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현장에서 오래 일하면서 가장 안타까운 것 중의 하나가 학생들이 고전을 고리타분하고 어려운 것이라 생각한다는 것이다. 사실 고전은 '오래된 미래'이며 출간 당시에는 베스트셀러이며 통속문학인 경우도 많다.

<오만과 편견>만 해도 오늘날 막장 드라마 시조새가 아니던가. 아버지와 아들이 한 여자를 두고 다투는 <까라마조프씨네 형제들>은 또 어떻가. 고전은 오늘날 우리가 겪는 문제에 대한 해답을 제시한다고 학생들에게 말하면 학생들은 교사가 흔히 하는 '영혼이 없는 잔소리'라고 생각한다.

고전은 21세기 청소년들이 학교나 가정 그리고 교우관계에서 흔히 만나는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고 나아가 건강까지 튼튼하게 만들어 준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 내가 <10대를 위한 나의 첫 고전 읽기 수업>을 쓴 이유다. 


<모비 딕>의 주인공 이슈메일은 한 번 바다로 나가면 최소 3년은 고향에 돌아오지 못하는 포경선 피퀴드호의 선원으로 취직한다. 군대 보다 더 위계 질서가 뚜렷한 포경선에서 가장 신분이 낮은 노꾼으로 일한다. 선장이 지시를 하면 마치 메뚜기처럼 이리 저리 뛰어다니며 죽는 시늉이라도 해야 하는 노꾼이라는 신분을 이슈메일은 비관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독자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우리들 중에 노예가 아닌 사람 누구 입니까?" 


따지고 보면 보통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고위공직자, 경영자 또한 그 누군가의 눈치를 봐야 하고 납작 엎드려야 한다. 포경선에서의 생활을 읽으면 하급 선원을 동정하게 되기도 하지만 하는 일만 다를 뿐 현대 직장인들의 생활 패턴은 포경선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오늘날 청소년들은 일과 자기 생활의 밸런스 즉 워라밸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포경선의 노꾼 이슈메일의 직업관은 어땠을까? 이슈메일은 노꾼이라는 직업을 선택할 때 보수나 사회적인 명성을 노리지 않았다. 그저 바다가 좋고 신선한 바람을 맘껏 마실 수 있는 환경이 좋았다.

심지어는 향유고래의 기름을 짜는 것을 '소확행'으로 좋아했다. 자신의 위치가 어디이던 간에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만족하는 삶을 대변한다. 반면 포경선의 선장은 오래전 자신의 다리를 빼앗아간 고래에 대한 복수심에만 사로잡혀 있다.
 
말을 못하는 짐승에게 무슨 복수인가라는 건의도 무시하고 배와 선원들의 운명을 파국으로 몰고 간다. 선장의 모습은 오로지 돈과 출세만을 맹목적으로 추구하는 현대인의 모습과 닮았으며 그러한 삶의 아름답지 못한 결말을 <모비 딕>은 알려준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주인공 스칼렛의 아버지는 '여자에게 사랑은 결혼을 하고 난 다음에 찾아오는 것'이라고 규정한다. 여자는 그저 부모가 시키는 대로 살고 결혼 상대자도 골라주는 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여성스러운' 것이라고 가르친다.

오늘날 여성에 대한 차별은 상당 부분 개선되었지만 아직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 나오는 미국 남부 시골 사람들의 고지식한 편견을 여학생에게 강요하는 학교와 교훈이 있다.

남학교 교훈에는 용기, 명예, 단결 등 미래지향적이고 적극적인 개념이 많은 반면 여학교 교훈에는 순결, 정숙, 예의와 같은 전근대적이고 수동적인 가치가 많다. 교과서의 삽화도 남성과 여성의 역할은 고정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통해서 청소년들은 성별에 대한 고정관념이 아직도 학교에서 존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고민하고 개선책을 생각해볼 수도 있겠다. 

안톤 체호프의 단편 소설 <내기>에서 부유한 은행가와 젊은 변호사는 종신형과 사형을 두고 어느 것이 더 관대한 처분인지를 두고 내기를 한다. 목숨을 앗아가는 사형보다는 종신형이 낫다고 주장한 변호사는 스스로 15년간 감금되어 있기로 하고 부유한 은행가는 그 대가로 거금을 약속한다.

