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향적이지만 집순이는 아닙니다
라비니야 지음 / 부크럼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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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 싶은 곳에 한계를 두지 말 것.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원하는 곳으로 향할 것.

그리고 자신만의 여행에 동참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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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하면 거창하고 어려운 것으로 생각해 쉽게 발길을 떼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책은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여행에 대한 잘못된 생각을 바로잡아 주고, 여행이 주는 행복과 그 속에서 얻을 수 있는 모든 것에 대해 이야기해 준다.

 

특히 이 책에서 담고 있는 여행은 흥청망청 먹고 마시고 즐기기 위한 여행이 아닌 익숙한 것에서 벗어나 새로운 것들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경험하며 나를 채우는 오로지 '나 자신'을 위한 여행에 대해 담고 있다.

 

모두 벗어 던져버리고 멀리 떠나고 싶은 순간, 현재가 만족스럽지 않거나 늘 반복되는 일상에 지쳐있다면 잠시 숨을 돌리기 위한 여행을 떠나보자.

 

거창하거나 완벽할 필요 없다. 그저 내가 좋아하는 게 가득한 장소로 떠나기만 하면 된다. 만약 어디론가 떠나는 것이 번거롭거나 두렵다고 느껴진다면 이 책을 통해 여행이 생각보다 별거 아님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시작은 집 밖으로 한 발을 내디디는 것으로 시작됨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해외를 가거나 거리가 멀지 않아도 된다. 가까운 곳에 위치한 좋아하는 카페를 방문하는 것만으로도 꽤 큰 활력과 기쁨을 얻을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내가 갇혀있는 생각으로부터 멀어질 수 있는 공간, 그것을 경험하는 것만으로 충분히 여행의 묘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저자가 여행한 국내 전국 각지의 여행지를 살펴보면 여느 여행과는 확연히 다르다. 유명한 관광지나 먹거리 등 인터넷으로 쉽게 검색되는 그런 곳은 이 책에서 확인할 수 없다.

 

그저 마음이 닿는 곳, 발길이 향하는 곳, 우연히 알게 된 좋았던 곳, 나만의 맛집 등 저자 자신에게 위로와 위안을 주었던 장소들과 그에 대해 보고, 듣고, 느끼고, 경험한 것들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발자취들을 따라가다 보면 '진짜 여행이란 이런 것이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어떻게 보면 소소하고 작은 것들이라 치부할 수도 있지만, 그 안에서 스스로 즐거움과 행복을 느낀다면 이것만큼 좋은 것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내향적이지만 집순이는 아니라는 책 제목처럼, 오히려 자신의 감성과 취향에 따라 홀로 낯선 곳을 방문하고 그곳에서 하고 싶은 것, 보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을 자유롭게 만끽하는 저자의 여정은 그래서 더 푸근하고 다정하게 다가온다.

 

더불어 왜 나는 여태껏 망설이고만 있나라는 생각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삶의 환기가 필요한 순간, 여행을 통해 새로운 원동력과 에너지를 얻어 갈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자. 당신도, 나도 이제 가볍게 발길을 떼는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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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여행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 이들에게 작은 바람을 불어넣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여행은 결코 시간과 돈의 자유가 허락되어야만 갈 수 있는 게 아니며 당장 어디로든 향할 수 있는 사람이 더 먼 곳의 풍경도 꿈꿀 수 있다는 걸 말해주고 싶다. 날 좋은 어떤 날, 이대로 시간을 흘려보내는 게 아쉽다면 작은 가방 메고 어디든 가 보자.

우리 주변에는 가 보지 못한 곳과 가 보면 좋을 곳들이 도처에 많이 남아 있으므로.

프롤로그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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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nock, knock
이제 짧은 외출을 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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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에 남는 여행지 에피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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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 1. 공주에서 만난 무인 책방

 

■공주를 가게 된 이유
구황 작물 중에서도 밤을 특히 좋아한다는 이유 때문이었는데, 공주에서 밤 떼를 볼 수 있으리라는 예상과는 달리 공주는 밤의 도시라 불리지만 밤을 선두로 하는 음식이 별로 없었다.

 


■우연히 발견한 무인 책방
공주에서 묵었던 두 번째 밤, 잠이 오지 않아 걷던 중 우연히 무인 책방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앞서 다녀간 이들의 가득한 메모를 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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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방에선 많은 이들이 쉬어 갔다. 낯선 골목을 거닐며 자신만의 지도를 넓혀가던 여행자가 방문하여 뜻밖의 영감을 얻는다.

 

이곳에서는 쓰는 기적이, 그리웠던 기억을 촘촘한 뜰채로 조심스럽게 뜨는 일이 일어난다. 잊혔거나 모른 척하고 있던 단어들이 심연에서 모습을 드러내면 내 손은 더욱 바빠진다.

누군가 잡아 둔 말들은 내 것과 비슷하기도 하고 전혀 다르기도 했다.

5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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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걷아 우연찮게 들어간 무인 서점은 앞서 다녀간 이들로 메모가 가득한 곳이다. 그 기록들은 특정인을 위한 것이 아니기에 그저 휘발되고 말 테지만 그렇기에 무거웠던 속내를 속시원히 내뱉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타인이 남긴 메모를 읽다 보면 울고 웃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데, 어쩌면 그것은 누군가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구나 하는 안도 혹은 위로일지도 모르겠다.

 

누군가의 시선 없이 그저 고요히 메모 한 장을 통해 마음을 나누고, 위로와 위안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어쩌면 이 공간이기에 가능한 것은 아니었을까?

 

 


epi 2. 심란할 땐 대전으로 침묵 여행을 떠나자

 

어째서인지 마음이 심란할 때면 나무를 다루는 J의 뒷모습을 보곤 하는 저자는 어느 겨울, 땔감을 모아 오듯 걱정거리를 안고 J를 찾아갔다. 그 시기에 저자는 공모전에 떨어진 원고를 투고하는 일에 지쳐있는 상태였다.

 

수상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한 속상함, 내 안에서 커져가는 불안과 초조함을 안고 J를 찾았던 건 그녀의 기질 때문이었는데, 저자는 J와 함께일 때 자신이 지닌 고민이 가벼워지는 걸 느꼈다고 한다.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혀 계획을 포기하고 싶거나 합리화하고 싶은 시기에도 그녀는 저자의 헐거워진 마음을 단단하게 쪼여 주었는데, 그때마다 그 안정감에 기대어 불안을 해소할 지혜를 구했다고 한다. 

 

이번에 방문해서는 대중적인 작가가 되려면 등단하거나 공모전에서 수상하여 공식적 인정을 받아야 한다고 토로하는 저자에게 J는 별다른 답이 하지 않았는데, 이에 저자는 그녀의 침묵이 의미하는 바를 멋대로 해석해 자신의 생각에 동의하는 걸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잠시 후 그녀의 질문과 이야기 덕에 저자는 다시 한번 불완전한 자신의 마음이 균형을 이루는 것을 느낄 수 있었으며,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방향을 찾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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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는 '네 마음이 원하는 방향으로 가면 돼. 결국 넌 하고 싶은 일을 기어코 해낼 걸 알아.'라고 덧붙여 말했다. J의 말은 나의 불완전하고 결함 많은 마음이 깨어지지 않도록 균형을 메워주었다.

 

섬세한 손길로 나무를 다루는 J는 거칠어진 마음 표면을 부드럽게 다듬는 일에도 능숙했다. 난 J의 말에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몸을 일으켰다. 가고 싶은 곳으로 떠나고 느낀 것들을 써 내려가기 위해서. 그녀는 도면 위에 새로운 선을 그으며 이젠 어디로 떠날 거냐고 물었다. 

 

나는 '때마다 다르겠지만, 그 순간에 제일 가고 싶은 곳'이라고 대답했다.

58~5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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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심란할 때 안정을 주는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J는 진심 어린 말 한마디를 툭툭 내뱉는 것으로, 그저 잘 될 거라 믿어주는 말 한마디로 저자에게 안정감과 고민을 해결할 지혜를 전해준다. 그리고 그 말들은 어떤 위로의 말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한다.

 

제자리를 지키며 늘 묵묵하게 확고한 믿음과 신뢰를 전해주는 J가 있기에 저자에게 대전은 마음을 추스를 수 있는 유일무이한 여행지일지도 모르겠다.

 

마치 정답을 찾아가듯이, '심란할 땐 대전으로!' 와 같은 문장이 떠오르는 것으로 보아 저자의 치유여행은 나에게도 확실히 각인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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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 깊은 구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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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모의 기준은 타인이 정하지만, 나의 필요는 타인의 쓸모와 다른 지점에서 시작된다. 내 마음이 머무는 위치와 보고 싶은 전경, 머물고 싶은 장소가 어디냐에 따라 답은 달라진다.

2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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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무엇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순간, 그것을 찾는 여행을 시작해 보자. 그 '필요'에는 오로지 내 마음이 정답이므로 내가 원하는 곳, 내가 보고 싶은 전경, 내가 머물고 싶은 장소, 내가 먹고 싶은 곳이 바로 그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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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번 원하는 시점에 찾아가면 내가 기대한 모습 그대로 남아 있을 거라 보장할 수 없겠지. 그렇기에 같은 곳이라도 좋았던 장소는 아쉬움이 남지 않도록 계절이 바뀔 때마다 자주 방문하면 좋겠다. 내가 머물렀던 곳이 언젠가 다시 볼 수 있는 그리운 추억이 될지도 모르니까.

