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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양장)
빅터 프랭클 지음, 이시형 옮김 / 청아출판사 / 202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극한 상황에 처했던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전하는 삶의 의미와 의지의 중요성!"
아우슈비츠에 관한 이야기는 많이 들어서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책 중에는 <안네의 일기>가 유명하고, 또 하나 바로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이 자주 오르내린다.
그래서인지 내심 이 책이 너무 궁금했다. 상황을 직접 겪은 자전적 이야기를 쓴 기록물이라고 하니 어쩐지 꼭 한번은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총 3부로 구성된 이 책은, 1부에서는 저자가 나치 강제 수용소에서 겪은 일을 먼저 이야기하고, 2부에서는 이것과 관련하여 인간이 살아감에 있어 진짜 필요한 것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또 현대인들의 공허함과 우울감을 치료하는 데 있어 로고테라피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전한다. 마지막 3부에서는 로고테라피 이론의 핵심을 전하며 요약정리하는 것으로 마무리하고 있다.
소개 글을 보면 유대인 정신 의학자의 생생한 체험 수기라고 안내하고 있는데, 실질적으로는 저자가 현장 밖에서 서술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감정이나 주관적인 의견은 최대한 배제하고 객관적인 형태로 서술해서 그런듯하다.
끔찍하고 참혹한 현장을 건조하고 담담한 시선으로 서술하다 보니 나름대로 장단점이 나뉘는 데, 우선 독자가 감정적으로 깊이 안으로 침투할 수 없다는 점은 단점으로 작용한다. 반면 제3자의 시선으로 무덤덤하게 바라봄으로써 감정보다는 상황을 앞서 살펴볼 수 있다는 점은 장점으로 작용하는 듯하다.
1부 체험 수기에 이어 2부와 3부는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 삶의 목적과 이유,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 삶의 의미란 무엇인가에 대해 심리적으로 접근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는데, 어찌 보면 1부의 체험수기는 2부와 3부를 위한 밑밥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초판본에서는 1부 체험수기만 담겼었다고 하는데 개정되면서 2부와 3부가 추가되다 보니 실제로 겪은 체험수기는 뒷전으로 밀려나고, 오히려 정신의학자라는 직업적인 측면으로의 연계성과 저자가 정립한 로고테라피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 1부의 내용을 활용한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든다.
그럼에도 한 번쯤 읽어볼 만하다 느꼈던 이유는, 현대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끔찍한 참극을 이 책의 2부와 3부에서 짚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존엄성이 어떻게 훼손될 수 있는지, 또 회색도시에 사는 회색 인간들이 벌일 수 있는 참혹함과 그 참혹함이 번져나가는 이유를 확인할 수 있어 아우슈비츠가 아닌, 현대에 접목시켜 인간의 속성과 우리 삶을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라 느꼈다.
자살률 세계 1위라는 불명예스러운 지위를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지금을 사는 사람들의 문제점은 무엇인지, 또 이것을 벗어나기 위한 해결책으로는 어떤 것이 있는지 살펴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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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저자 빅터 프랭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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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의과 대학의 신경 정신과 교수이며 미국 인터내셔널 대학에서 로고테라피를 가르쳤다.
1905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났고, 빈 대학에서 의학박사와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3년 동안 다하우와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에서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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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강제 수용소에서의 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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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에는 평범한 수감자였던 저자의 체험에 대한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는데, 인상 깊었던 문장들을 위주로 정리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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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피가 머리로 솟구쳤다. 어떤 사람으로부터 그가 전혀 알지도 못하는 내 인생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하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고백할 것이 있다. 이 일이 있고 나서 동료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듣고 내 분노가 어린아이처럼 누그러졌다는 사실이다.
"저렇게 짐승 같고 야비하게 생긴 작자가 우리 병원에 오면 아마 간호사들이 대기실에도 들여보내지 않고 쫓아낼 걸."
54~5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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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에서는 당장 벌어질 수 없는 일이지만, 어쩐지 상상만으로도 푸시시하고 분노가 훅 꺼져버릴 만큼 감정적 역전의 상황의 불러온 동료의 말은 불이 난 곳에 들이부은 차가운 물이나 혹은 소화기 같은 역할을 한 게 아니었을까?
여기에 더해 옆에서 함께 듣던 동료들이 함께 분노해 주고 공감해 준 것 또한 분노를 가라앉히는 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대기실에 발도 못 붙이고 쫓겨나는 상상만으로 얼마나 속이 시원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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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적으로 소외된 상황에서 자기 자신을 적극적으로 표현할 수 없을 때, 주어진 고통을 올바르고 명예롭게 견디는 것만이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일 때, 사람은 그가 간직하고 있던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을 생각하는 것으로 충족감을 느낄 수 있다. 내 생애 처음으로 나는 다음과 같은 말의 의미를 이해하게 됐다.
