순간 푸핫하고 웃음이 터졌다. 약간의 말장난 같은 라임을 맞춰 절로 흥을 돋우는 센스라니.

야식 먹다 이 시를 읽게 된다면, 내려놔야 할지, 그대로 먹어야 할지 망설여질 것만 같은 느낌이다. 먹다가 거울을 봤다면 먹던 거 집어던질 것 같고, 모래주머니나 살 주머니나 운동되기 마찬가지라는 구절을 읽을 때는 그냥 자포자기하며 그대로 먹을 것 같다.

운동은 내일이고, 먹는 건 내 일이지 대목에서는 공감하며 재빠르게 먹어치우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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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day

눕고 싶은데 서야 할 땐 물만한 곳이 없다.
일을 잠시 놓고 싶을 땐 주말만한 날 없다.
어떻게 놀아야 잘 놀았다고 소문이 날까
고민하며 동동 떠다니다 보면 어느새
나타나 발목을 잡는 괘씸한 너, 월요일.
워어얼 화아아아 수우우 모오옥 금퇼.
4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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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동 떠다니고 있는 모습이 연상되다가도 불현듯 발목 잡혀 끌려가는 모습이 그려지는 이 시는 직장인이라면 모두가 공감할 만한 시가 아닐까 싶다.

특히 마지막 구절은 공간 200%.
표현력 200점!
금퇼. 주말은 왜 이렇게 짧은 거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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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

앞니가 쏙 빠지도록
입술이 축 늘어지게
우리 심심한데 뽀뽀나 할까?
입 냄새를 못 맡으면 연애.
입 냄새도 참아내면 사랑.
입 냄새에 투덜대면 의리.
10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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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만큼은 꼭 만화를 함께 첨부하는 게 예의라는 생각이 들어 함께 가져와 봤다.(나만 당할 수 없다!)

위 만화는 구스타프 클림트의 '키스'라는 멋진 작품을 작가가 시에 맞게 재해석하여 그린 만화다. 보는 순간 '우엑, 드러'라는 생각은 나만 한 걸까?

시를 읽다 보면 키스에 대한 환상이 싹 사라져버린다. 앞니가 쏙 빠지도록, 입술이 축 늘어지게 키스하는 모습이 열정적으로 느껴지지 않고 왜 드럽게 느껴지냐고요 ㅎㅎ

어쩌면 다음 구절 때문에 더 그렇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다. 입 냄새가 그다음에 나올 건 뭐람.(으으)

하지만 분명 현실적인 문제라 뭐라고 지적할 수도 없다.
이 시를 읽고도 키스가 하고 싶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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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누구게

몰라보면 괜찮아도 몰라주면 편찮은 법.
나란 사람 알아주는 그대와의 시간들을
나란 인간 관심 없는 인간들과 왜 쓰리오.
싶은 맘에 낄끼리 어울려서 살다 보면
때론 가장 친한 놈이 내 마음을 몰라주네.
허탈한 맘 달래려고 이놈 저놈 붙들고서
"니 내 눈 줄 아냐"라며, 물을수록 추해질 뿐.
나를 가장 모르는 건 다름 아닌 나이거늘.
18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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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가장의 슬픔이나 나이 들면 느끼게 되는 회한 같은 느낌처럼 다가왔던 시다. 가족 위해 몸 바쳐 돈 버는 것에만 올인했는데, 나이 들어 은퇴 후 둘러보니 남은 건 허탈한 맘뿐인 상황이 그려진달까.

내 노고는 아무도 몰라줘서 서운한 마음 반, 괘씸한 마음 반인 상태에서, 어디에도 끼지 못하고 헤매는 모습이 떠오른다.

"왜 그토록 일에만 몰두했을까? 조금은 나를 위한 시간도 내어줄 것을." 내심 그런 마음이 드는 시다.


*****

유머러스하지만, 불쑥 소리를 지르게 되는 툰포엠을 읽으며, 유쾌하게 하루를 정리해 보면 어떨까 한다. 더불어 오늘의 나는 어떤 하루를 보냈는지 살펴보고 돌볼 수 있는 내가 되기를 바란다.

적어도 '내가 누구게'와 같은 상황을 맞닥뜨리지는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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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고생 핍의 사건 파일 - 샐 싱 미스터리 편 여고생 핍 시리즈
홀리 잭슨 지음, 장여정 옮김 / 북레시피 / 2023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여고생 핍의 사건 파일 1편을 읽으면서 마침내 시리즈물을 완성하게 되었다. 1편을 제외하고 2편과 3편을 먼저 읽다 보니 지워진 사건 파일을 들여다보는 듯한 답답함이 있었는데, 이로써 리틀 킬턴에서 벌어진 사건들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었다.


더불어 소설을 읽으며 머릿속으로 그리던 캐릭터들이 왜 넷플릭스에서 그렇게 표현되었는지도 비로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어디까지나 이해했을 뿐이지, 내 상상 속에 그렸던 캐릭터에 비하면 많이 다른 것은 사실이다.


여하튼 덕분에 계속 의문으로 남아있던 사건의 전말과 캐릭터의 이해, 배경지식 등을 제대로 채워 넣을 수 있었다. 이래서 시리즈물은 새치기하면 절대 안 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총 4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3권으로 이루어진 시리즈물 중 1편으로 사건의 중심이 되는 리틀 킬턴의 배경과 캐릭터 소개, 관계 설정 등을 파악할 수 있는 주요 단계라고 볼 수 있다.


더불어 처음 여고생 핍이 사건을 맡게 된 경위와 추후 긴밀한 관계를 이어나가게 되는 라비와의 첫 만남, 그리고 핍이 이 마을에서 탐정으로 명성을 얻게 되는 발단 등을 엿볼 수 있는 아주 중요한 부분을 담고 있다.


1편에서 의혹만 남기고 모호하게 끝나버린 사항들은 3편에서 제대로 확인해 볼 수 있는데, 그러려면 1편을 제대로 정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더불어 퐁당퐁당 건너뛰며 읽는 행위는 자살 행위와도 같으니 부디 순차적으로 한 권씩 읽기를 추천한다.


대부분의 마을 사람들이 등장한다고 할 만큼 소설 속에 거론되는 인물이 꽤 많다. 읽으면서 관계도를 그리거나 표기하며 읽으면 사건과 인물을 파악하는 데 훨씬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핍의 사건 재구성을 따라가다 보면, 의혹으로 남는 이들도 있고, 계속해서 언급되며 찝찝함을 남기는 이들이 있다. 그런 부분들은 별도로 표기하여 읽어나가면 3권에서 제대로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이 시리즈를 읽은 순서가 2권→3권→1권 순이다 보니, 사실 처음에는 제대로 된 캐릭터 분석이나 배경지식이 없는 상태로 훅 뛰어든거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초반에는 꽤 혼란스러웠는데, 나름대로 인물들을 계속 메모해가며 읽다 보니 조금씩 안개가 걷히듯 사건에 빠져들 수 있었다.


더불어 3권 대단원의 결론까지 읽고서도 맞춰지지 않던 퍼즐은 1권을 마지막에 읽음으로써 빈틈없이 채울 수 있었다.


이미 결론을 알고 있는 상황에서 1권을 다시 되짚어 읽음에도 새롭게 읽히는 것을 보면, 이 작가는 정말 굉장한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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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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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권 모두 왜 등장인물 소개를 굳이 넣느냐 하면, 나 역시 새로운 편을 읽을 때마다 내가 쓴 등장인물 소개 내용을 보며 요점을 파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며 잊힌 내용들, 순차적으로 읽지 못하면서 채워지지 않는 공간이나 의문으로 남았던 부분을 등장인물 소개 내용을 보며 하나씩 채워 넣을 수 있었다.



■피파 피츠-아모비 핍

-EPQ(영국의 대입시험으로 고등학교 재학 중 일부 심화 탐구활동을 선택 후 공부하여 시험을 치게 됨)의 주제를 5년 전 사건인 샐싱의 죽음으로 선택하게 됨.

-친아빠는 핍이 10개월일 때 교통사고로 사망

-현재 아빠는 엄마의 재혼으로 가족이 된 새아빠

-하얀 피부를 가지고 있는 백인

-반려견: 골든 리트리버 바니

-친한 남자 친구들: 앤트, 잭 첸, 코너



■리엔

-셀의 엄마

-직업은 부동산 중개인

-오래전 싱내 가족이 이 동네에 이사 올 때 중개를 해준 인연이 있음



■빅터

-핍의 새아빠

-잘나가는 기업 변호사

-섬세하지는 않지만 다정하고 따뜻한 사람

-나이지리아계 사람이라 피부색이 핍과 다름

-거대한 덩치를 가지고 있음



■조쉬

-이부동생으로 엄마의 재혼으로 얻게 된 남동생



■라비 싱

-핍보다 두 학년 선배이며, 형과는 세 살 차이가 남.

-인도계 사람으로 피부색이 어두움



■샐 싱

-영리하고, 똑똑하고, 성격도 좋으며, 농담도 잘하는 모범생으로 무엇 하나 빠지는데가 없었음

-이미 옥스퍼드에 합격한 상태

-앤디 실종 후 인근 숲에서 수면제를 잔뜩 먹고 머리에 비닐봉지를 뒤집어쓴 다음 목주변에 고무줄을 감고 질식사한 상태로 확인됨

-사망 당시 나이 18세

-앤디와는 사귄 지 넉 달 정도 됨

-평소와 달리 문자할 때만큼은 맞춤법도 틀리고, 띄어쓰기도 제대로 하지 못함



■안드레아 벨(앤디 벨)

-처음에는 실종 상태였으나, 남자친구인 샐 싱의 시체가 발견된 후 사망한 것으로 처리됨

-5년 전 샐 싱이 앤디 벨을 죽이고 자살한 것으로 처리되면서 사건은 종결됨

-살아생전 금발머리에 예쁘고 돈도 잘 쓰는 아이로 인기가 많았음

-이면에는 약점을 이용해 타인을 괴롭히고 시험하고 상처를 주는 것으로도 유명했음

-원래부터 비밀이 많았으며 현금을 많이 소지하고 있었음

-샐과 사귀면서 비밀의 연상남과도 사귀고 있었음

-마약을 친구들에게 팔고 있었는데, 대마초, MDMA, 메페드론, 케타민, 로히프놀 등을 취급(로히프놀은 강간에 사용되는 마약임)