29~3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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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추억 속에만 머무르는 장소가 꽤 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기대한 모습으로 늘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곳이 몇 없기 때문이다. 빠르게 변모하는 시대, 이제라도 마음에만 담아두기 보다 자주 방문해서 아쉬움의 질량을 줄여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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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날 수 있는 용기란 지금 상황을 견디기 힘들거나 또 다른 변화를 도모하고 싶은 간절한 마음에서 일어난다. 휴양지로 떠나는 여행이 아닌 이상 다른 곳으로 떠날 적에는 간절함이 기반 되지만 무언가를 열망하는 마음은 여정의 족쇄가 되기도 한다.
(...)
어떤 것은 너무 간절할수록 멀어지고 움켜잡으려 할수록 손아귀에서 멀리 벗어나고 만다.

38~3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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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휴양을 목적으로 하는 여행 말고, 상황의 변화와 탈피를 위한 용기로 떠난 여행은 때로, 오히려 목적을 상실하고 돌아올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차라리 답을 찾으려는 강박과 부담을 놓아버리고 괜찮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여행을 즐겨보면 어떨까? 아무것도 없는 그 자체가 오히려 현재의 나의 모습에 더 집중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올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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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적 취미에 대해 곰곰 떠올려 보면 대게 자신만의 즐거움과 연결된 경우가 많은 듯하다.
(...)
'취미가 뭐예요.'라는 질문에 자신만의 의식을 설명하는 이들은 과연 낭만적이다. 난 이런 낭만을 가진 이들에게 매료된다.
(...)
난 분명 낭만적인 삶을 사는 사람이다. 언제까지고 낭만을 그리며 예민한 감수성을 잃지 않고 싶다. 그러기 위해선 개별적이고 특수한 자신만의 취미 한두 가지 정도는 만들어 두는 게 좋지 않을까. 다른 이들의 눈에는 불필요해 보이거나 의아함을 일으키면 또 어떤가. 마음을 충족시켜 줄 만한 취미에 낭만까지 한 스푼 더해진다면 사는 건 어떤 책의 제목처럼 꽃 같아질 수 있다. 제일 중요한 건 마음껏 하고 싶은 일을 하고, 가고 싶은 곳을 가는 것이다.
(...)
모두 자신만의 방식으로 잃었던 낭만을 회복할 수 있으면 좋겠다.

92~9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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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랑 작가는 '사람들이 길에 두고 가는 물건들을 사진으로 찍어 남겨 두는 것'이라고 소개하고, 조현 작가는 식물을 기르고 싹을 틔우는 일의 기쁨'을 서술한다. 하루키의 경우 '낡은 레코드를 수집하는 게 취미'라고 언급했다.

 

저자는 '여수 밤바다'를 듣다가 여수행 기차를 타고, 지역마다 다른 바다의 빛깔을 비교하고 싶어서 한 주에 창원, 보성, 부산의 바다를 찾아 진이 빠지게 다닌 적도 있다고 한다.

 

문득 나의 즐거움과 연결된 낭만은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된다. 걷다가 눈에 띄는 소소한 기쁨을 사진으로 남기는 것, 반려 식물들의 성장을 눈과 사진으로 남기는 것, 떠오르는 여행지를 홀로 거닐며 마음과 사진에 담는 것!

 

그러고 보면, 나의 즐거움과 연결된 낭만은 '일상의 여행'과 '사진의 기록'으로 정리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생각만으로도 어쩐지 행복해지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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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단면을 관찰하는 기록자로서 남겨 둔 메모를 신뢰하는 편이다. 그것들은 시간이 지난 뒤에 소중한 장면을 떠오르게 하는 버튼이 된다. 글쓰기를 통해 기억의 버튼을 남기는 건 사진을 찍는 일에 비하면 에너지가 소요되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다. 다녔던 곳들을 떠올리며 재생 버튼을 누르면 정성 들여 만든 기록이 마음을 어루만진다. 삶이 팍팍하거나 무료함에 진력이 나서 멈추고 싶은 날에는 만들어 둔 버튼을 골라 누른다. 그 순간, 그리운 장면과 고마운 사람들이 선명하게 나타난다.

13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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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역시 수집가이자 기록자이지만, 유독 여행에 대해서만큼은 기록으로 연결 짓지 못하고 있다. 올해만큼은 여행의 기록을 남겨보자 마음먹었던 시기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에 들어섰다.

 

이 문장을 읽다 보니, 더 늦기 전에 기억의 버튼을 남길 수 있는 여행 글쓰기를 시작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다시 한번 꼼꼼히 자료들을 살펴보고 하나하나 기록으로 남겨 그때의 추억과 마음을 떠올려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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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배워야 하는 건 어디로든 떠날 용기와 망설임 없는 실행력일 것이다. 작은 시도가 쌓여 무언가를 실천할 동력을 만들고 그 힘을 통해 더 나은 환경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러므로 한곳만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지금 이곳에 정착할 수도 있고 어디든 다른 곳으로 떠날 수도 있다. 이건 비단 장소만의 문제는 아니며 관계와 일도 마찬가지다. 어떤 관계를 소중히 유지해 갈 수도 있지만, 서로 간의 방향성이 달라지면 거리를 두는 멀어짐도 필요하다. 같은 일을 반복적인 패턴으로 거듭하는 것에서 벗어나 다른 방식으로 움직일 수도 있어야 한다.

 

내가 경험한 세계가 판단의 기준이 되기에 그 범위를 넓히는 건 중요하다. 다양한 곳에서 여러 인연을 맺고 생활하는 건 나만의 시야에 갇히는 오류를 줄이는 데에 도움을 준다.



가고 싶은 곳에 한계를 두지 말 것.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원하는 곳으로 향할 것.

213~21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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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떠나야만 하는 이유와 이점에 대해 명확히 알 수 있는 단락이다. 어디로든 떠날 수 있는 용기와 실행력, 그리고 언제 어디로든 떠날 수 있다는 유연한 마음은 여행을 시작하는데 더없이 필요한 요소들이다.

 

또 이것들은 일과 관계에 적용되는 또 하나의 깨달음을 주기도 하는데, 융통성과 유연함을 길러주는 것은 물론 한 가지 생각에 정착하지 않도록 도와줌으로써 더 넓은 세계관과 경험, 시야를 확보해 준다.

 

삶에 있어 한자리에 머무는 것은 안정감이 아니라 또 다른 불안을 야기한다. 불안하다는 이유로, 귀찮다는 이유로 머물러 있기 보다 마음이 이끄는 곳을 향해 나아가 보자. 어느 곳도 못 갈 곳은 없다. 내 마음이 이끄는 곳, 내 마음이 향하는 곳을 향해 한 발을 내디뎌 보자.

 

이것이 반복되어 습관으로 자리 잡을 때쯤에는 자연스럽게 내 감정이 이끄는 장소가 콕 하고 박히지 않을까?

 

 

보통 우리는 여행을 이야기할 때 돈이 없거나 시간이 없다는 핑계를 자주 대곤 한다. 하지만 어쩌면 그런 이유로 떠나지 못한 게 아니라 떠날 마음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되돌아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저자 역시 이런 핑계들로 차일피일 미루다 친구의 말 한마디에 위기감을 느껴 불현듯 여행을 가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고 하는데, 떠나보고 나니 상상하던 것보다 훨씬 더 만족스러웠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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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책을 통해 접하는 것과 달리 실제 세계를 오감으로 체험하는 일은 훨씬 더 생생했다. 즐거운 경험을 놓치지 않기 위해 버스나 기차를 탔고 때론 걸었다. 그렇게 보고 체험한 것들을 모아 글로 엮었다. 그 순간에 느꼈던 기쁨과 즐거움, 만족을 잊지 않기 위하여.
(...)
한 권의 책만큼 강렬한 배움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났다. 그 경험과 대화를 통해 알맞은 속도와 방식으로 정성스럽게 자신을 키워 가는 중이다.
(...)
지쳐 있던 마음을 부드럽게 단련하는 경험을 쌓아갈 수 있었다.

에필로그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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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나 책과 같은 간접 경험으로는 메꿀 수 없는 생생함과 거기에서 비롯되는 다양한 감정들, 여행을 하며 만나는 강렬한 만남으로 성장하는 나 자신, 거기에 더해 마음을 단련하는 경험까지. 어쩐지 이 책을 덮고 당장 떠나야만 할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몰려온다.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끝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기 보다, 잠을 자거나 잠시 일어나 스트레칭을 하는 게 더 도움이 되는 것처럼, 일상이 따분하거나 지치는 순간 한 번씩 나를 위한 충전의 여행을 떠나보자.

 

새로운 환경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온전히 느끼고, 경험하며 시간을 보내는 동안 어느새 불안은 잠재워지고 새로운 에너지가 채워져 내일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제 가볍게 배낭을 꾸려 가보고 싶었던 곳을 향해 떠나보자. 지금이 바로 그 타이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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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ORANGE 머묾 여행 - 무조건 지금 떠나는 개인 취향 여행 Rainbow Series
박상준.송윤경.조정희 지음 / 여가로운삶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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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만난 도서는 앞서 만난 여느 '여행' 도서와는 다른 지극히 개인의 취향을 반영한 여행 책으로, 세 명의 작가가 각기 자신의 목적을 위해 떠나 '머문' 장소들을 담고 있다.

