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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우리 집의 정권이 교체되는 것 같다. 돌아가는 정세를 보아하니 아내는 상왕으로 물러나는 듯하고, 중학교 2학년 딸내미가 실세로 군림하는 형국이다. 
며칠 전, 기념일을 챙기는 것에 젬병인 나는 딸내미가 아내의 생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려주기에 자식 키우는 보람이 이런 것이구나 하고 감탄했었다. 그리고 이틀 전에 다시 알려달라고 당부했다. 그러나 어젯밤에 딸내미는 아내의 생일을 맞아 편지를 쓰라고 내게 강요했다. 나는 나만의 축하하는 방식이 있고 따로 선물을 준비하니 그런 것은 강요하지 말라고 항변했다. 그러나 딸내미는 편지 쓰기를 계속 주장할 뿐만 아니라 ‘몇 줄’로 짧게 쓰지 말고 편지지를 꽉꽉 채워서 빼곡하게 쓰란다. 나는 서간문에 익숙지 않고, 민망해서 도저히 못 쓰겠다고 항의했더니 급기야 앞으로 나와는 대화도 하지 않겠다고 엄포를 한다. 할 수 없이 알겠다면서 편지지를 부탁했는데 달랑 한 장만 가져온다. 나는 실수가 잦으니 여분으로 두어 장 더 가져오라고 했다. 그러나 딸내미는 일단 컴퓨터로 초고를 작성한 다음 정성을 다해서 편지지에 옮겨 쓰면 되지 않느냐며 거절한다.
페이스북을 뒤져서 남편한테 받은 편지 때문에 감동한 분의 편지와 카드의 사진과, 한 분에게 문의를 한 결과를 모티브삼아 간신히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를 작성하고서야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딸아이라는 전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유형의 여자에게 적응하는 일이 녹록치 않을 것이라는 예감이 지배한 탓인지 꿈자리가 그리 상큼하지는 않았다.
오늘 아침에는 현격하게 정권교체의 징조를 몸소 체험한 날이다. 식사를 하는데 딸아이가 평소처럼 매우 큰 소리의 방귀를 시연했고 나는 ‘식사 예절’에 어긋난다고 점잖게 조언을 했는데 아내는 ‘딸아이의 방귀는 당신의 것과 달리 전혀 냄새가 없다’며 일갈을 한 다음 딸아이를 향해서 계속 시원하게 방귀를 보시라고 힘을 실어준다. 
식사를 마치고 욕실로 향했다. 칫솔에 ‘아빠’라고 쓰여 있는 것을 발견했고 나의 뒤통수를 대고 딸아이는 ‘사용 후 반드시 제자리에 꽂아두어야 한다’고 하명한다. 그 말을 들은 아내는 ‘아이 스트레스 받지 않도록 말을 잘 듣도록 해라’며 상왕으로서 주상으로 새로이 등극한 딸아이의 뒤를 봐주었다.
옷을 차려입고 출근을 하려는데 딸아이는 욕실을 친히 확인하여 자신의 지시사항이 잘 이행되었는지 확인했을 뿐만 아니라 조용히 서재로 들어와 ‘나지막하지만 단호하게’ 어제 말한 아내에게 쓴 편지를 달란다. 
“구관이 명관이다”라는 말이 절로 생각나고, 새로운 정권의 강도 높은 ‘국민 개조 정책’에 적응할 생각을 하니 마음이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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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외식을 나가려는데 아내의 슬리퍼가 부럽다. 낡아서 꼬질꼬질하고 뒷 굽이 나지막한 나의 것에 비해 아내의 슬리퍼는 한눈에 보기에도 고급스러운 외관에다 높으면서도 견고한 굽 덕분에 키가 작은 사람의 단점을 보완해준다. 너무 딱딱하지도 푹신푹신하지도 않은 착화감 또한 훌륭해서 아내가 좋아하는 듯하다. 
그래서 생각난 김에, 집에 있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학교에서 사용하는 슬리퍼가 이상한 방향으로 닳아서 신을 때마다 발등이 아프다고 불평을 했다. 그러니 아내가 신는 같은 브랜드의 제품으로 사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랬더니 아내가 하는 말이 “왜 나랑 같이 산 슬리퍼인데 당신 것만 그렇게 빨리 낡아지느냐?”란다. 
직장에서 실내와 실외를 구분해서 별도의 슬리퍼를 사용하는 경우와 주야장천 한 켤레만 신는 경우가 어떻게 물리학적으로 비슷한 시기에 맞춰서 해지는지 따지지는 않았다. 그렇게 공격을 한다면 아내는 대뜸 ‘슬리퍼의 노화는 사용하는 슬리퍼의 개수가 문제가 아니고, 사용자의 보행 스타일 및 관리의 정도가 더 중요한 요인이다’라고 대응할 것이다. 급기야 ‘슬리퍼의 노후에 미치는 요인들에 대한 연구’ 심포지엄이 냉면집에서 개최될 것이다. 