-친한 친구: 클로에 버치, 엠마 허튼



■베카 벨

-앤디 벨의 여동생

-언니와 다른 외모, 성격으로 내심 언니를 부러워하고 동경했음

-현재 <킬턴 메일>에서 인턴십 중



■제이슨 벨

-앤디와 베카의 아버지

-외모로 사람을 평가하고 혹독한 말솜씨로 가족에게도 가차 없이 상처를 줌



■던 벨

-앤디와 베카의 어머니

-외도하는 남편과 결국 이혼함



■카라 워드

-핍과 가장 오래 알아온 가장 친한 친구로 가족 같은 사이



■나오미 워드

-카라의 친언니

-7년 전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불안장애로 간신히 대학 졸업 후 취업까지 했지만 결국 공황발작 때문에 몇 달 전 다시 가족이 있는 집으로 돌아와 있는 상태

-나오미, 맥스, 샐, 제이크, 밀리는 자주 어울리는 친구 사이



■엘리엇 워드

-나이: 47세(앤디의 실종 당시 나이 42세)

-카라와 나오미의 아빠

-교사

-사건 인물들과 얽힌 사람 중 하나

-샐은 엘리엇의 제자

-아내 이소벨이 죽은 후 외로운 날을 보냄



■로렌

-카라와 함께 핍의 친구



■맥스 헤이스팅스

-거짓말에 능함

-핍의 인터뷰에 항상 거짓으로 답하고 피할 수 없는 순간에만 진실을 고함

-나이: 곧 스물다섯이 됨

-맥스는 늘 취해 있었고, 집에서 연 하우스 파티(일명 '대참사 파티')를 자주 즐김

-페이스북 진짜 아이디는 '낸시 탄고팃츠'



■나탈리 다 실바

-앤디에게 괴롭힘을 당했던 여학생

-앤디와 비슷하게 생긴 외모로 미인이었음

-앤디는 세 번 나탈리를 함정에 빠뜨림으로써 나탈리의 명성을 바닥으로 끌어내림

-현재 폭력 전과로 전자발찌를 차고 있음

-한 파티에서 누군가 술에 약을 탔고 이후 기억에 없지만 강간을 당함



■다니엘 다 실바

-나탈리의 오빠로 다섯 살 위

-킬턴 경찰서에서 경찰관으로 근무하고 있으며, 앤디 사건과 샐 사건에 깊게 관여되어 있음

-현재는 결혼해서 아내는 임신 상태



■스탠리 포브스

-킬턴 메일 기자

-샐의 죽음 후 앤디 관련 기사를 많이 내면서 싱 가족에게 불리한 내용을 많이 다룸



■제스 워커

-베카 벨 친구

-베카 가족의 숨겨진 이면과 중요한 핵심 단서가 될 만한 내용을 많이 전해줌

-대참사 파티 후 베카가 사후 피임약을 사러 갔다는 말을 전해줌

-앤디가 실종된 날 밤 디너파티에 참석하고 있던 앤디의 아빠 제이슨 벨이 잠시 사무실에 다녀왔다는 사실도 알려줌

-앤디와 맥스가 파티에서 딱 붙여 이야기하는 장면을 여러 번 봤다는 증언도 해줌



■하위 바워스

-마약상

-앤디에게 마약을 제공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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핍이 탐정으로 거듭나게 된 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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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가벼운 친분과 좋은 인상으로 남아있던 샐 싱이 갑작스레 살인자로 몰리고, 자살을 했다는 소식이 어쩐지 찝찝함으로 남아 있던 핍은 5년이 지난 후 대입시험 중 하나인 EPQ의 주제를 '앤디 벨 실종사건 수사 관련 연구'로 정하고 앤디 벨의 실종과 샐 싱의 사건을 조사하기에 이른다.


처음에는 용의자였던 샐 싱의 가족들을 살인자라며 확정 짓고 폭격을 가하는 언론에게 반론을 제기할 정도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지만, 깊이 파고들수록 상상이상의 진실이 드러나면서 핍은 마침내 리틀 킬턴 마을에서 제대로 탐정 취급을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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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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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있던 핍은 대입 준비를 앞두고 EPQ 주제로 5년 전 앤디 벨 실종사건을 다뤄보기로 결심한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1권에서 다뤄진 내용을 기준으로 보자면, 앤디의 남자친구였던 샐 싱이 앤디를 죽이고 자살했다는 점이 어쩐지 석연치 않았기 때문이다.


더불어 샐 싱이 시체로 발견되자 별다른 조사 없이 사건은 종결되었고 이를 두고 언론에서는 일방적으로 싱 가족을 살인자 가족이라며 매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 앤디는 결국 시체가 발견되지 않았다.


자신이 뭔가를 대단히 바꿀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언론에 반박할 수 있을 정도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고 핍은 과제를 핑계로 조사에 착수하게 된다.


그리고 처음 마주하게 된 것은 샐싱의 동생인 라비 싱으로, 처음에는 역력히 경계하는 느낌을 받게 된다. 하지만 집요하게 파고들며 진지하게 임하는 핍을 보고 라비 또한 마음을 열게 된다. 이렇게 둘은 한 팀이 되고, 둘은 하나 둘 사건 조사를 정리하고 공유하며 앤디 벨 사건을 조사해 나가기 시작한다.


핍이 살고 있는 리틀 킬턴 마을은 작은 동네로, 대체적으로 한 다리 건너면 아는 사람들이라 말할 수 있을 정도였는데, 그래서 핍이 이 사건을 조사하며 만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인들이 많다.


친구, 친구 부모님, 학교 동급생 혹은 선배, 교사, 친구 언니의 친구 등 가까운 이들을 대상으로 살인 사건을 조사하게 된 것이다.


핍은 매우 똑똑했고, 집요했으며, 관찰력이 뛰어났다. 그래서 대학 입시를 준비하면서도 끊임없이 사건에 매달리며 앤디 벨의 실종과 샐 싱의 자살 사건을 계속해서 파고들었다.


중간중간 자신에게 협박성 메모와 알 수 없음에게서 오는 문자들이 때론 두려움에 떨게 했지만, 그럼에도 핍은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경찰들이 밝혀내지 못한 앤디 벨의 실종사건과 샐 싱의 자살 사건의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범인은 아주 가까이에 있었고, 그래서 더 충격적이었다. 핍은 이 과정에서 사랑하는 반려견 바니를 잃었고, 자신도 죽을뻔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하지만 결국 사건은 밝혀졌고 이 일로 4명이 수감되게 되면서 사건은 제대로 마무리된다. 1편에서 핍은 팟캐스트를 운영하지 않는데, 아마 이 사건으로 신뢰와 명성을 얻게 되면서 팟캐스트를 운영하게 되는 게 아닐까 싶다.


소설 속 전개되는 방식을 보면 사건은 하나가 아니다. 여러 줄기가 얽히고설켜 결국 예상치 못한 사건을 만들어내는 양상을 취하고 있다. 이것은 3권까지 이어지는데, 시리즈물 전체를 읽고 나면 혀를 내두르게 될지도 모르겠다.


더불어 1권에서 애매모호하게 잔여물처럼 남은 의혹들은 회를 거듭하며 완벽하고 확실하게 밝혀지는데 그것을 하나하나 까보는 재미가 있다. 이것에 확실하게 종지부를 찍는 것은 3권으로, 그래서 3권은 완벽한 대단원의 막이라고 말할 수 있다.


경찰과 공권력이 해내지 못한 일을 핍은 민첩하고 조심스럽게 다루며 사건을 해결해 낸다. 여기에는 인류애와 남은 가족에 대한 예의가 담겨 있다.


무조건 다 까발려서 밝히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것과 또 피해자든 가해자든 남은 가족들에 대한 존중과 보호가 필요하다는 것을 핍은 확실히 보여준다.


특히 3개월 후에서 다뤄지는 이야기는 우리가 놓치고 있는 부분에 대해 명확히 짚어줌으로써 우리 모두가 간과하고 있던 포인트를 알려준다.


소문과 편견에 휩싸여 남을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며, 인종, 피부색 등 외적인 면을 보고 차별을 두는 것만큼 어리석은 행동은 없다는 것을 연단에서 강력하게 외친다.


고등학생인 핍이 홀로 5년 전 사건을 해결한 것에 대해 치하하는 목적의 연설의 자리에서 핍은 홀로 이 사건을 해결한 것이 아니며, 오히려 가해자로 둔갑해 여러 피해를 보고 있던 라비와 그의 가족들을 언급하며 오히려 공을 돌린다.


죽을뻔한 상황에서도 오히려 가해자를 두둔하고, 또 자신의 공을 함께 나누며 올바른 행보를 보이는 핍의 그러한 연설은 그래서 더 의미 있고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클라이맥스는 488페이지부터로, 흥미진진한 결말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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핍이 협박성으로 받은 '쪽지'와 '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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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에서 관둬, 피파." (쪽지)

"멍청한 년, 좋은 말 할 때 여기서 손 떼. (발신자 '알 수 없음)

"마지막 경고다, 피파, 그만둬. (쪽지)



'쪽지'와 '알 수 없음'의 문자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다른 점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사건과 연계되는 또 하나의 키가 되는 단서이니 참고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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핍이 파헤친 진실 몇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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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디의 사물함에서 나온 살인 협박 쪽지

-진실: 앤디에게 괴롭힘을 당하던 나탈리가 넣어둔 쪽지 였음


●샐이 죽기 직전 마지막에 아버지에게 보낸 문자

-진실: 평소 형이 문자를 쓰는 방식과 전혀 달랐음. 샐을 죽인 범인이 보낸 것이었음


●샐의 휴대폰 메모장에 남겨져 있던 메모 'R009 KKJ' 차 번호판

-진실: 마약상 하위 바워스의 차 번호판이었음


●앤디는 교사인 엘리엇을 '개자식'이라고 말함

-진실: 학교폭력 가해자였던 앤디의 행동을 엘리엇이 그녀의 아버지에게 고함으로써 앤디에게 미움을 받았다고 전하고 있으나 이것은 포장된 변명으로 사실 둘은 내밀한 관계였음(서로 목적은 달랐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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핍이 의심하고 있던 관련 인물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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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슨 벨

나오미 워드

비밀의 연상남

엘리엇 워드

나탈리 다 실바

다니엘 다 실바

맥스 헤이스팅스(낸스 탄고팃츠)

마약상, 하위 바워스



처음에는 그냥 넘겼는데, 제이슨 벨을 첫번째 기록한 것은 정말 소름이다.(약간의 스포로 이 내용은 3권에서 확인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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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 깊었던 문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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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재판이 열리지도, 유죄 판결이 확정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의혹'이나 '혐의'같은 말을 붙이지 않고 어떤 용의자를 바로 살인자로 규정하는 건 대단히 무책임한 짓이라고 생각해요. 샐을 괴물이라고 부른 것도 마찬가지고요.