 

그리고 그 장소들에서 생각과 시선, 감성과 영감을 엿볼 수 있었는데, 이들에게는 꽤나 특별한 장소처럼 보였다. 더불어 아주 내밀한 공간을 살짝 엿본듯한 느낌도 들었는데, 모두 홀로 방문하여 조용히 머물다 가는 장소처럼 느껴져 더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세 명의 저자는 이 책을 편찬하면서 오렌지 컬러를 테마로 설정했는데, 그들은 이 컬러는 '창조의 색'이라고 말한다.

 

그들이 담은 주제를 살펴보면, 그 이유를 더 명확히 알 수 있는데, 공간의 틈 안에 사유 찾아(박상준,) 오감과 감성을 깨우며(송윤경), 어느 순간 속 영감이 피어올라(조정희) 창조의 시작에 머무는 여행을 담은 <the ORANGE 머묾 여행> 여행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대체적으로 여행책이지만 사진보다는 글이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아마도 이들 각자의 마음속에 자리한 장소에 대한 의미와 생각들에 더 집중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소박하지만, 어디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장소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다 보면, 어릴 적 자주 숨어들던 아지트가 생각나기도 했는데, 대체적으로 고요하고, 한적하며, 감성을 자극하는 곳들이 대부분이라 더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훌쩍 떠나서 마음을 추스르고, 생각을 정리하며, 마음을 온전히 달랠 수 있는 장소! 문득 나에게 그런 장소는 어디일까 생각해 보게 한다. 또 지금에 머무르지 말고 더 많은 공간을 만나고 공감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봐야겠다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세 명의 작가에게 생각의 틈, 감각과 감성의 조화, 영감이 되어준 소중한 장소들을 만나보며, 자신이 머무는 곳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도 함께 귀 기울여 보자. 어쩌면 당신도 당신만의 의미 있는 장소와 시간들이 머물러 있는 곳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복잡한 일상과 거리를 두고 때로 고요히 머물 곳이 필요한 순간, 나를 돌아보고 내가 잃어버린 것들을 확인해 봐야 하는 순간 이 장소들은 아주 좋은 휴식처가 되어줄 것이다. 또 방전된 나를 가득 품어 더 나은 하루를 살아갈 힘을 전해줄 것이다.

 

이제부터 이들이 소개한 보물 같은 장소들을 소개해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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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별 '머묾' 장소들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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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준: 공간의 틈 안에 사유 찾아, 머묾
좋아하는, 그래서 천천히 생각하고 오래 머물렀던 자리들을 모았다. 대상을 두루 천천히 생각하고 슬로 모션처럼 느린 동작으로 구석구석 눈을 맞춰본다.

 

천천히 생각하기, 느리게 걷기, 삶을 늘여 살아내기, 쉴 새를 만드는 몸짓, 오늘 당신의 사유 역시 그러했으면 좋겠다.

 

■송윤경: 오감과 감성이 깨어나, 머묾
고민이 있거나 일이 풀리지 않으면 차에 시동부터 걸어 정해진 장소 없이 떠나 대자연과 예술, 문화, 역사적인 장소까지 가리지 않고 그곳에 가 나를 앉혔다. 그러면 안내자를 만난 것처럼 길이 보이고 순조롭게 진행되곤 했다.

 

때로 이질감 탓에 불안해지기도 했지만 그래도 여행을 떠나면 떠날수록 익숙한 장소와 낯선 곳의 간극이 좁혀졌다.

 

그 과정에서 오감과 감성이 동시에 깨어나 내면을 깊숙이 들여다볼 수 있었다. 생각의 폭이 넓어지고 여행지에서 받은 영감이 서로 손을 잡으며 새로운 삶을 낳았다.

 

■조정희: 어느 순간 속 영감이 피어올라. 머묾
타인의 감정과 행동에 공감하기 위해 여행을 통해 경험으로 느끼고 생각한다.

 

마음이 헛헛할 때, 생각이 많아질 때, 재미있게 놀고 싶을 때, 이 순간의 상황과 감정들을 모아놓는다. 그리곤 상황에 잘 어울리는 장소로 나를 데려간다.

 

소개된 장소마다 나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내가 겪었던 상황별 처방 장소이다. 나를 나답게 만들어준 장소이기에 오랫동안 머물고 싶고, 장소를 닮아가고 싶다.

 

아름다운 기억에는 항상 장소가 필요한가 보다. 내 일상이 아름답고 특별한 영감으로 채워질 수 있도록 오늘도 떠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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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오래, 더 깊게 머물고 싶은 여행지 Pi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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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명의 저자는 하나의 장소를 'the ORANGE/더 오래/더 깊게'로 구분하여 머물기 좋은 여행지 소개, 더 오래 머물 수 있는 이유, 더 깊게 사유하고 깨우고 영감을 받는 방법에 대해 담고 있다.

 


■[서울] 삼청공원 숲속 도서관
숲속의 집과 나무, 바람과 새소리 그리고 잠잠히 어울리는 커피 향. 서울에 속한 땅이지만 서울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 장소다. 5분만 걸으면 삼청동 명소가 줄지어 자리하고, 또 불과 5분 거리에 북악산을 향하는 말바위 등산로가 열린다.

 

"부지의 수목을 그대로 살려 자연과 건축이 누가 먼저 오게 되었는지 모르도록 하고 싶었다."
삼청공원 숲속 도서관을 디자인한 이소진 건축가의 말이다.

 

도서관은 원래 삼청공원 매점이 있던 자리로, 그 터 위에 도서관을 지으며 마치 그곳에 오래 있던 건물처럼 얹히고 싶었다는 말이다. 즉, '책'과 '도서관'과 '숲'이 서로에게 기대어 이웃하는 공간 말이다. 그래서 그 자리에 있던 길과 나무를 최대한 건드리지 않고 지었다고 한다.

 

건물의 존재를 알아채게 하는 것이 아니라 모르게 하고 싶었다는 말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충주] 아무것도 아닌 곳
충주시 금가면, 시골 우체국 건물 왼편 입구에 아무 곳도 아니라는 듯 카페 하나가 있다. 모르는 사람은 그냥 지나칠 수밖에 없는 곳, 어른들을 위한 동화 속에 나올 법한 곳, 그 공간의 이름 또한 '아무것도 아닌 곳'이다. 그저 카페 벽에는 법정 스님의 글귀 하나가 붙어 있을 따름이다.

 

'아무것도 없다는 소리와 모든 것을 가졌다는 소리는 결국 같은 소리지요.'

 

한참 지난 어느 힘든 날, 혼자 찾아가 조용히 기운을 차리고 돌아오기 좋은 곳, '실은 아무것도 아니야'라고 자신에게 말해줄 수 있는 곳.

 

카페를 연 박진아 씨는 '아무것도 아닌 곳'을 "편지와 커피 그리고 이야기가 있는 복합 문화 공간"이라 소개한다.

 

그날 저자는 '아무것도 아닌 곳'에서 편지를 써서는 '1년 후 어느 날 문득 배달' 되는 카페 앞 느린 우체통에 넣었다고 전한다.

 

 


■[영덕] 벌영리 메타세쿼이아 숲
벌영리 메타세쿼이아 숲은 이곳이 고향인 장상국 씨가 선산에 오랜 시간 공을 들여 만들었다. 원래 아까시 나무가 많아서 꽃 피는 5월이면 향기롭던 야산이었다.

 

나무를 베어내고, 2003년부터 메타세쿼이아 나무를 하나씩 심던 것이 6000여 그루에 이른다.

 

메타세쿼이아 숲은 산 아래 평지에 만들어져 있다. 생각 없이 밭을 옮겨도 걸음이 엉키지 않는다. 한량없이 느리게 걸으면 걷는 행위에 집중하게 된다.

 

그렇게 걷기를 1시간 정도 하면 숲 구석구석을 봤다고 해도 무방하다. 살짝 땀이 배면 군데군데 있는 벤치에서 쉬어가자.

 

 


■[김재] 미즈노 씨네 트리하우스
미즈노 씨네 트리하우스는 어린 시절의 추억을 환기해 주는 대표적인 장소로, 동화 속에 나올법한 통나무집들을 볼 수 있다.

 

땅 위에 있는 통나무집도 마냥 흥미로울 텐데 나무 위에 올려져 있다는 점이 더욱 재미있다. 나무 위 통나무집은 보는 것만으로도 매력적이다. 더욱이 나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갈 수 있으니 누구나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미즈노 씨네 트리하우스에서는 모두가 자신만의 동심에 온전히 집중한다.

 

건조한 어른이 되어가는 나를 발견하고 흠칫 놀라는 그런 날 미즈노 씨네 트리하우스 나무 위 오두막에 올라야 하는 날이다. 다락방 동심의 세계 속에 쪼그리고 앉아 평온한 눈길로 세상을 바라봐야 하는 때다.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평화를 가져다주는 4곳을 뽑아보았다.

 

'책'과 '도서관'과 '숲'이 어우러져 사계절을 느낄 수 있는 삼청공원과 숲속 도서관!

 

쉽게 찾을 수 없는 은밀함이 있어 더 좋은 '아무것도 아닌 곳'은 조용한 곳에서 즐기는 차 한 잔과 1년 후 어느 날 문득 배달되는 느린 우체통 덕에 더 '홀로' 가보고 싶은 곳이다.

 

사유지이지만 넉넉한 마음으로 일반인들에게 공개해 준 주인의 마음 씀씀이가 돋보이는 벌영리 메타세쿼이아 숲은 앞으로 위로 탁 트인 숲을 보는 것만으로도 어쩐지 힐링이 될 것 같은 느낌이다. 멍 때리며 느리게 걷고, 그러면서 나에게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곳이 아닐까 싶다.

