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가끔 이런 날이 오기도 한다. 약소국으로 강대국의 눈칫밥을 먹은 지가 수삼 년인데 나에게도 드디어 찬란한 서광이 비치는 날 말이다. 콘크리트보다 더 견고해보였던 그들(아내&딸)의 동맹 관계에 드디어 균열이 보였다. 부부 사이도 그렇지만 모녀간의 우정도 아주 사소한 일로부터 큰 싸움으로 번지는 법이다. 사건의 발단은 이랬다. 
친구들의 모임에 참석하느라 귀가가 늦었는데 역시나 딸아이는 나의 돌출된 배를 손가락으로 찌르면서 ‘이건 뭐야?’라는 질문으로 나의 소중한 몸을 졸지에 ‘사물화’했고 내 손가락으로 흡연 손핑테스트를 함으로써 내가 그들의 관리하에 있다는 사실 관계는 출근부의 도장처럼 확인되었다. 더구나 흡연자들의 천국인 친구들의 모임에 참석하느라 고기 구운 냄새와 담배 냄새를 가득 담고 온 나의 비매너에 대해서 두 사람 모두 개탄스럽다며 한목소리를 냄으로써 그들의 우정과 나에 대한 우위의 위치에 대한 확인이라는 우리 집안의 평화를 떠받드는 두 개의 큰 주춧돌이 어김없이 안녕을 유지한다.
조용히 시키는 대로 샤워를 마치고 그들이 거실을 비운 5분 동안 텔레비전으로 프로 야구를 시청하는 호사를 누린 다음 조용히 나의 서재로 들어왔다. 딸아이는 요새 다이어트 바람이 불었는지 가만히 앉아 있어도 땀이 흐르는 무더운 우리 집에서 헬스용 자전거를 열심히 탄다. 아내는 딸아이가 너무 다이어트에 신경을 쓴 나머지 충분히 먹지 않는다고 걱정하는 눈치다. 결국 딸아이와 아내의 다이어트에 대한 미묘한 관점의 차이는 그들 사이를 벌어지게 하는 아주 작은 틈새를 만들어내고 마는데, 그 조짐은 어제부터 감지할 수 있었다. 
어제 퇴근길에 아내가 마트를 잠시 다녀왔다. 장바구니의 상당 부분의 부피를 차지한 품목이 바로 전날 딸아이가 굉장히 먹고 싶은 빵이 있는데 살이 찔까 봐 못 먹겠다던 바로 그 빵이었다. 차라리 눈에 안 보이면 참을 만한데 다이어트를 위해 간신히 먹고 싶은 것을 참는 그 빵을 주방의 눈에 잘 띄는 곳에 둔다는 것은 딸아이의 입장에서는 도발이 아닐 수 없다. 즉 딸아이의 다이어트 계획에 정면으로 반기를 드는 처사였던 것이다. 
오늘도 딸아이가 거실에 둔 자전거를 타기 위해서 안장의 높이를 낮추느라 부산을 떨었는데 아내가 대뜸 “거기에서 더 이상 낮출 수 없는데 뭐 하러 쓸데없는 수고를 하느냐”라고 말해버렸다. 즉 그 헬스용 자전거는 아직 너의 키에 맞지 않는 성인용이며, 다시 말해서 너는 그 자전거를 타서는 안 된다는 말이고 더 나아가 한마디로 다이어트를 하지 마라는 자신의 궁극적인 속마음을 대놓고 말하는 무리수였다. 요즘 다이어트를 공부 다음으로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는 딸아이에게는 차마 참을 수 없는 큰 도발인 것이 분명했다. 그나마 혈맹으로 뭉친 아내와 딸 사이니까 대충이라도 넘어가지 그들의 잠재적인 적군인 내가 그런 말을 했다면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주장하는 일본의 망언에 버금가는 언행으로 간주되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아무리 그들의 우정이 돈독해서 대충 묻힐 일이긴 하지만 앙금은 남아 있었다. 딸아이가 휴대폰으로 동영상인지 음악인지를 감상하면서 열심히 페달을 밟고 있는데 아내가 그 콘텐츠의 정보 제공 업체와 내용의 건전성 여부에 대한 의문을 딸아이에게 표시했고 딸아이는 발끈하면서 단지 유튜브에서 노래를 감상하고 있을 뿐이라고 항변했다.
