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꾸미기 개론

서재는 사색과 휴식의 장소다. 잘 계획되어야 하고, 어느 정도의 규칙이 필요하다. 계획되지 않고 아무렇게나 책만 잔뜩 쌓아놓으면 ‘책 창고’이지 ‘서재’가 아니다. 정원을 관리하듯이 서재도 물을 뿌리고, 불필요한 가지는 잘라내고, 거름을 줘야 한다. 서재를 방문한 사람이 “이 책을 다 읽어셨어요? 라는 질문을 했을 때 , 미국의 성직자 ‘토머스 웬트워스 허기슨’은 이렇게 대답했다. ”당신은 도구 상자에 있는 도구들을 다 쓰시오?“ 서재는 말하자면 우리가 무슨 일을 할 때 필요한 도구들이 담겨 있는 도구상자다. 도구상자는 항상 정돈을 하고 점검을 하며 필요한 도구는 보강을 하고, 사용빈도가 현격이 낮은 도구는 추려 내야한다. 그래야 무슨 일을 할 때 효율적으로 도구를 이용하고 자신이 원하는 목표를 달성한다. 


장서의 수가 많더라도 항상 자신이 필요한 책은 금방 찾아야 서재이지 자신의 서재에 있는 책인줄도 모르고 새 책을 새로 산다면 그 사람의 서재는 서재가 아니고 그냥 ‘창고’에 지나지 않는다. 급기야 필요한 물건들이 보관된 창고가 아닌 재활용품이나 고물이 방치되어 있는 창고다. 소수의 소장용 책을 제외하면 다시 읽어볼 일이 없는 책을 서재에 둘 이유가 없다. 그래서 서재에는 ‘활동중인(active)한 책들만 자리 잡아야 한다. 


서재를 꾸밀 때는 항상 자신만의 장서의 수를 정해야 한다. 서재의 라인업을 200권으로 설정하기도 하고 장차 1000권으로 라인업을 확대하기도 한다. 라인업의 수가 200권이든 1000권이든 새로운 멤버가 들어오면 기존의 한 멤버는 퇴출되어야 한다. 그래서 항상 새로운 멤버를 영입할 때(새 책을 살 때)는 심사숙소를 해야 한다. 자신의 서재의 회원수(책 권 수)를 확실히 정하는 일은 자신의 독서의 질을 향상시키고 책을 보는 안목을 높이는 좋은 방법이다.

책을 보는 안목은 정보와 출판이 차고 넘치는 요즘에 특히 중요한 덕목이다. 과거 작은 배를 만들 때 두 가지 방법을 썼다. 작은 나무 조각을 모아서 골조를 세워 만드는 카약과 통나무를 파내고 파내서 카누만 남기는 방법이다.  불과 몇 십 년 전만 하여도 우리는 정보도 부족하고 책이 귀한 시대인터라 어찌됐든 주위에 있는 책을 모조리 읽고 읽어서 자신의 지적인 욕구를 충족하고 지식인으로서의 기틀을 세워나갔다. 말하자면 카약형 독서가였는데 최근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정보도 넘치고 출판물도 홍수를 이룬다. 이제는 우리를 포위하는 주위의 책들을 엄선하고 솎아내며 파내서 우리에게 꼭 필요한 책만 남겨야 하는 카누형 독서가가 될 운명이다. 카누형 독서가는 책을 모으는 일에 골몰하기보다는 책을 추려내고 파내는 일에 주력해야 한다. 자신에게 필요 없는 책을 추려내고 파내는 일에 주력해야함은 물론이다. 그래서 자신의 서재의 장서의 수를 제한하고 추려나가는 행위는 곧 자신의 책을 보는 안목이 그 만큼 자랐다는 반증이고 독서가로서 또는 정보를 필터링해야 하는 현대 교양인으로서의 기본적인 자질을 갖추었다고 본다. 


