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 긋는 남자 - 양장본
카롤린 봉그랑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이렇게 매혹적인 책, <밑줄 긋는 남자>를 읽었다. 
 
 이 책의 주인공은 25살 먹은 콩스탕스라는 처녀이다. 이쯤에서 나는 이 책이 레몽 장의 <책 읽어주는 여자>의 패러디라는 것을 눈치챈다. 레몽 장의 소설에서도 주인공의 이름이 콩스탕스,  정확히 말하자면 마리 콩스탕스인 것이다. 콩스탕스는 열렬한 사랑에 빠져있다. 그는 그 사랑을 주체하지 못해 그의 사진을 사들이고, 그의 책을 읽다가 잠이 들곤 해서 가슴 위에는 직각의 붉은 자국이 떠나질 않는다. 그녀가 사랑하는 것은 다름 아닌 소설가 로맹 가리. 에밀 아자르라는 필명 외에도 샤탕 보가트, 포스코 시니발디라는 필명으로 총 31권의 책을 발표한 이 작가의 책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다 읽어치우기 아까워서 - 로맹 가리는 이미 죽은지 23년이나 되었으니 그럴밖에 - 꾹 참고 읽지 않을 정도이다. 그런 콩스탕스가 도서관으로 나들이를 간다. 대출 카드를 만들고, 세 권의 책을 대출하고, 그 중 한 권인 폴리냑의 <오렌지 빛>을 읽다 낙서 하나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콩스탕스는 누군가 끄적인 낙서와 밑줄친 텍스트를 따라 미지의 인물과 대화하고 결국엔 사랑에 빠지고야 만다.

스포일러 따위는 되고 싶지 않기에 - 게다가 이 책은 정말 근사하다! 꼭 읽어야 한다 - 이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되는지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으련다. 다만, 이 책을 읽는 내내 마음 한 구석이 저릿했다는 것을 고백하고 싶다. 그렇게 나는, 또 당신은, 우리들은 대답 없는 메아리만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랑이라는 것은 그것이 아무리 고매한 그 무엇, 손에 잡을 수 없는, 새장에 가두어 버리면 비둘기로 변해버리고 마는 파랑새 같은 것일지라도 눈을 맞추고, 목소리를 듣고, 손을 잡고, 서로의 체온을 느껴야하는 살아 날뛰는 감정이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다.
나도, 내가 그은 밑줄을 남긴다.
 

 사실 나는 성적 매력이 있다거나, 얼굴을 덮어버릴 만큼 커다란 눈, 남미 여자 같은 몸을 지닌 그런 여자는 아니다.

 둘이 사는 삶에 행복한 게 있다면, 그건 메아리가 있다는 점이리라.

 "잘 된 일이야. 이렇게 까칠하고 못생긴 얼굴을 누구에게 보여주겠어? 남자가 없는 게 백 번 낫고말고."

 나는 오후 내내 꽃 냄새를 맡았고, 꽃병을 세 번 바꿔 주었으며, 꽃이 오래가도록 물에 아스피린 정제를 한 알 넣어주기도 했다. 

 꽃이란, 그토록 연약한 것이다. 

 자기에게 어떤 결함이 있더라도 나한테 와서 직접 말하는 편이 더 간단하지 않을까?  

 대화 속에서 그는 살아 숨쉬었다. 

 나는 누군가를 위해 존재하고 있었다. 한 마디로, 나는 존재하고 있었다.

 그는 더할 나위 없이 부드럽고, 은근하면서도 자상하고 너그러우며, 인생을 사랑하고 정신적인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 그것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가져다 주지 않는다.

 그러나 사랑하는 일이 다른 뭔가를 가져다 주리라고 기대해서는 안된다. 사랑의 고전적인 오류는 거기에서 싹트는 것이다.

 내 삶이 바로 그랬다. 고통스러운 고독의 시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고 헤쳐 나가야만 할 시간이었다.

 자신이 모르는 사람을 잊기란 그토록 어려운 것이다.

 나 역시 외돌토리예요.

 나의 밤과 낮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요.

 뭔지도 모르는 어떤 것을 구실로 당장에 모든 것을 탕진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당신이 오지 않았기 때문에 ......

 '이제부턴 오로지 당신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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