 

로망과 판타지의 세계를 꿈꾸게 해주는 나무 위 통나무집은 정말이지 지나치기 힘든 유혹이다.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구석구석 자리한 공간들을 눈으로, 마음으로 품는 것만으로도 어쩐지 동심과 추억 속에 풍덩 빠져들게 만든다.

 

무심한 어른이 된 나를 다시금 말랑말랑한 나로 되돌릴 수 있는 곳! 그곳이 바로 미즈노 씨네 트리하우스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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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겐 너무 예쁜 손님들 - 문주현 에세이
문주현 지음 / 바른북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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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제목을 보고 나서 얼마나 예쁜 손님들이기에 이렇게 책으로까지 엮어서 만들었을까 궁금했다. 그러다 작가 소개 페이지를 읽고 저자가 트랜스젠더임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내 그녀가 운영하는 '모던 바'에 대한 이야기임을 알게 되었는데, 여기서 또 한 가지 드는 의문점은 '성(性)'에 대한 언급과 함께 굳이 '모던 바'라는 지칭을 사용한 이유였다.

 

가게를 내는 데 있어 '성(性)'이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기에 굳이 '게이바', '레즈 바', '모던 바'라는 말로 구분하고 나눠서 지칭하는 것이 오히려 더 어색하고 이상하게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지막까지 읽어나가며 굳이 '성(性)'을 지칭하며 민감한 이야기들을 담은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말하지 않으면 어쩌면 트랜스젠더로 살아가는 삶이나, 이 책에 담긴 몇몇 이야기들은 그저 그런 사람들의 단순한 사연 정도로 넘어갔을지도 모를 이야기들이었는데, 그것을 빼는 순간 아마 당사자들에게는 초점에서 벗어난, 완연한 내 이야기로 말하기 애매한 이야기들이었을 것이다.

 

예컨대 사랑하는 연인이 있어요에서 끝나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 사람이 '여자' 혹은 '남자'에요 라던가 '같은 성을 가졌어요', '남자였다가 여자가 되었어요'와 같은 수식어를 더 붙여야 하는 상황들이 도래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리나라 사회시스템 안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일반적'이라고 믿고 있는 구조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그렇기에 나머지에 속하는 '소수자'였던 저자는 이것을 숨기거나 아니면 아예 드러내야 했을 거라는 짐작을 해보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드러내는 쪽을 선택하게 되면서 그냥 '바'가 아니라, '모던 바'라는 지칭을 사용하게 된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해본다.

 

그렇게 오픈한 '모던 바'는 특정 누구를 위한 유흥업소가 아니라 어떤 성(性)을 가지고 있든 누구나 편하게 즐길 수 있는 곳을 지향하는 가게가 되었고, 실제로 성(性), 인종, 국적, 나이, 직업 상관없이 다양한 사람들이 찾는 곳이 되었다.

 

그리고 이 책에는 그런 다양성을 지닌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있었다.

 

여기 담긴 이야기들은 어느 한 개인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한때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었던 코로나와 이태원 핼러윈 사건에 대한 굵직한 이야기도 담겨있다.

 

'모던 바'가 이태원에 자리하고 있는 덕에 최근 몇 년간 겪은 크고 작은 이슈들과 개인의 이야기들이 섞여 관점에 따라 완전히 다르게 읽힐지도 모르겠다.

 

상인의 입장에서 보자면 꽤 힘겨웠던 동병상련의 이야기로 다가올지도 모르겠다. 혹은 성소수자 입장에서 보자면 꿈꾸던 또 하나의 공간을 만난 반가움을 느끼거나 혹은 비슷한 아픔에 위로와 위안을 얻을지도 모르겠다.

 

한 사람의 이야기로 보자면, '나만 힘든 건 아니었구나'하는 생각과 함께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대나무숲을 발견한 느낌이 들지도 모르겠다.

 

'유흥'을 위한 가게가 아니라 '마음'을 나누는 가게 안에서 어떤 다채로운 이야기들과 만남이 기다리고 있는지 지금부터 만나보자!

 

저자는 레즈, 게이, 바이, 외국인에 일반인까지 전부 환영하는 '모던 바'를 만들어보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이에 주변 대부분의 사람들은 반대를 외치는데, 이때 함께 해보자며 저자의 손을 들어준 사람이 있다. 바로 현재 함께 바를 운영하고 있는 '주미'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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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의 트랜스젠더 바는, 거의 다 트젠을 좋아하는 남자 손님들을 위한 유흥업소이거나 특별한 술집을 찾는 아베크족을 위한 그런 술집이다. 나는 그게 싫었다. 매번 같은 유형의 사람들을 보고 살기에 지겨웠고 매일 짓궂은 손님들을 대하는 게 신물이 났다.

 

원래 호기심이 많았던 나는 이태원을 오가는 다양한 사람들을 좀 더 알고 싶었다.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도 궁금했다. 그렇게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리며 살고 싶었다. 되도록 평범하게, 어차피 완전한 평범함이 아닐지라도 왠지 음지에서 사는 듯한 이 기분에서라도 벗어나고 싶었다.

2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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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뛰어든 사람이 없어서 블루오션이었던 이 시장이 잘되면 대박, 안되면 쪽박, 즉 '모 아니면 도'인 상황이었는데 다행히 현재까지는 손님들이 가득 자리를 채우고 있다고 한다.

 

이들은 "개인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개방적이며 편견을 갖지 않고 저마다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는 자유를 존중합니다."라는 글을 써서 좌우명으로 삼고 있다고 한다.

 

 


총 22가지의 이야기를 살펴보면, 끔찍한 가정사부터 아프고 슬픈 이야기, 재기 발랄하고 기분 좋아지는 이야기까지 정말 다양하게 만나볼 수 있는데, 특별한 취향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색안경을 끼고 볼 필요는 없을듯하다.

 

그저 우리 곁에서 흔하게 보던, 부모님, 친구, 연인, 동료들의 이야기가 담긴, '우리네 이야기'였을 뿐이다.

 

이 중에서 특별히 와닿던 이야기와 기억에 남았던 문장들을 선별하게 기록으로 남겨보고자 한다.

 

 


=====
'행복'에 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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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좋아하는 손님 중에 춘천에 사는 손님과 '행복'에 대해 나눈 이야기가 꽤 인상 깊게 다가왔는데, 이 이야기를 읽는 또 다른 누군가도 불행한 날들보다 대부분이 행복한 나날들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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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빤, 언제 행복해?"
"난 뭐, 대부분 행복해."
(...)
"행복은 행복하지 않음에서 오는 거야. 우리가 만약 365일 행복 속에 산다면 행복의 개념 자체가 사라져. 뭐가 행복인지 구분할 수 없어지지. 이해돼?"
(...)
"그래서 행복이 행복하지 않음에서 온다는 것을, 정말 제대로 완전히 이해하면, 행복하지 않을 때도 행복할 수 있는 거야. 행복하지 않은 시간이 행복을 만들어 가는 시간이니까."
(...)
"행복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삶에 대한 이해와 존경심을 갖고 돈도, 건강도, 일도, 어느 정도는 골고루 갖추고 있는 상태여야 가능하겠지. 그러니까, 부족함 없이 여러 측면을 다 가지고 있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기도 할 거야. 근데 그게 정말 성공 아닐까? 안 그래?" 

 

"가끔 안 행복할 때는 언제야?"
"뭐, 내 맘대로 안 될 때?"
"그럴 땐, 어떻게 해?"
"되게 하려고 노력하면서, 그 과정을 행복하게 생각하지."

556~55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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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만을 좇고 있는 사람들에게 어쩌면 '행복'은 평생 만나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아주 가까이에 행복이 있음에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행복해?"라고 물어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불행하다는 답을 훨씬 많이 한다. 행복해지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 또한 행복한 순간임을 잊지 말자.

 

이것을 이해하는 순간, 당신은 이미 성공한 사람이자 행복한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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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 깊었던 문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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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닷없이 전직 기자 출신의 오빠가 얼마 전에 우리한테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너희는 말이야. 누가 뭐래도 행복한 줄 알아야 해!
(...)
대부분은 자기가 뭘 좋아하는지 뭘 싫어하는지 모르고 살아. 그런 게 현실이라고. 자기 자신과 타협하면서 온통, 타인의 관점에 맞추고 사는 데 습관이 돼서 자기의 의지를 점점 잃어버리는 거지. 근데 너희는 적어도 자신의 의지를 알고 사니까 행복한 거라고."

14~1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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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점을 달리한 해석의 한 끗 차이가 행복과 불행을 왔다 갔다 하게 만드는 문장이라 인상 깊게 다가왔던 문장이다. 

 

성소수자라고 하면 여러 부분에서 '행복'보다 '불행'쪽에 조금 더 무게를 두고는 하는데, 생각을 달리해보니 자신이 무얼 좋아하고 하고 싶은지 몰라서 떠도는 수만의 사람들에 비해 어쩌면 이들은 진짜 행복한 사람들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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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이 중요하다고 모두 말하지만, 수많은 진실과 거짓말 속에서 우리는 무엇이 진실인지 모를 때도 있고, 몰라도 될 때도 있고, 모르는 체하는 게 현명할 때도 있으며, 때로는 거짓말이 진실보다 위대해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

4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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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과 거짓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 보게 한 문장이다. 진실을 쫓는 것이 대체적으로 중요하지만, 살아보니 때때로 하얀 거짓말도 필요함을 이제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더불어 세상의 모든 진실을 알 필요는 없다는 생각도 해본다. 모르는 체하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그냥 진실을 모르는 게 나을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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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뭔가가 좋거나 싫은 것에 특별한 이유 따위는 없는지도 모른다. 그냥이다. 누가 좋거나 어떤 장소가 좋거나, 누구한테 잘해주고 싶거나, 그냥 그랬다는 말이 어쩌면 제일 정확한 표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9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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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를 좋아하거나 싫어할 때 우리는 그 이유를 찾으려 애를 쓴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특별한 이유가 없는 것이 정답일지도 모른다.