(...)

기자님은 인종차별주의자에 편협한 머저리고요. 시궁창이나 뒤지면서 기삿거리를 찾고 다니는 뇌라곤 없는....

43, 4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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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하기보다, 편협한 자기주장에 더 무게를 실어 기사를 내는 언론인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핍은 면전에서 강력하게 날린다.


스탠리는 제대로 조사도 이루어지지 않은 샐 싱의 사건에 대해 살인자라고 단정 짓고 그와 그의 가족에 대해 무례한 발언을 기사를 통해 서슴없이 배포한다.


읽으면서 어찌나 통쾌하던지, 나도 모르는 사이 핍을 응원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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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나는 교훈을 얻은 바 있다. 살인 피해자에 대해 거짓말을 한 사람이 있다면, 직접 찾아가 왜 거짓말을 했느냐고 물어보는 게 최선의 방법이라는 것이다.

20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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핍은 고등학생이다. 하지만 그가 여타 어른보다 더 성숙하고 빼어나다 느꼈던 이유는 바로 이런 부분 때문이다. 핍은 한번 실수한 부분에 대해서는 반성하고, 다시는 실수를 저지르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최대한 정당한 방법으로 맞서고 최선을 위해 노력한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배워야 할 점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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핍은 어릴 적부터 아빠와 있으면 여러 가지 일들을 겪곤 했다. 상점 부근에서 누군가 아빠를 뒤쫓아 온다든가, 누군가 아빠에게 다가와 왜 백인 아이와 단둘이 있느냐고 물어본다든가, 회사에서 아빠를 보고 파트너 변호사가 아닌 경비원이라고 지레짐작한다든가 등등. 그럴 때마다 아빠는 핍에게 상황을 설명하면서 세상의 각기 다른 관점과 경험에 대해 가르쳐 주곤 했다. 핍은 커서 절대 그런 일들에 무감해지지 않겠다고, 그리고 직접 싸워서 쟁취한 게 아닌 사회적 혜택은 당연시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26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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핍은 완벽한 백인이다. 그리고 새아빠는 유색인종이다. 나이지리아계 사람이라 아마 흑인에 가까운 피부색이지 않을까 짐작할 수 있다. 핍은 그래서 어릴 적부터 아빠와 함께 있을 때면 여러 불공평한 일을 많이 겪었다.


아빠가 납치범으로 오해를 받는다거나, 직업을 낮춰보고 하대한다던가, 지켜보는 시선들이 따라온다든가 하는 일들말이다.


그 속에서 핍은 반항심을 부리거나 아빠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갖기보다 오히려 그런 일들에 무감해지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더불어 백인이기에 당연한 것처럼 받게 되는 혜택에 대해 당연하게 여기지 않겠다는 다짐도 하게 된다.


이런 면면들에서 핍이 얼마나 건강한 생각과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지를 엿볼 수 있다. 더불어 핍의 가족이 이런 사회적 통념과는 상관없이 서로를 얼마나 아끼는지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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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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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고생 핍의 사건 파일>은 단순히 여고생이 살인 사건을 해결하는 탐정이야기로만 보기에는 뭔가 부족하다. 아니 아깝다고 이야기하는 게 맞을 것이다. 사건을 파헤치는 방식이나 사건에 연계된 인물 간의 관계 등 사건과 관련된 내용을 풀어가는 방식도 물론 무척 흥미롭지만, 핍이 주는 사회적 메시지 또한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우리가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저지르는 생각이나 행동, 그리고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공권력과 공공의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등을 다시 살펴보게 된다.


개인의 이익을 위해 움직인 작은 일이 사실은 어딘가에서 누군가를 헤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또 팩트를 보기보다 이슈나 편견, 자기 신념에 기대에 한쪽으로 치우쳐 무엇을 보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도 생각해 보게 된다.


어쩌면 이 책의 저자는 이러한 사회적 메시지와 더불어 흥미로움까지 놓치지 않으려 각 권마다 500페이지가 넘는 이야기를 썼는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전혀 지루하거나 무겁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을 보면 신기할 따름이다.


1권을 읽기에 앞서, 2권과 3권을 읽으며 내심 계속 의문으로 남아있던 장면들이 있었다. 어디에도 물어볼 수 없는 내용들이라 혼자 찝찝한 상태로 구석에 미뤄두고만 있었는데, 1권을 읽으며 말끔히 해소할 수 있었다.


이를테면 이런 것들이다.


●샐 싱이 어쩌다가 앤디의 살인범이라는 누명을 쓰고 자살처럼 위장해 사망하게 되었는지를 1부를 통해 알 수 있었다.


●앤디와 베카의 집안에 숨겨진 가정사(계속 핍은 앤디와 베카의 아빠인 제이슨벨도 요주의 인물에 올려두고 있었다)


●교사인 엘리엇이 수감 중인 이유를 3부에서 간략하게 설명하고 있지만 얽혀있는 내용들을 제대로 파악하려면 역시 1부를 확인해야 한다.


●베카 역시 3부에서 현재 수감 중이라고 언급하고 있는데, 정확한 사유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1부를 읽고 그 이유를 명확히 확인할 수 있었다.



다가오는 겨울은 매우 춥다고 한다. 뜨끈한 이불 밑에서 귤 까먹으며 읽을만한 소설을 찾고 있다면, 이 시리즈를 강력 추천한다. 핍과 라비가 풀어가는 사건 파일을 따라가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긴 겨울을 보낼 수 있지 않을까?


참고로 가을은 비추한다. 가을은 너무 짧기에, 온전히 가을을 느끼기에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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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여행자들 오늘의 젊은 작가 3
윤고은 지음 / 민음사 / 2013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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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기상천외한 재난 활용법!"


앞서 윤고은 작가의 책을 읽고 그녀가 쓴 또 다른 책이 궁금해 찾다가 읽게 된 <밤의 여행자들>은 에세이와는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별생각 없이 읽기 시작했는데, 읽다 보니 어느새 훅 빠져들어 마지막 페이지까지 전진했달까?

사실 첫 장면부터 좀 충격적이기는 했다. 더불어 대한민국 현실에서도 공공연히 일어나는 일이라, 부글부글 끊는 마음으로 읽고 있었는데, 어느새 꿈인지 현실인지 모를 상황들이 휘몰아치면서 약간의 두려움, 기대감, 어리둥절한 마음으로 읽게 되었던 것 같다.


총 8장으로 구성된 이 책의 마지막 장 '맹그로브 숲'은 구분상 에필로그 같은 느낌이다. 이야기의 결말 혹은 주인공의 미래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어 어떻게 보면 7장으로 보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제목이 <밤의 여행자들>이라고 해서 처음에는 판타지인가 아니면 진짜 밤과 관련된 여행자들에 대한 이야기인가 궁금했는데, 읽다 보니 '밤'이 뜻하는 것은 '재난'을 말하는 것처럼 보였고, 다시 말해 보통의 여행(낮 여행) 과는 다른 어둠(불운)을 상징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여행사는 일반적인 여행과는 다른 '재난'지역을 여행하는 상품을 만들어 판매한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이 여행사를 통해 여행하는 사람들은 사람들의 고통과 폐허가 된 지역, 즉 재난 지역을 여행하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제목이 <밤의 여행자들>이라고 설정한 게 아닐까 싶다.

내용은 흥미로우면서도 현실 속 어딘가에서는 벌어지고 있을 것만 같아 두려움과 공포심을 일으킨다. 더불어 인간이 무섭다는 생각과 더불어 그보다 자연은 더 무섭다는 생각도 든다.

이미 우리의 현실 속에서 자연재해로 많은 사람들이 죽고, 또 알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을 보면, 결코 우리가 묵과할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출판 당시보다 오히려 지금 더 읽기 적절한 타이밍의 책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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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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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나
-재난 여행사 '정글'의 여행 프로그래머 과장
-10년 넘게 재난을 찾아다니고 그것을 상품화하는 일을 함
-직장 내 자신의 위치가 불안하다는 것을 여러 일들을 통해 직감하게 됨
-이를 직접적으로 확인하고 싶어 퇴사 의사를 표했고 이에 직속 상사는 출장을 명분으로 휴가를 줌
-출장지에서 예상치 못한 낙오를 하게 되면서 현실인지 상상인지 모를 일을 겪게 됨


■김조광 팀장
-aka. 김
-요나의 10년 직속상관
-인사고과의 50%를 쥐고 있었고, 호불호가 명확함
-직원들 대상으로 성추행 등 쓰레기 같은 짓을 많이 하고 다님


■최
-정글 여행사에서 보기 드물게 나이 든 여자
-고충 처리반 소속


■무이 벨에포크 리조트 매니저
-관광과 여행에 관심 없던 사람들을 설득해 리조트 건설에 적극적으로 동원하도록 설득한 인물 중 하나
-무이가 막대한 예산을 받기 위해 재난 극복 프로그램에 선정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사람
-미스터리한 인물로 어딘가 신뢰가 가지 않는 사람


■작가 황준모
-잡다한 부업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음
-프리랜서(시나리오도 쓰고 사진도 찍음)
-한때 사진 원본 복원하는 작업으로 꽤 재미를 봄
-요나가 출장 명목으로 갔던 무이 재난 여행의 멤버 중 하나
-무이에서 의뢰받은 시나리오 작업을 위해 되돌아왔고 거기에서 낙오된 요나를 다시 만나게 됨
-철저한 사전조사와 타이밍을 결합해 사고인지 인재인지 알아볼 수 없는 시나리오를 쓰는 전문가


■무이 재난 여행 멤버(6인)
-모녀지간(초등학교 교사와 다섯 살 딸)
-대학생
-작가 황준모
-요나
-가이드 루


■럭
-벨에포크 벨맨으로 요나 담당이었음
-나이는 스물 셋


■폴(혹은 파울: paul)
-읽기에 따라 폴 or 파울로 발음됨
-같은 말 다른 발음에 따라 '정글'에서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말로도 쓰이고, 무이에서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미스터리한 인물로 불리기도 함
-무이에서는 선박회사를 운영하는, 무이의 거대한 투자자로 언급됨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미스터리한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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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살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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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 여행사 '정글'에서 여행 프로그래머로 10년째 일하고 있는 요나는 어느 날부터 자신의 자리가 위태로워졌음을 느끼게 된다.

