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녹음기를 중학교 2학년 무렵 즉 1982년경에 처음 가졌다. 녹음기는 속칭이며 이 기기의 정식 명칭은 나도 잘 모르겠지만 ‘카세트플레이어 겸 녹음기’쯤이 되겠다. 산골을 떠나 대구로 전학했고 이제 갓 중학교 2학년이 된 나를 위한 누나의 선물이었다. 대구의 서문시장 근처에 살고 있었는데 ‘녹음기’를 샀으니 노래가 담긴 ‘카세트테이프’가 필요했다. 등굣길에 늘 지나던 서문시장의 손수레 자판에서 ‘아무 생각 없이’ 집어든 것이 ‘비틀즈’의 명곡이 수록된 테이프였다.
당연히 비틀즈가 누군지도 몰랐고 듣다 보디 괜찮아서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주야장천 비틀즈만 들었다. 야구글러브와 함께 녹음기는 나의 애장품이자 자랑거리였다. 방학 때마다 시골집으로 내려갔는데 그때마다 ‘촌놈’들에게 자랑할 신문물을 자랑했고 전파했다.
무려 투수용 야구글러브의 오너인 나는 동네 야구팀의 투수로 활약했고 포수용 글러브를 가지게 되자 주전 포수가 되었다. 접착제를 이용해서 조립하는 장난감 로봇이나 탱크는 촌놈들에게 ‘눈으로 구경하는 것만 허용할 뿐’ 절대로 만지게 하지 않았다. 대구에서 접한 신문물 중에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포르노 사진’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펜트하우스나 플레이보이의 한쪽을 자른 것에 불과했지만, 종이라는 물건의 정체성을 상실할 때까지 소중히 가지고 다녔고 촌놈들에게 ‘관람’을 시켰다.
말하자면 도시 문명의 전파자였던 셈이다. 촌놈들은 나의 소장품과 신문물에 경외심을 표했고 나는 도시 사람으로서의 위치를 확고히 다졌다. 반전이 발생했다. 촌놈들이 어디서 구했는지 ‘야한 음성’이 담긴 테이프를 나에게 들려주었다. ‘자식을 생산할 수도 있는 행위’를 하면서 발생하는 모든 음란한 대화와 신음이 담겨 있었다.
나의 위치는 추락했고 나는 촌놈들에게 ‘야한 음성 테이프’의 청취를 위해서 구걸을 해야 했다. 분한 마음으로 대구로 돌아왔다. 등하굣길에 서문시장을 지나다니면서 ‘비틀즈’ 테이프를 산 노점상에서 놀라운 물건을 발견했다. 촌놈들이 나에게 들려주었던 내용이 담겨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테이프였다.
다가오는 방학 때 그간의 수모를 갚아 주어야 했다. 호시탐탐 그 테이프를 노렸고 군침을 흘렸지만 차마 중학생 신분으로 살 수는 없었다. 대구 시민이 모두 모여 있는 것처럼 분주한 시장바닥에서 그 테이프를 주시라고 주인에게 말할 용기가 없었다. 자금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누나에게 ‘방위성금’을 내야 한다며 받아낸 천 원짜리 지폐가 주머니에 있었고 당시 그 노점상에서 파는 테이프는 500원 균일가였다.
용기도 용기지만 문제는 그 테이프의 내용이 내가 원하는 것인지를 확실할 수 없었다.
테이프 제목의 두 글자는 내가 원하는 것이었지만 마지막 한 자 즉 ‘폰’이 거슬렸다. 지금은 폰이라고 하면 당연히 휴대용 전화기로 다들 알아듣지만 당시로써는 전화기(telephone)이라는 말만 사용되었다.
폰이라는 글자의 의미를 생각해보았다. 몇 날 며칠을 연구했다. 실마리를 국어 시간에 들은 ‘활음조 현상(euphony)에서 얻었다. 활음조란 발음할 때 듣기 좋고 편한 음이며 두 단어가 연속될 때 말하기 편하게 발음이 변화하는 현상이라고 배웠다. 한마디로 ‘좋은 소리’라는 뜻인데 어쨌든 중요한 것은 ‘포니’ 소리라는 의미이며 ‘폰과 친척 정도 되는 말이라는 것이라고 추정을 하였다.
오랜 연구 끝에 내린 결론은 내가 본 그 테이프는 ‘성교를 할 때 발생하는 소리’를 담고 있다는 것이었다. 수십번을 지나다녔지만 차마 용기를 못 냈는데 천금 같은 기회가 찾아왔다. 서문시장 근처 인적이 한적한 골목길을 지나는데 또 다른 테이프 노점상이 그 물건을 팔고 있었다.
거스름돈을 받을 생각도 없이 돈을 던지고 수개월 동안 노리던 그 물건을 쥐어 들고 자취방으로 달렸다. 그때의 감격은 아직도 잊지 못한다. 방문을 잠그고 떨리는 손으로 섹스폰(표준어는 색소폰이란다) 테이프를 넣은 다음 재생 버튼을 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