주문한 냉면이 나오기 전에는 어느 정도 선방을 하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음식 앞에서도 냉정함을 잃지 않는 아내에 비해, 논쟁 따위보다는 냉면의 쫄깃한 면발의 유지가 훨씬 중요한 나는 급격히 무너질 게 뻔하다. 더구나 제3자로서 공정성을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로 여겨야 할 딸아이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엄마 편을 들 것이다.
앞으로의 뻔한 그림이 머릿속으로 그려지자, 위기에 빛을 발하는 나의 두뇌는 기가 막힌 꼼수를 떠올렸다. 아내에게 평등의 원리를 내세우면서 공세를 하는 것 대신에 딸아이에게 슬쩍 눈치를 주었다. ‘너는 엄마의 슬리퍼가 탐나지 않느냐?’ ‘너도 저 폼 나는 슬리퍼 갖고 싶지?’라는 메시지를 가득 담은 눈치 말이다.
딸아이는 아내와 혈맹으로 맺어진 우방국이지만 ‘팍스아내리카나’의 속국이라는 공통점은 가지고 있다. 나는 약소국이라는 동료의식에 호소를 했고 우리 가족의 안정된 미래에 대한 걱정 때문에 잠시 잠들고 있던 그녀의 ‘지름신 욕구’를 살짝 일깨워주었다. 나의 바람대로 딸아이의 입에서 “나도 하나 사줘”라는 말이 나오고야 말았다.
딸아이라는 잠재적인 적을 내 편으로 만들었고, 아내의 입장에서는 하나가 아닌 둘의 요구이니까 거절하기 힘들 테고 그 와중에 기지를 발휘해서 둘 중에 하나만 사도록 윤허한다면 나는 애초에 슬리퍼 이야기를 꺼낸 것은 바로 나라는 기득권을 앞세워 간단히 딸아이를 따돌리면 될 일이다.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아이들에게는 문방구에서 파는 삼디다스가 가장 적합하다. 
어쨌든 예상치 못한 우리들의 협공에 아내는 “어디 감히 벌 떼처럼 일어나느냐?”라는 호통을 내지른다. 민초들의 절실한 염원을 마치 민란으로 여기는 듯했다. 강력한 독재 정권을 상대로 한 기껏해야 낮과 곡괭이를 든 백성들의 난은 찻잔속의 태풍에 지나지 않았고 나와 딸아이와의 동맹은 단 30초 만에 막을 내렸다. 그뿐만 아니라 이미 대세가 넘어간 것을 간파한 딸아이는 ‘애초에 난 슬리퍼를 살 생각이 없었는데 아빠가 눈치를 주는 바람에’ 할 수 없이 수동적으로 동참할 뿐이었다고 말하는 비급한 변절자의 위용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비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는 속설처럼 그들은 잠시의 오해로 인한 불화를 전환 위기로 삼아 더욱 굳건한 동맹 관계를 확립했고 나는 큰 뜻을 품었다가 실패한 후유증으로 냉면집에서 서비스로 준 ‘요구르트’도 마시지 않고 집으로 돌아왔다.
서재에서 와신상담을 하고 있는 와중에 ‘꼬깔콘이 아니고 꼬깔콘과 비슷하게 생긴 과자와 오징어 비스무리하게 생긴 과자’를 사 오라는 아내의 지시에 그 정체불명의 과자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요구하지도 않고도 정확히 아내가 원했던 과자를 손에 건네주는 신공을 발휘했다. 반기를 들었다가 실패했다면 이 정도의 굴욕은 감수해야 하며, 소나기는 피해가야 한다는 게 나의 오랜 신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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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장을 보러 갔다. 집안일에 소홀해서 늘 미안하긴 한데 아내 혼자 장을 봐 올 때면 더욱 그렇다. 장을 보는 행위는 선사 시대로 치면 식구들을 위해서 사냥을 하는 가장의 거룩한 의무가 아닌가? 번잡한 대형 마트의 주차장도 그렇고 계산대에 줄을 서서 결제를 하는 과정도 불편해 장을 보는 행위는 다른 사람과 미묘한 경쟁의 요소까지 포함되어 있어서 가장으로서 해야 할 중요한 책무가 아닌가 싶다.
솔직히 아내 혼자 장을 보는 것을 지인들이 보기라도 한다면 대형 마트라는 험난한 생존의 세계에 연약한 아내를 혼자 보낸 무심하고 한심한 남편이라는 인상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걱정도 아내와 마트를 동행하는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는 것을 고백해야겠다. 카트를 몰고 이리저리 마트를 구경하다 보면 평소 그다지 좋다고 생각하지 않는 취미, 즉 사냥하는 사람을 이해할 것 같기도 하다. 다양한 물건이나 음식을 구경하고 장바구니에 담는 일은 꽤나 즐거운 일이면서도 거룩한 행위다.