여행사에서 소히 두뇌를 담당한다고 알려진 프로그래머에게 손발의 역할인 고객만족센터 고객 클레임의 업무가 하나 둘 넘어오고 있는 것뿐만 아니라 사내에서 공공연하게 옐로카드를 받은 사람들에게 접근해 성추행을 일삼는다는 직속 상사의 만행이 시작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놓고 성추행을 일삼는 김 팀장을 피해 다니던 요나는 가장 먼저 고충처리반에 이 사실을 알렸지만 별다른 조치를 취해주지는 않는다. 이에 고민하던 요나는 자신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판단하기 위해 퇴사 의사를 전달했고 이에 김 팀장은 휴식을 겸해 출장 명목으로 여행을 다녀오라고 권한다.

이를 수락한 요나는 존폐 위기에 놓인 상품을 점검한다는 사유로 무료로 여행을 떠나게 된다. 무료로 여행을 떠나게 된 요나는 고객만족센터 상담원과의 통화 후 다섯 가지 선택지 중 가장 비싼 상품인 '무이'로의 5박 6일 재난 여행을 결정하게 된다.

7월 초 무이로 여행을 떠난 요나는 가이드를 포함해 총 6명이 한 팀에 되어 여행을 즐기게 되는데, 멤버 구성원은 초등학교 교사를 하고 있는 엄마와 다섯 살짜리 딸 모녀, 그리고 대학생, 작가, 요나, 마지막으로 가이드 루 였다.

숙소는 '벨에포크'라는 이름의 리조트로, 생각보다 좋았으며, 사막과 수상가옥, 화산지대 등을 둘러보며 이들은 가볍게 여행을 마치게 된다. 요나는 무이가 왜 존폐 위기에 놓인 여행지인지를 깨닫게 되고 이로써 한국으로 돌아갈 일만 남은 상황에 불현듯 일이 벌어진다.

돌아가는 당일, 아침부터 속이 좋지 않았던 요나는 공항으로 돌아가는 기차에서 화장실을 찾게 되고, 가까이에 있는 화장실이 20분이 넘도록 사용 중으로 확인되면서 멀리 있는 화장실을 이용하게 되는데 이 행동이 변수를 만들어 내는 시발점이 된다.

몇 칸이나 떨어진 화장실에서 약 30분 동안 속을 게워낸 후 돌아선 요나는 뭔가 이상함을 감지하게 되고 이내 열차가 두 노선으로 분리될 수도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안내받은 기억을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승무원을 통해 이 내용을 확인받게 되면서 그녀는 무작정 모르는 역에 내리게 된다. 홀로 낙오된 요나는 간신히 가이드와 통화연결은 되었지만 얼마 남지 않은 배터리로 인해 전화는 먹통이 되고, 마지막 순간 확인한 문자의 몇몇 단어를 조합한 끝에 결국 원래 있던 벨에포크 리조트로 어렵사리 돌아가게 된다.

큰 짐은 일행들과 함께 있었고, 여권과 지갑은 기차에서 분실하게 되면서 요나는 막막한 상황에 놓이게 되는데 다행히 이런 상황을 배려해 준 호텔 매니저 덕분에 요나는 원래 자신이 머물던 방에서 머물게 된다.

그리고 산책길에서 우연찮게 익숙하지만 낯선 사람과 풍경을 만나게 되면서 요나는 많은 것들이 뒤틀려 있음을 알게 된다. 여태껏 자신이 무이에서 재난 여행을 하며 보았던 모든 것들이 사실은 쇼였음을 알게 된 것이다. 여기에 더해 노란 트럭이 사람을 죽이는 현장을 목격하게 되면서 한국으로 급히 출국하기를 원하지만 일은 뜻대로 되지 않는다.

한국에 직장 말고는 특별한 지인이나 연고지가 없었던 요나는 자신의 직장인 '정글'과 통화를 하게 되고 이를 엿들은 호텔 매니저는 요나가 자신들의 관광산업에 키를 쥐고 있는 '정글'의 직원임을 알게 되면서 태도가 확 변하게 된다.

그리고 이내 여행 멤버였던 황 작가가 되돌아오게 되면서 셋은 공사현장처럼 보였던 탑이 있는 곳으로 향하게 된다. 그곳에서 요나는 커다란 싱크홀 2개를 목격하는 것과 동시에 그동안 이들이 꾸미고 있던 일련의 일들을 듣게 되면서 함께 동참하기를 제안받게 된다.

이들의 이야기는 상상인지 현실인지 분간하기 힘들었는데, 보다 구체적인 상황을 듣게 되면서 요나 또한 이 계획에 함께 하기로 한다.

이들이 계획하고 있는 재난은 3주 후 정확히 8월 첫 번째 일요일에 실행될 예정으로, 황 작가는 이 모든 계획의 시나리오를 쓰는 작가 역할을, 요나는 재난 후 또 다른 재난을 막기 위한 여행상품을 만드는 역할을 맡게 된다.

무이의 투자자 폴과 매니저, 그리고 이 둘은 마침내 거대한 재난현장을 만들 목표로 재난 프로젝트를 설계하게 되고, 서서히 계획은 실행되고 있었다.

이들의 계획은 비밀 엄수였으며, 대대적으로 온 마을 사람들을 운용해 재난 현장을 만드는 것이라 특히 더 그러했다. 누군가에게는 수익을 가져다줄 대단한 사업이었고, 또 어떤 이들에게는 간절한 생계가 걸린 문제였다.

요나는 여행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매니저가 붙여준 벨맨 럭과 무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마음속으로는 은근한 불안감을 가지고 있었다. 분명 겉으로 볼 때는 기회처럼 보이기는 했으나 덫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기 때문이다.

무이에서 막강한 권력을 가진 투자자 폴로부터 약속했던 허가증은 여전히 발급되지 않았고, 주변에서는 심상치 않은 일들이 벌어지는 것들이 자주 목격되었다. 요나는 어느새 이런 것들에 무감각해지기 시작했는데 오로지 럭과 함께 있을 때만큼은 온기와 감각이 살아나는 듯했다.

그리고 거사를 앞둔 어느 날 이들에게는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하고 이것은 곧 일요일 새벽녘 진짜 재난까지 발생하게 되면서 무이는 완전 초토화가 된다.

본격적인 재난현장은 지금부터 시작인데, 실행일을 앞두고 벌어진 일련의 사건과 사고 현장, 그리고 처참하게 망가진 무이의 모습은 책을 통해서 직접 확인해 보기를 바란다.

요나는 과연 어떻게 되었는지 그밖에 생존자들에는 누가 있는지는 특히 마지막 장 '맹그로브 숲'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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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의 재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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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회사에서 옐로우 카드를 받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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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가 지금 겪고 있는 게 재난이라면, 어떤 행동이 요나를 이 상황에 몰아넣은 것인지 돌아볼 필요가 있었다. 사소하지만 간과할 수 없는 일들로 인해 지금 요나는 옐로카드의 대상이 된 건지도 몰랐다. 김에게 성추행을 당하기 전의 상황은 잘 떠오르지 않았다. 어쨌든 지금 느끼는 이 불편함의 기원은 분명 김에게서 온 것이었다.
2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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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한국으로 돌아오는 길에 홀로 낙오됨
한국으로 돌아올 일만 남았던 요나는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오는 기차에서 지갑과 여권을 잃어버린 것은 물론, 홀로 낙오되었다.


3. 폴이 기획한 재난이 진짜 발생함으로써 무이가 진짜 재난 지역이 됨
인위적인 재난을 계획하고 있던 폴, 그리고 거기에 동참했던 매니저와 요나, 그리고 황 작가는 이내 자연이 만들어낸 진짜 재난에 휩싸이게 된다.


4. 예상치 못하게 럭과 사랑에 빠지면서 요나는 계획을 그르친 인물로 찍히게 됨
사람을 도구로 보던 매니저와 폴, 그들의 계획에 사람은 그저 자신들의 안위와 목적을 위한 도구에 불과했다. 그래서였는지 그들에게는 오로지 쓸모와 무 쓸모로 나뉘었는데, 요나가 럭과 사랑에 빠지면서 시나리오에서 벗어나는 행동을 하게 되고, 마침내 요나도 무쓸모한 인간으로 전락하게 된다. 그러면서 요나는 또 다른 재난상황에 빠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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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선처럼 다가왔던 문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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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마중을 갔던 사람도, 걷던 사람도, 일광욕을 하던 사람도, 해변의 가로등도, 모두 점, 점, 점, 난파당했다.
9~1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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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진해에서 벌어진 쓰나미 현장에 대해 서술한 문장이다. 요나는 자신의 새 재난 여행 프로그램을 진해에 맞추고 계획을 짜던 중이었다.

그리고 그때의 상황을 묘사한 장면이 바로 위의 문장이다. 그런데 이것은 곧 출장 겸 여행으로 떠난 무이에서 요나가 겪게 될 상황을 암시하는 문장으로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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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요나의 전임자가 떠올랐다.
(...)
사표를 제출했는데도 상사가 그것을 휴가로 돌려준 것을 두고 사람들은 박 과장이 게임에서 이겼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6개월 후 회사에 복귀한 박 과장은 최악의 고과 점수를 받았고, 곧 누구나 기피하는 곳으로 발령을 받았다. 그렇게 되자 박 과장은 결국 정말 사표를 쓰고 말았다. 남은 사람들 사이에서만 박 과장에 대한 말이 돌았다.

"뻔한 이야기였지, 뭐, 6개월 후면 11월이고, 인사고과 시즌 올 거 뻔하니까. 김 팀장이 바닥 깔 용도로 박 과장을 붙잡아 뒀던 거지. 게다가 그 지옥으로 보낼 사람도 한 명 필요했으니까.
(...)
아주 사람을 진액까지 쪽쪽 짜 먹을 인간이야."
127~12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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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오되고 버려진 요나의 상황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문장이다. 결국 요나가 따르게 될 상황이라고나 할까? 요나가 만약 무사히 무이에서 한국으로 귀국했다면, 이런 상황이 기다리고 있지 않았을까 짐작할 수 있는 문장으로, 또 다른 복선의 역할을 하고 있는 문장이라는 생각이 든다.

