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한 권의 책에서 시작되었다 - 정혜윤이 만난 매혹적인 독서가들
정혜윤 지음 / 푸른숲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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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고백하건대 이 책이 너무 좋진 않았다.
유려하게 번역되지 않은 번역소설을 읽는 듯 설익은 문장들, 겅중겅중 내 논리가 따라가지 못할 사고, 출몰하는 외국 시들에 (게다가 그것들을 그녀는 외우고 있는 듯하다!) 주눅이 들기도 했고, 두통이 일기도 했고, 조금은 지리멸렬해졌다.
이런저런 오류에도 불구하고, 재주 많은 사람을 지켜본다는 것을 즐거운 일이다.
게다가 그 사람의 책갈피가 내게 어떤 근성을 불러일으킬 때는 더더욱 ^^

그래서 너무 박하게 점수를 주지는 않기로 한다.
다음엔 좀더 조곤조곤하고 다정한 책으로 만나기를.

+ 그리고 이 책의 표지는 매력적이다. 저자의 미모에 기댄다는 불순한 의도가 없지 않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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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
다니엘 글라타우어 지음, 김라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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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라는 것이 꼭 보고 듣고 말하고, 만져야 한다는 건 이제 틀린 말인지도 모르겠다.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를 다 읽고 책을 읽은 후 가슴 한구석에 어떤 기시감이 불을 밝혔다.
사랑 후에 남는 것, 육체의 언어가 휘발된 자리에 남는 것은 말/텍스트가 아닐까.
행간을 더듬고 그 사이에 깃든 숨결을 감지해내고, 그 온기를 오래도록 느끼기 위해 만지작거린다.
이 책이 메신저가 아닌 이제는 오히려 고전적으로 느껴지는 이메일로 씌어졌다는 건 다행이다. 메신저의 경쾌함과 재빠름에는 글자들 사이에서 전전긍긍하는 간절함과 섬세함을 찾기란 어려울 테니까.

