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바다
코다마 유키 지음, 이정원 옮김 / 애니북스 / 2009년 8월
평점 :
품절


글쎄. 순정만화라고 해야 할까. 순정만화의 대척점에 서 있는 일련의 만화들을 생각하면 그런건가, 싶으면서도 선뜻 그 용어를 이 만화에 뒤집어씌우고 싶진 않다.
별 기대 없이 주말이 시작되는 금요일 저녁에 침대 위를 뒹굴며 읽다가 첫번째 에피소드에서 몸을 긴장시켰다. 생각해보면, 인어라니 말도 안 되는 판타지, 라고 피식거리기에는 이미 많은 만화들이 환상을 담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도 왜 애초에 그런 선입견으로 심드렁하게 다가갔는지. 난 참 재미없는 인간이 되어가고 있구나. 하아.
커다란 뿌듯함은 없어도 깔끔한 그림체와 작가의 고운(!) 성정을 느끼게끔 하는 몇몇 부분들이 참 좋았다. 언제나 이런 이야기들을 만나고 나면 내 나이가, 내 정서가 아쉬워진다. 좀더 휘둘리고 침잠하고 싶은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통역사
수키 김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05년 9월
평점 :
품절


꽤 오래전에 누군가에게 받은 책이다. 지나가듯 이 책이 재밌다면서요? 했더니 네, 재밌더라고요 하고 건네받은 책. 그래놓고 몇 년 동안이나 책장 신세를 지게 했다. 수키 김, 아마 '숙희'라는 이름을 염두에 두고 지은 이름이 아닐까.

각설하고, 그냥저냥 나쁘지 않게 읽은 소설이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중반까지는 썩 재밌지 않았고(재미없다는 데 가까웠고), 중반 이후부터는 탄력이 붙었다.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미스터리 물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책을 다 읽고야 아, 미스터리 물이라 황금가지에서 나온 건가? 라는 생각을 했는데... 생각을 해볼수록 또 정통 미스터리라고 하기엔 사설이 굉장히 길고 뭔가 처진다.
아이덴티티 문제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이민 1.5 내지는 2세대의 고민과 한국 이민사회와 미국에서 살아가는 동양 여성, 그리고 한 여자로서의 삶과 가족의 이야기를 무리 없이 풀어나갔다는 데서는 동감한다. 그런데 말이 너무 많다... 그리고 그게 반복적이다. 좋은 이야기도 자꾸 하면 잔소리처럼 들리는 것처럼, 내가 편집자라면 군더더기를 좀 빼라고 했을 것 같다. 자의식 과잉으로 보이니까. 소설 전반을 지배하는 늦가을의 뉴욕 그리고 몬토크의 비와 바람 때문이었을까, 주절대는 이야기의 미로를 빠져나온 듯한 피로가 느껴졌다.

<통역사>의 표지는 원서 표지에 한글 제목을 그대로 얹은 디자인이다. 표지의 저 여자, 60-70년대 한국중고등학교 교복을 입은, 굳은 표정을 한 단발머리 소녀다. 사실 소설의 내용과 거의 상관이 없는 그림이다. 타박을 하자면, 난 저런 식으로 동양/한국의 클리셰를 소설 표지에 갖다붙이는 외국 출판사의 관행이 굉장히 마음에 안 든다. 기억이 맞다면 김영하의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의 프랑스어판 표지의 사진은 각시탈이었다 -_-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함께 있을 수 있다면 1
안나 가발다 지음, 이세욱 옮김 / 문학세계사 / 2006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부드럽게 넘어가는 책장과는 달리 마음은 계속 비비 꼬이고 있었다. 아마 '옮긴이의 말'을 읽지 않았다면 별을 두 개 주었을지 모르겠다. 소외된 자들에게 던지는 따뜻한 눈길. 소설을 한 마디로 요약하라면 딱 요거겠는데, 딱히 마음이 깊이 공감이 가 나온 문구는 또 아니니 이것 참 난감하다.
가장 큰 불만이라면 <함께 있을 수 있다면>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에 대해 작가의 서술 능력이 부족하다는 느낌? 이럴 때 필요한 단어가 있으니, 이 소설에는 '핍진함'이 부족하다. 삐그덕거리고 어딘가 고장난 사람들이 등장하는데, 그것마저 어여쁘게 낭만적이다. 그렇다면, 이 소설을 아예 기분 좋은 판타지로 잘 만들었다면 어땠을까? 마치 영화 <아멜리에>처럼.
가발다의 책이 프랑스에서 그토록 많이 팔리는 이유가 무엇일까, 오래 생각하게 될 것 같다. 대충 그들이 바라는 정치적 올바름/따스함/프랑스적임과는 합치하는 것 같은데, 나머지는 무엇일까.
뭔가가 빠진, 비싼 요리를 먹은 느낌이다. 여전히 그 부족한 무엇의 자리에 끼워맞출 단어는 '핍진함'뿐이고. 이래저래 섭섭한 책이다. 가발다와 내가 궁합이 맞질 않거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윤상 6집 - 그땐 몰랐던 일들
윤상 노래 / 지니(genie)뮤직 / 2009년 7월
평점 :
품절