요나가 홀로 무이에 낙오되었을 때, 회사에서 자신의 안전을 보장해 주지 않으면서 마침내 요나는 전임자처럼 자신 또한 그런 식으로 처리된 모양이라고 인정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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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되는 표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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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 똑. 노크하듯 떨어졌다.
5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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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밤의 거대한 쓰나미 아래서, 그곳의 모든 생활들이 갑자기 점. 점. 점. 으로 끊어졌다. 그곳 무이의 해변에 좌초한 쓰레기 섬은 점. 점. 점. 흩어졌다.
22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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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 보면, 위와 같은 표현들이 종종 눈에 띈다. 끊어질 듯 연결되는 양상으로 보이는데 마치 삶이 끊어질 듯 위태롭게 이어지는 모양새처럼 느껴진다. 다르게 보면 점점 사라지는 모양새처럼 보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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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적인 문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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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의 첫인상에서 요나가 느낀 것은 만지고 싶다는 충동이었다. 그러나 사막의 실루엣은 만지고 싶어서 손을 뻗어도 손안에 남는 것은 모래 한 줌뿐.
5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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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는 한국에서도 기대거나 정서적으로 안정감을 느낄만한 존재가 전혀 없었다. 직장인 요나에게 '정글'은 그저 생존신고를 해주는 자리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런 그녀가 사막에서 불쑥 만지고 싶다는 충동을 느낀 것은 어쩌면 정서적 결핍으로 인한 충동에서 기인한 느낌이 아닐까 한다. 하지만 이내 손안으로 빠져나가는 모래를 느끼며 철저히 깨달았을 것이다. 그 어디에도 그녀가 원하는 자리가 없다는 것을.


-----
아이는 방갈로 앞 해변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
아이가 있던 자리에서 화약처럼 생긴 스탠드형 폭죽이 천둥 번개처럼 터졌다.
(...)
"머리가 떨어졌어요?"
요나는 아이의 천진한 표정 앞에서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난감했다.
(...)
"2차 학살을 해야 하는데."
(...)
"어? 부상자 운반하는 개미네. 지금이다!"
아이는 근처에 널려 있던 나뭇가지로 개미들을 콕콕 찔렀다.
(...)
아이가 "운다족 개미다, 죽이자!"라고 혼잣말을 하는 걸 보고, 요나는 재난 여행에 연령 제한을 둬야 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아이는 여전히 개미를 '학살'하고 있었다.
52~5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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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살 순진무구한 아이는 끔찍하고 참혹했던 역사 이야기를 듣고 그 행동을 그대로 재현한다. 아무런 죄책감이나 죄의식 없이 개미들을 죽이기 위해 폭죽을 터트리고, 머리가 떨어졌는지를 확인하고, 2차 학살을 감행한다.

이 아이는 어떠한 미안함이나 부끄러움도 마음속에 가지고 있지 않다. 그저 놀이고 즐거움이다. 이 대목을 읽는데 어쩐지 우리가 사는 현실 속 뉴스에서 종종 목격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떠올라 소름이 돋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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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는 스케치북을 두 권 가져왔는데, 아이의 스케치북에 이 여행의 장면들이 활기찬 부조처럼 녹아들기를 기대한 행동이었다.
(...)
아이가 속성으로 다섯 장이나 휘갈긴 그림의 첫 장에는 리조트에서 먹은 브라질식 바비큐가, 마지막 장에는 구덩이에 널린 머리들이 그려져 있었다. 첫 번째 것은 이 여행의 취지와 도무지 맞지 않았고, 마지막 것은 불쾌했다. 아이의 그림 속 잘린 머리들은 하나 같이 웃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익숙한 생김새들이었다. 머리는 하필이면 여섯 개.
"우리잖아, 엄마!"
아이는 그렇게 불필요한 설명을 덧붙였다.
58~5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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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잔인할 수 있을까? 부모의 바람과는 다르게 아이는 천진무구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끔찍한 살인자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활기차고 즐거운 일상이 스케치북에 녹아들기를 기대하며 건넨 엄마의 바람과는 다르게, 아이는 오히려 주변 사람들의 모습을 불쾌한 형상으로 그려 넣음으로써 엄마의 기대를 배신했다.

이 아이는 후에 커서 사이코패스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보게 만들었던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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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떠남으로써 사람들이 느끼는 반응은 크게 '충격→동정과 연민 혹은 불편함→내 삶에 대한 감사→책임감과 교훈 혹은 이 상황에서도 나는 살아남았다는 우월감'의 순으로 진행되었다. 어느 단계까지 마음이 움직이느냐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결국 이 모험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재난에 대한 두려움과 동시에 나는 지금 살아 있다는 확신이었다. 그러니까 재난 가까이 갔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안전했다는 이기적인 위안 말이다.
6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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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 현장을 굳이 여행상품으로 만들고, 이것을 관광상품이랍시고 여행을 떠나는 사람의 심정은 어떤 것일까 내심 궁금했는데, 이 대목에서 속시원히 풀어주고 있었다.

타인과는 다르게 자신은 살아있다는 확신, 그리고 이기적인 위안이었구나 깨닫게 된다. 이걸 보면 인간은 참 이기적인 동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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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는 자신이 검증된 재난 안으로 들어온 것인지 아니면 그 밖의 진짜 혼돈에 떨어진 것인지 알고 싶었다.
11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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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는 떠도는 먼지 같은 존재처럼 행동하다가도, 불현듯 자신의 삶에 대해 적극성을 띠고는 했는데, 첫 번째는 '정글'에서 자신의 자리가 없어진다고 느꼈을 때고, 두 번째는 무이에서 혼자 낙오되었을 때다.

자신의 선택으로 벌어진 상황인지, 아니면 진짜 우연찮게 벌어진 재난인 건지 그녀는 검증해 보고 싶어 했고, 실제로 확인을 통해 스스로 검증하는 절차도 가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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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8시, 예정된 시간이 되자 해는 지난밤을 비추듯 지평선 위로 떠올랐다.
(...)
공평했다. 부족의 구분도 계급의 구분도 지역의 구분도 없었다. 모두가 뒤엉켜 있었고 눈을 감은 사람들은 말이 없었다. 믿지 못할 광경은 서 있는 사람들의 눈도 감기게 만들었다.
21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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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이익을 위해 인위적인 재난을 만들려고 했던 인간은 참으로 무서웠다. 마치 거대한 재앙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그런 인간도 자연이 부린 마법 앞에서는 더 이상 힘을 쓰지 못했다.

사람마다 등급을 나누고 필요와 불필요를 나눠 입맛에 맞게 생사를 갈랐던 인간들과는 다르게 자연은 공평했다. 부족의 구분도 계급의 구분도 지역의 구분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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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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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자꾸 마음에 걸리는 부분들이 하나 둘 생겨난다. 마치 작가가 숨겨둔 보물 찾기를 하듯 단어 하나 문장 한 줄에 숨겨진 의미가 있는 듯하다.

2013년 출간되었는데, 내용으로 봤을 때는 오히려 2024년 현재에 더 어울리는 상황과 분위기인 것 같아 씁쓸한 마음이 든다. 메마르고 감성이 결여된 사람들의 모습이라던가 재난을 겪은 지역을 관광상품으로 만들어내는 여행사와 같은 것들은 절로 고개가 내저어진다.

특히 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재난상황을 생각해 보면 이 소설에서 표현되는 쓰나미의 상황이나 이후 폐허가 된 모습들은 어딘가 익숙함을 자아낸다.

사람과 살아있는 생물체의 목숨을 하찮게 여기고 2차 학살까지 감행하는 아이는 더 이상 아이의 모습처럼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아이의 가면을 쓴 살인자처럼 느껴진다. 길거리, 지하철, 백화점 등 우리 주변에서 갑작스레 벌어지는 살인 현장을 엿 본 느낌이라 소설에서 언급되는 '개미'나 '악어'가 그냥 보아 넘겨지지 않는다.

이 책에서 여행은 더 이상 낭만이나 기대를 품고 있지 않았다. 재난 여행은 말 그대로 재난이 되었고, 더 지독한 삶을 의미했다. '정글'이라는 회사 이름처럼 요나는 정글 속에서 생존을 위해 살았으며, 적어도 거기 머무르는 내내 그러했다.

같은 스펠링이지만 발음하기에 따라 다르게 불리는 Paul은 회사에서는 파울로 불렸고, 무이에서는 폴로 불렸다. 보이지도, 볼 수도 없는 절대자로 군림하는 '폴'은 정글에서는 '파울'이라는 또 다른 이름으로 낙오자의 상황을 대변하는 말이기도 했다.

정글과 무이는 다른 듯 닮은 형상을 하고 있었는데, 쓸모가 없어지면 존재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 그러했다. 정글에서 사람들은 '파울 때문에 그래'라는 말로 밀려났고, 그렇게 자리를 빼앗겼다. 무이에서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죽임을 당하거나 죽었다.

이들은 그래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쓸모를 입증해야 했고, 그 쓸모를 입증하지 못했을 때는 퇴출되었다. 한낱 소모성으로 전락한 사람들은 그렇게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권력을 쥔 인간, 절대적인 존재인 폴이나 정글의 입장에서 본 상황이다. 하지만 여기에 자연이 개입하면 상황은 완전히 반전된다. 어떤 조건을 가졌든 간에 평등하고 공평하게 인간들은 모두 자연 앞에서 하찮고 별거 아닌 존재로 쓰러져 버리는 것이다.

현재인지, 상상인지, 도무지 예측할 수 없는 인간들의 재난 활용기를 통해 우리가 생각했던 여행이 어떤 모습으로 변화하는지, 또 인간들의 욕심이 불러온 참상의 결과가 어떠한지를 똑똑히 목격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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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양장)
빅터 프랭클 지음, 이시형 옮김 / 청아출판사 / 202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극한 상황에 처했던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전하는 삶의 의미와 의지의 중요성!"


아우슈비츠에 관한 이야기는 많이 들어서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책 중에는 <안네의 일기>가 유명하고, 또 하나 바로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이 자주 오르내린다.

그래서인지 내심 이 책이 너무 궁금했다. 상황을 직접 겪은 자전적 이야기를 쓴 기록물이라고 하니 어쩐지 꼭 한번은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총 3부로 구성된 이 책은, 1부에서는 저자가 나치 강제 수용소에서 겪은 일을 먼저 이야기하고, 2부에서는 이것과 관련하여 인간이 살아감에 있어 진짜 필요한 것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또 현대인들의 공허함과 우울감을 치료하는 데 있어 로고테라피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전한다. 마지막 3부에서는 로고테라피 이론의 핵심을 전하며 요약정리하는 것으로 마무리하고 있다.

소개 글을 보면 유대인 정신 의학자의 생생한 체험 수기라고 안내하고 있는데, 실질적으로는 저자가 현장 밖에서 서술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감정이나 주관적인 의견은 최대한 배제하고 객관적인 형태로 서술해서 그런듯하다.

