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2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2
공지영 지음 / 분도출판사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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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모두 세 가지 종교(개신교, 천주교, 불교)에 모두 기웃거렸었다. 개신교는 모태신앙이 아니면서 교회에 다니게 된 대부분의 한국인과 같은 경로로 발을 들였고 한때는 교회를 관리하는 집사의 집에 더부살이를 하기도 했다. 불교 또한 종교라기보다는 자기수양과 요즘 유행하는 힐링의 차원에서 보시를 하기도 하고 불자회라는 단체에도 가입하여 '경담'이라는 제법 그럴듯한 법명을 받은 몸이다. 


천주교의 경우는 다른 두 가지 종교의 경우와는 달리 불온한 동기를 가지고 있었는데 군복무시절 세례를 받겠다고 통신교리를 신청하여 우편으로 교리공부를 제법 오랫동안 했었다. 통신교리를 하게 된 계기는 왠지 '세례명'을 가진다는 것이 '폼'나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동기가 순수하지 못하니 결국 세례는 받지 못했는데 대학졸업 무렵 천주교 산하의 학교에 교사로 취직하기 위해서 일삼아 '세례'를 받는 '난 놈'이 있는 것을 보고 새삼 그때 세례를 받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하기까지 했다.


결국 그 어떤 종교에도 귀의하지 못하고 '신'의 존재도 믿지 않는다.


내 생각은 이렇다. 만약 사후세계가 있고 현세에서의 나의 삶에 영향을 주는 존재가 있다면 그건 나를 낳아주고 길러주고 눈을 감는 마지막 순간까지 나를 보고 싶어 차마 저승길로 선뜻 나서지 못했던 '아버지'이지, 내가 가보지도 않은 나라에서 생겨난 내 얼굴도 알 리 없는 '부처님'이나 '하느님 아버지'가 아니라고 본다. 그리고 나는 죽고 나서도 나의 부모님 곁으로 돌아가면 그것으로 행복하지, 거룩한 신이 보살핀다는 고통이 없고 영생의 '열반'이나 '천당'에 가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다.


외동아들로 태어난 내가 겪은 가장 큰 불편함은 어린 시절 친구들과 싸움박질을 할 때 든든한 '원군'이 없다는 것이었다. 아이들 사이의 싸움이란 것이 고만고만했고 결국 승자는 '너 ! 우리 형아한테 말해서 때려주게 할 거야'라고 말할 수 있는 아이였다. 나는 오랑캐 같은 친구 놈을 응징하게 일러줄 형이 없는 외아들이었다. 


친구 놈이 꼼수를 써서 내 딱지를 모두 따가거나, 달리기를 못한다고 놀려대도 그저 억울함과 답답함을 속으로 삭여야할 뿐 달리 대책이 없는 처지였다. 그렇다고 아이들끼리의 일을 어른들에게 고자질하는 것은 '상도덕'에 어긋나는 일이었고 농사일에 바쁜 어른들이 코흘리개들의 '송사'에 재판관으로 등장할 일도 없었다. 무조건 내 편이 되어줄 형과 객관적으로 시비를 가려줄 어른의 부재는 코흘리개의 삶을 '억울함의 천국'으로 만들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지난 8월 4박 5일의 일정으로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했다. 그분의 방한을 계기로 천주교로 귀의하려는 사람들의 문의가 쇄도했다는데 쉰이 다 되도록 굳건한 무신론자로 살아온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연민과 공감이 굳이 익히 나를 알고 있는 사람이 아닌 생소한 타자로부터도 느낄 수 있다는 경험을 했고 그분이 마침내 한국을 떠날 때는 마치 가족이 먼 길을 떠나는 듯한 '서운함'이 느껴지는 것이었다. 코흘리개 시절 내가 억울하고 분한 일을 당할 때 홀연히 나타나 나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코를 닦아줄 것으로 희망되었던 자상한 형과 같은 따뜻함을 국빈으로 온 종교지도자에게 느낀 일은 내게는 나름 '영적인 충격'이었다.




이 경험이 나를 공지영 작가의 <수도원 기행 2>를 더욱 주의 깊게 지켜보고 읽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음은 당연하다. 공지영 작가는 이미 십 년 전에 스스럼없이 '돈을 위해 펜을 들었다'고 고백이 아닌 공표를 했다. <수도원 기행 2>는 사실 '돈을 위해 펜을 들 수밖에 없었던' 개인사와 그로 인한 하느님에 대한 갈구에 많은 부분을 할애한다. 따지고 보면 작가가 '돈을 위해 펜을 들지 않는' 경우가  낯설다. 우리가 그토록 찬양하는 문학의 본좌 도스또예프스끼의 수많은 명작들이 사실은 도박과 사치로 인한 빚에 쫓긴 절박한 펜 놀림의 산물이었고, 동화작가로 유명한 <강아지 똥>, <몽실 언니>의 권정생 선생과 국어학자 이오덕 선생의 서간집 <살구꽃 봉오리를 보니 눈물이 납니다>에 가장 빈번히 등장하는 말 중의 하나가 사실 '돈'이야기다. 