딸아이가 좋아하는 초밥을 고르다가 옆에 있는 생선과 회가 진열되어 있는 것을 보았다. 우리 식구는 비린내가 나는 생선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데 이상하게 그날따라 영롱한 빛을 발하는 횟감에 눈길이 갔다. 다른 손질이나 준비가 필요 없이 그냥 포장만 뜯어서 먹기만 하면 되는 포장 회를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는데 희한하게도 아내의 눈에 그게 띈 모양이다.
그러나 회라는 음식이 딸아이의 열광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크고, 나도 회식 때문에 횟집을 가게 되더라도 회보다는 초고추장과 맛보이기 음식으로 배를 채우고 오는 스타일이라서 적극적으로 장바구니에 담자는 말을 못 꺼내고 있었다. 그런데 아내도 회를 눈여겨보더니 “한번 사볼까”라고 말하기에 익숙지 않은 먹거리에 대한 호기심도 채우고, 아내의 의견에 적극 동조하는 자상한 현대인의 모범적인 남편상도 실현할 겸 그러자고 흔쾌히 동의를 했다.
집으로 돌아와 사냥한 회를 먹는데 첫 번째 점을 먹자마자 우리 세 식구는 알아챘다. 대형 마트의 음식을 먹음직스럽게 진열하고 포장하는 기술이 생각보다 뛰어나다는 점과 앞으로는 이 먹거리를 어떻게 처리하느냐가 큰 이슈가 될 것이라는 예감 말이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리는 조용히 젓가락을 내려놓았고 회로 버린 식욕을 돋우게 해줄 대안을 찾기 시작했다.
마트에서 피 같은 돈을 주고 산 회의 처리에 있어서 나와 아내는 동상이몽을 꿈꾸었는데 아내는 주부가 가지는 일반적인 생각 즉 ‘쓸데없이 돈을 쓴 자책감’, ‘음식을 고루고루 먹지 않는 식구들에 대한 원망’, ‘버리지도 먹지도 못할 음식의 처리 방안에 대한 고심’을 했고 나는 내가 먼저 그 포장 회를 사자고 주장한 것이 아니라는 엄연한 사실을 무기 삼아 이 기회에 이 사태의 주범인 아내를 문책하고 일벌백계함으로서 가장의 권위와 지배력을 드높이고자 하는 속셈을 가졌다.
이런 문제에 있어서 화를 버럭 내는 것은 좋은 대응 전략이 아니라는 것을 이미 나는 그들과의 수많은 전투에서 체득한 바 있다. 그래서 조근조근 아내를 꾸짖었다. 현대의 현명한 소비자는 마트에 가기 전에 구매 목록을 미리 메모하는 등의 계획성 있는 쇼핑을 해야 하고, 마트에서 물건을 살 때, 특히 음식을 살 때는 가족 구성원의 식성을 미리 감안해야 하며, 더구나 회 같은 신선도가 생명인 먹거리를 살 때는 가정으로 가지고 가면 맛이 변할 수 도 있다는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사실, 즉 그 회를 사자고 선량한 소비 생활을 하는 남편을 꼬드긴 것은 당신이라고 재확인시켜줌으로써 이 모든 사단의 책임 소재가 아내에게 있음을 공식화했다.
나의 꾸짖음에 아내는 충분히 내가 예상한 해명과 책임 전가를 시도했고 나는 가볍게 아내의 해명을 기각했다. 웬일인지 딸아이도 내 의견을 좇아서 현명하지 못한 소비를 한 아내를 비난하기에 이르렀다. 딸아이는 다른 문제는 몰라도 금전적인 문제에 민감하며 매우 엄격하다. 딸은 우리 부부의 유일한 상속자이자 늙은 우리를 봉양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승리의 열매는 참으로 달콤해서 그날 저녁 식탁에서 나는 공깃밥을 무려 세 공기나 먹어치웠다. 다음 날은 토요일이었는데 늦잠을 잤고 전날 과식을 한 탓인지 더부룩한 배를 쓰다듬으며 주방으로 갔는데 뭐라 설명하기 곤란한 비릿하면서 식용을 억제하는 묘한 음식 냄새가 나를 에워싼다. 가스레인지를 보니 찌개의 종류인 것 같은데 냄새는 찌개가 아닌 미지의 음식이 막 완성되는 눈치다. 이윽고 아침 준비가 모두 되었고 우리 세 식구는 제자리에 착석했다. 그런데 아내는 조금 전에 내가 목격한 묘령의 음식을 오직 나를 위해서만 장만했다는 듯이 내 턱밑에 밀어준다. 
글이니까 하는 말이지만, 아내는 매우 뛰어난 요리가는 아니다. 장모님께서는 면을 대표하는 요리가 중의 한 명으로 명성을 떨친 분이라 유전자는 분명 요리가로서의 자질이 충분하겠지만 아내는 전업주부가 아닌 직장인이며, 우리 식구들이 음식을 매우 잘 먹는 스타일이 아니라 음식을 힘들게 한 보람을 느끼기 힘들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나와 딸아이의 책임이 커서 어떤 음식이든 불평을 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날 아침의 찌개는 군소리 없이 먹기에는 무리가 많았으며 그 양도 엄청났다. 훌륭한 요리가가 아닌 사람이 요리한 아방가르드한 음식을 조심스럽게 한 숟가락씩 떠먹는 나를 본 아내는 알 듯 모를 듯한 미소를 지어며 나를 빤히 본다. 그러고는 정체 모를 찌개의 정체를 알려준다. 어제 먹다 남은 비싼 회를 버리기 아까워서 찌개로 만들어보았다고 한다. 자기는 비린내 나는 음식이 싫고, 딸아이는 매운 음식을 못 먹으니 나 혼자 다 먹으란다. 



