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체로 무명 작가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누가 나더러 ‘작가님’이라고 부르면 어울리지 않은 옷을 입은 것처럼 민망하다. 나는 ‘그냥 책을 여러 권 출간한 경험이 있는 사람’일 뿐이다. 가끔 확고부동한 내 정체성에 가끔 혼란을 주는 일이 있다.
예를 들어서 며칠 전 국회도서관에서 <월간 국회도서관>이라는 기관지에 원고를 실어달라는 청탁을 받는 경우다. 내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으니 검색을 통해서 알았을 텐데 굳이 나를 찾아서 청탁하니까 내가 아주 듣지도 보지도 못한 잡것은 아닌 것이 아니냐는 착각을 하게 된다. 이번에 출간한 <오십 이제 나는 다르게 읽는다>가 대부분 연령대가 50대 이상인 국회의원들과 공감되는 부분이 많다고 생각해서인가?
어쨌든 티브이로만 보는 국회의원실과 공공 도서관에 배포되는 잡지라니 얼른 수락하고 글을 써야겠는데 난감해졌다. ‘내 삶에 들어온 책’이라는 어렵지 않은 주제인데 문제는 내 서재가 이사업체 창고에 들어가 있다는 사실이다. 공구가 없는 목수처럼 무기력하게 전혀 글을 쓸 수가 없었다. 새삼 감옥에서 저 유명한 ‘항소 이유서’를 써 내려간 유시민 선생이나 조선 역사를 통째로 머릿속으로 생각해가면서 ‘임꺽정’을 집필했다는 홍명희 선생이 존경스러워졌다. 그분들이야말로 진정한 천재이며 작가이다.
‘그냥 책을 여러 권 출간한 경험이 있는 사람’에 불과한 나는 서재가 없이는 글을 쓸 수가 없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그리고 새삼 서재의 쓸모를 생각했다. 서재에 있는 책은 집필할 때 참고도 되지만 그 존재 자체로 나에게 글을 쓸 수 있는 영감을 준다. 그래서 나에게 서재란 무속인의 거처에 자리 잡은 불상이나 불기(佛器)와 같은 존재다. 나는 서재의 기운이 있어야만 글을 쓸 수 있는 존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