물론 원고료와 이오덕 선생이 권정생 선생을 염려해서 보내주는 정성이지만 결국 '돈'은 '돈'일 뿐이다. 생계를 유지하고 가족을 부양하기 위한 돈벌이로서의 '글쓰기'가 결코 점잖지 못한 일이 아닌 이유다. 30대 초반에 이미 평생 쓸 돈을 다 번 공지영 작가이지만 주변 사람에게 속아서 재산의 상당 부분을 잃고, 그토록 지키고 싶었던 결혼생활을 3번이나 마감해야 했던 그녀에게 '글쓰기'는 고상한 '예술혼의 표출'이 아닌 '생계수단'에 가까웠다. 공지영 작가의 글쓰기는 어린 자식들을 부양하기 위한  유일한 돈벌이 수단이었고 자식을 지키나가려는 어머니의 마음이기도 했다. 그러나 돈을 위해 펜을 들었다고 해서 그의 소설도 구린 돈 냄새가 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공지영 작가의 소설은 낮은 자를 향한 강한 연민과 관심의 촉구인 경우가 태반이다. 결국 그녀는 사람을 위해 펜을 들었다고 단언한다. 그것도 소외받고 불평등 당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공지영 작가는 우리 문학계에서 가장 현실참여적이다. 그의 현실참여적인 문학은 난해한 이론 놀음이나 계몽적인 것이 아니고 오로지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핍박받으며, 불평등을 일상적으로 당하고도 어디 하소연할 데가 없는 사람들에게 집중되어 있다. 공지영 작가의 소중함은 그의 '인간에 대한 예의'가 책 속에 갇혀 있지 않고, 세상 속에서 직접 참여한다는 데 있다. 굳이 공지영 작가의 약한 자를 위한 행보를 열거하는 수고는 필요 없지 않을까?  등단 이후로 돈을 위해 펜을 들었다지만 공지영 작가의 작품들의 면모는 결국 '사람'을 위해 펜을 든 것으로 증명된다.


공지영 작가의 도드라진 문학의 성과는 '약한 자를 위한 배려와 관심을 이끌어 냈고' 휴머니즘을 실천한 것이다. 나는 <수도원 기행 2>의 기본적인 근간이 '휴머니즘'이라고 본다. 무엇보다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따뜻함이 배어 있다. 땅에 스며든 강아지 똥이 땅위의 아름다운 민들레를 키운 자양이 되었듯이 인간에 대한 연민과 존중의 휴머니즘이 <수도원 기행 2>이라는 역작을 길러냈다고 나는 본다.


<수도원 기행 2>의 머리 부분을 차지하며 전체 글의 모태가 되는 '왜관수도원'만 해도 그렀다. 소설 <높고 푸른 사다리>의 소재가 왜관수도원이기도 한데, 한국전쟁 중 애초에 군사목적으로 항해에 나선 미국의 배가 인민군과 중공군에게 쫓기는 무려 만사천명의 피난민을 기적적으로 구한 '레너드 라루' 선장과 왜관수도원과의 인연이 이 책의 토대라고 할 수 있다.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수도원 기행 2>가 왜관수도원에서 시작해서 만사천명의 피난민을 구한 레너드 라루 선장이 수사가 되어서 머문 '뉴튼 세인트 폴 수도원'으로 이어지는 구성은 이 책이 단순히 기행문이 아닌 인과관계로 역인 대하소설로 읽히는 감동을 준다. 한국전쟁은 이승만이 오로지 자신의 편의를 위해 국민을 속이고 한강철교를 폭파해 수많은 무고한 국민을 살해한 천인공노할 일로 시작되는 바로 그 전쟁이다.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휴머니즘이 정치나 국적보다 더 우선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휴머니즘이 총구나 이데올로기보다 더 위대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수도원에 필요한 모든 물자를 자급자족하며 노동을 중요한 가치로 생각하는 왜관수도원의 일원이기도 하며 <수도원 기행 2>을 펴낸 분도출판사를 키운 임인덕 세바스티안 신부님의 주요한 기획중의 하나였던 가난한 이웃들의 사진만을 찍어 박정희의 핍박을 받는 최민식 작가의 사진집 이름이 [Human]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인간에 대한 따뜻한 사랑과 예의라는 뿌리를 가진 이 책의 소소한 '인간적인' 면모는 194페이지의 공지영 작가의 저작권인 에펠탑 야경사진으로도 느껴진다. 야경사진을 삼각대가 아닌 손각대로 촬영하여 초점이 맞지 않아 뭉개진 공지영 작가의 귀여운 인간미가 넘치는 사진 말이다. 공지영 작가의 <수도원 기행 2>에서 발견한 유일한 흠 또는 내가 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충고는 '야경사진을 찍을 땐 귀찮더라도 삼각대를 사용하시라'는 것이다. 더구나 '인간에 대한 예의'를 말하는 우리 시대의 고전에 담길 사진이라면 더욱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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