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를 위한 우주는 없다 - 우주 불평등 시대를 항해하는 인류의 미래를 위한 긴박한 질문들
최은정 지음 / 갈매나무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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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천문연구원 우주위험감시센터 센터장 최은정 선생의 모두를 위한 우주는 없다라는 제목을 처음 봤을 때, 솔직히 조금 충격을 받았다. ‘우주라고 하면 당연히 우리 모두의 것, 인류 전체의 공동 재산쯤으로 여겨왔기 때문이다. 마치 땅을 팔라는 미국 대통령에게 이 땅과 이 공기를 어떻게 사고팔 수 있느냐라고 되물었다는 시애틀 대추장의 연설이 떠오르듯, 넓고 넓은 우주는 우리 모두의 것이어야 한다는, 지극히 문과적인 생각이 내 안에 아주 단단히 자리 잡고 있었다. 그래서 모두를 위한 우주는 없다라는 이 제목 한 줄은, 내가 너무도 당연하게 여겨 온 우주는 모두의 것이라는 믿음과 정면으로 부딪쳤다.

 

책을 읽어 보니, 이 문장은 단순히 자극적인 표현이 아니었다. 저자에 따르면 우주는 돈을 주고 사고파는 부동산은 아니지만, 깃발을 먼저 꽂는 자가 주인 행세를 하는 선점의 각축장이다. 이는 마치 제국주의 시절, 열강들이 앞다투어 식민지 개척에 혈안이 되었던 풍경과 섬뜩할 정도로 닮았다. 저자는 우주의 불평등이 바로 궤도(Orbit)’에서 시작됨을 지적한다. 과학 유튜버 궤도가 자신의 닉네임을 인공위성이 지구 주위를 돌기 위해 반드시 지켜야 하는 길이라는 뜻에서 따왔듯, 궤도는 위성에 생명선이자 유일한 길이다. 지구와 가까운 저궤도부터 중궤도, 그리고 방송·통신 위성이 머무는 정지궤도까지, 이 보이지 않는 하늘길은 한정된 자원이다. 모두가 갖고 싶어 하지만 아무나 가질 수 없는 이 길목을 차지하기 위해 지금 우주는 총성 없는 전쟁을 치르는 중이다.

 

문제는 이 한정된 도로에 너무 많은 차가 몰려들고 있다는 점이다. 국가 차원의 경쟁을 넘어 스페이스X 같은 민간 기업들까지 수천 기의 위성을 쏘아 올리며 우주는 그야말로 극심한 교통 체증을 앓고 있다. 궤도는 이미 포화 상태다. 도로가 막히면 사고가 나듯, 우주에서도 충돌 위험은 일상이 되었다. 수명을 다한 채 방치된 유령 위성들과 그들이 부서져 만들어낸 수만 개의 파편들, 우주 쓰레기는 총알보다 빠른 속도로 궤도를 떠돌며 살아 있는 위성들을 위협한다. 저자의 말대로 우주는 더 이상 동경의 대상이 아니라, 난개발과 폐기물로 신음하는 위험한 쓰레기장이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이어서 지속성이라는 화두를 꺼낸다. 보통 지속 가능한이라는 말은 환경 문제와 함께 쓰이는 말인데, 그것을 우주에 붙여 쓰니 처음에는 다소 낯설다. 그런데 저자가 말하는 지속 가능한 우주는, 단순히 우주를 쓰레기로부터 보호하자는 수준의 구호가 아니다. 우주 개발에는 반드시 궤도 역학적 지속 가능성이라는 과학적 기준이 내재하여야 한다는 주장에 가깝다. 이를 위해 최소 에너지 경로를 최적화하고, 인공위성이 임무를 마친 뒤 자연스럽게 소멸하도록 설계하며, 특정 궤도에만 위성을 몰아넣지 않고 궤도 배치를 분산하고, 다중 사용자가 동시에 이용하는 환경을 전제로 시스템을 짜야 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 지금처럼 엉망진창으로 막히고 부딪히는 하늘길이 아니라, 교통 신호에 따라 차들이 질서 있게 움직이는 도로처럼, 우주의 움직임 자체를 처음부터 지속 가능하도록설계하자는 이야기다.