고통스러운 아침 시간이 끝나가고 아내는 내가 먹다 남긴 찌개를 신줏단지 모시듯이 소중히 거두더니 냉장고로 다시 넣는다. 그리고 “내가 수위를 표시해놨으니 아까운 찌개를 버릴 생각은 하지 마라”라는 충고도 잊지 않았다. 그날 저녁인가는 실험적인 그 음식을 참지 못하고 국물이 현격히 부족해 더는 먹기 어렵다고 조심스레 의견을 피력했는데 아내는 물을 더 넣고 끓이면 되니 그런 걱정일랑 말라고 한다. 



절망한 나는 포기하지 않고 “이 맛있는 음식을 나 혼자 먹기에는 너무 가슴이 아프다. 그러니 너희 둘도 같이 이 놀라운 음식을 먹고 건강해지자”라는 타협안을 제시했으나 아내와 딸에 의해서 간단히 기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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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작가가 되기로 했다 - 파워라이터 24인의 글쓰기 + 책쓰기
경향신문 문화부 외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5년 4월
평점 :
품절


더 이상 글쓰기는 작가의 전유물이 아니다. 책이나 신문 잡지 같은 전통적인 글쓰기의 터전이 아니더라도 글을 쓰고만 싶다면 누구나 블로그, SNS 등에서 작가가 될 수 있는 시대다.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는 시대라서 '글을 잘 쓰는 방법' 또한 작가의 독차지가 아닌 우리 모두의 고민이 되었다. 그래서 글쓰기 강좌, 글쓰기 방법론을 다룬 책이 인기를 모으고 있는데 <나는 작가가 되기로 했다>는 인문. 사회. 자연과학에서 두각을 나타낸 인기작가 즉 우리시대의 '파워 라이터' 24인의 글쓰기 방법론을 담았다는 점에서 다른 글쓰기 관련 책과 차별성을 확보한다.