'천사들은 한없는 영광 속에서 영원한 묵상에 잠겨 있나니'
7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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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적인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을 때 좋은 추억이나 기억은 종종 나를 충족감에 젖어들게 해준다. 그래서 우리는 살아가면서 좋은 추억과 기억을 많이 만들어 두어야 하나보다.
저자 역시 무기력하고 극단적인 상황 속에서 사랑하는 이를 생각하는 것으로 고통을 이겨냈다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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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머 감각을 키우고 사물을 유머러스하게 보려는 시도는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기술을 배우면서 터득한 하나의 요령이다. 고통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는 수용소에서도 이런 삶의 기술을 실행하는 것이 가능하다.
(...)
인간의 고통도 그 고통이 크든 작든 상관없이 인간의 영혼과 의식을 완전하게 채운다. 따라서 고통의 '크기'는 완전히 상대적인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78~7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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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용소에서 극강의 고통을 견디고 버텨낼 수 있었던 데에는 고통을 유머러스하게 풀어보려 했던 노력과 같은 시도가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본질적인 고통의 크기와 상관없이 우리가 고통을 어떻게 대하고 상대하느냐에 따라 때로 고통은 다른 무게와 크기로 다가옴을 이 책을 빌어 다시 한번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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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이 무뎌진 수용소 사람들은 병든 사람을 이송할 때에는 이곳에서 인간 존재가 얼마나 철저하게 무시당하는지를 느꼈을 것이다. 다 죽어 가는 병자의 몸은 바퀴 두 개 달린 수레에 던져진다.
(...)
만약 병자 중 한 명이 수레가 떠나기 전에 죽는다 해도 마찬가지로 수레에 던져진다. 리스트에 올린 번호와 맞아야 하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번호뿐이다. 오로지 죄수 번호를 가지고 있을 때에만 그 사람이 의미 있는 것이다. 사람은 글자 그대로 번호가 됐다. 그 사람이 죽었는지 살았는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그 '번호'의 생명은 철저하게 무시된다. 그 번호 이면에 있는 것, 즉 그의 삶은 그렇게 중요한 것이 못 된다. 그의 운명과 그가 살아온 내력 그리고 그의 이름은 중요하지 않다.
9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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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장을 통해 당시 완전히 무너진 인간의 존엄성의 현장을 목격할 수 있었다. 번호로 매겨진 사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사람들은 그렇게 버려지고 죽어갔다.
지금 우리가 그토록 중요하게 여기는 권력, 배경, 누구의 딸 아들, 직업, 어떻게 살아왔는지는 당시에는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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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정신 상태-용기와 희망 혹은 그것의 상실-와 육체의 면역력이 얼마나 밀접한 연관이 있는지 아는 사람은 희망과 용기의 갑작스런 상실이 얼마나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는지 이해할 것이다.
(...)
수용소 주치의의 말에 의하면 1944년 성탄절부터 1945년 새해에 이르기까지 일주일간 사망률이 일찍이 볼 수 없었던 추세로 급격히 증가했다는 것이다. 주치의는 이 기간에 사망률이 증가한 것은 보다 가혹해진 노동 조건, 식량 사정 악화, 기후 변화, 새로운 전염병 때문이 아니라고 했다.
그것은 대부분의 수감자들이 성탄절에는 집에 갈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 시간이 다가오는데도 희망적인 소식이 들리지 않자 용기를 잃었으며 절망감이 그들을 덮쳤다. 이것이 그들의 저항력에 위험한 영향을 끼쳤고, 그중 많은 사람들이 사망하기에 이른 것이다.
122~12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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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연한 희망으로 버티며 살던 사람들이 마침내 그 시간이 다가왔음에도 아무런 희망적인 소식이 들려오지 않자 용기를 잃고 그 자신을 내던지는 일은 우리 사회에서도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 중 하나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도 특별한 날, 이를테면 성탄절과 같은 날에 이러한 사망률이 급등했다는 것을 보면 정신이 몸을 지배한다는 말은 결코 헛된 말이 아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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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용소에서 사람의 정신력을 회복시키려면 그에게 먼저 미래에 대한 희망을 보여 주는 데 성공해야 한다. 니체가 말했다.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다.