 

이어서 저자는 시선을 달로 옮긴다. 이 책에서 달에 꽤 많은 지면을 할애하는 이유는, 달이야말로 인류의 우주 진출을 위한 전초기지이자, 달 탐사의 역사가 곧 인류 우주 탐험의 역사와 겹치기 때문일 것이다. 여러 흥미로운 사례와 논의를 거쳐 저자가 내리는 결론은 분명하다. 달 궤도 역시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관리되고 배분되어야 할 공간이자 자원이라는 점이다. 더 빨리 올라가는 나라가 먼저 차지하는 선착순 놀이터가 아니라, 임무의 중요도와 공공성을 기준으로, 궤도의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는 방향으로 할당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기술적인 측면에서는 위성이 스스로 위치를 조정하는 자율 기동 기술, 충돌 회피 기술, 안정적인 달 주변 통신 인프라 구축이 필수이며, 정책적인 측면에서는 이를 뒷받침할 국제법과 거버넌스 모델, 규범을 만들어 가는 전략이 함께 논의되어야 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달 탐험의 역사를 따라가다, 내가 특히 흥미롭게 느낀 대목은 현대 로켓 과학의 아버지라 불리며 달 탐험에 결정적인 토대를 놓은 치올콥스키가 열일곱 살에 쥘 베른의 소설 지구에서 달까지를 읽고 우주 비행의 꿈을 키웠다는 사실이다. 15소년 표류기80일간의 세계 일주로 더 잘 알려진 바로 그 쥘 베른이다. 얼핏 듣기로, 오늘날 우주 개발의 선두에 서 있는 일론 머스크에게 가장 큰 영감을 준 책 가운데 하나가 로버트 하인라인의 달 식민지 독립 혁명을 그린 고전 SF 소설 달은 무자비한 밤의 여왕이라고 한다.

 

이런 사실들을 떠올리다 보면, 인류의 기술 혁신이라는 것이 어쩌면 과학자보다 먼저 문학가의 상상력에서 출발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문학가가 아직 존재하지 않는 세계를 마음껏 그려 내면, 과학자는 그 무모한 상상을 실현할 수 있는 설계도로 바꾸는 사람들인 셈이다. 결국 이과의 기술과 문과의 상상력은 따로 떨어진 두 영역이 아니라, 앞에서 끌어당기고 뒤에서 밀어주는 하나의 몸처럼 서로 연결되어 움직인다는 느낌이다. 물론 이는 전적으로 나만의 해석이지만, 달과 우주를 둘러싼 수많은 이야기의 출발점에 언제나 한 편의 소설과 한 사람의 독자가 있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20세기 후반까지 우주 개발은 말 그대로 기술·과학·국가 체계가 총동원된 총력전이었다. 군사 중심의 과시적 기술 경쟁이자, 정부 주도의 우주 개발, 이른바 올드 스페이스의 시대였다. 그런데 이제는 일론 머스크, 제프 베이조스 같은 인물이 상징하듯, 민간 기업이 우주 개발을 주도하는 뉴 스페이스시대로 넘어가고 있다. 스페이스X가 보여 주는 저비용·고빈도의 소형 발사체 운용은 우주를 하나의 거대한 시장으로 여기는 우주 자본주의’, 그리고 그에 기반한 우주 경제 생태계의 등장을 잘 보여 준다. 하지만 공공 자산이어야 할 우주 공간이 일부 기업과 국가에 의해 상업적으로 독점될 위험, 국가 간 우주 개발 격차가 더 벌어지는 문제는 전혀 가볍지 않다.

 

디지털 주권을 말하던 시대를 넘어, 이제는 우주 주권이 새로운 국제적 이슈가 되었지만, 후진국들은 애초에 우주에 발을 들이기조차 어렵다. 그래서 저자는 우주를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개방된 인류의 공공 영역으로 다시 정의하고, 이를 뒷받침할 제도적 틀과 인류 모두의 우주를 위한 우주법 체계 정립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질문은 이것이었다. 왜 이렇게나 중요한, 우리의 미래를 가를 문제들이 우리 사회에서는 거의 논의되지 않는가? 그래서 나는 이 책이 훨씬 더 널리, 중요하게 다뤄져야 한다고 느꼈다. 모두가 지구가 네모라고 믿던 시대에 조용히 아니다, 지구는 둥글다라고 말했던 코페르니쿠스처럼, 이 책은 우주는 모두를 위한 곳이라는 안일한 믿음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갈릴레오의 말을 끝내 외면했던 사람들처럼 다시 행동하지 않으려면, 지금 이 시점의 새로운 우주 질서를 다룬 이 책이 더 많이 읽히고, 더 많이 이야기되어야 한다.


저자 또한 비슷한 문제의식을 품고 있지 않을까 짐작하게 되는 이유는, 중학생만 되어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쉽고 친절한 언어로 우주 정책과 기술, 법과 거버넌스 이야기를 풀어내기 때문이다. 읽는 내내 한편으로는 우리 사회의 우주 미래 전략 부재가 안타까웠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렇게 어려운 주제를 부담 없이 읽히게 만드는 저자의 필력에 감탄했다. 그래서 모두를 위한 우주는 없다는 단순한 우주 교양서가 아니라, 앞으로 우리가 어떤 우주를 선택하고 어떤 우주 질서를 지지할 것인지 묻는, 드물게 소중한 질문을 던지는 책으로 오래 기억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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