서재로 쓸 공간을 고려해서 장서의 수를 정하고 나면 서재가 자신의 사색과 지적인 활동 심지어 좋은 휴식처로 사용하기 위한 ‘도구 상자’로 만들어야 한다. 서재를 꾸밀 때 가장 투자를 많이 해야 하고 고민을 많이 해야 하는 부분은 책장이다. 서재가 ‘도구 상자’의 기능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그 디자인 보다는 튼튼함이 책장의 가장 큰 미덕이다. 가능한 가장 두껍고 가장 튼튼한 소재로 책장을 마련해야 한다. 합판소재의 책장은 두껍더라도 책을 많이 꼽으면 휘게 된다. 그래서 몇 년을 주기로 반대 방향으로 합판을 뒤집어 주어야 하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아이템은 물론 책상이다. 책상이나 의자 그리고 소파가 너무 안락하고 편안하면 졸음이 몰려오기 쉬우니 의자나 소파는 다소 딱딱한 소재가 좋다. 그리고 바퀴가 달려있지 않아서 한번 앉으면 좀 더 오래않게 되는 의자가 좋다. 바퀴가 달린 의자는 아무래도 자세가 흩트려지기 쉽다. 의자와 소파의 소재에 관해서는 다소 선택이 필요하다. 학문의 연구를 목적으로 하는 ‘전투형’ 독자들은 딱딱해서 항상 바른 자세를 유지하도록 도와주는 소재가 좋겠고, 책을 읽으면서 잠이 들어도 상관없는 ‘레저형’ 독자들은 푹신하고 안락한 소파가 좋겠다. 

서재의 관리도 중요한데 책의 가장 큰 적은 습기와 직사광선이다. 책장의 여러 곳에 습기제거제를 두어야 하며 서재는 가능하면 직사광선이 미치지 않는 곳이 좋다. 직사광선은 책을 변색되게 하고 상하게 한다. 직사광선만 잘 피해주면 책 관리의 반 이상은 해냈다고 보면 된다.


서재 장식품

책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서재는 자기의 신체의 일부다. 뉴스에 등장하는 많은 유명인사가 왜 거의 모두 자신의 책장이나 서재를 배경으로 인터뷰하는지 생각해보라. 서재와 책장이야 말로 자신을 대표하는 아이콘이자 가족이나 다름없다. 여기서 자신이 정말 열렬한 독서가인지 아닌지 판가름해보자. 만약 자신의 책장이나 서재를 배경으로 인터뷰하는 사람을 볼 때 그 사람보다는 뒤에 있는 서재와 책장을 더 유심히 보는 사람은 분명 열혈 독서가라고 자부해도 좋다.


서재에 자기가 좋아하는 소품으로 장식하면 더욱 더 자주 서재를 애용하게 되리다. 서재 장식품은 무조건 비싸고 예쁜 아이템을 찾을 일이 아니라 자신의 추억이 담겨있거나 자신이 좋아하는 물건을 선택해야 한다. 필자의 경우 야구를 좋아해서 야구 피규어를 가장 많이 두고 있다. 스포츠, 뮤지션, 영화캐릭터등 다양한 종류의 피규어는 서재 장식품으로 좋다. 크기도 서재 책꽂이에 두기에 적당한 크기가 많아서 금상첨화인데 의외로 비싼 가격이 흠이다. 스포츠 피규어의 경우 미국의 맥팔레인(McFarlane)과 덴버리민트(Danburymint)가 유명한데 맥팔레인은 가격이 좀 더 저렴하지만 소재가 플라스틱이고, 덴버리민트는 클레이소재에 받침대가 목재라서 고급스럽고 서재와 잘 어울리지만 비싼 가격이 흠이다. 