이 말은 수감자들을 대상으로 심리 치료와 정신 위생학적 치료를 하려는 사람에게 귀감이 되는 말이다. 수감자를 치료할 기회가 있을 때 그들이 처한 끔찍한 현실을 어떻게든 견딜 수 있는 힘을 주려면 그들에게 살아야 할 이유, 즉 목표를 얘기해 주어야 한다.
"나는 내 인생에서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어요."
그런 사람은 곧 파멸했다.
12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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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비단 수용소에 갇힌 이들에게만 적용되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우리에게도 너무나 절실하고 필요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어 가져와 봤다.
왜 살아야 하는가 그 이유와 목적을 알면 우리는 상황이 어떻든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살아갈 이유가 없는 사람들 이내 소멸하고 만다.
이 교훈을 바탕으로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전하고 싶다. 만약 지금 삶의 위기 상황이라고 느낀다면, 가장 먼저 자신이 왜 살아야 하는지 그 이유부터 찾아보자! 거기에 해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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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부 로고테라피의 기본 개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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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에서는 본격적으로 로고테라피의 개념과 이것을 우리 삶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실질적으로 우리가 삶에서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이고, 살아가기 위해서 지금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 확인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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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고테라피란?
로고테라피는 환자의 미래에 초점을 맞춘다. 말하자면 미래에 환자가 이루어야 할 과제가 갖고 있는 의미에 초점을 맞춘다는 말이다. 동시에 로고테라피는 정신 질환을 일으키는 데 아주 커다란 역할을 하는 악순환의 고리와 피드백 기제를 약화시킨다. 그렇게 해서 정신 질환 환자에게 전형적인 자기 집중 증상이 발생하고 심화되는 것을 막는다.
'로고테라피'라는 이름을 붙인 이유를 살펴보면, 로고스는 '의미'를 뜻하는 그리스어이다. 로고테라피 혹은 다른 학자들이 '빈 제 3정신 의학파'로 부르는 이 이론은 인간 존재의 의미는 물론, 그 의미를 찾아 나가는 인간 의지에 초점을 맞춘 이론이다.
■로고테라피가 추구하는 방향
로고테라피는 환자 스스로 삶의 의미를 찾도록 도와주는 것을 과제로 삼는다. 그렇게 하려면 환자의 실존 안에 숨겨진 '로고스'를 스스로 깨닫도록 해야 하는데, 이것은 상당한 분석 과정을 필요로 한다 이런 점에서 로고테라피는 정신 분석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로고테라피가 환자에게 어떤 것을 다시 깨우쳐 주는 과정에서는 인간 무의식에 자리 잡고 있는 본능적 요소에만 국한하지 않고 실존적 현실, 즉 의미를 찾고자 하는 의지뿐만 아니라 앞으로 성취되어야 할 실존의 잠재적 의미까지도 고려 대상이 된다. 환자가 자기 존재의 깊숙한 곳에서 정말로 소망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하는 것은 중요하다.
로고테라피에서는 인간을 그저 충동과 욕구를 충족시키면서 쾌락을 얻거나 서로 갈등하고 있는 이드와 자아, 초자아를 절충시키거나 혹은 사회와 환경에 그저 순응하고 적응하는 데에만 관심을 갖는 존재로 보지 않는다. 그보다는 주된 관심사가 어떤 의미를 성취하는 데 있다고 보고, 그런 점에서 로고테라피는 정신 분석과 구별된다.
■실존적 공허의 발생 원인
인간에게 실제로 필요한 것은 긴장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가치 있는 목표, 자유 의지로 선택한 목표를 위해 노력하고 투쟁하는 것이다.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어떻게 해서든지 긴장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성취해야 할 삶의 잠재적인 의미를 밖으로 불러내는 것이다.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항상성이 아니라 정신적인 역동성이다.
말하자면 한쪽 극에는 실현돼야 할 의미가, 다른 극에는 의미를 실현시킬 인간이 있는 자기장 안의 실존적 역동성이다.
이것이 정상적인 상황에서만 유효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신경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에게 더 효력이 있다.
자기 삶 전체가 완전히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가져다주는 악영향을 보통 우리는 '실존적 공허'라고 부른다.
실존적 공허는 20세기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현상 중 하나이다. 이는 충분히 납득 할 수 있는 현상으로, 인간이 진정한 의미의 인간이 된 후에 겪어야 했던 두 가지 손실에서 비롯된 것이다.