 

그럴 때 무언가로 설명할 수 없는 '그냥'이라는 답이 내놓을 수 있는 가장 최상의 정답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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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의 실체는 대부분 '남들이 그러니까. 남들도 다 그렇게 생각하니까.'이다. 그렇게 내실이 없거나 황당하다. 평범해지고자 하는 우리의 욕심은 오히려 개성을 스스로 말살한다. 자신이 뭘 좋아하고 어떤 모습으로 어떤 옷을 입을지도 모른 채. 그저 타인의 시선에 이상하게 보이지 않을 정도로 다니는 것에 익숙해지는 것이다.

17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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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 무서운 게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싶다. 군중심리로 인해 이유도 모른 채 짓밟히고 무시당하는 것. 그러다 스스로를 잃어버리는 것.

 

그런데 비단 이것은 특정 사람들만 겪는 현상은 아니다. 어떤 상황 사람들과 함께 있느냐에 따라 우리 모두 겪을 수 있는 일이다.

 

편견은 혼자 있을 때 생기지 않는다. 집단이 뭉치고 권력과 힘이 생기는 순간 발생한다.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면서 가장 피해야 할 것들 중 하나가 아닐까 싶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은 것이 또 '편견'이다.

 

경험에서, 무의식에서 발동되는 편견에서 자유로워지려면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해 보인다. 남들의 말과 행동에 흔들리지 않을 용기, 중심을 지키며 앞으로 나아갈 용기, 나를 잃어버리지 않을 용기를 통해 어쩌면 실체 없는 편견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이다.

 

 

 

가게를 다녀간 손님들의 이야기를 들여다보며 저자가 운영하는 바가 '고해성사의 장'이자 '대나무 숲'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누구나 편하게 들러 자신의 말 못 할 사연을 털어놓는 곳.

 

때론 스트레스를 풀며 즐겁게 이야기하는 장소가 되기도 하고, 또 어떨 때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속 깊은 이야기를 털어놓는 곳이기도 했다가, 반대로 손님들 덕에 가게 주인들이 힐링을 얻어 가는 곳이 바로 이 장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요즘은 친구나 가족 사이에도 쉽게 마음을 털어놓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럴 때 이렇게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장소가 하나쯤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로와 위안을 얻은 것 같은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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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시태그 동남아 한 달 살기 - 2024~2025 최신판 #해시태그 트래블
조대현 지음 / 해시태그(Hashtag)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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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한번쯤 꿈꾸는 한달살기! 그 중에서도 특히 부담없이 머무를 수 있는 동남아 여행지만을 모아두어 처음 한달살기를 하고자 한다면 여러모로 도움을 구할 수 있다. 태국, 인도네시아, 베트남, 라오스를 대표하는 여행지를 통해 꿈꾸는 낭만을 즐기고, 마음껏 휴양과 휴식을 취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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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환자, 로젠한 실험 미스터리 -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무너뜨린 정신의학사의 위대한 진실
수재나 캐헐런 지음, 장호연 옮김 / 북하우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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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이기도 하고, 또 사실이 아니기도 한 이야기"

 

 


최근의 정신의학을 살펴보면, 모르는 사이 어느새 우리의 삶에 스며들어 자연스러운 것이 되었다. 정신과 의사들이 각종 미디어에 등장해 우리가 겪는 일상의 문제들을 논하고 해결해 주면서 '이상하고 피해야 할 것'이 아닌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질환'으로 서서히 자리 잡게 된 것이다.

 

그런 한편 뉴스를 통해 전해지는 소식은 여전히 암울함 그 자체다. 각종 정신질환을 겪는 이들이 거리를 활보하며 모르는 이들을 폭행하거나 테러를 저지름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부각시키고 드러내려 한다. 그리고 법은 이들이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는 이유로 제대로 처벌하지 않는다.

 

이 책은 이러한 정신의학에 대한 역사와 하나의 실험에서 비롯된 나비효과, 그리고 그로 인해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정신의학의 현주소까지 담고 있는데, 읽다 보면 마치 추리소설을 읽는 느낌이 든다.

 

저자 자신이 겪은 오진을 시작으로 우연히 알게 된 '로젠한 실험'을 파헤쳐 가는 과정을 통해 약 50년간 이어져 온 정신의학의 폐해와 과학적 접근이 불가한 정신의학의 본모습을 제대로 목격할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한 번쯤 '온전한 정신과 정신이상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라는 궁금증을 가져본 적이 있다면 이 책이 매우 흥미롭게 다가올 것이다.

 

흡사 추리소설 형태를 띠고 있는 이 책은 저자의 삶을 뒤흔든 '오진'의 경험에서부터 시작된다. 많이 완화된 지금도 인식이 그리 좋지 않지만, 과거에는 병명이 정신적 원인으로 확정되면, 사람들의 불편한 인식을 넘어 훨씬 더 강도 높은 취급을 받던 때였다.

 

때문에 스물네 살의 나이에 거의 죽다 살아난 저자는 부모님과 한 의사의 노력 덕분에 간신히 신체 질환을 정신질환으로 오진했음을 밝히게 되면서 자신과 같은 오진을 경험을 하는 사람들을 위해 이 문제를 탐구하고 연구하기에 이른다. 

 

그러던 중 우연히 '로젠한 실험'에 대해 듣게 되면서 이 미스터리를 파고들게 되는데, 이것은 곧 자신이 겪었던 정신질환의 오진과 정신의학의 전반에 대한 내용으로 이어진다.

 

더불어 '온전한 정신과 정신이상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찾아가는 여정으로, 한때 유명한 저널에까지 실리며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로젠한 실험'의 실체에까지 근접하기에 이른다.

 

이를 통해 여느 과학과 다르게 아직까지 뛰어난 발전을 이루지 못하고 주춤거리고 있는 정신의학의 민낯과 아직까지 걷히지 않은 정신의학의 거대한 그늘을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상하게 '의학'과 '과학'분야만큼은 철저한 검증을 통해 제대로 입증된 것이라는 근거 없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아니 어쩌면 생명과 깊게 연관되어 있기에 그렇게 믿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실상은 명성이나 욕구, 경제적 부를 위해 우리의 신뢰와 기대를 저버릴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어쩌면 이 책을 읽고 난 후 누군가는 크나큰 배신감을 느끼거나 정신의학 분야에 대해 회의적인 시선을 가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정신의학 분야는 신체 질환을 넘어서 당사자에게는 많은 부분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에 조금 조심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제대로 현실을 직시하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기에 더 날카롭게 파고들어 확인해 보고자 한다.

 

더불어 과거 50년이 실망스러웠더라도 앞으로의 50년 100년은 잃어버린 정신의학에 대한 믿음을 착실히 쌓아줄 것이라 믿기에 우리의 정신적 건강과 행복한 삶을 위해 꼼꼼히 기록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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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로젠한 실험'을 파고들게 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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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망받는 기자였던 저자는 스물네 살, 삶을 뒤흔드는 정신질환 오진을 경험하게 되면서 문득 '나 같은 오진의 희생자가 또 있을까?'라는 생각에 그렇지 못했을 사람들을 생각하며 이 문제를 탐구하는데 전념하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회고록을 출간하고 나서 오진에 대한 사연을 돌아보는 것을 끝냈다고 생각했지만, 자신의 진료기록에 적혀있던 '정신 병동으로 이송'이라는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으면서 수많은 질문에 휩싸이게 된다.

 

우리(나와 나의 거울상)는 심각한 정신질환을 겪고 있는 수많은 사람과 어떻게 다를까? 우리는 어떻게 그토록 쉽게 오진될 수 있었을까? 그나저나 정신질환이라는 어떤 의미이고, 어째서 어떤 질환이 다른 질환보다 더 '실재적'일까?

 

그리고 이런 질문들은 회고록이 나오고 나서도 계속해서 저자를 괴롭혔는데, 이때 의료 시스템 내에서 싸우고 있는 사람들의 사연이 편지함에 도착하기 시작하면서 한 아버지의 사연을 접하게 된다.

 

그리고 그가 보낸 메일을 읽던 중 자신이 한 말을 인용하여 다시금 되돌려 준 질문을 통해 저자는 자신의 손바닥으로 얼굴을 후려 맞는 기분을 느끼게 된다.

 

"뇌는 신체기관인데 어째서 뇌에서 일어나는 병이 '신체 질환'이 아니라 '정신질환'이 되는 겁니까?"

 

그의 말에 저자는 새삼 자신이 그동안 아무렇지 않게 믿고 받아들였던 생각들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여태 정신질환을 완전히 잘못 보고 있지는 않았는지 스스로 질문하며 의구심을 가지게 된다.

 

그러던 중 우연히 정신의학계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로젠한 실험'에 대해 듣게 되면서 자세히 들여다보기로 결심한다.