발랄하고 어여쁜 에미, 신중하고 따뜻한 레오. 둘의 감정선을 따라가다보면 어느새 그 물결에 함께 파도치고 있는 내 마음을 발견하게 된다. 말의 힘이란 그토록 센 것이다.
사람들의 마음은 의외로 쉽게 연결되는 것 같다.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우리도 이렇게 이곳에서 만나 밑줄을 치고 말을 건네보는 것을. 하물며 어느 날 문득 에미와 레오에게 찾아온 기적 같은 만남에 손 내밀어보고 싶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을까? :-)
이상 기온에 달아오른 봄밤, 꽃 향기에 취해 누군가와 덜컥 사랑에 빠지고픈 기분이라면, 이 멜랑콜리한 소설을 한번 읽어봐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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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는 독서 - 21세기 일본 베스트셀러의 6가지 유형을 분석하다!
사이토 미나코 지음, 김성민 옮김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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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관한 책이 유행이다.
책에 관한 소설(<책 도둑> <바람의 그림자> <꿈꾸는 책들의 도시> <책벌레> <열세번째 이야기>)부터, 독서일기(<장정일의 독서일기> <책일기, 책읽기> 등등), 심지어 독서법(<책을 읽는 방법>)까지. 열성 독자는 책에 관해서라면 무엇이든 알고 싶어한다. 심지어 ** 출판사 편집매뉴얼까지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세상이 아닌가.
<취미는 독서> 역시 책 마니아에게 어필할 요소를 갖춘 책이다. 이 책은 다른 무엇도 아닌 '베스트셀러'를 해부한다. 그것도 아주 낱낱이.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 책이 분석하는 베스트셀러가 우리나라 베스트셀러가 아닌 일본 베스트셀러라는 것이다. 물론 일본의 베스트셀러에 오른 책들 중 우리나라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책들도 꽤 되기 때문에 간간히 아는 책들이 나와 재미는 배가 된다. 그러니까, 굳이 이 책이 다루는 책들을 모르더라도 그렇게 재미가 없는 책은 아니라는 얘기다.
그런데 그 분석/해부라는 것이 책을 쓰거나 만든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참 쓰라릴 만큼 신랄하고 조롱조다. 그렇다고 지은이가 베스트셀러를 우습게 보는 사람인가 하면 그런 것도 아니다. 무엇보다 이 책이 나오게 된 데는 지은이가 <월간백과>에 연재한, '베스트셀러 읽기 대행'을 하고 쓴 글이다. 지은이는 베스트셀러를 읽지도 않고 경멸하거나 우습게 보는 이들을 준엄하게 꾸짖는다. 소위 '먹물'이라는 이들이 베스트셀러의 부박함을 두고 출판계에 대해 비분강개하는데, 지은이는 이들에게 정신 차리라고 일갈한다. 애초에 책을 읽는 이들은 소수에 지나지 않으며, 출판계를 지탱해주는 이들은 베스트셀러를 읽는 '착한 독자'라는 것이 이 책의 설명.
이런저런 구구한 설명은 덮어두자. 다만, 이 책의 지은이의 설명이 꽤나 일리가 있다는 것은 이야기하고 싶다. 냉소적인 익살에 낄낄대지만 어느새 고개를 주억거리게 된다. 책을 기획/편집하는 사람들은 한번쯤 읽어보는 게 어떨까? 이 책을 일종의 매뉴얼로 활용하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베스트셀러의 사회학 비스무레한 건 맛볼 수 있을 터이다. 하지만 이 책은 무엇보다도 귀여운 독서 편력기다. 이름을 걸고 연재를 하는 글임에도, 눈치는 요만큼도 보지 않고 옳(다고 믿는)은 소리를 따박따박해대는. 그러니까 독서일기를 좋아하는 열성 독자들이 읽어도 재밌는 책이 될 것이다. 괜히 이 책이 나온 출판사 이름에 겁먹지 말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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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선 1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2
장 크리스토프 그랑제 지음, 이세욱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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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내게 장 크리스토프 그랑제라는 작가는 재미 하나만큼은 보장해주는 작가다. <돌의 집회>에서 시작된 독서는 <늑대의 제국>과 <크림슨 리버>를 거쳐 <검은 선>까지 오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최고로 꼽고 싶었던 작품은 많은 사람들이 엔딩 때문에 높은 점수를 주지 않는 <돌의 집회>. 하지만 정녕 푹 빠져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을 만큼 읽는 맛이 끝내줬던 소설이라 결말 부분이 다소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접고 들어가줄 수 있다 ^^; (게다가 그 설정이 아주 말이 안 되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요 --;)
<검은 선>을 읽고 난 느낌은, 그랑제의 펜이 좀더 무거워졌구나, 이다. 현란한 액션과 하드보일드한 대사를 날려주며 독자를 정신없이 몰아가던 그가 재미 그 이상의 것을 추구하기 시작한 듯하다. 악의 기원을 밝히는 3부작 중 첫번째 작품이라니, 소설이라는 장치를 통해 악에 관한 탐사 기사라도 쓸 계획인 것인가! 어쨌든 첫 시도는 성공한 듯하다. 여전히 군더더기 하나 없는 전개와 묘사, 발품을 아끼지 않은 취재가 돋보인다. 한풀 꺾이는 듯하다 막판에 몰아쳐주는 맛이 굿. 이쯤에서 살짝 긴장을 풀겠군 예상하고 갑자기 속력을 높여 단숨에 끝까지 이르게 한다.
그랑제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의 내공이 깊어진 것에 반가움과 함께 안도를 느낄 것이다. 그에게 호의적이지 않았던 독자라면 이 작품을 읽고 생각을 바꾸게 될지도. 그랑제가 꽤 괜찮은, 아니 정말 좋은 스릴러 작가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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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긋는 남자 - 양장본
카롤린 봉그랑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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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렇게 매혹적인 책, <밑줄 긋는 남자>를 읽었다. 
 
