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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겐 너무 예쁜 손님들 - 문주현 에세이
문주현 지음 / 바른북스 / 2023년 11월
평점 :
처음에 제목을 보고 나서 얼마나 예쁜 손님들이기에 이렇게 책으로까지 엮어서 만들었을까 궁금했다. 그러다 작가 소개 페이지를 읽고 저자가 트랜스젠더임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내 그녀가 운영하는 '모던 바'에 대한 이야기임을 알게 되었는데, 여기서 또 한 가지 드는 의문점은 '성(性)'에 대한 언급과 함께 굳이 '모던 바'라는 지칭을 사용한 이유였다.
가게를 내는 데 있어 '성(性)'이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기에 굳이 '게이바', '레즈 바', '모던 바'라는 말로 구분하고 나눠서 지칭하는 것이 오히려 더 어색하고 이상하게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지막까지 읽어나가며 굳이 '성(性)'을 지칭하며 민감한 이야기들을 담은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말하지 않으면 어쩌면 트랜스젠더로 살아가는 삶이나, 이 책에 담긴 몇몇 이야기들은 그저 그런 사람들의 단순한 사연 정도로 넘어갔을지도 모를 이야기들이었는데, 그것을 빼는 순간 아마 당사자들에게는 초점에서 벗어난, 완연한 내 이야기로 말하기 애매한 이야기들이었을 것이다.
예컨대 사랑하는 연인이 있어요에서 끝나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 사람이 '여자' 혹은 '남자'에요 라던가 '같은 성을 가졌어요', '남자였다가 여자가 되었어요'와 같은 수식어를 더 붙여야 하는 상황들이 도래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리나라 사회시스템 안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일반적'이라고 믿고 있는 구조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그렇기에 나머지에 속하는 '소수자'였던 저자는 이것을 숨기거나 아니면 아예 드러내야 했을 거라는 짐작을 해보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드러내는 쪽을 선택하게 되면서 그냥 '바'가 아니라, '모던 바'라는 지칭을 사용하게 된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해본다.
그렇게 오픈한 '모던 바'는 특정 누구를 위한 유흥업소가 아니라 어떤 성(性)을 가지고 있든 누구나 편하게 즐길 수 있는 곳을 지향하는 가게가 되었고, 실제로 성(性), 인종, 국적, 나이, 직업 상관없이 다양한 사람들이 찾는 곳이 되었다.
그리고 이 책에는 그런 다양성을 지닌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있었다.
여기 담긴 이야기들은 어느 한 개인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한때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었던 코로나와 이태원 핼러윈 사건에 대한 굵직한 이야기도 담겨있다.
'모던 바'가 이태원에 자리하고 있는 덕에 최근 몇 년간 겪은 크고 작은 이슈들과 개인의 이야기들이 섞여 관점에 따라 완전히 다르게 읽힐지도 모르겠다.
상인의 입장에서 보자면 꽤 힘겨웠던 동병상련의 이야기로 다가올지도 모르겠다. 혹은 성소수자 입장에서 보자면 꿈꾸던 또 하나의 공간을 만난 반가움을 느끼거나 혹은 비슷한 아픔에 위로와 위안을 얻을지도 모르겠다.
한 사람의 이야기로 보자면, '나만 힘든 건 아니었구나'하는 생각과 함께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대나무숲을 발견한 느낌이 들지도 모르겠다.
'유흥'을 위한 가게가 아니라 '마음'을 나누는 가게 안에서 어떤 다채로운 이야기들과 만남이 기다리고 있는지 지금부터 만나보자!
저자는 레즈, 게이, 바이, 외국인에 일반인까지 전부 환영하는 '모던 바'를 만들어보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이에 주변 대부분의 사람들은 반대를 외치는데, 이때 함께 해보자며 저자의 손을 들어준 사람이 있다. 바로 현재 함께 바를 운영하고 있는 '주미'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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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의 트랜스젠더 바는, 거의 다 트젠을 좋아하는 남자 손님들을 위한 유흥업소이거나 특별한 술집을 찾는 아베크족을 위한 그런 술집이다. 나는 그게 싫었다. 매번 같은 유형의 사람들을 보고 살기에 지겨웠고 매일 짓궂은 손님들을 대하는 게 신물이 났다.