피규어 이외에 서재에 두면 좋은 아이템은 지구본, 접시 시계, 부메랑, 우드로 된 테니스 라켓, 액자 사진이나 그림, 음반, 작은 화분 등이 좋다. 기왕에 장소가 장소이니만큼 구하기만 한다면 유명작가의 두상도 매우 좋다. 나는 ‘도스또예프스끼’를 좋아해서 그 양반의 피규어 2종류를 가지고 있는데 그 중 하나에 관련된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를 소개한다. 새끼손가락 길이의 작은 피규어인데 머리와 몸체가 분리가 된다. 근데 머리를 들면 머리가 차지하고 있던 빈 공간 안에 ‘도끼’또는 ‘큰 식칼’모양의 물체가 발견된다. ‘도스또예프스끼’를 국내 일부 독자들이 ‘도끼’라는 애칭으로 부르지 않는가? 외국회사가 이 사실을 알고 국내 독자를 위해서 ‘도스또예프스끼’ 피규어 안에 ‘도끼’를 깜짝 선물로 넣어 둘리는 없을 텐데 이 도끼 또는 식칼의 정체가 아직까지 궁금하다. 

장식품이라고 하기 에는 무리가 있는데 수납용 상자도 서재에 꼭 필요하다. 책장에 전원어댑터, 동전 등의 잡동사니가 널브러져 있으면 책을 사용하기에 불편하다. 그래서 이런 잡동사니를 수납할 상자는 꼭 필요하다.


책의 배치

 책을 크기와 모양 별로 같이 둘 필요는 없다. 통일성과 나름 일목요연한 느낌은 주지만 책은 역시 들쑥날쑥하게 꽂혀 있어야 지겹지 않고 더 운치가 난다. 어찌됐든 자기가 원하는 정보를 금방 찾기만 한다면 다소 불규칙한 배치가 더 낫다.


 다소 아깝더라도 책꽂이의 군데군데에 빈칸을 두자. 빈칸을 몇 칸 둠으로서 서재가 한결 넓어 보이고 여유가 있어 보인다. 서재가 여유 있고 편안해야 서재의 주인이 서재를 방문할 때 더욱 편안하고 위안을 느끼지 않겠는가? 독서가에게 있어서 서재는 독서의 공간일 뿐만 아니라 휴식의 공간이기도 하다. 또한 빈칸은 책장으로 하여금 과도한 무게로부터 쉴 여유를 주며 아예 빈칸으로 비워두기가 아깝다면 자신이 가장 아끼는 소품을 배치시켜라. 그러면 그 소품이 그 서재에서 가장 주목받는 아이템이 된다. 


하드커버와 소프트커버는 그 꼽는 방법과 위치가 달라야 한다. 하드커버는 일반적으로 무겁기 때문에 책장에 부담을 덜 주기 위해서 책장의 아랫부분에 두어야 한다. 하드커버는 세로로 세워두면 내지가 밑으로 떨어진다는 걱정을 하기도 하는데 사실 책은 원래 세로로 세워두게끔 만들었고 하드커버를 세로로 세워두었다고 내지가 밑으로 떨어지는 경우는 아직 못 봤다. 그러나 서재의 전체적인 안정감과 책의 꼽는 방법을 다르게 함으로서 질리지 않고 서재에 오래 머무르는 효과를 기대하면서 하드커버는 눕혀서 보관해보자. 


서재라는 도구상자를 좀 더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 자신만의 분류카드를 만들어 보자.

물론 자신의 서재니 웬만한 사람들은 모든 책의 위치를 대략적으로나마 파악한다. 그러나 자기 스스로 각 장르별로 구역을 정해둠으로서 필요한 경우 재빠르게 각 책들을 호출하게 된다. 마음속으로 구역을 정하기보다는 눈에 보이게 분류카드를 각 책장에 붙여둔다면 서재에 있는 모든 책들을 자신의 수족처럼 마음껏 사용하고 자기 서재에 어떤 새 식구를 들여야 하고 내보내할지를 항상 파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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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6-25 2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같은 책탐이 심한 사람이라면 반드시 참고해야 할 글입니다. 일단 집에 있는 책이 몇 권인지 세봐야겠습니다.

박균호 2015-06-25 2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장 한번 구경시켜주세요...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