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 중인데 메신저 알림음이 들린다. 궁금한 것을 못 참는 성격이라 정차를 하고 메시지를 읽었다. 사촌지간이지만 한 때 한방에서 같이 산 친동생이나 다름없는 녀석이 보냈다. 내가 쓴 책 제목 아래에 ‘재고 없음’이란 문구가 보이는 전표를 찍은 사진이 보인다. 녀석은 제수씨가 도서관 직원 인대도 책을 읽지 않고, 심지어 본인이 다니는 회사의 회장이 쓴 저서도 읽지 않는다. 


친족 중에서 유일하게 SNS 친구 사이로 지내는 제 누나에게 내 출간 소식을 들은 모양이다. ‘지나가다가’ 들린 서점이 하필이면 책을 낸 출판사와 거래를 하지 않는 곳이다. 이 녀석이 ‘일삼아.’ 다른 서점을 찾을 리가 없다. 다시 찾지 않을 고객에게 친절을 베풀지는 않는다. 내 책을 사지 않는 녀석과 길게 이야기 하고 싶지 않았다. 


망설이다가 뭔가 정리를 해둘 필요가 있어서 전화를 걸었다. 마음 같아서는 ‘내 책이 요새 너무 잘 팔려서 그런가 보다’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지나친 과장은 본연의 진실마저 퇴색시킨다. ‘도매상의 부도와 관련된 책의 유통 변화로 인한 ‘재고 없음 ‘의 이유’를 잠깐 설명했더니 명색이 법을 전공했다는 놈이 ‘책 낸 지가 얼마나 됐다고 출판사가 망하면 어떡해?’란다. 책을 낸 출판사가 망한 줄 안다. 


버럭 화가 났지만, 그 녀석을 붙잡고 기본 영어를 가르쳤던 시절을 떠올리며 설명을 다시 해주었다. 출판사가 망한 것이 아님을 이해시키는 데 성공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이어졌다. 


‘너희들의 코 묻은 돈으로 책을 팔고 싶지 않다’ ‘작가의 ‘가오’가 있다’ ‘다시 말하지만 내 책을 사지 마라’ 나의 호통에 ‘감탄’하는 눈치였다. 어차피 내 책을 살 놈이 아닌데 체면이라도 살리고 싶었다. 화제를 돌려 녀석이 나에게는 작은아버지 되시는 자신 부친의 기일에 참석하겠냐고 묻는다. 이미 알고 있지만 굳이 날짜를 다시 물었다. 잠시 뜸을 들인 다음 그날 ‘외부 일정’이 없으니 참석하겠다고 일러두었다. 


다시 한번 ‘작가’의 ‘가오’에 경의를 표한 녀석이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형이 이번에 낸 책은 누나가 사서 보내줘서 가지고 있고, 지인들에게 선물로 돌리려고 몇 권 사려고 했어”란다. 통화종료를 누르려던 손가락을 급하게 멈추는데 성공했다.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아 그랬니, 네가 꼭 사겠다면 인터넷 서점을 이용해라” “거긴 재고가 있어.” 이 두 마디를 ‘귀찮다는 듯이, 지나가는 말인 듯 내 뱉었고 ‘어, 알겠어. 형’이라는 대답을 듣고서야 전화를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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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프리쿠키 2017-03-04 09: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가님의 시시콜콜한 면모가 오늘도 돋보입니다. 전 책 샀어예^^;

박균호 2017-03-04 09:23   좋아요 1 | URL
ㅋㅋㅋ 감사합니다. 행복한 주말 되세요.

2017-03-04 13: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박균호 2017-03-04 14:11   좋아요 1 | URL
아 네 무례 전혀 아닙니다 신경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ㅎㅎ솔직히 재가 택배 보내고 이런것을 편하게 할 수 없는 입장아 아닙니다 눤가를 우편물로 주고 받는 것이 쉽지가 않아요 그냥 챡 어짜피 받은 겻이니 주위분께 선물 하시면 되고요 작가입장애서는 따뜻한 서평 남겨주시는게 최고의 보답 아닐까요 ㅎㅎ 다 잊으시고 편안한 주말 보내세요

2017-03-04 14: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박균호 2017-03-04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폰이라 오타가 ㅠ 미안요

나비종 2017-03-06 0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밀당의 핵심은 뭐니뭐니해도 밀에서 당으로 방향을 트는 타이밍이죠ㅎㅎ 박균호님의 손가락이 본능적으로 적절한 지점을 찾아낸 것 같습니다.^^
‘요새 너무 잘 팔려서‘가 ‘재고 없음‘의 이유가 되기를 바라게 되네요~^^*

박균호 2017-03-06 08:51   좋아요 1 | URL
네 맞는 말씀이에요...ㅎㅎㅎ 좋은 한 주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