원래 호기심이 많았던 나는 이태원을 오가는 다양한 사람들을 좀 더 알고 싶었다.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도 궁금했다. 그렇게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리며 살고 싶었다. 되도록 평범하게, 어차피 완전한 평범함이 아닐지라도 왠지 음지에서 사는 듯한 이 기분에서라도 벗어나고 싶었다.
2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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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뛰어든 사람이 없어서 블루오션이었던 이 시장이 잘되면 대박, 안되면 쪽박, 즉 '모 아니면 도'인 상황이었는데 다행히 현재까지는 손님들이 가득 자리를 채우고 있다고 한다.
이들은 "개인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개방적이며 편견을 갖지 않고 저마다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는 자유를 존중합니다."라는 글을 써서 좌우명으로 삼고 있다고 한다.
총 22가지의 이야기를 살펴보면, 끔찍한 가정사부터 아프고 슬픈 이야기, 재기 발랄하고 기분 좋아지는 이야기까지 정말 다양하게 만나볼 수 있는데, 특별한 취향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색안경을 끼고 볼 필요는 없을듯하다.
그저 우리 곁에서 흔하게 보던, 부모님, 친구, 연인, 동료들의 이야기가 담긴, '우리네 이야기'였을 뿐이다.
이 중에서 특별히 와닿던 이야기와 기억에 남았던 문장들을 선별하게 기록으로 남겨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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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 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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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좋아하는 손님 중에 춘천에 사는 손님과 '행복'에 대해 나눈 이야기가 꽤 인상 깊게 다가왔는데, 이 이야기를 읽는 또 다른 누군가도 불행한 날들보다 대부분이 행복한 나날들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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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빤, 언제 행복해?"
"난 뭐, 대부분 행복해."
(...)
"행복은 행복하지 않음에서 오는 거야. 우리가 만약 365일 행복 속에 산다면 행복의 개념 자체가 사라져. 뭐가 행복인지 구분할 수 없어지지. 이해돼?"
(...)
"그래서 행복이 행복하지 않음에서 온다는 것을, 정말 제대로 완전히 이해하면, 행복하지 않을 때도 행복할 수 있는 거야. 행복하지 않은 시간이 행복을 만들어 가는 시간이니까."
(...)
"행복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삶에 대한 이해와 존경심을 갖고 돈도, 건강도, 일도, 어느 정도는 골고루 갖추고 있는 상태여야 가능하겠지. 그러니까, 부족함 없이 여러 측면을 다 가지고 있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기도 할 거야. 근데 그게 정말 성공 아닐까? 안 그래?"
"가끔 안 행복할 때는 언제야?"
"뭐, 내 맘대로 안 될 때?"
"그럴 땐, 어떻게 해?"
"되게 하려고 노력하면서, 그 과정을 행복하게 생각하지."
556~55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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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만을 좇고 있는 사람들에게 어쩌면 '행복'은 평생 만나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아주 가까이에 행복이 있음에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행복해?"라고 물어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불행하다는 답을 훨씬 많이 한다. 행복해지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 또한 행복한 순간임을 잊지 말자.
이것을 이해하는 순간, 당신은 이미 성공한 사람이자 행복한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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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 깊었던 문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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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닷없이 전직 기자 출신의 오빠가 얼마 전에 우리한테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너희는 말이야. 누가 뭐래도 행복한 줄 알아야 해!
(...)
대부분은 자기가 뭘 좋아하는지 뭘 싫어하는지 모르고 살아. 그런 게 현실이라고. 자기 자신과 타협하면서 온통, 타인의 관점에 맞추고 사는 데 습관이 돼서 자기의 의지를 점점 잃어버리는 거지. 근데 너희는 적어도 자신의 의지를 알고 사니까 행복한 거라고."