시나 소설보다는 다양한 전공분야의 특수성과 독특함을 살려 자기만의 개성 있는 책으로 성공한 파워라이터들의 글쓰기 비법을 배워보자는 의도다. 강신주(철학자), 김두식(법학교수), 김종대(군사평론가), 박찬일(셰프. 음식칼럼리스트), 선대인(경제연구인), 신형철(문학평론가), 전중환(진화심리학자) 등의 면면만 봐도 이 책이 담으려고 노력한 다양성을 충분히 가늠할 수 있다.


파워라이터 24인이 알려주는 글쓰기 팁은 모호하거나 어렵지 않다. 직관적이며 실제적이다. 공부잘하는 친구의 비밀 노트를 훔쳐보는 것처럼 누구나 어렵지 않게 적용가능한 팁을 선사한다. 애초부터 전문적인 글쓰기 교육을 받았다든지, 글쓰기에 대한 재능이 특출한 것이 아니고 오롯이 스스로가 글쓰기라는 전투에서 습득한, 노하우로 성공한 글쟁이가 된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렇다.


파워라이터들의 전공이나 직업이 다양한 만큼 그들이 보유한 글쓰기 노하우도 다양하다. 각자가 독특한 글쓰기 노하우를 갖추고 있는데 그들에게 발견되는 공통적인 분모를 찾는다면 다음 9가지로 요약할 수 있겠다.




첫째, 글쟁이가 되려면 '비만'과 '변비'를 경계해야 한다.

무슨 말인고 하니 독서가 아무리 좋다고 한들 읽기만 하고 '배설'을 하지 않으면 글쓰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배설'이라 함은 독서를 하고 나서 글을 쓰는 것을 말한다. 그래야 글쟁이가 될 수 있다. 일기도 좋고, 개인 블로그도 좋다. 독서가 숨을 들이쉬는 행위라면 글쓰기는 숨을 내쉬는 행위다. 숨을 들이키기만 하고 내쉬지 않으면 안 된다.


둘째, 글쟁이는 곧 '메모하는 사람'이 이어야 한다.  

