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장을 보러 갔다. 집안일에 소홀해서 늘 미안하긴 한데 아내 혼자 장을 봐 올 때면 더욱 그렇다. 장을 보는 행위는 선사 시대로 치면 식구들을 위해서 사냥을 하는 가장의 거룩한 의무가 아닌가? 번잡한 대형 마트의 주차장도 그렇고 계산대에 줄을 서서 결제를 하는 과정도 불편해 장을 보는 행위는 다른 사람과 미묘한 경쟁의 요소까지 포함되어 있어서 가장으로서 해야 할 중요한 책무가 아닌가 싶다.
솔직히 아내 혼자 장을 보는 것을 지인들이 보기라도 한다면 대형 마트라는 험난한 생존의 세계에 연약한 아내를 혼자 보낸 무심하고 한심한 남편이라는 인상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걱정도 아내와 마트를 동행하는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는 것을 고백해야겠다. 카트를 몰고 이리저리 마트를 구경하다 보면 평소 그다지 좋다고 생각하지 않는 취미, 즉 사냥하는 사람을 이해할 것 같기도 하다. 다양한 물건이나 음식을 구경하고 장바구니에 담는 일은 꽤나 즐거운 일이면서도 거룩한 행위다.
딸아이가 좋아하는 초밥을 고르다가 옆에 있는 생선과 회가 진열되어 있는 것을 보았다. 우리 식구는 비린내가 나는 생선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데 이상하게 그날따라 영롱한 빛을 발하는 횟감에 눈길이 갔다. 다른 손질이나 준비가 필요 없이 그냥 포장만 뜯어서 먹기만 하면 되는 포장 회를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는데 희한하게도 아내의 눈에 그게 띈 모양이다.
그러나 회라는 음식이 딸아이의 열광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크고, 나도 회식 때문에 횟집을 가게 되더라도 회보다는 초고추장과 맛보이기 음식으로 배를 채우고 오는 스타일이라서 적극적으로 장바구니에 담자는 말을 못 꺼내고 있었다. 그런데 아내도 회를 눈여겨보더니 “한번 사볼까”라고 말하기에 익숙지 않은 먹거리에 대한 호기심도 채우고, 아내의 의견에 적극 동조하는 자상한 현대인의 모범적인 남편상도 실현할 겸 그러자고 흔쾌히 동의를 했다.
집으로 돌아와 사냥한 회를 먹는데 첫 번째 점을 먹자마자 우리 세 식구는 알아챘다. 대형 마트의 음식을 먹음직스럽게 진열하고 포장하는 기술이 생각보다 뛰어나다는 점과 앞으로는 이 먹거리를 어떻게 처리하느냐가 큰 이슈가 될 것이라는 예감 말이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리는 조용히 젓가락을 내려놓았고 회로 버린 식욕을 돋우게 해줄 대안을 찾기 시작했다.
마트에서 피 같은 돈을 주고 산 회의 처리에 있어서 나와 아내는 동상이몽을 꿈꾸었는데 아내는 주부가 가지는 일반적인 생각 즉 ‘쓸데없이 돈을 쓴 자책감’, ‘음식을 고루고루 먹지 않는 식구들에 대한 원망’, ‘버리지도 먹지도 못할 음식의 처리 방안에 대한 고심’을 했고 나는 내가 먼저 그 포장 회를 사자고 주장한 것이 아니라는 엄연한 사실을 무기 삼아 이 기회에 이 사태의 주범인 아내를 문책하고 일벌백계함으로서 가장의 권위와 지배력을 드높이고자 하는 속셈을 가졌다.