14~1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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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점을 달리한 해석의 한 끗 차이가 행복과 불행을 왔다 갔다 하게 만드는 문장이라 인상 깊게 다가왔던 문장이다.
성소수자라고 하면 여러 부분에서 '행복'보다 '불행'쪽에 조금 더 무게를 두고는 하는데, 생각을 달리해보니 자신이 무얼 좋아하고 하고 싶은지 몰라서 떠도는 수만의 사람들에 비해 어쩌면 이들은 진짜 행복한 사람들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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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이 중요하다고 모두 말하지만, 수많은 진실과 거짓말 속에서 우리는 무엇이 진실인지 모를 때도 있고, 몰라도 될 때도 있고, 모르는 체하는 게 현명할 때도 있으며, 때로는 거짓말이 진실보다 위대해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
4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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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과 거짓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 보게 한 문장이다. 진실을 쫓는 것이 대체적으로 중요하지만, 살아보니 때때로 하얀 거짓말도 필요함을 이제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더불어 세상의 모든 진실을 알 필요는 없다는 생각도 해본다. 모르는 체하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그냥 진실을 모르는 게 나을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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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뭔가가 좋거나 싫은 것에 특별한 이유 따위는 없는지도 모른다. 그냥이다. 누가 좋거나 어떤 장소가 좋거나, 누구한테 잘해주고 싶거나, 그냥 그랬다는 말이 어쩌면 제일 정확한 표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9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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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를 좋아하거나 싫어할 때 우리는 그 이유를 찾으려 애를 쓴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특별한 이유가 없는 것이 정답일지도 모른다.
그럴 때 무언가로 설명할 수 없는 '그냥'이라는 답이 내놓을 수 있는 가장 최상의 정답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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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의 실체는 대부분 '남들이 그러니까. 남들도 다 그렇게 생각하니까.'이다. 그렇게 내실이 없거나 황당하다. 평범해지고자 하는 우리의 욕심은 오히려 개성을 스스로 말살한다. 자신이 뭘 좋아하고 어떤 모습으로 어떤 옷을 입을지도 모른 채. 그저 타인의 시선에 이상하게 보이지 않을 정도로 다니는 것에 익숙해지는 것이다.
17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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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 무서운 게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싶다. 군중심리로 인해 이유도 모른 채 짓밟히고 무시당하는 것. 그러다 스스로를 잃어버리는 것.
그런데 비단 이것은 특정 사람들만 겪는 현상은 아니다. 어떤 상황 사람들과 함께 있느냐에 따라 우리 모두 겪을 수 있는 일이다.
편견은 혼자 있을 때 생기지 않는다. 집단이 뭉치고 권력과 힘이 생기는 순간 발생한다.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면서 가장 피해야 할 것들 중 하나가 아닐까 싶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은 것이 또 '편견'이다.
경험에서, 무의식에서 발동되는 편견에서 자유로워지려면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해 보인다. 남들의 말과 행동에 흔들리지 않을 용기, 중심을 지키며 앞으로 나아갈 용기, 나를 잃어버리지 않을 용기를 통해 어쩌면 실체 없는 편견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이다.
가게를 다녀간 손님들의 이야기를 들여다보며 저자가 운영하는 바가 '고해성사의 장'이자 '대나무 숲'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누구나 편하게 들러 자신의 말 못 할 사연을 털어놓는 곳.
때론 스트레스를 풀며 즐겁게 이야기하는 장소가 되기도 하고, 또 어떨 때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속 깊은 이야기를 털어놓는 곳이기도 했다가, 반대로 손님들 덕에 가게 주인들이 힐링을 얻어 가는 곳이 바로 이 장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요즘은 친구나 가족 사이에도 쉽게 마음을 털어놓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럴 때 이렇게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장소가 하나쯤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로와 위안을 얻은 것 같은 기분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