끔찍하고 참혹한 현장을 건조하고 담담한 시선으로 서술하다 보니 나름대로 장단점이 나뉘는 데, 우선 독자가 감정적으로 깊이 안으로 침투할 수 없다는 점은 단점으로 작용한다. 반면 제3자의 시선으로 무덤덤하게 바라봄으로써 감정보다는 상황을 앞서 살펴볼 수 있다는 점은 장점으로 작용하는 듯하다.

1부 체험 수기에 이어 2부와 3부는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 삶의 목적과 이유,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 삶의 의미란 무엇인가에 대해 심리적으로 접근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는데, 어찌 보면 1부의 체험수기는 2부와 3부를 위한 밑밥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초판본에서는 1부 체험수기만 담겼었다고 하는데 개정되면서 2부와 3부가 추가되다 보니 실제로 겪은 체험수기는 뒷전으로 밀려나고, 오히려 정신의학자라는 직업적인 측면으로의 연계성과 저자가 정립한 로고테라피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 1부의 내용을 활용한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든다.

그럼에도 한 번쯤 읽어볼 만하다 느꼈던 이유는, 현대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끔찍한 참극을 이 책의 2부와 3부에서 짚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존엄성이 어떻게 훼손될 수 있는지, 또 회색도시에 사는 회색 인간들이 벌일 수 있는 참혹함과 그 참혹함이 번져나가는 이유를 확인할 수 있어 아우슈비츠가 아닌, 현대에 접목시켜 인간의 속성과 우리 삶을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라 느꼈다.

자살률 세계 1위라는 불명예스러운 지위를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지금을 사는 사람들의 문제점은 무엇인지, 또 이것을 벗어나기 위한 해결책으로는 어떤 것이 있는지 살펴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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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저자 빅터 프랭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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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의과 대학의 신경 정신과 교수이며 미국 인터내셔널 대학에서 로고테라피를 가르쳤다.

1905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났고, 빈 대학에서 의학박사와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3년 동안 다하우와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에서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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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강제 수용소에서의 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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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에는 평범한 수감자였던 저자의 체험에 대한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는데, 인상 깊었던 문장들을 위주로 정리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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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피가 머리로 솟구쳤다. 어떤 사람으로부터 그가 전혀 알지도 못하는 내 인생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하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고백할 것이 있다. 이 일이 있고 나서 동료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듣고 내 분노가 어린아이처럼 누그러졌다는 사실이다.

"저렇게 짐승 같고 야비하게 생긴 작자가 우리 병원에 오면 아마 간호사들이 대기실에도 들여보내지 않고 쫓아낼 걸."
54~5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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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에서는 당장 벌어질 수 없는 일이지만, 어쩐지 상상만으로도 푸시시하고 분노가 훅 꺼져버릴 만큼 감정적 역전의 상황의 불러온 동료의 말은 불이 난 곳에 들이부은 차가운 물이나 혹은 소화기 같은 역할을 한 게 아니었을까?

여기에 더해 옆에서 함께 듣던 동료들이 함께 분노해 주고 공감해 준 것 또한 분노를 가라앉히는 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대기실에 발도 못 붙이고 쫓겨나는 상상만으로 얼마나 속이 시원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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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적으로 소외된 상황에서 자기 자신을 적극적으로 표현할 수 없을 때, 주어진 고통을 올바르고 명예롭게 견디는 것만이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일 때, 사람은 그가 간직하고 있던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을 생각하는 것으로 충족감을 느낄 수 있다. 내 생애 처음으로 나는 다음과 같은 말의 의미를 이해하게 됐다.

'천사들은 한없는 영광 속에서 영원한 묵상에 잠겨 있나니'
7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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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적인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을 때 좋은 추억이나 기억은 종종 나를 충족감에 젖어들게 해준다. 그래서 우리는 살아가면서 좋은 추억과 기억을 많이 만들어 두어야 하나보다.

저자 역시 무기력하고 극단적인 상황 속에서 사랑하는 이를 생각하는 것으로 고통을 이겨냈다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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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머 감각을 키우고 사물을 유머러스하게 보려는 시도는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기술을 배우면서 터득한 하나의 요령이다. 고통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는 수용소에서도 이런 삶의 기술을 실행하는 것이 가능하다.
(...)
인간의 고통도 그 고통이 크든 작든 상관없이 인간의 영혼과 의식을 완전하게 채운다. 따라서 고통의 '크기'는 완전히 상대적인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78~7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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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용소에서 극강의 고통을 견디고 버텨낼 수 있었던 데에는 고통을 유머러스하게 풀어보려 했던 노력과 같은 시도가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본질적인 고통의 크기와 상관없이 우리가 고통을 어떻게 대하고 상대하느냐에 따라 때로 고통은 다른 무게와 크기로 다가옴을 이 책을 빌어 다시 한번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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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이 무뎌진 수용소 사람들은 병든 사람을 이송할 때에는 이곳에서 인간 존재가 얼마나 철저하게 무시당하는지를 느꼈을 것이다. 다 죽어 가는 병자의 몸은 바퀴 두 개 달린 수레에 던져진다.
(...)
만약 병자 중 한 명이 수레가 떠나기 전에 죽는다 해도 마찬가지로 수레에 던져진다. 리스트에 올린 번호와 맞아야 하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번호뿐이다. 오로지 죄수 번호를 가지고 있을 때에만 그 사람이 의미 있는 것이다. 사람은 글자 그대로 번호가 됐다. 그 사람이 죽었는지 살았는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그 '번호'의 생명은 철저하게 무시된다. 그 번호 이면에 있는 것, 즉 그의 삶은 그렇게 중요한 것이 못 된다. 그의 운명과 그가 살아온 내력 그리고 그의 이름은 중요하지 않다.
9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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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장을 통해 당시 완전히 무너진 인간의 존엄성의 현장을 목격할 수 있었다. 번호로 매겨진 사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사람들은 그렇게 버려지고 죽어갔다.

지금 우리가 그토록 중요하게 여기는 권력, 배경, 누구의 딸 아들, 직업, 어떻게 살아왔는지는 당시에는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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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정신 상태-용기와 희망 혹은 그것의 상실-와 육체의 면역력이 얼마나 밀접한 연관이 있는지 아는 사람은 희망과 용기의 갑작스런 상실이 얼마나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는지 이해할 것이다.
(...)
수용소 주치의의 말에 의하면 1944년 성탄절부터 1945년 새해에 이르기까지 일주일간 사망률이 일찍이 볼 수 없었던 추세로 급격히 증가했다는 것이다. 주치의는 이 기간에 사망률이 증가한 것은 보다 가혹해진 노동 조건, 식량 사정 악화, 기후 변화, 새로운 전염병 때문이 아니라고 했다.

그것은 대부분의 수감자들이 성탄절에는 집에 갈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 시간이 다가오는데도 희망적인 소식이 들리지 않자 용기를 잃었으며 절망감이 그들을 덮쳤다. 이것이 그들의 저항력에 위험한 영향을 끼쳤고, 그중 많은 사람들이 사망하기에 이른 것이다.
122~12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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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연한 희망으로 버티며 살던 사람들이 마침내 그 시간이 다가왔음에도 아무런 희망적인 소식이 들려오지 않자 용기를 잃고 그 자신을 내던지는 일은 우리 사회에서도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 중 하나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도 특별한 날, 이를테면 성탄절과 같은 날에 이러한 사망률이 급등했다는 것을 보면 정신이 몸을 지배한다는 말은 결코 헛된 말이 아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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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용소에서 사람의 정신력을 회복시키려면 그에게 먼저 미래에 대한 희망을 보여 주는 데 성공해야 한다. 니체가 말했다.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다.

이 말은 수감자들을 대상으로 심리 치료와 정신 위생학적 치료를 하려는 사람에게 귀감이 되는 말이다. 수감자를 치료할 기회가 있을 때 그들이 처한 끔찍한 현실을 어떻게든 견딜 수 있는 힘을 주려면 그들에게 살아야 할 이유, 즉 목표를 얘기해 주어야 한다.

"나는 내 인생에서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어요."

그런 사람은 곧 파멸했다.
12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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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비단 수용소에 갇힌 이들에게만 적용되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우리에게도 너무나 절실하고 필요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어 가져와 봤다.

왜 살아야 하는가 그 이유와 목적을 알면 우리는 상황이 어떻든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살아갈 이유가 없는 사람들 이내 소멸하고 만다.

이 교훈을 바탕으로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전하고 싶다. 만약 지금 삶의 위기 상황이라고 느낀다면, 가장 먼저 자신이 왜 살아야 하는지 그 이유부터 찾아보자! 거기에 해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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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부 로고테라피의 기본 개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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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에서는 본격적으로 로고테라피의 개념과 이것을 우리 삶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실질적으로 우리가 삶에서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이고, 살아가기 위해서 지금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 확인해 볼 수 있다.


***

■로고테라피란?
로고테라피는 환자의 미래에 초점을 맞춘다. 말하자면 미래에 환자가 이루어야 할 과제가 갖고 있는 의미에 초점을 맞춘다는 말이다. 동시에 로고테라피는 정신 질환을 일으키는 데 아주 커다란 역할을 하는 악순환의 고리와 피드백 기제를 약화시킨다. 그렇게 해서 정신 질환 환자에게 전형적인 자기 집중 증상이 발생하고 심화되는 것을 막는다.

'로고테라피'라는 이름을 붙인 이유를 살펴보면, 로고스는 '의미'를 뜻하는 그리스어이다. 로고테라피 혹은 다른 학자들이 '빈 제 3정신 의학파'로 부르는 이 이론은 인간 존재의 의미는 물론, 그 의미를 찾아 나가는 인간 의지에 초점을 맞춘 이론이다.


■로고테라피가 추구하는 방향
로고테라피는 환자 스스로 삶의 의미를 찾도록 도와주는 것을 과제로 삼는다. 그렇게 하려면 환자의 실존 안에 숨겨진 '로고스'를 스스로 깨닫도록 해야 하는데, 이것은 상당한 분석 과정을 필요로 한다 이런 점에서 로고테라피는 정신 분석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로고테라피가 환자에게 어떤 것을 다시 깨우쳐 주는 과정에서는 인간 무의식에 자리 잡고 있는 본능적 요소에만 국한하지 않고 실존적 현실, 즉 의미를 찾고자 하는 의지뿐만 아니라 앞으로 성취되어야 할 실존의 잠재적 의미까지도 고려 대상이 된다. 환자가 자기 존재의 깊숙한 곳에서 정말로 소망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하는 것은 중요하다.