벌써 윤상이 데뷔한 지 이십 년이 다 되어간다. 1990년 겨울에 데뷔했으니 세월이 참 빠르다. 신해철과의 프로젝트 '노 댄스' 및 이런저런 작업을 감안하더라도 이십 년 동안 7개의 음반을 냈으니(2집은 part1과 part2로 나눠 냈으니) 과작인 셈이다. 팬으로서 아쉬운 건 어쩔 수 없다. (게다가 왜 3, 4집은 절판인 거? 명반 중의 명반이구만) 

이십 년 동안 이렇게 은둔하지 않으면서 대중과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며 일관된 음악활동을 하는 뮤지션을 찾아보기도 힘들다. 적어도 한국에서는. 조금이라도 인기를 얻으면 예능 프로그램에 나가 본업이 무엇인지를 잊게 만드는 몇몇을 보면 (한때는 나름 '언더'그라운드에서 활동한답시고 어깨에 힘깨나 주던 이들 말이지) 윤상은 차라리 구도자처럼 보인다.   

6집 앨범을 한번 듣고는 투덜거렸다. 이걸 보여주려고 이렇게 미루고 미뤘나? 출퇴근 길에 반복해 들으면서는 내 입이 방정이다, 반성한다. 뭔가 굉장히 미니멀해지고 안정된 느낌이지만, 정수만을 뽑아낸 느낌이다. 3집 때 보여주었던 불안정함에서 기인한 듯한 애틋함과 멜랑콜리함을 기대하는 이들에게는 다소 담백하고 단순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 앨범에서 윤상이 보여주고 싶은 건 아마도 순간의 감상에서 비롯된 감수성이 아닌 정제된 사운드와 절제미인 듯싶다. (아주 팬심히 솟구쳐오르는구나 허;)  

이제라도 6집을 선보인 윤상에게 감사를. 언제나 그렇게 그 자리에서 좋은 음악을 만들어주시기를. 그리고 어서 공부 마치시고 돌아와 디제이와 청취자로 다시 만난다면 정말 소원이 없겠다. ^^


댓글(1)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홀림 2009-07-21 14: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앨범 사려다가, 리뷰가 2개나 달려 있어서 반가운 마음에 읽게 되었습니다.
상님 예전에 시트콤에서 연기도 하시고, 예능에도 출연하시고 그랬는데.....
그니깐, 음~~, 조심스럽습니다만, ^^;; 예능에 출연하는 타 뮤지션에 대한 비판은 좀 거시기하단 생각이어서, 예능 쪽에 진출한 뮤지션 원조나 다름없거든요, 우리 상님이.^^
물론, 전, 그 때의 상님도 사랑합니다.ㅎㅎㅎ
여하튼, 상님은 자랑스러운 우리의 뮤지션입니다.^^
 
드링킹
캐럴라인 냅 지음, 고정아 옮김 / 나무처럼(알펍) / 2009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굳이 알코올중독자가 아니더라도, 이 지긋지긋한 중독의 이야기에 공감하리라. 이 책은 중독, 그리고 채워지지 않는 내면의 허기에 관한 처절하고도 아름다운 고백이다. 상처 입은 사람의 이야기는 역설적이게도 매혹적이고 아름답다. 그 아픔이 크고 깊을수록, 그 고백이 솔직할수록. 알코올 냄새가 코끝에 진동할 정도로 나를 정신없이 몰아쳐댄 책이었지만, 많은 위안을 받았다. 아, 이런 글쟁이 덕분에 책을 읽는다!
읽는 내내 캐럴라인 냅에 대한 깊은 공감과, 그녀 위에 겹쳐 보이는 나 자신의 모습 때문에 마음이 아팠다. 무엇이 우리를 알코올에 잠식 당하게 하는가. 우선은 내면의 공허를 메우지 않고는, 내 안의 상처를 똑바로 직시하지 않고는 트라우마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캐럴라인 냅은 너무 오랜 세월이 걸려 값 비싼 대가를 치르고 그 답을 얻어냈다. 이 책을, 알코올중독자가 아니더라도 한번쯤은 읽어보길 바란다. 사랑과 소통을 열망하는 여자라면 더더욱. (결국 우리 모두가 되겠지)
 
불행히도 캐럴라인 냅은 이 책을 낸 지 7년 만인 2003년 폐암으로 사망했다. 절망과 맞서 싸우던 그녀가 마침내 마음의 평안을 되찾았기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