그들의 무지막지한 내기와 결말을 지켜보고 있으면 오늘날 논술시험의 단골 주제인 사형제도의 존폐 여부라든가 국가가 과연 개인의 생명을 앗아갈 수 있는 권한이 있는가에 대한 문제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구축할 수도 있다. 

그밖에도 <10대를 위한 나의 첫 고전 읽기 수업>에서는 <파리의 노트르담>을 통해서 정보의 홍수에 대한 문제를, <걸리버 여행기>를 통해서 인성과 능력의 우선순위 문제를, 셰익스피어 비극을 통해서 학교에서의 휴대폰 사용 문제를, 장 그르니에의 수필을 통해서 동물의 안락사 문제를 히포크라테스를 통해서 다이어트 문제를 논의한다. 

이 책의 양념이기도 하고 청소년들에게 고민해결이 아닌 책 읽는 즐거움과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켜줄 <또 다른 이야기> 코너는 학생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재미나게 읽을 수 있다고 자부한다. 아이들에게 읽히려고 샀지만 부모도 재미나게 읽을 수 있는 청소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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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21-02-21 0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가장 후회하는 것이 십대때 고전을 읽디 않고 역사/소설에 편중된 독서를 한 거에요 그때 읽은 건 고스란히 남으니 십대에서 대학교 시절까지 고전문학을 잘 읽으면 평생의 교양이 남는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이 많은 분들에게 그런 계기를 주었으면 합니다

박균호 2021-02-21 08:48   좋아요 0 | URL
네 고전이 오래 기억이 남더라구요.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

얄븐독자 2021-02-21 10: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른?이 될때까지 책과 담쌓고 살아본? 사람 입장에서, 청소년 때의 고전 읽기할 때 청소년 판 등 원본을 첨삭한 버전을 읽고 그게 전부다 인줄 알고 어른이 된 후 완전판을 읽지 않게 되는 일이 있다는 문제가... 생각의 깊이와 넓이가 달라진 어른이 된 후 읽는것과 어렸을 적 읽는 것은 다를수밖에 없다보니. 물론 어떤 사람들은 어렸을 적 닥치는대로 읽었던게 문학적 소양이 되었다고도 하지만 적절한 독서지도 없이 막? 읽는건 좀... 물론 안읽는 것보다야 낫겠지만 말입니다. 어렸을적 봤다는 착각과 환상에 사로잡혀 어른이 되서 다시 보려니 뭔가 시시하기만한것 같고 말입니다. 근데 참 바지런하십니다 책 펴내시는걸 보면!

박균호 2021-02-21 10:52   좋아요 0 | URL
네 어린 시절 읽었던 고전들은 축약본이나 청소년 용으로 개작된 것이 많아요. 차라리 어린 시절 그런축약본을 읽지 않았다면 더 좋았을 터인데 말이죠. 저는 참 게으른 사람입니다. ㅠㅠㅠ 그런데 제가 좋아하는 주제이고 분량이 많지 않으며 학교 생활에 연관 된 분야라 빨리 쓰여진 것 뿐입니다. 그리고 마침 출판사 일정이 겹쳐서 동시에 두 권의 책이 나와 버렸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

stella.K 2021-02-22 19: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보내주신 책이네요. <그래봤자 책, 그래도 책>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나왔네요.
사실 청소년 때 고전을 읽기란 쉽지 않죠.
그나마 소년소녀 내지는 청소년 명작 고전으로 나오는 것도
꼭 나쁘다고만 볼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솔직히 그 어려운 걸 원본으로 읽으라고 그러면 안 읽을 수도 있거든요.
청소년판으로 읽고 나중에 관심이 생겨 원본으로 읽는 사람도 있죠.
마치 고전을 영화나 연극, 뮤지컬로 보고 책으로 읽는 것처럼.
고전 명작은 책뿐만 아니라 다양한 방법으로 접하는 시대가 된 것 같습니다.

박균호 2021-02-22 19:24   좋아요 0 | URL
네 뭐. 그럴수도 있겠네요. 책은 독자들에 따라서 다양하게 읽힐 수 있으니까요.