로고테라피에서는 인간을 그저 충동과 욕구를 충족시키면서 쾌락을 얻거나 서로 갈등하고 있는 이드와 자아, 초자아를 절충시키거나 혹은 사회와 환경에 그저 순응하고 적응하는 데에만 관심을 갖는 존재로 보지 않는다. 그보다는 주된 관심사가 어떤 의미를 성취하는 데 있다고 보고, 그런 점에서 로고테라피는 정신 분석과 구별된다.


■실존적 공허의 발생 원인
인간에게 실제로 필요한 것은 긴장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가치 있는 목표, 자유 의지로 선택한 목표를 위해 노력하고 투쟁하는 것이다.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어떻게 해서든지 긴장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성취해야 할 삶의 잠재적인 의미를 밖으로 불러내는 것이다.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항상성이 아니라 정신적인 역동성이다.

말하자면 한쪽 극에는 실현돼야 할 의미가, 다른 극에는 의미를 실현시킬 인간이 있는 자기장 안의 실존적 역동성이다.

이것이 정상적인 상황에서만 유효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신경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에게 더 효력이 있다.

자기 삶 전체가 완전히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가져다주는 악영향을 보통 우리는 '실존적 공허'라고 부른다.

실존적 공허는 20세기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현상 중 하나이다. 이는 충분히 납득 할 수 있는 현상으로, 인간이 진정한 의미의 인간이 된 후에 겪어야 했던 두 가지 손실에서 비롯된 것이다.

인류 역사가 시작될 때 인간은 ①동물적인 본능의 일면을 잃었다. 여기에 덧붙여 근래 들어 인간은 또 다른 상실감을 맛보게 됐는데, 그것은 그간 자기 행동을 지탱해 주던 ②전통이 빠른 속도로 와해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렇게 해야 한다고 말해 주는 본능도 없고, 이렇게 해야 한다고 가르쳐 주는 전통도 없다. 어떤 때는 스스로도 자기가 정말로 무엇을 원하는지 모를 정도가 됐다. 그 결과 남이 하는 대로 따라 하거나(동조 주의) 아니면 남이 시키는 대로(전체주의) 하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실존적 공허는 대개 권태를 느끼는 상태에서 나타난다.


■실존적 공허로 인해 야기되는 문제점
자살의 상당수가 바로 이런 실존적 공허 때문에 일어난다. 현대 사회에 만연해 있는 우울증과 공격성, 중독성의 원인이 무엇인지 알려면 그 저변에 깔려 있는 실존적 공허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 연금 생활자나 나이 든 노인들이 느끼는 위기감 역시 이와 같은 종류의 것이다.

게다가 이런 실존적 공허는 가면을 쓰거나 위장한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의미를 찾고자 하는 의지가 좌절되면 사람들은 권력욕으로 좌절을 대신 보상받으려고 하는데, 여기에는 아주 원시적인 형태의 권력욕인 돈에 대한 욕구도 포함된다.

혹은 쾌락을 추구하는 의지가 대신 자리 잡는 경우도 있다. 실존적 과절을 겪은 사람들이 종종 성적 탐닉에서 보상을 찾으려고 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실존적 공허의 고리를 끊는 법
특정한 유형의 피드백 기제와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되면, 이런 징후들이 공허한 상태에 있는 실존에 침입해 들어가서는 계속 번성하는 것을 수없이 볼 수 있다.

환자에 대한 심리 요법에 로고테라피를 보완하지 않으면 환자가 자기 상황을 극복하게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이런 실존적 공허에 무언가를 채워 넣으면 병이 악화되는 것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추상적인 삶의 의미를 추구해서는 안된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구체적인 과제를 수행할 특정한 일과 사명이 있다. 이 점에 있어서 그를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그의 삶 역시 반복될 수 없다. 따라서 개인에게 부과된 임무는 거기에 부가돼 찾아오는 특정한 기회만큼이나 유일한 것이다.

삶에서 마주치는 각각의 상황이 한 인간에게는 도전이며, 그것이 그가 해결해야 할 문제를 제시한다.

인간은 삶으로부터 질문을 받고 있으며, 그 자신의 삶에 '책임을 짐으로써'만 삶의 질문에 대답할 수 있다는 말이다. 오로지 책임감을 갖는 것을 통해서만 삶에 응답할 수 있다. 따라서 로고테라피에서는 책임감을 인간 존재의 본질로 본다.

로고테라피는 환자가 무엇을 책임져야 하는지 분명히 깨닫도록 하고자 노력한다. 무엇을 위해, 무엇에 대해, 혹은 누구에게 책임져야 하는가 하는 문제는 전적으로 환자 스스로의 판단에 맡긴다.

로고테라피 치료사의 역할을 환자의 시야를 넓히고 확장하는 일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잠재되어 있는 의미의 전체적인 스펙트럼을 환자가 인식하고 볼 수 있도록 해준다.


■로고테라피로 살펴보는 삶의 의미 3가지
로고테라피에 의하면 우리는 삶의 의미를 세 가지 방식으로 찾을 수 있다.

1. 무엇인가를 창조하거나 어떤 일을 함으로써
2. 어떤 일을 경험하거나 어떤 사람을 만남으로써
3. 피할 수 없는 시련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기로 결정함으로써

첫 번째를 완수하고 달성하는 방법은 아주 분명하다. 하지만 두 번째와 세 번째는 약간의 부연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삶에서 의미를 찾아내는 두 번째 방법은 어떤 것-선이나 진리, 아름다움-을 체험하는 것, 자연과 문화를 체험하거나 다른 사람을 유일한 존재로 체험하는 것, 즉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말한다.

세 번째로 삶의 의미를 찾는 방법은 시련을 통해서이다.


■치료의 핵심은 자기 자신을 초월하는 것!
예기 불안은 역설 의도로 좌절시켜야 하고, 과잉 의도와 과잉 투사는 역투사의 방식으로 좌절시켜야 한다. 하지만 역투사는 환자가 자신의 삶에 주어진 특정한 과업과 사명을 바라보지 않으면 실현될 수 없다.

자기 연민이든 멸시든 간에 환자가 자기 자신에게 관심을 집중시킴으로써 악순환의 고리가 끊어지는 것은 아니다. 치료의 핵심은 환자가 자기 자신을 초월하는 데 있다.


■본인의 의지에 따라 달라지는 삶
나는 살아 있는 인간 실험실이자 시험장이었던 강제 수용소에서 어떤 사람들이 성자처럼 행동할 때, 또 다른 사람들은 돼지처럼 행동하는 것을 보았다. 사람은 내면에 두 개의 잠재력을 모두 가지고 있는데, 그중 어떤 것을 취하느냐 하는 문제는 전적으로 본인의 의지에 달려 있다.

우리 세대는 실체를 경험한 세대이다. 왜냐하면 인간이 정말로 어떤 존재인지 알게 됐기 때문이다. 인간은 아우슈비츠 가스실을 만든 존재이자 또한 의연하게 가스실로 들어가면서 입으로 주기도문이나 <셰마 이스라엘>을 외울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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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부 비극 속에서의 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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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행복하려면 '행복해야 할 이유'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일단 그 이유를 찾으면 인간은 저절로 행복해진다. 알다시피 인간은 행복을 찾는 존재가 아니라 주어진 상황에 내재해 있는 잠재적인 의미를 실현시킴으로써 행복할 이유를 찾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20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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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단이 되는 행복 그 자체가 인간에게 행복을 가져다주지는 않는다. 똑같은 상황을 두고도 어떤 이는 감흥이 없고, 또 어떤 이는 행복해하는 것을 보면 행복은 '행복' 그 자체로 모두에게 행복을 주는 것은 아닌듯하다.

오히려 '행복해야 할 이유'가 있다면 미비한 것일지라도 인간은 저절로 행복해진다. 그래서 저자는 우리가 어떤 것에 의미를 지니는 것, 그리고 그것을 실현시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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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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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이고, 인간다움이란 무엇일까? 또 삶의 의미를 지닌다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해 심도 있게 다룬 이 책은 저자가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에서 직접 겪은 일화를 바탕으로, 로고테라피를 통해 삶의 의미를 되새겨보고 우리가 지닌 본성과 삶의 의지를 가질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양면성을 어떻게 발현하고 실행하느냐에 따라 삶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는데, 이를테면 인간 실험실에서 성자처럼 행동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돼지처럼 행동하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인간은 과학의 발전과 산업혁명을 겪은 후 20세기부터는 급격히 '실존적 공허'를 겪게 되었는데, 이는 그동안 삶의 동력원이라 생각했던 두 가지를 잃었기 때문이다.

하나는 동물적인 본능이고, 또 하나는 전통으로 두 가지는 여태껏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던 생존본능이자 자기 행동을 지탱해 주던 것들이다.

이 두 가지를 잃게 되면서 인간은 길을 잃었고 마침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를 모르게 된 것이다. 때문에 권태를 느끼게 되고 또 실존적 공허를 느끼게 된 것이다.

실존적 공허는 자살률을 높이고, 우울증과 공격성, 중독성의 원인이 되며, 보상심리가 발동하면서 권력욕이나 성적 탐닉으로 나타나기도 하는데, 현재 우리 사회의 이슈들을 살펴보면 이와 별반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어쩌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이런 문제점들의 근원에는 실존적 공허가 자리하고 있으며, 때문에 삶의 방향과 목적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마구잡이로 휘두른 감정의 폭발이 결국 아무 잘못도 없는 피해자들을 양산한 게 아닐까 한다.

결국 이것을 해결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막연하고 추상적인 무엇을 추구하기 보다, 구체적인 과제를 수행할 특정한 일과 사명을 부여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는데,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는 방식을 취해야 한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나라는 사람은 세상에서 유일무이한 존재이며 내 삶에 닥치는 질문과 문제는 오로지 내가 풀어야 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세 가지 방식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전하는데, 첫 번째는 무엇인가를 창조하거나 어떤 일을 하는 것으로, 두 번째는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으로, 세 번째는 시련을 통해서 가능하다고 말한다.

선택과 방식은 오로지 자신의 몫으로, 스스로가 어떤 삶을 살 것인지, 또 삶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어떤 의지력을 가지고 나아갈 것인가에 따라 인생은 완전히 달라질 것이라 말한다.

행복해지고 싶은가? 그렇다면 일반적인 행복의 도구에서 행복을 찾기보다, 내가 행복해할 이유를 만들어보자. 나의 의지, 노력, 의미 부여에 따라 행복은 가까이에 있을 수도, 혹은 멀리에 있을 수도 있다.

어쩌면 우리가 그토록 찾던 희망과 행복은 우리 마음속에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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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의 자존감 수업 - 니체에게 배우는 나를 사랑하고 긍정하는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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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에게 배우는 진짜 나를 사랑하고 아껴주는 법!"