글쟁이가 가지고 있는 '머피의 법칙'이 있는데 중요한 아이디어는 꼭 운전을 하거나, 일을 하거나, 하다 못해 화장실에서 볼일을 볼 때 떠오른다는 것이다. 수첩을 휴대하기 번거롭다면 스마트폰의 메모기능을 이용하더라도 불현듯 떠오른 아이디어는 꼭 기록을 해야 한다. 글쓰기 아이디어는 마치 여름날의 소나기와 같아서 예고 없이 찾아와서 불현듯 사라지기 때문이다.


셋째, 고통스럽게 쓰되, 쉽게 읽혀야 한다.

고통스럽게 글을 쓴다는 것은 여러 가지 상황을 의미한다. 한 권의 저서를 쓰기 위해서 수백 권의 관련서를 탐독한다든지, 도서관에서 몇 달을 죽치고 앉아서 자료를 수집한다든지, 수없이 퇴고를 반복한다든지 등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누구라도 쉽게 읽을 수 있는 글이어야 한다. 물론 자신의 글을 이해할 수 있는 연령을 한 살 낮추기 위해서는 엄청난 고통이 뒤따른다. 작가는 모름지기 노인과 어린아이의 입맛을 모두 만족시키는 요리사가 되어야 한다. 나라와 취향을 넘나드는 퓨전 요리사면 더욱 좋겠다. 그래야 제대로 된 글쟁이다.


넷째, 자료조사에 가급적 많은 시간을 투자해라.

어떤 글이고 간에 자신의 경험이 밑바탕 되지 않고 머릿속의 상상만으로 쓰기는 힘들다. 그런 글들은 책으로 나온다고 해도 독자들의 공감을 얻기 힘들다. 자신의 경험이 부족하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자료를 수집해야 한다. 조정래의 대하소설은 철저한 자료조사에 의한 팩트에 근거를 두고 있다. 답사여행과 자료수집에 가장 철저한 작가 중의 한 명인 그는 '태백산맥'이 역사적 사실에 기초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지금의 성공시대는 이뤄낼 수 없었을 것이라고 자인한 바 있다. 글쓰기의 8팔은 자료수집이 차지해야 한다.


다섯째, 자신만의 색깔이 중요하다.

SNS가 일반인들의 주된 글쓰기 창구라서 생긴 현상이겠으나 패션뿐만 아니라 글쓰기에도 트렌드가 있다고 투덜거리는 사람을 봤다. 무슨 말인고 하니 모두들 문투가 비슷하고, 사용하는 어휘가 비슷해서 분명 수백 명의 다른 사람의 글인데 읽고 나면 한 사람이 쓴 글인 줄 착각하겠더라는 이야기다. 우리 눈에는 똑같이 생긴 수천 마리의 야생 영양 떼가 귀신같이 자신의 새끼를 알아보는 것처럼, 좋은 작가는 설사 이름을 가리더라도 자신의 글임을 알아보는 독자가 많아야 한다. 글쟁이는 모름지기 자신만의 독특한 문투와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방식을 끊임없이 찾고 발전시켜야 한다. 이 과정 속에서 만나는 타인의 불평이나 비판을 참아내야 한다.


여섯 번째, 자신의 책의 독자를 3천명쯤으로 설정해보자.

