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언컨대 나는 책을 의무감으로 읽은 적이 없다. 오로지 ‘재미로’ 읽었다. 어렸을 적부터 책을 많이 읽은 것은 ‘혼자서 하는 가장 재미난 놀이’이었기 때문이지 ‘마음의 양식’이라고 생각해서가 아니었다. 내가 유년시절을 보낸 1970년대에 스마트폰과 컴퓨터가 있었다고 해도 책을 즐겨 읽었으리라고 장담을 못 하겠다. 친구들과 뛰어노는 것 말고는 달리 유흥거리가 없었던 시대적, 장소적 배경이 나를 ‘책을 좋아하는 아이’로 만든 주요한 요인이라고 믿는다. 


숙제로 책을 읽는 것만큼 고통스러운 일도 드물다. 요즘 아이들에게 가장 고통이 큰 벌은 ‘가만히 있게 하는 것’이다. 요즘이 얼마나 역동적인 시대인가? 굳이 멀리 눈을 돌리지 않고 손안의 스마트폰만 터치해도 또 다른 세상이 열린다. 요즘 아이들이 가만히 앉아서 책을 강제로 읽게 하는 것은 마치 솔제니친이 국외로 추방되는 고통에 비견되는 일이다. 

출판계의 사정이 갈수록 어려워지는 당연한 일이다. 독보적이었던 ‘정보 제공’의 기능도 상당 부분 인터넷을 비롯한 여러 매체에 의해서 빼앗겼고, 과거 독서의 중요한 매력이었던 ‘시간 죽이기’나 ‘유희’로서의 기능은 거의 멸망단계에 이르렀다. 굳이 책을 통하지 않고도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경로가 많아졌고, 책을 읽는 것 말고도 재미있는 것이 수도 없이 많아졌다. 


오늘의 출판인들은 선배들이 생각지도 않았던 ‘괴물’ 즉 인터넷을 비롯한 멀티미디어라는 적을 상대해야 하며 이 싸움은 갈수록 힘겹기만 하다. 나만 해도 그렇다. 인터넷보다 재미있는 책을 발견하고서야 겨우 책장을 넘기는 편이다. 그런데도 책을 향한 시선을 거두지 않고 늘 재미있는 책을 찾아왔던 경험이 다섯 번째 책을 출간한 동력이 되었다. 


이번에 낸 <독서 만담>은 제목에서 충분히 추측할 수 있듯이 실용적이거나, 깊이가 있다거나, 지식이 충만한 책이 아니다. 책을 읽고 모아온 그간의 에피소드와 즉흥적으로 가지게 된 책에 대한 생각들을 담았다. 아내와 딸의 틈바구니에서 꼼꼼하지 못하고, 권위라고는 전혀 없는 책을 좋아하는 가장이 겨우겨우 살아가면서 겪었던 ‘웃기는’ 에피소드를 담았다.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가 보자. 겨울철엔 군것질거리가 오직 처마 밑에 걸린 곶감이 유일했는데 일찍 잠이 드신 부모님의 코 고는 소리가 커지면 나는 몰래 방문을 열고 나갔더랬다. 곶감을 몰래 먹기 위해서였다. 누나들은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나는 혼자서 곶감을 따 먹지 않았다. 아랫방에 모여 자던 누나들을 불렀었다. 다른 이유는 없고 좋은 것은 될 수 있는 대로 여러 사람과 나누고 싶었었다. 


<독서 만담>에는 웃기는 에피소드와 함께 책 이야기도 있다. 단순히 재미있는 책을 이야기해서 좀 더 많은 사람이 ‘재미’를 함께 나눴으면 하는 취지에서 쓴 글이지 무슨 거룩한 목적이나 계몽을 위해 쓰지 않았다. 


<독서 만담>은 하나도 실용적이지도, 깊이가 있지도, 수려하지도 않은 책이다. 

책을 수집하고 읽다 보면 이런 웃기는 일도 경험할 수 있구나! 

이런 모자란 남편도 있구나! 결혼 생활을 하다 보면 이런 웃기는 일도 겪는구나! 

세상에 이런 책도 있었구나! 


이런 정도의 감탄과 함께 재미를 느끼면 원래의 기능을 다 한 책이다. 


이 책에는 재미있고 웃기는 에피소드만 담았다. 세상살이가 고달픈 요즘인데 굳이 책을 읽으면서 까지 우울함을 느껴서는 안 된다는 나의 짧은 소견 때문이다. ‘재미’의 힘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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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2-02 14: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입니다. 잘 지내셨죠? 신작을 내셨군요. 저번에 책을 보내주셨으니 이번에 나온 책은 직접 사서 읽어볼께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박균호 2017-02-02 22: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네 감사합니다...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

북프리쿠키 2017-02-06 18: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양철나무꾼님 리뷰타고 왔어요
출판 축하드립니다^^;

박균호 2017-02-06 19:15   좋아요 2 | URL
에궁...고맙습니다....편안한 저녁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