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아들이 공부를 잘해서 카이스트에 입학했다. 자랑스러운 아들을 자랑하기 여념 없었던 친구는 어떤 주제나 어떤 말이든 카이스트를 넣어서 짧은 글짓기를 만드는 도사가 되었다. 어떻게 해서든 카이스트라는 단어를 발화하여야만 직성이 풀리는 강박관념 환자가 되었다. 그 친구와 한 시간이라도 함께 시간을 보내는 사람은 최소한 카이스트라는 말을 열 번 이상 들어야만 그에게서 풀려날 수 있었다.
친구들과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아들에게 전화를 느닷없이 걸어서 ‘아무개야, 카이스트에서 우리 집까지 자동차로 얼마나 걸리지?’라고 묻는 식이다. 좀 유난스럽다 싶었는데 평소 고매하기로 유명한 내 아내마저도 그 친구와 다름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금요일 저녁 줌 강연을 하는 날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강연 시간에는 다른 곳에서 시간을 좀 보내고 마치면 집에 돌아오라고 부탁을 했다. 전화를 받은 아내는 평소 같으면 ‘알았어’로 충분했을 텐데 최소한 동료가 3명 이상 있는 자리에서 이렇게 굳이 말하였다. ‘아니, 또 줌으로 인문학 강연을 한다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