적어도 책을 내는 작가라면 누구나 베스트셀러 즉 수만 또는 수십만 명의 독자를 생각한다. 딱히 욕심이 있어서가 아니고 글을 쓰는 사람이 다수의 독자를 꿈꾸는 것이 인지상정이고 잘못된 생각도 아니다. 다만 너무 소수나 다수의 독자가 아닌 3천명쯤의 독자가 자신의 책을 읽는다고 생각하면 독자들의 반응이 계산이 된다고 한다. 투수가 본격적으로 게임에 나가기 전에 가상의 타자를 세워두고 피칭 연습을 하듯이 작가도 반응이 어느 정도 계산 가능한 숫자의 독자를 수를 설정한다면 좀 더 흥미진진한 글쓰기 작업이 되리라. 적절한 비교인지는 가늠이 안 되지만 서재 장서의 수를 특정 한다면 더욱 독서에 도움이 된다고 믿는다. 가령 무턱대고 책을 사고 무더기로 쌓아두기보다는 500권정도로 자신의 장서를 정하고 한 권을 새로 사면 자신의 장서 중에서 한 권을 빼내는 식이다. 이런 식이면 책 한 권을 사더라도 좀 더 신중해지기 마련이고 더욱 효율적인 독서가 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일곱 번째, 글쟁이에게는 스승이 필요하다.

스승이라고 해서 학교 선생님을 반드시 의미하지는 않는다. 책을 읽다보면 글솜씨가 너무 훌륭해서 내 것으로 훔치고 싶은 글을 만나게 된다. 또 한 편이라도 이런 글을 쓸 수만 있다면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 싶은 작가를 만난다면 그가 바로 글쟁이에게는 롤모델이요 스승이다. 산 자일수도 있고 죽은 자일수도 있다. 그러나 생사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들이 남긴 가장 훌륭한 교과서 즉 저서를 반복해서 읽고 흉내 낸다면 그들을 스승으로 모시고 있는 것이나 진배 없다. 자신이 감탄한 문장을 흉내 내 보고 자신의 것으로 조금씩 소화시키다 보면 글쓰기 실력도 비약적으로 발전할 수밖에 없다. 글쓰기의 왕도가 있다면 이 방법이 아닐까 생각한다.


여덟 번째, 당신이 어떤 책을 집필하겠다고 작정을 했으면 '서문'을 먼저 써 볼 것을 권한다.

실제로 4권의 졸저를 낸 나의 경험은 이렇다. 책을 집필할 때 가장 큰 난제는 '서문'이었다. 서문 또는 머리말이란 한마디로 '당신은 왜 이 책을 썼나요?'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희한하게도 원고를 마무리하고서도 서문을 쓰는 것이 그렇게 어렵더라는 이야기다. 필자 자신이 왜 이 책을 쓰려고 하는지 이유를 스스로 정리해야만 좋은 글이 나올 수 있다. 


마지막으로, 당연한 것이겠지만 글쟁이는 다독가이어야 한다.

글이라는 집을 지을 때 아무리 재료가 풍부하고, 집을 설계하는 재능이 뛰어나다고 하더라도 독서량이 부족하다면 그는 '연장통'이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초등학교때 문예반에 들어갔다가 함양미달로 하루만에 쫓겨난 나로서는 너무 늦게 만난 이 책이 아쉽고도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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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링크로스 84번지
헬렌 한프 지음, 이민아 옮김 / 궁리 / 2004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희귀본 수집에 여념이 없을 때였다. 당시 헌책매니아들 사이에서 떠오르는 must have item인 <최순우 전집>을 구할려고 사방팔방으로 나대고 있었는데 용케도 그 보물을 선뜻 양도하겠다는 수집가를 만났다. 놀랍게도 그는 다른 사람은 구경도 못하는 그 보물을 하드커버와 소프트커버 두 종류를 모두 소장하고 있었다. 나름 그 바닥에서 내로라하던 나도 하드커버가 존재한다는 사실조차도 몰랐다. 


어쨌든 그와 거래를 마치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헌책방 마니아의 자격증쯤으로 여겨지던 신영복 선생의 옥중 서간집 <엽서>가 화두로 떠올랐다. 2003년 개정판이 나오기 전의 일인데 어쩐 일인지 그도 그 책 만큼은 구하지 못했다고 한다. 우리는 <엽서>가 언젠가는 반드시 재출간되리라 예상하였고 그는 그때 그 책을 사서 읽으면 되지 비싼 돈을 들여서 당시 희귀본인 헌책으로 애써 구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고 했다. 그의 지론은 그랬다. 책이라는 것은 콘텐츠만 향유하면 되지 굳이 희귀본 버전을 구하려고 시간과 돈을 낭비하지 않겠단다.