 

이 실험을 파헤치면서 저자는 이 실험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가짜 환자들은 누구인지, 데이비드 로젠한이란 인물은 어떤 사람이었는지 등 여태껏 알려지지 않은 미스터리 한 부분을 파헤쳐 가며 알려지지 않았던 정신의학의 진짜 모습을 솔직하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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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젠한 실험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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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의학이 '정상'과 '비정상'을 가려낼 수 있는지 테스트한 실험으로, 이 실험을 주도한 로젠한 본인을 포함해 여덟 명의 가짜 환자가 정신 병동에 입원하는 과정부터 퇴원까지의 내용을 통계로 정리하여 과학적으로 입증한 실험이다. '사이언스' 저널에 이 실험의 논문이 게재되면서 유명세를 치르게 되고, 이로 인해 정신의학에 센세이션을 일으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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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 비었어, 공허해"라는 목소리가 들린다고 말하며 똑같이 한정된 증상들을 보이는 것으로 통일했다. 정체를 숨기고 정신 병동에 입원한 뒤에는 상황들을 면밀히 관찰하여 이것을 수집하는 방식을 취했다.

 

이에 대부분 심각한 정신질환 진단을 받았고, 한 명만 조울증으로, 나머지는 전부 조현병으로 진단된다. 입원 기간은 7일에서 52일까지 다양했고, 평균 19일이었다. 입원해 있는 동안 총 2100개의 알약이 건강한 사람들에게 처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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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젠한 실험은 한편으론 필립 짐바르도의 '스탠퍼드 교도소 실험'을 연상케 하는데, 이를 통해 당시 스탠퍼드 대학교 교수진들의 연구 방식 스타일은 물론 얼마나 명망 높은 교수진들이 스탠퍼드에 포진되어 있었는지를 짐작게 한다.

 

하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이 둘의 실험 과정과 결과가 끼친 영향은 완전히 다른 양상을 보임을 알 수 있다. 특히 로젠한 실험이 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정신의학계를 제자리에 머물게(혹은 후퇴) 한 원흉임을 기억한다면, 살아있는 그에게 왜 그런 논문을 썼는지 꼭 한번 묻고 싶을 지경이다.

 

만약 그때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더라면, 어쩌면 지금 정신의학계는 훨씬 더 눈부신 성장을 이뤄내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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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로젠한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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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는 남들처럼 비밀이 있었소. 드라마 작가의 면이랄까. 그는 흔히 말하는 불가사의 속에 신비로 싸인 수수께끼였소."

9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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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친한 친구인 리는 그를 수수께끼 같은 사람이었다고 전한다. 이외에도 그에 대한 평가들을 살펴보면, 그의 지적 범위는 무궁무진했으며, 진정한 재능은 교습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끌 줄 아는 것이라고 전한다.

 

그는 남동생의 편집증적 집착으로 인해 심리학, 특히 이상심리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교정에 열의를 보이게 된 것이라며 아들 잭이 전한다.

 

그에게는 극적인 면이 있었는데, 이야기꾼으로서의 면모도 탁월했다고 전해진다. '살짝 다른 맥락에 놓이면 살짝 다른 사람으로 보이는' 초점에 따라 영웅으로도, 악동으로도, 사기꾼으로도, 카산드라(예언자)로도, 이타적 지도자로도, 이기적 기회주의자로도 볼 수 있다고 전해진다.

 

또  그는 위대한 행세자였다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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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의학의 역사와 과거 실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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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는 인류의 역사 내내 우리를 따라다니며 괴롭혀 왔다. 그러나 무엇이 광기를 야기하는지, 단적으로 말해 어디서 원인을 찾을 수 있는지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이제까지의 설명들을 보면 마음/영혼, 뇌, 환경, 이렇게 세 요인을 오가며 이루어졌다. 처음에 광기는 신이나 악마가 직접 개입한 초자연적인 것이라는 믿음이 지배했다.

 

 


▶18세기 아일랜드에서는 오두막 바닥에 5피트 깊이의 구멍을 파고 그 안에서 살도록 했다.
▶독일에서는 돼지우리에서 쇠사슬에 묶인 채로 지내게 했다.
▶잉글랜드에서는 구빈원 공터에서 말뚝에 묶어놓았다.
▶스위스의 한 도시에서는 정신질환자 다섯 명 중 한 명이 집에 감금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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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 의학계의 현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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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정신의학계에 몸담고 있는 의사들을 통해 현주소를 낱낱이 확인해 볼 수 있었다. 가장 앞서 나간다고 자부하는 미국에서조차 아직까지 확실한 해답을 찾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약물이 중심이 되는 현대 정신의학의 시대가 열리면서 이 모든 것은 더없이 과학적으로 보였고 대중은 새로운 통찰을 받아들이게 되면서 오히려 오진을 불러오는 새로운 여파가 생겨나게 된다.

 

진단의 실수는 전에 없던 의미를 갖게 되는데, 이제 진단에 특별한 무게가 실리면서 의사와 환자뿐만 아니라 보험회사와 제약회사에도 중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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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의학은 다른 의학 분야에 뒤처져 있는 게 사실이다.
(...)
확실한 정신질환 진단을 가능하게 하는 객관적이고 일관된 척도는 이 글을 쓰는 지금 존재하지 않는다.
(...)
정신과 의사들은 징후들을 관찰하고 병력을 살펴보고 가족과 친구들을 면담하여 종합적으로 진단을 내린다. 그들이 다루는 기관은 '마음'으로, 마음의 연구는 가령 피부암의 진행 과정이나 심장병의 기전을 이해하는 것보다 더 난감한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2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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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질환은 특정 신체기관이 아닌 마음으로부터 얻는 병이다. 그래서 다른 질병과는 다르게 기전을 이해하는 게 쉽지 않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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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의사 앤서니 데이비드는 "많은 의학적 진단이 얼마나 자의적이고 허점 투성이인지 일반 대중이 알면 소스라치게 놀랄 겁니다"라고 말했다.

2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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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이렇게 '자의적이고 허점 투성이인' 진단 체계는 미국에서 매년 정신질환 증상을 경험하게 되는 성인 다섯 명 가운데 한 명의 삶을 바꿔놓는 결과로 이어진다고 한다. 

 

현재 응급상황에 빠진 정신 병동은 과거와는 완전히 반대의 상황에 직면해 있다. 과거에는 정확한 진단 없이 멀쩡한 사람도 무자비하게 정신 병동에 수용했다면, 현재는 정말로 도움이 필요한데 자리가 없어서 병원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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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인정하든 안 하든 의학은 확실함보다는 믿음으로 돌아갈 때가 훨씬 많다. 몇몇 특별한 경우에 우리는 백신을 접종한다거나 생활환경을 개선한다거나 선제적으로 정밀검사를 하여 병을 예방할 수 있다. 하지만 병을 실제로 치료하는 문제에 있어서는 대체로 한계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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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적으로 의학은 확실함보다 믿음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이번 코로나 팬데믹으로 충분히 입증되었다. 단기간 내 급하게 개발된 백신을 예방한다는 목적으로 제대로 검증도 거치지 않은 상태로 접종한 것은 그저 괜찮아질 거라는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정신의학은 특히 더 믿음에 의지하는 면이 강한데, 명확한 원인이나 치료법을 모르는 상태로 그저 괜찮아질 거라는 믿음으로 버텨나가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 면에서 정신의학은 어쩌면 치료에 있어 가장 한계를 드러내는 분야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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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중요한 것으로,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대다수 사람은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그대로 있으며, 그들이 받는 열악한 처우는 평범한 대다수 미국인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 키지의 시대와 오늘날의 진정한 차이라면 정신질환이 있는 사람들을 학대하는 것이 이제 교도소와 구치소에서 벌어진다는 사실밖에 없다.

35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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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가 교도소와 구치소에서 보는 심각한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는 정신 병동 병상이 충분히 확보되었다면 틀림없이 입원했을 사람들이다. 이것이 현재 미국의 정신보건 돌봄의 실태로 탈시설화가 안겨준 충격적인 현실이다. 이를 통해 로젠한 실험에서 비롯된 나비효과의 결과가 재앙이라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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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변화가 일어나려면 돈이 필요하다. 자금이 적절하게 배분되지 않아 사람들은 세 번 고통을 당한다. 우선 그들을 지원하는 자원이 끊기고 문제 되는 행동을 보이면 체포되고 나중에 공동체에 복귀하면 모른 체 외면당한다. 시스템이 망가진 상태에서 가장 아픈 사람들은 계속해서 무시되고 버려진다.
(...)
"이것이 암이나 심장병의 사례라고 한다면 말도 안된다고 했겠지요. 교도소는 치료를 받으면서 머물 곳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처한 상황이 정확히 그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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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적 통증을 느끼는 사람들은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며 정상적인 회복을 논할 수 있다. 그러나 눈으로 보이지 않는 정신적 고통을 겪는 사람들은 병원이 아닌 교도소나 구치소에 머무르며 제대로 된 치료도 받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들은 망가진 사회 시스템 안에서 무시당하고 버려진 채 여생을 보내고 있다. 어쩌면 사회적 이슈들로 떠오르고 있는 문제들이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이유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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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으로 로젠한 실험 파헤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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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로젠한 실험을 파헤치기 시작하면서 물어볼 것이 많았다. 하지만 그는 저자가 <브레인 온 파이어> 출간을 준비하고 있던 바로 그 무렵에 세상을 떠났다.