 이 책의 주인공은 25살 먹은 콩스탕스라는 처녀이다. 이쯤에서 나는 이 책이 레몽 장의 <책 읽어주는 여자>의 패러디라는 것을 눈치챈다. 레몽 장의 소설에서도 주인공의 이름이 콩스탕스,  정확히 말하자면 마리 콩스탕스인 것이다. 콩스탕스는 열렬한 사랑에 빠져있다. 그는 그 사랑을 주체하지 못해 그의 사진을 사들이고, 그의 책을 읽다가 잠이 들곤 해서 가슴 위에는 직각의 붉은 자국이 떠나질 않는다. 그녀가 사랑하는 것은 다름 아닌 소설가 로맹 가리. 에밀 아자르라는 필명 외에도 샤탕 보가트, 포스코 시니발디라는 필명으로 총 31권의 책을 발표한 이 작가의 책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다 읽어치우기 아까워서 - 로맹 가리는 이미 죽은지 23년이나 되었으니 그럴밖에 - 꾹 참고 읽지 않을 정도이다. 그런 콩스탕스가 도서관으로 나들이를 간다. 대출 카드를 만들고, 세 권의 책을 대출하고, 그 중 한 권인 폴리냑의 <오렌지 빛>을 읽다 낙서 하나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콩스탕스는 누군가 끄적인 낙서와 밑줄친 텍스트를 따라 미지의 인물과 대화하고 결국엔 사랑에 빠지고야 만다.

스포일러 따위는 되고 싶지 않기에 - 게다가 이 책은 정말 근사하다! 꼭 읽어야 한다 - 이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되는지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으련다. 다만, 이 책을 읽는 내내 마음 한 구석이 저릿했다는 것을 고백하고 싶다. 그렇게 나는, 또 당신은, 우리들은 대답 없는 메아리만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랑이라는 것은 그것이 아무리 고매한 그 무엇, 손에 잡을 수 없는, 새장에 가두어 버리면 비둘기로 변해버리고 마는 파랑새 같은 것일지라도 눈을 맞추고, 목소리를 듣고, 손을 잡고, 서로의 체온을 느껴야하는 살아 날뛰는 감정이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다.
나도, 내가 그은 밑줄을 남긴다.
 

 사실 나는 성적 매력이 있다거나, 얼굴을 덮어버릴 만큼 커다란 눈, 남미 여자 같은 몸을 지닌 그런 여자는 아니다.

 둘이 사는 삶에 행복한 게 있다면, 그건 메아리가 있다는 점이리라.

 "잘 된 일이야. 이렇게 까칠하고 못생긴 얼굴을 누구에게 보여주겠어? 남자가 없는 게 백 번 낫고말고."

 나는 오후 내내 꽃 냄새를 맡았고, 꽃병을 세 번 바꿔 주었으며, 꽃이 오래가도록 물에 아스피린 정제를 한 알 넣어주기도 했다. 

 꽃이란, 그토록 연약한 것이다. 

 자기에게 어떤 결함이 있더라도 나한테 와서 직접 말하는 편이 더 간단하지 않을까?  

 대화 속에서 그는 살아 숨쉬었다. 

 나는 누군가를 위해 존재하고 있었다. 한 마디로, 나는 존재하고 있었다.

 그는 더할 나위 없이 부드럽고, 은근하면서도 자상하고 너그러우며, 인생을 사랑하고 정신적인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 그것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가져다 주지 않는다.

 그러나 사랑하는 일이 다른 뭔가를 가져다 주리라고 기대해서는 안된다. 사랑의 고전적인 오류는 거기에서 싹트는 것이다.

 내 삶이 바로 그랬다. 고통스러운 고독의 시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고 헤쳐 나가야만 할 시간이었다.

 자신이 모르는 사람을 잊기란 그토록 어려운 것이다.

 나 역시 외돌토리예요.

 나의 밤과 낮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요.

 뭔지도 모르는 어떤 것을 구실로 당장에 모든 것을 탕진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당신이 오지 않았기 때문에 ......

 '이제부턴 오로지 당신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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