나 역시 그의 주장에 동의를 했고 우리는 희귀본이라고 하면 사족을 못쓰는 뭇 수집가들의 행태를 비난하면서 대화를 마무리 했다. 


그날 밤이었다. 지금은 없어진 개인과 개인간 헌책거래 사이트에서 내가 오매불망하던 신영복 선생의 <엽서>가 매물로 나왔다. 그것도 무려 초판이다. 가격이 문제가 아니었다. 헌책 마니아라면 누구나 탐내는 보물중의 보물이기 때문이다. 순식간에 그 책을 사겠다는 댓글이 우수수 달렸는데 그 중에서 낯익은 아이디를 하나 발견했다. 그날 낮에 희귀본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수집가들의 행태를 나와 함께 신랄하게 비판했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 너무 급하게 남기는 바람에 오타가 여럿 보이는 그의 댓글은 이랬다.


"서울인가요? 저도 서울인데 지금 당장 달려가겠습니다" 결론은 어찌되었을까? 최종승자는 그가 아닌 나였다. 나의 댓글은 간단 명료했다. "입금했습니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이겠지만 희귀본 수집가들은 집요하며(절판본을 구하겠다고 출판사를 직접 찾아가기도 한다), 탐욕스럽다(자기가 구하던 책도 아닌데 다른 사람이 구하려고 노력하면 일단 그 책을 사 놓고 본다). 그러나 여기에 소박한 수집을 하면서도 다른이에게 감동을 주는 착한 수집가의 이야기가 있다.


 <채링크로스 84번지>는 책을 사랑하지만 가난한 뉴욕의 소설가 헬렌 한프와 영국 런던의 고서점 직원 프랭크 도엘이 주고 받은 편지를 모은 글이다. 희귀 고서적을 좋아하지만 가난했던 헬렌 한프는 우연히 광고를 통해서 고서적을 전문으로 다루는 런던의 마크스 서점을 알게 되었고 평소 자신이 구하고 싶었던 희귀본 목록을 보냈다. 


첫 거래에서 자신의 희망목록 2/3를 해결한 헬렌 한프는 무려 20년간 런던의 조그마한 고서적 전문 서점 마크스의 직원 프랭크 도엘과 편지를 주고 받는다. 말이 편지지 엄밀히 말하면 헌책을 거래한 내역에 지나지 않다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은데 정감이 넘치고 심지어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가령 다음 대목들이 그렇다.




햄도 유대 율법에서 금하는 음식에 들어가나요?

지금 입안이 바짝바짝 타들어가고 있어요.

어떡하면 좋아요. 1949년 12월 9일. 헬렌 한프.


크리스마스 선물로 좋은 것을 보내주셔서 고마워요.

헬렌,

당신은 참 친절한 사람이에요!

내년에 당신이 왔을 때 마크스 서점 사람들이 

잔치를 열어 주지 않았다면,

흠 총을 맞아도 싸죠. 1952년 12월 17일. 프랭크 도엘


이 모든 책을 내게  팔았던

그 축복 받은 사람이 몇 달 전에 세상을 떠났어요

서점 주인 마크스 씨도요.

혹 채링크로스가 84번지를 지나가게 되거든

내 대신 입맞춤을 보내주시겠어요? 제가 정말 큰 신세를 졌답니다.


뉴욕의 가난한 독자와 전시를 겪으면서 궁핍했던 런던의 헌책방의 눈물겨운 우정은 편지를 주고 받은 당사자인 프랭크 도엘이 사망함으로써 막을 내렸다. 20년간의 우정을 인연으로 런던을 방문해달라는 서점 직원의 제안도 가난한 뉴욕의 작가는 끝내 응하지 못한 채로 이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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