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디킨스의 『황폐한 집』에는 남편과 불화 끝에 억울하게 죽어간 귀족 부인의 유령 이야기가 나온다. 가문의 몰락을 예고하는 유령의 발소리가 그것이다. 그러나 찰스 디킨스는 유령이야말로 집안의 전통과 고귀함을 상징하는 특권이라는 대사를 통해서 귀족사회를 꼬집는다.
놀랍게도 빅토리아 시대 산업혁명으로 돈을 번 신흥 부르주아가 등장하자 몰락해 가는 전통 귀족들은 자신들의 우월함을 증명할 게 ‘오래된 핏줄’과 ‘전설’밖에 없었다. 그래서 “돈 좀 벌었다고 다 귀족인가? 우리처럼 수백 년 된 저택과 전용 유령(family ghost) 정도는 있어야지 진짜 명문가지.” 뭐 이런 마인드였다.
셰익스피어의 『햄릿』에 등장한 독살당한 선왕의 유령이 나타나는 장소도 엘시노어 성이었다. 대체로 서유럽의 유령은 가난한 민중이 아니고 거대하고 오래된 저택이나 성이 무대였다. 가난한 자에게는 유령도 사치였고, 지켜야 할 성과 재산이 있는 귀족 정도는 되어야 유령이 붙어있을 자격(?)이 생긴다. 아마도 찰스 디킨스는 이런 클리셰를 빌린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러시아의 유령은 서유럽의 유령과 사뭇 다르다. 서유럽의 유령이 귀족들의 전유물이었다면 러시아 유령은 힘없고 가난하며 착취당한 서민들의 것이었다. 도스토옙스키가 다닌 공병학교가 있고 그가 작품활동을 한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화려한 건축물에는 유령 이야기가 넘쳤다.
표트르 대제가 ‘유럽으로 향하는 창’으로 건설한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애초에 도시를 건설할 장소가 아니었다. 늪지대였기 때문이다. 이 늪지대를 나무와 돌을 맨손으로 메운 것이 수많은 민중이었다. 이들의 한이 유령으로 표출된 것이다. 한마디로 ‘가난한 유령’이었던 셈이다. 러시아 유령의 활동무대는 저택이나 성이 아니라 춥고 습한 거리, 비좁은 하숙방, 네바 강변이었다.
고골의 『외투』는 가난한 유령을 다룬 대표작이다. 가난한 말단 관리는 힘들게 장만한 외투를 도둑맞자 죽어 유령이 되어 자기 외투를 찾아 달라며 지나가는 고관대작들의 외투를 빼앗는다. “우리는 모두 고골의 『외투』에서 나왔다”라고 천명한 도스토옙스키는 『죄와 벌』과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 어김없이 가난한 유령을 등장시켰다. 사실 가난한 유령의 기초를 다진 것은 러시아의 국민 시인 푸시킨이다.
그의 서사시 『청동 기마상』에는 가난한 하급 관리 예브게니가 등장한다. 그는 결혼 준비로 모은 모든 재산과 약혼자를 네바 강의 홍수로 잃자 미친 상태로 상트페테르부르크 거리를 배회한다. 살아 있는 유령이었던 셈이다. 이 예브게니가 나중에 진짜 유령으로 돌아온 것이 고골의 『외투』의 하급 관리 유령이었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캐릭터가 유사하다. 푸시킨과 고골이 러시아 민중들에게 추앙받는 이유 중 하나가 여기에 있다.
이처럼 고전 소설을 읽다 보면 역사책에 나오지 않는 흥미로운 살아 있는 역사가 펼쳐진다. 이 고전 속 역사를 파고드는 것은 무척 흥미로울 뿐 아니라 가장 효과적인 학습이기도 하다. 아무리 세상이 바뀌어도 사람의 속성은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고전 속 인물의 이야기가 곧 오늘날 인물의 이야기이고, 고전 속 인물의 고민이 곧 현재 우리들의 고민이다.
『100문장으로 쓰고 배우는 청소년 필수 고전』은 교과서에 등장하는 고전만을 다뤘다. 놀랍게도 이 책에서 다룬 33권의 고전 안에는 현대 청소년의 고민에 대한 해결책이 빠짐없이 담겨있었다. 긴 작품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지 못하더라도, 한 문장씩 따라 쓰다 보면 고전 속 인물의 고민이 오늘 내 마음속 고민과 자연스럽게 겹치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래서 옛 천재들의 현명한 해답이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