SNS의 발달로 자기애를 과시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생각보다 쉽다. 그런데 그것을 두고 과연 진짜 자기애라고 말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특히 SNS를 통해 번져가는 자기애는 진짜 나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보다는 타인에게 자신의 부나 권력, 경제력 등을 과시하기 위한 목적이 더 크기 때문에 실속 없는 자기애라고도 볼 수 있다.

더군다나 실제 자기애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해도, 보통 과하게 드러내는 것을 보면 자기애라는 표현보다는 나르시시즘에 가까운 경우가 많아 진정한 자기애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나르시시즘 말고, 진정한 자기애를 구현하기 위한 기술과 방법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니체가 거기에 대한 답을 주었다.


총 5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니체의 사상과 철학의 주요 개념들을 소개하며, 우리가 나 자신을 사랑하고 자존감을 높일 수 있는 쉽고 다양한 방법들을 전한다.

니체의 주요 개념들을 통해 저자는 오늘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나다운 모습으로 살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 노예가 아닌 주인의 모습으로 살아가기 위한 방법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등을 짚어주며, 껍데기만 화려한 모습 말고, 진정으로 자신을 사랑하고 긍정하는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에서 자주 언급되는 니체의 책에도 관심이 많이 갔는데, 바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라는 책이다. 원문에는 과연 어떤 내용들이 담겨 있을지 궁금증과 호기심이 일어, 이 책은 추후 따로 읽어 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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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사랑하는 '기술'을 배우려면 어떤 훈련을 해야 할까요? 답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오늘도 내일도 매일매일 몇 번이고 자기 자신을 칭찬해 주면 됩니다. 칭찬의 포인트는 무엇이든 상관없습니다. 일단 다른 사람들의 평가는 제쳐둡시다.
(...)
저는 자화자찬을 적극 권장하지만 여기서도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갖지 못한 것에 매달리는 일입니다.
(...)
'나에겐 아무것도 없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발밑을 파서 자신의 숨겨진 재능을 발굴해야 합니다.
(...)
자신이 이미 소유하고 있는 것, 이미 하고 있는 일에 빛나는 무언가가 숨어 있을지 모릅니다. 깊이 파볼 가치가 충분합니다.

마지막으로 니체의 말 한마디를 더 소개하겠습니다.

일부러라도 그대들 자신을 믿는 것이 좋다!
그러지 않으면 어떻게 남들이 그대들을 믿겠는가!
자신을 믿지 못하는 자는 언제나 거짓을 꾸민다!

_니체 <니체 전집>

자신을 믿지 못하는 사람은 언제나 남에게 거짓된 자신을 연기할 수 밖에 없으므로 누구에게도 신뢰받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자신을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스스로를 믿을 수 있게 됩니다.

39~4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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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사랑하는 기술로 니체는 매일 나 자신을 칭찬해 주라고 말한다. 다만 주의할 점은,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미련을 가지지 말라고 전한다.

이미 내가 소유하고 있는 것, 거기에 의외로 숨겨진 보물이 있을 거라 말하며 깊이 더 깊이 파보라고 말한다.

여기에 더해 니체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스스로를 믿을 수 있다고 말하는데, 어쩌면 핵심은 바로 이것이 아닐까 한다. 나 자신을 내가 믿는 것!

내가 나 자신을 믿어줘야 남도 나를 믿어준다. 그러니 지금부터는 나 자신에게 매일 칭찬을 아끼지 말자. 그렇게 나 자신을 사랑하다 보면 내 안에 스스로에 대한 굳건한 믿음의 뿌리가 자라날 것이다. 이 믿음의 뿌리는 나를 더 성장시키는 원동력이자 발판이 되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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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는 고독을 '안심하고 홀로 자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최고의 환경'이라고 말합니다.
(...)
만약 고독하다고 느낀다면 스스로에게 "나는 고독자가 아니라 단독자다"라고 말해줍시다. 기독교라는 거대한 권력에 홀로 맞선 단독자 니체를 떠올려보길 바랍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 힘과 용기가 솟아날 것입니다. 강인함은 단독자로 존재할 때만 생기는 법입니다.

68~7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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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적으로 '고독'을 부정적인 이미지로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실상 고독은 개개인에게 꼭 필요한 시간이자 쉼의 시간이다.

홀로 내면을 들여다보며 사색하고, 자유로울 수 있는 시간이 바로 고독의 시간인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부정적으로 다가온다면, 니체처럼 '고독자'가 아니라 '단독자'라고 생각해 보면 어떨까 한다.

내면의 힘을 키우는 유일한 방법은 '단독자'일 때 가능하다는 것을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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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가 권하는 '멀리 있는 사람에 대한 사랑'은 무엇일까요?

'멀리 있는 사람에 대한 사랑'은 니체의 다른 글인 <별들의 우정>에도 표현되어 있습니다. 밤하늘에 빛나는 별들은 모두 독립적으로 빛납니다. 거리는 멀리 떨어져 있지만 서로의 존재는 빛날수록 더 분명히 인식됩니다.

'별들의 우정'이란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도 서로의 빛을 흠모하고 긍정적인 자극을 주고받는 관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
가령, 중학교 시절의 친구 중에 10년, 20년 후 동창회에서 만나거나 SNS로 재회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지금은 거리상으로 꽤 멀리 있지만 옛 친구가 열심히 사는 모습은 좋은 자극이 됩니다.
(...)
옛 친구라도 지금은 거의 접점이 없는 '멀리 있는 사람'이므로 질투심이 덜 생긴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따라서 상대방의 '향상심'을 순수하게 느낄 수 있지요. 이처럼 '멀리 있는 사람에 대한 사랑'이 있으면 주위에 향상심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는 시시한 인간들만 있더라도 '근묵자흑'의 위험은 피할 수 있습니다.
(...)
'멀리 있는 사람에 대한 사랑'은 누구를 대상으로 하든 자기 마음입니다. 그 대상이 슈퍼스타든 이미 세상을 떠난 위인이든 모두 가능합니다.
(...)
이미 멀리 있는 사람뿐만 아니라 가까운 사람이 성장해 멀리 있는 존재가 되기를 바라는 것도 훌륭한 일입니다. 니체는 <즐거운 학문>에 이렇게 썼습니다.

이웃이 가까이 있는 것은 좋지 않으니
높은 곳, 먼 곳으로 가라!
그러지 않는다면 어떻게 그가
나의 별이 될 수 있으랴?

_니체 <즐거운 학문>

73~7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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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친한 사람, 가까운 사람일수록 가까이에 두고 자주 만나는 것을 떠올리기 마련인데, 니체는 오히려 '멀리 있는 사람에 대한 사랑'을 권하고 있다.

처음에는 조금 의아했는데, 읽다 보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친하다고 해서, 가까운 사이라고 해서 꼭 물리적으로 가까워야 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그 물리적인 거리 때문에 우리는 더 자주 싸우고, 부딪히고, 트러블이 일어나는 경우가 더 많다.

물리적 거리는 멀리 두되, 마음에만 존재감을 가지고 있으면 어떨까? 그러면 앞서 이야기한 부정적인 사례는 거의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향상심을 일으키는 좋은 자극, 질투심 유발 억제, 근묵자흑의 환경에서 물들지 않는 긍정적인 면모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이웃, 지인, 가족, 친구 등 가까운 이들과 긍정적 시너지를 주고받고자 한다면 물리적 거리를 조금 떨어뜨려보면 어떨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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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는 초인을 지향하는 것에 가장 큰 의의를 두고 있지요.
(...)
'인간을 뛰어넘는다'라고 하면 상당히 장벽이 높은 것처럼 느껴질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좀 더 가볍게 생각하면 이런 것이 아닐까요? '비포 앤 애프터'처럼 무언가를 하기 전과 후를 비교해 자신을 뛰어넘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
무언가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지금까지 몰랐던 것을 만나게 되면 이를 계기로 새로운 세계가 펼쳐집니다. 그것이야말로 니체가 말하는 '초월'의 의미일 것입니다.
여러분도 부디 '비포 앤 애프터'를 의식해 지금까지 하지 않았던 일에 도전해 보길 바랍니다. 그러면 비로소 '초인'으로 가는 길이 보일 것입니다.

153~15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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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인'이라고 하면 어쩐지 넘사벽이라는 말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니체가 이야기하는 초인은 이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비교 대상에 타인을 두지 않고, 과거의 나를 둠으로써 결과적으로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를 비교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비포 앤 애프터'는 누구나 적용할 수 있는 도전이며, 또한 어제의 나를 초월하는 오늘의 나를 만들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나의 삶에도 '초인'을 지향해 보자. 당신도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다!!


*****

이 책을 읽다 보니, 불현듯 니체의 글을 인용한 책들은 많이 읽어봤는데 정작 니체가 쓴 원문은 한 번도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음을 알게 되었다.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니체를 부르짖으며, 그가 쓴 책과 글, 철학, 사상 등을 앞다투어 소개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왜 여태껏 그가 쓴 글을 제대로 마주하지 않았을까 반성하게 된다.

이제라도 그의 추구하는 사상들을 살펴보고, 그가 말하는 나를 사랑하고 긍정하는 법, 그 외에 그가 말하고자 하는 새로운 가치들을 살펴보면 어떨까 한다.

더불어 이 책에서 말하는 나를 사랑하는 법과 자존감을 올리는 방법은 고이 접어두기보다, 실질적으로 삶에 적용해 보려 한다. 현재 내가 추구하는 삶과 크게 동떨어져 있지 않을뿐더러 의지와 개념 한 스푼을 더 추가하면 충분히 가능하리라 믿기 때문이다.

나 자신을 매일 칭찬해 주면서 믿음이라는 나무를 키워줄 것. 고독을 온전히 즐기며 강인함을 키울 것(단, 필요하다면 고독자가 아니라 단독자로 불러보자). 관계에 있어서는 물리적 거리를 두고 보다 긍정적인 상황을 누려볼 것. 더 나은 내일의 나를 위해 새로운 것에 도전해 볼 것. 이것은 곧 초인으로 가는 길임을 기억할 것!

이 외에도 저자는 니체의 사상을 통해 어린아이처럼 창조적인 세계를 만들고, 주어진 인생과 운명에 감사하고, 노예가 아닌 주인의 삶을 영위하고, 지금 이 순간을 긍정하는 방법 등 우리 삶에 적용하면 좋을 기술들을 많이 담아두었다.

내 안에서 자라난 진짜 자존감을 키우고 나를 긍정하는 방법, 사랑하는 방법을 알고 싶다면 이 책에서 그 해답을 얻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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