인류 역사가 시작될 때 인간은 ①동물적인 본능의 일면을 잃었다. 여기에 덧붙여 근래 들어 인간은 또 다른 상실감을 맛보게 됐는데, 그것은 그간 자기 행동을 지탱해 주던 ②전통이 빠른 속도로 와해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렇게 해야 한다고 말해 주는 본능도 없고, 이렇게 해야 한다고 가르쳐 주는 전통도 없다. 어떤 때는 스스로도 자기가 정말로 무엇을 원하는지 모를 정도가 됐다. 그 결과 남이 하는 대로 따라 하거나(동조 주의) 아니면 남이 시키는 대로(전체주의) 하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실존적 공허는 대개 권태를 느끼는 상태에서 나타난다.
■실존적 공허로 인해 야기되는 문제점
자살의 상당수가 바로 이런 실존적 공허 때문에 일어난다. 현대 사회에 만연해 있는 우울증과 공격성, 중독성의 원인이 무엇인지 알려면 그 저변에 깔려 있는 실존적 공허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 연금 생활자나 나이 든 노인들이 느끼는 위기감 역시 이와 같은 종류의 것이다.
게다가 이런 실존적 공허는 가면을 쓰거나 위장한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의미를 찾고자 하는 의지가 좌절되면 사람들은 권력욕으로 좌절을 대신 보상받으려고 하는데, 여기에는 아주 원시적인 형태의 권력욕인 돈에 대한 욕구도 포함된다.
혹은 쾌락을 추구하는 의지가 대신 자리 잡는 경우도 있다. 실존적 과절을 겪은 사람들이 종종 성적 탐닉에서 보상을 찾으려고 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실존적 공허의 고리를 끊는 법
특정한 유형의 피드백 기제와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되면, 이런 징후들이 공허한 상태에 있는 실존에 침입해 들어가서는 계속 번성하는 것을 수없이 볼 수 있다.
환자에 대한 심리 요법에 로고테라피를 보완하지 않으면 환자가 자기 상황을 극복하게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이런 실존적 공허에 무언가를 채워 넣으면 병이 악화되는 것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추상적인 삶의 의미를 추구해서는 안된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구체적인 과제를 수행할 특정한 일과 사명이 있다. 이 점에 있어서 그를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그의 삶 역시 반복될 수 없다. 따라서 개인에게 부과된 임무는 거기에 부가돼 찾아오는 특정한 기회만큼이나 유일한 것이다.
삶에서 마주치는 각각의 상황이 한 인간에게는 도전이며, 그것이 그가 해결해야 할 문제를 제시한다.
인간은 삶으로부터 질문을 받고 있으며, 그 자신의 삶에 '책임을 짐으로써'만 삶의 질문에 대답할 수 있다는 말이다. 오로지 책임감을 갖는 것을 통해서만 삶에 응답할 수 있다. 따라서 로고테라피에서는 책임감을 인간 존재의 본질로 본다.
로고테라피는 환자가 무엇을 책임져야 하는지 분명히 깨닫도록 하고자 노력한다. 무엇을 위해, 무엇에 대해, 혹은 누구에게 책임져야 하는가 하는 문제는 전적으로 환자 스스로의 판단에 맡긴다.
로고테라피 치료사의 역할을 환자의 시야를 넓히고 확장하는 일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잠재되어 있는 의미의 전체적인 스펙트럼을 환자가 인식하고 볼 수 있도록 해준다.
■로고테라피로 살펴보는 삶의 의미 3가지
로고테라피에 의하면 우리는 삶의 의미를 세 가지 방식으로 찾을 수 있다.
1. 무엇인가를 창조하거나 어떤 일을 함으로써
2. 어떤 일을 경험하거나 어떤 사람을 만남으로써
3. 피할 수 없는 시련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기로 결정함으로써
첫 번째를 완수하고 달성하는 방법은 아주 분명하다. 하지만 두 번째와 세 번째는 약간의 부연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삶에서 의미를 찾아내는 두 번째 방법은 어떤 것-선이나 진리, 아름다움-을 체험하는 것, 자연과 문화를 체험하거나 다른 사람을 유일한 존재로 체험하는 것, 즉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말한다.
세 번째로 삶의 의미를 찾는 방법은 시련을 통해서이다.
■치료의 핵심은 자기 자신을 초월하는 것!
예기 불안은 역설 의도로 좌절시켜야 하고, 과잉 의도와 과잉 투사는 역투사의 방식으로 좌절시켜야 한다. 하지만 역투사는 환자가 자신의 삶에 주어진 특정한 과업과 사명을 바라보지 않으면 실현될 수 없다.
자기 연민이든 멸시든 간에 환자가 자기 자신에게 관심을 집중시킴으로써 악순환의 고리가 끊어지는 것은 아니다. 치료의 핵심은 환자가 자기 자신을 초월하는 데 있다.