 

그는 <정신병원에서 제정신으로 보내기> 논문 이후 후속 논문 한편과 이상심리학 개론 교제에서 짤막하게 언급한 것을 제외하면 이 주제에 대해 더 이상 파고들지 않았다.

 

심지어 책 출간도 준비했는데 원고를 넘겨주지 않아 나중에 출판사로부터 소송을 당했다. 옹호자가 절실하게 필요한 이 주제를 외면하고 떠나게 만든, 그를 침묵하게 만든 일은 무엇이었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여덟 명의 익명의 가짜 환자가 열두 곳의 정신병원에서  "쿵, 비었어, 공허해"라는 환청을 들었다는 이유로 입원했다는 간단한 내용밖에 확인이 안되는 그의 실험은 당시 꽤 큰 파장을 일으켰는데, 그에 비해 거의 50년이 지나서도 많은 부분이 수수께끼로 남아있었다.

 

로젠한의 가짜 실험을 파헤치기 위한 시발점은 데이비드 로젠한의 가까운 친구이자 동료인 스탠퍼드 사회심리학자 리 로스를 통해 그의 개인 파일을 전달받으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거기에는 논문 초고와 병원에 있을 때 쓴 수십 쪽의 일기, 동료들의 인정사정없는 논평, 그리고 변색된 두툼한 고무줄로 묶어놓은 종이 뭉치에서 출간되지 않은 책이 발견된다. 이 중 '가짜 환자'라고 표시된 서류철은 비밀을 풀어줄 로제타석이었다.

 

'데이비드 루리'가 병원에서 퇴원한 1969년 2월과 <정신병원에서 제정신으로 지내기> 논문의 초고가 완성된 1972년 사이의 어느 무렵에 일곱 명의 다른 지원자가 합류하면서 교습 실험에서 훨씬 더 거대한 연구로까지 발전하게 되는 프로젝트로 변모하게 된다.

 

그들은 로젠한이 가까스로 빠져나온 똑같은 수모에 기꺼이 몸을 맡겼고, 그 과정에서 로젠한의 유산은 정신의학의 역사에 길이 남았다. 그는 이것이 주목받게 하기 위해 더 많은 자료를 모으고 과학적으로 접근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다 로젠한의 명성이 절정에 달하던 시기 그는 돌연 관심에서 멀어지게 되는데, 이는 그의 사적 논문들에서 발견되는 특이한 사항들과도 일치하게 된다.

 

그의 개인 파일 덕분에 몇 가지 내용은 확인했지만 여전히 그의 실험을 제대로 확인해 볼 단서들은 부족한 상태다. 그리고 그것을 파헤치는 것 또한 쉽지 않았는데, 연구의 세세한 사항들을 비밀로 남기기 위해 상당히 노력한 흔적과 사적인 기록에서조차 가명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여러 사람을 거쳐 살아있는 가짜 환자와 처음 연락이 닿게 되면서 조금 더 진실에 가까워지기 시작한다. 그는 W. 언더우드라는 가짜 환자로 빌 딕슨이었다. 빌 언더우드와 그의 부인 매리언과의 대면을 통해 로젠한을 어떻게 알게 되었고 실험에 참가하게 되었는지 듣게 된다.

 

1970년 가을 빌은 로젠한의 정신병리학 세미나 수업을 들었고 그에게 매료되면서 데이비가 하는 모든 일에 합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그의 실험에 함께 하게 된다.

 

빌은 편집성 조현병으로 115733번 환자로 공식 입원하게 되는데, 저자는 그와의 대화를 통해 로젠한 실험이 알려진 것과는 다름을 감지하게 된다.

 

그의 병원기록에서 '퇴원 사유'칸은 비어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고, 그의 실제 입원 내용과 로젠한의 실험 내용과도 내용이 다름을 알게 된다.

 

깊게 파고들수록 이야기는 더 복잡해졌는데, 로젠한의 공책에 기록된 내용들은 전문가 답지 않고 비윤리적으로 보일 수도 있는 실수들이 계속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병원에서 보낸 시간에 관한 실수, 턱없이 부정확한 환자 수를 적은 실수, 가명의 이니셜을 잘못 적는 실수 외에도 로젠한의 기록과 빌의 기억 사이에 일치하지 않는 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울러 빌은 자신이 상세한 자료를 기록한 기억이 없는데 초고와 발표된 논문에는 직원들이 병동에서 보낸 시간을 분 단위로 정확히 밝히고 있다.

 

이 외에도 로젠한이 인신보호영장을 준비하지 않았으면서 매리언에게 작성해 놓았다고 한점이나 사전 준비를 거의 시키지 않아 다량의 약을 가짜 환자를 복용하게 되었다는 점, 또 병원에 대한 제대로 된 검증이나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 등이 미심쩍게 다가왔다.

 

이러한 사항들은 점차 의문을 갖게 했고 자료가 의미를 갖도록 만들려고 로젠한이 변수의 수를 줄인 것이라는 관점을 갖게 했다. 이 때문에 연구의 타당성이 손상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럼 여기에서 유명한 과학잡지 <사이언스>에는 어떻게 실리게 된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는데 신속한 심사과정을 통해 오히려 학계의 명성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활용한 것이라는 의견이 제기된다.

 

저널의 위상 덕분에 정신의학 분야에서 나온 강도 높은 비판은 전혀 먹히지 않았고 오히려 로젠한의 연구는 힘을 얻은 것이다.

 

여기에서 등장하는 사람 중 중요한 인물이 있는데 바로 '로버트 스피처'다. 그는 로젠한의 입원에 관한 진료기록을 입수하여 진실을 알게 된 사람으로,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이유로 모든 진실을 묵살한다.

 

덕분에 자신이 맡은 <정신질환의 진단 및 통계 편람> 제3판인 개정판 작업을 무사히 마치는 것은 물론 정신의학의 얼굴을 바꾸는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

 

이로 인해 증거와 무관하게 질환의 모델을 전적으로 받아들여 '재 의료화'가 이루어지고, 의사와 환자 모두 병이 어떻게 생겨났고 병에서 자신이 어떤 역할을 맡는지를 전과 다르게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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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스피처)이 한 일은 정신의학의 얼굴을 바꾼 것이었습니다. 그는 사람들이 스스로를 바라보는 방식을 바꾸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세상을 바꾸었는데 그런 변화를 일으킨 데는 로젠한의 프로젝트가 큰 자극이 되었습니다. (로제한의 연구가 아니었다면) 스피처는 제 3판을 그렇게 쓰지 못했을 겁니다."

29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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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제3판은 미국의 정신 보건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그러나 이제 많은 전문가가 과연 올바른 방향으로 바뀐 것인지 의문을 던진다.

 

제3판을 기획할 때 체계적인 연구는 없었으며, 대개가 주먹구구식이었고, 산발적이고, 서로 모순되고 모호한 것들의 조합이었기 때문이다. 더불어 건실한 진짜 과학에 입각하여 결정을 내린 부분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이로 인해 새로 나온 편람의 최고 장점으로 내세웠던 신뢰성조차 과장된 것이었음을 알게 된다.

 

이후 편람 개정은 연이은 실패를 하게 되는데, 이후 30년 동안 애썼음에도 과학은 아직 그대로 머무르게 된다.

 

여기에서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편람의 방식 때문에 정신의학의 실태가 지나치게 경직되어 환자를, 개인을, 인간을 놓쳤다는 것이다.

 

이것으로 명확한 근거 없이 그저 편람에 따르느라 어느 지역, 어느 의사가 진료를 보더라도 일관된 진료와 처방은 내려졌지만, 이로 인해 오진을 부추기는 상황을 피하지 못하게 된다.

 

예컨대 오진으로 고생했던 저자가 1년간 글을 쓰고 4년간 끊임없이 병에 대해 이야기 했음에도 그녀의 스키드(SCID: 임상 면담)을 통해 여전히 적절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볼 때 이 분야가 얼마나 엉망인지 확인할 수 있게 된다. 여기에 더해 오진으로 받는 돈이 무려 550달러라는 적지 않은 금액은 당황스러움을 넘어 놀라움 그 자체다.

 

저자는 그렇게 끊임없이 로젠한의 실험을 파고들면서 한 가지 놀라운 변수를 만나게 되는데, 바로 무명의 아홉 번째 환자인 해리 제이콥스가 바로 그 변수다.

 

그는 저자가 두 번째로 만난 가짜 환자로, 1970년 가을 정신병리학이라는 대학원 세미나 수업에서 로젠한의 강의에 경외감을 가지게 되면서 그의 실험에 참여하게 된다.

 

해리는 미국 공공보건서비스 병원에 입원하게 되는데, 다른 환자들과는 완전히 다른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된다. 그는 그곳에서 다른 병원에서 가짜 환자들이 느꼈던 느낌과는 다른 기분 좋은 느낌을 받게 된다.

 

축제 분위기의 환경과 단기 치료에 초점을 두는 시설인 병원은 환자들이 들락거리기를 원했고, 그랬기에 가급적 편안한 경험을 제공했다. 환자를 동등하게 대했고, 게임과 잡담에 참여했으며, 함께 노래도 불러 아름다운 합창소리가 병동에 울려 퍼졌다. 매우 이로운 환경 그 자체였다.

 

덕분에 그는 이곳에서 긍정적으로 바뀌었으며, 퇴원도 직원이 알아서 승인하는 등 약물 처방 없이 후속 치료에도 힘써주는 경험을 하게 된다. 더불어 단순히 퇴원시키는 것이 아닌 계속해서 건강하게 지내도록 독려해 준다.

