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0 : 서울편 2 - 유주학선 무주학불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0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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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의 초기 소설과 유홍준의 답사기를 좋아한다.(이문열의 이름만 나와도 발작하는 괴생명체들이 있어서 굳이 말해두는데 나는 그의 ‘초기 소설’만 좋아할 뿐 그의 정치성향이나 구시대적인 남성중심주의 사고는 동의하지 않는다)


이 두 사람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이 있다. 수천 권의 각종 희귀본과 값비싼 사진집이 가득한 내 서재에서 유일하게 누군가가 훔쳐간 책이 이문열의 소설이다. 

내가 근무한지 2년 된 학교에서 유일하게 빌려달라는 부탁을 받은 책이 유홍준의 답사기다. 2년 동안 내 책상위에는 아마도 수백 권의 책이 오갔을 게다. 2년 동안 책을 읽는 모습을 한 번도 보지 못한 그 분은 유홍준의 신작 출간 소식을 알고 있었고 간절한 눈빛으로 읽고 싶다고 하셨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서울편 1>을 빌려가셨다. 책 주인도 읽지 않은 책인 것을 알고도 예의상 2권이 아닌 1권을 선택하는 것을 보고 이 책을 무척 좋아하시는 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아이러니컬하지만 돈을 받고 글을 쓰면서 ‘억지로’ 읽어야 하는 책이 늘었다. 반면 유홍준의 답사기는 아껴가면서 읽게 된다.


어쩔 수 없이 2권을 먼저 읽기 시작했는데 재미난 사실을 알게 되었고 과연 유홍준이군이라는 감탄을 했다. 한양도성은 전쟁을 대비한 성곽이 아닌 수도의 품격을 높이기 위한 울타리란다. 그러니까 적들이 수도를 침범하지 못하도록 쌓은 높은 벽이 아니고 ‘보기 좋으라고’ 만든 장식물이라는 것. 적을 방어하기 위한 성곽치고는 너무 낮고 부실한 것 아니냐는 비판은 잘 못되었다는 것이다. 


이 재미난 사실을 음미하다가 문득 화가 치밀었다. 이 장식물을 만드는 공사에 동원되었다가 사망한 사람이 무려 872명이었을 뿐만 아니라 귀향길에 죽은 자도 많았기 때문이다. 물론 15세기의 일을 두고 21세기의 시선으로 바라보니까 생기는 비판이다. 적으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한 것이 아닌 단지 수도의 품격을 높이기 위한 공사에 동원되어서 죽어간 백성들의 죽음이 안타깝고 어이가 없다.


차라리 한양도성이 그냥 ‘부실한’ 성곽으로 건설되었다면 그 백성들은 덜 억울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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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17-08-19 14: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책 한 권을 떼인 이후로 책을 빌려주는 건 직계가족을 빼면 절대불가입니다. 이 담에 호을 짓는 다면 이불선생 정도 (빌리지도 않고 빌려주지도 않는다는 의미의)로 지을까 할 정도로 절대로 빌려주지 않습니다. 경험상 책을 정말 좋아하는 사람치고 함부로 남의 책을 빌리는 경우는 드물고, 안 읽는 사람들이 꼭 괜히 빌려가서 책장에 꽂아놓고 읽은 다음에 주겠다는 소리만 하더라구요. 이번에 5권부터 싹 주문해서 드디어 다 갖춰보게 될 유흥준 선생의 책이네요.ㅎ 밑줄 그어가면서 읽던 기억이 새록새록..근데 그게 벌써 20년이 다 되어가네요.

박균호 2017-08-19 14:28   좋아요 1 | URL
저도 20년째 답사기를 사고 있는 중입니다..책은 그냥 주면 주지 빌려주진 못하겠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