아내는 “그렇게 건전한 내용이면 왜 내가 보려고 하면 감추고 그러느냐?”며 그들의 내전을 확대했다. 이에 대해 딸아이는 “내 폰이 구려서 인터넷이 잘 안 된다. 그래서 유튜브로 음악을 듣는다”라고 대응했고 아내는 “인터넷이 안 되는데 어떻게 유투브는 볼 수 있느냐?”라고 대물었다. 서재에서 조용히 강대국들의 다툼을 관전하고 있던 나는 아내의 이번 발언은 내가 아는 IT지식과 일치하며 매우 합리적인 의심이라고 평가했다. 인터넷이 잘 안 되는 휴대전화로 유튜브의 콘텐츠를 실시간으로 감상할 수 있느냐에 대해서는 제3자인 나로서도 납득하기 힘든 가설이다.
바로 이때 딸아이는 아내가 반박하기 어려운 회심의 일격을 날렸는데 “엄마도 혼자 휴대전화를 보다가 내가 같이 보자고 옆으로 가면 ‘안 알랴줌’으로 일관하지 않느냐?”라고 따져 물었다. 즉 국제 관계에 있어서 호혜 평등의 원리를 새삼 요구하고 나섰다. 예상은 어느 정도 했지만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발언으로는 제압할 수 없는 딸아이의 공격에 아내는 비논리적인 슈퍼 강대국의 힘을 앞세웠다. “나는 어른이잖아!”라고 말함으로써 냉엄한 국제 관계에서는 호혜 평등의 원리 따위보다는 ‘힘’이 더 앞선다는 즉 법보다는 주먹이 앞선다는 다소 비근대적이고 제국주의적인 논리를 내세웠다. 즉, 아내가 당황했다는 증거다. 마치 영어가 모국어인 싱가포르 상인에게 다급히 “아니, 두 개 말고 하나만”이라고 외치던 상황을 연상케 하는 순간이다. 
그런데 강대국들의 이권 다툼에 온갖 안테나를 곤두세웠어야 할 나는 큰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그 와중에 컴퓨터로 관전하던 프로 야구 게임에서 삼성의 선수가 홈런을 치는 장면에 잠시 넋을 뺏긴 틈을 타 그들의 다툼은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치달았던 것이다. 홈런을 날린 삼성의 선수가 느긋하게 홈런 세러모니를 마치고 더그아웃으로 돌아와 냉장고에서 게토레이를 시원하게 마시는 장면까지 보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갑자기 서로를 향한 진한 애정이 담긴 말다툼 아닌 말다툼을 나눈다.
방금 전까지 거실의 패권을 두고 세력 다툼을 하던 아내와 딸이 어쩐 일인지 아내는 딸아이에게 “왜 넌 엄마를 그렇게 걱정하느냐?”라고 탓하고 딸아이는 “딸로서 엄마를 걱정하는 게 당연하지 않느냐”라며 반박한다. 은근히 강자들의 내분을 통해서 어부지리를 기대했던 나에겐 당황스럽기 그지없는 상황인데 더 큰 문제는 어떤 계기로 이토록 급작스럽게 상황이 반전되었는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이다. 황새의 뜻을 뱁새 따위가 알 수 없다고 했든가? 괴이하게도 서로를 끔찍이도 걱정하고 위하는 훈훈한 내용의 말로 다투던 딸아이는 제 방으로 사라졌고, 아내는 아내대로 욕실로 향하는 이해 못 할 상황이 이어졌다. 우매한 나로서는 저들이 다툼을 했는지 아니면 서로에 대한 깊은 애정을 확인한 자리였는지조차 헛갈렸다.
이런 상황까지 이어지자 나는 두 가지 이유로 무주공산이 된 거실로 나갔다. 첫째, 저들이 다툼을 한 것이고 우정의 균열이 생긴 것이라면 둘 중에 누구를 포섭해야 나의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지 궁금했고 둘째, 서로를 비난하다가 어떤 말을 계기로 서로에 대한 따뜻한 애정을 주고받는 상황으로 변질되었는지가 궁금했던 것이다. 여자들의 이런 이해 못 할 행각에 대한 연구와 조사는 앞으로 내가 무탈하게 가장의 권위를 유지시키는 데 무엇보다 중요한 자료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여자들의 행동 양식에 대한 나의 학구열은 간단히 무시되었다. 딸아이의 방에 조심스럽게 접근한 나는 방문턱을 넘자마자 자기 방에서 나가줬으면 좋겠다는 말을 들었고, 그나마 딸아이보다는 구체적인 대답을 해줄 것으로 기대되었던 아내는 나의 정성스러운 마사지 신공이라는 조공을 받고도 구체적인 대답을 회피하는 슈퍼 강대국으로서의 면모를 과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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