이런 문제에 있어서 화를 버럭 내는 것은 좋은 대응 전략이 아니라는 것을 이미 나는 그들과의 수많은 전투에서 체득한 바 있다. 그래서 조근조근 아내를 꾸짖었다. 현대의 현명한 소비자는 마트에 가기 전에 구매 목록을 미리 메모하는 등의 계획성 있는 쇼핑을 해야 하고, 마트에서 물건을 살 때, 특히 음식을 살 때는 가족 구성원의 식성을 미리 감안해야 하며, 더구나 회 같은 신선도가 생명인 먹거리를 살 때는 가정으로 가지고 가면 맛이 변할 수 도 있다는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사실, 즉 그 회를 사자고 선량한 소비 생활을 하는 남편을 꼬드긴 것은 당신이라고 재확인시켜줌으로써 이 모든 사단의 책임 소재가 아내에게 있음을 공식화했다.
나의 꾸짖음에 아내는 충분히 내가 예상한 해명과 책임 전가를 시도했고 나는 가볍게 아내의 해명을 기각했다. 웬일인지 딸아이도 내 의견을 좇아서 현명하지 못한 소비를 한 아내를 비난하기에 이르렀다. 딸아이는 다른 문제는 몰라도 금전적인 문제에 민감하며 매우 엄격하다. 딸은 우리 부부의 유일한 상속자이자 늙은 우리를 봉양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승리의 열매는 참으로 달콤해서 그날 저녁 식탁에서 나는 공깃밥을 무려 세 공기나 먹어치웠다. 다음 날은 토요일이었는데 늦잠을 잤고 전날 과식을 한 탓인지 더부룩한 배를 쓰다듬으며 주방으로 갔는데 뭐라 설명하기 곤란한 비릿하면서 식용을 억제하는 묘한 음식 냄새가 나를 에워싼다. 가스레인지를 보니 찌개의 종류인 것 같은데 냄새는 찌개가 아닌 미지의 음식이 막 완성되는 눈치다. 이윽고 아침 준비가 모두 되었고 우리 세 식구는 제자리에 착석했다. 그런데 아내는 조금 전에 내가 목격한 묘령의 음식을 오직 나를 위해서만 장만했다는 듯이 내 턱밑에 밀어준다.
글이니까 하는 말이지만, 아내는 매우 뛰어난 요리가는 아니다. 장모님께서는 면을 대표하는 요리가 중의 한 명으로 명성을 떨친 분이라 유전자는 분명 요리가로서의 자질이 충분하겠지만 아내는 전업주부가 아닌 직장인이며, 우리 식구들이 음식을 매우 잘 먹는 스타일이 아니라 음식을 힘들게 한 보람을 느끼기 힘들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나와 딸아이의 책임이 커서 어떤 음식이든 불평을 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날 아침의 찌개는 군소리 없이 먹기에는 무리가 많았으며 그 양도 엄청났다. 훌륭한 요리가가 아닌 사람이 요리한 아방가르드한 음식을 조심스럽게 한 숟가락씩 떠먹는 나를 본 아내는 알 듯 모를 듯한 미소를 지어며 나를 빤히 본다. 그러고는 정체 모를 찌개의 정체를 알려준다. 어제 먹다 남은 비싼 회를 버리기 아까워서 찌개로 만들어보았다고 한다. 자기는 비린내 나는 음식이 싫고, 딸아이는 매운 음식을 못 먹으니 나 혼자 다 먹으란다.
고통스러운 아침 시간이 끝나가고 아내는 내가 먹다 남긴 찌개를 신줏단지 모시듯이 소중히 거두더니 냉장고로 다시 넣는다. 그리고 “내가 수위를 표시해놨으니 아까운 찌개를 버릴 생각은 하지 마라”라는 충고도 잊지 않았다. 그날 저녁인가는 실험적인 그 음식을 참지 못하고 국물이 현격히 부족해 더는 먹기 어렵다고 조심스레 의견을 피력했는데 아내는 물을 더 넣고 끓이면 되니 그런 걱정일랑 말라고 한다.
절망한 나는 포기하지 않고 “이 맛있는 음식을 나 혼자 먹기에는 너무 가슴이 아프다. 그러니 너희 둘도 같이 이 놀라운 음식을 먹고 건강해지자”라는 타협안을 제시했으나 아내와 딸에 의해서 간단히 기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