■본인의 의지에 따라 달라지는 삶
나는 살아 있는 인간 실험실이자 시험장이었던 강제 수용소에서 어떤 사람들이 성자처럼 행동할 때, 또 다른 사람들은 돼지처럼 행동하는 것을 보았다. 사람은 내면에 두 개의 잠재력을 모두 가지고 있는데, 그중 어떤 것을 취하느냐 하는 문제는 전적으로 본인의 의지에 달려 있다.
우리 세대는 실체를 경험한 세대이다. 왜냐하면 인간이 정말로 어떤 존재인지 알게 됐기 때문이다. 인간은 아우슈비츠 가스실을 만든 존재이자 또한 의연하게 가스실로 들어가면서 입으로 주기도문이나 <셰마 이스라엘>을 외울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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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부 비극 속에서의 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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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행복하려면 '행복해야 할 이유'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일단 그 이유를 찾으면 인간은 저절로 행복해진다. 알다시피 인간은 행복을 찾는 존재가 아니라 주어진 상황에 내재해 있는 잠재적인 의미를 실현시킴으로써 행복할 이유를 찾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20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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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단이 되는 행복 그 자체가 인간에게 행복을 가져다주지는 않는다. 똑같은 상황을 두고도 어떤 이는 감흥이 없고, 또 어떤 이는 행복해하는 것을 보면 행복은 '행복' 그 자체로 모두에게 행복을 주는 것은 아닌듯하다.
오히려 '행복해야 할 이유'가 있다면 미비한 것일지라도 인간은 저절로 행복해진다. 그래서 저자는 우리가 어떤 것에 의미를 지니는 것, 그리고 그것을 실현시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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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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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이고, 인간다움이란 무엇일까? 또 삶의 의미를 지닌다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해 심도 있게 다룬 이 책은 저자가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에서 직접 겪은 일화를 바탕으로, 로고테라피를 통해 삶의 의미를 되새겨보고 우리가 지닌 본성과 삶의 의지를 가질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양면성을 어떻게 발현하고 실행하느냐에 따라 삶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는데, 이를테면 인간 실험실에서 성자처럼 행동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돼지처럼 행동하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인간은 과학의 발전과 산업혁명을 겪은 후 20세기부터는 급격히 '실존적 공허'를 겪게 되었는데, 이는 그동안 삶의 동력원이라 생각했던 두 가지를 잃었기 때문이다.
하나는 동물적인 본능이고, 또 하나는 전통으로 두 가지는 여태껏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던 생존본능이자 자기 행동을 지탱해 주던 것들이다.
이 두 가지를 잃게 되면서 인간은 길을 잃었고 마침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를 모르게 된 것이다. 때문에 권태를 느끼게 되고 또 실존적 공허를 느끼게 된 것이다.
실존적 공허는 자살률을 높이고, 우울증과 공격성, 중독성의 원인이 되며, 보상심리가 발동하면서 권력욕이나 성적 탐닉으로 나타나기도 하는데, 현재 우리 사회의 이슈들을 살펴보면 이와 별반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어쩌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이런 문제점들의 근원에는 실존적 공허가 자리하고 있으며, 때문에 삶의 방향과 목적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마구잡이로 휘두른 감정의 폭발이 결국 아무 잘못도 없는 피해자들을 양산한 게 아닐까 한다.
결국 이것을 해결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막연하고 추상적인 무엇을 추구하기 보다, 구체적인 과제를 수행할 특정한 일과 사명을 부여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는데,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는 방식을 취해야 한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나라는 사람은 세상에서 유일무이한 존재이며 내 삶에 닥치는 질문과 문제는 오로지 내가 풀어야 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세 가지 방식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전하는데, 첫 번째는 무엇인가를 창조하거나 어떤 일을 하는 것으로, 두 번째는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으로, 세 번째는 시련을 통해서 가능하다고 말한다.
선택과 방식은 오로지 자신의 몫으로, 스스로가 어떤 삶을 살 것인지, 또 삶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어떤 의지력을 가지고 나아갈 것인가에 따라 인생은 완전히 달라질 것이라 말한다.
행복해지고 싶은가? 그렇다면 일반적인 행복의 도구에서 행복을 찾기보다, 내가 행복해할 이유를 만들어보자. 나의 의지, 노력, 의미 부여에 따라 행복은 가까이에 있을 수도, 혹은 멀리에 있을 수도 있다.
어쩌면 우리가 그토록 찾던 희망과 행복은 우리 마음속에 있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