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체로 무명 작가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누가 나더러 작가님이라고 부르면 어울리지 않은 옷을 입은 것처럼 민망하다. 나는 그냥 책을 여러 권 출간한 경험이 있는 사람일 뿐이다. 가끔 확고부동한 내 정체성에 가끔 혼란을 주는 일이 있다


예를 들어서 며칠 전 국회도서관에서 <월간 국회도서관>이라는 기관지에 원고를 실어달라는 청탁을 받는 경우다. 내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으니 검색을 통해서 알았을 텐데 굳이 나를 찾아서 청탁하니까 내가 아주 듣지도 보지도 못한 잡것은 아닌 것이 아니냐는 착각을 하게 된다. 이번에 출간한 <오십 이제 나는 다르게 읽는다>가 대부분 연령대가 50대 이상인 국회의원들과 공감되는 부분이 많다고 생각해서인가?

 

어쨌든 티브이로만 보는 국회의원실과 공공 도서관에 배포되는 잡지라니 얼른 수락하고 글을 써야겠는데 난감해졌다. ‘내 삶에 들어온 책이라는 어렵지 않은 주제인데 문제는 내 서재가 이사업체 창고에 들어가 있다는 사실이다. 공구가 없는 목수처럼 무기력하게 전혀 글을 쓸 수가 없었다. 새삼 감옥에서 저 유명한 항소 이유서를 써 내려간 유시민 선생이나 조선 역사를 통째로 머릿속으로 생각해가면서 임꺽정을 집필했다는 홍명희 선생이 존경스러워졌다. 그분들이야말로 진정한 천재이며 작가이다.

 

그냥 책을 여러 권 출간한 경험이 있는 사람에 불과한 나는 서재가 없이는 글을 쓸 수가 없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그리고 새삼 서재의 쓸모를 생각했다. 서재에 있는 책은 집필할 때 참고도 되지만 그 존재 자체로 나에게 글을 쓸 수 있는 영감을 준다. 그래서 나에게 서재란 무속인의 거처에 자리 잡은 불상이나 불기(佛器)와 같은 존재다. 나는 서재의 기운이 있어야만 글을 쓸 수 있는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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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2-08-08 15:3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디 잠시라도 서점과 카페를 함께하는 곳에 가서 작업해 보심이...😅

박균호 2022-08-08 11:18   좋아요 2 | URL
ㅎㅎㅎ 좋은 생각 감사해요.

얄븐독자 2022-08-08 11: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카페보다 다방이 일상적 이었을때 사장님 하면 모두 돌아보았다 하고 요즘엔 지나가는 사람 아무나 붙잡아도 선생님... 그런것처럼 자비출판 한 권만 내도 작가, 온라인 사이트에 글만 써 올려도 자칭 무슨 작가... 작가라는게 그렇게도 흠모의 직업?인걸까 싶기도 합니다 거칠게 표현해서 개나 소나 다 작가 전국민이 작가 같기도 하구요. 작가와 저자를 좀 구분했으면 싶네요

2022-08-08 11: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mini74 2022-08-08 16: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내분 손을 꼭 잡고 사랑의 힘으로 글을 쓰시는 건 어떨지요 ㅎㅎㅎㅎ농담입니다. 스텔라케이님 말씀! 오호 북카페가 있군요...좋은 글 쓰실 겁니다 작가님 *^^*

박균호 2022-08-08 17:14   좋아요 2 | URL
응원 정말 감사합니다. !! 말씀하신대로 해보죠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