 

이러한 해리의 실험은 로젠한의 논지에 맞지 않게 되면서 증거를 내다 버리게 되고 마침내 이 기록은 무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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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의 자료를 무시함으로써 로젠한은 입체적인 그림, 살짝 더 혼란스럽지만 보다 정직한 그림을 얻는 기회를 놓쳤다. 그 대신에 그는 오늘날까지 살아남은 위험한 절반의 진실을 영속화하는 데 한몫했다.
(...)
만약에 그가 좀 더 균형 잡힌 관점에서 병원을 대했다면, 그가 해리의 자료를 연구에 포함시켰다면, 다른 대화가, 극단적으로 딱 잘라 말하지 않는 대화가 그의 연구로부터 이어졌을 테고, 어쩌면 오늘날 우리는 더 나은 세상에 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34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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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저자는 가짜 환자들을 찾는 것이 아닌, 가짜 환자들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찾아 나선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놀라운 점은 많은 사람들이 그의 이야기를 다시 하는 것에 끼어들고 싶어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로젠한 교수는 심리학 교수이자 법학과 교수였는데 그는 모든 곳에 있으면서 어디에도 없는 사람이었다. 더불어 몇몇 사람들은 그의 연구에 의구심을 가졌다. 그리고 이런 의구심은 경력 내내 그를 얼룩지게 만들었으며 그의 명성은 점차 쪼그라들게 만들었다.

 

신기한 건 그의 최측근 사람들만은 그를 믿었다. 연구 조교 낸시 혼은 부정직한 일을 할 사람이 아니라고 말했고, 가짜 환자 서류에 끼워둔 학부생 행크 오카마는 단호하게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말했다. 또 로젠한의 아들 잭도 이들과 같은 반응으로, 아버지가 연구에 개입하여 엉망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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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젠한 실험이 정신의학에 끼친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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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그의 실험이 세상에 공개되면서 그는 명성을 얻게 되고, 사람들은 그가 과학적으로 증명한 것에 열광하기 시작한다. 그 이유는 모든 사람들이 의심하고 있던 것이 사실임을 그가 증명했기 때문이다.

 

또한 비전문가들이 정신의학의 용어와 판단을 보지 못하게 가로 막고 있던 반투명 거울을 박살 냄으로 인해 법정에서 변호사들은 전문가 증언의 신뢰성을 떨어뜨릴 수 있게 된다.

 

그의 연구는 또 '동성애 문제'에도 영향을 미쳤는데, 당시 게이는 정신질환으로 여겨졌었다. 그런데 이 실험 이후 정신과 의사들에게 설문지를 통해 정신질환으로 편람에 포함할지 의견을 묻게 되면서, 의학적 근거를 바탕이 아닌 '설문조사'를 통해 질환을 뺄 수 있다는 발상은 곧 정신의학 분야 전체가 얼마나 얄팍하게 돌아가는지 보여주는 확증이 되면서 로젠한의 주장에 더욱 힘이 실리게 된다.

 

이때 특별한 고통이나 증상 없이 멀쩡히 살아가는 게이들을 보고 그것이 장애라고 부를 수 없다는 판단하에 편람의 개정판에서 동성애가 삭제되면서 정신병의 목록에서는 사라지게 된다. 다만 그 흔적은 '성적 지향 장애'라고 하는 진단으로 남게 된다.

 

이에 다른 단체들도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퇴역군인들의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는 편람에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현재 평판, 불신, 교착 상태, 이런 것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정신 보건 돌봄 종사자들의 전 세계적 부족 현상을 불러왔다. 정신의학은 한때 인본주의 의학으로 여겨지기도 했지만 2006년에 이르면서 정신요법을 받는 미국인은 3퍼센트에 불과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 문제들을 정신보건 관련자들에게 이야기했을 때 그들에게서 으스대는 반응이 나오지 않는 것만 보아도 충분히 상황이 어떠한지 짐작이 간다.

 

저자는 로젠한 실험의 진실에 가까워지면서 '이 연구를 그대로 두는 것이 정신의학 분야 안팎의 많은 사람들에게 먹혔던 서사에 좋을까?', '우리가 나쁜 과거를 뒤에 묻고 꾸준히 전진할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든다고 말하고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곪은 것은 터뜨려야 다시 새살이 돋는 것을 알기에 그대로 두기 보다 이제라도 나쁜 과거를 청산하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 맞는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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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로젠한과 그의 논문은 비록 파이 한 조각일 뿐이지만 우리의 최악의 본능을 자극했다. 이 덕분에 정신의학으로서는 난감한 상황이 되어 수세에 몰린 정신의학은 확실성에 매달리게 되었다.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었다. 연구와 치료, 돌봄의 방향을 잘못 잡은 것이다. 나머지 사람들에게는 듣기 좋은 서사를 선사했지만 심각한 정신질환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하루하루에 끔찍한 영향을 미쳤다.

405~40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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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데이비드 로젠한의 실험 때문에 오히려 병동을 잃은 심각한 정신질환자들이 거리를 떠돌거나 엉뚱한 곳에서 제때 치료도 받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이다.

 

정신의학 분야가 이러고 있는 동안 다른 과학자들은 우주를 탐사하고, 심장을 이식하고 듣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달팽이관을 이식하여 청력을 선사하게 된다.

 

그리고 세계의 커다란 수수께끼들은 하나씩 풀어갔다. 우주, 암, 불임을 정복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래의 질문에 대해서는 여전히 적절한 대답을 하지 못했다. 정신질환이란 무엇일까? 혹은 더 적절하게 묻자면 무엇이 아닐까?

 

 


저자는 정신질환 치유의 핵심은 '지원'과 '공동체 정신'에 있다고 말하며, 열린 대화가 곧 치료라고 말한다. 마음의 병을 얻은 그들을 인간으로 대하고, 공감하며, 더 객관적인 의학적 조치로 포착하기 어려운 미묘한 증상들을 확인함으로써 회복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고 말한다.

 

모든 의학, 특히 정신의학은 과학적인 만큼 수수께끼에 둘러싸여 있고 영혼과 관련되는 것이므로 궁극적으로 치료자가 보살핌을 받고 있음을 아는 환경을 구축해야 하며 그게 핵심임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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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말 하나하나가 중요합니다. 모든 시선, 모든 손길 하나하나가 다 중요해요. 좋은 약을 5밀리그램 투여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죠. 하지만 의사, 간호사, 물리치료사도 약이 환자에게 효과가 있다고 믿는 환경에서 더 효과적입니다."

42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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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 질환과는 다르게 온전히 마음으로 다가가 보살피고 공감해야 비로소 제대로 된 치료가 될 것이라고 말하는 저자의 말에서 정신의학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그려보게 된다.

 

의사와 간호사, 물리치료사가 가져야 할 태도와 사회보장 시스템의 변화, 병을 대하는 자세 등 50년간 멈춰있던 정신의학의 새로운 변화와 움직임을 새삼 기대하며 바로 잡히기를 고대하게 된다.

 

저자의 이야기에서부터 시작해 어느새 우연히 알게 된 로젠한 실험을 깊게 파헤치면서 알게 된 정신의학에 관한 역사와 진실은 껄끄러우면서도 매우 당혹스럽게 다가온다.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희망을 꺾는 이야기가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현대 사회에서 가장 중요시되는 정신의학이 사실은 바탕이 되는 근거가 없으며 그저 날조된 문서와 변형에 의해 만들어진 논문 하나에 휘청하면서 지금까지 이어져왔다는 사실 또한 당혹스럽다.

 

더군다나 신체 질환과 다르게 눈에 보이지 않는 증상과 통증으로 오래 고통받는 이들을 생각하면, 사기당한 기분마저 든다. 동성애를 정신질환에서 제외하고, 퇴역군인들의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편람에 포함시킨 건 결론적으로 잘한 선택인 것 같지만 마땅한 과학적 추론에 의해 결정된 것이 아니라 그저 설문조사와 주먹구구식으로 결정되었다는 점은 어딘가 허술함과 아쉬움을 남긴다.

 

그저 의문으로만 남은 로젠한 실험이 왜 그렇게 마무리되어야 했는지 로젠한 교수가 죽기 전 저자가 만나 인터뷰를 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로젠한 실험 이후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 이제는 당시를 기억하는 이들이 너무 많이 세상을 떠났고, 그래서 더 이상은 그 이후의 이야기를 만나볼 수 없어 명확한 결론을 내리기는 어렵지만, 그가 남긴 자료와 가짜 환자 인터뷰, 그리고 당시 편람 개정에 끼친 영향을 생각해 봤을 때 어느 정도는 사실로 받아들여진다.

 

사실이지만 또 사실이 아니기도 한 이 이야기를 통해 새삼 정신 질환이란 대체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다시 한번 하게 된다. 형체도, 명확한 원인도, 치료법도 가늠하기 어렵기에 미래에는 어떤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올지 두려움도 인다.

 

무언가 통증을 느낄 때 정상과 비정상이라는 아슬아슬한 경계 위에서 과연 온전히 나의 병명을 진단하고 제대로 치료받을 수 있을지도 의문이 든다.

 

이런 사람들의 불식을 종식시키기 위해서 이제 정신의학은 지뢰밭이었던 역사는 접어두고 다시금 일어서 분발하여 앞으로 나아가야 할 때라는 생각을 해본다.

 

부디 믿는 만큼, 사람들이 신뢰를 주는 것 이상의 눈부신 성과를 이뤄내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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